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회

이런 날들은 지나가지 않을 거니까

나도 감자를 사고 싶어. 아침마다 진품센터(코로나 여파로 인해 농가를 살리기 위해 강원도에서 직거래로 감자를 10kg에 5,000원 무료 배송으로 판매하여 각종 SNS상에서 화제가 된 홈페이지)에 들어가보는데 그때마다 솔드아웃이었다. 대체 그걸 사는 사람들은 어떤 능력자인 걸까? 대학생 때도 수강신청에서 인기 있는 교양 수업을 졸업할 때까지 신청 성공하지 못한 나여. 광클과 거리가 멀어서인가요? 나도 그 감자를 사고 싶다. 카레도 해먹고, 감자전도 해먹고, 감자볶음도 해먹고, 버터를 올려 에어 프라이어에 돌려 먹고 싶다. 감자. 어쩐지 생각만 해도 침묵과 어울리는 다정한 것. 흙속에서 자란 뿌리가 맛있다는 게 가끔 신기하다. 식물학적으로는 오류일지 모르지만 어쨌든 빛이 관여하지 않은 생명을 몸속에 집어넣을 수 있다는 게 좋다.


사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요리 재료는 양파다. 양파는 어디에 얼마만큼 넣어도 너무너무 맛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양파 요리는 프렌치 어니언 수프다. 이름이 거창해서 그렇지 사실 양파를 약한 불에 아주 오래 볶고 물을 붓고 치킨스톡을 넣으면 되는 요리다. 만약 조금 더 사치를 부리고 싶다면 물을 넣을 때 화이트와인을 함께 넣으면 된다. 달지 않은 것으로. 그러면 건더기에 고기가 없어도(고기가 들어가지 않은 요리는 맛이 없을 거라는 편견에 사로잡힌 사람이 종종 있다) 아주 맛있는 요리가 탄생한다. 사실 치킨스톡이 치트 키인 것 같다. 어쩐지 치킨스톡이란 내 머릿속에서 서양의 다시다 같은 것이다. 넣으면 다 맛있어지는 마법 가루 같은 거. 

못 먹는 것은 없지만 좋아하지 않는 것은 당근이다.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생당근을 좋아하지 않는다. 익힌 당근은 괜찮다. 어렸을 때 싫어하던 음식들을 커서는 대부분 좋아하게 되었는데 왜 생당근만은 예외일까? 그리고 어떻게 그렇게 주황색일 수 있을까? 자연의 색이 가끔 가장 인공적인 것 같다. 


영화 <마션>의 주인공도 감자 먹고 화성에서 버텼다(화성에 놓고 왔어야 하는데 나쁜 놈). 생각해보자, 양파를 먹고 버티거나 당근을 먹고 버텼다고 한다면 아마 쉽게 납득이 되지 않았을 거다. 감자는 사람을 버티게 만드는 음식인 것 같다. 마늘이랑 쑥 먹고 버티고 그러는 건, 다른 종이 되기 위한 절박 같은 게 나는 잘 납득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호랑이는 포기하고 그러잖아? 대체 왜 인간이 되려고 그렇게 열심히 했는지 우화라고 해도 이해 안 가긴 하지만. 

그러고 보면 감자, 하면 어쩐지 백석이 생각난다. 백석은 먹을 거에 관심이 많은 시인이었다. 백씨들이 그런가보다(농담임). 백석 시 「하늘 아래 첫 종축 기지에서」에도 감자가 등장한다. 감자로 빚은 술과 감자 그리고 새끼를 낳는 돼지. 말로 다 할 수 없는 생명에 대한 축복과 기쁨이 넘치는 그런 시다. 나도 잘 몰라서 방금 찾아봤는데 종축 기지라는 건 종자로 삼을 가축을 기르는 우리 같은 것이라고 한다. 종자? 종자란 씨앗 같은 건데. 갑자기 시가 달리 읽힌다. 의미를 잘 모르고 읽었을 때는 왜인지 그 시가 굉장히 SF적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렇다면 돼지가 새끼를 낳은 기쁨은 어디서 온 거였지? 무엇에서부터? 그러니까 기원이 뭐지? 기쁨을 의심하게 된다. 


