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회

아치섬

황은 밀수선들이 모여 있는 해변으로 가지 않고 마을회관 앞에 차를 댔다. 길을 잘 아는 걸로 보아 예전에도 몇 번 이곳에 온 적이 있는 것 같았다. 황이 차를 세우자 후드잠바를 입은 키 작은 사내가 재빨리 다가왔다. 황이 문을 열지 않고 가만히 사내를 쳐다봤다. 사내는 후드잠바를 머리까지 덮어쓰고 있었는데 마음이 급한 듯 손등으로 캐딜락 운전석의 창문을 쾅쾅쾅 두드렸다. 창문을 두드리는 사내의 손가락이 세 개나 없었다. 후드 안에 감춰진 얼굴을 보자 코가 어그러진 문둥이였다. 문둥이 사내는 빗속에 자기를 오래 세워둔 것에 화가 난 것 같았다. 문둥이의 후드잠바가 흠뻑 젖어 있었다. 황이 수레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여기서 대마도 밧또랑 아치섬 문촌장이랑 이야기 좀 할 겁니다. 그리고 저놈은 전염은 안 되는 병이니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수레가 고개를 끄덕였다. 황이 문을 열고 차에서 내렸다. 수레와 동키도 문을 열고 차에서 내렸다. 이제 비는 거의 그친 것 같았다. 문둥이 사내가 뿔이 잔뜩 난 얼굴로 수레 일행을 지켜보더니 가타부타 말도 없이 혼자서 어딘가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그러다 사람들이 자기를 전혀 따라오지 않자 걸음을 멈추고 허리춤에 손을 올린 채 짜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거참 답답하네. 다들 아까부터 기다리고 있단 말이에요. 빨리 갑시다.” 문둥이가 투덜거렸다. 

참을성이 원숭이만큼도 없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황은 문둥이의 말에 대꾸도 하지 않은 채 강구가 주차하고 있는 삼발이 트럭을 쳐다보고 있었다. 트럭에서 내린 열이 황의 시선을 느꼈는지 재빠른 걸음으로 달려왔다. 강구는 그 와중에도 어기적어기적 걸어오다가 바짓단에 묻은 진흙을 털어내며 구시렁대고 있었다. 문둥이가 수레 일행을 둘러봤다. 

“이 사람들 다 들어가는 거요? 동굴이 좁은데.” 문둥이가 물었다.

“강구랑 나는 여기서 처리할 일이 좀 있어요. 아주 중요한 일이에요.” 동키가 뭔가 변명처럼 어물쩍 말했다. 

동키는 혹시라도 자기들을 칼부림이 일어날 무시무시한 마루야마 배에 데리고 갈까봐 잔뜩 긴장한 얼굴이었다. 별 걱정을 다한다는 듯 수레가 피식 웃었다. 황이 상황을 정리했다.

“동기와 강구는 여기 남아서 일봐라.” 

동키가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듯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강구는 그 와중에도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이고 있었다. 황이 수레 곁으로 한 걸음 다가서더니 문둥이 사내를 쳐다봤다. 

“동굴엔 우리 둘만 들어갑니다. 저 친구는 앞에서 대기할 거고.” 

문둥이 사내가 열을 힐끔 쳐다보더니 멀뚱멀뚱한 표정을 지었다. 왠지 누가 들어가고 누가 남는다는 건지 재빨리 말귀를 못 알아들은 느낌이었다. 저런 사람에게 심부름을 시키자면 아치섬 문촌장 인생도 좀 갑갑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후 누가 들어가든 자기가 뭔 상관이냐는 듯 문둥이 사내가 몸을 홱 돌리더니 또다시 이렇다 저렇다 말도 없이 혼자서 성큼성큼 아치섬 마을 쪽으로 걸어갔다. 


마을은 이미 철거가 시작된 건지 아님 태풍에 부서진 것을 몇 년 동안 방치해서 그런 것인지 몇몇 집들은 지붕이 다 내려앉은 채 벽과 기둥만 남아 있었다. 마을 중간에 있는 우물도 사용을 하지 않은 지 오래된 것 같았다. 문둥이 사내는 마을을 가로질러 언덕까지 걸어갔다. 그리고 큰 바위 옆에 바짝 붙어 있는 집으로 쑥 들어갔다. 

어부가 사는 전형적인 어촌 가옥이었다. 떠나고 돌아오는 배들을 볼 수 있도록 남쪽 바다를 향해 집이 서 있고, 돌을 쌓아 만든 낮은 담이 있고, 그물을 손질하거나 생선을 말리기 위한 넓은 마당이 있고, 작은 텃밭과 장독대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사람이 살지 않는 것 같았다. 마당 한쪽에는 검정 우비를 입은 사내들 셋이 불도 켜지 않은 채 망이라도 보듯 서성거리고 있었다. 사내들은 낯선 사람들이 한꺼번에 들어서자 잠시 멈칫했다가 문둥이 사내를 보고 안심하는 눈치였다. 검정 우비 사내들은 자세히 볼 것도 없이 경찰들이었다. 문둥이 사내는 경찰들이 뭘 하건 신경도 쓰지 않은 채 마당을 지나 툇마루 앞에 섰다. 그리고 수레 일행을 쳐다봤다. 황이 무슨 뜻인지 알겠다는 듯 열을 향해 얼굴을 돌렸다.


“열은 여기서 기다리라.”


