10회

국제시장

수레가 국제시장 케네디 골목으로 돌아왔을 때는 오후 네시였다. 그곳에 동키가 운영하는 세 평 남짓한 잡화점이 있었다. 동키는 영도다리 앞에 있는 유통회사와 여기 국제시장 케네디 골목에서 작은 잡화점을 운영했다. 바쁘게 두 군데를 열심히도 뛰어다녔지만 둘 다 수입 자체는 별 게 없었다. 아니 수입 자체는 괜찮은 편인데 이상하게도 지나고 나면 남는 게 없었다.

동키 가게는 국제시장의 부평동과 신창동을 가로지르는 중앙도로를 기점으로 동쪽에 있었다. 사람들은 서쪽의 부평동을 깡통 시장, 동쪽의 신창동을 케네디 시장이라고 불렀다. 깡통 시장은 미군 부대에서 얌생이꾼들이 몰래 빼낸 물건들, 예를 들어 커피, , 초콜릿, 박하사탕 같은 C레이션 깡통들을 팔았다. 케네디 시장은 전 세계에서 보내온 구호물자들을 팔았다. 힘 있는 사람들이 아예 통째로 빼돌린 뒤 다시 내놓은 물건이거나 가난한 피란민들이 부두 창고에서 목숨 걸고 훔쳐온 것들이었다. 미군 깡통들을 빼내서 판다고 시장 이름이 깡통인 건 그렇다 치더라도 멀쩡한 시장에다 왜 케네디라는 이름을 갖다 붙였는지는 모를 일이다. 아마도 부산항으로 밀려든 저 어마어마한 구호품이나 물자들을 미국 대통령 케네디가 보내주는 거라고 착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깡통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사람은 백상사라는 건달이었다. 실제로 그는 주한미군에서 근무하는 상사였고 포트8이라는 건달패거리를 끌고 다녔다. 그리고 부산항 3부두나 8부두에서 흘러나오는 군수보급 물자나 PX 물건을 깡통 시장에서 공급하고 있었다. 케네디 시장은 구호품의 시대가 끝나자 밀수품을 사고파는 시장으로 바뀌었다. 그곳은 화교 주왈승의 시대와 만리장 호텔의 손영감의 시대를 거쳐 이제 천달호에게 넘어와 있었다.

 

*

 

동키의 잡화점은 간신히 두 사람이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좁은 곳이었다. 사방 벽면에는 갖가지 물건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그 작은 가게에 직원이 넷이나 있었다. 하지만 계산을 하는 아줌마 한 명 외에는 모두 가게 밖에 서 있었다. 애초에 가게가 너무 좁아서 직원 넷이 다 들어갈 수도 없었다. 직원들이 주로 하는 일은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호객행위를 하는 것이었다. 이 골목에서 호객행위는 필수였다. 왜냐하면 동키의 잡화점은 밖에서 보면 대체 뭘 파는 곳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진열대만 살펴보면 양과자를 파는 가게처럼도 보였고, 카메라나 전축 같은 전자제품을 파는 가게처럼 보이기도 했고, 양주나 양담배 혹은 시거를 파는 가게 같기도 하고, 화장품을 파는 가게 같기도 했다.

흔히들 국제시장에는 앞장과 뒷장이 있다고 말한다. 사실 세상 모든 곳에는 앞장과 뒷장이 있다. 하지만 앞장의 세계와 뒷장의 세계가 국제시장처럼 극명하게 드러난 곳은 그리 흔치 않을 것이다. 예를 들어 간판은 과자 전문점인데 안에 들어가면 양주와 양담배만 잔뜩 놓여 있다거나 간판은 군복 전문점인데 막상 들어가보면 미국, 일본, 홍콩 양복지부터 영국제 최고급 양복지까지 버젓이 팔고 있다거나 간판은 도장집인데 사실 그 도장집의 주 수입원은 밀항자를 위한 위조 여권이나 밀수선을 위한 입항 허가서를 만드는 것이라거나 뭐 그런 것들 말이다. 하지만 케네디 골목에서 파는 양복지는 런던, 파리, 뉴욕의 멋쟁이들이 입는 최고급 양복지와 완전히 동일한 것이었다. 그래서 아주 많은 주한미군 간부들이 이곳에서 양복을 맞췄다. 심지어 미국으로 돌아가서도 부하들을 시켜 여기서 양복지를 구입해 광복동과 남포동에 있는 자신의 단골 양복점에다 새 양복을 주문한 뒤 우편으로 받곤 했다

한국전쟁 직후 난리통에 북쪽에서 내려온 피란민들이 먹고 살기 위해 돈이 되는 거라면 뭐든 들고 나와 사고 판 것이 국제시장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전쟁을 치르며 부산항이라는 거대한 배후 항구로 군수물자와 구호물자가 물밀듯 들어오자 국제시장은 순식간에 한국에서 가장 큰 시장으로 성장했다. 국제시장은 앞장의 세계도 거대하지만 뒷장의 세계는 더 거대하고 오밀조밀하며 심지어 신비로웠다. 하찮은 나사부터 비행기 부품까지, 식료품부터 귀금속까지, 국가 산업 발전에 이바지하는 건전한 물건부터 전국의 밤문화로 퍼지는 모든 밀수품까지 국제시장에서 사고팔지 않는 것은 없었다. 이곳 상인들은 저 북쪽에서 밀려 내려온 피란민들이었고, 모두들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이 시장에 자리를 잡은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뒤에는 바다가 버티고 있었으므로 실제로 더 이상 갈 데도 없었다. 국제시장은 무한경쟁 사회였고, 치열했고, 모두들 부지런했다. 그러니 단지 부지런해서만은 이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없었다. 놀랍게도 이곳에서 가장 강한 생존 DNA를 가진 사람들은 언제나 저 북쪽에서 내려온 여자들이었다. 남자들이 무슨 똥폼을 잡건, 뭔 헛소리를 씨불이건 국제시장의 바닥을 흐르는 강력한 기류는 모두 여자들의 것이었다.

