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회

캐딜락

수레가 잠에서 깬 것은 한 시간 후였다. 그때 자동차 경적이 울렸다. 경적은 황의 성격처럼 짧고 단호했다. 선원들이 담배를 피우던 가로등 아래에 푸른색 캐딜락 한 대가 서 있었다. 조금 떨어진 곳에는 동키가 밀수 물건을 떼서 국제시장에 팔 때 쓰는 삼륜트럭 T-600도 서 있었다. 바퀴 세 개로 달리는 0.5톤의 이 작은 트럭은 동키가 자기 목숨보다 더 아끼는 차였다. 가볍고 작아서 좁은 골목 어디라도 질주할 수 있었고 기름도 적게 먹었다. 바퀴가 세 개밖에 없다는 태생적 불완전함 때문에 이따금 급커브를 돌다가 옆으로 꼬꾸라지는 소소한 단점만 뺀다면 나무랄 데 없는 트럭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동키가 자기 목숨보다 더 아끼는 T-600 운전대를 강구에게 맡기고 자기는 캐딜락에 앉아 있었다. 아마 캐딜락을 운전하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허튼 꿈이다. 황 아저씨가 동키에게 운전대를 맡길 리는 만무했다. 


황이 타고 온 푸른색 캐딜락은 할아버지가 부산에서만 몰던 차였다. 관부연락선을 타고 일본에 갈 때나 온천장에서 일본 총독부 사람들을 접대할 때 할아버지는 저 푸른색 캐딜락을 몰았다. 조선의 마지막 황제인 순종이 타던 차가 캐딜락이었다. 제네럴모터스의 1918년식 캐딜락으로 검정이 살짝 섞인 레드에 8기통 엔진, 5000cc나 되는 배기량을 가진 차였다. 그때부터 친일파들이 순종이 산 차보다 더 좋은 차를 사느라 이 가난한 나라에서 웃기게도 한때 캐딜락이 유행을 했다. 쌀 한 가마니 가격이 이십오환 할 때 수만환이나 하던 차였다. 할아버지도 나라를 팔아먹은 돈으로, 백성의 고혈을 짜낸 돈으로 유행이나 좇는 그런 한심한 치들 중 하나였다. 할아버지가 부산에 유람을 올 때만 썼으므로 저 푸른색 캐딜락은 대부분 온천장의 요정 창고에서 잠을 잤다. 평양에 갈 때 몰았던 롤스로이스는 지금 누가 타고 있을까? 해방 직후 소련 점령군 사령관에게 그 차를 뺏겼을 때 할아버지는 분노를 못 이기고 황에게 사발을 집어던졌다. 황의 이마에는 아직도 그때 사발에 맞아서 생긴 흉터가 있었다. 


할아버지는 못난 사람이었다. 신경질적이고 의심이 많았고 시야가 좁고 우둔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일단 한번 의심을 시작하면 자기 자신이 불안을 이기지 못해 증거를 다 살피지도 않은 채 사람을 족치거나 내쳐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었다. 할아버지의 불안장애는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점점 심해졌다. 그래서 말년의 할아버지는 잠시도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는 괴팍하고 신경질적이며 우둔한 멍청이가 되고 말았다. 불안은 총기를 잡아먹고, 지혜를 잡아먹고, 올바른 판단을 잡아먹는다. 불안은 마누라를 잡아먹고, 형제를 잡아먹고, 자식을 잡아먹고 그리고 결국 자기 자신까지 잡아먹어버린다. 불안과 더불어 살 수 있는 것은 의심, 증오, 분노, 자기혐오 이런 밑바닥의 정서밖에 없다. 그러니 이백오십 년을 내려온 금광을 할아버지가 말아먹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나라를 일본에 빼앗기지 않았더라도, 소련과 공산주의자들이 북쪽을 점령하지 않았더라도, 이 작은 반도에 온갖 나라들이 몰려와 이데올로기라는 가짜 이름으로 그 참혹한 전쟁을 치르지 않았더라도, 할아버지는 능히 금광을 말아먹을 인간이었다. 어쩌면 자신의 몸에 독버섯처럼 자라고 있는 이 불안도 할아버지로부터 내려온 더러운 유전이 아닐까 하고 수레는 종종 생각했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 이 집안의 피를 조금이라도 이어받은 남자 중에 멀쩡한 정신 상태를 가지고 있는 인간이라곤 단 한 명도 보지 못했으니까.


수레는 의자에서 일어나 창문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황이 운전석 문을 열고 캐딜락에서 내렸다. 황은 중절모를 벗어 가슴에 붙이고는 늘 그래왔던 것처럼 허리를 굽혀 느리고 진중하게 인사를 했다. 수레가 곧 내려가겠다는 뜻으로 왼손을 가볍게 들어올렸다. 

수레는 테이블 위에 있는 술병과 글라스를 한쪽으로 밀어내고 군용 더플백을 올렸다. 그러고는 더플백 안에서 45구경 콜트 권총과 칼을 꺼내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권총은 베트남 밀림에서 우연히 발견한 미군 장교의 시체에서 훔친 것이었고 칼은 함경도에 있을 때부터 쓰던 중국 룽취안 단검이었다. 베트남에 가기 전에는 칼이 편했는데 전쟁에서 돌아오니 총이 더 편하고 안전한 느낌이었다. 칼은 적과 가깝고 총은 적과 멀다. 칼이 더 정직하다. 칼은 싫든 좋든 적과 직접 만나야 한다. 살을 맞대야 하고 뼈가 부딪혀야 하며 눈을 마주치고 숨소리를 들어야 한다. 칼은 정직해서 위험하다. 총이 좋다. 총은 적과의 거리가 멀고, 살을 맞댈 필요가 없으며, 죽어가는 자의 눈동자를 보지 않아도 된다. 정면에서 쏘건 뒤통수에 대고 쏘건 그게 무슨 상관인가. 어차피 죽은 자는 아무 상관도 하지 않는다. 총은 비겁하고, 비겁해서 안전하다. 수레는 총을 집어들고 싶었다. 하지만 총은 요란하다. 요란함 때문에 빌미를 남길지도 모른다. 수레는 덜미를 잡히고 난 다음 일어날 일련의 사건들을 떠올렸다. 일이 수면에 떠오르면 경찰들이 들쑤시고 다닐 거고, 조사를 받으러 이리저리 끌려 다녀야 할 거고, 할머니는 사건을 가라앉히기 위해 또 군부의 몇 군데에 로비를 넣어야 할 것이다. 게다가 가문을 잡아먹으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사람들은 물 만난 고기마냥 설쳐댈 게 뻔했다. 수레는 고개를 흔들고 이내 총을 더플백 안에 다시 집어넣고 칼만 허리춤에 끼웠다. 