열이 고개를 끄덕였다. 문둥이 사내가 신발도 벗지 않고 방안으로 들어갔다. 황과 수레도 뒤따라 들어갔다. 방안에는 장롱도 있고 가재도구도 있었지만 한눈에 보기에도 생활을 하지 않은 지 오래된 집이었다. 방에서 숯불에 고기라도 구워먹었는지 장판 바닥에 불에 그슬린 자국이 있었다. 문둥이 사내가 장롱을 밀치자 뒤로 벽장이 나왔다. 벽장문을 여니 그 안에 지름이 일 미터쯤 되는 동굴 입구가 있었다. 동굴 안에서 바람이 불어왔다. 하지만 바람의 온도는 바깥 기온보다 따뜻하게 느껴졌다. 문둥이 사내가 플래시를 켜고 이렇다 저렇다 말도 없이 다람쥐처럼 재빨리 동굴 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쏜살같이 동굴 통로를 따라 아래로 뛰어내려갔다. 하지만 키가 큰 황은 그 좁은 입구로 들어가느라 몸을 꽤나 웅크려야 했다. 황이 먼저 동굴로 들어가고 수레가 황의 뒤를 따랐다. 앉은걸음으로 엉거주춤 걸어내려가는 황의 뒷모습이 몹시 부자연스러워 보였다. 동굴 벽은 바위를 타고 내려온 물로 축축했다. 일부 벽은 망치와 정으로 다듬은 곳도 있었지만 길의 대부분은 천연동굴 같았다. 동굴을 따라 칠십여 미터쯤 내려가자 저 아래서부터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올라왔다. 문둥이 사내가 입구에서 플래시를 켠 채 황과 수레를 기다리고 있었다. 좁은 통로를 빠져나가자 동굴 속에 자동차 넉 대 정도는 주차할 수 있는 넓은 공간이 나왔다. 중간에 모닥불이 피워져 있었고 모닥불 주위에는 네 명의 사내가 술판을 벌이고 있었다. 상반신 전체에 이레즈미 문신을 한 사내가 황과 수레를 보고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풀어헤친 셔츠의 단추를 잠그며 다가왔다. 문신을 한 사내가 대마도의 새로운 총책 밧또인 것 같았다.


“아이고, 이게 누구신가요. 황두목 아니십니까?”

“오랜만이오.” 황이 말했다.

밧또가 수레를 보고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다시 황을 쳐다봤다.

“아! 온천장 도련님이시네. 예전에 지나가다 한번 뵌 적 있는 것 같은데.” 

수레는 머릿속으로 예전에 지나가다 이 사람을 본 적이 있는지 떠올렸다. 이 야쿠자 새끼를 만난 적이 있던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네, 예전에 뵀었지요.” 수레가 덤덤하게 말했다.

“밧또라고 합니다.”

밧또가 악수를 청했다. 

“수레입니다.”


수레가 밧또의 손을 잡았다. 아직 손가락이 다 붙어 있었다. 야쿠자치고는 상당히 고운 손이라고 수레는 생각했다. 하긴 도무지 땀 흘릴 일을 하지 않는 건달의 손이 거칠어야 할 이유는 사실 없었다. 밧또는 재일교포라고 하기에도 일본인이라고 하기에도 그렇다고 한국인이라고 하기에도 애매한 사람이었다. 소문에 따르면 밧또의 어머니는 한국 사람이었고 아버지는 일본인이었다. 밧또는 마산에서 일본 정종 사업을 하던 아버지를 따라 시모노세키와 마산을 오가며 살았다. 그동안엔 한국 국적이었는데 일본 국적으로 바뀐 것은 최근 일이었다. 밧또가 수레의 등을 지그시 밀어서 모닥불 쪽으로 안내했다. 모닥불 여기저기에 안주와 술들이 널려 있었다. 일본 정종이 있었고, 소주도 있고, 어디서 구했는지 조니워커 같은 양주도 있었다. 안주로는 아치섬 앞바다에서 막 잡아온 생선들로 뜬 회와 구운 조개들, 삶은 문어가 있었고 된장과 와사비 간장, 풋고추, 생마늘 같은 것도 있었다. 어쩐지 일본식이라고 하기에도 한국식이라고 하기에도 애매한 술판이었다. 


“온천장에서 오신 손님들입니다. 황두목은 다들 잘 아실 테고, 이분은 그 머시냐? 온천장 도련님? 하하 아니, 수레 상입니다.” 밧또가 수레를 소개했다. 그리고 모닥불 주위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자기 왼쪽부터 소개했다. 

“이 양반은 이 섬 터줏대감인 아치섬 문촌장, 저분은 여기 아치섬에서 철통같은 보안으로 밀수꾼을 단속하시는 초소장님, 그리고 만리장 호텔 손사장님은 서로 잘 아실 테고.” 


손사장이 잘 왔다는 듯 수레를 향해 팔을 흔들며 빙긋 웃었다. 수레도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만리장 호텔의 손사장은 식민지 시절 때부터 금의 가문과 인연이 있던 사람이었다. 그리고 수레는 손사장과 한국을 떠나기 전에 동업 형식으로 몇 번 사업을 같이 한 적이 있었다. 사람들은 손사장 머릿속에 너구리 백 마리가 들었을 거라고 수군거렸다. 하지만 사람이 부드럽고 합리적이며 이윤을 분배할 때 억지를 부리거나 턱없는 욕심을 내지 않아서 같이 일하기 편한 사람이었다. 물론 일을 하기 편하다고 해서 손사장의 머릿속에 너구리 백 마리가 없다는 뜻은 아니었다. 아치섬 문촌장은 이 집의 주인이면서 아치섬의 주인이기도 했다. 원래 문둥이 골을 지키던 사람이었는데 언제부턴가 아치섬에 들어와서 정착을 하더니 백여 가구 쯤 되는 아치섬을 장악했다. 그리고 이 한적한 어촌 마을을 밀수의 소굴로 만들었다. 대마도에서 영도로 들어오는 거의 모든 배는 문촌장이 관리하고 있었다. 말하자면 대마도와 영도에서 벌어지는 밀수 사이클에서 해상 운송을 담당하는 사람이었다. 뿐만 아니라 문촌장은 대평동 수리 조선소의 기술자들, 원양어선 기관장들, 그리고 참치와 상어 선장들하고도 두루 인맥이 넓었다. 한때 단속반들이 쫒아올 수도 없었던 밀수배들에 일일이 고속 엔진을 장착하고 어선의 어창을 밀수용으로 개조, 수리하는 것도 문촌장 패거리들 담당이었다. 그리고 중간에 앉은 초소장은 정말로 국가에서 부산 앞바다의 밀수를 철저히 단속하라고 아치섬 꼭대기에 세운 밀수 단속 전진기지 초소의 책임자였다. 뭐랄까 밀수를 단속하라고 국민 세금으로 만든 감시 기지와 국가의 감시 장비를 동원하여 밀수꾼들의 망을 봐주고 있는 사람이라고나 할까. 그는 마치 지금은 근무시간이고 자기는 엄연히 근무중이라는 듯 버젓이 해양경찰 제복을 입고 있었다. 얼굴은 보니 이미 술이 얼큰하게 취해 있는 상태였다. 


