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회

홀리는 인간

이렇다 할 사건 없이 하루하루를 보내는 나날 와중에 글을 쓰다보면, 현재보다 기억에 의존하게 되고 간접경험을 통한 감정에 치우치게 되어버리는 것 같다. 어쨌든 글을 써야 하는데 삶에서 오는 사건이나 자극이 없다보니 과거를 뒤적거리게 되는 것이다. 왜 밤이 지나면 아침이 올까? 심장은 왜 몸의 피를 돌리나? 왜 어떤 식물들은 잎보다 꽃을 먼저 내보낼까? 그 순서에는 어떤 이유가 있을까? 봄이 오면 유독 그런 생각을 많이 하는 것 같아. 돋아나는 새싹들이 징그럽고 피어나는 꽃들을 전부 쥐어뜯고 싶은 그런 마음. 망쳐버리고 싶은 것이 있다고, 세계를 더이상 이해할 수 없다고 방황하게 되는 마음. 빛에 홀려버릴 것 같은 현기증. “오징어들은 왜 빛을 좋아해?” 아이가 물었다. 뭐라고 대답해주면 좋을까 고민하다가 추광성을 가진 생물들에 대해 이야기해주었다. 사실 인간도 추광성이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생물의 추광과 인간의 추광은 조금 달라서 생물의 추광이 직진이라면 인간의 추광은 비틀린 나선 같은 거라고. “바닷속이 너무 깜깜해서 오징어들이 빛을 따라가고 싶어하나봐. 그런 걸 빛에 홀리는 거라고 해.” “엄마, 빛을 보고 있으면 이선이가 자꾸 여러 개로 보여. 이선이도 빛에 홀린 거 같아.” 어두운 창문을 보며 아이가 말했다. “그래, 창문이 여러 겹이라서 그래.” 웃으면서 말하고 “얼른 밥 먹자. 식겠다.” 창백한 조명이 창 위에서 두세 겹으로 흔들렸다. 


전에는 모르는 걸 모르겠다고 말하면 엄마도 모르는 게 있느냐고 놀라더니 요즘은 인터넷에 찾아보라고 성화다. 태어날 때부터 스마트폰과 유튜브에 둘러싸여 자라는 지금 세대의 아이들은 나중에 어떤 어른이 될까? 약간 두려우면서도 궁금한 마음이 들었다. 인터넷 쇼핑을 못하고 키오스크 때문에 주문에 어려움을 겪고 마스크를 찾아 약국 앞에 줄을 서는 할머니처럼. 나도 언젠가는 기술과 발전을 따라갈 수 없어 수고를 겪게 될 것이며, 정보와 교류에서 소외될 것 같다. 학교는 코로나19로 인해 4월 6일로 개학이 연기되었는데 이번에는 과연 연기되지 않고 개학을 감행할까? 초중고가 동시에 개학을 하면 분명히 일이 터지고 말 것 같은 불안감이 엄습한다. 애들이 일곱 시간씩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을까 과연? 나도 답답한데. 날씨는 점점 따듯해질 텐데, 생각만 해도 인중에 땀이 흐르는 것 같다. 게다가 마스크를 쓰면 목소리를 더 높여야 하니까 나처럼 웅앵웅대는 작은 목소리를 가진 선생은 그 시간 내내 수업을 진행하면 금방 목이 나갈 것이다. 매일 아침 등원 후에 네이버에 ‘코로나19’를 검색해보는 게 일과가 되었다. 확진자가 몇 명 늘었나, 격리 해제는 얼마나 되었나, 하루 동안 또 누군가가 숫자로 표시되는 죽음을 맞이했는가. 모태교가 천주교이며 십육 년 동안 성당에 다니고 교리를 배운 나는 근래 종종 「요엘서」의 내용을 떠올리게 된다. 냉담자가 된 지 오래되었고 신이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태어나서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받아왔던 교육이 나에게 현재까지 얼마나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지 깊이 통감할 때가 많다. 


