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회

가라앉은 상자

너무 졸리다. 빨리 잠들고 싶다. 


입에 큰 돌을 물고 손을 뒤로 묶은 채 깊은 물속으로 가라앉고 있다.


수면을 흩치며 쏟아지는 빛을 본다. 


빛을 본다.


문득 저 빛은 누구의 것일까 궁금해진다.


눈물은 쉽고 침묵은 어렵고 두 팔은 닿지 않는다.

어디에도, 어디에도.


지금의 세계는 끓고 있는 커다란 기름 솥 같다. 


그러니 내가 더 쓸 말이 남아 있다면 그것이 신비일 터.


빛과 빛의 없음을 동시에 본다.


놀란 짐승이 풀숲에서 고개를 들고 사방을 둘러보는 것을. 

그 눈동자의 투명한 공포를 본다.


잠들고 싶다. 잠들어서 아주 깊이 잠들어서 끝의 끝에 깨어나 폭소를 터뜨리고 싶다.


손가락질하며 웃고 싶다.


너무 졸리다. 아직 해야 할 일들이 많이 남아 있다. 그런 밤에 종종 생각한다. 언제까지 이대로 살 수 있을까. 밖에 나가 수업하고 집안일하고 아이를 키우고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계속 살 수 있을까. 나에게는 도움이 절실하다. 이렇게 소진되며 시달리며 계속해나갈 수 있는 일인가. 가능할까 나는. 남은 수십 년간 반복하며 작동할 수 있을까.


두 팔은 처음부터 내 것이 아니었던 것처럼 감각이 무뎌지고 있다.


마음을 놓고 편히 쉴 수 있는 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 차를 몰고 멀리 아주 멀리 가서 일주일만 가만히 있다가 너무 심심해서 너무 외로워서 다시 기어나오고 싶다.


누군가가 나를 만져주면 좋겠다. 참을 수 없다는 듯 사랑으로 가득찬 손이 나의 머리카락을 두 뺨을 입술을 만져주면 좋겠다. 나는 꼭 안겨서 울고 싶다.


힘들다고 소리 내서 말하고 싶다.


그러나 지금은 너무 졸리다. 무너져 잠들고 싶다. 아무런 꿈도 꾸지 않고 잠들고 싶다.


잘 익은 빵이 되어 빵집 선반에 쌍둥이들과 어둠 속에 함께 누워 

조용히 손을 기다리고 싶다.


몇 년째 아무도 사 가지 않는 옷이 되어 마네킹에 걸린 채 

숨을 거두고 싶다.


*


수면 아래에는 무엇이 쌓여 있을 거라고 예감해? 나는 종종 내가 잃어버린 목걸이가 어딘가 아주 깊은 바닷속에서 주인 없이 흔들리고 있을 거라고 생각해. 그것을 다시는 찾을 수 없다고 생각하면 아주 마음이 아파.


그건 할머니가 내게 태어나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준 선물이었고, 터키의 바다에서 잃어버렸고, 할머니는 돌아가셨으니까. 이제 다시 내게 선물 줄 수 없으니까. 그런 것을 생각하며 가만히 새벽 시간 속에 앉아 있으면 할머니가 보고 싶어져서 마음이 아파.


우린 그다지 애틋한 사이가 아니었는데도 가끔은 그래. 계속해서 ‘너는 누구야?’ 묻던 장면이 생각난다. 그땐 서운하기도 하고 눈물이 나기도 했다. 계속해서 ‘너는 누구야?’ 그 질문을 끝없이 하는 나와 닮은 야윈 얼굴을 내려다보고 있는 거 괴로워서 금방 돌아오곤 했다. 


할머니는,

아기 같았지 참 그랬지. 


