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회

러시아 인형

새벽에 밀수 특별단속반이 물개창고를 급습했다.

급습한 시간은 새벽 세시였다. 영장도 없었고 고지도 없었다. 특별단속반은 마치 도둑처럼 쇠지렛대로 물개창고의 자물쇠를 따고 들어와선, 트럭털이범처럼 정확하게 소쿠리 창고에서 가져온 수레의 물건들만 1차로 압수해 갔다. 트럭이 수레 밀수품들을 다 싣고 빠지자 그제야 경찰과 단속반 수사관들은 요란한 사이렌을 울리면서 창고와 물개여관을 다시 뒤지기 시작했다. 마치 이 새벽에 우리가 왔노라고 대단한 불꽃쇼라도 벌이고 싶은 모양이었다. 단속반 수사관들은 경찰관들을 시켜 물개창고에 남아 있는 밀수품 상자들을 일일이 다 열어서 물건들을 확인하게 했고, 물개여관의 모든 방들을 일일이 검문한 뒤 조금이라도 신원이 불분명한 사람들은 모두 물개여관 식당에 모이게 했다.

수레가 물개식당으로 끌려내려왔을 때는 새벽 다섯시였다. 말단 경찰관 두 명이 여관 투숙객들에게 종이와 볼펜을 주고 이름, 직업, 주소 등등을 쓰게 했다. 이름 말고는 종이에 쓸 게 없어서 수레는 잠시 망연자실했다. 전직은 사채업자였고 현직은 굳이 따지자면 밀수업자거나 무직이었다. 그리고 주소는 물개여관이었다. 수레는 식당 안을 둘러봤다. 영문도 모른 채 잠결에 끌려나온 선원들과 술집 마담과 아가씨들이 식당 여기저기에 앉아 투덜거리고 있었다. 물개 아줌마는 다른 곳에 붙들려 있는지 식당에선 보이지 않았다. 물개 포주는 예의 그 구질구질한 깔깔이를 입은 채 멍하니 식당 천장의 형광등을 보고 있었다. 마라는 물개 포주 어깨에 머리를 괴고 태평스럽게 잠을 자고 있었다. 그 그림만 보면 마치 사이좋은 친아빠와 딸을 보는 것 같았다.

이런 급습을 많이 해봐서인지, 아니면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서인지 수사관들의 얼굴에서 긴장감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젊은 수사관 하나가 구석 테이블에서 식당에 모인 사람들을 한명씩 불러다가 조사를 하고 있었다. 그는 신분증과 직업을 확인하고 왜 물개여관에 거주하고 있는지 물은 다음 보고서에 적었다. 일을 하는 수사관이라곤 그가 유일했다. 젊은 수사관은 이십대 중반쯤으로 업무를 시작한 지 며칠 되지 않은 햇병아리처럼 보였다. 연배가 조금 있어 보이는 밀수 단속반 수사관들은 창가에 모여 담배를 피우며 자기들끼리 시시덕거리고 있었다. 이따금 말단 경찰이 식당에 들어와서 수사관들에게 무언가를 묻고는 다시 창고로 돌아갔다.

창고 박스에 말린 생선 이런 것들도 있는데, 뭐 그런 것까지 실어야 됩니까? 그냥 생선이던데.”

일단 다 실어. 생선 안에 뭐가 들어 있는 줄 알고.”

짜증이 나는지 경찰이 입을 삐죽 내밀며 돌아갔다. 나이 많은 수사관들은 손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그리고 수사 자체에 별 성의도 없었다. 창가에서 놀고 자빠진 수사관들은 다섯 명이었다. 테이블 주위에는 커피와 담배가 놓여 있었다. 바지 뒷주머니에서 위스키 힙플라스크를 꺼내 홀짝홀짝 마시는 놈도 있었다. 옆에 있던 수사관이 그의 위스키 힙플라스크를 만져보더니 어디서 샀냐는 둥, 비싸 보인다는 둥 하는 말들을 지껄였다. 잠시 후 창고로 이어지는 뒷문이 열리더니 물개 아줌마가 경찰의 손에 끌려 식당 안으로 들어왔다. 물개 아줌마의 손에는 수갑이 채워져 있었다. 따로 취조를 하려는 건지 경찰이 식당 옆에 붙은 방으로 물개 아줌마를 데리고 들어갔다. 창가에서 킬킬대며 커피를 마시던 단속 수사관 중 두 명이 덩달아 그 방으로 들어갔다. 식당 테이블에서 신분증을 조사하고 있는 말단 수사관이 선원 한 명의 조사를 끝내자 수레를 불렀다.

주민등록증.”

수레가 주민등록증 대신 선원증을 내밀었다. 수사관이 선원증을 슬쩍 보더니 고개를 들고 수레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주민등록증은 없어?”

아직 발급 못 받았습니다.”

바다에서 언제 돌아왔는데?”

열흘쯤 되었습니다.”

빨리 발급받아. 요즘은 주민등록증 소지 안 하면 경범죄로 유치장에 갇혀.”

마치 형이 동생을 챙기듯 젊은 수사관의 말투는 진심으로 수레를 걱정하는 투였다. 젊은 수사관이 선원증에 있는 이름과 등록번호를 보고서에 썼다.

