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회

불행이 찾아오는 이유―1

너 그거 알아? 하루에 검은 새를 세 번 보면 불행이 찾아온다는 말. 그런 말을 믿었어? 


울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엉엉 울고 싶다고. 기절할 때까지 울고 울다가 눈이 멀어버렸으면 좋겠다고 빌던 어린 나처럼 침대에 누워 베개가, 귓속이 축축해지는 걸 느끼면서 온전한 자기연민에 가득차 수도꼭지처럼 울고 싶다. 그런 방식은 나에게 가능하지 않다. 언제부터 격정의 눈물은 나를 두고 사라져버린 걸까? 마지막으로 운 게 언제였는지 잠시 생각해보다가 <사랑의 불시착>에서 ‘귀때기’라고 멸시하듯 사람들이 부르던, 도청을 직업으로 하던 남자가 자기가 들은 걸 보고할수록 선한 것들이 사라져간다는 걸 깨닫고 혼자 울면서 소주를 마시던 장면에서 나도 울었던 것을 떠올렸다. 그는 듣기만 하고 말할 수 없다. 가장 가까운 사랑하는 사람에게도 진실을 털어놓을 수가 없다. 예전에 좋아했던 영화 <타인의 삶>이 생각나는 이야기이다. 아마 드라마 작가도 그것을 염두에 뒀으리라. 


너 그거 알아? 하루에 검은 새를 세 번 보면 불행이 찾아온다는 말. 그런 말을 믿었어? 


들은 것을 도저히 이야기할 수 없을 때 우리는 알레고리를 만들어낸다. 그렇게 늑대와 돼지의 이야기가 생기고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가 생기고 마녀가 아이들을 잡아먹는 이야기가 생겨나게 되는 것이리라. 결국 알레고리라는 건 슬픔의 장르인 것이다. 이 겹들을 걷어내고 그 안에 있는 것을 봐달라는 절박한 외침에 다름 아니다.


오늘은 반 아이들과 온라인 수업(결국 온라인 개학을 하게 되었고 나는 슬프다) 테스트를 해보았고 평소에도 큰 반응이 없기로 유명한 우리 반 아이들에게(선생까지 전부 인프피INFP 모임인 것?) 랜선 너머에서 대답을 이끌어내기가 퍽이나 힘들 것 같다는 예감에 한숨을 쉬었다. 빨리 실물로 만나고 싶다. 얘들아. 목요일에 개학하고 나서 또 후기를 남겨야겠다.


오늘은 버터가 잔뜩 들어간 빵이 먹고 싶었고 실제로 먹은 건 오뚜기 컵밥이었고 바람이 많이 불었고 돌아갈 수 없게 되어버리는 어떤 한 순간에 대해 골몰했다. 이 년 전 절교한 친구에게 긴 편지가 왔고 편지는 나를 감동시켰고 그 친구는 드디어 나를 이해했지만 나는 더이상 예전의 내가 아니라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우리가 멀어지게 된 것은 무엇 때문인가? 나는 알지만 말할 수 없다. 말하고 싶지 않다. <타인의 삶>에 대한 얘기가 나와서 말이지만 내가 독일 나치하에 태어났어도 나는 히틀러에 저항할 수 있었을까? 나치의 유대인 학살에 대해 생각할 때 나를 포함한 대부분이 자신을 유대인의 위치에 놓은 다음 그 시대를 상상하곤 한다고 느낀다. 모두 가해자보다는 피해자가 되고 싶어한다. 자신의 고결함과 존엄함을 너무 쉽게 믿는 게 아닐까. ‘나는 피해자다’라고 생각하면서 오래 살았고, 지금은 나는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이기도 했으며, 지금도 그렇다고 생각한다. 나는 오래도록 말할 수 없는 것들을 내 안에 적재하며 살아왔다. 그것을 내 안에 안전하게 가두어두면 모든 것이 잘될 거라고 믿었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았고, 말은 육신을 돌며 끝없이 메아리친다. 유령처럼 잡히지 않으며 모든 곳을 통과한다. 


