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회

커피와 고고학과 연금술

나는 커피를 볶고 내리는 일을 한다. 다니던 대학원을 그만두고 커피 일을 하겠다고 부모님께 말씀드렸을 때, 어이가 없으셨는지 반대하기도 전에 “커피 일을 한다는 게 대체 무슨 소리냐”고 묻기부터 하셨다. 아무리 설명해도 당신들에게 내가 하려는 일은 ‘커피숍에서 커피를 타는 일’일 뿐이었다. 평생 커피라고는 타먹는 커피 믹스밖에 먹어본 적이 없는 분들이다. 그 뒤로 부모님은 집안 대소사에 일절 얼굴을 내밀지 않는 나에 대해 궁금해하는 친척들에겐 내가 미국으로 유학을 갔다고 둘러댔다. 차마 내가 ‘커피 탄다’고 말하기는 싫으셨나보다. 커피 공부를 한답시고 미국에 자주 가긴 했다. 미국의 커피숍들로.


대학교 4년은 지지리도 시간이 안 가더니, 학교 앞 커피숍에서 일하며 보낸 5년은 빨리도 지나갔다. 독립해서 궁색하게 차린 커피 공방이 몇 년 만에 기적같이 회사로 성장했는데, 돌이켜보면 모두 빚의 힘이었다. 늘어난 직원들과 불어난 회사의 몸집을 위해 대출을 받아야 할 때마다 회사의 청사진에 대해 멋지게 설명해야 했는데 대출 담당자는 매번 부모님과 비슷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하려는 일에 대한 그럴듯한 비유가 절실했다. “음, 우리가 하려는 커피 일이란 말이죠……”


우리는 커피를 즐겨 마시지만 정작 그 커피에 대해 아는 것은 많지 않다. 브랜드와 주문한 메뉴 이름 정도를 알 뿐이다. 그러나 나는 언젠가부터 고고학자처럼 커피 한 잔이 만들어지기까지 기여한 수많은 사람들의 얼굴을 찾아내고 복원해서 세상에 알리는 일을 하고 싶었다. 고고학자는 숨겨진 유적을 발굴해서 그 의미를 세상에 드러낸다. 그들은 산과 강으로, 정글과 사막으로 탐사를 떠나고 땅을 헤집는다. 고고학자는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아 끊어졌던 이야기를 잇는 작가이자 오랫동안 잊힌 존재들의 얼굴을 복원하는 기술자다. 나도 그렇게 커피를 재배한 농부들부터 커피 가공소의 노동자, 커피를 항구까지 싣고 간 트럭 운전사, 항구 노동자와 배의 항해사, 커피를 볶은 로스터와 커피를 내린 바리스타까지를 ‘복원’해보고 싶었다.


매년 삼사 개월은 좋은 커피가 날 만한 전 세계 커피 산지를 찾아다니고, 그곳 커피 생산자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는다. 커피를 기르고 판매하는 일부터 그들 가족과 일상에 대한 사연까지. 나도 모르게 귀가 솔깃하면 즉흥적으로 목적지를 변경해 맞은편 산을 넘기도 하고 당나귀를 얻어 타고 험지에 들어서기도 한다. 그러다 아주 가끔은, 알려지지 않은 외딴 산골 마을이나 아무도 기대하지 않던 장소에서 보석같이 빛나는 커피를 발견하기도 한다. 그러면 나는 이 커피를 어떻게 한국까지 가져갈지 행복하게 고민하기 시작한다. 남들 보기엔 다 똑같이 생긴 작은 커피 한 알이 내겐 커피 생산자와 그 가족, 커피 밭과 그 뒤편의 풍경, 먼지 자욱한 비포장 길이 아로새겨진 귀한 유물처럼 여겨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근대 과학의 토대를 마련한 뉴턴은 삼십 년 넘게 연금술 연구에 열중한 진지한 연금술사이기도 하다. 그는 연금술에 대한 방대한 기록을 남겼는데 경제학자 케인스는 “뉴턴은 이성의 시대 최초의 인물이 아니라 최후의 마술사였다”라는 말을 남겼다. 연금술사는 중세 유럽에서 수은이나 납으로 금을 만들려고 했다. 물론 실패했지만 그들의 연구와 열정은 서양 과학 발전에 크게 이바지했다. ‘스페셜티 커피’라는 새로운 장르가 이제 막 미국을 중심으로 시작되었을 때, 나는 서울 안암동 보헤미안에서 바리스타와 로스터로 일하고 있었다. 커피 역사에 새로운 조류가 탄생하며 벌이는 도전을 인터넷으로 엿보고 응원하며 한편으로 부러워했다. 나도 언젠가는 한국에서 스페셜티 커피를 펼쳐보고 싶었다. 하지만 경험도, 돈도, 배울 곳도, 이끌어줄 사람도 없었다. 한마디로 가망이 없었다. 그때 처음으로 연금술사를 떠올렸다. 그들의 실패가 마침내 반짝였다는 것. 대부분 사후에야. 하지만 매일 실패하더라도 삼십 년 정도는 매일 희망할 수 있는 삶이라니, 꽤 그럴듯해 보였다. 나는 신묘한 실패자들의 뒤를 좇기로 했다. 연금술사들이 금을 만들려고 했던 것은 당시 금이 가진 높은 가치 때문이었다. 연금술사는 결국 가치를 만들고 싶었던 셈이다. 그러면 커피의 가치는 누가 만들고 어떻게 더해지고 고이 전달할 수 있을까? 나도 가치를 만들고 싶었다. 