다음 배는 언젠데?”

다음 배는 없습니다.”

그럼 이 여관에는 왜 있는 건데, 회사에서 아직 정산금이 안 나와서 대기하고 있는 거야? 그거 받아서 집에 가려고?”

젊은 수사관이 신참 햇병아리처럼 보이지 않으려고 그러는지 뱃사람들에 대해 아는 척을 했다. 그는 수레가 물개여관에서 잠자다가 얼떨결에 끌려나온 선원들 중 한 명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창고에 있는 물건 팔려고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창고에 있는 물건 팔려고 물개여관에서 대기하다가, ? 무슨 물건?”

젊은 수사관이 별생각 없이 수레의 말을 보고서에 받아 적고 있다가 갑자기 고개를 쳐들었다. 그리고 수레를 빤히 쳐다봤다.

당신들이 트럭에 싣고 간 물건.”

지금 싣고 있는 저 밀수품들이 네 거야?”

아니, 당신들이 새벽 세시에 도둑처럼 먼저 빼내간 밀수품들이 내 거요. 여기 여관 사장인 물개 아줌마 것이 아니고. 그러니 물개 아줌마는 풀어주고 나를 취조해야지. 내가 화주니까.”

당황한 젊은 수사관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수레를 다시 한번 쳐다보고는 고참 수사관들에게 달려갔다. 젊은 수사관이 뭐라고 떠들어대자 고참 수사관들 사이에서 한참이나 이어지던 웃음소리가 끊겼다. 고참 수사관 중 하나가 수레 쪽으로 걸어왔다.

그러니까 저게 니 물건들이라고?”

아니. 저건 내 물건이 아니고, 새벽에 당신들이 몰래 빼내간 물건들이 내 거요.”

새벽에? 뭔 물건?”

온 동네 사람들이 다 봤는데 시치미는.”

수레가 피식 웃으며 수사관을 쳐다봤다. 왼쪽 눈썹 옆에 왕사마귀를 달고 있는 사내였다. 뭐랄까, 뇌물을 잘 받아 처먹게 생긴 얼굴이랄까. 왕사마귀가 담배를 깊이 빨더니 연기를 수레 쪽으로 길게 뿜었다. 그리고 자기가 결정할 사항이 아니라고 판단했는지 물개 아줌마가 끌려들어간 방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상급자처럼 보이는 오십대 사내가 식당 안으로 들어왔다.

, 여기 반장이요. 나가서 담배나 한 대 피웁시다.”

특별단속반 반장의 목소리는 꽤나 부드러웠다. 그는 여기는 사람들이 많아서 은밀한 이야기가 힘들지 않겠냐는 듯 장난스럽게 눈동자를 좌우로 돌렸다. 수레가 의자에서 일어났다.

 

새벽 다섯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아직 해가 뜨지 않아 골목은 어두웠다. 하지만 대한민국 조선의 일번지인 대평동 깡깡이 골목답게 저멀리 수리조선소에서 깡깡 깡깡 힘찬 망치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새벽에 조선소로 출근하는 노동자들이 자전거를 타고 골목을 지나갔다. 그리고 몇몇 동네 사람들이 물개여관에서 벌어지는 일이 궁금한지 팔짱을 끼고 어깨를 잔뜩 웅크린 채 여관 앞을 서성이고 있었다. 특별단속반 반장이 수레에게 담배를 하나 내밀었다. 카멜이었다. 수레가 담배를 받아 입에 물자 반장도 담배를 하나 꺼내 물었다.

공무원이 법을 안 지키시네요?” 수레가 말했다.

뭔 법? 새벽에 밀수 단속한 거?”

아니, 양담배. 대통령이 양담배 끔찍하게 싫어하잖아요.”

! 양담배. 그러게, 공무원이 법을 지켜야 하는데, 한번 맛들이고 나니 입맛 바꾸기가 영 힘드네.”

반장이 웃었다. 여유가 넘치는 사람이었다. 자신에게 힘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아니라면 고작 한 번뿐인 인생 팍팍하게 살건 뭐 있냐는 나름의 인생철학을 가지고 있는 걸까.

알 만한 거 다 아시는 분일 테니, 일 복잡하게 만들지 맙시다.”

반장이 먼저 본론을 꺼냈다.

저도 복잡한 거 안 좋아합니다.”

그럼 이번 물건은 단속 맞아 털린 걸로, 깔끔하게 갑시다. 당신이 화주고 최성국 사장이 물건 받기로 되어 있었다면서?”

엄밀하게 말하면 최성국 사장이 화주죠. 나는 중간 배달업자고.”

엎어치나 매치나. 이거 벌써 꼬리부터 몸통까지 다 발렸어. 그러니까 내 말대로 하쇼.”

그럼 법대로 처리하는 겁니까?”

밀수 특별단속반 반장이 담배연기를 길게 내뿜고는 어깨를 턱까지 죽 들어올렸다가 다시 내렸다. 그리고 뭐가 우스운지 다시 예의 그 여유 만만한 웃음을 지었다.

법대로 처리하면 당신은 사형이야. 우리도 골치 아프고. 그러니까 물건은 우리가 처리해줄 테니까 당신은 그냥 빠지라고.”

