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회

피카소와 나무

시인이자 친구인 피카소―내 휴대전화에 저장한 별명이다―를 만난 건 몇 년 전 술자리였다. 단발머리에, 눈이 동그란 누군가가 앉아 있었다. 말은 별로 없었지만 맑아서, 자꾸 들여다보고 싶은 얼굴이라고 생각했다. 그날은 소주와 사이다를 섞은 이른바 ‘암바사’라는 해괴한 술을 만들어 마신 날이기도 했다. 피카소는 그 술을 어이없어 하면서도 마음에 들어 했는데, 서로 권하고 마시는 시간을 보내면서 앞으로 우리 친하게 지내자는 메시지가 전해졌다. 요즘 들어 기억력이 흐릿해져 정확한 말은 헷갈리지만 분명한 건 마음이 설렐 정도의 말이었다는 것이다. 

피카소와 나는 그뒤로 밴드를 같이하기도 했다. 글 쓰는 동료들과 함께했던 김중연(가명이다) 밴드였다. 밴드명에 이름이 들어간 김중연씨는 리더이자 소설가인 최의 지인으로, 나는 전혀 모르는 사람이었다. 최는 그의 드럼 실력을 인정해 밴드 합류를 제안했으나 거절당하고 그의 이름을 밴드명으로 삼았다. 거절의 대가로, ‘아마추어’라는 평가조차 하기 어려운 우리 밴드의 이름으로 영원히 박제된 셈이었다. 우리 모두 밴드 할 실력은 아니었다. 첼로를 맡은 최는 그 무렵 고가의 그 악기를 샀을 뿐이고, 나는 중학생 이후로는 거의 피아노를 연주한 적이 없으며, 피카소는 가족에게 막 기타줄 튕기는 법을 배운 참이었다. 또다른 소설가 S는 하모니카를 맡았는데 그건 삼촌과 관련한 애틋한 기억이 있기 때문이었고 역시 잘 불지는 못했다. 하지만 우리는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절대 잘하지 말자’가 밴드의 모토였으니까.

합주실에 모일 때마다 연주하는 시간보다 멈출 때가 더 길었다. 어느 날 홍대에 모여 지하의 합주실에 들어섰는데, 기타를 맡은 피카소가 자꾸 튜닝 나사를 조이며 조율을 거듭했다. 합주를 하다가 또 한번, 진행이 되다가 또 한번. 우리는 어차피 각자가 맡은 악기들에 대해서도 잘 모르기 때문에 피카소가 제대로 된 음정을 위해 그런 수고를 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 안 되겠는지 합주실 주인에게 도움을 청했고, 그걸 본 그는 깜짝 놀라며 만약 한 번만 더 돌렸다면 기타줄이 완전히 끊어졌으리라고 했다. 

더 슬픈 장면은 그다음에 일어났다. 그날은 한국문학계에서 가장 근사한 목소리를 지닌 시인을 삼고초려해서 모신 날이었다. 하지만 우리의 연주는 그가 감미로운 목소리로 노래를 좀 하려고 하면 중단되고, 하려고 하면 멈췄다. 그는 성격이 너무 좋아서 부르다 말고 부르다 말면서도 참을성 있게 기다려주었는데 연습 시간이 거의 끝날 때쯤 아주 조심스럽게 “저 노래 한 번만 제대로 불러보고 집에 가면 안 될까요?” 하고 부탁했다. 그날의 미안함, 그날의 부끄러움에 대해서는 더이상 설명하기가 힘들 것 같다. 아무튼 우리는 어차피 잘할 생각은 없었지만 더 못하기도 힘든 밴드 연습을 접기로 했다. 

그뒤로도 피카소와 나는 함께 스케치 수업을 듣기도 하고(피카소는 그의 훌륭한 드로잉 실력에 감탄한 내가 붙인 별명이었다) 교토로 여행을 가기도 하고 이소라 언니 공연에 가서 눈물을 흘리며 앉아 있기도 했다. 막걸리 안주로는 에이스가 최고라는 것, 가챠 기계가 우리가 자주 가는 서점 건물에 있다는 것, 때로 시는 마음이라는 수면의 무늬를 흰 종이로 걷어내는 방식으로 쓰이기도 한다는 것을 알려준 사람도 그였다. 힘이 들 때는 혼자 있으면 안 되고 나와서 누군가를 만나야 한다는 것, 좋아하는 사람의 가장 자연스러운 모습을 찍어 헤어지고 난 뒤 메신저로 보내주는 애정 같은 것, 잘 듣고 곰곰이 생각한 다음에야 해주는 온당한 충고와 답변. 그때부터 지금까지 내게 없어서는 안 되는 것들이다. 

얼마 전 그의 동네로 가서 오겹살을 먹었다. 한 계절 만에 만나는 것이었다. 피카소는 담담히 내 상태를 살폈고 내 하소연을 침착하게 듣고는 새로 나온 한정판 블랙윙 연필을 건넸다. 그것이 연필이라서 나는 잠시 엉엉 울고 싶었지만, 김치말이국수를 추가 주문 했다. 

그날 피카소에게서 들은 가장 인상적인 이야기는 어느 오래된 동네에 가서 본 나무에 관한 것이었다. 서울에 있으리라 생각하지 못했던 정말 커다란 나무였다고. 피카소는 그 나무를 내게 설명해주기 위해 나무 자체가 아니라 그 주변에 있었던 사람들의 표정이나, 무심히 눈길이 갔던 식탁 풍경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것이 주었던 기이한 오후의 평화에 대해. 모두 나무를 상상해내기에 충분한 말들이어서, 나 역시 거기로 건너가 옆에서 지켜본 것 같았다. 

피카소가 여름이라고 특정하지 않았는데도, 그것은 여름의 창창한 햇빛을 받으며 서 있었다. 잎이 넓었고 높았으며, 그 푸른 잎들 사이로 바람이 통과하게 내버려두며 아주 유연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나는 나무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존재라고 생각하고, 특히 그것이 바람과 함께 어우러질 때 거기에는 눈과 귀와 피부가 모두 동원되어 누릴 수 있는 아름다움이 발생한다고 여기는데, 그 순간이 그랬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나는 내가 피카소를 만나는 동안 했던 얘기들이란 모두 일과 작업들에 대해서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반면에 피카소는 그러지 않았다는 것을, 나무에 대해 이야기해주었으니까. 나는 어쩌면 내가 너무 삭막하게 살고 있는 걸까 생각했다. 돌아오고 나서도, 부대끼는 일들은 여전했다. 하지만 그 사이사이, 실제로 본 적은 없지만 알고는 있는 그 놀랍도록 크고 아름다운 나무를 떠올리려고 노력했다. 그것은 동시에 피카소에 대해 생각하는 일, 지금 당장은 곁에 없지만 어딘가에 분명 사려 깊게 자리하고 있는 존재들에 대해 믿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