“서 있지 마시고 앉으시오.”

밧또가 자리를 권했다. 황과 수레가 밧또와 문촌장 사이에 앉았다. 밧또가 모닥불 앞에 있는 정종병과 술잔을 들어 황에게 권했다. 황이 빈 잔을 잠시 쳐다본 다음 정중하게 손을 들어 거절을 했다.

“황두목이 말술이라고 소문이 자자하던데 어찌 이리 빼십니까?” 밧또가 말했다.

“겁도 없이, 지금 감히 누구한테 술 가지고 대거리고?” 아치섬 문촌장이 밧또를 향해 웃으며 핀잔을 줬다. “황두목은 허리띠 안 풀면 술 안 마시는 사람이다. 그리고 허리띠 한번 풀면 항아리째 마시는 양반이다. 니 같은 놈은 황두목 옆에서 장단 마치며 술 마시다가 혼자 황천 가는 수가 있다.”

“앗 그렇스모니까? 스미마셍.” 

밧또가 문촌장의 농을 받으며 너스레를 떨었다. 문촌장이 웃으며 황을 쳐다봤다. 그러고는 자기 앞에 있는 술병과 잔을 들더니 황에게 잔을 건넸다.

“뭐 마시라고는 안 할 테니까 잔에 술만 받아놓으소. 우린 술자리에서 앞 사람 잔이 비면 어쩐지 허전한 사이 같아서.”

이번엔 황이 거절을 하지 않고 잔을 받았다. 그리고 문촌장은 수레에게도 잔을 건넸다. 수레가 얼떨결에 문촌장이 따라주는 술을 받았다.

“나 아치섬 문윤석이요. 워낙 유명하신 분이라 소문은 많이 들었는데 직접 얼굴 보는 것은 오늘 처음입니다?” 

문촌장의 표정은 은근히 수레를 비웃는 것처럼 보였고 또 한편으로는 경멸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제가 유명인사인 줄 몰랐는데, 무슨 소문을 그렇게나 많이 들었습니까?” 

문촌장이 별걸 다 물어본다는 듯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머쓱한 듯 다른 사람들을 한번 쳐다봤다.

“뭐,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난 거, 그거 있잖아요. 전국적으로 유명한 사건. 아직 이 바닥에서 내세울 만한 업적이라고는 꼴랑 그거 하나밖에 없는 걸로 아는데.”

말투가 꽤나 기분 나쁜 사람이었다. 이건 뭐 예의도 없고, 중간 잽잽 넣어보다가 라이트가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초면에 그냥 자기 이마로 상대방을 들이받는 타입의 사람이었다.

“천달호한테 뒷방맹이 맞아서 배 날리고, 돈 날리고, 밀수품도 다 날리고 월남으로 끌려간 사건요?” 수레가 솔직하게 말했다.

수레의 대답에 문촌장이 얼굴을 찡그렸다.

“에이, 그 큰 사건을 그렇게 간단시리 말해버리면 안 되는 거지. 사건은 같이 터뜨려놓고, 우리 한도식 형님은 사형을 당하고, 그 일로 남해안 밀수 조직들은 쑥대밭이 되었는데, 어찌 온천장 도련님은 감옥도 아니 가고 고작 월남이요? 집안이 좋아서? 아님 중정 새끼들이랑 똥구멍으로 궁합을 잘 맞춰서?”


수레가 문촌장의 얼굴을 쏘아봤다. 무례하기 이를 데 없는 인간이었다. 평생 남의 기분 같은 건 신경도 안 쓰고 살아온 사람 같았다. 황은 고개를 아래로 떨어뜨린 채 술잔만 쳐다보고 있었다. 초소장과 밧또는 이 시비를 막을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들은 오히려 이 대화가 흥미진진한 듯 수레의 답변을 기다리고 있었다. 문촌장은 예전부터 그 일에 맺힌 게 많았던 듯 이번 기회에 작정하고 따지고 싶은 것 같았다. 아니라면 이 바닥에 일절 어울려 보이지 않는 부잣집 도련님이 자기 영역에서 어쭙잖게 어슬렁거리고 있는 것이 몹시 아니꼬운 것 같기도 했다. 문촌장이 삐딱한 시선으로 수레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수레가 잔을 들고 술을 반쯤 비웠다. 그리고 바닥에 잔을 내려놓고 문촌장을 향해 빙긋 웃었다.


“말씀하신 대로 저야 뭐 집안도 좋고, 학벌도 좋고, 또 연설도 잘하고 그러니까.”

“연설?” 문촌장이 한쪽 눈을 치켜올리며 되물었다.