벽에 걸린 외투를 꺼내 입을 때 거칠게 숨소리만 내던 마라가 코를 골기 시작했다. 수레가 침대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마라는 입을 약간 벌린 채 잠을 자고 있었다. 뛰어놀다 지친 강아지처럼 잠을 자는 마라의 얼굴은 천진하고 예뻤다. 하긴 저 여잔 입만 다물고 있으면 천사가 따로 없지. 볼에 뽀뽀라도 하려다 왠지 궁상맞은 짓인 것 같아 수레는 그만뒀다. 수레는 소리 없이 방문을 열고 또 소리 없이 방문을 닫았다. 그리고 천천히 목조계단을 걸어내려갔다. 물개여관 목조계단이 가팔라서인지 아니라면 술이 덜 깨서인지 계단을 밟을 때 현기증이 느껴졌다. 


*


현관문을 열자 여관 앞에 황과 동키가 기다리고 있었다.

“수레 도련님.”

황이 긴 팔을 넓게 벌리고 수레를 포옹했다. 마치 아버지가 전쟁터에서 돌아온 아들을 끌어안듯 황은 수레를 꼭 껴안았다. 잠시 후 황은 포옹을 풀더니 양팔로 수레의 어깨를 붙잡은 채 어디 다친 데는 없는지 위아래를 찬찬히 살폈다. 

“사내가 다 되어서 돌아왔습니다.”

사내가 다 되어서, 하고 수레는 속으로 황의 말을 되씹었다. 황의 대견하다는 그 말투가 이상하게 신경을 거슬렸다. 올무를 매는 법이건, 매를 잡는 법이건, 그 무엇이건 예전에 황에게 뭔가를 배우고 칭찬을 받을 때면 항상 마음속에서 기쁨이 터져나왔었다. 하지만 오 년 만에 돌아오니 황의 칭찬이 몹시 신경에 거슬렸다. 수레도 황의 모습을 살펴봤다.

“아저씨도 여전하시네요.”

“네. 아직까지는 쓸 만합니다. 참, 사이공 병원에 있었다고 들었는데 다친 곳은 어떻습니까?”

“작은 부상이었어요. 별것 아닙니다.” 

수레의 말에 황이 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황은 오 년 전에 비해 조금 늙은 듯했다. 하지만 투르크와 몽골계의 피가 반씩 섞여 이국적이고 다부진 인상과 백구십 센티미터가 넘는 그 강골의 뼈대는 삭지 않고 여전했다. 황은 평양 씨름대회에서 육 년이나 연속으로 일등을 한 장사였다. 사실 타고나기를 전사로 태어난 사람이어서 황에게는 정교한 씨름 기술이고 뭐고 별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시합이 시작되면 그저 상대를 풀쩍 들어올린 다음 바닥에 패대기치면 되는 일이었다.

물개여관 간판 끝에 모인 빗방울이 황의 어깨 위로 툭툭 떨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황은 한 방울의 비도 맞지 않게 하려는 듯 수레를 향해 우산을 바짝 내밀고 있었다. 

“아저씨도 우산 안으로 들어오세요. 비 맞아요.”

“저는 아무래도 괜찮습니다.”

커다란 우산 하나를 혼자 독차지하고 있던 동키가 황의 말에 입을 삐죽 내밀었다. 동키는 황의 막내아들이었다. 위로 네 명의 형이 있었는데 둘은 한국전쟁 중에 죽었고 둘은 북에서 내려오지 못했다. 황은 수레가 태어나기 훨씬 전부터 수레 집안의 하인이었다. 황은 자신에 대해 결코 떠드는 법이 없어서 황에 관해 떠도는 많은 소문들, 예를 들어 황은 원래 여진족들이 살던 만주 쪽에서 사냥을 하고 도축을 하던 백정이었다는 둥, 할아버지의 금광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유명한 마적 두목이었다는 둥, 사람을 백 명도 넘게 죽인 인간 도살자였는데 어쩐 일인지 할머니를 만나서 개과천선했다는 둥 하는 이야기들의 진위를 직접 확인할 수는 없었다. 그런 소문에 대해 물어볼 때면 황은 언제나 빙긋이 웃기만 할 뿐이었다. 어쨌거나 그것은 1930년 전에나 일어난 일이었다. 금의 가문으로 들어오고 난 이후 황은 사십 년 세월 동안 변함없이 수레 집안의 충직한 하인이었다. 할아버지가 그나마 광복 때까지 금광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누가 뭐래도 황의 덕택이었다.


할아버지는 해방 직후 소련군이 북쪽을 점령하고 있을 때 돌아가셨다. 아버지는 해방이 되던 해인 1945년 동경에서 일본 헌병대에 잡혀가 고문을 받다가 죽었다. 북한에 있던 금광과 가문의 땅과 건물은 공산주의자들에게 다 빼앗겼다. 부산으로 내려와선 이승만 대통령과 그 졸개들에게 보람도 없는 뇌물을 갖다 바친다고 그나마 남은 재산도 대부분 사라졌다. 그런데도 황은 아직도 금의 가문을 지키고 있고 여전히 자신을 하인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까. 세상은 바뀌었다. 왕도 사라졌고 신분도 사라졌고 심지어 섬겨야 할 가문도 주인도 다 사라졌다. 그런데도 황은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다는 듯 늘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어쩌면 황은 누구라도 섬기는 게 이번 생에 자신의 사명이라고 생각하는지도 모르겠다. 해방 이전 할아버지를 주인으로 모시고 금광을 지킨 것처럼 황은 이제 할머니를 주인으로 모시고 온천장을 지키고 있었다. 황이 할머니를 지켜줘서 피난 이후의 이 험난한 삶을 할머니가 살아올 수 있었다. 