할아버지가 먼저 돌아가시고 나서는 금세 안 좋아졌다. 내 눈에는 서로 의지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는데 난 사실 잘 몰랐던 것 같다. 두 사람의 관계를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다. 할머니에게 할아버지는 어떤 존재였을까? 궁금하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얼마 전에는 엄마와 함께 요양원에 갔던 일도 기억이 난다. 거긴 꼭 신생아실 같았다. 누가 누군지 구별되지 않고 모두 침대에 누워 쌔근쌔근 잠들어 있는 나무들 같았다. 모두가 너무 말라서 누가 누군지 알 수가 없었다. 이름표를 하나하나 읽어내려가며 그 침대들 사이를 걷다가 할아버지를 발견하고 깜짝 놀랐던 게 생각난다. 이게 내가 알던 할아버지라니. 이렇게 초췌하고 거죽만 남은 딱딱한 뼈가 숨을 쉬고 있다니. 무서웠다.


나에게 그 일은 큰 충격이 되어 오래오래 남아 있다. 죽음의 가장 가까이에 있는 것을 목격한 일이. 그때를 글로 쓴 적 없다. 몇 번 친구들에게 그 경험을 말로 한 적은 있어도 쓸 수가 없었다. 그럴 수 없었다. 왜 그랬을까. 그리고 왜 이제 와서 나는 그 이야기를 쓰고 있는 것일까.


말과 글은 이만큼이나 멀고 아득하다. 우리는 그것들이 우리 내면에서 정확히 어떠한 메커니즘으로 작동하는지, 사람이 내밀한 것을 말할 수 있게 될 때와 그것을 마침내 글로 쓸 수 있게 될 때의 순간을 절대로 쉽게 예상하거나 알아낼 수 없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외갓집에 가서 놀고 있으면 무뚝뚝한 할아버지는 종종 사브레를 사다주시곤 했다. 그때는 왜 많은 과자 중에 이걸 사왔을까? 과자를 반기는 마음과 실망감이 함께 들었는데. 지금은 아무 걱정 없이 소파에 앉아 과자를 또각또각 깨물어 먹던 그때가 조금은 그립기도 하다. 하루만 그날로 돌아갔다 돌아오고 싶다.


이런 마음들이 쌓이고 쌓여 사람들은 시간여행을 꿈꾸게 되는 거겠지?


나도 예전에 시간을 여행하는 작가에 대한 시를 쓴 적이 있다. 그 작가는 자신이 쓴 글을 다시 쓰기 위해 과거로 여행을 한다. 나는 <터미네이터> 시리즈를 몹시 좋아하는데 그 영화의 구조에 대해 오래 생각했고 그런 시간을 거스르는 이야기를 시로 써보고 싶다고 늘 생각했었다. 아마 그런 영향에 의해 그 시를 쓰게 된 것이 아닌가 싶다. 나는 과거로 가서 나를 구해내고 싶었다. 어리고 철없고 쉽게 마음을 나누어주던 나를 그로 인해 화를 입은 나를 구하고 싶었다.


과거의 사건을 움직이면 인과율이 바뀌어 현재도 뒤집힌다. 나는 오늘 주현이와 함께 방에 앉아 과거로 갈 수 있다면 우리는 어떤 선택을 했을지 이야기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젊을 때 더 많이 놀 걸 그랬다는 생각이 든다. 너무 찐따같이 살아서 그때 못 논 한이 쌓여 지금 자꾸 철없는 짓을 하게 되는 것 같다. 그리고 한 달만 대학생이 되어 여름방학을 아주 게으르게 보내고 싶다. 누워서 자고 또 자고 더이상 잠이 안 올 때는 일어나 극장에 갔다 오고 싶다. 이왕이면 아트시네마에 가고 싶다. 회고전 같은 것을 보며 지루함을 즐기고 싶다. 낙원상가 주변에 즐비한 포차에서 혼자 술도 한잔해보고 싶다.


나는 소개팅 미팅 클럽 나이트에 대한 경험이 없다(등단 초기 남녀 문인 8명과 함께 성인 나이트 가본 거 빼고). 미친듯이 춤추고 소개팅도 하고 혼자 김칫국도 마시고 그런 탕진하는 시간도 보내보고 싶다. 막상 해보면 괜히 했다 싶겠지. 그래도.