“그때 남산에 끌려가서 한 일주일 얻어터지고 나니까 중정 과장이란 놈이 와서 그럽디다. 각하가 정하신 오대 사회악이라고 들어봤냐? 깡패, 밀수, 마약, 도벌, 탈세. 그중에서도 각하께서 바퀴벌레보다 더 끔찍하게 싫어하시는 게 바로 너 같은 밀수꾼이다. 마약쟁이들은 외국에다 물건 팔아서 외화라도 벌어오는데, 너희 밀수꾼들은 국민들이 조국 근대화를 위해 피땀 흘려 벌어놓은 외화를 몰래 빼돌려 사치품이나 들여오는 파렴치한 놈들 아니냐. 그러니 너는 바퀴벌레보다 못한 놈이다.” 

“우리가 제일로 나쁜 놈들이었어? 솔직히 나는 마약쟁이들보다는 우리가 쪼매라도 괜찮은 놈들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밧또가 뜬금없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저 양반 하는 말 못 들었나? 마약쟁이야 느그들에 비하면 완전 애국자들이지, 외국에서 달러를 벌어오는데.” 초소장이 대신 대답했다.

문촌장이 중간에서 말을 자르지 말라는 듯 밧또랑 초소장을 향해 팔을 휘저었다.

“그래서?” 

“그래서는 뭐, 과장 자기가 흥분해서 저를 몇 대 더 때리더니 이제 반성이 좀 되느냐, 묻기에 반성이 많이 된다고 내가 대답했죠. 그러니까 일주일 만에 처음으로 담배 한 대 주더만요. 담배 한 대 빨고 있으니까 옆에서 귀한 집안 자제께서 뭐가 아쉬워서 밀수 짓거리냐. 주위에서 걱정하시는 분들이 많던데 인생을 계속 이따위로 살 거냐, 훈계 짓거리 좀 하더니, 갑자기 톤을 싹 바꾸면서 높은 자리에 있는 분들이 당신 풀어주라고 하도 지랄들을 해서 자기도 귀찮다. 그렇다고 마냥 풀어줄 수도 없는 노릇 아니냐, 그러니 감옥에 가는 대신 월남전에 지원하면서 연설을 한판 하는 게 어떻겠느냐, 뭐 이렇게 묻더라고요.”

“수레 도령이 뭐라고 중앙정보부씩이나 되는 곳에서 연설을 부탁하요?”

“저 이래봬도 서울대 출신입니다. 서울대 경제학과 일년 중퇴. 우리 문촌장님이랑 같은 클라스 아닙니다.” 

수레가 문촌장을 향해 빙긋 웃었다. 문촌장은 별로 당황하는 낯빛이 없었다. 그저 서울대랑 월남이 대체 무슨 상관이냐 하는 표정이었다.

“그러니까 서울대 학생이 조국을 위해서 학업까지 미뤄가며 월남전 자원입대를 하는 연설을 하면 각하가 보시기에 얼마나 뿌듯하겠느냐, 뭐 이런 뜻이요?” 초소장이 끼어들며 말했다.

“역시 초소장님이 나랏일을 해봐서 그런지 상황 파악이 빠르시네요.” 수레가 말했다.

“그래서 시킨다고 그 연설을 했소? 자존심도 없이?” 문촌장이 말했다.

“그럼 한 사장이랑 쌍끌이로 같이 사형이나 당할까요? 등뒤에서 칼 찌른 놈은 띵까띵까 노가 났는데.” 

수레가 문촌장을 노려봤다. 문촌장이 그건 자기도 아닌 것 같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나는 자존심, 뭐 이런 거, 원래부터 관심도 없는 놈입니다. 그냥 안 패고 물어봤어도 바로 연설해줬을 건데, 뭣 하러 일주일이나 패고 물어본대.” 

“그럼 수레 도령이 판을 까발린 게 아니라고?”

“까발리긴, 뭘 아는 게 있어야 까발리죠. 나는 화주인데, 물건 받는 사람이 밀수조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뭘 압니까? 저야 뭐 하나라도 아는 게 있었으면 다 불었겠지만.”

“하긴 듣고보니 그건 또 그러네. 그때 특별단속반 놈들은 손금 보듯 정확하게 치고 들어왔는데 화주가 알아봐야 조직에 대해 뭘 알겠어.” 만리장 손사장이 수레 편이라도 들어주듯 중얼거렸다. 

문촌장이 손사장의 말을 듣더니 그 말이 일리가 있다는 듯 고개를 조금 끄떡거렸다.

“그럼 한도식 형님 사형으로 몰아갈 때 그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네? 우리도 일하면서 나름 경찰이나 공무원들 쪽으로는 라인이 여러 개 있었는데 중정에서 치고 들어오니까 다 먹통이더라니깐. 그래서 한도식이 형님 사형당할 때 우리가 밖에서 손도 못 써봤잖아. 아이고 우리 불쌍한 한도식 형님.”

“나야 모르지요. 일주일 얻어터지고, 연설하고 다시 중정 끌려가서 몇 대 더 얻어터지고, 깨어나보니 해병대 훈련소더니라깐요.”

“해달라는 연설 다 해줬는데 맞긴 또 왜 맞았대?” 초소장이 물었다. 

“뭐 연설에, 시발, 성의가 없다나 영혼이 없다나. 우리가 아무리 자존심이 없어도 또 영혼이 담긴 연설까진 무리지요.”

“무리데쓰, 암 영혼까진 무리데쓰.” 밧또가 옆에서 장단을 맞췄다.

“푸하하하. 나는 울 도련님 맘에 든다. 보기보다 사람이 아주 담백하고 솔직하시네.”