황이 이제 그만 가야 한다는 듯 캐딜락 쪽으로 손을 펼쳤다. 수레가 자동차를 향해 걸었다. 동키가 재빨리 뛰어가 푸른색 캐딜락의 운전석에 앉았다. 황은 비를 맞지 않도록 수레에게 우산을 씌운 채 천천히 걸어 캐딜락 뒷좌석 문을 열었다. 뒷좌석에는 황이 데리고 다니는 칼잡이 열이 앉아 있었다. 열은 수레와 비슷한 나이였다. 아주 어릴 적에 부모를 잃고 금광으로 들어온 것을 황이 거뒀다. 궁궐 상급 내시였다가 은퇴하여 금광에서 말년을 보내던 박홍 영감에게 수레는 열과 같이 검술을 배운 적이 있었다. 수레는 몇 년쯤 배우다 그만뒀고 열은 계속 배웠다. 온천장에는 쓸 만한 칼잡이와 총잡이들이 여럿 있었다. 그런데도 황이 이 위험한 일에 저놈 하나만 데리고 올 정도면 이제 열의 칼솜씨는 경지에 올랐을 것이다. 사실 어릴 때도 열과 검술 대련을 해서 수레가 이긴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열은 재능도 있었고 열정도 있었고 홀로 남겨진 험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검술을 꼭 배워야만 하는 절박한 이유도 있었다. 하지만 수레는 열이 가지고 있는 세 가지 중에 단 한 가지도 가지고 있는 게 없었다. 가져야 할 필요가 없다고, 그 시절엔 생각했다. 열은 고아였고 수레는 무려 금광 소유주의 손자인 것이다. 하지만 세상은 파도와 같아서 높은 것은 금방 아래로 떨어지며 낮은 것은 떨어지는 높은 것들의 힘으로 또 위로 올라간다. 


수레가 뒷좌석에 자리를 잡자 황은 어릴 때부터 늘 그래왔던 것처럼 문틈에 옷이 끼지 않았는지 살피고는 조심스럽게 문을 닫았다. 열이 창 쪽으로 몸을 조금 더 움직였다. 그리고 무심한 얼굴로 수레에게 목례를 했다. 수레를 대하는 태도에 어떤 긴장감도 없었다. 마치 황의 주인은 너고 나의 주인은 황이지만 그렇다고 네가 내 주인은 아니다, 라는 태도였다. 수레도 열을 향해 목례를 했다. 황은 캐딜락 보닛을 돌아 운전석 문을 열었다. 그리고 운전대를 잡고 앉아 있는 동키를 가만히 쳐다봤다. 황의 표정에는 별 변화가 없었지만 그 눈빛은 까불지 말고 빨리 운전석에서 나오라는 뜻이었다. 동키는 늘 할아버지의 푸른색 캐딜락을 운전하고 싶어했다. 하지만 황의 표정을 보니 오늘도 가망 없는 일이었다. 동키가 아쉽다는 표정으로 운전석 옆자리로 자리를 옮겼다. 황이 우산을 접고 운전석에 앉더니 코트 어깨 부분에 묻은 빗방울을 툭툭 털어냈다. 그러고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가면서 도련님이랑 긴히 할 얘기가 있으니 막내와 열은 뒤에 있는 트럭을 타고 와라.” 

황이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말했다. 황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열이 곧장 문을 열고 차에서 내렸다. 머뭇거린다거나 자존심이 상한다거나 하는 표정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열은 마치 전원 버튼이 들어간 공장 기계처럼 움직였다. 하지만 동키는 뜨악한 얼굴로 황의 얼굴을 쳐다봤다.

“지금, 나보고 저 삼발이를 타고 오라고요?”

“그래.”

“에이, 아버지도 참.”

“뭐가 에이 참인데?”

“저 쬐그만 차에 장정 셋이 어떻게 탑니까? 뭐 짐칸에 탈까요? 가뜩이나 추적추적 비가 와서 마음도 울적하구만.”

“그럼 니 쫄따구 강구를 짐칸에 태우던가.”

“강구는 사람 아닙니까? 아버지는 금광에서 작업반장을 하도 오래 하다보니 사람 막 대하는 게 습관이 되어버렸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사람 그렇게 안 대합니다. 상하 고하를 떠나서 인간적인 도의란 게 있어야지. 아무리 쫄따구라도 이 빗속에 사람을 어떻게 짐칸에 태웁니까, 악!”

그때 동키 머리에서 빡 하고 마치 두개골이 뽀개지는 듯한 소리가 났다. 황이 그 솥뚜껑만한 오른손으로 동키의 머리를 때린 것이었다. 시각적이든, 청각적이든, 그 어느 면으로 보든, 무척 아파 보였다. 동키가 신음 소리도 못 내고 두 손으로 머리를 감쌌다. 

“가난한 시장 아줌마들한테 사채 일수나 후려쳐먹는 새끼가 얻다대고 사람 타령이냐.” 황이 말했다.

두 손으로 머리를 싸매고 한참을 고통스러워하던 동키가 잠시 후 욕을 했다.

“아이 시팔, 왜 머리를 때리고 그래요. 아버지는 머리 쓸 일이라곤 일절 없는 사람이니까 상관없겠지만 나는 머리 하나로 밥 먹고 사는 사업가란 말이에요.”

“그러니까 그 잔대가리나 굴리는 머리 지키고 싶으면 한 대 더 맞아서 골통 빠개지기 전에 빨리 차에서 내려라.” 

하지만 동키는 한 대 더 맞으면 정말로 두개골이 부서질지 모르는데도 차에서 내리지 않고 버팅기고 있었다. 황이 습, 하고 협박처럼 숨을 들이켰다. 동키의 어깨가 움찔했다.

“동키는 여기 있어도 괜찮습니다. 저랑 동키는 형제나 마찬가지인 불알친군데 동키한테까지 숨기고 자시고 할 게 뭐 있습니까.” 수레가 말했다. 

“똑똑히 들었지예 아버지. 우리는 형제나 마찬가지라니깐. 그러니까 아버지나 계속 도련님 하고 머슴 놀이 하세요. 나는 그냥 불알친구 할라니까.”

황이 이번엔 진정코 동키의 대갈통을 박살내겠다는 듯 주먹을 들어올렸다. 하지만 룸미러로 수레의 눈치를 보고는 슬며시 팔을 내렸다. 덩달아 바짝 쫄았던 동키의 어깨도 슬며시 풀렸다. 어쩔 수 없다는 듯 황이 크게 숨을 한번 내쉬었다. 그리고 차에 시동을 넣었다. 

“그럼 출발하겠습니다.” 