그냥 빠지기만 하면 됩니까?”

뭐 춤이라고 추고 싶으면 춰도 되고. 우린 또 춤추는 거랑 노래 부르는 거는 안 말리니까.”

물건 넘기고 입만 닥치면, 물개 아줌마도 더불어 풀어주는 걸로?”

에헤이, 공무란 게 그리 간단하게 될 순 없지. 이 새벽에, 이 많은 국가 인력이, 잠도 못 자고 총출동했는데 범인이 없으면 되는가? 보고서엔 뭐라고 쓰고?”

실적도 올리시고, 물건도 빼돌리고. 오늘 성과가 너무 혁혁하신데요. 그러면 그게 소화가 다 되겠습니까?”

반장의 얼굴에 싸늘한 미소가 흘렀다. 이게 어딜 감히, 하는 표정이었다.

온천장 구씨 집안 종손이라고 들었는데, 맞지?”

, 구씨죠. 종손이고.”

그럼 구씨 집안이 나한테 이러면 안 되는 거지. 한쪽에선 이래라 하고 또 다른 쪽에선 저래라 하니, 힘없는 공무원이 어디 살 수가 있나. 우리도 그간 받아먹은 돈이 있으니 이 정도까지 해주는 거야. 그러니까……”

그러니까?”

집안싸움은 집안에서 알아서 하시라고. 한쪽에선 이래라 다른 쪽에선 저래라, 사람 헷갈리게 하지 말고.”

처음엔 소쿠리 창고 아줌마나, 고경표가 찔렀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소쿠리 아줌마나 고경표 레벨로는 특별단속반 반장을 움직일 수 없다. 이놈들은 밀수를 바퀴벌레보다 싫어하는 박정희가 특별히 만들어낸 팀이었고, 밀수왕 한도식을 한방에 사형으로 보낸 놈들이었다. 처음엔 의욕도 넘쳤고 실적도 많았다. 하지만 특별한 팀들은 평범한 팀들보다 더 빨리 타락한다. 특별이니, 합동이니, 집중이니 하는 잡다한 타이틀이 붙은 것들은 대체로 그렇다. 특별한 힘들은 빨리 사라지고 힘이 있을 때 뭐라도 해 처먹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천달호 레벨로 특별단속반을 움직이는 게 가능할까? 아니라면 이 일에 구들 영감까지 관련되어 있는 것일까?

물개 아줌마는 얼마면 빼낼 수 있는데요?”

이제 내 선에선 안 되지. 내가 말했잖아. 위에서 직통으로 내려온 거라고. 이미 보고도 다 올라갔고. 이거 지우개로 지우려면 나보다는 쪼매 더 높은 자리에서 처리해야 할 거야.”

이 일 시작한 사람이 천달호입니까, 아님 구들 영감입니까?”

반장이 수레를 향해 씨익 웃더니 담배를 바닥에 버렸다. 그리고 구둣발로 담배꽁초를 비벼 껐다. 한눈에 봐도 비싼 수제구두였다.

그런 소스를 나한테서 얻으려고 하면 안 되지. 그리고 억울하다고 어딜 가서 내 이름 들먹거리며 징징댈 생각도 하지 말고. 그땐 우리도 지금처럼 웃으며 대화 못해드리니까.”

충분히 잘 알아들었다는 듯 수레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끄덕임은 조금 공손해보였고 그래서 비굴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또, 뭐 없나? 이 새벽에 여러 사람들이 이 고생을 했는데, 해장이라도 한 그릇 하고 서로 기분좋게 헤어져야 나도 내가 할 수 있는 성의를 다 하지.”

이를테면?”

유치장에 오래 있을 물개 아줌마 잠자리도 좀 편하게 하고, 사식에 기름진 국물이라도 들어가게 하려면.”

수레가 주머니에서 만원짜리 열 장을 꺼냈다. 반장이 약간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다. 수레가 십만원을 더 꺼냈다.

급하게 나오느라 가진 돈이 이게 다네요.”

그제야 반장이 돈을 받았다.

어휴 뭐 밥값으로 그 정도면 아주 땡큐지.”

물개 아줌마, 일단 조서라도 좀 라이트하게 써주세요. 단순 잡범 같은 걸로. 그럼 나중에 좀더 챙겨드리겠습니다.”

오케이, 기마이 쓰는 거야 우리 전공이고. 그러니 1차로 빼낸 트럭이니, 물건이니 떠들지 말란 말이오. 저 아줌마를 감옥에 종신형으로 처넣고 싶지 않으면 그 물건은 그냥 잊어. 그리고 손쓰고 싶으면 빨리 움직여야 할 거요. 일단 검찰에 넘어가면 알지? 돈은 많이 들고 보람은 없는 거.”

반장이 살짝 윙크를 했다. 나이를 먹어서 그렇지 젊었을 때는 좀 놀았을 잘생긴 얼굴이었다. 카바레 제비같이 잘 생긴 반장의 눈매가 한 대 패주고 싶을 정도로 얄미웠다.