문촌장이 갑자기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더니 자기가 들고 있는 잔을 한 번에 다 비우고 다시 잔을 가득 채운 후 수레에게 내밀었다. 문촌장이 내민 잔은 사발처럼 컸고 그 속에 담긴 소주는 독해 보였다. 황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수레를 쳐다보고 있었다. 하지만 문촌장이 건네는 화해의 술잔이 은근히 기분이 좋았다. 누군가 문을 활짝 열어 자신을 받아주는 느낌이 수레는 늘 고맙고 반가웠다. 사람이 담백하다는 말도, 솔직하다는 말도 난생처음 들어보는 말이었다. 뜬금없이 ‘솔직’, ‘담백’ 이런 단어들을 자신의 영혼에 새기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수레가 잔을 받아 단번에 술잔을 비우고 다시 술을 가득 따라 문촌장에게 건넸다. 문촌장이 수레가 자신의 잔을 깨끗하게 비운 게 퍽 마음에 드는지 속도 없이 환하게 웃었다. 그리고 문촌장은 수레에게 받은 잔에 입술을 대고 반쯤 더 마시고는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럼 우리 한도식이 형님 꼰질러서 사형시키고, 조직 쑥대밭 만든 배신자 새끼는 누구지? 역시 천달혼가?” 문촌장이 말했다.

“내가 전에도 말 안 했나. 중정 잡고 내려왔으면 뻔하지.” 만리장 호텔 손사장이 말했다.

“수레 도령 생각에도 천달호지?” 문촌장이 다짐이라도 받겠다는 듯 물었다.

“천달호는 광대니까 핵심 중에 핵심은 아니지요. 천달호 라인 타고 죽 올라가면 아마 그 위에 대가리들 몇 놈 더 있을 겁니다.”

“아, 천달호 그 새끼, 생각할수록 진정 쓰레기네. 나는 다른 놈한테 맞은 뒷박은 금방 잊어버리는 편인데 이상하게 천달호한테 맞은 뒷박은 기분이 더러워서 그런가 딱지가 아물지를 않네. 타박상이 화병으로 전이된다니까.” 문촌장이 말했다.

“뭘 그것 가지고 뒷박이니 화병이니 궁시렁거리기는. 우리는 사업이 아주 통짜로 망하고 집안도 거덜났다. 배 한두 척 날린 것 가지고 쩨쩨하게시리.” 만리장 손사장이 말했다.

“그렇지, 또 억울한 것으로 하면 우리 손 형님을 따라올 사람이 없지. 그러고 보니까 오늘 천달호 개새끼한테 존나게 털린 사람들만 다 모였네?” 문촌장이 맞장구를 쳤다.

“천달호한테 털린 것으로 하자면 중앙동 주사장도 만만치 않지. 홍콩에서 부산으로 들어오는 배들 중정에 다 뺏겼지, 홍콩 밀수 루트 다 잠겼지, 또 그때 검찰에 끌려가서 을매나 맞았는지 아직도 다리를 전다 아이가.” 만리장 손사장이 말했다.

“아, 그럼 주사장이 다리 저는 게 그때 맞아서 그래 된 겁니까? 나는 원래부터 약간 절름발이인 줄 알았는데.” 초소장이 물었다.

“아닙니다. 주사장 그 양반이 생긴 건 해파리처럼 속없이 비실비실해 보여도 중고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육상선수였습니다. 축구도 잘하고. 예전에는 허벅지 굵었어요.” 문촌장이 말했다. 

“어딜 을매나 맞았길래 그래 됐습니까? 뼈가 왕창 부러졌나보네요?” 초소장이 물었다.

“어디가 딱히 부러진 게 아니라 몽둥이로 몸뚱이를 전반적으로 두들겨 맞아서 그래 된 거라 카데. 그래서 병원에서도 딱히 방법이 없어 고치지도 못한다고 하더라.” 만리장 손사장이 말했다. 

“저런 저런.” 초소장이 혀끝을 찼다.

“주사장님이 화교 아닙니까? 제가 한국인으로도 살아보고 일본인으로도 살아봤지만, 솔직히 어느 나라건 외국인으로 사는 게 만만치가 않습니다. 똑같은 일로 잡혀가도 화교라서 아마 더 모질게 당했을 겁니다. 일본에 있는 우리 재일한국인들도 똑같은 신세지요. 이 세상은 홈그라운드에서 토종개로 사는 게 최곱니다. 남의 나라 가면 바로 잡종개 되는 거지요.” 

밧또가 마치 푸념처럼 말하고는 쓸쓸한 표정으로 술잔을 비웠다. 그러자 갑자기 문촌장이 밧또를 향해 손가락을 들어올렸다.

“지가 좋아서 조국을 등지고 일본 국적으로 갈아탔으면서 뭔 개소리고. 그리고 말 나온 김에 너 솔직히 말해봐라. 우리 한도식 형님이 사형당할 때 니가 천달호하고 붙어먹은 거지?”

문촌장의 느닷없는 말에 밧또가 화들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이내 얼굴을 찌푸리며 투덜거렸다.

“아, 내 진짜, 문촌장 또 이란다. 내가 아니라고 몇 번을 말하노. 이 밧또, 그런 스타일의 인간성이 아니라니까.” 

그러더니 밧또가 사람들 앞에 난데없이 오른손과 왼손을 좍 펼쳤다.

“이 열손가락을 봐라. 어디 하나 잘린 게 있나? 이게 무슨 뜻이겠노? 조직에 충성, 영원한 의리, 끊임없는 복종. 이익을 좇지 않고 의를 좇는다는 야쿠자의 협객 정신. 내가 지금까지 이런 진심 하나로 이 자리에 선 사람이다.”

“지이랄, 협객 정신은, 니기미 뽕이다. 여기 잘 둘러봐라. 이 자리 계신 분들 중에서 시방 천달호 때문에 띵까띵까 하는 놈은 니 하나밖에 없다.” 