황이 조심스럽게 페달을 밟자 차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차는 깡깡이 마을을 빠져나가 남항동 큰길로 들어서더니 곧장 해안도로를 따라 달라기 시작했다. 긴장감 때문인지 답답한 마음이 들었다. 수레는 차장을 조금 내렸다. 바닷바람 속에 새벽 냉기와 비릿한 생선 냄새와 휘발유 냄새가 섞여 있었다. 새벽 조업을 끝낸 연근해 어선들이 영도의 북쪽을 돌아 자갈치 어시장 쪽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부산항 쪽으로 들어가는 화물선에서 어선에게 경계를 보내려는 듯 크게 기적을 울렸다. 멀리 부산항 앞에 모인 배들의 불빛은 수레가 떠나기 전보다 훨씬 많아진 느낌이었다. 세계는 점점 좁아지고 있고 앞으로 더 많은 배들이 부산항으로 모여들 것이다. 그래서인지 조선소들이 모여 있는 영도의 서쪽 바닷가에는 새로운 조선소가 계속해서 생겨나고 있었다. 


전쟁이 시작되기 직전에 할머니는 함경도 금광 마을 사람들을 모두 데리고 부산으로 피난을 왔었다. 북한군은 한 달도 안 돼서 낙동강 전선까지 밀고 내려왔다. 정부와 군대, 정치인, 기업가, 학자, 문화예술인 등등 공산당에게 쫓긴 모든 피란민들이 북한군을 피해 부산으로 몰려들었다. 그것은 사실 대한민국 전체를 부산이라는 도시 하나에 압축한 것과 같았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그 시절엔 정부도, 군대도, 서울의 주요 대학도, 주요 행정기관도 모두 부산에서 건물을 빌려 새로 문을 열었다. 


할머니는 온천장에 자리를 잡았고 함경도 금광에서 같이 내려온 사람들은 물개여관 근처의 남항동과 영도 봉래산 피난민 판자촌에 자리를 잡았다. 온천장에는 금광 사람들을 모두 먹여 살릴 일거리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급하게 피난을 내려온 살림이라 함경도 금광 시절에 비하면 궁색하기 짝이 없는 시절이었다. 하지만 수레는 부산에 첫 발을 디뎠던 1950년부터 이 도시의 모든 것이 맘에 들었다. 부산은 볼거리가 넘쳐났다. 전국에서 몰려온 온갖 사투리를 쓰는 사람들. 스물한 개국에서 파병온 여러 피부 색깔을 가진 UN군들과 갖가지 전쟁물자들. 거리에 깔린 탱크와 대포와 비행기. 미군부대에서 나온 갖가지 통조림과 초콜릿과 과자를 훔쳐다 파는 상인들. 거지들과 깡패들과 억세고 목소리 큰 아줌마들. 잘 웃고 잘 우는 국제시장과 자갈치 상인들. 수레는 열세 살이었고 동키는 열한 살이었다. 수레와 동키는 학교를 땡땡이 치고 매일 부산 곳곳을 뽈뽈거리며 돌아다녔다. 미군기지를 몰래 들락거리고, 국제시장과 깡통시장에서 온갖 밀수품들을 구경하고, 도떼기시장에서 피란민들, UN군들, 미군, 돌아오는 재일교포와 떠나는 중국인들에게 흘러나온 수많은 물건들을 신기한 듯 구경하러 다녔다. 전 세계의 잡동사니들을 다 모아놓은 것 같은 국제시장의 물건들은 고향 함경도에선 구경도 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부산은 수레가 살았던 높은 산들이 즐비한 개마고원의 고요함과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었다. 부산은 마치 온갖 물감들을 마구 섞어놓은 듯한 도시였고, 매순간 폭죽이 터지는 것처럼 다이내믹하고 산만한 도시였으며, 활시위를 잔뜩 당겨놓은 것처럼 팽팽한 긴장감이 넘치는 도시였다. 그 번잡하고, 다양하고, 상스럽고, 잡스러운 느낌이 좋았다. 동키는 이 도시의 경박한 습성이 꽤나 맘에 들었는지 금세 함경도 말투를 버리고 마치 부산 토박이인 양 부산 사투리를 따라했다. 부산 사람이 되고 싶어했고 실제로 누군가 고향이 어디냐고 물어볼 때면 함경도라고 하지 않고 부산이라고 거짓말을 하곤 했다. 이곳에는 양반도 상놈도 없었고, 신분도 출신도 학력도 묻지 않았다. 뜻과 돈만 맞으면 누구나 친구가 될 수 있었고, 아무나 어울려서 한 무리를 만들어 한탕 뛸 수 있었다. 여기선 모두가 금방 싸우고 또 금방 화해했으며, 오줌 누듯 배신을 하고 밥 먹듯 다시 악수를 했다. 말하자면 부산은 동키의 유전자와 딱 맞는 도시였다.


*


차가 영도의 북쪽 면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황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할머님이 많이 보고 싶어하십니다. 바쁘시더라도 돌아오셨으면 어르신께 인사부터 하시는 게.” 

“돌아오니 이것저것 정리할 게 좀 있어서요. 정리되는 대로 찾아뵐게요.”

“그동안 국내 상황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떠난 지가 오래돼서 사정이 밝지 않으실 텐데, 어르신과 함께 상의하면서 하나하나 정리하는 것도 한 방편일 수 있습니다. 필요하시면 저도 돕겠습니다.”

“정리는 제가 하겠습니다.” 수레가 황의 말을 간단히 끊었다. 

룸미러로 황의 얼굴이 보였다. 더 할말이 있는지 입꼬리가 움찔거렸지만 황은 더 말하지 않고 입을 다물었다. 황과 수레 사이에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하지만 둘 사이에 어색한 침묵이야 흐르든가 말든가 동키는 뭐가 좋은지 차창 밖을 보며 콧노래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월남에서 돌아온 새까만 김상사가 있는데, 모두가 너무나 기다려서 김상사에게 안기고, 가기 전엔 말썽 많은 김총각이었는데 전쟁에서 훈장을 받고 의젓하게 돌아오니 엄마가 자랑스러워하고, 동네에서 잔치가 나고, 여자들도 김상사가 좋아서 아주 홀딱 반하고, 뭐 그런 내용의 가사였다. 동키가 흥얼거리는 노래 가사를 듣다가 수레가 피식 웃었다.

“그건 또 무슨 노랜데?”

“아, 이 노래 모르나?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라고, 처음 보는 여자 가수가 부르던데 얼굴도 예쁘고 춤도 잘 추고 노래도 기가 막히게 잘 부르고, 아주 끝내준다.”

“그게 요즘 유행이가?”

“응. 아주 유행이다.”