 

*

 

 동키 가게에도 확실한 앞장과 뒷장이 있었다. 앞장 진열대에 놓인 것은 미국 과자나 사탕, 젤리 따위였으나 실제로 파는 것은 캐논이나 라이카 같은 고가의 카메라, 양주와 양담배, 폰즈, 도아루, 샤넬 같은 밀수 화장품, 귀금속, 스위스나 일본 시계, 홍콩 한약재처럼 뒷장의 물건들이었다. 그러니 직원들이 해야 할 첫번째 일은 일단 사람들의 표정을 면밀히 살펴 이놈이 뒷장의 밀수품을 찾는 사람인지 아니라면 순진하게 정말 앞장의 과자를 사러 온 놈인지를 구별하는 것이고, 두번째 일은 뒷장 물건을 구매하려는 사람이면 은밀하게 접근한 뒤 물건을 살 때까지 물고 늘어지는 것이었다.

동키가 가게를 둘러보고 있었다. 강구는 다른 젊은 여직원과 킥킥대며 잡담을 하고 있었다. 호객 아줌마는 물건은 안 팔고 지나가는 사람과 쓸데없는 시비를 하고 있었다.

아줌마, 저 양과자는 얼마에요?”

저건 파는 거 아니야.”

아니, 팔지도 않을 거면 왜 진열해놔요.”

아이참, 정말 저 과자만 사러 온 거네?”

.”

그럼 저 건너편 가면 진짜 양과자 파는 데 있어. 이건 먹으면 다음날 죽어. 유통기한 십 년 지났어.”

나머지 이십대 직원은 먼지떨이를 들고 하릴없이 물건을 쳐대고 있었다. 동키가 가게 돌아가는 꼴이 실로 한심하다는 듯 탄식을 했다. 그러고는 먼지떨이로 물건을 털고 있는 직원에게 소리를 질렀다.

물건을 쳐다봐서 될 일이가. 사람을 쳐다봐야지.”

그제야 젊은 직원이 못 이기는 척 먼지떨이를 집어던지고 지나가는 행인의 어깨를 붙잡았다. 강구는 여전히 젊은 여직원과 하하 호호 떠들고 있었다.

야이 강구 이 새끼야, 피 같은 시간에 잡담이나 하고 있을래?”

잡담을 하고 있는 게 아니라 업무 회의 중인데요.” 강구가 억울한 듯 말했다.

여기 회의고 자시고 할 업무가 어딨노? 사람 붙잡고 늘어지면 끝나는 건데.”

그러니까 지나가는 사람을 어떻게 붙잡는지 교육을 해야 할 거 아닙니까?”

늠 교육 시킬 생각 말고 니나 잘해라.”

강구가 여전히 미적거리고 있었다.

, 빨랑 안 찢어지나!” 동키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강구가 짜증나는 얼굴로 동키를 한번 보더니 교육시키던 여직원에게알았지? 오빠만 믿고 그렇게 하면 돼하고 다정하게 말했다. 그 꼴을 보고 있던 동키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묵고 사는 게 이리 힘들다.”

가게는 콩만한데 사람을 넷이나 쓰나?” 수레가 물었다.

국제시장에서 제일 싼 게 인건비다.”

그렇구나, 하고 수레가 고개를 끄덕였다.

인력만 많아봐야 뭐하노. 여기 일하는 놈들 중에 맘에 드는 놈이라곤 하나도 없다. 남의 일이라도 자기 일처럼 해줘야 하는 건데, 그런 근성을 가진 놈이 없다 아이가.”

동키 말에 수레가 피식 웃었다.

남의 일을 누가 자기 일처럼 하는데?”

그거야 월급 받는 사람의 기본이지.”

그건 니가 지나친 욕심을 부리는 거다. 사람은 남의 일은 남의 일처럼, 자기 일만 자기 일처럼 한다. 그게 기본이다. 기본을 가지고 가게를 운영해야지 욕심을 가지고 가게를 운영하면 되나? 되레 화만 나지.”

, 마라는 여기 오면 남의 일인데도 자기 일보다 더 미친듯이 한다.”

마라가 일을 잘하나?”

그럼 말이라고. 이 케네디 골목의 전설이다. 내가 지금까지 수도 없이 많은 직원을 써봤는데 마라처럼 붕붕 나는 애는 첨 봤다. 마라 걔는 일단 눈썰미가 장난이 아니다. 사람을 보면 점마가 지금 뭐가 마려운지 마 그냥 딱 안다. 그리고 마라가 일단 손님을 한번 물잖아? 그라믄 그 손님은 뭐라도 안 사고는 절대 이 가게에서 못 나가는 기라. 마라 그게 성격이 지랄 같아서 그렇지 일 하나는 진짜 똑 부러지게 한다. 즈그 은행에서도 일 잘해서 지점장한테 인정받는 갑데.”

사람만 똑 부러지게 패는 줄 알았는데 일도 똑 부러지게 하는구나, 수레는 생각했다. 진열대에 라이카니 캐논이니 하는 값비싼 카메라들이 놓여 있었다. 수레가 진열대에 놓인 라이카를 집어들어 셔터를 눌렀다. 셔터의 스프링이 빠졌는지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안에서 물건을 옮기던 동키가 수레를 슬쩍 보더니 웃었다.

그거 껍데기만 있는 거다.”

껍데기는 왜 갖다놓은 건데?”

진짜배기 갖다놓으면 불법인데 껍데기는 불법이 아니거든. 진짜배기는 단속 나오면 다 압수당한다. 그래서 라디오건 전축이건 진열대에 있는 거는 다 부품 빼고 놔둔다.”

그럼 손님 오면 물건은 어떻게 주는데?”

그거야 카탈로그가 있다 아이가. 손님이 카탈로그 보고 물건 고르고 캐쉬를 내밀면 우리 발 빠른 강구가 잽싸게 뛰어가 창고에서 물건 가져온다.”

강구가 동키 말을 엿들었는지 뿌듯한 표정으로 손으로 브이를 그렸다.

말하자면 속 없이 만두 피만 전시해놨다가 손님 딱 들어오면 앙꼬든 야채든 속을 딱 넣어서 판매한다 이 말이지.” 동키가 자랑질을 했다.

참 기막히게도 산다.”

동키가 내친 김에 자랑질을 더 하고 싶은 건지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더니 진열장 아래의 자물쇠를 열었다. 그러자 긴 선반이 나왔다. 그 안에는 갖가지 외국 화장품들이 종류별로 전시되어 있었다.

