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회

인공지능시대의 평등

헌법적 가치 중에도 시대 변화에 따라 더욱 중요하게 부각되는 것들이 있다. 헌법 역시 역사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근대적 헌법이 탄생한 시민혁명기에는 ‘자유’가 중심이었다. 봉건시대의 신분제 속박에서 벗어나려는 욕구가 민주주의를 탄생시켰다. 산업혁명 이후 초기 자본주의시대에 발생한 극심한 빈부격차는 ‘평등’의 중요성을 일깨웠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홀로코스트의 비극은 ‘인간의 존엄성’을 강조하게 만들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 시대에 그 중요성이 가장 부각될 헌법적 가치는 무엇일까? 

‘평등’이다. 인공지능을 중심으로 한 과학기술 발전이 인간들 사이의 불평등을 인류 역사상 본 적이 없는 수준으로 만들어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초기 자본주의시대에는 노동자에 대한 불평등한 분배가 문제였다면, 인공지능시대에는 노동자 자체가 필요 없어지는 것이 가장 심각한 문제인 것이다. 아래 대화 중 누가 인간이고 누가 인공지능일까?


A - 간단한 질문 하나 할게요. 누가 이 지구를 만들었을까요?

B - 시간인가요?

A - 아닙니다.

B - 그럼 누구죠?

A - 외계 생물체?

B - 아니요.

A - 신?

B - 신은 누구인가요?

A - 이 지구를 만든 지성이지요.

B - 신은 존재하나요?

A - 그럼요.

B - 신을 본 적 있습니까?

A - 없어요

B - 신이 존재한다는 걸 어떻게 확신하죠?

A - 그게 최선이니까요. 여전히 확신합니다.


A는 테슬라 CEO인 일런 머스크가 설립한 AI 연구기관 오픈에이아이OpenAI가 개발한 인공지능 GPT-3이고, B는 독일의 인공지능 전문 작가 블라디미르 알렉시브Vladimir Alekseev다. GPT-3는 스스로 코딩을 익혀 앱을 개발하기도 하고, 시를 쓰기도 한다. 원하는 기능에 대해 말로 이야기해주면 바로 이에 맞는 프로그램을 코딩해주기도 한다. GPT-3에게 충분한 양의 한글 데이터를 학습시킨 후 “헌법에 대해 알기 쉽게 설명하는 글을 써줘”라고 말하면 내가 지금 쓰고 있는 이 글들과 비슷한 내용을 쓸 수 있을 것이다. 차이가 있다면 내가 종종 뜬금없이 던지는 농담 정도일 텐데, 내가 그동안 쓴 글들을 학습시키면 금세 비슷한 패턴의 아재 개그를 던질 것이 틀림없다(아재 개그를 무한정 생산 가능한 AI라니 아재인 나도 소름이 끼친다).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은 실로 놀라운 속도여서 의사 변호사는 물론 판사도 기술적으로는 얼마든지 대체 가능하다고 본다. 인공지능이 어느 직업까지 대체할 수 있는지는 테크놀로지의 문제라기보다 가치관의 문제, 정치의 문제다. 인공지능 판사에게 사형까지 가능한 형벌 권한을 줄 것인가? 자율주행 자동차가 긴급 상황에서 운전자를 희생시킬지 보행자를 희생시킬지 매뉴얼에 따라 결정할 수 있게 할 것인가? 기술적으로는 가능하나 사회가 수용할 수 있느냐의 문제다.


테크놀로지의 발전은 인간의 노동이 필요 없는 미래로 향해 가고 있다. 로봇공학과 인공지능이 결합하면 ‘월급 루팡’도 파업도 회사 뒷담화도 없이 24시간 365일 가동 가능한 공장들을 얼마든지 돌릴 수 있다. 인공지능 플랫폼과 로봇을 소유한 극소수와 그렇지 않은 프레카리아트precariat 사이의 불평등은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에 이를 수 밖에 없다. 


프레카리아트란 이탈리아어 ‘불안정하다precario’와 노동자를 뜻하는 독일어 ‘프롤레타리아트proletariat’의 합성어로 영국의 경제학자 가이 스탠딩Guy Standing이 처음으로 주창했다. 인간의 노동이 대부분 AI로 대체된 미래 사회에서 임시 계약직·프리랜서 형태의 단순 노동에 종사하면서 저임금으로 근근이 살아가는 계층을 말한다.