“우리 해병대 최상사는 월남에서 돌아와서 마누라가 밥에 넣은 쥐약 먹고 죽었는데, 그래도 노래 속 김상사는 자기 동네에서 대접받고 사는 모양이네.” 

“무시무시한 여자네. 그 마누라는 왜 그랬다는데? 딴 놈이랑 바람이라도 났나?”

“응. 너무 사랑해서 그랬다고 하더라.”

“아, 사랑! 너무 사랑하면 그럴 수도 있지. 내 아는 친구 삼촌도 돈 벌어오겠다고 독일 탄광까지 가서 뼈 빠지게 일해서 목돈 가지고 돌아왔는데, 돌아오고 얼마 안 돼서 마누라가 준 김을 먹고 죽었다.”

“그 여자는 밥이 아니고 김에다 쥐약을 발랐나?”

“아니, 그 여자는 김에다가 청산가리를 발랐다.”

“거참, 사랑 독하게도 하네. 누굴 얼마나 사랑했기에 청산가리씩이나 발랐다는데?” 

“처음엔 카바레에서 만난 남자랑 정분이 나서 그런 줄 알았는데 나중에 경찰 조사 끝나고 신문에 난 기사를 보니까, 자기는 남자 때문이 아니라 춤을 사랑해서 그랬다고 하네. 자신의 춤을 지키고 싶었다고.” 

“춤?”

“응. 춤.”


수레가 차창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춤이 좋아서 청산가리로 남편을 죽였다는 말이 이해가 안 되는 것도 같고 또 한편으론 이해가 되는 것도 같았다. 그리고 이내 수레는 자신의 이해 따위가 뭐가 중요하겠느냐는 생각도 했다. 세상은 복잡하고, 그 속엔 수없이 많은 인간군상이 살며, 게다가 한 인간의 마음속에 있는 욕망은 이 지구 위에 살고 있는 인간들 숫자보다 백만 배는 더 복잡하다. 그러니 누군가 춤을 사랑하건, 청산가리를 사랑하건, 쥐약을 사랑하건 그것은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닌 것이다. 황은 동키와 수레가 떠들어대는 시시껄렁한 잡담을 듣지도 않는 듯 운전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성격과 달리 황의 운전은 너무 조심스러워서 오히려 서툴러 보였고 차량의 속도도 느렸다. 아마 불안장애에 시달렸던 할아버지의 운전사 노릇을 하면서 생긴 버릇일지도 모른다. 뒤따라오던 삼발이 트럭이 황의 느린 속도에 장단을 못 맞추고 캐딜락 뒷범퍼에 바짝 붙었다 떨어졌다를 반복했다. 그때마다 사이드미러로 강구의 운전을 보고 있던 동키가 혀끝을 찼다.

“저거, 저거. 강구 새끼 운전하는 꼬라지 봐라. 슬슬 리듬을 타면서 사부작사부작 따라오면 될 건데 생각 없이 엑셀 죽 밟았다가 급하게 브레이크 밟았다가, 저렇게 운전해버릇하면 차량 금방 망가지는데. 으이구 강구 저건 언제나 인간 될지 모르겠다. 인생에 뭔가 절박함 같은 게 없다.” 

“운전이란 게 다 자기 스타일이 있는 거지. 뭘 인생관까지 들먹이냐.”

“아니다. 강구 점마는 진짜로 삶에 대한 진정성이 많이 부족하다. 얼마 전에 내가 종이박스 접는 법을 가르치는데 애가 어찌된 판인지 몇 번을 가르쳐도 박스를 못 접는다. 까놓고 말해서 종이박스 접는 게 뭐가 어렵노. 이렇게 딱, 딱, 딱, 딱. 네 번만 접으면 되는 건데. 이런 건 가르치면 원숭이도 한다. 그런데 강구 저 새끼는 박스 접을 때마다 헤매고 자빠져 있다. 이게 머리가 나빠서 그렇겠나. 절박한 맘으로 일에 매달리지 않아서 그런 거지. 강구 점마는 인생이 매사가 대충대충이다. 요즘 같은 세상에 올바른 직장 구하기가 을매나 어려운데 대충대충이고.”

동키가 손으로 박스 접는 흉내까지 내면서 강구 흉을 봤다. 그리고 조금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한번 갸웃거리고는 다시 딱, 딱, 딱, 딱, 딱 소리를 내며 박스 접는 흉내를 냈다.

“네 번이 아니라 다섯 번 접는 건가?”

아무도 듣지 않는데 동키는 혼자서 실없는 소리를 하고는 또 고개를 갸웃거렸다. 왼쪽으로 멀리 부산항 8부두가 보였다. 거대한 크레인이 미군 보급선에서 컨테이너들을 내리고 있었다. 예전에 미군 보급창은 초량 앞바다에 있었는데 언제부턴가 조금 후미진 북쪽 감만동 부두로 옮겨 갔다. 1945년부터 이 가난한 나라의 경제는 대부분 인천항이나 부산항으로 들어온 미군 원조 물자에 의해 움직였다. 원래부터 가난했고 그나마 전쟁으로 폐허가 된 이 나라에선 물건들이 귀했다. 전쟁으로 생산 시설이 초토화되었기 때문에 필요한 물건들을 만들 수도 없었고 다시 만들려고 해도 공장을 지을 돈도 기계를 굴릴 기술도 없었다. 그래서 해방 직후 물자들은 태평양의 저 부유한 나라에서 원조라는 이름으로 건너왔다. 나머지 물건들은 미군 PX에서 불법으로 빼내온 물건들과 일본 대마도와 홍콩에서 넘어온 밀수품으로 채워졌다. 저 항구에 내려진 물자들의 대부분이 부패하고 힘센 사람들에 의해 훔쳐졌고, 정치인, 사업가, 사채업자, 중간 도매상, 건달들이라는 필터를 거쳐 국제시장 같은 곳에 뿌려졌다. 


차가 영도 동쪽 동삼동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이제 곧 아치섬에 도착할 것이다. 하지만 황은 출발하기 전에 수레에게 긴히 전할 말이 있다고 한 얘기를 아직 꺼내지 않고 있었다. 수레는 이따금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어디선가 대기하고 있다가 달라붙는 다른 차량이 있는지 살폈다. 대기하고 있는 다른 차량은 보이지 않았다. 할 수 없이 수레가 먼저 입을 열었다.

“마루야마는 언제 찾았습니까.”

“찾은 지는 한 삼사 년 되었는데 처리하기가 좀 상그러웠습니다.”

“일본에 있어서요?”