행님아, 이거 보이제? 이게 내가 가장 공들여서 모은 컬렉션이다. 봐라, 전 세계 주요 화장품을 다 모아놓은 거다. 이쪽이 아메리카 라인인데 폰즈, 레브론, 맥스팩터 이런 회사들 제품이 풀 세트로 다 있다. 그리고 중앙 쪽은 일본 화장품 자생당, 도아루 뭐 이런 것들인데 이건 천달호 애들이 공급하는 거라서 뭐 이 거리에선 변별력이 없고. 이게 핵심이다. 이 물건들은 홍콩 라인 타고 들어왔지만 실제 물건들은 프랑스, 이태리 다 이런 거다. 스타일 고급지제? 샤넬 넘버 파이브, 스왈드 빠리, 미스 디올. 코티분, 레브론 루즈, 듀바리 크림. 국제시장에는 없는 게 없고 여기 물건 다 모으면 핵폭탄도 만든다지만 이 넓은 국제시장에서 이런 세계적 컬렉션은 오로지 동키 가게에서밖에 구경 못한다.”

샤넬은 어디서 구했는데?”

칭따오라고 화교 주왈승 밑에 있는 놈인데 홍콩 라인 타고 들어오는 거다. 칭따오 이 새끼가 이 물건 하나 팔면서 을매나 유세를 떠는지 샥스핀을 아주 싸바리로 갖다 바쳐야 샤넬 두어 개 겨우 받아온다. 행님, 이거 냄새 한번 맡아볼래? 세상에는 딱 두 종류의 인간이 있다. 샤넬 냄새를 맡아본 사람과 못 맡아본 사람.”

동키가 샤넬 향수를 꺼내더니 허공에 조금 뿌리고 냄새를 맡았다.

, 마릴린 몬로의 잠옷. 마릴린 몬로가 이거 하나만 뿌리고 알몸으로 잔다고 안 하나.”

지랄을 한다. 너는 지랄이 아주 천성이구나.”

그때 동키 가게 안으로 웬일인지 문촌장이 쑥 들어왔다.

여기 있었구만, 한참을 찾았어.” 문촌장이 말했다.

여어, 문촌장님이 이곳까지 웬일이십니까?” 수레가 물었다.

웬일은. 수레 도령 찾아 삼만 리 하는 중이었지. 어떻게 잠깐 다방 가서 차 한 잔 할 시간 되겠어?”

그럼요. 여기까지 오셨는데.”

 

*

 

문촌장이 수레를 데리고 간 곳은 케네디 골목 끝에 있는 도장집이었다. 그곳에는 아주 시커먼 얼굴을 한 심가라는 도장장이가 눈에 렌즈를 끼운 채 나무도장을 파고 있었다. 심가는 케네디 골목에서 가장 유명한 증명서 위조 전문가였다.

내가 부탁한 거 언제까지 되는데?” 문촌장이 물었다.

내일 아침.” 심가가 문촌장 쪽을 돌아보지도 않고 무뚝뚝하게 말했다.

거참, 사람이 말하는데 얼굴도 안 쳐다보고. 하여간에 내일 아침까진 꼭 해주소. 배 들어가야 되니까.”

심가가 여전히 나무도장에 시선을 박은 채 손만 살짝 까닥거렸다. 문촌장이 수레를 쳐다보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기술은 좋은데, 사람이, 너무 딱딱해.”

문촌장이 투덜거리며 도장집 이층으로 나 있는 계단을 올라갔다. 수레는 영문도 모른 채 문촌장을 따라 계단을 올랐다. 목계단은 좁고 가팔랐다. 누가 몰래 오줌을 눴는지 썩은 나무계단 구석에서 역한 냄새가 올라왔다. 이층에는 작은 다방이 있었다. 이런 데를 누가 올까 싶었는데 의외로 다방 안은 국제시장의 물건을 거래하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문촌장이 구석 자리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곳에는 이미 건장한 사내 세 명이 먼저 와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수레가 테이블에 앉자 문촌장이 바로 사람들을 소개했다.

 “이분은 최성국 사장님이라고 서울에서 백화점 유통업을 크게 하시는 분이시고, 이 친구는 양동이라고 만리장호텔 손영감 밑에서 일하는 친구, 이 친구는 칭따오라고 중앙동 주왈승 영감님 밑에서 일하는 친구야.”

. 구수레라고 합니다. 이제 일을 막 시작하려는 참이라 딱히 소개할 직함은 없는데, 예전에는 사채업이랑 밀수를 조금 했습니다.”

최성국 사장은 오십대 정도 되어 보였다. 그리고 양동과 칭따오는 서른 살 정도는 되는 젊은 사람들이었다.

사채업은 어디서 주로 하셨습니까? 저도 사채업을 해서 지나가다 이름은 들었을까 해서요.” 최성국 사장이 물었다.

주로 명동에서 했습니다.”

, 명동에서 사채일을 하셨구나, 저도 명동 남대문에서 사채일을 좀 했었는데. 혹시 사업체 이름이?”

최성국 사장은 수레에게 상당히 호의를 가지고 있는 인상이었고 궁금한 것이 많아 보였다.

사업체는 잘 모르실 거고. 마귀 2호라는 별명은 좀 알려졌습니다.”

! 마귀 2. , 소문 들었지요. 젊은 사람이 대단하다고 한때 떠들썩했는데 갑자기 사라지셔서.”

, 그렇게 되었네요.”

그럼 마귀 1호인 구들 영감하고는 관계가 어떻게?”

작은 아버지입니다.”

최성국 사장이 새로운 정보를 알게 되어 몹시 흥미롭다는 듯 한쪽 눈을 찡긋했다.

그럼 잘나가다가 한방에 작살나신 게 집안 사람끼리 싸워서 그렇게.”

최성국 사장이 말을 하다가 수레 눈치를 보고 멈췄다. 수레가 피식 웃었다.

그리 화목한 집안은 아니었죠.”

충분히 이해합니다. 저도 그래요. 사실 사채업 하는 집안이 다 그렇습니다. 그놈의 돈으로 얽히다보면 가족이라도 순식간에 결국 남보다 못한 인간들 되는 거지요. , 어쩐지, 함경장학회 오리지널 멤버시구나.” 최성국 사장이 혼잣말처럼 말했다.

어떻게 제가 말한 대로 듬직하지요? 이 양반이 집안도 좋고, 서울대 출신 엘리트에다, 또 어린 시절부터 밀수에 관심이 많아서 밀수 현장에 대한 통찰이 장난이 아닌 거지.”

