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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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8월 9일, 속초 인근의 작은 마을에서 두 아이가 태어났다. 서로 몸이 붙어 있는 결합쌍생아였다. 두 아기는 마치 서로 한사코 떨어지지 않으려는 듯 세 개의 팔과 세 개의 다리로 상대방을 꼭 껴안고 있었다. 그날 아이를 받은 산파의 말에 의하면, 그랬다고 한다. 

“정말이라니까. 처음엔 두 아이가 각각 서로를 끌어안고 있는 줄만 알았어요. 어쨌든 난산이었지. 이러다 애들 엄마가 죽는 게 아닐까, 얼마나 걱정했는지 몰라. 하지만 다행히 아이들은 무사히 나왔고, 나는 그 둘을 떼어놓으려고 했는데…… 암만해도 아기들이 떨어지질 않는 거야. 그때서야 두 아이의 몸이 붙어 있다는 걸 알았지. 자세히 보니 한 아이는 팔이 정상이었지만 다리가 한쪽밖에 없었고, 또다른 애는 다리가 정상인 대신 팔이 하나더라고. 그 둘은 엉덩이를 중심으로 몸 한쪽이 붙어 있었고, 신기하게도 나머지 다른 곳은 모두 정상이었던 거야.”

속초시립도서관의 향토사 자료실에 보관되어 있는 속초과학신문의 마이크로필름 기록을 살펴보면, 의외로 그때 태어났던 샴쌍둥이에 대한 기사가 아주 작은 지면만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속초과학신문은 1943년 초가을에 창간된 일종의 지방 소식지 같은 것이었는데, 보통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인근의 주요 뉴스들을 간추려 약간의 사진과 함께 싣곤 했다. 그즈음 조선을 휩쓸었던 신문 창간 붐을 타고 만들어진 속초과학신문의 발행인은, 여러 척의 어선을 소유하고 나름 꽤 큰 부를 누리던 선주 김종식의 둘째 아들 김호선이었다. 김호선은 당시 부유한 집 아들들이라면 누구나 그러하듯 동경에서 공부를 하고 돌아왔지만, 불행히도 폐결핵에 걸리고 말아 아버지의 집이 있는 바닷가 마을에서 요양하며 소일하고 있던 사람이었다. 특이한 점은, 그가 동경에서 인문학을 공부했던 것이 아니라 당시로선 드물게도 물리학과 생물학 등 이학 전반에 걸쳐 다양한 지식을 쌓고 돌아온 자였다는 사실이다. 어쨌든, 속초과학신문에 실렸던 ‘믿거나 말거나’ 수준의 매우 짧은 기사가 그나마 보존될 수 있었던 건, 몰락한 선주 집안의 마지막 후손이 한국을 떠나면서 시립박물관에 기증한 유품들 덕택이었다.    

며칠 후면 칠레로 이민을 간다는 그 남자는 시립박물관 앞마당에 직접 1톤 트럭을 몰고 나타났다고 한다. “어디 보자, 기록을 한번 볼까요?” 당시 남자가 싣고 온 짐들을 직접 수령했다는 박물관의 나이든 학예사는 파일을 뒤적였다. “여기 있군요. 1998년 여름이네요. 제가 정확히 기억하고 있진 않지만, 아마 외환위기가 터지고 일 년 좀 안 됐을 때였어요. 아마도 사업이 망해서, 결국 그렇게 떠난 게 아닐까 싶어요. 그땐 다들…… 그런 사람들이 많았으니까요. 사실 처음엔 전화를 받고 매우 기뻤습니다. 박물관이 생긴 지 얼마 안 되었던 터라, 그런 식으로 유품을 기증받는 것이 필요했거든요. 요즘은요? 지금은 좀 사양하고 싶은 심정입니다. 기증하려는 분들에겐 미안하지만, 주로 어딘가로 멀리 떠나는 분들이 창고 정리 차원에서 갖가지 잡동사니들을 넘겨버리고 떠나는 경우가 허다해서 말이지요. 그래서 요샌 무조건 기증을 받지 않고, 우리가 먼저 조사를 나갑니다. 그런 다음 역사적 가치가 있는 것들만 선별해서 받아오곤 하지요. 여하튼, 그때 김종식씨의 마지막 후손이라는 남자가 트럭으로 가져온 물건들도 그리 쓸모가 있진 않았습니다. 우린 그걸 나중에야 알았죠.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게, 그 많은 짐을 확인하고 정리하고 분류해야 하는데…… 예나 지금이나 박물관엔 항상 일손이 부족하거든요. 결과적으로 남자로부터 받은 유품들을 당분간은, 아니 사실은 꽤 오래 창고에 쌓아두어야만 했습니다. 이렇게 말씀드리긴 뭐하지만 거의 십 년간이나 방치되어 있었던 거지요. 하긴, 전문가의 눈으로 척 봐도 당장 전시실로 가져올 만큼의 가치가 있는 것은 거의 없었으니까요. 그러다가 박물관의 대대적인 리뉴얼을 앞두고 창고를 정리하면서, 유품들이 다시 세상의 빛을 보게 된 겁니다.”