 

*

 

수레는 동키에게 전화를 걸었다. 달리 부를 사람이 없었다. 물건은 빼앗겼고 물개 아줌마는 구속되었다. 물개창고에 있던 자잘한 밀수품들이 증거물로 압수되었다. 빨리 손을 써야 한다. 반장 말대로 늦으면 늦을수록 돈은 더 많이 들고 보람은 없어진다. 하지만 너무 오랫동안 외국을 떠돈 탓에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누구에게 쥐약을 먹여야하는지 감도 오지 않았다. 무엇보다 정보가 너무 없었다. 가장 간단한 방법은 온천장 할머니에게 전화를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절대로 할머니에게 부탁 전화 같은 건 넣고 싶지 않았다. 오 년 전에 한국을 떠났을 때도 그랬고 돌아와서 처음 시작한 일도 이 모양이다. 왠지 사고뭉치가 되어가고 있는 것 같았다. 전화를 넣는다면 할머니는 아직 멀었다는 듯 한숨을 쉴 거고 황은 아직 철이 덜 든 수레를 위해 자기가 할일이 있다는 사실에 은근히 신이 날 것이다. 할머니가 전화 몇 통 돌리면 어떻게든 해결이 될 것이다. 그 일련의 일들에 대해 드는 느낌은 짜증이 아니라 부끄러움이었다.

동키는 아홉시가 넘어서야 도착했다. 그 와중에 샤워라도 했는지 동키의 숱 많은 머리카락이 촉촉했다.

빨리도 기어온다. 전화한 지가 언젠데.”

행님아, 이게 대체 뭔 일인데?”

물개 아줌마 끌려갔다.”

물개 아줌마만? 소쿠리 그년은 같이 안 딸려가고?”

천달호 쪽에서 신고했는데 소쿠리가 딸려갔겠나?”

, 천하의 얍삽한 새끼들. 어떻게 도둑놈이 도둑놈을 신고하노. 상도의도 없는 놈의 새끼들.”

빨리 움직여야 된다. 천달호가 작정하고 찔렀으니까 재수 없으면 형량 많이 떨어질 수도 있다. 쥐약 멕이려면 어느 라인 타야 되는데? 확실하고 효과 빠른 라인.”

특별반속반이라매?”

특별단속반은 뭐 쥐약 안 먹나? 아까 보니 잘만 처먹더만.”

그게 대통령 직속이잖아. 그쪽 애들이 좀 꼬장꼬장하다. 그리고 밑에서 주는 자잘한 푼돈으론 못 움직인다. 그냥 온천장에 연락해라.”

온천장에는 연락 안 한다.”

왜 쪽팔려서?”

응 쪽팔려서.”

쪽팔린 건 쪽팔린 건데, 그래도 일단 사람은 살리고 봐야지.”

엉기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다. 그리고 그건 니가 황씨 아저씨와 같이 일 안 하는 거랑 비슷한 거다.”

동키가 무슨 말인지 확실히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억만금을 준다고 해도 울 아버지 같은 사람하곤 같이 사업 못하지. 그나저나 그러면 무슨 라인을 탈 건데?”

문촌장은?”

깡패들은 잘 다루는데 재판, 구속 뭐 이런 먹물 쪽은 아무래도 좀 약하지. 그 인간은 구청에 신고만 하면 되는 일도 괜히 겁먹고 위조 증명서를 만드는 사람이다.”

만리장 손영감은?”

만리장호텔 죽은 지가 언젠데. 그 영감은 정치권 쪽에 이제 아는 사람이나 있을지 모르겠다. 큰 사업 안 한 지가 오래됐으니까.”

미군 쪽에서 압력 넣어줄 사람 없나? 천달호가 중정 끼고 있는데 우리는 미군 쪽이라도 껴야지, 안 그러면 파워 게임이 안 되잖아.”

그럼 하야리아 PX 백상사 한번 만나볼래? 내 같은 건 만나주지도 않겠지만 행님은 그래도 포지션이 쪼매 있다 아이가. 만나볼 거면 내가 포트팔 맥아더한테 전화 한 번 넣어볼까?”

포트팔 맥아더? 뭔 깡패 이름이 그렇게 거창하노?”

, 8부두에서 미군 코넥스 빼내서 유통하는 PX 건달들인데, 뭐 사람들이 그래 부르대.”

그놈들이 세나? 천달호하고 붙을 만큼?”

글쎄 포트팔 그놈들이 컨셉이 좀 애매한 애들이다. 미군 PX 건달들은 말이 건달이지, 이게 대부분 집안이 미군 부대랑 연관 맺고 있는 애들이다. 아버지가 미군 부대 상사거나 삼촌이 중사거나. 뭐 이런 놈들. 부산에 다른 건달들이야 어쨌든 간에 치고 박고 예선 본선 다 치르고 자기 동네에서 자리잡은 건데, 이놈들은 뭐랄까 끊임없는 부전승으로 결승까지 올라온 놈들이라고나 할까.”

싸움을 존나 못하나?”