“도련님도 안 계시고 해서요. 아버님 일인데 이런 일은 도련님이 직접 결행해야 할 일이니까요.”

직접, 결행, 이런 말들이 무겁게 느껴졌다. 아마도 이런 무거운 것들이 수레를 해외로 오래 떠돌게 했을 것이다. 사실 마루야마를 죽이는 것은 아무 의미도 없는 일이었다. 마루야마는 그저 돈을 받고 아버지를 일본 헌병대에 밀고한 세 명의 심부름꾼들 중 한 명일뿐이었다. 돈을 받았을 때 마루야마는 그게 뭔 일인지도 몰랐을 것이다. 그러니 복수도, 가문이 그토록 강조하는 필결산必決算이니 하는 것도 역시 의미 없는 일이다. 할머니는 위엄을 잃어버리면 가문은 그 자리에서 무너진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가문의 위엄은 이미 예전에 산산조각 났다. 게다가 마루야마 따위를 죽여서 무슨 위엄이 생긴단 말인가. 설령 약간의 자존심을 세운다 하더라도 큰 이득은 없다. 사람들은 남의 일에 별 관심이 없다.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지는 것은 타인의 불행이나 타인의 몰락 같은 것이지 타인의 자존심이 아니다. 


“마루야마 쪽 애들은 몇이나 됩니까?” 수레가 물었다.

“한 서른 명 남짓 된다고 들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어디 있습니까?” 

“다른 사람 누구 말입니까?” 황이 되물었다.

“그럼 우리만 가는 겁니까?”

“네.”

황이 너무 간단하게 말해버려서 수레는 자기도 모르게 헛, 하고 헛웃음을 쳤다. 그러니까 황의 말에 따르면 일본도, 회칼, 권총, 수류탄 같은 걸로 중무장한 일본 야쿠자 패거리 한중간으로 자기까지 포함해서 고작 다섯 명이 들어간다는 말이었다. 그것도 동키나 강구처럼 벌레 하나 못 죽일 쫄보들까지 포함해 다섯 명이었다. 그러니까 이 바보 쌍둥이인 동키와 강구를 데리고 야쿠자 중간 보스의 목을 따와야 한다는 말이었다.

“설마 이 병력을 데리고 마루야마와 한판 뜨겠다는 건 아니죠? 아무리 천하의 황씨 아저씨라도 그건 좀 오바가 아닌가 싶어서요.” 수레가 애써 태연한 척 물었다.

“동기랑 강구는 안 데리고 갈 겁니다.”

동키가 깜짝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마루야마랑 한판 뜬다는 건 또 무슨 얘긴데? 오늘 대마도 밀수품 새로 계약 트러 가는 것 아니었나?” 

하지만 황도 수레도 동키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분위기를 보니 동키는 지금 자기가 어딜 가는지도 모르는 판국이었다. 황이 룸미러로 다시 수레의 얼굴을 쳐다봤다. 

“시모노세키 애들이랑 미리 합을 맞췄습니다.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황이 우물쭈물 말했다. 

순간 수레의 얼굴로 열이 확 솟구쳐올랐다.

“야쿠자 새끼들이랑 무슨 합을 맞췄는데요? 돈 갖다 바쳐서? 그래서 마루야마 목 하나 따겠다고 또 얼마나 갖다 바쳤는데요?” 

수레가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황은 대답도 변명도 하지 않았다. 잠시 후 수레가 한결 누그러진 목소리로 다시 물었다.

“그러니까 누구누구랑 합을 맞췄냐구요?”

“대마도의 밧또, 구암의 손사장, 그리고 아치섬 문촌장입니다.”

“만리장 호텔 손사장?”

“네.”

“그깟 놈 하나 죽이는데 뭘 그리 일을 복잡하게 만듭니까?”

“그깟 놈 하나 죽이는 건 쉬운 일이나 깔끔하게 정리하는 건 어려운 일입니다. 야쿠자들 체면도 생각해야지요. 그래도 명색이 야쿠자 중간 간부인데 우리가 말도 없이 덜컥 날려버리면 뒤가 지저분해집니다. 도련님 목숨이 걸린 일인데 뒤끝이 지저분하면 안 되지요.”

“이 일에 구들 영감이랑 천달호도 걸려 있습니까?” 수레가 물었다.

황이 곤혹스러운 표정을 짓더니 침통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대마도는 천달호 안 통하고는 일을 진행하기 어렵습니다.”

수레가 입술을 꽉 깨물었다. 옆에서 눈치를 보고 있던 동키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건 아버지 말이 맞다. 행님이 이 나라를 오래 떠나 있어서 잘 모르는 모양인데 이제 대마도 밀수는 천달호가 다 관리한다. 아버지 말 한마디면 삽 하나 들고 금광으로 죽을 똥 살 똥 뛰어가던 옛날의 노가다 천달호 아니다. 이제 천달호는 부산의 대표 건달이다. 천달호가 떴다 하면 부산 바닥이 다 쩌렁쩌렁 한다니까. 중앙정보부 뒤치다꺼리를 해준다고 하면 말 다했지. 요즘 세상에 중앙정보부 부장이 자기 빽이면 무서울 게 뭐 있겠노.”

“시끄럽다. 말끝마다 그 망할 놈의 중앙정보부 타령은.” 수레가 구시렁거렸다.


차 안에 잠시 정적이 흘렀다. 차 지붕 위로 툭툭 떨어지는 빗소리가 갑자기 크게 들렸다. 싸움을 하기 전에 미리 합을 보는 것이 황의 스타일이었던가? 아니다. 아무것도 합을 보지 않는 것이 황의 스타일이었다. 유리하면 유리한 대로 불리하면 불리한 대로 황소처럼 우직하게 뚫고 들어가는 것이 황이라는 사내였다. 황이 금광으로 쳐들어온 마적떼 한중간으로 혼자 성큼성큼 걸어가서 주먹으로 말 목을 쳐 마적 두목을 말에서 떨어트리던 장면을 수레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황의 그 기세에 눌려 총을 든 마적들도 졸지에 말에서 떨어진 마적 두목도 어안이 벙벙해져서 멍하니 황만 쳐다봤다. 거기에 서 있던 황은 마치 거대한 화강암 바위 같았다. 그러니 여우들 백 마리가 모여서 머리를 맞대고 짜맞춘 것 같은 오늘의 이 합의는 참 이상한 일이라고 수레는 생각했다. 대마도 밧또, 구암 바다의 손사장, 아치섬 문촌장 게다가 구들 영감과 천달호까지 이 일에 걸려 있다. 여기 오른 이름 중에 공짜로 움직일 놈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마루야마 하나를 처리하겠다고 쑤셔넣은 돈이 대체 얼마일까. 아마 할머니 생각일 것이다. 이제 하나밖에 남지 않은 손자의 목숨이 걸린 일이니까. 자존심도 세우고 싶고 손자의 목숨도 지키고 싶으니까. 할머니가 집착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체면일까? 우리 가문을 건드리면 어떤 놈이건 끝까지 그 값을 받아내고야 만다는 알량한 자존심일까? 하지만 그것은 웃긴 소리다. 거덜날 대로 거덜난 이 가문에서 지금 필요한 것은 오직 돈뿐이다. 자존심이나 체면 따윈 다 배불렀던 시절에나 가졌던 망상이다. 그런 고상한 것들을 챙기다가는 절대로 구들이나 천달호 같은 승냥이들과 싸워 이길 수 없다. 


