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회

'자유'의 연대기

자유는 태초부터 인간이 가지고 태어난 권리, 즉 천부인권이라고 하지만, 정직하게 말하자면 역사의 산물이다. 여기서 말하는 자유란 철학적 개념으로서의 자유가 아니라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으로서의 자유를 일컫는 것이다. 헌법 자체가 역사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라. 인류는 그 역사 내내 신분제와 종교의 지배하에 있었다. 타임머신을 타고 다양한 시대, 다양한 나라로 시간여행을 갈 수 있다고 상상해보자. 그 시대 사람들에게모든 인간은 자유롭다라고 말했을 때 동의 내지 이해를 받을 수 있을 확률은 굉장히 낮다. 오히려 정신이상, 반역자, 신을 모독하는 이단으로 취급받아 투옥되거나 살해될 가능성이 높다.

 

최초의 자유는 귀족계급의 자유였다. 프랑스와의 연이은 전쟁으로 부과되는 막대한 세금, 그리고 존 왕의 무능과 실정을 견디다 못한 영국 귀족들이 1215년 무장 반란을 일으켜 왕을 겁박한 끝에 얻어낸 타협 문서 『마그나 카르타(대헌장)』가 헌법적 자유의 기원이다. 자유를 보장받고자 한 주체도, 그 대상도 한정적이다. 귀족들이 왕의 억압에 대해 자신의 권리를 지키고자 한 것이다. 보장받고자 한 내용은 주로 신체의 안전과 재산권의 보장이다. 이미 자신의 영지와 농노를 보유하고 있는 귀족들은 정신 나간 왕이 갑자기 자신을 체포하여 런던 탑에 가두고 목을 자르거나 말도 안 되는 세금을 갑자기 부과하는 것이 최대의 공포였다. 그 외에는 대체로 자기가 알아서 잘 먹고 잘살 수 있었다.

 

한 가지 더한다면 교회의 자유였다. 현세에 신의 은총을 받으며 살려면, 그리고 신의 눈 밖에 나서 내세에 지옥에 가지 않으려면 교회와 성직자를 잘 모셔야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동맹세력도 끼워줄 필요가 있었다. 반란 귀족들이 무장하고 런던으로 진군했을 때 런던 시민들이 동조했기 때문이다. 런던 시민들은 농노가 아니라 나름 부를 축적하기 시작한 상인계급이었다. 여기까지가 『마그나 카르타』가 보장하는 자유의 주체들이다. 당시 영국민의 대부분을 차지했던 농노들은 『마그나 카르타』가 보장하는 자유의 주체가 아니었다.

 

『마그나 카르타』의 주요 내용은 이렇다.

 

- 교회는 국왕으로부터 자유롭다.

- 왕의 명령만으로 전쟁 협력금 등의 명목으로 세금을 거둘 수 없다.

- 런던과 다른 자유시들은 자체적으로 관세를 정한다.

- 왕은 따로 정해진 사안에 대해서만 의회를 소집할 수 있다.

- 잉글랜드의 자유민은 법이나 재판을 통하지 않고서는 자유, 생명, 재산을 침해받지 않는다.

 

특히 마지막 부분이 핵심이다. 법치주의의 기원이기 때문이다. 거칠게 말하자면 법은 태생적으로 폭군으로부터 귀족, 성직자, 부자들의 자유와 재산을 보호하기 위하여 만들어졌다고 할 수 있다. 냉정한 현실이다. 자유는 스스로 무장하여 압제자와 싸운 자들에게만 보장되었다. 남을 위해 피 흘리며 싸우는 인간은 드물다. 이후의 역사를 통해 자유의 주체가 확장된 것은 인류가 저절로 고결하고 이타적으로 변화했기 때문이 아니다. 전선이 확대되고 스스로 무장하여 싸우는 자들의 범위가 넓어졌기에 전리품을 향유하는 주체도 늘어난 것이다.

 

잊혀가던 『마그나 카르타』는 17세기부터 다시 주목받기 시작했다. 영국의 스튜어트왕조는 다시 전제왕권을 꿈꾸며 왕권을 강화하였고, 이에 대항하는 의회와 국왕은 대립하게 되었다. 귀족계층의 법률가들과 새로 등장한 중산층 토지 소유 계급인 젠트리들이 『마그나 카르타』를 영국 정치의 오랜 관습법으로 인용하면서 왕권이 법에 종속되어왔음을 주장한 것이다. 이 흐름은 명예혁명과 권리장전으로 결실 맺었고, 다시 18세기에 바다를 건너 미국으로 건너가 미국 독립선언의 씨앗이 되었다. 신흥 자산계급인 시민들이 왕에 대항한 귀족들의 협력자를 넘어 귀족들까지 포함한 구체제 전체를 자유의 적으로 돌리고 무장하여 일어선 것이 프랑스대혁명이고, 그 결과 자유는 시민계급의 전리품이 되었다.