얼마 전에 ‘문학과 교육’이라는 주제로 청탁을 받아 글을 쓴 일이 있는데, 나는 솔직히 내가 무슨 문학 교육자라고 할 위인이 못 된다고 생각한다. 나도 못하는 걸 하라고 학생들한테 강요하고 (하루에 시 한 편 쓰기) 계속 입으로 문학을 해야 되기 때문에 괴롭고 위선자가 된 것 같은 느낌을 자주 받는다. 좋은 선생이 되고 싶은데. 처음 강의란 걸 하게 되었을 때는 돌아오는 길에 많이 울었다. 그러다 문득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 될 수는 없는 것이 선생의 노릇’이라던 이원 선생님의 말을 생각했고 그뒤로는 블랙핑크와 소녀시대, 트와이스, 레드벨벳 등 여자 아이돌에게서 커다란 위로를 받게 되었다. 최대 볼륨으로 그것들을 듣고 또 듣고 따라 부르고 있으면 어쩐지 가슴에 얹힌 응어리가 풀려 허공으로 흩어지는 것 같아서 좋다.


그동안 문학을 교육하거나 받는 게 가능하냐는 질문을 세계 여러 나라의 여러 사람에게 받아왔고 그때마다 생각해보았다. 문예창작과에 재학중이거나 습작을 할 때 시인이 되어 여행을 다닐 때, 사람들이 너는 누구냐? 무엇을 하느냐? 물으면 나는 시를 쓴다 혹은 시를 전공한다, 라고 대답하곤 했는데 주로 서구권 사람들은(특히 유럽인들) 시를 쓰는 걸 대체 어떻게 배우느냐? 그게 가능하느냐? 하고 다시 묻는 게 보통이었다. 나는 영어를 유창하게 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렇다 가능하다, 하고 대답하고 돌아와서 밤에 숙소에 누우면 못다 한 말과 질문들이 자꾸 생각나서 뒤척거리기 일쑤였다. 그리고 머릿속으로 되지도 않는 영작을 해보는 것이다. 다음엔 이렇게 대답해야지. 그렇게 한 줄씩 영어로 그네들에게 해줄 대답을 덧붙여나갔다. 피해 의식이 많은 성격이라 그런지 자기네 문학은 짱이고 유구한데 한국이라고?? 한국에도 문학이 있냐?? 대체 무슨 문학?? 그런 느낌을 짙게 받곤 했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불쑥 손을 넣어 휘저어버리는 기분. 누가 그랬어. 외국 나가면 다 애국자 된다고. 내가 무슨 한국문학 대표 선수라도 된 것처럼, 나는 내 대답을 보강해나갈 수밖에 없었다. 지기 싫었고 증명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대체 무엇을? 무엇 때문에? 그러나 아무리 시에 대해 답하려고 애써도 늘 미진했고 충분하지 않다고 느꼈다. 잔여가 있었고 왜곡이 있었다. 시에 대해 이야기 할 때마다 나는 그러한 감정을 자주 느낀다. 그 때문에 시에 대해 말하기를 머뭇거리게 되었고 시에 대해 생각하고 말하기를 멈출 수 없는 요상한 지경에 놓이게 되었다. 