잘한다 못한다를 떠나서 아예 싸울 일이 없지. 전화 한 통만 넣으면 미군 헌병들이 와서 다 잡아가버리는데. 설령 걔네들이 잘못해서 한국 경찰서에 잡혀 들어가도 아주 당당하다. 전화 한 통 넣으면 미군 부대에서 사람들이 나와서 미군 업무중에 일어난 사고였다는 둥, 조사권이 우리에게 있으니 자기들이 직접 조사를 하겠다는 둥, 어쩌니 저쩌니 하면서 세 시간이면 다 풀려나온다. 그러니까 다른 건달들이 더러워서 안 건드리는 거지. 즈그 애새끼들은 감옥 가고 포트팔 애들은 금세 풀려나고 이게 싸움이 되겠나. 천달호 애들도 포트팔이라고 하면 고마 분노를 가슴 깊숙이 삭인다. 미군 빽이면 천달호 애들이 아무리 중정 끼고 설쳐도 쪼매 부담스러운 거지.”

맥아더라는 놈이 넘버 원이야?”

지 말로는 넘버 투라는데 내가 보기에는 넘버 파이브나 넘버 식스 정도 되는 것 같다. 그래도 내가 연락할 수 있는 놈은 맥아더밖에 없다.”

지금 전화 넣어라.”

총알은 좀 있나?”

천달호한테 후려친 이천만원 있다.”

 

*

 

수레와 동키는 물개여관 앞 나무벤치에 앉아 있었다. 사월의 햇살이 좋았다. 벚나무들이 이제 곧 꽃을 터트리려고 하는지 가지마다 꽃망울들이 잔뜩 부풀어올라 있었다. 동네 아이들이 자전거와 자동차가 쉴 새 없이 다니는 깡깡이 골목에서 가로등을 골대로 축구를 하고 있었다. 수레가 어렸을 때 금광 아이들은 축구공이 없어 새끼를 꼬아 만든 공으로 축구를 하곤 했다. 이따금 돼지 방광으로 만든 공을 쓰기도 했는데 별로 튼튼하지 못했고, 구하기도 쉽지 않았다. 돼지 방광으로 축구를 하고 있다가 어른들에게 걸리면 그 자리에서 귓방망이를 맞았다. 사실 돼지 방광은 식재료이니 축구공으로 쓸 건 아니었다.

새벽부터 설쳐대서 피곤한지 동키가 길게 하품을 했다. 포트팔의 넘버 투인지 넘버 식스인지 하는 맥아더라는 놈을 기다리고 있다. 마음은 급한데 할 수 있는 거라곤 기다리는 일밖에 없었다. 동키가 손목시계를 쳐다봤다. 약속 시간이 한 시간이나 지났는데 이놈은 아직도 오지 않는다.

건너편 벤치에는 물개 포주가 멍하니 앉아 있었다. 아내가 잡혀갔는데 무얼 해야 할지 아무것도 모르는 듯했다. 아니면 무얼 해야 하는지 애당초 관심이 없거나. 심지어 그는 평온해 보이기까지 했다. 가끔 아이들이 축구공으로 가로등을 맞춰 골을 넣으면 물개 포주가 박수를 쳤다. 지팡이를 짚은 꼬부랑 할머니가 지나가자 물개 포주가 일어나더니 팔을 벌려 아이들을 막고 경기를 잠시 중단시켰다. 아마 아이들 축구공이 할머니 다리나 지팡이를 맞혀서 할머니가 넘어지기라도 할까봐 그러는 것 같았다. 할머니는 아흔 살도 넘어 보였다. 서 있는 것만 해도 기적 같은 일이어서 지팡이와 함께 걷는 할머니의 모습은 실로 위태위태했다. 할머니는 왼손으로 지팡이를 짚고 오른손에는 그 와중에 목욕 바구니를 쥐고 있었다. 물개 포주가 할머니 어깨를 살짝 붙잡았다.

아이구, 할머니 목욕탕 가십니까?”

꼬부랑 할머니가 뭐라뭐라 구시렁거렸다.

? ! 목욕탕에 가는 게 아니라 이미 다녀오시는 길이라고요? 어떻게 목욕탕에서 막 나왔는데 이리 때깔이 안 날까.”

물개 포주가 할머니에게 농을 던졌다. 할머니가 물개 포주에게 지팡이를 휘둘렀다. 지팡이를 너무 세게 휘둘렀는지 할머니가 휘청했다. 물개 포주가 팔을 크게 벌리고 휘청이는 할머니를 얼른 껴안았다.

아이고, 농담입니다, 농담. 우리 할머니는 오십 년 전에도 미인이었고 지금도 미인이지.”

물개 포주가 환하게 웃었다. 아흔 살도 넘어 보이는 꼬부랑 할머니가 물개 포주의 품속에서 어린애처럼 짜증을 냈다. 그 꼴을 보고 있던 동키가 혀끝을 찼다.

저 양반은 참 태평도 하네. 마누라가 감옥에서 십 년을 썩을지도 모르는 판국에 동네 할머니 걱정을 하고 있네.”

참으로 신비로운 사람이지.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인간의 범주를 살짝 넘은 사람이랄까.”

이해의 범주고 지랄이고, 나는 저 인간 자체에 대해 도무지 관심 자체를 갖고 싶지가 않다.”

그건 나도 그렇다.”

동키가 다시 하품을 하고 크게 기지개를 켰다. 동키의 눈이 충혈돼 있었다. 잠도 잘 자고 샤워까지 하고 온 놈이 마치 자기 혼자서 밤새 일을 처리한 것 같은 모양새였다.

