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회

어쨌든 오늘 즐거웠어요

첫 조카 준이가 세상에 나왔을 때 나는 뭔가 당황스러운 느낌이었다. 일단 그렇게 해서 ‘새 사람’이 등장할 수 있다는 점이 경이로웠고 준이의 등장으로 가족 모두가 자신의 자리를 재정비해야 한다는 사실에 긴장을 느꼈다. 언니가 진통을 겪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회사에서 안절부절 못하다가, 마침내 병원으로 달려갔을 때 언니는 용감하게도 자연분만에 성공하고 병실에 앉아 있었다. “야, 진짜 아퍼” 하고 허리에 손을 가져다대고 어기적어기적 걷는 언니는 전쟁에서 이기고 돌아온 잔 다르크, 영웅처럼 보였다. 어느 날은 늦은 밤 전화해, 지금 아기에게 가봤는데 운다고 억지로 공갈 젖꼭지를 물려놓은 것 같다고, 너무 가슴 아프다고 울었다. 나는 언니가 정말 엄마가 되었구나 싶었다. 언니가 엄마가 되다니, 그러면 나도 이모가 되어야 하겠구나. 


하지만 산후조리원을 나와 며칠 지나자 언니는 그 공갈 젖꼭지가 정말 요긴한 ‘육아템’이라며 감탄했고 아주 적극적으로 애용했다. 나는 그 또한 엄마답다고 생각했다. 


준이를 통해 알게 된 세상은 정말 경이로웠다. 일단 이모답게 선물 공세를 시작한 나는 초점책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대체 왜 이 갓난아기가 이 책만 가져다대면 자지러지게 웃는가 심각하게 고민했다. 도형과 선이 몇 개 그어진 그 페이지가 정말 그렇게 즐거운 내용인가. 빛과 명암만 구별할 수 있고 아직 사물을 정확히 볼 수 없는 준이에게는 그런 작은 변화가 무척이나 놀랍고 드라마틱하며 화려한 풍경의 연쇄였을 것이다. 전혀 예상할 수 없는, 가장 단순한 선의 변화에서 터지는 천진한 웃음. 나는 백일도 지나지 않아 준이의 세계에 완전히 빠져들고 말았다. 

그후로 오랫동안 준이의 세계에서는 많은 질문들이 당도했다. 모든 대화를 왜요? 라고 잇는 긴 대화에 임하다보면 나조차도 정말 세상이 이렇게 생겨먹은 데는 필연적인 이유가 있는 건가 싶었다. 어느 날은 조기에 밀가루를 묻히고 있는 내게 “이모, 물고기 추울까봐 옷 입혀주는 거예요?” 하는 질문을 하기도 했다. 이모가, 혹은 세상이 조기에게 그렇게 관대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려줘야 하는 순간, 나는 적어도 네 살이라면 이제 현실을 알아야 한다는 생각에 “아니, 먹으려고” 하고 짧고 간명하게 대답했다. 맛있게, 라고 덧붙여 아예 쐐기를 박았는지 아닌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만약 그랬다면 그도 사랑에서 우러나오는 말이었을 것이다. 

어린 준이는 말을 너무 잘해서 우리를 놀라게 했는데, 나와 박물관을 다녀온 뒤에 앞자리에서 안전벨트를 직접 풀며 “이모, 어쨌든 오늘 하루 즐거웠어요” 하고 말하던 순간이 생생하다. 오늘의 즐거움을 그렇게 인사로 보답할 줄 아는 센스는 어디서 배웠을까. 

이제 십대가 된 준이는 자기만의 세계가 갖춰져 있어서 더이상 내게 그 왜요의 대화법을 구사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가끔씩 이런 질문들로 자신이 이모의 세계를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는데, 몇 해 전 겨울처럼 “이모도 광장에 나갔어요?” 하고 갑자기 말을 걸거나, 내가 저작권 문제로 한 출판사와 갈등하고 있을 때 이모 힘드시겠어요, 하고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식이었다. 며칠째 잠을 자지 못한 나는 절대 혼자 있으면 안 된다는 동료들의 충고에 따라 겨우 외출한 참이었다. 머리도 감지 못해 몰골이 말이 아니라고 만나자는 사람에게 말하자, “저도 그렇게 나갈게요” 하는 답이 돌아와서 이상하게 울컥하던. 

하지만 만나보니 나만 머리를 감지 않고, 나만 화나고 환멸이 일고 두려운 감정의 얼룩들로 엉망이 된 상태였지만 혼자보다는 정말 나았다. 그렇게 네 시간 넘게 대화하고 돌아섰을 때 준이의 문자를 받았다. 하필이면 비가 와서 분위기가 더 을씨년스러운 거리에 혼자 남았을 때였다. 일 년 만이었다. 이제 사춘기에 들어선 준이는 만나면 그냥 잘 지낸다, 괜찮다, 대답만 공손히 하곤 했으니까. 그래도 전혀 서운하지는 않았다. 나도 사춘기 때 그랬기 때문에, 그건 잘 지내고 있다는 증거였으니까. 가깝거나 물러나 있거나 이모인 나의 세계와 준이의 세계는 적당히 맞닿아 있다고 나는 믿었다. 

준이가 보낸 문자에는 이모가 자랑스럽다고 적혀 있었다. 나는 그 일을 엄마에게만 말했을 뿐 아무에게도 전하지 않았지만 준이는 기사를 다 봤다고 했다. 2014년 첫 책을 냈을 때 준이가 이모가 꿈을 이뤄서 좋아요, 라고 했던 말이 생각나서 마음이 더 무거워졌다. 준이의 응원으로 걸어온 끝에 내가 당도한 현재가 여기라는 것에. 어린 준이가 맞닥뜨렸던 그 끝없이 이상하고 하지만 포기할 수 없는 왜요- 하는 세계로 이번에는 내가 붙들려간 것 같았다. 아니 어쩌면 우리 모두는 거기에서 사실은 나온 적이 없는 걸까. 


마음이 완전히 약해져 있던 나는 그 자랑스럽고 옳다는 응원을 응원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거리에 서서 감정에 휩쓸리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었다. 그랬다가는 정말 약한 모습을 보이게 될까봐. 다행히 감정은 곧 잦아들었고 나는 준이의 유일한 이모, 무서워할 준이를 예상 못하고 어두컴컴하고 괴성이 흘러나오는 공룡 테마파크로 데려가 결국 울리고 만 초보 이모, 글짓기 대회에서 상을 받아온 준이에게 안 돼, 작가가 되면 안 돼, 하고 다분히 자기 투사적인 반대를 하던 이모, 하지만 세상에 나온 그때부터 지금까지 할 수 있는 가장 간절한 기도를 해온 이모로 돌아가 어려운 일이 있으면 힘이 들지만 슬기롭게 헤쳐나가는 이모가 되겠다고 적어 보냈다. 그 말 뒤에 준이는 시크한 십대답게 짧은 인사도 없이 대화를 끝냈을 뿐이지만, 나는 그것이 준이에게 한 말이므로 가장 지키고 싶은 다짐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