너 그거 알아? 하루에 검은 새를 세 번 보면 불행이 찾아온다는 말. 그런 말을 믿었어? 


나는 알레고리로 가득찬 내 시가 징그럽고 무서워. 부릅뜬 눈들이 싫다. 더이상 읽고 싶지 않아졌다. 나는 내 시집 『가능세계』가 피해자의 거대한 진술서 같아서 진절머리나게 싫을 때가 있다.

시집 내고 한 번도 통독한 적 없다. 한 번 각 잡고 1부까지 읽어본 적은 있다. 너무 멀다는 생각에 기분이 묘했다. 돌아갈 수 없는 지점 중 하나가 되었구나. 무연하고 아름답고 아름다운 메타포들. 토하고 싶다. 구역질이 난다. 나는 왜 그렇게 사로잡혀 있었나. 무엇을 이해하면 깨끗해질 수 있을까. 나의 가장 깊은 고민. 몸의 장기들을 하나씩 꺼내 세탁기에 돌린 다음 다시 장착하고 싶다. 새것을 갖고 싶다. 피를 바꾸고 싶다. 종종 작가들이 자신이 가장 애착을 갖는 것은 마지막 작품, 늘 마지막 작품이라고 말하는 것을 본 일이 있다. 점점 멀어지니까 그런 거 아닐까요? 작가란 것은 내밀한 자신의 내부와 끝없이 멀어지는 일 같아서. 소중한 빛은 하나씩 꺼져버리고 길을 잃어버리게 되고 애초에 가능한 것은 헤맴뿐이었다는 걸. 쓸수록 불행의 구렁텅이로 걸어가는 것 같고 그게 기뻐서. 언제까지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을까? 계속 멀어지다가 블랙홀 속으로 빨려들어가 소멸해버리면 어떻게 하죠. 공전하는 법을 배워야 하는데. 그런 배움이 간절한 순간에는 어쩐지 『헨젤과 그레텔의 섬』에 실린 작가의 서문이 떠오르곤 한다. 차라리 아주 깊이깊이. 꽁꽁. 그것도 하나의 돌파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내가 이혼을 했다고 해서 공공재가 된 것은 아니다. 내가 이혼한 것은 내가 되기 위해서이다. 언제나 사랑에 빠질 준비가 된 여성 1로 나를 보지 말아줬으면 좋겠다. 이혼녀의 의미가 니가 나한테 마음을 품어도 된다는 혹은 니가 마음을 주면 내가 보답할 거라는 뜻은 아니다. 정신 차려라. 너를 안 만난다고 해서 다른 남자가 있다는 뜻이 아니다. 제발 좀 한남 종특을 나한테 보이지 말고 조용히 해라. 죽여버리기 전에.


오늘 온라인 수업을 했고 에너지가 두 배로 들었고 집에 오는 길 차 안에서 공황이 왔다. 예전엔 공황이 뭔지 몰랐는데 이혼과 함께 찾아온 질병 중 하나다. 복합적 원인이 있겠지만, 나는 그럴 때 땀을 흘리고 감각이 둔해지고 모든 것과 멀어지고 숨을 쉬는 데 어려움을 느낀다. 덫에 걸린 기분 같은 것일까? 아이들은 수업에 잘 따라주었고 합평을 하는 것은 걱정했던 것보다 즐거웠어. 나는 이 년째 같은 반 아이들을 맡았고 그만큼 더 아이들에게 깊은 애정을 갖고 있다. 무엇이 될까 너희들은 커서. 너무나 예쁘고 밝다. 그런 너희의 곁에 내가 있어도 된다니 그게 고맙고 미안해. 이제 고3이 된 아이들이 코로나 때문에 집에서 입시에 대한 불안 속에 있다는 생각을 하니 걱정이 많다. 아이들에게는 지금 그것만 보이니까. 그치만 나는 가끔 너희에게서 무한을 보고는 해. 