“미리 귀띔이라도 해주지 그랬어요?” 수레가 애써 부드럽게 물었다.

“돌아오신 지 얼마 되지 않아 머리도 복잡할 건데, 이런 일로 걱정 끼치게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이런 일이라.” 수레가 황의 말을 되씹었다. “그러니까 내가 이런 일을 하나하나 물어서 알아야 하는 사람입니까?” 

하지만 황은 이번에도 대답을 하지 않은 채 묵묵히 운전대 너머만 보고 있었다. 수레는 굳게 닫힌 황의 그 고집스러운 입을 잠시 쳐다봤다. 어릴 적 이따금 할아버지의 심부름으로 황과 함께 개성에 다녀오곤 했다. 마차 위에서, 자동차 안에서 또 열차 안에서 함경도 금광에서 개성까지 그 먼 길을 움직이는 동안 필요한 말 이외에는 자물쇠처럼 내내 닫혀 있던 황의 입을 수레는 기억했다. 어느 겨울 궁에서 금광으로 돌아온 구들 영감이 황을 형틀에 매달고, 엉덩이에 찬물을 끼얹고, 그 혹독한 곤장질을 시작했었다. 그때도 구들 영감은 황으로부터 단 한마디도 들을 수 없었다. 그 시린 겨울 시퍼렇게 얼어붙은 채로 단단히 잠겨 있던 황의 단단한 입을 수레는 기억했다. 


어쩌면 황에게는 아직도 수레가 활과 총을 가르치던 열 살 소년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황에게 말 타는 법을 배웠고, 사냥총 다루는 법을 배웠고, 활 쏘는 법을 배웠고, 덫을 놓는 법, 불 피우는 법, 안전한 굴을 못 찾았을 때 눈 속에서 잠을 자는 법, 짐승의 가죽을 벗기는 법, 그리고 양을 가장 고통 없이 죽이는 법에 대해서도 배웠다. 수레의 아버지는 수레가 아주 어렸을 때 일찌감치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다. 그리고 여자와 도박과 술에 빠져 금광으로 몇 번 들어오지도 않았다. 아버지가 돌아오는 것은 언제나 돈이 떨어졌을 때뿐이었다. 어린 날의 수레에게 아버지는 늘 없는 존재였다. 아버지의 자리에는 언제나 황이 있었다. 그러니 황은 수레를 주인으로 섬기지 못할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 황이 어떤 방식으로 수레를 대하건 황의 가슴 깊은 곳에 있는 수레는 목숨을 걸고 지켜야 했던 주인의 아들이 아니라 바로 자신의 아들일 것이다. 문득 황과 앞으로 사업을 도모하기는 어려울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인을 자기 자식처럼 아끼는 사람과는 큰 사업을 할 수 없다. 큰 사업이라는 것은 언제나 위험한 법이고, 아버지는 아들과 목숨이 걸린 위험한 사업을 벌이지 않는다. 지금 이 가문에 필요한 것은 돈뿐이다. 그리고 사업이라는 건 위험하지 않으면 돈이 되지 않는다. 우리가 감수할 수 있는 위험의 크기가 바로 사업의 크기다.


“할머니는 이제 늙으셨습니다. 좀 쉬게 해드려야지요. 이 승냥이들 틈에 계속 놔두실 겁니까.”

승냥이라는 말에 황의 어깨가 움찔했다.

“어르신은 아직 정정하십니다. 저도 곁에 있구요.”

“할아버지는 돌아가셨습니다. 아버지도 돌아가셨구요. 가문은 이제 제가 맡습니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남은 사람은 저밖에 없지 않습니까.”

“어르신께선 풀어놓은 물건들을 스스로 정리하시고 싶어합니다.”

“그러니까 그걸 늙은 할머니 혼자서 어떻게 정리하냐고요. 2.5톤이나 되는 금을……”

수레가 버럭 하고 소리를 지르다 자기가 한 말에 자기가 놀라 말을 멈췄다. 동키가 2.5톤의 금은 무엇이냐는 듯 수레 쪽으로 고개를 홱 돌렸다. 아니면 수레가 지른 버럭질에 뜻도 모르고 그저 놀란 것일 수도 있다. 황은 수레의 경솔함이 화가 나는 듯 어금니를 꼭 깨물었다. 화를 참아야 할 때, 혹은 자신의 분노를 들키지 않아야 할 때 황은 늘 어금니 네 개를 단단히 깨물고 맷돌처럼 비벼댔다. 마치 감정을 되새김질하고 갈아내어 씹어 삼키기라도 할 것처럼. 하지만 내면에 불을 가득 가지고 있는 이 늙은 전사의 분노는 그래서 감춰도 항상 티가 났다. 차 안으로 더없이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고 있었다. 황이 길가에 차를 세웠다. 뒤에 따라오던 삼발이가 영문도 모른 채 급정거를 했다. 황이 수레를 향해 몸을 틀었다.

“어르신께선 지난 삼십 년 동안 가문을 잘 지켜오셨습니다. 그분을 과소평가하지 마시고 그분께 배워야 합니다. 그 험난한 시절들을 운이 좋아서 넘어온 게 아닙니다.”

“넘어온 게 아니라 말라죽어가고 있는 중입니다. 보면 모르겠습니까? 우리는 다 잡아먹히고 지금 꼬랑지밖에 안 남았어요.”

“호랑이는 호랑이의 싸우는 법이 있습니다. 세가 밀린다고 호랑이가 승냥이가 될 순 없습니다.”