무엇 때문인지 신이 난 문촌장이 수레를 한껏 띄워올렸다.

서울대는 일 년도 못 다니고 중퇴했구요. 밀수는 초짜배기입니다. 그나저나 초짜 밀수꾼에겐 어쩐 일로?”

두 가지 제안이 있어서 이렇게 급히 뵙자고 했습니다. 하나는 구사장님이 마루야마로부터 받은 그 물건이 급해서 그럽니다. 그게 원래부터 제가 주문 넣은 물건이었는데 일이 이렇게 꼬여버렸네요. 제가 고객이랑 약속해놓은 날짜가 있는데 그걸 안 지키면 아주 곤란해집니다. 그리고 두번째는 이 거래를 일회성으로 그치지 말고 좀더 장기적으로 확대해나가자는 제안을 드리고자 온 겁니다.”

장기적으로?”

그때 만리장호텔 손영감의 오른팔이라는 양동이 수레 쪽으로 조금 다가왔다.

구사장님이 물양장에서 말씀하신 사업 비전을 문촌장님한테 다 들었습니다. 그런데 계획은 원대한데 지역 사정을 모르시다보니 실행이 전혀 안 될 것 같아, 제가 마 안타까운 마음에 이렇게 찾아온 겁니다.”

제 계획은 전혀 실행이 안 되는 순진무구한 계획입니까?” 수레가 웃으며 물었다.

택도 없는 일이지요. 우리 손영감이랑 주왈승 영감, 아니면 주선장 박선장 이런 새가슴 인간들이 그런 위험한 일을 할 것 같습니까? 절대로 안 합니다. 그 늙은이들 천달호한테 한방 얻어터지고부터는 잔뜩 주눅이 들어가지고, 그때부턴 그냥 깨작깨작 푼돈만 주무르고 있는 거지요. , 그 인간들이야 벌어놓은 돈 많겠다 무리 안 해도 충분히 먹고 살 만한 사람들이니까.”

방금 말씀하신 그 인간들이라 함은 혹시 모시고 있는 보스를 말하는 겁니까?”

양동이 멋쩍어하며 주먹으로 입을 가리고 헛기침을 했다. 성격이 급하고 경솔한 사람처럼 보였다.

, 제가 지금은 우리 영감님 밑에 있지만 평생 마름이나 하고 싶은 놈이 어디 있겠어요? 그리고 비전이 있으면 우리도 충성을 싸바리로 갖다 바칠 수 있지요. 그런데 이건 뭐 맨날 이쑤시개나 쓰메끼리 같은 거나 밀수하고 있으니 환장할 노릇인 거지. 건달이 칼을 맞아도 가오란 게 있어야지 되는데, 쓰메끼리가 뭡니까 쓰메끼리가. 나 원 쪽팔려서.”

하긴 단속반 피해서 목숨 걸고 대마도 바다를 건너다니는데 기껏 상자를 열어보면 손톱깎이 따위나 들어 있으면 환장하겠군요.”

수레가 은근히 양동의 기를 살려줬다.

, 이 양반이 딱 그 맘을 아시네. 박스에서 쓰메끼리 개수나 세고 있으면 진짜로 맘이 환장합니다.”

양동이 자기 앞에 있는 도라지 위스키를 단숨에 비우더니 맛이 별로인지 얼굴을 찡그렸다.

이건 씨발, 가짜 술에다 다시 또 물을 탔네. 아무리 돈이 좋아도 이게 뭐하는 짓이고.”

양동이 엽차를 한 모금 마시고 입을 헹구더니 다시 자기가 들고 있는 엽차 잔에 쏟아냈다.

그런데 문촌장님한테 구사장님의 비전을 들었을 때, 그러니까 구태의연한 대마도 라인을 미련 없이 싹 버려버리고, 밀수선을 더 크게 만들고 또 점진적으로 규모도 늘려서 홍콩, 대만뿐만 아니라 미국이나 구라파까지 밀수 직거래를 뚫겠다는 구사장님 비전을 들었을 때, ! 이 바닥에도 이런 호연지기의 기상을 가지고 있는 사내가 있구나, 나는 반드시 이분과 사업을 같이 해야겠다. 저는 뭐 이런 강렬한 운명 공동체적인 느낌을 가졌습니다.”

호연지기가 뭔 말인데?” 옆에 있던 칭따오가 뜬금없이 끼어들었다.

호연지기 왜 그거 있잖아. 산 정상에 오르면 온 나와바리가 다 자기 것 같고, 멧돼지랑 씨름을 해도 이길 것 같은 마음의 그 힘찬 기세.”

그게 호연지기가?”

그게 호연지기다. 그나저나 니는 중국놈이 어떻게 호연지기를 모르노?”

내가 왜 중국놈인데? 중국이라곤 태어나서 한 번도 안 가봤는데?”

그럼 중국놈 아니면 닌 뭔데?”

난 화교다.”

양동이 칭따오를 멀뚱멀뚱 쳐다봤다. 그러고는 더이상 대답할 가치를 못 느꼈는지 수레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어쨌거나 구사장님 비전이랑 저희들 목적이 딱 맞아떨어진다 이거지요. 사실 사람들이 그냥 하는 말로 중앙동 주왈승, 만리장 손영감 이러는 거지 실무는 다 우리가 굴립니다. 그러니까 구사장님이 그 영감들이랑 협상을 한다고 해도 어차피 엎어치나 메치나 일은 우리랑 할 수밖에 없는 거지요. 그런데 그 영감탱이들 중간에 끼워주면 우리 몫은 얼마나 떨어지겠냐는 거지요. 죄다 여우곰탱이들인데.”

어린 사자들이다. 아직 덜 자랐는데도 빨리 킹이 되고 싶은 어린 사자들. 어린 사자들은 성급하다. 성급한 사람과 일을 하는 것은 위험하다. 일을 크게 망치는 것은 미숙함 때문이 아니라 대부분 성급함 때문이다. 하지만 어린 사자들만 수레와 일을 하고 싶어한다. 늙은 사자들이 왜 아무 가진 것 없는 수레의 손을 잡겠는가. 늙은 사자들은 모험을 원하지 않는다. 십 년 전엔 일본 밀수 라인은 만리장의 손씨 집안이 관리하고 있었고 대만, 홍콩 라인은 모두 화교들의 것이었다. 하지만 둘 다 남산에 끌려가서 죽도록 얻어터지고 나서 하루아침에 모든 걸 빼앗겼다. 그들이 재기를 원한다고? 아닐 것이다. 곳간에 아직 식량이 가득하므로 늙은 사자들은 그저 지켜보기만 할 것이다. 그리고 천달호건, 구들이건, 수레건 누구든 이긴 놈에게 손을 내밀 것이다.