작년에 이제 나를 더 잘 보살펴야 한다는 생각에서 건강검진을 받았다. 태어나서 종합적인 검진을 받은 건 처음이었는데 나는 의외로 의료 소견상 건강했고 운동을 하라는 권고를 받았지만 그러진 않았다. 운동을 해야 되는데 왜 하고 싶지 않을까. 너무나 피로하기 때문이다. 제 간하고 폐 좀 잘 봐주세요, 하고 말했던 게 생각난다. 검진만 전문으로 하는 강남의 유명한 병원이었고 모든 직원과 의사가 여성이었고(내시경사 한 명만 빼고) 공장처럼 환자가 돌아가는 시스템이었고 젊은 중국 여성들을 잔뜩 데리고 온 한국 남자가 있었고 나는 결혼 브로커 같은 걸 생각했고 기분이 몹시 우울해졌던 게 떠오른다. 그래 요즘 국제결혼으로 신부를 사는 남자들은 그 여자를 사전에 검사하겠지. 마치 품질보증서 같은 결과지와 함께 신부가 신랑에게 배달되겠지 그런 생각이 들어 또 인류애가 소멸하는 기분이 들었다. 어째서 대부분의 일은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가? 너무나 부조리하다. 사람을 돈 주고 사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여기는 인간은 세상에서 사라졌으면 좋겠다.


너 그거 알아? 하루에 검은 새를 세 번 보면 불행이 찾아온다는 말. 그런 말을 믿었어? 


오늘은 일찍 일어났고 물티슈로 바닥을 세 번 닦고 빨래를 돌리고 빨래를 돌리고 또 빨래를 돌렸고(이불을 전부 빨았다) 야채를 볶아 비빔밥을 해 먹었다. 나는 야채를 써는 게 좋다. 썰면서 수북해지는 것들을 보는 게 좋다. 칼질을 하는 순간에는 아무 생각도 들지 않는다. 뜨개질을 하는 것처럼, 악기 연주에 몰두한 것처럼. 그렇게 무상의 시간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좋다. 쓰는 것과는 다른 정신의 근육을 사용하는 것 같아서. 따로 나물을 무치지 않고 호박, 양파, 버섯, 당근, 가지를 썰어 아보카도유로 볶아 밥에 얹어 비벼먹는다. 그러면 건강을 챙긴 기분이 들고 그래서 조금은 몸에 나쁜 짓을 더 해도 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애써 닦고 돌아서도 집은 반나절 만에 엉망이 되고 빨래통은 빈 적이 없다. 매일매일 끼니를 챙기고 집안일을 해야만 삶이 굴러간다는 것이 낙담스럽다. 송지현 소설가는 집안일을 시시포스의 노동이라고 자주 한탄하곤 했는데, 집안일은 시시포스의 노동이며 글쓰기는 프로메테우스의 고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은 사전 투표를 하러 다녀왔고 노브랜드에 가서 팩 와인을 샀다. 벽에 차를 들이받았고 엄마에게 혼이 났다. 엄마에게 혼나는 나를 아이가 신기하게 보며 “왜 목소리가 바뀌었어?” 물었다. “엄마도 잘못하면 엄마한테 혼나. 마음이 속상해서 그래.” 차를 들이받은 건 양보를 하려다가 그런 것이고 나는 운전중 주로 그런 실수를 저지르곤 하는데, 혼을 내고 몇 시간 뒤 엄마는 사실 그게 자기를 보는 거 같아서 더 속상하고 화가 난다고 했다. 그렇다, 부모란 자식에게서 자신의 단점을 발견할 때 더 화를 내곤 하나보다. 예전엔 유전자라는 것을 믿지 않았는데 엄마가 되고 나니 실로 유전자란 무서운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아이는 내가 가르친 적도 없는 놀이를 만들어서 하고는 하는데 그게 대부분은 내가 어렸을 때 혼자 하던 놀이일 때가 많다. 잘못을 숨기려고 뻔히 보이는 거짓말을 하는 것도 똑같고, 일부러 더 크게 보란듯이 우는 것도 그렇다.