학예사의 말에 의하면, 물건들은 이미 좀이 슬거나 곰팡이가 피어 손쓸 수 없게 된 것이 대부분이었다. 게다가 값나가는 옛날 도자기 같은 것은 당연히 없었고―“아마도 그런 건 벌써 팔아 치웠겠지요.” 이 부분에서 그는 이런 말을 덧붙이기도 했다―하다못해 생활사 박물관에 전시할 만한 그릇이나 소품 같은 것들도 눈에 띄지 않았다. “거의 쓰레기였습니다. 속초과학신문이라는 옛날 신문 한 무더기가 눈에 띄었지만, 그나마도 습기에 절어 눅눅해진데다가 그게 사료로서의 가치가 있는가를 두고도 처음엔 의견이 분분했습니다. 해외 과학계의 새로운 소식이라며 로스웰에서 발견된 외계인 시체 해부도 같은 것들이 실려 있었으니까요(그러나 그 학예사는 내가 “그럴 리가요. 속초과학신문은 1943년에 발간되기 시작해서 겨우 이 년 만에 폐간됐는데, 어떻게 로스웰의 외계인 이야길 실을 수 있었겠어요?”라고 묻자 우물쭈물했다. 그는 어쩌면 자신이 잘못 기억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고 말했고, 다시 한번 확인해보겠다며 머리를 긁적였다).”

이야기를 끝낸 학예사가 긴 한숨을 내쉬었다. 선주였던 김종식이 그나마 근현대사의 아주 작은 부분에 이름을 남긴 자였으니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그런 폐기물 더미 같은 유물을 트럭째 받아들이는 일은 결코 없었을 거라는 게 그의 의견이었다. 결국 창고에 십여 년 이상 방치되어 있던 김종식 가문의 유물은 거의 대부분 쓰레기 하치장으로 실려갔다.

“사실 이런 경우엔 기증자에게 연락을 취한 뒤 다시 돌려주는 것이 규정입니다. 박물관에 전시할 값어치는 없다고 해도, 후손들에겐 중요한 가치를 지닐 만한 것들이 있는 법이니까요. 그래서 우리는 칠레로 떠난 그 남자의 행방을 백방으로 수소문했습니다. 하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고, 따라서 지정된 기간의 공시를 거쳐 모든 물건을 폐기처분하기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그나마 막판에 건진 게 김호선씨의 비망록이었는데,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박물관 전시실에 둘 만큼의 가치를 지닌 건 아니었습니다. 다만 한국전 당시 월북한 걸로 추정되는 김호선의 마지막 유품이라는 점 때문에 일단은 보관해둘 필요가 있다고 여겼을 따름이지요.”

그러면서 학예사가 박물관 지하창고에서 가져온 것들은 완전히 낡아버린데다 일부는 뜯겨나가기까지 한 가죽 장정 수첩 세 권이었다. “여길 보십시오.” 나이든 학예사는 수첩의 맨 앞 장을 펼쳤다. “여기 연도가 적혀 있습니다. 소화 20년이라고, 보입니까?” 그가 손가락으로 짚은 곳엔 ‘昭和20年’이란 글자가 멋들어진 필기체로 적혀 있었다. “서기 1945년을 말합니다. 속초과학신문에 기사화된 그 일이 일어난 해이기도 하지요. 그런데 설마…… 그걸 사실이라고 믿는 건 아니겠지요?” 학예사는 수첩을 건네며 빙긋이 웃었다. “아까도 말했지만, 원래 그 신문 자체가 믿거나 말거나 식으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우리가 연구한 향토사 자료에 의해도 그렇고요. 하긴, 동경과 경성을 왔다갔다하며 노닐던 부잣집 도련님이 심심풀이로 만든 신문이었으니 오죽하겠습니까? 그 샴쌍둥이 얘기만 해도 그렇습니다. 당대의 어떤 기록에도 그런 애들이 태어났다는 사실은 적혀 있지 않아요. 만약 정말로 샴쌍둥이가 태어났다면, 그리고 그애들이 거기 적힌 대로 특별한 연구 대상이 되어 경성으로 갔다면, 어떤 식으로든 기록이 남아 있지 않겠냐는 거지요. 이제 와 생각해보면, 여러 잡다하고 기이한 일에 흥미가 많았던 김호선이 그즈음 서구 일각에서 화제가 됐던 결합쌍생아 얘기를 접한 뒤 그런 식의 기사를 꾸며낸 게 아닌가 싶습니다. 어쨌든, 비망록을 한번 열람해보십시오. 많이 낡았으니 찢어지지 않게 조심하시고요. 필요하다면 복사도 가능하지만, 그전에 먼저 매점에서 복사 카드를 구입해야 할 겁니다.” 학예사는 그렇게 말하고는 자리를 떴다. 