거창한 이야기는 조금 뒤에 하고, 일단 최성국 사장님 물건이 급하시다고 하니까 물건 이야기부터 먼저 할까요?” 수레가 물었다.

한껏 기대에 부풀었던 양동이 바람 빠진 고무풍선처럼 피식 찌그러졌다.

오천만원 드리겠습니다. 상자 하나도 빠짐없이 넘기는 조건으로.” 최성국 사장이 간단하게 말했다.

장사를 많이 해본 사람이었다. 장광설을 늘어놓는 양동과는 달리 대화에 군살이 없고 요지가 정확했다. 오천만원. 창밖으로 배달부들이 자전거에 짐을 가득 채운 채 말 그대로 한 뼘 디딜 곳 없이 복잡한 국제시장 구석구석을 부지런히 돌아다니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저 개조한 배달 자전거로 밥을 먹고 살았다. 쌀가마니를 배달하고, 생선상자를 배달하고, 옷감을 배달하고, 음식을 배달하고, 선박용 부품과 기계를 배달하고, 심지어 자전거 위에 자전거 대여섯 개를 올려 배달하는 사람도 있었다. 자전거를 사서 짐받이를 장착하고 튼튼한 고무 끈과 라이트를 달면 얼추 육천원이었다. 그 돈이 없어서 많은 짐꾼들이 비싼 대여료를 주고 자전거를 임대해 썼다. 자신의 다리 근육으로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이 배달부들의 꿈이 무엇일까. 자전거 한 대를 갖는 것일 게다. 그런데 이 앞에 있는 최사장은 고작 상자 수십 개에 자전거 만대 값을 우습게 부른다. 천달호는 자전거 삼천 대 값을 부르고, 수레는 그것을 자전거 사천오백 대 값으로 올리고, 급기야 서울에서 백화점 도매상을 한다는 최사장은 자전거 만대 값을 부른다. 그런데 옆에 있는 문촌장, 양동이, 칭따오 그 누구도 이 가격에 놀라지 않는다. 아마도 상자 안에 뭐가 들어 있는지 알고 있을 것이다. 갑자기 저 상자 안에 뭐가 들었길래 모두가 이 난리를 치는지 궁금해졌다. 이 나라에서 밀수상자 수십 개에 그만한 가격이 나가는 물건이라면 금 아니면 마약뿐이다. 하지만 금은 그렇게 많은 상자가 필요하지 않다. 그렇다면 저 수십 개의 상자 안에 나눠 넣은 것은 마약일 것이다. 아마도 분유나 곰인형 같은 것에 마약 원료를 쑤셔넣었을 것이다. 부산의 마약왕이 마약의 원료를 받아다가 부산에서 가공해 다시 일본으로 수출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이 친구들, 아주 위험한 일을 하고 있다. 늙은 사자들은 이 사실을 알까? 아마 모를 것이다. 짐작은 했어도 확실히 알지는 못할 것이다. 확실히 안다면 이들은 모두 이미 죽은 목숨이다.

그 물건이 천달호 물건이라고 들었는데 이 거래가 나중에 감당이 되겠습니까?” 수레가 물었다.

우리야 물건 사는 고객인데, 물건 안 사간다고 죽이기야 하겠습니까. 손님은 더 좋고 더 값싸게 물건 내놓는 공급자를 찾아가는 거지요. 저는 오히려 여기 사업하시는 문촌장님, 양동이, 칭따오 이런 분들이 천달호에게 칼침 맞을까 걱정입니다. 저야 뭐 여러분이 혹시라도 갈침 맞고 쓰러지고 나면 스미마셍, 하면서 고개 숙이고 천달호한테 다시 돌아가면 그만이지요. 고객은 언제나 왕이니까요.”

그러니까 나중에 스미마셍 할 일을 왜 하시냐고요.”

사실 1965년도에 한일협정 끝나고 나서 이제 웬만한 물건들은 정식 수입이 됩니다. 밀수는 고가품, 사치품 이런 시장으로 넘어갔어요. 그런데 천달호 물건들은 자잘하고 종류도 별로 없지요. 그런데 비쌉니다. 독점이니까요. 지금 서울에서 땅이다 주식이다 해서 갑작졸부 천지입니다. 돈 많은 인간들이 많아지고, 그네들 욕구는 점점 다양해지고, 서울에선 백화점에서 물건이 없어 못 팔 지경인데 천사장님 물건은 시대에 반 박자씩 떨어지는 단점이 있지요. 밀수도 센스라는 게 있어야 되는데.”

천달호 그 새끼가 만주 마적 출신인데 명품 보는 센스가 있을 리가 있지. 조랑말 고르는 센스라면 몰라도.” 문촌장이 거들었다.

그러면 문촌장님이랑 양동씨, 칭따오씨는 칼침 맞을 준비가 되었고요?” 수레가 웃으며 물었다.

양동이 피식 웃었다.

천달호 그 새끼가 중앙정보부 끼고 있어서 까부는 거지, 힘으로 붙으면 뭐 좆도 아니지요. 아니, 여기 영도를 주름잡으시는 문촌장님이 떡하니 계시고, 소림사 씨팔 동인한테 무술 배운 화교파도 있고, 저희 만리장까지 가세해서 연합하면 지가 어쩔 건데요? 그리고 미군 PX 움직이는 백상사 애들도 짜달시리 천달호를 뭐라고 이뻐라 하겠어요. 눈엣가시지. 그러니 백상사하고 손만 잡으면 사실상 천달호는 고립무원, 왕땁니다. 이 간단한 문제를 영감들이 온갖 걱정 해대며 똥을 싸대고 있으니 환장할 노릇이지요.”