어렸을 때 『죄와 벌』을 읽으며 라스콜리니코프가 살인을 자백하고 회개하며 땅에 입을 맞추는 것을 보고 의아했던 기억이 난다. 내가 감정 없는 소시오패스라고 오래 믿었기 때문이다. 나는 학생 시절에 말이 없고 말이 없고 아주 말이 없는 아이였다. 지금의 모습을 아는 지인들은 그 말을 믿지 않을 것이다. 유년 시절 말이 없는 유형 중 다수는 말을 해도 아무 소용 없다는 것을 알게 되어서라고 생각한다. 나는 말을 의도적으로 멈추었고 때로는 실어증에 걸리게 해달라고 혹은 기억상실증에 걸리게 해달라고 기도하곤 했다. 말을 지우면 표정도 지워지고 감정 표현도 억제하게 된다. 말과 표정과 감정은 연동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누군가가 나를 들여다보려고 하는 것을 경멸했으며 대부분의 인간을 혐오했다. 나는 유능한 킬러가 되는 상상을 자주 해보았고 상대를 어떻게 천천히 고통으로 몰아 죽음에 다다르게 할 것인지를 노트에 상세히 적어보곤 했다. 범죄 도구는 다양했다. 손톱깎이, 가위, 바늘, 연필, 드라이버 등. 나는 유독 계단에서 시작하는 것을 선호했는데 체구가 작은 여성이 우위를 점할 수 있는 장소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먼저 계단을 내려가는 사람을 발로 차 굴러떨어뜨려 기절시킨 다음 일에 착수한다. 상대는 주로 아버지나 나를 배신했던 베프거나 고3 담임이었다. 노트의 페이지가 많아질수록 나는 점점 자신감에 도취되었던 것 같다. 언젠가 복수의 순간이 오면 나는 그것을 잘해낼 수 있을 거라고. 

그 생각이 바뀌게 된 것은 대학생 때 꿈을 꾸고 난 뒤였다. 꿈은 이러하였는데, 나는 누군가를 아주 잔인한 방식으로 살인했다. 그리고 울면서 잠에서 깨었고 며칠 동안 잔상에 시달렸다. 그때 나는 나에 대한 진실을 발견하게 된 것 같다. 살인을 저지르고는 절대 편한 마음으로 잠들 수도 먹을 수도 살아갈 수 없는 인간이 바로 나라는 것을. 그후로는 누군가를 죽일 생각을 하지 않게 되었으며 모의 살인을 연습하는 글쓰기도 함께 멈추었다.


너 그거 알아? 하루에 검은 새를 세 번 보면 불행이 찾아온다는 말. 그런 말을 믿었어? 


나는 복합적인 삶을 여러 각도로 들여다보며 세상에 확신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깨달았다. 확신에 가득찬 사람이 싫다. 그게 무엇에 관한 확신이건 간에 싫다. 그런 사람들은 대게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가스라이팅을 한다. 그게 가스라이팅인 줄도 모른다. 스스로를 절대적으로 믿기 때문이다. 나는 관계 맺기에 너무나 서툴고 가스라이팅을 하는 상대방에게 쉽게 사랑에 빠지곤 했다. 쉽게 마음을 열지 않는 만큼 마음을 한번 열면 버림받는 게 두려워서 관계에 끌려다니곤 한다. 모든 게 다 나 때문이다. 내 잘못이다. 그런 생각을 끝없이 하면서 더 잘하려고 애쓰면 애쓸수록 관계는 점점 이상해지고 나는 눈치를 보고 불행해진다. 그걸 반복하게 되면 불신만 더 쌓이게 되고 더 마음을 열기가 어려워지고 더 어렵게 어렵게 연 마음을 닫기가 어려워서 더 끌려다니게 되고 그러면 또 모든 걸 망치게 되고 반복적 악순환의 고리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나는 참으로 무지한 인간이다.


너 그거 알아? 하루에 검은 새를 세 번 보면 불행이 찾아온다는 말. 그런 말을 믿었어? 

너 그거 알아? 하루에 검은 새를 세 번 보면 불행이 찾아온다는 말. 그런 말을 믿었어? 

너 그거 알아? 하루에 검은 새를 세 번 보면 불행이 찾아온다는 말. 그런 말을 믿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