의심이란 내게 나쁜 말이 아니다. 의심 없이 믿는 것이 나쁜 것이다. 의심이란 면밀히 살펴보고 검증하는 절차니까. 그건 더 오래 바라본다는 뜻이다. 난 무엇이든지 의심하는 버릇이 있다. 그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옳은 건지 그른 건지 그걸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지 조용히 생각하는 거다. 물론 옳고 그름을 가릴 수 없는 일이 더 많다. 그래도 그게 하양에 가까운 회색인지 검정에 가까운 회색인지 보는 건 중요한 일이다.


백석 얘기가 나와 말이지만 내 친가 외가 조부모는 모두 이북 출신이다. 나는 북한에 가본 적 없지만 내 핏줄이 북한이라고 자주 생각하곤 했다. 어렸을 때는 명절마다 이산가족 상봉 프로그램을 온 가족이 뚫어지게 봤다. 할아버지 때문이다. 할아버지가 북한에 부모 형제 자매 그리고 처자식을 두고 와서 혹시라도 아는 사람이 나올까봐. 할아버지는 절대 채널을 돌리지 못하게 했다. 나는 명절 특집 쇼 같은 것이 보고 싶었는데. 대신 티브이 속 얼굴과 할아버지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기만 했다. 눈빛을 보려고. 혹시 닮았는지 확인하려고. 그런 이상한 긴장 같은 것이 명절마다 늘 있었는데 할머니는 한 번 서운하거나 속상한 기색을 보인 적이 없다는 게 어른이 된 지금 떠올려보면 미스터리다. 할머니는 그런 할아버지를 어떻게 견뎌냈을까? 


애도는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건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한번은 죽음의 의미에 관한 히라노 게이치로의 말을 듣고 울었던 적이 있다. 잘 기억나지 않지만 타자의 죽음은 그 사람이 죽는 것뿐만이 아니라 그 사람의 기억 속에 존재했던 나 또한 한번 죽는 것과 다름없다는 내용이었던 것 같다. 영원히 존재하고 싶으면서도 완전히 삭제되고 싶다. 플러그를 뽑는 것처럼 기억도 전부 가져가고 싶다. 


내가 가진 가장 커다란 단절은 이혼이라는 사건이었다. 죽음과 거의 유사했다.


이혼을 하면서 스스로에게 가장 많이 했던 질문은 통속적이지만 ‘저 사람이 정말로 나를 사랑한 적이 있었을까?’였다. 나는 그게 너무 궁금해서 직접 물어보기도 했다. 대답은 “사랑이 뭔지 모르겠다”였다. 말은 정말 무섭다. 한번 들은 말은 마음속에서 사라지지 않고 계속 자라나서 점점 더 무성해진다. 그러다보니 사랑의 본질에 대해 오래 고민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쉽게 질문을 던지는 게 아니었는데. 왜 그런 걸 물어가지고. 괜히 씨앗을 받아버려가지고. 저절로 자라고 자라고 자라게 만들어버렸을까? 질문은 질문을 지속시켜버려서 결국 지금은 나도 사랑이 뭔지 모르겠는 순간이 오곤 한다. 짜증난다. 어쩌면 사랑은 사회적 관습이나 관념, 환상 같은 게 아닐까. 그런데 왜 우리는 사랑에 그렇게 환장하지?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그 사람을 정말 사랑했는데 그럼 그건 그냥 내면화된 환상에 불과했나?

그게 사랑이 아니면 뭐지? 집착? 지금도 아이 때문에 전남편을 종종 만나는데 정말 너무 타인 같아서 깜짝깜짝 놀란다. 그러다가 갑자기 내가 사랑했던 그 사람이 언뜻 보이는 순간에는 불에 댄 듯 놀라 물러선다. 그래도 다행인 점은 찐 뜬금없지만 그가 늘 우리집에 올 때마다 똥을 싸고 간다는 것이다. 그가 똥을 싸고 갈 때마다 남아 있던 정도 조금씩 떨어진다. 어머…… 어떻게…… 이혼한 전부인 집에 와서…… 똥을…… 매번…… 진짜 매번…… 싸고 갈 수가…… 있지……? 테러 같다.