예상했던 대로, 김호선의 비망록에 적힌 글을 해독하는 일은 고역이었다. 한자와 일본어가 뒤섞여 있었고, 그마저도 번지거나 뜯겨나가 내용이 이어지지 않는 경우가 허다했기 때문이다. 어쨌든, 대충이나마 읽어낸 바에 의하면, 김호선이 동해안의 한 마을에서 몸이 붙은 채 태어난 결합쌍생아를 처음 본 것은 1945년 8월 9일, 즉 그 아이들의 출생 당일이었다. 사실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으나 수첩의 기록에 의하면, 그날 아침 식사를 마친 그는 바닷가에서 산책을 하며 폐 속에 고여 있던 나쁜 공기를 내보내던 중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바다 저편에서 먹구름이 솟아오르고 하늘을 뒤덮더니 돌풍과 함께 엄청난 천둥소리가 들려왔다. 갑작스런 기상 변화에 놀라 더이상의 산책을 포기하고 돌아서는데, 해안 부근 마을 쪽으로부터 헐레벌떡 뛰어오는 한 남자와 마주쳤다. 봉두난발에 허름한 옷차림을 한 남자는 선주의 아들인 김호선을 보자 눈을 내리깔며 옆으로 비켜섰다. 자세히 보니 해안가 빈촌에 거주하는 백정이었다. 그의 이름을 아는 이는 없었으나, 누구나 그의 성이 마馬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김호선은 원래 그냥 지나칠 요량이었지만 곧 생각을 바꾸어 그에게 말을 걸었다. 이에 대하여는, “모름지기 지식인이라면 먼저 민중에게 다가가는 법을 익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라고 그가 비망록에 적어둔 바 있다. 

“이보오, 마씨. 어딜 그리 급히 뛰어가는 것이오? 곧 폭풍우도 몰아칠 것 같은데.”

김호선이 잠시 걸음을 멈추고 질문하자, 마는 쭈뼛대며 대답을 미뤘다. 그는 여전히 반상의 예에 사로잡혀 있었으며, 자신이 일종의 불가촉천민에 해당하는 사람이라는 걸 잊지 않고 있는 자이기도 했다. 그러나 김호선은 신학문을 공부하고 돌아온 사람답게 그런 식의 차별은 반드시 철폐하리라 마음먹은 상태였다. 그러한 자신의 급진적인 사상을 만천하에 드러내고 싶었던 그는 일부러 지팡이를 짚지 않은 다른 쪽 손을 용감하게 백정에게 내밀기까지 했다. 하지만 마는 그 손을 잡기는커녕 오히려 깜짝 놀라며 뒷걸음질쳤다. 지금까지 이런 경우는 한 번도 없었기에 이 부잣집 도련님의 손을 잡아도 되는 건지 알 수 없었던 게 첫번째 이유라면, 두번째 이유는(사실 이게 더 중요했는데) 세간에 떠돌던 흉흉한 소문 때문이었다. 마을에선 선주의 아들인 김호선이 폐병에 걸렸다는 걸 모르는 이가 없었고, 그런 흉측한 병에 걸린 자의 손을 함부로 잡으면 그의 몸속에 있던 사악한 병마가 옮겨온다는 믿음이 만연해 있었다. 어쨌든, 그래서 마는 망설이며 손을 뒤로 뺐다. 김호선 역시 그가 손을 뒤로 빼자 자기도 모르게 안도했다. 아무리 세상이 바뀌었어도, 역시 마는 대대로 산 짐승을 잡아가며 먹고 살아온 사람이었다. 그러니 그 손엔 보이진 않지만 분명 피로 얼룩진 동물들의 저주가 덕지덕지 붙어 있을 게 틀림없었다. 결국 두 사람은 상대방이 눈치채지 않도록 조용히 손을 뒤로 감췄다.


바람은 점점 거세지고 천둥소리는 바다와 하늘을 반으로 가르는 듯해서, 우리는 서로 소리를 지르다시피 대화해야만 했다.

“푸닥거리해줄 무당을 데리러 가는 길입니다. 이씨네 처가 몸을 풀었는데 괴물이 태어났다고 해서요.”

마의 말에 나는 속으로 혀를 찼다. 정말 불쌍한 사람들 아닌가. 현대과학과 의학을 전혀 모르는 이 무지한 자들은 여전히 미신에 빠져 있었고, 몸에 조금이라도 문제가 생기면 푸닥거리부터 하기 일쑤였다. 괴물을 낳았다고 설레발치는 걸 보니 또 무슨 일이 생긴 모양인데, 나 같은 지식인이 바로 이럴 때 이들을 도와야 한다는 생각이 퍼뜩 머리를 스쳤다.  

“예끼, 이보게, 마씨. 태어난 아기에게 무슨 죄가 있다고 함부로 괴물이라는 말을 하는가? 그럼 안 되지. 대체 이씨의 안사람이 어떤 아이를 낳았다는 말인가?”