 

자유와 이를 보장하기 위한 법치주의가 특정 시대, 특정 계급의 전리품으로서 발전하였다는 역사성은 시민혁명으로 만들어진 헌법질서가 유지되고 있는 현재까지도 영향을 미친다. 지금도 자유와 법의 보호를 가장 높은 수준으로 향유하는 집단은 『마그나 카르타』 시대와 크게 다르지 않다. 세금을 내지 않으면서도 당당하고 전 국민의 안전이 위협받는 보건 위기에도 자신들의 자유가 우선이라고 주장하며 대규모 집회를 주최하는 것은 중세의 성직자계급에 해당하는 종교집단들이다. 범법행위를 하고도 최고 법률가들의 조력을 받아 신체의 자유를 지킬 수 있는 것은 상인이자 자산계급인 회장님들이다(다만 휠체어에 잠시 앉아 있는 부자유 정도는 감수하신다). 법전에 있는 모든 피고인의 권리를 전에는 본 적 없는 수준으로 주장하여 관철시키며 몇 년이고 재판을 끌어갈 수 있는 것은 과거의 법복귀족 계급에 해당하는 전현직 고위 법관들이다.

 

문제는 역사적으로자유란 현재 상태에서 누가 내 발목을 잡지만 않으면 내 능력껏 잘 먹고 잘살 수 있는 계층의 욕구라는 점이다. 모든 사람들이 방해만 없으면 행복을 추구하며 잘살 수 있는 사회라면 자유만으로 충분하게 된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인류는 아직 한 번도 그런 단계에 도달해보지 못했다. 주어진 조건이 너무나 다른 상황에서 온전히 자기 능력만으로 원하는 자원을 충분히 얻을 수 있는 사람은 소수다.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게는생존평등이 우선하는 가치가 된다. 몸 하나 눕힐 곳이 없는 빈자에게 거주이전의 자유가 무슨 의미이겠으며 막노동 외에는 일자리를 찾을 수 없는 실업자에게 직업 선택의 자유는 조롱처럼 들릴 뿐이다.

 

이런 현실을 반영하여 영국의 사상가 이사야 벌린Isaiah Berlin은 자유를 두 가지로 분류했다. ‘소극적 자유는 전통적인 의미의 자유다. 타인에 의한 간섭, 구속의 부재를 의미한다. 이에 반하여적극적 자유는 개인이 자율적 의지를 바탕으로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는 자유를 말한다. 앞에서 든 예에서 몸 하나 눕힐 곳 없는 빈자 입장에서 적극적 의미의 거주이전의 자유를 누리려면 규제나 구속이 없는 상태만으로는 부족하고, 그 자유를 누릴 수 있는 물적 조건도 필요하다. 주거 복지 정책, 분배 불평등의 개선 등이 그것이고, 이를 위해서는 참정권이 보장되어야 한다. 그래서 흔히소극적 자유 ‘~으로부터의 자유로서 근대 자유방임주의 시대에 강조되었고적극적 자유 ‘~으로의 자유이고 현대 복지국가에서 강조되는 개념이라고 설명되기도 한다.

 

여기까지 읽으면적극적 자유라는 개념이 굉장히 매력적으로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전통적인 의미의 자유가 이를 향유할 조건을 갖추지 못한 계층에게는 허상에 불과하다는 점을 잘 부각시켜준다는 점에서는 분명 의미 있는 개념이다. 하지만 조금 더 생각해보면 갸우뚱하게 되는 점이 있다. 소극적 자유가 간섭, 구속의 부재를 말한다고 설명하지만 여기에는 생략된 부분이 있다. 구속의 부재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수단에 불과하다. 왜 간섭하지 말라고 하겠는가. 당연히 내 멋대로 하기 위해서다. ‘국가권력 등 타자에 의한 간섭, 구속 없이’ ‘개인이 자율적 의지를 바탕으로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는 것이 곧 자유 아니겠는가. 소극적 자유와 적극적 자유를 합쳐보면 전통적인 의미의 자유 개념과 다를 것이 없다.

