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회

결코 낭만적이지 않은 여행

내가 회사에서 담당하고 있는 일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생두 구매다. 보통커피 바이어라고 한다. 우리 회사는 커피콩을 로스팅해서 원두로 판매하기 때문에 그 재료가 되는 생두를 산지에서 잘 구매해서 가져오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나는 늘 수확 시기에 맞춰 산지를 찾아가 여러 농장을 둘러보며 구매할 커피를 살피고 생산자를 만나 이야기를 나눈다. 생산국가의 수확철에 따라 방문 시기가 달라지기는 하지만 보통 일 년에 삼사 개월은 산지에서 보낸다.

 

나도 예전에는 커피 바이어가 슈퍼 미각을 가진 세계 여행자라는 환상을 갖고 있었지만, 그것은 커피 바이어가 하는 일의 일부일 뿐이다. 커피 바이어는 산지로 떠나기 전부터 준비할 일이 많다. 우선 작년에 구매했던 커피에 대한 냉정한 평가와 시장의 반응을 토대로 새로 구매해야 할 커피의 종류와 양, 용도, 예산을 검토한다. 그리고 방문할 산지의 올해 작황과 커피 관련 이슈를 시장 보고서와 현지 관계자를 통해 수집한다. 새로운 커피 가공 방식, 품종, 지역, 트렌드, 리스크를 미리 살펴보고 방문 및 구매 계획을 세워야 실수를 줄일 수 있다.

 

산지에서의 하루 일정은 보통 생산자와 저녁 식사를 함께한 후 마무리되지만, 커피 바이어의 일은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밤에는 어둠침침한 방에서 노트북을 켜고 그날 방문했던 농장과 커핑했던 커피에 대한 정보를 기록한다. 한 번 출장에 여러 국가와 농장을 방문해서 수백 개의 샘플을 커핑하기 때문에 잊지 않으려면 매번 기록해야 한다. 그리고 다음에 방문할 농장의 일정과 커핑, 샘플 관련한 계획을 생산자와 점검하고, 시차 때문에 업무 연락이 쉽지 않은 한국 본사와 생두 구매 논의를 하다보면 밤늦게야 잠자리에 든다.


산지에서 귀국하면 거래하는 모든 생산자 및 수출업체로부터 하루에 수십 통의 메일이 날아들기 시작한다. 산지에서 골라온 샘플이 사무실에 도착하면 신속하게 커핑을 마치고 구매 결정을 내린다. 머뭇거리다가는 좋은 커피를 다른 업체에 뺏기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커피 수확철이 몰린 상반기에만 보통 1500개의 샘플을 커핑한다. 그리고 주문한 모든 커피가 제대로 회사 창고에 들어오기까지 무역 및 통관 업무를 살핀다. 현재 12개국 150개 농장과 거래하고 있는데 그중 몇 개라도 주문한 것보다 품질이 많이 떨어지는 커피가 도착하면 손해가 크다. 산지에서의 커피 생두 가공 과정부터 수출입 절차를 거쳐 창고에 입고되기까지 모든 과정을 꼼꼼히 확인하지 않으면 사고가 터진다. 사실 어떻게 해도 매년 예상하지 못한 크고 작은 일이 커피 수입 과정에서 발생한다. 이제 익숙해질 만도 한데 나는 늘 수습하느라 진땀을 뺀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커피 바이어는 산지를 돌아다니는 일보다 국내에서 해야 할 일이 양적으로도 더 많고 실제로 훨씬 더 중요하다. 결국 커피 바이어의 일은 생두 구매의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과정에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기록하고 확인하는 일을 되풀이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커피 바이어에게 필요한 능력 중 커핑, 즉 커피 품질을 감별하는 일은 아주 사소한 것이고 오히려 소통을 위한 언어 능력과 사교성, 로스팅 능력, 서류 작업 능력, 호기심과 지적 욕구, 체력, 꼼꼼한 기록, 글쓰기, 비즈니스 능력이 더 중요하다.

 

커피 바이어 일은 생각보다 고상하지 않다. 커피 산지에서 깨끗하고 안락한 호텔과 맛있는 음식을 기대한다면 실망하기 쉽다. 커피 농장은 대부분 깊은 산골에 있고 인근 숙소는 쾌적하지 않은 편이다. 방 안의 벌레, 도마뱀, 냄새나는 침대 시트와 지저분한 화장실, 차가운 물 샤워 정도는 일상이다. 숙소에 와이파이가 있고 따듯한 샤워를 할 수만 있어도 나는 더 바랄 것이 없다. 식사는 주로 토르티야나 푸석한 밥, 삶은 콩과 당근, 튀긴 바나나를 주로 먹고 가끔 타이어처럼 질긴 고기나 기름에 전 치킨, 민물고기 튀김이 테이블에 올라오기도 한다. 맛있고 다양한 음식에 익숙한 한국 사람이라면 산지에서의 식사는 고역인 경우가 많다. 아름답고 이국적인 산지 농장을 돌아다니며 멋진 커피를 쇼핑하듯 골라 담는 일이 전부라기에 이 일은 고단함과 얼마간의 위험이 늘 함께한다.