양동이 말하자 칭따오가 그 말이 정말 옳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어린 사자들은 힘이 넘쳐 보였다. 늙은 사자들은 천달호와 싸우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늙은 사자는 언제나 존중받을 이유가 있다. 높은 자리까지 오른 사람들, 그 높은 자리에서 오래 버틴 사람들은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그들을 무시하면 안 된다. 그들은 야비함과 잔인함을 다룰 줄 아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이 어린 사자들의 그림은 좋다. 세상의 모든 변화는 어린 사자들이 일으키고, 세상의 모든 혁명도 어린 사자들이 일으킨다. 그리고 변화가 일어나야만 기회라는 게 생긴다. 판을 한방에 뒤집는 기회는 오로지 어린 사자들만 가지는 것이다. 늙은 사자들은 절대로 돌아가는 판을 뒤집지 않으니까.

천만원은 빼고 사천만원에 물건 드리겠습니다. 대신 그 안에 들어 있는 물건 때문에 생기는 문제에 대해서, 저는 책임이 없는 걸로.”

문촌장, 최사장, 양동, 칭따오가 각자 다른 생각으로 동일한 표정을 지었다.

고맙긴 한데 가격 올리는 흥정은 봤어도 판매자가 싸게 주겠다는 건 처음 있는 일이라. 혹시 상자를 열어봤습니까?” 최성국 사장이 물었다.

안 열어봤습니다. 하지만 꼭 찍어 먹어봐야 똥인지 된장인지 아는 건 아니니까요.”

수레가 웃었다. 최성국 사장이 수레의 뜻을 가늠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아까 말한 원대한 밀수 라인은 같이 안 타시겠다는 겁니까?” 양동이 물었다.

제가 외국에서 오래 떠돌다 이제 막 돌아왔습니다. 이번에 온천장도 좀 다녀오고 서울도 좀 다녀오고. 그래서 위쪽 공기를 좀 살펴봐야 합니다. 그런데 위에서 라이센스 주는 사람들은 알다시피 워낙 겁이 많잖아요.”

이렇게 단칼에 거절하면 우리가 너무 머쓱한데.” 문촌장이 말했다.

일전에 문촌장님도 그렇게 말씀하셨잖아요?”

내가 뭐랬는데?”

천천히 친해지자고. 말씀하신 것처럼 조금씩 천천히 친해집시다.”

수레가 빙긋 웃었다. 양동과 칭따오가 뭔가 아쉬운지 입을 내밀었다. 문촌장이 그렇게 하자는 듯 최성국 사장을 쳐다봤다. 최성국 사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저희가 물개여관 앞으로 내일 아침에 트럭 보내겠습니다. 사천만원. 그리고 빠지는 상자가 없도록 세심하게 신경써주세요. 하나라도 빠지면 곤란한 물건이어서.”

알겠습니다. 그리고 돈은 물건 트럭에 다 싣고 받겠습니다.”

수레가 최성국 사장과 악수를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떠나는 수레를 양동과 칭따오가 멍하니 보고 있었다.

 

*

 

수레가 동키 잡화점으로 돌아왔을 때 웬일인지 가게 앞에는 사람들이 잔뜩 모여 있었다. 잡화점 안쪽에서 동키의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수레가 사람들을 헤치고 들어갔다. 잡화점 주변으로 천달호 패거리가 잔뜩 몰려와 있었다. 천달호는 보이지 않았고 고경표만 가게 입구에 서서 건달들에게 이것저것 지시를 하고 있었다. 건달들이 잡화점 안에서 이 물건 저 물건 꺼내더니 밖으로 마구 집어던졌다. 동키가 물건을 집어던지는 건달들의 팔을 잡고 말리느라 애쓰고 있었다. 고경표의 부하 하나가 사다리를 타고 가게 천장에 설치된 다락방 문을 열더니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다락 안에서 조니워커, 시바스 같은 양주병들과 말보로, 럭키스트라이크, 카멜 같은 담배들을 보루째 꺼내 바닥으로 집어던졌다. 그 비싼 조니워커가 깨져 바닥에 흘러내렸다. 고경표가 손가락으로 다락방 안쪽을 가리켰다. 건달 하나가 자기 머리를 다락 안쪽으로 깊숙이 집어넣더니 LP판들과 스위스 시계, 주크박스 부품들도 왕창 꺼냈다.

안에 물건 더 있제? 그 안에 들어 있는 깡통 물건들 싸그리 다 꺼내라.”

고경표가 바닥에 떨어진 시계 하나를 줍더니 손가락 끝에 끼우고 동키를 항해 빙글빙글 돌렸다.

깡통 골목에선 미군 PX 물건만 팔고, 여기 케네디 골목에선 일본 물건만 판다. 이거 상가번영회에서 다 합의한 사항 아니가? 니가 여기에 도장도 찍었잖아. 그런데 왜 여기 천지에 PX 물건이고?”

그거 PX 물건 아니다. 홍콩 물건이다. 그리고 양주하고 담배는 느그가 전에 베트남에서 물건 빼돌린 거 풀었을 때 받은 거잖아.” 동키가 대답했다.

고경표가 바닥에서 시바스 양주병을 하나 들더니 상자 밑을 살폈다.

도장 없네? 우리가 백상사 물건이랑 안 섞이려고 일일이 도장 다 찍었는데.”

물건 옮기다보니 지워졌나보네.”

고경표가 피식 웃었다.

이게 어디서 되지도 않는 개아리를 틀고 있노? 니 이마에 도장 찍어줄 테니까 그게 지워지나 한번 볼까?”

니기미, 이 넓은 국제시장에서 니 물건 내 물건이 어딨노? 되는 대로 파는 거지. 니는 뭐 그렇게 규칙 잘 지키면서 사나?” 동키가 의외로 강단 있게 말했다.

동키야, 구역을 안 지키면 백상사 애들이 가만히 있나? 느그 가게에서 파는 물건 몇 개 때문에 전쟁나면, 우리 애들 팔 부러지고, 다리 부러지고, 배에 칼 맞고, 창자 튀어나오고 그러는 거다. 니가 이 골목에서 편안하게 장사를 하는 것은 우리가 목숨 걸고 백상사 같은 곰탱이 새끼들을 막고 있어서 그런 거다. 목숨 걸고! 뭐 우리 애들이라고 여우 같은 마누라가 없고 토기 같은 자식들이 없나? 솔직히 우리도 겁이 많이 난다. 배에 철판 깔고 사는 인생들 아니니까. 그런데도 이 새끼는 남의 목숨 귀한 줄 모르고 사업을 장난으로 아네. 고마운 줄은 몰라도 장난은 치지 말아야지.”