그때 있잖아. 함경도 금광 시절에, 물개 아줌마 남편이 독립군 병사에게 총 맞아 죽었을 때. 그때 기억나나?”

.”

그때 나는 어린 마음에 우리 아버지랑 물개 아줌마가 결혼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제 물개 아줌마도 남자가 없고 울 아버지는 십 년도 넘게 혼자였으니까.”

바늘이랑 실이랑 만나서 함께 살아가는 거다. 바늘과 바늘이 만나서 무슨 생활이 되겠노? 물개 아줌마랑 황씨 아저씨랑 결혼했으면 서로 주먹으로 치고받고 사흘 만에 그 결혼 파투났다. 아님 누구 하나 맞아 죽었거나.”

물개 아줌마가 바늘이가?”

우리 아버지도 바늘이고?”

동키가 잠시 생각에 빠졌다.

그럼 행님은 마라랑 왜 사귀는데? 마라는 틀림없이 바늘 같은 년이고, 그럼 행님이 실이가?”

. 내가 실이다.”

행님이 실이라고?”

. 내가 실이다. 마라가 바늘이고.”

행님이 실이면 우리 사업에선 내가 바늘이 되는 거가?”

우리 사업에선 내가 바늘이고 니가 실이다.”

이랬다 저랬다, 뭐가 그렇노.”

음양의 오묘한 이치라는 게 원래 이랬다 저랬다 하는 거다. 영원한 바늘도 없고 영원한 실도 없지.”

음양의 오묘한 이치가 그런 거였으면 우리 아버지랑 물개 아줌마랑 결혼했어도 됐겠네. 누구 하나만 성격 죽여서 바늘 그만두고 실 하면 되는 거잖아? 그치?”

그럼 되는 거지. 그런데 둘 중 누가 성격 죽이고 차분하게 실 할 것 같은데?”

동키가 눈동자를 위로 한껏 치켜뜨고 한참이나 머리를 굴렸다. 그리고 상상하고 있는 것이 뭔가 끔찍했는지 잠시 후 머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행님 말이 맞네. 그 결혼은 안 하는 게 나았다.”

물개 포주가 단추 두어 개가 떨어져나간 낡고 더러운 깔깔이를 가슴 쪽으로 여미고 있었다. 아이들의 축구공이 근처에 오자 물개 포주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한참이나 혼자서 공을 가지고 놀았다. 아이들이 짜증을 내자 물개 포주는 공을 다시 아이들에게 발로 차주고는 숨을 몰아쉬었다. 그리고 다시 단추 없는 깔깔이를 가슴 쪽으로 포개고는 자리에 쭈그리고 앉았다. 한참이나 그 꼴을 쳐다보던 동키가 뭔가 새로운 발견이라도 한 양 고개를 끄덕거렸다.

! 물개 아줌마가 저 인간이 불쌍해서 같이 사는 게 아니었네. 물개 아줌마는 저 인간을 사랑하네.”

 

정오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약속 시간이 두 시간이 지났는데도 맥아더라는 놈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태양이 정수리 위로 솟구쳤다. 축구를 하던 아이들은 지쳐서 다들 돌아갔다. 수레는 아이들이 골대로 쓰던 가로등을, 그 가로등이 만들어내는 그림자가 점점 짧아지는 것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자 인내심이 점점 바닥이 나고 조급증이 올라왔다. 동키가 연신 손목시계를 쳐다봤다.

왜 안 오지?”

맥아더라는 놈이 원래 이렇게 개념이 없는 새끼가.”

약간 털팔이과이긴 한데, 그래도 이 정도는 아닌데, 일이 안 풀리나?”

백상사 소개만 시켜주면 되지, 일을 왜 자기가 푸는데? 금마가 그 정도 깜냥이 되나?”

맥아더 걔가 일은 잘한다. 아까 내가 자초지종을 이야기하니까 뭘 그 정도야 일상다반사지, 하면서 자기가 알아보고 해결책을 가져오겠다고 했거든. 사무실로 전화 한번 더 해볼까?”

전화해봐라.”

동키가 여관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건너편 벤치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던 물개 포주가 일어나더니 수레 쪽으로 걸어왔다.

담배 하나만 줘봐.”

수레가 담배를 꺼내 물개 포주에게 내밀었다. 물개 포주가 수레의 담뱃갑을 유심히 쳐다봤다.

전엔 럭키스트라이커드만 왜 이번엔 카멜이야? 럭키스트라이커 없어? 말보루도 괜찮은데.”

얻어 피우시는 주제에, 취향이 확고하십니다.”

우린 구차한 가운데서도 항상 자존감을 가지려고 노력하는 편이지.”

수레가 라이터를 꺼내 물개 포주의 담배에 불을 붙여줬다. 물개 포주가 카멜 담배를 빨더니 허공중에 연기를 길게 내뿜었다.

안에 들어가서 주무시지 왜 벤치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어요? 날도 쌀쌀한데.”

마누라가 걱정이 돼서 그렇지.”

걱정이 되긴 하는구나.” 수레가 혼잣말처럼 말했다.

이놈의 담배 영 입맛에 안 맞네.” 물개 포주가 혼잣말처럼 말했다.