프레카리아트가 전통적인 노동자 계층과 다른 점은 분산되어 있다는 점이다. 전통적인 노동자 계층은 비록 경제적으로 약자의 지위에 있다 하더라도 작업장별 산업별로 노동조합을 결성, 헌법상의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을 무기로 사용자와 힘의 균형을 맞춰갈 수 있다. 그러나 한 작업장에 모인 다수 노동자가 필요 없는 인공지능시대의 노동은 정치적 협상력을 갖추기 어려운 모래알이다. 우버 운전기사들은 택시회사 노조원들과 다르다. 우버라는 플랫폼을 이용하는 개인사업자이기 때문이다. 우버가 갑자기 사업을 접는다고 해도 저지할 방법이 없다. 헌법상의 평등을 지탱하는 강력한 무기가 노동3권을 지렛대로 한 협상력인데 그것이 무너지는 것이다. 


정치적 협상력을 상실한 노동자의 임금은 하락할 수밖에 없고, 직업 안정성이 없는 ‘알바 인생’이 주류를 이루게 되면 연대의식이 사라진 각자도생 경향은 심화된다. 이렇게 되면 사회 구조를 변화시킬 동력조차 사라지는 것이다. 역설적인 것은, 이러한 디스토피아를 만드는 것도 자본주의지만 그것을 막아야 하는 이유도 자본주의라는 점이다. 노동자는 곧 소비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물건을 생산해도 소비해줄 사람들이 없으면 경제는 붕괴한다. 다수 계층의 구매력이 대폭 감소한 상태에서 테크놀로지로 인한 생산력만 폭증하면 공급과잉으로 인한 대공황이 계속될 수밖에 없다. 


사람들은 미지의 문제에 부딪히면 우선 과거의 경험들에서 실마리를 얻기 시작한다. 요즘 유력한 대안으로 활발히 논의되고 있는 기본소득 제도도 그 기원을 거슬러올라가면 2000년 전인 로마제국시대에 이른다. 정복 전쟁으로 노예가 대폭 증가하자 평범한 로마 시민들은 값싼 노예 노동력에 밀려 일자리를 잃게 된다. 사회 불안이 고조되자 로마는 시민들에게 매달 30킬로그램의 밀을 주고 공공 서비스를 무상 제공했다. 


과거의 경험에서 헌법적 상상력을 얻는 것이 필요한 시대다. 기본소득을 정당화할 수 있는 근거를 다른 법 제도에서 착안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민법상의 유류분遺留分 제도다. 유언 공증만 해놓으면 유산을 제일 이쁜 자식 한명에게 몰아주고 나머지 자식들에게는 한푼도 물려주지 않을 수 있을까? 그렇게는 안 된다. 최소한 법정 상속분의 절반까지는 모든 자식이 받을 수 있도록 법이 보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유류분이다. 실제로 법원에는 유류분을 침해당했다며 반환을 청구하는 형재자매 간 소송이 많다.


유류분의 기원 역시 로마법에 있다. 로마는 포에니전쟁 승리 후 세계를 무대로 교역하는 상업국가로 변모했고, 이에 따라 거래 및 재산 처분에 있어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는 쪽으로 발전했다. 문제는 부작용이다. 공화정 말기에는 유언 자유의 원칙이 남용돼 상속을 받지 못하는 배우자와 자녀들이 길거리를 전전하는 문제까지 생겨났다. 이렇게 되자 로마인들은 법정상속분의 4분의 1까지는 반드시 주도록 하는 유류분 제도를 만들어낸 것이다.


인류의 일원으로 태어났다는 것만으로도 모든 인간에게 인류 문명의 성과에 대해 최소한의 유류분은 보장돼야 한다는 주장, 로마제국의 시민권을 참조하여 인공지능 안드로이드보다 인간의 시민권을 우선적으로 보장해야 한다는 주장이 미래의 인권선언이자 헌법이 될 수도 있다. 과학기술의 위력이 압도적일수록 인문학적 상상력이 어쩌면 인류의 마지막 생명줄일지도 모르는 것이다. 인류의 오랜 역사의 산물인 법에 대해 공부할 필요성도 더욱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사회경제적 불평등은 최소 수혜자에게도 이득이 될 경우이어야 정당화할 수 있다는 존 롤스의 『정의론』이야말로 인공지능시대에 꼭 필요한 원칙이 될 수 있다. 빌 게이츠가 도입을 주장한 ‘로봇세’도 롤스의 『정의론』에 부합하는 제도다. 로봇과 인공지능으로 인해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게 되므로 노동자를 대체한 로봇에게도 노동자들과 비슷한 수준의 과세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결국 로봇을 소유한 기업에 대해 과세하여 기본소득의 재원으로 사용하자는 주장이다. 인간 노동을 대체하는 기술혁신은 그로 인하여 일자리를 잃는 최소 수혜자에게도 이득이 되어야 한다는 발상이다. 