나는 과거로 가면 아이를 낳았을까, 하고 생각해본 적이 있다. 누군가는 나를 맹렬히 비난할지도 모르지만 그런 생각을 속으로 은밀히 해본 적 있다. 그때마다 내 대답은 ‘그렇다’였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해보았다는 것만으로 아이에게 미안하다. 커서 이거 읽으면 어떻게 해. 그래도 이해해줘. 엄마가 너무 힘들어서 그래. 


*


종이 울리고 왕은 높은 단상 위에 높은 의자에 앉아 붉은 깃발을 세운다. 그때 기다렸다는 듯 스무 명의 목이 차례차례 떨어져 흙 위를 뒹굴었다. 


얼굴은 모두 눈 코 입이 지워진 채였다.


하얀 공이 바닥을 구르며 텅 빈 소리를 울린다.


멀리서 바람을 타고 하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가라앉은 상자를 끌어올려라 가라앉은 상자를 끌어올려라

가라앉은 상자를 끌어올려라 가라앉은 상자를 끌어올려라


하루종일 그 장면과 말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나는 아주 조심스럽게 투명한 구슬을 입에 넣고 굴리듯 그 말을 혀끝에서 굴린다.


왜 이런 말이 나를 찾아와서 떠나지 않는지 궁금해하며 주차를 하고 엘리베이터 앞에 멍하니 서 있었다.


나는 중얼거렸다. 수면부족일 거야. 


집에 들어와 아이를 씻기고 물놀이를 하고 책을 읽어주고 이제 제발 자라 늦었다는 말을 백 번쯤 하면서 아이를 재웠다. 이 모든 일은 내일도 벌어질 것이고 모레도 벌어질 것이다. 그다음날도 그다음날도 그다음날도.


미안하지만 가라앉은 상자를 끌어올릴 시간이 없어요. 잘 시간도 없거든요.


너무 졸리다. 자고 내일 또 이어서 써야겠다. 잠은 보약인데 보약이 너무 멀다.


*


정확히 어제와 같은 일을 반복하고 다시 책상 앞에 앉았다. 요즘은 엄마가 내가 연재하는 산문을 챙겨 읽으신다. 내게 일어난 일을 내가 말하기 전에 미리 알고 있고 그런다. 엄마가 읽는다고 생각하니 어쩐지 앞에 쓴 일들이 조금 신경이 쓰인다. 엄마, 보고 있어? 엄마. 


나는 글을 쓸 때, 쓰다가 막히거나 더 어떻게 진행시키는 것이 옳은지에 대해 고민할 때면 책상에 놓여 있는 모래시계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곤 한다. 아주 가늘게 모래가 쏟아지는 소리가 들리고 모래가 점점 쌓이는 것이 보인다. 내가 멍하니 있는 동안에도 계속 시간은 흐르고 있다. 


나에게는 한 시간짜리 모래시계와 삼십 분짜리 모래시계가 있다. 주로 글을 쓸 때 시간을 재려고 사용하고 급하게 책을 읽을 때도 사용한다. 아주 천천히 글을 쓰고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하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을 때가 많다. 그럴 때는 저 모래가 다 사라지기 전에 몇 매를 써야지, 몇 쪽까지 읽어야지, 그런 경쟁을 하는 것이다. 그건 의외로 효과가 좋다. 한동안은 뽀모도로 앱을 쓰기도 했는데, 역시 나는 조금 뒤처진 사람이라 그런지 물성이 있는 것이 더 와닿는다.


나중에 아주 넓은 책상을 갖게 된다면(지금 완전 비좁고 쓰레기통 같음) 분별로 모래시계를 모아 책상 위에 일렬로 올려놓고 싶다. 


언젠가 원 없이 잘 수 있는 날이 내게도 올까? 인생에는 만렙이 없는 것 같다. 


붉은 깃발이 자꾸 생각난다. 가라앉은 상자를 끌어올려라, 그 얘긴 시로 쓸걸. 언젠가 그걸 제목으로 시 써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