그러자 백정은 더욱 당황해하며 두 손을 비볐다. “어휴, 차마 입에 담기도 끔찍해서요. 왠지 말만 해도 부정을 탈 것 같아서 말입니다.” 그러면서 마는 계속 머뭇댔다. 결국 그는 나의 채근을 견디다 못해 입을 열긴 했지만, 당장이라도 어디론가 뛰어가 자기 입에 소금을 뿌릴 기세였다. “글쎄, 그 여자가 몸이 붙은 쌍둥이 사내아이들을 낳았지 뭡니까? 그 둘이 궁둥이가 붙은 채로 나왔는데, 팔이 셋이요, 다리 또한 셋이었습니다. 저도 문틈으로 들여다봤는데 어찌나 흉측하던지. 다들 마을에 큰 변고가 생길 징조라며 무서워 벌벌 떨고 있습니다.” 이렇게 말하며 마는 다시 한번 몸서리를 쳤다. 


동경에서 이학을 전공하고 돌아온 엘리트답게, 김호선은 몸이 붙은 쌍둥이가 태어났다는 사실에 강한 호기심을 느꼈다. 그는 그런 현상이 결코 하늘이 노해서 벌어진 일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오히려 서양의 발달한 신기술과 과학 정신으로 무장한 사람답게, 몸이 붙은 쌍둥이를 연구하고 싶다는 욕망이 불타올랐다. 이어지는 비망록의 기록을 참고하면, 그길로 김호선은 백정을 따라 그 가난한 어촌으로 향했다. 쌍둥이들의 어머니에게 안내하기를 꺼리던 마에겐 다음과 같이 구슬리며 설득했다. “그런 애들에게 무당이 무슨 소용이 있겠나? 내가 경성으로 데리고 가서 세브란스 의전을 나온 우리 형님의 친구에게 보이도록 하지. 그러니 어서 앞서서 길을 안내하게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는 여전히 망설였다. 그는 마을의 엄청나게 나이 많은 영감이 한 말을 떠올리고 있었다. “내가 아주 어릴 적에, 그렇게 몸이 붙은 아이가 태어난 걸 봤어. 아니, 잠깐 기다려봐. 내가 본 게 아니고 돌아가신 조모님께서 얘기해줬던 건지도 모르겠군. 여하튼, 옛날에도 그런 애들이 태어난 적 있다고.” 영감은 그 기이한 쌍둥이가 몸이 붙은 채로도 잘 살았고, 다 자라서는 각자 색시까지 얻어 아이들도 서넛씩 낳았다고, 기억을 더듬어가며 말했다. “농사를 지을 땐 둘이 같이 밭을 갈고, 밥도 항상 같이 먹었어. 그래도 부인은 따로 뒀다는 게 신기하지? 듣기론, 나중에 죽을 때도 같이 죽었다는 거야. 환갑을 얼마 안 남겨두고 둘이 동시에 눈을 감았다더군.” 그런 다음 영감은 곰방대에 담배를 꾹꾹 눌러 담았고, 거기에 공들여 불을 붙이더니 한 모금 빨았다. “내 말은, 이가네 애들도 너무 걱정할 것 없다는 뜻이야. 그냥 두면 자기들끼리 알아서 잘 살아가게 돼 있다고.” 

마의 말을 끝까지 들은 김호선은 피식 웃었다. 

“이보게, 마씨. 설마 자네 그런 노인네의 말을 믿는 건 아니겠지? 샴쌍둥이―음, 그렇게 태어난 애들을 저쪽 구라파에선 샴쌍둥이라고 부른다네―들은 그냥 두면 몸이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해 곧 죽고 말거든. 하지만 최첨단 의학의 도움을 받는다면 그 정도는 충분히 고칠 수 있어. 그런 애들을 떼어내는 수술이 성공한 사례가 외국에는 벌써 여러 건 보고되어 있단 말일세. 자, 그러니 어서 날 그 집으로 안내하게나.”

“수술이라고요?” 김호선의 말을 들은 마는 몸서리를 쳤다. 그 역시 ‘수술’이라는 괴상한 서양식 치료법에 대하여 여기저기서 들은 바가 있었다. 하긴, 일 년 전쯤엔 저잣거리에 차려진 도립 의원 출장 진료소에서 한 소년이 간단한 외과수술을 받는 장면을 직접 목격하기도 했다. 하얀 윗옷을 입은 양의사가(들리는 말로는 그가 평양의전을 나온 수재 중의 수재라는 것이었다) 날카로운 칼로 아이의 귀를 째자 누런 고름과 피가 주르륵 흘러나왔다. 아이는 고래고래 소릴 지르며 울었지만, 의사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둘러서서 그 장면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모두 수군거렸다. “시내 병원엘 가면 저것보다 더 큰 칼로 사람 뱃가죽을 마구 가른다는구먼.” “죽으라는 거지, 암. 저러고 어떻게 목숨을 부지하겠어?” 마는 비록 자신이 돼지나 소를 숱하게 잡아온 백정이었지만, 단 한 번도 사람의 배를 가른다는 것은 상상해본 적 없었기에, 그런 말을 들으며 공포에 떨었었다. 그런데 지금 거만한 표정의 선주 아들 김호선이 이씨네 두 아이를 수술로 떼어내겠다고 장담하고 있는 것 아닌가.  