문촌장은 사람들을 죽 둘러보다가 문득 초소장을 보더니 과장되게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니구나. 천달호 때문에 주름치마 같은 인생 한방에 죽 펴진 사람 여기 한 분 더 있었네.” 

“인생이 한방에 펴지긴 뭘 펴져, 일부 불편했던 살림이 조금이나 개선된 거지.” 초소장이 다소 겸연쩍은 표정으로 말했다.

“일부 개선? 집 생겼지, 외제차 생겼지. 가만히 앉아 있어도 지나가는 배마다 봉투 들이밀지. 나라에서 월급 받고 우리한테 봉투 받고 여기 초소장님 같은 상팔자 있으면 나와보라고 하소.”

“공무로 고생하시다가 이제 곧 새로운 발령지로 떠나가실 분한데 너무 그러지 마라.” 만리장 손사장이 말했다. 

“역시 민관의 화합이라는 고위 공무원의 고충을 이해하시는 분은 손사장님뿐입니다. 우리 문촌장은 학식이 짧아서 그런 복잡한 세상 원리를 몰라.”

“내가 학식이 왜 짧은데? 초등학교 수석으로 졸업해서 중학교를 일 년 하고도 삼 개월을 다녔는데.” 문촌장이 투덜거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초소장이 잔을 들더니 손사장에게 내밀었다. 손사장이 초소장의 잔에 자신의 잔을 가볍게 부딪쳤다. 초소장은 이제 떠난다고 생각하니 뭔 감상에 빠지는지 천천히 자신의 잔을 비웠다.


“예전엔 이 섬이 말을 키우는 방목장이었다. 말이 하도 빨라 자기 그림자도 못 따라온다고 절영도라고 한 거지. 그런데 조선시대 첨사가 한양에서 여기 영도로 발령을 받으면 두 번을 울었다고 했다. 처음 임지로 들어설 때 부산 나루터에 딱 서서 보면 영도라는 곳이 나무만 울창하니 숲에 길 하나 안 보이고, 사람도 없는 언덕배기에는 말들만 자기들끼리 뛰어다니고, 게다가 첨사영이라고 달랑 하나 있는 동삼동 중리에 들어서면 파도 소리와 바위에 부딪치는 바람 소리뿐이어서, 괴나리봇짐을 툭 내려놓으면 내가 죄도 없이 어찌 이런 무인도 비슷한 섬으로 귀양을 왔는가, 내가 이러려고 그 힘든 과거시험을 보았던가 억울해서 대성통곡을 한 번 하고.”

초소장이 말을 하다 말고 다시 잔을 들었다. 잔이 비어 있자 옆에 있던 손사장이 초소장의 잔에 술을 따랐다. 문촌장이 뒷이야기가 궁금한지 초소장을 쳐다보며 물었다.

“두번째는 왜 우는데요?”

“두번째는 이 적막한 섬을 떠날 때 운다고 했다.”

“이제 그리운 한양으로 돌아가니까 룰루랄라 기분이 막 좋아서?”

“아니, 막상 이 섬에서 한 시절 지내보니까 생각보다 그리 나쁘지 않은 거지. 임진왜란 이후에 조선이랑 일본이랑 수교가 단절됐잖아. 그런데 대마도 사람들이 하도 애걸복걸해서 부산에 왜관이라는 것을 지어서 무역을 쪼매 허용했는데, 관에서 허용한 무역량 가지고 상인들이 어디 성이 차겠나. 그래서 대마도랑 부산 사이에 밀무역이 성행했는데, 그 요충지가 바로 여기 영도랑 아치섬이었다 이 말이다.”

“그럼 조선시대 때부터 공무원들이랑 밀수꾼들이랑 짝짜꿍 해묵었던 겁니까?” 문촌장이 물었다.

“그렇지. 이 영도라는 곳이 조선시대 때부터 밀무역 계통으로는 아주 유서 깊은 곳이다. 말하자면 밀수의 성지 같은 곳이지. 그나저나 문촌장은 아치섬에서 촌장씩이나 해먹으면서 이 섬의 긴밀한 역사에 대해 어찌 나보다 모르는가.” 

초소장이 뜬금없이 문촌장을 타박했다. 문촌장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어쨌거나 첨사로 여기 있다보면 마 뒤로 들어오는 돈이 짭짤하거든. 대마도에서 오는 일본 상인들이 돈 찔러주지, 일본 상인에게 물건 넘기는 조선 상인들도 또 돈을 찔러주지, 물건 배달하는 뱃사람들도 돈을 찔러주지, 이건 뭐 한양 도성 안에서 금난전권이니 뭐니 해서 시장 상인들 뒷돈 받아 챙기거나, 북경으로 인삼 팔러 가는 개성상인 뒤 봐주는 것보다 훨씬 짭짤했다는 거 아니겠나. 게다가 이 조랑말이랑 염소밖에 안 뛰어다니는 섬에 뭐 눈치볼 사람이 있나, 첨사 위에 높은 관료가 있어서 알랑방귀 뀌며 비위 맞춰야 할 사람이 있나, 섬 주위 어장이 풍부해서 먹을 거 많지, 일본 밀수꾼들이 만날 술을 공물로 바치지. 이 자리야말로 놀고 마시고 자기 혼자 다 처묵는 자리 아니겠나. 고급진 말로 독식한다, 뭐 이런 거지. 그러니 첨사가 떠날 때 이 금싸라기 같은 자리를 내놓고 가니 어찌 눈물이 안 나겠나.”

“그래서 우리 초소장님도 떠나려니 눈물이 납니까?” 밧또가 물었다.

“솔직히 조금 눈물이 나네. 이제 겨우 집 한 채 장만했는데, 물 들어왔을 때 노 저으라고 했는데, 노 힘껏 저어보려고 하니까 이 타이밍에 바람이 딱 멈추네.” 