산지에서 발견한 훌륭한 커피는 이미 충분한 가치를 갖고 있다. 하지만 커피는 농산물이다보니 가공, 운송, 포장, 보관, 신선도 모두 품질에 큰 영향을 미친다. 커피가 이 모든 과정에서 손상되지 않도록 연구와 세밀한 관리가 필요하다. 그리고 커피 생두를 요리하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는 로스팅과 추출도 커피의 가치를 좌우한다. 커피 생두는 자란 환경에 따라 모두 다른 물리적 특성과 맛을 갖고 있어서 섬세하게 요리하지 않으면 그 빛을 잃는 것은 순식간이다. 우리의 로스팅과 추출 기술이 부족해서 생산자의 커피를 망치는 일이 없을까 늘 조바심을 낸다. 


마지막으로, 커피를 상품으로서 고객에게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가 중요하다. 시장은 야릇한 곳이어서 보통 본연의 품질이나 가치보다 포장과 브랜드, 유행이 더 중요하게 여겨진다. 이쯤 되면 나는 마음이 급해지고 억울한 마음마저 든다. ‘이 커피가 생산자가 얼마나 고생하면서 키운 맛있는 커피인데 이렇게 몰라주다니!’ 다 내가 부족한 탓이다. 커피가 더 높은 가치로 받아들여질 수 있도록 매력적인 디자인과 이야기, 차별화된 정보와 고객에 귀기울이는 노력이 필요하다. 가끔은 커피의 가치를 보존하고 우리가 거기에 가치를 더하는 일 모두는 연금술 정도가 아니라 마법이 필요한 것 같다는 막막함이 들기도 한다. 그러다가 흙에서 보석 같은 커피를 만들어내는 진정한 연금술사인 커피 생산자의 노고를 떠올리면 한 번 더 힘을 내보자고 되뇌게 된다. 


‘뉴턴도 실패했다는 연금술이니까 내가 조금 못해도 괜찮아.’


헤르메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전령의 신이다. 메신저. 날개 달린 신과 모자가 그의 심볼이다. 헤르메스는 신과 인간, 천상과 지옥을 오가며 소식을 전한다. 요즘 같으면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신이라고 했겠지. 커피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에 우리가 있다. 오랫동안 대부분의 커피 생산자는 자신이 기른 커피가 어디로 팔리고 어떻게 한 잔의 커피가 되는지 알 수 없었다. 중간상인이나 수출업체에 커피를 넘기면 그걸로 끝이었다. 자신이 일 년 동안 기른 커피의 품질이 어떤지 알 수 없고, 시세는 이미 국제 커피 거래가격을 기준으로 결정되어 일방적으로 통보될 뿐이다. 소비자 또한 커피를 마실 때 커피의 유래에 대해 알 수 없다는 점에서 한 치 앞을 볼 수 없는 생산자와 비슷한 처지다. 


나는 생산자와 소비자가 서로 이렇게 철저하게 단절된 게 이상했다. 그 사이를 잇는 메신저가 되고 싶었다. 생산자를 만나면 이렇게 말한다. “작년에 구매한 커피를 한국에 가져가서 우리는 커피 로스터로 커피를 볶았습니다. 그리고 서울에 있는 커피숍에서 바리스타가 에스프레소 기계로 커피를 내려서 당신 농장의 이름으로, 당신 사진과 함께 고객에게 커피를 판매했습니다. 고객들은 커피가 가진 풍부한 맛과 부드러운 느낌이 좋았다며, 올해도 좋은 커피 부탁한다는 말을 당신에게 전해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고객들에게는 이렇게 말한다. “지금 당신이 마시고 있는 커피는 저 사진에 나온 생산자가 카투아이 품종을 자연건조 방식으로 가공해서 보내온 커피입니다. 뒤편 나무에 열린 빨간 열매가 보이나요? 그 열매가 지금 당신의 컵에 담겨 있습니다. 생산자가 당신에게 감사의 말을 전해달라고 했어요.” 생산자가 자신의 노동으로부터 소외되지 않고, 소비자가 자신의 소비 행위가 가진 힘과 가치에 귀기울일 수 있게 이어주는 쌍방향 메신저의 일이 내가 꿈꾸는 소통이다.


우리는 커피를 로스팅해서 원두를 판매하고 매장에서 커피 음료를 제공한다. 굳이 업종을 따지자면 식품제조업·도소매업이다. 하지만 나는 우리 본업이 커피를 ‘발굴’해서 가치를 더하고 그것을 전달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이 일은 커피라는 콘텐츠를 만들고 커피를 매개로 한 미디어 사업에 가깝다. 우리는 커피가 스스로 말할 수 있게 돕는 일을 하고 싶다. 언제나 그렇듯이 말은 참 그럴듯하고 쉽다. 하지만 돈 버는 일의 과정 하나하나는 늘 지난하고 속상한 일의 연속이다. 그 결과를 마주하는 것도 큰 용기가 필요하다. 어려서부터 내 멋대로 살았다. 그런데 요즘 직원들이 늘고 거래하는 산지 생산자가 많아지면서 낯선 책임감의 무게를 느낀다. 그럴 때마다 알하리리의 『마카마트』에 나온 구절을 떠올린다. “날아서 갈 수 없는 곳은 절룩이며 가야 한다.” 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 결국 모두 힘들게 나아가고 있다는 뜻이다. 멋진 문장이다. 하지만 고백하건대 ‘나도 커피 믹스나 마실걸 그랬어……’라고 중얼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