마는 이씨가 강제징용되어 일본으로 떠나기 전 두 손을 잡고 신신당부했던 것을 떠올렸다.

“아내가 산달이 가까웠어. 힘들겠지만, 제수씨에게 어쩌다 한 번씩 좀 들여다봐달라고 부탁해주게.”

마는, 그렇게 떠난 이씨가 일본의 어느 도시의 군함 만드는 공장에서 일한다는 걸 들어서 알고 있었다. 글을 읽을 줄 모르는 이씨댁은 남편이 보내온 편지를 마의 아내에게 보여줬다. 하얀 종이 위에 몇 마디의 말이 적혀 있었지만, 아무도 그것이 무슨 내용인지 몰랐다. 하긴 그건 편지를 쓴 이씨 역시 마찬가지였을 테지만 말이다. 누가 봐도 그 편지는 누군가가 대필해준 것이 틀림없었다. 어쨌든 종이 맨 위엔 빨간색으로 그려진 세 개의 마름모와 함께 ‘三菱’이라는 한자가 적혀 있었다. 그게 이씨가 끌려가 일하는 군함 공장의 로고라는 것과 그 한자를 ‘미쓰비시’라고 읽는다는 걸, 마는 나중에 마을에 찾아온 야학 선생을 통해 알게 됐다. 경성에서 온 친절한 야학 선생은 이씨댁과 마, 그리고 마의 아내 앞에서 큰 소리로 편지를 읽어주기까지 했다. 

“나는 큰 공장에서 배를 만들고 있소. 하루에 주먹밥을 세 개씩 나눠주니 매우 든든하오. 나중에 전쟁이 끝나면 여기서 우리에게 큰돈을 준다고 하니, 고생이 되더라도 조금만 참고 기다리시오. 그리고, 곧 태어날 아이들을 잘 부탁하오.” 그러면서 이씨는 편지 말미에, 혹시라도 여유가 된다면 약간의 보리나 콩을 보내줄 수 있느냐고 묻고 있었다. 젊은 야학 선생의 목소리를 들으며, 마는 그 편지의 내용이 진짜인지 아닌지 알 수 없어 고개를 흔들었다. 그는 일본으로 끌려간 사람들이 엄청나게 고생을 하다 굶어죽기까지 한다는 소문을 들은 바 있었다. 견디다못해 도망쳐나왔다가 다시 잡혀 개처럼 끌려가는 걸 봤다는 얘기들도 어디선가 들려왔다. 그러나 편지를 받고 그나마도 안심하고 있는 이씨댁 앞에서 그런 내색을 할 순 없었다. 어쨌든 그때 이씨의 아내는 마에게 혹시 약간의 보리를 꾸어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물론 당연히, 마는 묵묵히 고개를 저었었다. 도대체 남아도는 곡식이 있을 리 없었기 때문이다. 

그때 다시 한번 김호선이 채근했다. “아니, 뭘 그렇게 뜸을 들이나? 얼른 앞장서지 않고. 경성에 데려가면 반드시 무슨 수가 있을 거라고 내가 말하지 않았는가. 그대로 두면 애들은 죽는다고.” 

그제야 마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어찌 됐든 한시가 급한 사안이었다. 

“그럼 애들을 꼭 그 병원에 데려가주실 겁니까?” 마가 묻자, 김호선은 단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지. 나를 믿게나. 민중의 고통을 모른 척한다는 것은 지식인의 도리가 아니니까. 자, 어서 앞장서라고.” 

결국 마는 김호선과 함께 이씨의 흙집 앞에 도착했다. 마당에선 늙은 여자 하나가 안절부절 어쩔 줄 모르며 서성이고 있었는데, 그녀가 바로 그 괴이한 쌍둥이를 받은 산파라고 했다. 여자는 마와 김호선을 보자마자 문밖으로 달려나왔다. “왜 이렇게 늦었어? 애들이 숨이 꼴깍꼴깍하는구먼.” 이렇게 외치며 산파가 김호선의 옷자락을 부여잡으려고 하자, 마가 얼른 나서서 제지했다. “지금 뭐하는 건가, 김종식 어른의 둘째 아드님한테? 이분은 애들을 경성에 있는 훌륭한 의사 선생님께 데려가려고 여기 오신 거야.”