 

2019년 초 에티오피아에서 일정 마치고 케냐 나이로비까지 비행기로 이동한 적이 있는데, 한 달 후 내가 탔던 비행기 편이 에티오피아 공항에서 이륙 직후 추락해 탑승객 전원이 사망했다. 2018 5월에는 새로운 아프리카 커피를 찾기 위해 콩고민주공화국에 방문했는데 마침 에볼라가 발병해서 비상사태가 선포됐고, 며칠 후에는 우리가 방문하기로 한 국립공원 지역에서 무장 게릴라에 의해 영국인 관광객 두 명이 납치되고 운전사와 경호원이 살해당했다. 그해 5월까지 이 지역에서만 사십여 명이 납치돼서 살해당했다. 이곳의 거점 도시인 부템보 Butembo에서 우리가 묵은 호텔 정문은 바주카포를 든 경비가 지키고 있었다. 그 호텔은 매우 안전하거나 매우 그렇지 않거나 둘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커피 바이어라면 자주 방문할 수밖에 없는 라틴아메리카는 예전보다 치안이 많이 좋아지긴 했지만, 아직도 세계에서 위험한 도시로 손꼽히는 곳들이 몰려 있다. 그중 온두라스의 산페드로술라, 엘살바도르의 산살바도르, 과테말라의 과테말라시티는 아직도 범죄율이 높아 주의가 필요한 곳이다. 그렇다고 커피 산지 방문이 꼭 위험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보통 현지 파트너나 생산자가 마중 나와 일정을 함께하고 범죄율이 높은 도시가 아닌 산골의 커피 재배 지역에서 주로 시간을 보내기 때문이다.

 

내가 정작 커피 바이어로서 곤혹스러운 순간은 따로 있다. 생산자를 앞에 두고 커피를 평가하거나 구매 여부를 바로 결정해야 하는 경우다.

 

한번은 어떤 고객으로부터 우리 회사에서 산 원두가 너무 맛없다는 정중한 메일을 받았다. 개인의 취향일 수도 있고 추출 방법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그분이 원두 구매를 위해 지불한 비용을 그만큼의 가치로 되돌려드리지 못한 것에 대해 책임감을 느끼고 내내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그날 오후 나는 온두라스 마르칼라 지역의 작은 협동조합을 방문했는데 나를 위해 커핑 테이블이 준비되어 있었다. 열 개 정도의 샘플이 테이블에 올라왔고 그 커피를 기른 생산자들이 자리에 함께했다. 맛있는 커피도, 그렇지 않은 커피도, 뭔가 심각한 문제가 있는 커피도 있었다. 샘플을 하나씩 맛볼 때마다 긴장하는 생산자들의 눈빛은 그곳을 한없이 작아진 마음들이 모인 어색하고 무거운 무대로 만들었다.

 

커핑이 끝나고 나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좋은 소리, 마음에 상처가 될 만한 얘기, 어쭙잖은 조언까지 곁들여 결국 할 말을 다해버렸다. 그게 당시 그곳에서 내가 맡은 배역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내심 착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었던 걸까, 오지랖처럼 한마디를 더하고 말았다.

 

“오늘 여러분 커피에 대한 제 평가는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일 뿐 절대적인 것은 아닙니다. 다른 누군가에게는 오늘 제가 별로라고 했던 커피가 인생 최고의 커피일 겁니다.”

 

생산자들이 수군거렸지만 무슨 뜻인지 알아듣지 못했다. 로스팅은 일주일에도 몇 번씩 한다. 로스팅도 참 어려운 일이지만 그래도 마음만 먹으면 하루에도 몇 번이고 다시 로스팅하며 테스트하고 문제점을 바로잡아나갈 수 있다. 하지만 커피 농사는 일 년에 단 한 번뿐이다. 내가 원두에 대한 컴플레인 때문에 속상했던 마음이 어디 내가 그날 그들의 커피에 대해 쏟아냈던 말이 만들었을 생채기에 비할까 생각하니 부끄럽다. 누군가로부터 평가받는 것도, 누군가를 평가하는 것도 당혹스러운 일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평가를 받아들이거나 나 자신을 냉정하게 평가하는 것은 차라리 고통이다.

 

하지만 커피 바이어 일이 힘들고 어렵기만 한 것은 아니다. 사실 나는 산지 출장을 손꼽아 기다린다. 오래 함께 일했던 생산자와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는 아름다운 커피 농장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언제나 따듯하게 반겨주는 그곳의 친구들, 보여줄 것이 있다며 신이 나서 커피 밭을 빠르게 가로지르는 그의 뒷모습, 거래가 성사되고 행복해하는 표정, 더 좋은 품질의 커피를 만들겠다는 다짐, 푸른 커피나무, 공기 좋은 산속에서 함께하는 식사, 한국에 가져가서 빨리 로스팅해보고 싶은 멋진 커피, 다음날 일정을 떠올리다가 이내 빠져드는 달콤하고 깊은 잠…… 이 정도면 매년 설레는 마음으로 짐을 싸서 산지로 향하는 이유로 더없이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