그들은 내가 카프카를 랭보와 괴테와 보들레르와 릴케를 도스토옙스키와 톨스토이를, 심지어는 폴 오스터와 레이먼드 카버까지 읽었다는 것만으로도 깜짝 놀라곤 했다. 이거 왜 이래 나는 고전 뽕 맞고 자랐어. 너네보다 더 많이 읽었어. 이 잘난 백인 놈들아. 그게 내 속마음이었다. 갑분 외국 문학 얘긴데 나는 유년 시절 외국 문학을 너무나 많이 읽었다. 지나칠 정도로. 일주일에 네다섯 권씩 읽으면서 자랐으니까. 민음사 세계문학 전집을 다 읽어야 문학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으며, 도스토옙스키의 전집을 다 읽었고 내가 안 읽은 유명한 책이 세상에 아직 있다는 게 견딜 수 없이 창피했기 때문에 고전을 다 읽어야만 한다고 굳게 믿었다. 그 독서의 시간들은 내게 자랑이자 부끄러움이다. (그래도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다 못 읽었다.) 그 시간들이 나에게 나쁜 영향만 미쳤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나는 그들에 의해 만들어진 세계관을 의심 없이 흡수하고 내재화하며 자랐다. 덕분에 나는 수업 시간에 늘 학생을 향해 자기 고백의 시간을 갖게 된다. 사실은 내가 백인 남성의 책을 너무 많이 읽어버려서……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고 말았노라고…… 내 안에 백인 남성이 떡하니 앉아 있다고…… 

지금 그 사람은 코마 상태인데 영원히 깨어날 수 없게 영양 공급을 차단해버리려고 노력중이다. 이제 그만 숨을 거두소서.


그러다보니 수업시간에는 거의 구십 퍼센트 이상의 확률로 여성 작가의 작품을 함께 읽는다. 내가 그동안 놓친 것과 현재 범람하는 텍스트 중 읽을 것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그 옛날에도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교육을 받았더라면 지금 우리가 읽는 것들, 고전의 반열에 오른 작품의 리스트가 얼마나 달라졌을까? 나는 대학 면접 고사장에 가는 지하철 안에서 쇼펜하우어의 책을 읽었던 기억을 지우지 못한다. 내용은 대략 ‘여성은 동물과 같다. 여성도 생각을 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라는 게 주제였고 거기에 대한 남성 학자들의 난상토론을 적은 글이었다. 나는 그걸 읽으면서도 (열아홉 살이었다) 아 정말 남성은 여성보다 더 뛰어난 생각을 할 수 있는 걸까? 하고 생각하며 어떻게 하면 그들처럼 똑똑하고 지적인 사람이 될 수 있을지 고민했다. 내가 아는 유명하고 잘난 작가나 학자들은 대부분 남성이었으니까. 그들의 이야기에 진지하게 귀기울였다. 나는 너무 취약했고 책에 대한 광적인 믿음(특히 유럽 지식인에 대한 동경)을 신앙화하고 있었다. 너무나 웃픈 이야기다. 


지뢰가 너무 많다. 그것들을 다 피해 갈 수는 없다. 가르침을 위해 텍스트를 선정할 때 가장 어려운 부분이다. 내가 과연 ‘알아야 하는 것과 몰라도 되는 것’을 선별할 자격이 있는가. 훌륭하며 동시에 빻은 작품은 어떤 방식으로 소개해야 하나. 소개할 가치는 있나. 특히 고등학생들을 가르치면서 그런 고민을 많이 하게 되었는데 내가 마치 그들의 문학의 첫 장을 함께 써나가는 것 같은 (착각이겠지만) 기분이 들곤 해서 더더욱 조심스럽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문학이라는 것은 작가로서도 쓰면 쓸수록 멀기만 하지만 선생으로서도 가르치면 가르칠수록 멀다. 근데 또 그런 심약한 내 모습을 들킬 수 없으니까 묵묵히 아는 척하면서, 처음 가본 도시의 가이드가 되어버린 이상한 수행자처럼, 그냥 열심히 진심은 통할 거라고 믿으면서 가르치는 수밖에는 없는 것이다. 여기에서 작동하는 내 믿음의 속성은 결코 나이브한 것만은 아니다. 문학에 대한 경험은 평생에 걸쳐 사후적으로 계속해서 수정되는 것이고, 그건 결코 사전에 전부 예감할 수는 없는 것이기에 늘 미래를 예감하는 동시에 현재에 투신해야만 올바른 태도를 견지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경험적 확신에서 비롯한 것이다. 문학의 시간은 늘 현재에 다름 아니기에. 