김호선은 마와 나이 지긋한 산파의 안내를 받아 방으로 들어갔다. 그때의 기록 역시 비망록에 자세히 적혀 있는데, 그 일부를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흙벽으로 마무리된 좁은 방 안엔 퀴퀴한 땀냄새와 비릿한 피냄새가 뒤섞여 있었다. 안쪽 구석에 하얀 옷을 입은 여자가 유령 같은 형체로 누워 있다가, 들어오는 우리 일행을 보고 힘없이 고개를 돌렸다. 여자는 푸닥거리할 무당은 어디 있느냐고 물었다. 뒤따라 들어온 마의 아내가 여자에게 가까이 다가가 귓속말로 무어라고 속삭였다. 아마 경성으로 그애들을 데려가는 것에 대하여 의논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아이들의 어머니는 완강했다. 그녀는 이불에 싸놓은 샴쌍둥이를 절대 보여주려 하지 않았다. 마의 아내에 의하면 이씨댁은 부정을 탈까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여자에게, 그런 아이가 태어난 것은 하늘이 노해서도 아니고 신령님의 뜻을 거슬러서도 아니라고 말해줬다. 그런 현상은 아이가 태내에서 만들어질 때 약 십만분의 일이라는 확률로 생겨나는, 매우 특별하긴 하지만 결코 초자연적인 현상은 아닌, 그저 자연스러운 과정의 일부라고도 설명했다. 그러나 무지하기 그지없는 여자는 내 말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답답함에 가슴을 쳤다. 부국과 강병은 모두 과학으로부터 나오는 것일진대, 이 사람들은 너무나 비과학적이란 생각에 탄식이 절로 흘러나왔다. 어쨌든 나는 또다시 여자에게 그것은 절대로 천벌이 아니며, 이미 서양에서는 이런 아이들을 전문으로 연구하는 과학자들이 여럿 있다는 것을 주지시키고자 노력했다. 사실 이 미개한 사람들은 전혀 모르고 있겠지만, 수년 전 노벨생리학상을 탄 독일의 슈페만 박사가 연구한 것도 바로 이런 현상이었다. 그는 도롱뇽의 배아를 이리저리 나누고 붙여 여러 마리의 결합쌍생 도롱뇽을 만들어낸 공로로 스웨덴 왕립학술원으로부터 큰 상을 받았던 것이다. 그러니 만약 이 아이들을 데려다가 연구할 수만 있다면 우리도 발생기형학 분야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얻을 수 있으리라고, 나는 확신했다. 

그러나 아이들의 어머니는 여전히 고개를 저었다. “이 아이들을 데려다 억지로 떼놓는 수술을 할 거라면서요?” 그 무지한 여자는 계속해서 같은 질문만을 반복했다. 그즈음 나 역시 방안에 꽉 차 있는 역겨운 냄새에 점점 정신이 혼미해져가고 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겨우 정신을 차리고 말했다. “당신 애들은 이대로 두면 둘 다 죽는 거요. 하지만 만약 경성으로 데려가 제대로 된 훌륭한 의학 기술을 접하게 해준다면 좋은 결과가 있을 거라 장담하오. 운이 좋으면 둘 다 살 것이고, 그렇지 않더라도 적어도 한 아이는 목숨을 건질 테니 말이오.”

여자는 내 말이 끝날 때까지도 아이들을 싸맨 이불을 품에서 내놓지 않았다. 나는 낙담하여 방에서 나왔고, 마의 배웅을 받으며 그 악취 나는 마을에서 벗어났다. 백정은 뭐가 그리 황송한지 연신 두 손을 비비고 있었다. “애들 어머니를 좀 설득해보시오. 저대로 두면 둘 다 죽는다고. 그리고 병원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단 얘기도 꼭 전해주길 바라네. 이건 무척이나 희귀한 사례이고 연구 가치도 있으니 분명 경성의 큰 병원에선 무료로 치료를 해줄 테니까.” 헤어지기 전, 주머니에서 약간의 돈을 꺼내어 주자, 마는 재빨리 받아 허리춤에 넣으며 말했다. “저 여편네는 지금 제정신이 아닙니다. 뭐가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는지 하나도 모른 채 저러고 있지요. 그러니 조금만 기다려주십시오. 저와 제 아내가 설득해보겠습니다.”


그러나 정작 당시의 속초과학신문은 결합쌍생아의 출생에 대한 소식을 매우 간략하게만 전하고 있었다. “머리와 몸통은 둘이요, 팔과 다리는 각각 셋인데다 엉덩이가 붙어 있는 해괴한 모습의 쌍둥이가 태어나 산모와 마을 주민들이 두려워 떠는 사태가 벌어졌다”라는 말로 시작하는 기사는, “그러므로 무릇 사람들은 이러한 일들이 신령님이 노한 결과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과학적으로 대처하는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이다”라는 말로 끝맺고 있는데, 그나마 신문 맨 마지막 면의 아주 작은 칸을 차지하고 있을 뿐이었다. 오히려 지면의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한 기사는 그날의 괴이한 날씨 변화에 대한 것이었다. 