 

원래 자유란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는 권리 또는 그런 상태를 말한다. 그런데 타자에 의한 간섭, 구속만 없으면 자기가 알아서 이를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입장의 사람들은간섭의 부재를 강조하는 것이고, 그것만으로는 아무것도 누릴 수 없는 입장의 사람들은자유를 누릴 수 있는 물적 조건의 분배를 강조할 수밖에 없다. 결국 자유의 개념이 다른 것이 아니라, 자유를 위해 강조되어야 하는 수단이 다를 뿐이다. 이렇게 보면적극적 자유라는 개념은 특별할 것이 없다. 전통적인 의미의 자유 개념으로 충분하다. ‘모두가 자유를 누리려면 간섭의 배제만으로는 부족하고 국가의 개입도 필요하며 생존권(사회권)과 참정권이 보장되어야 한다고 정리하면 족하지 않을까.

 

이사야 벌린이 자유를 두 가지로 분류한 이유도 실은소극적 자유가 자유의 본래 의미임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적극적 자유는 종교나 독재자에 의해 악용되어 파시즘의 도구가 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자율적 의지를 바탕으로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는 자유라니 참으로멋지구리한 말이지만 이 중자율적 의지의 주체를 교묘하게신의 뜻’ ‘민족적 사명’ ‘역사의 필연등으로 바꾸면 어떻게 될까. ‘신은 위대하시다를 외치며 자살폭탄 테러에 나가는 전사는 비로소 자신이 진정 자유로워진다며 희열을 느낀다. 1980년대 학생운동권에서 거의 주기도문 수준으로 반복 학습하던 논리가 자본주의하에서의 자유란 방종에 불과하고 진정한 자유란 역사적 필연인 계급혁명에 헌신하는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원래진정한이라는 수식어가 앞에 붙는 물건치고 변질되지 않는 것은 없기 마련이다. ‘자유같이 보편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오리지널 브랜드가 있는데, 여기에 불만이 있고 다른 것을 강조하고 싶은 이들이 흔히 취하는 전략이 네이밍이다. 기존의 인기 있는 이름을 끌어다 쓰고 그 앞에진정한또는새로운을 붙이는 것이다. ‘자유에는 수식어가 필요 없다. 자유는 때로 편협하고 배타적이고 이기적이지만, 그로 인한 부작용은 평등, 존엄성, 공존 등 다른 가치를 강조함으로써 보완해야지 자유를 재정의하는 것은 곤란하다. 자유란 백지 같아서 다른 것을 덧칠하면 어느새 사라져버리기 때문이다.

 

자유는 지금 시대에도, 미래에도 그 중요성이 결코 줄어들지 않는 가치다. 오히려 더 중요해지고 있다. 앞에서 양극화가 극단적으로 심해지는 인공지능시대에 가장 부각되는 헌법적 가치는평등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렇기 때문에 동전의 양면처럼 자유의 침해 가능성도 커질 수밖에 없다. 실질적 평등과 복지를 구현하기 위한 국가의 역할이 커지기 때문이다. 국가의 역할에는안전보장도 있다. 세계화, 정보화가 진전되어 인류가 네트워크로 연결된 초연결시대에는 위험의 파급력과 속도 역시 극대화된다. 코로나 사태가 비극적으로 입증하고 있듯이. 위험이 커질수록 안전보장을 위해 국가가 개인의 삶에 개입하고 규제해야 할 상황도 늘어난다. 개입할 수 있는 수단은 더욱 강력하고 촘촘해진다. 확진자의 동선이 시간 단위로 파악되고 공유되는 것을 보며 안심이 되기도 하지만 소름이 끼치기도 하는 것은 이 치밀함이 악용될 가능성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자유를 억압하는 주체가 다양해지는 것 또한 중요하다. 과거에는 왕이나 귀족이 그 주체였다면 지금은? 국가권력뿐 아니라 빅데이터를 수집하고 인간 심리와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플랫폼 기업을 비롯한 거대기업들, 양극화의 흐름에서 낙오된 이들을 유혹하여 군림하는 종교 집단들, 인터넷을 무기로 익명의 집단으로 뭉쳐 개인을 공격하는 군중…… 억압 주체가 왕이나 국가권력뿐이었던 시대에 발전한 법리로 지금 시대의 자유에 대해 논하기 쉽지 않은 이유다.

 

『마그나 카르타』 시대로부터 800년이 지났지만, 자유를 제대로 누릴 수 있는 물적 조건은 여전히 모두에게 평등하게 분배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자유를 침해할 수 있는 주체는 과거보다 훨씬 복잡 다양해지고 침해할 수 있는 수단은 더욱 강력하고 정교해졌다. 씁쓸하지만 자유의 연대기는 아직 해피엔딩에 이르지 못하고 오히려 위기가 고조되는 단계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