이 골목 가게 뒤져봐라. PX 양주 팔고 양담배 판다. 왜 나한테만 지랄인데.” 동키가 울먹였다.

고경표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진열대 아래에 있는 서랍장을 열려고 했다. 하지만 그곳은 작은 자물쇠가 채워져 있어 열리지 않았다. 고경표가 손가락을 깊숙이 집어넣어 힘껏 서랍을 열려고 했다. 손이 삐져나오면서 모서리 경첩에 부딪혔는지 손가락에서 피가 났다. 고경표가 피를 보고 손가락을 입으로 빨았다.

이거 열어라.”

거기 아무것도 없다.”

좋은 말로 할 때 이거 열으라고.”

동키가 서랍장을 열지 않고 버텼다. 고경표가 옆에 있던 덩치를 쳐다보곤 손가락으로 덩치의 허리를 가리켰다. 덩치가 자기 허리춤에서 손도끼를 꺼내 고경표에게 건넸다. 고경표가 도끼날을 비스듬히 집어넣어 억지로 서랍을 뜯어냈다. 나무와 합판으로 얄궂게 만들어놓은 서랍이어서 강철 도끼날에 힘없이 바스러졌다. 고경표가 서랍을 뜯어내다시피 억지로 열었다. 그리고 안에서 화장품 몇 개를 집어올렸다.

, 샤넬에다 폰즈, 레브론. 화려하네. 화려해.”

거긴 건들지 말라고. 이 씹새끼, 개 같은 새끼야.” 동키가 절규하듯 소리쳤다.

옆에 있던 고경표의 부하들이 동키의 기세에 놀랐는지오우!” 하고 엄지를 치켜세웠다. 구경꾼들의 눈을 의식했는지 고경표의 얼굴이 달아올랐다. 고경표가 손에 들고 있는 도끼로 판매대 위에 있는 물건들을 힘껏 내리쳤다. 수레가 만졌던 라이카의 껍데기가 부서져서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두번째로 내리찍자 서랍장이 아예 허물어졌다. 이 넓은 국제시장을 다 뒤져도 만날 수 없다던 동키의 세계적 화장품 컬렉션들이 바닥으로 우수수 떨어져내렸다. 그때 동키가 달려가 머리로 고경표의 허리를 들이받았다. 고경표가 뒤로 주춤하면서 진열대와 같이 넘어졌다. 고경표와 동키가 바닥에서 뒤엉켰다. 고경표는 아래에 깔려 있었고 동키는 고경표의 위에 있었다. 그림만 보자면 동키가 주먹으로 고경표를 한방에 기절시키고 케네디 골목에서 새로운 전설로 등극하는 듯한 순간이었다. 하지만 동키는 머리를 고경표의 가슴에 처박은 채 상대방의 얼굴은 보지도 않고 마치 수영이라도 하듯 팔만 휘젓고 있었다. 고경표 애들이 와서 동키의 어깨를 붙잡아 뜯어냈다. 그리고 서너 명이 동키를 사정없이 발로 차기 시작했다.

, 물건은 부숴도 사람은 때리지 맙시다.” 수레가 말했다.

바닥에 깔려 있던 고경표가 일어나더니 수레를 노려봤다.

, 리어카바퀸지, 수레바퀸지 그 같잖은 새끼도 여기 있었네. 어이? 니는 니가 뭐라도 되는 줄 아나? 힘 있으면 시발 한번 말려보든가.”

그리고 고경표는 바닥에 쓰러져 있는 동키를 밟으러 갔다. 동키는 이제 완전히 바닥에 찌그러져 아무런 방어도 못하고 덩치들에게 그저 발길질을 당하고만 있었다. 동키는 일어나려고 애를 썼지만 너무 많은 발길질이 날아와 계속 땅으로 처박혔다. 그때 강구가 그 덩치들 안으로 뛰어들더니 동키를 감싸안았다.

우리 행님 그만 때려라. 우리 행님 아프다.” 강구가 울면서 소리쳤다.

그러자 이번에는 서너 명의 덩치들이 강구에게 마구 발길질을 해댔다. 강구는 동키를 꼭 껴안은 채 그 발길질을 맞고 있었다. 가게 안에는 다른 두 명의 건달이 각목과 도끼로 잡화점 안의 물건들을 마구 박살내고 있었다. 잡화점의 다른 직원들은 벌써 어디로 내뺐는지 보이지도 않았고 아까 가게에서 먼지떨이로 물건을 때리던 청년만 가게 물건을 부수지 말라는 듯 소심하게 덩치의 팔을 붙잡았다.

이 도라이 새끼는 또 뭐고?” 덩치 중 하나가 물었다.

모른다. 그냥 밟아라.” 옆에 있던 덩치가 말했다.

덩치가 청년에게 도끼를 붕 하고 휘둘렀다. 먼지떨이 청년이 자기 얼굴 앞을 스치듯 지나가는 도끼날을 보더니 겁을 먹고 바로 도망을 쳤다. 잡화점 앞의 그 많은 시장 상인들과 행인들 중에 동키와 강구를 도와주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때 먼지떨이 청년을 쫒아가던 덩치가 수레를 쳐다봤다.

, 너도 동키 저 새끼랑 한패지?” 덩치가 물었다.

한패 아닙니다.”

아까 같이 있는 거 내가 확실히 봤는데?”

저는 물건 보러 온 손님입니다.” 수레가 단호하게 말했다.

손에 도끼를 든 덩치가 약간 아리송한지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다시 도끼를 움켜쥐고 동키의 가게를 부수러 갔다. 웅성거리고 있는 사람들 한 걸음 뒤에 경찰관이 둘이나 서 있었다. 하지만 멀쩡하게 제복까지 입은 경찰관들은 별로 놀란 표정도 없이 이 광경을 그저 강 건너 불구경하듯 쳐다보고만 있었다. 천달호 패거리가 무서워서 그러는 건지 아님 돈을 받아서 그러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수레가 다가가서 경찰의 얼굴을 노려봤다. 경찰이 어딜 감히 꼬나보냐는 듯 수레를 쳐다봤다.

호루라기라도 불어야 되는 거 아닙니까? 명색이 경찰인데.”