“근래 들어 보기 드문 기상현상으로 인하여 사람들이 혼비백산하였음을 알려둔다. 9일 정오가 좀 지난 시각, 하늘에 갑자기 먹구름이 몰려오더니 엄청난 천둥소리가 귀를 찔렀다. 그러더니 번개가 치기 시작하는데 마치 불이 번쩍번쩍하는 듯하였고, 급기야는 돌풍까지 휘몰아쳤다. 이런 갑작스러운 기상의 변화로 인하여 사람들이 입은 피해는 셀 수 없이 많은데, 말리던 오징어가 모두 하늘로 날아가거나 매어둔 어선의 닻이 풀려 배를 잃고 만 사례 등, 실로 다종다양하다고 하겠다.”

하긴, 김호선이 아무리 시대를 앞서는 과학도였다고 해도, 그날 동해안을 강타한 돌풍과 뭉게뭉게 피어올라 하늘을 온통 뒤덮었던 검은 구름의 정체를 파악하긴 어려웠을 것이다. 또한 그날, 몸이 붙은 채 태어난 쌍둥이를 껴안고 울부짖고 있던 산모가 그 엄청난 천둥소리와 함께 자기들에게 닥쳐올 운명의 어두컴컴한 그림자를 눈치챘을 리도 없다. 따지고 보면, 그날의 그 모든 기괴하고도 끔찍한 자연현상의 이유를 백 퍼센트 완벽히 이해하고 있던 이는 지구상에 단 한 명도 없었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그저 폭탄 하나가 하늘에서 떨어졌는데 거대한 버섯구름과 함께 바람이 일며 그 순간 도시 하나가 완전히 사라진다면(그 도시의 이름은 나가사키였다), 거기에 대해선 어떤 종류의 이해도 불가해지는 법이니까. 그리고 그건 바로 그때 미쓰비시 조선소 마당에 선 채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던 이씨 역시 마찬가지였다. 엄청난 섬광을 보며, 그는 문득 자신이 왜 여기 있어야 하는지 의문을 느꼈지만, 미처 그 답을 생각해보기도 전에 무無가 되고 말았던 것이다. 


1945년 8월 9일 아침, 미 공군 393사단 비행 중대의 찰스 스위니 소령이 지휘하는 B29폭격기 편대가 일제히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들은 사흘 전 히로시마에 떨어뜨린 ‘꼬마Little boy’라는 이름의 원자폭탄에 이어 두번째 폭탄인 ‘뚱보Fat man’를 일본의 고도古都인 고쿠라라는 도시에 투하할 임무를 지니고 있었다. 사실 ‘꼬마’의 위력은 대단했다. 전혀 꼬마답지 않았던 그 가공할 만한 무기는 그때까지 그 어느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엄청난 규모의 폭발을 일으켜 도시 전체를 집어삼켜버렸던 것이다. 폭탄을 설계한 물리학자들은 자신들이 어떤 괴물을 만들어냈는가를 새삼 깨달으며 공포와 후회에 떨었고, 미국 정부 내에서조차 과연 두번째 원자탄의 투하가 필요한지를 놓고 설전이 벌어졌다. 

그러나 결국 역사는 지금 우리에게 알려져 있는 것과 같은 방향으로 결정됐고, 도시 하나를 또 한번 몰살시켜야 할 운명에 처한 찰스 스위니 소령은 명령을 하달받자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뼛속까지 군인이었던 사람답게 그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전투용 고글을 내려썼으며,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이 진정으로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대해서도 전혀 알려고 하지 않았다. “그런 걸 생각하기 시작하면, 진짜 군인이 될 순 없습니다.” 나중에 소령은(그땐 이미 대령으로 특진한 상태였는데)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그렇게 말했다. “그럼 그때 무슨 생각을 했습니까? 나가사키 상공에서 원자폭탄을 떨어뜨리기 위해 출격할 때 말입니다”라고 한 기자가 묻자, 찰스 스위니는 껄껄 웃었다. “아마도 그날 저녁 무사 귀환한 후 마실 차가운 맥주에 대해서 생각했겠지요.” 그러면서 그는 자신이 버드와이저를 가장 좋아한다고도 덧붙였다. 실제로, 전해오는 기록에 의하면 그는 그날 밤 버드와이저 한 상자를 몽땅 마셨고 사람들과 함께 남부의 민요를 부르며 신나게 춤을 췄다고 한다. 

중요한 건 그날 아침 일곱시, 그러니까 찰스 스위니가 시원한 맥주를 꿈꾸며 하늘로 날아오르던 바로 그 시각, 나가사키 항구에 위치한 미쓰비시 조선소에서 이득수라는 인물이 피곤한 몸을 겨우 일으키고 있었다는 사실이리라. 그는 몇 시간 후면 자신의 아내가 엉덩이가 붙은 쌍둥이를 낳게 될 거라는 걸 알지 못했고, 또한 그때쯤이면 자기는 이미 무無가 되어 있을 거라는 사실 또한 전혀 알지 못했다. 하긴, 운명의 그날 아침, 이득수가 과연 무엇을 했는지를 정확히 알아낼 길은 없다. 아마도 그는 좁고 누추한 조선인 전용 숙소에서 눈을 뜬 채 잠시 멍하니 앉아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적어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라디오 체조를 하며 하루를 시작했을 리는 없는데, 왜냐하면 조선소에서 하루 한 개씩 나눠주던 주먹밥은 너무 작아서 도저히 배고픔을 가라앉힐 수 있을 정도의 양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조선인들은 대부분 느리게 움직였고 최대한 에너지를 아끼기 위해 노력했는데, 그건 이득수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힘없이 일어나 담요를 접었고, 그런 다음 천천히 걸어서 기나긴 배급 행렬의 맨 뒤에 섰다.  