그런 면에서 이혼이란 제도는 확실히 부부를 타인으로 되돌려놓는 의식이 맞는 것 같다.

참으로 다행스럽다.


*


요즘 날씨가 좋다고 한다. (오늘은 3월 26일이다.) 나는 절대 밖에 나가지 않는다. 언니네 집 냉장고 털러 갈 때 빼고. 어떤 사람들은 밖에 못 나가서 답답하고 미치겠다고 하는데 나는 그런 마음이 전혀 들지 않는다. 밖에 안 나가니 점점 살이 찐다는 사실만 빼면 느끼는 단점이랄 게 없다. 책 읽고 글쓰고 왓챠 보고 넷플릭스 보고 집안일하고 낮잠만 조금 자도 하루는 금방 간다. 날씨가 좋다고 해서 무작정 밖에 나왔다고 하는 사람들을 보면 덩달아 설레서 내일은 나도 나가봐야지 생각하다가도 막상 내일이 되면 너무 피곤해서 나가고 싶은 마음이 사라진다. 내가 대체 왜 피곤한 건지 나도 궁금한 부분이긴 한데 항상 너무 눕고만 싶다. 아무것도 하기 싫고 나도 뭔갈 해야 할 텐데, 그치? 너는 뭐하고 있어? 산책도 하고 카페도 가고 그래? 아무 목적 없이 걷고 웃고 꽃도 보고 하늘도 보고 그래? 그러면 거기서 뭔가 발견하고 그래? 나는 밤에 돌아다니는 걸 좋아했는데 밤엔 외출 금지니까. 나가면 뭐해. 돈이나 쓰고 더 피곤해지기나 하겠지. 


달고나 커피 같은 것을 만드는 사람들을 봐도 그렇구나 한다. 이건 우울증인가? 우울증 치료를 오래 받았지만 이 치료는 내게 생기를 주기보다는 검은 건반으로만 만들어진 인생을 돌려주는 것 같다. 우울하고 조용하고 차분하고 불안하다. 나는 팟캐스트를 참 좋아하는 편인데 가장 좋아하는 팟캐스트는 <영혼의 노숙자>와 <서늘한 마음썰>이다. 운전을 하면서 그것들을 듣는 것을 좋아한다. 최근 <서늘한 마음썰>에서는 자살과 예술가들의 정신병리학적 이야기들이 나왔는데 예술가들이 조울증을 앓는 경향이 많이 있다고(기억에 의지한 거라 약간 틀릴 수 있음) 했다. 나는 조증 상태가 무엇인지 대강은 안다. 많은 영화와 드라마(완소 배우 카야가 나오는 <스핀 아웃>을 보면 너무나 빠르게 이해할 수 있다)에서 보았고, 조증을 앓는 지인에게서도 보았다. 그렇기 때문에 최근 내게 조증 상태가 거의 없다는 걸 나는 확실히 알 수가 있다. 그래서 내 삶은 격랑보다는 고여서 썩은 웅덩이에 가깝다는 걸 안다. 


비트겐슈타인은 그런 말을 했지.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고. 나는 그 말을 좋아했던 적이 있다. 지금은 그에게 찬성하지 않는다.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 조금이라도, 어설프게라도 계속 이야기해서 말할 수 없는 것을 약간이라도 드러내는 게 좋지 않을까? 그런 목소리가 많아져야 그 안에서 중심에 가장 가까운 것들의 접점이 점점 보이게 되고 결국에는 말할 수 없는 것의 실체가 드러나는 게 아닐까. 


감자에서 어쩌다 여기까지 왔나. 그건 N번방 사건 때문이다. 


이십육만 명이 지켜봤다는 텔레그램의 방.