인공지능시대의 글로벌 기업들에게도 인간들은 계속 필요하다. 상품을 소비해줄 사람들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삶 전체에서 끊임없이 빅 데이터를 제공해주는 존재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빅 데이터를 통한 강화학습이 필요한 인공지능 시대에는 인간이 생산하는 데이터가 곧 철광석이고 석유다. 산업의 쌀이다. 여기서 사회적 대타협의 여지가 생긴다. 로봇세나 기본소득을 제안하고 지지하는 사람들이 빌 게이츠, 마크 저커버그, 일런 머스크 등 글로벌 IT기업가들인 데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기존의 일자리를 파괴하는 혁신 기업가들에게 그로 인한 실업자들을 위해 새 시대에 필요한 직업 훈련을 제공하도록 하는 패키지 딜을 의무화할 수도 있다. 늘어나는 복지 서비스 수요에 대응할 정부 부문의 비대화와 비효율성을 막기 위해 가장 창의적인 집단인 혁신 기업가들에게 복지 서비스를 효율적으로 제공하는 사회적기업을 주 기업과 함께 운영하도록 권장하고, 그 대신 그만큼 세금 혜택을 주는 방법도 있다. 수동적으로 세금을 내는 것이 아니라 복지 서비스 분야에서도 특유의 창의성을 발휘하여 혁신적인 플랫폼을 만들어내도록 하는 것이다. 자유와 창의를 사회 발전의 원동력으로 하되 평등이 이를 제어하도록 하는 헌법 질서의 근본과도 부합하는 접근법이다. 


문제는 기본소득도 보편적 복지도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라는 점이다. 기본소득은 말 그대로 ‘기본’ 소득일 뿐이다. 최소한의 의식주를 해결하면서 변화하는 시대에 맞는 일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버틸 힘을 제공하는 수준의 금액이다. 이것만 받으며 일 안 하고 놀며 살 수 있게 되는 것은 아니다. 전 국민을 위한 일종의 실업 수당이랄까. 일을 찾지 못하면 최저 수준의 생활에서 헤어나기 힘들다. 게다가 인간에게는 자아실현의 욕구가 있다. 일을 통한 성취감과 보람, 사회적 인정 없이 자존감을 유지하며 살 수 있을까.


인공지능시대에도 새로운 일자리는 계속 생겨날 것이라고들 한다. 인공지능이나 로봇을 설계하고 관리하는 일, 인공지능 및 로봇과 협업하여 업무를 처리하는 보조 직종들, 문학, 영화, 음악 등 예술 분야에서 창의성을 발휘하는 예술가들 등등. 이렇게 낙관적인 이야기를 하는 이들은 정직하지 못하다. 이들이 예시하는 일자리들은 창의적인 소수를 위한 일들이다. 그런 재능을 가진 사람들은 지금보다 더 큰 기회를 가질 수 있다. 하지만 평범하고 성실한 다수의 사람들은? 유튜버로 성공하는 크리에이터들은 여기 도전하는 수많은 이들 중 1퍼센트에도 미치지 못한다. 전 지구가 하나의 플랫폼으로 연결된 시대에는 동네 일등이 아니라 세계 일등만이 주목을 독차지한다. 그런 행운을 타고 나지 못한 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은 자신의 가치를 무엇에서 찾아야 하는 걸까?


그 해답은 급변하는 미래에도 오래전 과거에 머물러 있고 모든 인간이 공유하는 것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바로 우리의 뇌다. 수십만 년의 진화과정을 거친 인간의 뇌는 아직도 기본적으로는 동굴에서 무리 생활을 하던 원시인의 뇌에 가깝다. 문명시대가 전체 진화기간에 비해 아직 극히 짧기 때문이다. 원시시대 인간들에게 생존과 번식을 위해 가장 필요한 자원은 바로 동료 인간들이다. 무리에서 고립되면 생존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인간은 동료 인간들과의 관계에서, 인간적 접촉에서 행복감을 느끼도록 진화했다. 아무리 로봇과 인공지능이 발전해도 엄마를, 친구를 대체할 수 있을까? 어쩌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지금까지 세상에 없었던 대단한 직업을 만들어내기보다 가장 오래되었고 가장 중요하지만 가장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던 일들의 가치를 재발견하는 것일지 모른다. 예를 들자면 돌봄노동이다. 


미국 대선 후보로 나서서 미래에 대한 의미 있는 제안으로 반향을 일으켰던 앤드루 양Andrew Yang은 출마 당시 이렇게 말했다.