“술이나 한잔 하소. 그간 우리 초소장님이랑 정도 깊었는데 떠난다고 하니 나도 맘이 쪼매 짠하네. 이래서 공무원들한테는 애당초 정을 주면 안 된다니까.” 문촌장이 말했다. 

문촌장이 잔을 내밀자 초소장이 문촌장과 잔을 부딪혔다. 그리고 둘은 바보 같이 서로를 향해 씨익 웃었다. 


“그나저나 우리끼리만 모인 것도 간만인데 천달호 문제를 중점적으로다가 논의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솔직히 대마도 밀수 사업이란 게 까놓고 보면 천달호 혼자 칠 할을 먹고 나머지 삼 할 가지고 우리가 콩당거리며 갈라먹고 있는 거잖아요.” 문촌장이 말했다.

“솔직히 천달호 아니면 이제 대마도 사업 힘들다. 중앙정보부가 자리를 잡아주니까 하는 거지, 주름치마 몇 장 들고 들어오다가 사형당할 일 있나?” 밧또가 말했다.

“지랄 또 천달호 편든다.”

“천달호 편을 드는 것이 아나라 사정이 안 그렇나. 정권이 바뀌면 패권도 넘어가는 거지. 지금은 천달호의 시대다. 니는 그 엄정한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이승만 시절에는 여기 계신 우리 손사장님도 경기 좋았잖아.”

“니 솔직히 말해봐라. 대마도에서 넘버원 되니까 아주 좋아 죽겠지?”

“이 사람아. 비즈니스와 사적인 감정은 구분해야지. 비즈니스적으로야 조직에서 승진하고 돈 많이 벌면 당연히 좋은 거지. 그래도 사람 맘이 어찌 편하기만 하겠나. 한도식이 형님을 내가 사형시킨 게 아닌데도 형님을 생각하면 늘 죄스럽고 애닯고 그렇다.”

“에, 애닯은 마음 같은 소리 하고 앉아 있네. 니 얼굴이 어딜 봐서 애닯은 얼굴이고?” 문촌장이 쏘아붙였다.

“그건 밧또 말이 맞다. 나도 중정이 뒤를 봐주니까 이 일을 하는 거지. 안 그러면 후달려서 일 못한다. 일개 초소장이 어떻게 부산 앞바다에서 버젓이 이런 판을 벌린다 말이고.” 초소장이 말했다.

“그럼. 이 시국에 천달호 건드리면 그나마 남은 삼십 프로도 못 핥아먹는 거지.” 

만리장 손사장이 허탈한 표정으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만날 이렇게 당하고만 있을 겁니까?” 문촌장이 말했다.

“뭐 도리 있겠나. 좋은 시절 올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만리장 손사장이 말했다.

“하염없이 기다리기만 하자고요?” 

“건달은 건달 식으로 찌질하게 살아야 장수하지, 권력을 등에 업은 건달은 오래 못 가는 법이다. 우리 할아버지 봐라. 이승만 이기붕이 자기 친구인 줄 알고 까불었지만, 막상 시궁창으로 굴러떨어지는 데 며칠이나 걸렸노. 한도식이는 그래도 재판이라도 받고 정식으로 사형 집행이라도 받았지. 우리 할아버지는 삼 일 동안 매 맞아서 죽었다. 건달의 쓰임이란 게 딱 그 정도다. 권력 옆에 비어 있는 자리는 다 허방이다. 힘 있는 놈들이 웃으며 자리 권한다고 깡패가 넙죽 그 자리 앉으면, 어느 날 온다간다 말도 없이 낙엽처럼 훅 날아가는 거지.”

손사장이 마침표를 찍듯이 말했다. 손사장 말이 확실히 일리가 있는지 모두들 잠시 입을 다물었다. 말을 마친 손사장은 할아버지에 대한 무슨 회한에라도 젖는지 입술을 깨물며 기계적으로 고개를 조금 끄덕였다. 그때 황이 시계를 봤다. 눈치 빠른 밧또도 자기 시계를 쳐다봤다.

“해가 일곱시에 뜨니까 아직 시간이 좀 있습니다. 짐 다 내리고 배 떠나기 직전이 고기 잡기에는 제일 좋은 시간이니까요.” 밧또가 말했다.

그러자 중간에서 눈치를 보던 초소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바지 엉덩이를 툭툭 털었다. 자기가 빠져야 할 타이밍을 정확히 아는 사람이었다.

“나는 이제 슬슬 가볼랍니다. 상황도 좀 살펴보고 애들도 철수시키고, 또 간밤에 아무 일 없었다고 보고서도 작성해야 하고.”

“우리한테 받은 돈 초소장님 혼자 다 드시지 말고 비 맞으며 고생한 애들한테도 좀 나눠주이소. 젊은 애들 보니까 고생 많더라.” 문촌장이 초소장을 놀리듯 말했다.

“아! 나눠준다. 요즘 애들이 얼마나 빠꼼이들인데 뭐 안 처멕이고 일이 돌아가나.”

그때 손사장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기가 이 자리에는 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손사장이 수레의 어깨 위에 가볍게 손을 얹었다.

“일 보고 가시게. 한가해지면 만리장 호텔에 한번 들르시고.”

손사장이 수레를 향해 가볍게 윙크를 했다. 무슨 뜻으로 하는 윙크인지 수레로서는 그 의미를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


손사장과 초소장이 떠나자 모닥불 앞에는 문촌장, 밧또 그리고 황과 수레만이 남았다. 뭐가 불안한지 황이 다시 한번 시계를 봤다.

“마루야마는 마지막 배로 갈 거요. 뭐 배를 아예 안 보낼 수도 있고. 그런 건 다 내 소관이니까 걱정 마시오.” 문촌장이 말했다. 