니 뭔데? 뭔데 감히 경찰한테 이래라 저래라고?”

, 부산일보 기자요. 어떻게 신문 사회면에 한번 나오시겠소?”

그제야 경찰들이 호루라기를 불면서 사람들을 헤치고 들어갔다. 고경표가 전혀 겁을 내지 않은 얼굴로 경찰을 쳐다봤다. 경찰이 군중 속을 턱으로 대충 가리키며 뭐라고 말했다. 고경표가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사람들을 쳐다봤다.

그러니까 이 꼴을 안 당하려면 상가번영회에서 내린 결정을 자발적으로 잘 지키란 말이오. 알았어요?” 고경표가 시장 사람들에게 소리쳤다.

고경표와 그의 패거리가 떠난 자리는 마치 폭탄이라도 맞은 것 같았다. 잡화점 물건과 진열대는 도끼와 각목에 맞아 모두 부서져 있었다. 동키와 강구는 여전히 바닥에 엎어져 있었다. 동키가 맨 밑바닥에 있었고 동키의 몸 위에 강구가 엎어져 있었다. 둘은 너무 많이 맞아서 그런지 정신이 없어 보였다. 마치 두 마리의 자라가 교미라도 하는 것처럼 몸통은 가만히 있고 손발만 조금씩 허우적이고 있었다.

 

*

 

메리놀 병원 응급실에서 치료를 받고 대평동 깡깡이 마을로 돌아왔을 때는 거의 여덟시였다. 동키와 수레와 강구가 고갈비집에 자리를 잡았다. 동키는 여기저기 타박상만 입었지만 강구는 병에 맞아서 머리가 깨졌고 깨진 유리에 여기저기 베여서 엑스레이도 찍고 도합 열한 바늘이나 꿰매야 했다. 동키가 소주병을 따더니 강구의 잔에 콸콸 따랐다.

 “마시라. 다쳤을 때는 술을 마셔야 온몸이 소독된다.”

강구가 동키가 따라준 술을 단번에 마셨다. 동키가 젓가락을 들어 연탄불에 구운 고등어 한 점을 강구의 입에 넣어줬다. 발길질에 얻어맞아 입안이 다 터졌는지 고등어를 오물거릴 때마다 강구가 인상을 찡그렸다.

그 와중에도 고등어가 맛있나?” 동키가 물었다.

이 와중에도 고등어는 맛있네요.” 강구가 말했다.

그러니까 그 싸움에 니가 왜 뛰어드노? 내가 수류탄이냐? 니가 부하들을 위해 수류탄을 몸으로 감싸안고 장렬히 돌아가신 김전일 대위냐고. 왜 쓸데없이 늠 맞고 있는데 덮어써서 같이 처맞고 지랄이고.”

겉으로는 화를 내는 것 같았지만 동키는 내심 강구의 의리에 무척 감동한 것 같았다. 하긴 저 쫄보가 각목과 도끼로 무장한 천달호 패거리 사이로 울면서 뛰어들어 동키를 감싸안을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동키가 다시 강구의 빈 잔에 술을 콸콸 따랐다. 수레의 술잔은 아까부터 비어 있었다. 수레가 동키에게 자기 잔도 채워달라는 뜻으로 슬그머니 잔을 내밀었다. 동키가 여기저기 얻어터져서 시퍼레진 얼굴로 수레를 멀뚱멀뚱 쳐다봤다.

아저씨 누구세요? 혹시 저 아세요?”

수레가 겸연쩍은 표정으로 술잔을 내려놓았다.

내가 경찰들 안 데리고 왔으면 느그들은 지금쯤 진짜 송장 됐다. 상황을 현명하게 해결해야지. 무턱대고 힘으로 해결하려 들면 안 되는 거지.” 수레가 어물쩍 말했다.

하지만 발길질을 하도 많이 당해서 둘 다 얼굴이 푸르팅팅한 동키와 강구에게 수레의 말은 씨알도 먹히지 않는 것 같았다. 동키가 석쇠에서 잘 익은 고등어 한 점을 꺼내더니 입으로 후후 불고는 다시 강구에게 내밀었다. 강구가 병아리처럼 고등어를 낼름 받아먹었다.

저는 그동안 동키 형님이 아무리 저를 구박해도 가족 같아서 그저 친동생 같아서 그런 거라고 늘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나온 배만 다르지 사실 가족 아니겠습니까?”

하모 말이라고. 우리는 가족이지. 나도 막내라서 동생이 없잖아. 그래서 강구 너를 항상 나의 친동생이나 다름없다고 그동안 꾸준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니까요. 가족이 맞고 있는데 아무리 힘이 없어도 제가 어떻게 가만히 있을 수가 있겠습니까? 가족이 맞고 있는데.”

그러더니 강구는 노골적으로 수레의 얼굴을 쳐다봤다.

그리고 오늘 소중한 교훈도 얻었습니다.”

몽둥이와 발길질이 쏟아지는 그 난리통의 와중에 교훈까지 얻었나?” 동키가 고등어를 오물거리며 물었다.

나는 뭐 다들 수레형님, 수레형님 하길래 뭐라도 있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아까 고경표 애들이 우르르 밀려오는데 수레 형님이 저는 한패 아닌데요? 저는 물건 사러 온 사람인데요, 하는 그 말을 딱 듣는 순간, ! 세상에 의지할 놈은 하나도 없구나. 자기 몸을 지킬 것은 결국 자기밖에 없구나, 그런 자주 정신을 오늘 정말 절실히 배웠습니다.”

나도 저 인간이 우리랑 한패 아니라고 뻔뻔하게 말하는 거 똑똑히 들었다.”

결국 우릴 지킬 것은 우리 자신밖에 없습니다. 앞으로 일을 제대로 하려면 태권도라도 배워야겠습니다. 매사 철저한 게 좋지 않겠습니까?” 강구가 말했다.

동키가 마치 재래식 변기를 타고 오르는 구더기라도 보듯 수레를 쳐다봤다. 그리고 퉁퉁 부은 입술 안으로 소주를 탁 털어넣었다.

그래, 강구 니 말이 절대적으로 옳다. 나도 오늘 세상에 믿을 놈은 하나도 없다는 걸 몸으로 배웠다. 니 꼴리는 대로 해라. 내가 강구 니 태권도 도장비 만큼은 매달 꼬박꼬박 연체 없이 내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