“아저씨. 우리는 호랑이가 아닙니다. 승냥이뿐만 아니라 개나 소나 닭한테까지 처맞고 다니는 호랑이 보셨습니까? 우리는, 예전에도 호랑이가 아니었고, 지금도, 호랑이가 아닙니다. 이게 바로 우리가 알아야 할 진실입니다. 그리고 이게 바로 우리가 온갖 승냥이들에게 계속 뜯어먹히고 있는 이유지요.” 

황이 숨을 한번 고르고 다시 깊은 숨을 내쉬었다.

“도련님, 가문을 이어받기 전에 말을 아끼는 법부터 배우셔야겠습니다. 도련님이 앉을 자리는 말 하나에 사람 목숨이 여럿 날아가는 자리니까요.”

황이 무겁게 말했다. 그 말은 한편으로 예전의 그 지루한 훈계 같기도 하고 또 한편으론 협박 같기도 했다. 하지만 수레는 이 무거운 공기가, 황의 그 훈계조의 말투가, 망할 놈의 호랑이 타령이 짜증이 났다. 

“어쨌거나 돈으로 처발라서 마루야마 일은 이미 합의가 다 끝났다는 말이네요?” 수레가 화제를 돌리며 빈정거리듯 물었다.

“네, 그럭저럭.”

“마루야마 배에 들어가기 전에 제가 더 알아야 할 게 있습니까?”

“도련님은 상황이 정리되면 나중에 들어오십시오. 혹시 생각지도 못한 일이 생길 수도 있으니까요.”

“저는 같이 들어갑니다. 그러니까 제가 그전에 알아야 할 것은?”

황이 한동안 대답을 하지 않았다. 이번엔 대답을 꼭 듣겠다는 듯 수레가 황의 얼굴을 집요하게 쳐다봤다.

“없습니다.”

황이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그리고 기어를 넣고 차를 출발시켰다.


*


산마루를 돌자, 아치섬이 드러났다. 새벽 네시 반의 아치섬 남동쪽 바다는 마치 바다 위에 펼쳐진 야시장을 방불케 했다. 수십 척의 밀수선들이 아치섬 앞 바다에 떠 있고 작은 전마선傳馬船들이 밀수선과 아치섬 사이를 이동하며 해상에서 받은 물건을 섬으로 나르고 있었다. 아치섬 해변에 대기하고 있던 트럭들이 되는 대로 물건들을 싣고 어디론가 쏜살같이 달려가고 있었다. 아무리 섬의 뒤편이라지만 세관과 해양 경찰서가 직선거리로 불과 오륙 킬로미터 밖에 되지 않는 이 부산 앞바다에서 이렇게 대놓고 버젓이 밀수를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놀라움을 넘어 뭔가 비현실적인 느낌이 들었다. 불과 오 년 전만 하더라도 5톤이나 10톤짜리 소형 배로 어둠을 틈타 해양경찰 감시선을 피해 들어오거나 해양경찰을 만나면 밀수품에 작은 부의를 끼우고 허겁지겁 바다에 빠트리거나 하는 수준이었는데 이제는 아예 그런 요식 행위조차 하지 않는 것 같았다.


차는 해안도로를 타고 언덕을 빠르게 내려와 비포장도로로 들어섰다. 예전에는 섬이었는데 영도와 아치섬 사이에 방파제가 놓여 있었다. 영도는 부산과 다리로 연결되었고 이제 아치섬도 다리로 영도와 연결된 셈이었다. 섬 입구에 ‘생존권, 어업권 보장’ ‘죽어도 고향을 떠날 수 없다!’ 같은 과격한 현수막이 여기저기 붙어 있는 걸로 보아 아직도 섬에 사는 마을 사람들과 토지개발 협상이 다 끝나지 않은 것 같았다. 방파제 도로로 밀수품을 실은 트럭들이 아치섬에서 영도 쪽으로 부지런히 빠져나오고 있었다. 방파제 입구에는 밀수 건달 대여섯 명이 차량 차단기로 입구를 막고 들어가는 차량과 나오는 차량을 통제하고 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군인이나 경찰이 정식 검문소를 설치한 것처럼 근엄하고 자연스러워 보였다.


검문소 입구에 차를 대자 사내 두 명이 차로 걸어왔다. 한 명은 붉은색 경광봉을 들고 있었고 다른 사내는 플래시를 들고 있었다. 경광봉을 든 사내가 다가오더니 유리창에 노크를 했고 다른 사내가 황의 얼굴에 플래시를 비췄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밧또拔刀랑 일이 있어서 왔다. 온천장에서 왔다고 하면 알 거다.” 황이 말했다.

“뒤에 온 트럭도 같은 일행입니까?”

“그렇다.”

경광봉을 든 사내가 재빨리 입구에 세워놓은 간이초소로 달려가서 초소 안을 지키고 있는 사내에게 말을 전했다. 간이초소를 지키고 있는 사내가 어딘가로 전화를 돌렸다. 사내는 짧은 헤어스타일에 누런 작업복 같은 외투를 입고 있었는데 외투 안쪽으로 언뜻 보이는 옷은 경찰 제복 같았다. 이 분쯤 지나자, 짧은 머리 사내가 전화기를 내려놓았다. 그러자 경광봉을 든 사내가 이제 들어가도 된다는 듯 플래시를 든 사내를 향해 경광봉을 크게 휘둘렀다. 초소 앞에 있는 차단기가 올라가자 황이 차를 출발시켰다. 황의 차와 뒤따라오던 동키의 삼발이가 차단기를 통과할 때 초소 안의 사내가 이번엔 무전기를 잡고 뭐라고 떠들어댔다. 아마 방파제 끝에 있는 초소에다가 뭐라고 연락을 하는 모양이었다.

방파제를 백여 미터쯤 달리고 나서 수레가 입을 열었다.

“쟤네들 경찰이가?”

“경찰이랑 천달호 애들이랑 섞인 거지.”

“명색이 경찰이 건달들 밀수하라고 길이나 막아주고 있고, 나라꼴이 개판이네.”

“행님은 별 걱정을 다 한다. 나라꼴이 정상이면 우리 같은 사람이 우예 밥을 묵고 살겠노?”

황은 아무 말 없이 전방만 보고 있었다. 캐딜락은 새로 만든 방파제 도로를 달렸다. 비포장이어서 먼지가 많이 날렸다. 방파제 도로 반대편에서 밀수품을 잔뜩 실은 트럭들이 속도를 내어 아치섬을 빠져나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