합평에 대해서도 고민이 많기는 마찬가지인데 문학에는 절대적 진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입시 혹은 등단을 갈망하는 학생들을 앞에 두고 무엇이든 자유롭게 써나가라고 끊임없이 독려하는 나는 종종 죄책감을 느낀다. 어떻게 하면 실기를 잘 치를 수 있는지를 가르치는 게 중요한가, 좋은 시를 쓸 수 있게 이끌어주는 게 중요한가. 나는 높은 확률로 먹혀들 실기 비법을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그것을 학생들에게 주입하는 교육을 하지 않는다. 실기는 잘 치를지 모르지만 훗날 문학을 하는 데 그 경험이 오히려 안 좋게 작용할 가능성이 더 크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좋은 시는 무엇인가. 공식으로 존재하지 않지만 우리는 정말 좋은 시를 읽으면 그게 좋은 시인 줄 안다. 근데 진짜 아나? 누군가에게는 그 시가 안 좋을 수도 있잖아? 그런 것을 하나하나 고려하면서 수업을 진행할 수도 없고, 결국 내 문학관이 반영될 수밖에 없는 노릇인데 말이죠. 내 문학관이 그른 것이면 어떻게 하죠? 결국 문학 교육에 종사한다는 것은 범죄자이면서 형사인 상태를 유지해야만 가능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합평 시간에 되도록 시의 좋은 면을 발견하려고 그리고 장점을 강조해서 이야기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비판(비난)과 비평의 경계가 아슬아슬하다고 여기기 때문에 안전한 곳에 있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비난은 결코 잊히지 않는다. 족쇄가 되어 시를 쓸 때마다 머릿속 언저리를 떠돌며 속삭인다. 이렇게 쓰면 분명히 안 좋은 이야기를 들을 거라고 속삭인다. 그건 쓰는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의 통로를 폐쇄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다. 나는 그 비난을 전면 돌파하는 힘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굳이 시험에 들게 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한번은 누군가가 낭독회가 끝난 후 내게 와 말한 적이 있다. 자기 친구가 내 수업을 들었다고 그 이후로 친구가 시를 쓰는 데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고. 난 항상 생각해. 그 말을. 왜 네가 시를 쓰기 힘들어진 건지 그게 나 때문인지 내가 네게 어떤 말을 하고 어떤 시를 읽어주었는지. 네가 어려움 속에 있을 때 내가 힘이 되지 못했다는 것에 나는 슬프고 이루 말할 수 없이 무력감을 느끼기도 해. 너는 집에 가서 혼자 남은 시간에 어둠 속에서 내 말들을 되짚어보곤 했을까. 그게 네 발목을 잡은 걸까. 네가 나를 미워하더라도 시만은 미워하지 않기를 바라. 나도 그때보다는 더 나은 사람이 되어 가르치려고 애쓰고 있어. 그렇다. 수업을 하다가 고개를 들고 학생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찬찬히 살펴보고는 한다. 이상한 일이다. 도대체 이 좋은 날 왜 여기까지 와서 시를 쓰겠다고. 시가 뭐길래. 붙들려버려서. 


쏟아버린 말과 하고 싶었던 말 사이에는 늘 커다란 강이 있고. 수심은 헤아릴 수 없고. 리베카 솔닛이 『길 잃기 안내서』에서 말라버린 소금 호수를 걸어서 건너던 날의 이야기를 기억한다. 말라버린 소금 결정들이 장미 다발처럼 빛났고 그 아름다움에 다가가고자 손을 뻗어 소금을 들어 올린 순간 손안에서 부서지고 시들고 사라져버린 어떤 푸름에 관한 이야기를. 그 이야기는 삶과 사랑과 그리고 시와 너무나 긴밀하게 이어져 있다. 


그렇게 사람과 사람 사이도 멀리 있어서 갈망하게 되는 것 같다고.


나는 그 심연을 다 보았다고 말하고 싶지 않다.


대신에 추적과 발견의 허방에는 결코 믿을 수 없는 목격만이 남는다고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