이것에 대해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어딘가 나의 리벤지 포르노, 화장실 몰카 등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교도소에서 여성의 사진을 눈요깃감으로 장당 사천원에 구입하는 수감자들이 있다는 뉴스를 접한 뒤에는, 감방에서 죄수들이 내 셀카를 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두려워 SNS에 더 이상 셀카를 올리지 않게 되었다. 그걸 돌려보면서 품평하고 딸 치는 범죄자 새끼들이 있을 것 같다. 이런 공포는 대부분의 여성이 갖고 있을 것이다. 

유명하지는 않지만 사진과 신상 정보가 인터넷에 노출되어 있는 나는, 옛날에 만났던 누군가가 나를 검색해보며 내 삶을 팔로우할 수 있다는 것에 자주 공포를 느낀다. 

더이상 안전하게 한국에서 남성과 섹스를 할 수 없다는 생각도.


나는 성욕이 있다. 그 사실을 말하는 것만으로도 문란한 여성 취급을 받을 수 있다는 것도 안다. 남성의 성욕은 너무나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데 여성이 성욕을 드러내면 그건 낙인이 된다고 배우며 자랐다. 이상한 일이다. 초등학교 오학년 때 수업중에 자위를 하는 남학생이 있었다. 그 아이는 그 행동을 보란듯이 했고 아무 처벌도 받지 않았으며 모두가 함구했다. 왜 그랬을까? 


나에게 성폭력 경험이 있다는 걸 어디 가서 절대 말하지 말라고 나를 아끼는 사람들은 말한다. 지금도 그렇다. 나는 공적인 지면에 그 사실을 쓴 일이 있고 후에 내 시는 피해자가 쓰는 시, 라는 식으로 플랫하게 소비되는 걸 목격하기도 했다. 성매매나 성폭력을 저지른 남성 시인의 시에서 성매매 혹은 성폭력의 흔적을 찾거나 가해자가 쓰는 시, 라는 식으로는 이야기하지 않으면서. 왜 나는 납작해져야 하고 그들은 남자라면 그럴 수도 있다고 혹은 우리가 모르는 게 있을 거라고 실드를 쳐주는 건가? 


N번방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게 아니다. 이 같은 관용이 끝없이 이어지고 이어지고 이어지면서, 그래도 된다고 사회와 가부장제가 옹호하고 수용해주면서 만들어진 것이다. 과연 이십육만 명만 봤을까? 술자리에서 내가 이런 방에 들어가 있는데 이것 좀 봐라? 대박이지? 하면서 돌려보는 일이 없었을까? 내 합리적 의심에 의하면 그걸 본 사람은 단지 이십육만 명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지인을 능욕하고 여성을 노예로 만들기까지 하면서 그들이 구매한 특수한 쾌락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한 번이라도 여성을 동등한 인간으로 생각했다면 도저히 할 수 없었을 그 일들은. 나는 조주빈을 악마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그 사람은 그냥 한국 남자다. 한국 남자를 오래 삶아 만든 엑기스 같은 것이지 다른 종이 아니라고. 


왜 ‘그 판사’가 이 케이스를 맡게 되었을까? 우연일까? 


나는 내가 끝없이 질문하면서 그 질문에 더 올바른 대답을 하려고 노력해야만 하는 이런 삶이 싫다. 왜 싫으냐고? 남자들은 안 그럴 테니까. 왜 무언가를 이해하고 스스로에게 대답을 돌려주려고 애쓰는 것은 늘 약자의 일인가? 


이 글의 전체를 다시 처음부터 읽어보았는데 너무나 두서없다. 그렇지만 이 두서없음이 현재 우리가 처한 삶 그 자체라고 생각해서 일부를 삭제하거나 들어내지 않고 그냥 그대로 송고하기로 한다. 중심 없이 모든 게 흔들린다. 불안 속에서. 그러나 웅크리고 있을 수는 없다고. 생각하고 말하고 떠들어야 한다고. 그러면 말할 수 없는 것들이 점점 실체를 갖게 될 거라고 미력하지만 믿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