카멜로 바꾼 것은 특별반속반 반장을 이해해보기 위함이었다. 어릴 적 수레에게 검술을 가르쳤던 박홍 영감은 말했다. 적과 싸워서 이기고 싶으면 적이 먹는 음식을 먹고, 적이 마시는 술을 마시고, 적이 읽는 책을 읽고, 적과 친하게 지내는 사람들을 만나서 친하게 지내라. 적이 익숙해지고, 적이 가진 모든 것들과 친해지고, 그래서 너의 적이 더이상 밉지 않을 때, 분노가 솟구치지 않을 때, 그런 때가 오면 이제 그 적과 싸움을 할 준비가 된 것이다. 하지만 아침부터 카멜 담배를 반 갑이나 피워댔지만 아무것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밀수 상자 안에 무슨 물건이 들었건, 누군가 몹시 무리를 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구들 영감이건, 천달호건, 무엇 때문에 이게 특별단속반 반장씩이나 움직여야 할 일일까? 설마 수레에게 초장부터 기를 팍 죽여서 까불지 말라는 경고를 보내기 위해서?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수레는 생각했다. 구들 영감은 뼛속까지 철저하게 실용적인 인간이고 그런 감상적인 제스처를 위해 단돈 일원도 쓸 양반이 아니었다.

우리 마누라 벌금 내면 풀려나겠지? 전에도 몇 번 잡혀갔는데 그때도 벌금 내니까 금방 풀어주던데. 그런데 이번엔 몰려온 꼬라지들 보니까 벌금이 세게 나올 것 같던데.”

물개 포주가 돈 걱정이 되는지 넌지시 수레의 간을 봤다. 고작 벌금만 내고 빠져나올 수 있다면 물개 포주를 얼싸안고 춤이라도 출 것 같았다. 하지만 이 실용적인 세상에선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물개 포주에게 괜한 걱정을 주고 싶지 않았다.

벌금 내면 나오겠죠. 뇌물 먹이면 더 빨리 나오고.”

그렇네. 뇌물이 더 빠르겠네.”

그때 파란색 양복 상의에 흰바지를 입고 검정 선글라스를 낀 사내가 물개여관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처음 보는 사람인데 사내는 마치 몇 년 만에 친구를 만난 양 멀리서부터 반갑게 팔을 크게 흔들었다. 자기가 아니라 물개 포주를 향해 흔드는 손인가 싶어 수레는 물개 포주를 쳐다봤다.

저 사람이 아저씨한테 손을 흔드는 겁니까, 아니면 나한테 흔드는 겁니까?”

쳐다보지 마. 쳐다보면 이리로 온다.”

 하지만 수레는 파란 양복을 쳐다봤다. 과연 물개 포주 말대로 파란 양복이 수레 쪽으로 빠르게 걸어오고 있었다.

에이씨, 쳐다보지 말랬잖아. 나는 들어간다.”

물개 포주가 도망치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물개 포주가 현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기 직전에 파란 양복이 큰 소리로 인사를 건넸다.

아이고, 이게 누구신가? 포주 나으리 아니신가?”

에이씨, 누가 포준데?”

포주도 아니면 뭐라 부를 건덕지가 없잖아. 사람은 타이틀이 핵심인데.”

타이틀 좋아하는 니나 목에 주렁주렁 많이 달고 살아라. 나는 무직으로 살라니까.”

파란 양복이 수레를 아래위로 쳐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군용 잠바를 걸치고 있는 수레의 꼴이 자기 예상과는 달랐는지 약간 실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혹시 온천장 그 양반이오?”

.”

나 포트팔의 오동세요. 사람들은 맥아더라는 별명으로 많이들 부르더만. 나에 관한 건 뭐 소문 많이 들어서 대충 아시겠지만.”

누가 너를 맥아더라고 부르는데? 다들 포트 팔랑이라고 부르지.” 물개 포주가 옆에서 쏘아붙였다.

이봐요, 무직 아저씨. 우리 지금 중요한 비즈니스를 막 시작하려고 하는 참이니까 직업 없는 양반은 멀찌감치 좀 빠지쇼.”

혹시 그 맥아더가 제가 알고 있는 그 맥아더입니까? 인천상륙작전의 맥아더 장군 할 때 그 맥아더?”

잘 아시는구만. 한반도의 허리를 찌르며 들어가는 그분의 직관적이고 도전적이며 창의적인 정신이 제 스타일이랑 많이 닮았다고 사람들이 그렇게들 부릅디다.”

! .”

처음 만난 사람에게 은밀한 부탁을 해야 해서 조금이나마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어보자고 던진 농담이었다. 하지만 맥아더의 표정은 사뭇 진지했다. 옷 입은 꼬락서니하며, 말하는 스타일하며, 이놈은 대체 뭔가 싶은 생각이 드는 놈이었다. 그때 동키가 여관 문을 열고 나왔다. 그리고 맥아더를 보자마자 짜증이 나는지 소리를 질렀다.

긴급한 사항이라고 내가 그렇게나 말했는데. 이제사 옵니까?”

내가 놀다가 왔나? 느그 숙제 해결한다고 나도 아침부터 여기저기 전화 돌리고 이리로 저리로 뛰어다닌다고 존나 바빴다고.”

그래서 백상사가 해결해준대요?”

맥아더가 주변을 둘러보더니 수레를 향해 나지막하게 입을 열었다.