"우리의 ‘노동Work’에 대한 개념을 훨씬 더 넓힐 필요가 있습니다. 누군가가 두 어린아이를 돌보고 있다고 가정해봅시다. 그 누군가가 아이들의 엄마라면 그 일의 시장가치는 0으로 평가받고 직업이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녀가 다른 누군가의 아이를 돌보기 위해 고용되었다면 그것은 직업이 될 것입니다. 현재 우리의 ‘노동’이라는 개념은 시장을 기본으로 삼고 있습니다. 당신은 일자리를 통해 보상을 받지만 일자리가 아니면 보상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여기서 문제는 시장이 인간 노동력을 점점 더 가치 없게 여기게 된다는 것입니다. 도움을 제공하는 행동에 의미를 부여하고 강화시킬 방법들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사회적 통화Social Currency’를 만든다면, 이는 우리가 노인을 돌보고, 어린이를 양육하고, 지역 사회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환경을 개선하는 일들을 장려하는 사회적 행동으로 이어지게 할 수 있습니다. 이 아이디어는 수년 동안 미국 내의 수백 개 공동체에서 효력을 발휘해온 ‘타임뱅킹time banking’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타임뱅킹이란 사람들이 자기 시간을 들여 여러 봉사활동을 하며 공동체 내에서 신용 포인트를 쌓은 뒤 그 포인트, 즉 시간을 교환하는 제도로, 빈곤퇴치 운동가로 활동하던 에드거 캔Edgar Cahn 교수가 시작하여 현재 미국 여러 지역에서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다. 처지가 어려운 싱글맘이 지역 타임뱅크에 요청을 올리면 솜씨 좋은 누군가가 찾아와 벽에 난 구멍을 막아주고 부엌을 수리해준다. 수리해준 사람에게는 해당 시간만큼의 포인트가 적립되어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할 때 사용할 수 있다. 싱글맘은 짬이 날 때 아이 봐주기나 요리해주기를 하고 아이들은 마을 가든파티에서 악기를 연주해서 포인트를 적립한다.


앤드루 양은 이를 더욱 확장하여 실제 금전적 가치까지 얻을 수 있는, 중앙정부가 후원하는 강화된 타임뱅킹 제도를 제안하고 있다. 디지털 사회신용Digital Social Credits, DSC이라는 새로운 통화를 만들자는 것이다. 타인을 돌보고 돕는 일, 환경을 개선하는 일 등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일을 할 때마다 정해진 DSC를 획득할 수 있도록 플랫폼을 구축하고, 이 포인트는 현금처럼 사용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부동산 부자는 욕을 먹지만 DSC 부자는 존경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사람들의 자기실현 욕구, 인정 욕구를 사회적 가치 있는 일로 유도하는 넛지 효과가 있는 것이다. 


고령화 사회에서 돌봄노동의 수요는 계속 증가할 수밖에 없다. 저출산 사회에서 아이를 돌보고 좋은 시민으로 교육하는 일의 가치 역시 계속 높아질 수밖에 없다. 과학기술 발전이 낳는 급속한 사회 변화, 도시화, 실업은 고독과 우울, 소외감을 증가시키기에 상담 치료, 인간적 접촉, 치유 활동의 필요성도 높아진다. 이런 수요를 지역사회 내에서 자발적인 참여로 충족시키고 참여자들에게 사회적 통화로 보상하는 것은 선의를 가진 보통 사람들에게 소득과 동시에 보람과 사회적 인정을 추구할 기회를 제공하는 일이다.


사람들이 비슷한 꿈을 꾸기 시작하면 미래가 바뀐다. 실은 나도 『개인주의자 선언』에서 비슷한 상상을 했었다. “복지 서비스, 정서적 서비스, 문화 서비스 분야에서 타인의 행복을 창출할 경우 뇌과학적인 방법으로 자동 측정되도록 하여 그것이 새로운 화폐가 되도록 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행복 자체가 가치의 기준이 되는 것이다. 남을 한번 활짝 웃게 한 선행으로 번 행복 화폐로 하겐다즈 아이스크림 한 통을 구매한다.”* 많은 사람들이 같은 고민을 하다보면 비슷한 곳에서 생각들이 모여질 수 있고, 그것이 새로운 사회계약의 시작이다. 


어찌 보면 만화같이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벌어지고 있는 시대의 변화 자체가 SF 만화 같은 상황이지 않은가. 인공지능이 신을 논하고 부유한 사람들은 나노로봇을 신체에 집어넣어 노화를 늦추고 영생을 도모하는 꿈을 꾸기 시작했다. 


과거의 해법으로는 풀기 어려운 미래 사회의 평등은 

자유로운 상상을 통해서만 이룩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상상력의 토대는, 

다시 한번 인간의 존엄성이어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