그렇게 줄을 서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하늘을 올려다본 건 잠시 후였다. 

어디선가 불길한 사이렌 소리가 울려퍼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건 연합군의 공습을 알리는 두렵고도 낯익은 경보음이었다. 그런 다음엔 언제나 B29 폭격기가 편대를 이루어 날아다녔고, 그때마다 이득수는 사람들과 함께 최대한 몸을 웅크리고 다리 사이에 얼굴을 묻은 채 숨을 죽여야만 했다. 그 비행기들이 이곳이 아닌 저곳을 폭격하길 기도하며, 그리하여 어떻게든 자신만은 살아남아 바다가 보이는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길 기원하며. 

그러나 이득수가 다른 이들과 함께 몸을 웅크리고 있던 1945년 8월 9일 아침, 공습경보는 싱거우리만치 빠르게 해제됐다. 폭격기 편대는 나타나지 않았고 하늘엔 겨우 두 대의 B29만이 지나갔을 뿐이었다. 어설프게 만들어진 대피소에서 나와 다시 허기진 사람들의 긴 줄에 발을 들여놓으며, 그는 문득 아내의 출산이 가까워졌다는 사실을 떠올렸을지도 모른다. 혹은 공습경보가 빨리 해제되어 다행이란 생각을 했거나 혹은 그저 단순히 남들보다 좀더 큰 주먹밥을 배급받을 수 있길 간절히 원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단 한 가지 확실한 건, 이득수가 그날 아침 거기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고쿠라의 기상 상태에 대해선 전혀 신경쓰지 않았을 거라는 사실이다. 그는 그 오래된 도시의 하늘을 뒤덮은 비구름의 존재를 알지 못했고, 따라서 그것 덕분에 바뀌어버릴 수많은 운명들에 대해서도 알지 못했다. 그는 그날 오후 바다 건너에서 태어날 쌍둥이 아들들의 얼굴을 영원히 볼 수 없으리란 것을 절대 알지 못했으며, 그렇게 태어난 아이들이 살아가게 될 기이한 삶에 대해서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그가 알았던 건 주먹밥을 다 먹고 나면 작업장으로 가서 큰 배를 만드는 일을 계속해야 한다는 사실뿐이었다. 

B29에 ‘뚱보’를 싣고 기세 좋게 하늘로 날아올랐던 찰스 스위니 소령이 목표 지점인 고쿠라의 하늘이 온통 구름으로 뒤덮여 있다는 걸 안 건 바로 그때였다. 그러니까 이득수가 주먹밥을 조금씩 베어먹으며 그날 하루의 고된 일과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을 때 말이다. 고쿠라의 하늘 같은 기상 상태에선 폭탄 투하가 불가능했고, 그렇다고 구름이 걷힐 때까지 마냥 상공을 배회할 수도 없는 노릇이기에, 스위니 소령은 초조해졌다. 연료계의 눈금은 점점 줄어들고 있었고, 무엇보다도 그는 그날 저녁의 시원한 맥주를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결국 소령은, 무려 칠만여 명의 운명을 단 한 번에 뒤집을 엄청난 결정을 혼자서 내리게 된다. 그는 두번째 폭격 후보지였던 나가사키로 기수를 돌렸다. 폭탄은 정확히 미쓰비시 중공업의 군수공장을 향해 떨어져내렸다. 중간에 바람이 불어 경로가 약간 휘었지만, 어쨌거나 상관없는 일이었다. 어차피 반경 2킬로미터 안에선 그 어떤 생명체도 살아남지 못할 터였으니 말이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하늘에서 땅으로 곧장 떨어져내리는 ‘뚱보’를, 이득수는 멍하니 올려다봤다. 그러는 동안 약 40초 정도가 흘렀는데, 그건 마음만 먹으면 자신의 생애를 반추하며 마지막 기도를 올릴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득수를 비롯하여 거기 서 있던 이들은 아무도 그러지 않았다. 그들은 그 검고 매끄러운 유선형의 쇳덩어리가 무엇인지 알지 못했고 그래서 당연히 피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잠시 후면 자기들이 섭씨 3900도에 달하는 열 폭풍에 의해 흔적도 없이 녹아 사라져버릴 거라는 생각은 더더욱 하지 못했는데, 그걸 깨달은 순간엔 이미 무無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