우리가 특별단속반 금마들이랑 그동안 이래저래 서로 편의 봐준 것도 있고 해서 돈 몇 푼 찔러주면 뭐 간단하게 해결되겠다 싶었는데, 내가 알아보니까 이 일이 생각보다 간단치가 않네요.”

가격 올리려고 일부러 심각한 척하는 거죠? 됐고 마, 그래서 얼마를 달라는 건데?” 동키가 옆에서 짜증을 냈다.

그게 아니라니까. 니는 똥인지 방귀인지 구분도 못하고 설치노. 지금 분위기가 생각보다 심상치가 않다.” 맥아더가 정색을 하고 소리를 질렀다.

동키가 놀라서 입을 다물었다. 맥아더가 다시 수레를 쳐다봤다.

최성국 사장이라고 아시죠.”

어제 만났습니다.”

새벽에 털린 게 그 사람 물건입니까?”

, 아침에 트럭 보내서 그 물건 받아 가기로 했는데 어디서 벌써 소문 들었는지 트럭을 안 보냈네요.”

최성국이 새벽에 시체로 발견됐어요.”

백화점 도매업자 최성국요?”

놀랐는지 수레가 다시 이름을 확인했다.

, 사채업도 하고 백화점에 물건도 공급하는 그 최성국. 우리하고도 일 많이 하는 양반입니다.”

어쩌다 죽었는데요?”

자세한 건 잘 모르겠고. 배에 칼을 여러 방 맞았다고 하던데. 그런데 시체가 발견된 곳이 하필 영도다리 아래에 부랑자들 많이 자는 곳이라서, 사람들이 아침부터 웅성거리고, 신문기자들이 몰려와서 취재도 다 해 갔고.”

누가 죽였는데요?”

그야 모르죠.”

최성국이 죽은 건 그렇다 치고, 그게 물개 아줌마 빼내는 거랑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아무래도 경찰이 이걸 물개 아줌마랑 같이 엮으려고 하는 거 같아요.”

살인범으로?”

아니 살인범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살인사건에 정황상 엮인 거죠. 밀수사건을 둘러싸고 벌어진 살인사건이니까. 조간신문에는 안 나오겠지만 오늘 석간에는 기사 나올 거고. 아시다시피 신문기사 나면 공무원들이 몸을 잔뜩 웅크리니까 사바사바해서 빼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일이 아주 더럽게 된 거지.”

수레가 주머니에서 카멜 담배를 하나 꺼내 입에 물었다. 최성국 사장은 백화점 유통업계의 큰 도매상이고 명동 사채 시장에서 가장 큰손인 단회장 밑에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을 누구 보란 듯이 칼로 찔러 죽이고 시체를 내팽개쳤다. 그것도 부랑배와 거지들이나 모여 사는 영도다리 아래에다. 누군가 마음이 급해 무모한 짓을 저질렀고 다른 누군가가 응징을 했다. 최성국은 자기는 안전하다고 생각했다. 문촌장, 양동이, 칭따오는 칼을 맞아도 자기는 고객이므로, 고객은 왕이므로, 그저 쓰미마셍 하고 다시 고개를 숙이면 다 용서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세상에서 안전한 건 아무것도 없다. 그리고 그중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안전할 거라는 착각이다.

천달호가 마약도 거래합니까?” 수레가 물었다.

제가 알기로 마약 거래는 안 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

확실합니까?”

맥아더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마 안 할 걸요. 마약 사업이란 게 그게 비슷해 보여도 이쪽 건달 일이랑은 업종이 완전히 다릅니다. 또 일단 시작하면 아무리 은밀하게 움직여도 이 바닥엔 소문 금방 나니까. 천달호는 벌여놓은 사업도 많고 한창 잘나가는데 뭐가 아쉬워서 그걸 하겠어요. 마약은 밑바닥들이나 하는 거지. 한번 터지면 앞도 뒤도 없으니까.”

그럼 고경표는요?”

고경표? 그 쫄보 새가슴이? 그건 지나가는 강아지도 웃을 일이고.”

수레는 담배를 길게 빨았다. 그리고 담뱃갑에 그려진 그림을 멍하니 쳐다봤다. 사막을 배경으로 서커스단에서 막 탈출한 것 같은 한 마리의 외봉낙타, 세 그루의 사막나무, 두 개의 피라미드가 그곳에 있었다. 연기에서 푸른기가 돌았다. 푸른 연기가 올라와서 수레의 눈을 찔렀다. 필터가 없는 담배여서 마른 지푸라기를 태우는 듯한 독하고 건조한 향이 났다. 어쩌면 사막이 있고, 낙타가 있어서 그런 느낌이 드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구나. 이 담배를 피우는 사람은 건조하구나. 최소한 건조함을 견딜 줄 아는 사람이구나. 싸늘하고, 건조하고, 매캐한 공기가 가득한 곳에서 생존할 수 있는 사람이구나. 사막은 축축한 낭만을 가지고 건너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니까. 그러니 이것은 애당초 맥아더 따위를 데리고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너무 낭만적으로 생각했다. 시간만 낭비했다. 더 시간을 낭비하면 물개 아줌마는 급류에 휩쓸려 가버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