“특별히 변동 사항은 없지요?” 황이 물었다.

문촌장이랑 밧또가 서로를 한번 쳐다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전에 말한 그대롭니다. 변동 같은 거 생길 일이 없지요.” 문촌장이 말했다.

황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옆에 있던 가죽가방을 열었다. 그리고 증서 두 개를 꺼내 밧또와 문촌장에게 내밀었다.

“이게 뭡니까?” 밧또가 물었다.

“금 교환권입니다.” 황이 말했다.

“금 교환권?” 

“금광에서 발행했던 일종의 어음입니다. 나중에 들고 오시면 거기에 적힌 무게만큼의 금을 드립니다. 수수료 조금 떼고.”

“이 종잇조각 들고 갔는데 나중에 배 째라고 나오시면?” 옆에서 문촌장이 물었다.

별소리 다한다는 표정으로 황이 싱긋 웃었다.

“지난 이백오십 년 동안 아직 한 번도 그런 일은 없었습니다.”

문촌장과 밧또가 서로의 금 교환권을 비교해보면서 일본말로 뭐라 떠들었다.

“온천장이 북쪽에서 큰 금광을 했다고 소문은 많이 들었는데, 직접 거래를 해보니까 우리 같은 것들이랑은 확실히 사이즈가 다르네요. 금 교환권이라니 이런 건 또 첨 보네.” 문촌장이 뭐가 신기한 듯 싱글벙글거리며 말했다.

“아무리 그래도 우리는 현금이 좋은데. 우리는 건달들이라 어음, 수표, 상품권 뭐 이런 거 골치 아파서.” 밧또가 말했다.

“그건 나도 그런데. 나는 마 종이쪼가리에 사기를 당한 적이 하도 많아서.” 문촌장이 거들었다. 

황이 두말도 하지 않고 가방에서 금 두 덩이를 꺼냈다. 밧또에게 가는 금덩이는 오백 그램쯤 되어 보였고 문촌장에게 가는 금덩이는 이백 그램짜리였다. 밧또가 금덩이를 손에 쥐더니 금 교환권과 손에 쥔 금덩이를 번갈아 쳐다봤다.

“그러니까 황 두목 말에 따르면 이 종잇조각이 이 금덩이보다 값이 십오 프로쯤 더 나간다 이 말이지요?”

황이 고개를 끄덕였다. 밧또가 조금 갈등을 하더니 이내 세차게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다. 누가 뭐래도 나는 현찰!”

하지만 문촌장은 손에 들고 있는 금 교환권을 부채처럼 잠시 흔들더니 수레를 쳐다봤다. 

“우리 수레 도령 생각엔 뭐가 좋겠소?”

“내 생각이 뭐가 중요한데요? 제가 보니 우리 촌장님은 단호하신 스타일인데, 그냥 맘 내키는 대로 하면 되지요.”

“오늘 처음 얼굴 텄는데 나는 우리 수레 도령이 맘에 들어서 그러지.” 

문촌장이 수레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며 웃고 있었다. 하지만 그 웃음에 장난기는 전혀 섞여 있지 않았다. 뭔가를 비웃는 것도 아니었다. 문촌장의 얼굴에서 보이는 웃음은 진지함 같은 것이었다.

“문촌장님 맘에 들었다니, 저도 기분좋네요.”

“그럼 기분좋은 김에 내가 예전부터 궁금한 게 하나 있었는데 물어봐도 되겠소?”

“물어보십시오.”

“그때 천달호한테 뒤통수 맞았을 때 가라앉은 배 말이요. 거기에도 금덩어리 있었다던데 사실이요?”

“사실이면요?”

“그 배가 설마 가라앉았을까 싶어서.”

“안 가라앉았으면 찾을 수 있습니까?”

“금은 몰라도 배는 확실히 찾을 수 있지. 자기들이 어떻게 수작을 벌여도, 배 기관이랑 부품들은 결국 따로따로 다 돌아다니게 되어 있거든.”

“비용이 얼마나 듭니까?”

“지금 캐스팅 들어오는 거요?”

“남는 장사면 안 할 이유가 없지요.”

수레의 말에 문촌장이 씨익 웃었다.

“이건 수레 도령이랑 첫 거래니까 내가 무료로 해드리지요. 그리고 나는 금덩어리 말고 금 교환권으로 주시오. 우리는 또 이 무식한 야쿠자 새끼랑은 달리 의리와 신용을 아는 사람이니까.”

황이 고개를 끄덕이고 문촌장 앞에 있는 금덩이를 다시 가방에 집어넣었다. 이제 거래는 다 끝난 것 같았다. 모두 할말이 없는지 모닥불 사이로 잠시 침묵이 흘렀다. 황이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문촌장, 밧또, 수레도 덩달아 자리에서 일어났다. 

“뒷일 잘 부탁합니다. 친정에 돌아가셔서 오해 없도록 정리 부탁하고요. 그리고 소문은 떠올라도 되는데 시체는 떠오르면 안 됩니다.” 

황이 마지막으로 상황을 정리했다.

“시모노세키 일은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그리고 시체 처리는 문촌장이 전문가니, 절대 떠오를 일 없을 겁니다.” 밧또가 문촌장을 쳐다보며 말했다.

“지랄을 떤다. 이게 농을 던질 일이냐.” 문촌장이 밧또를 타박했다.

“하긴 마루야마랑 나랑 이래저래 이십 년인데, 농을 던질 일이 아니네. 사실 마루야마 그놈이 참 착하고 성실한 놈인데 어쩌다가 온천장하고 엮여가지고.” 밧또가 어물쩍 말했다. 말을 한 밧또도 뭔가 머쓱한 것 같았다. 황이 별 의미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문촌장이 바닥에 있던 잠바를 집어들었다.

“이제 일하러 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