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회

희망의 다른 이름

마리오의 이야기


내 이름은 마리오. 니카라과의 라스세고비아Las Segovia 지역에서 아내 마리아, 아홉 살 딸 클라우디아, 일곱 살 아들 에르네스토와 함께 살며 스페인어로희망이라는 뜻의라에스페란사La Esperanza’라는 작은 커피 농장을 하고 있다. 이 농장은 돌아가신 할아버지부터 이어져왔다. 80년대 내전 때 대농장주들은 농장을 거의 버리다시피 하고 미국과 멕시코로 피난을 떠났지만, 우리 농장은 워낙 작았고 외국에 아는 친척도 없어 그냥 이곳에 남아 있었다. 아버지는 그 시절에 만연한 절망이 어디에나 웅크리고 있었다고 회상한다. 내전이 끝나자 대농장주들이 돌아와 좌파 정부가 소농들에게 분배했던 예전 농지를 대부분 되찾아갔다. 우리 동네에서 그 시절에 대해 말하는 것은 금기다. 내가 어릴 적 일이고 동네 어른 누구도 자세한 이야기를 해주지 않아 사실 나도 아는 것이 별로 없다.

 

나라고 처음부터 커피 농사가 마냥 좋았던 것은 아니다. 한창 젊었을 때는 나도 또래들처럼 아메리칸드림을 좇아 돈 벌러 미국에 갔다. 처음에는 마이애미에서, 그다음에는 히스패닉 커뮤니티 규모가 더 큰 로스앤젤레스에서 일했다. 영어를 못 했지만 일하는 데 별 어려움은 없었다. 주로 호텔이나 식당에서 청소 일을 맡았다. 몸은 힘들었지만 견딜 만했다. 돈도 제법 모아 부모님께 송금해드릴 수 있었다.

 

어느 일요일 오후, 새벽 호텔 일을 마치고 방에 들어와 잠깐 잠이 들었다. 창문 너머 아이들 뛰어노는 소리에 깨어보니 벌써 해가 넘어가는 어스름이었다. 식당 뒷정리를 하러 슬슬 나가봐야 하는데 그날따라 유난히 삐걱거리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기가 쉽지 않았다.


“호세야, 저녁 먹자!” 옆집 뚱보 아주머니가 창문을 힘차게 열어젖히며 우렁찬 목소리로 공놀이에 여념 없는 아이를 불러 세웠다. “, 엄마!” 아이가 달려오는 소리

 

미국 생활은 나쁘지 않았다. 나는 그저 소박한 저녁상 앞에서 가족과 함께 식전 기도를 올리는 고요한 순간이 더 간절했을 뿐이다. 커피 농사는 녹록지 않았다. 아버지를 도와 새벽부터 해질녘까지 산비탈에서 일해도 일 년에 단 한 번 커피를 팔아 돌아오는 소득은  보잘것없었다. 최소한의 비료와 농약을 사는 데 필요한 비용은 물론이고 부모님 병원비와 우리 가족 생활비도 빠듯해 마음이 무거웠다. 결국 나날이 몸이 약해지는 부모님을 위해 미국에서 벌어온 돈을 마지막까지 탈탈 털어 읍내에 작은 구멍가게를 내드리고 지금은 아내와 둘이서 농장 일을 꾸려나가고 있다.

 

내가 필을 처음 만난 것은 8년 전 겨울이었다. 하루는 내가 커피 가공과 보관, 판매를 위탁한 커피 수출업체 사장 루이스에게 연락이 왔다. 한국 커피 바이어가 내 커피를 매우 마음에 들어해서 같이 농장을 방문하고 싶다고 했다.

 

필은 빡빡머리에 눈이 찢어진 것이 우리가 눈이 작은 이곳 친구들을 부르는 별명인 치노Chino(중국 사람) 모습 그대로였다. 그는 커피와 관련한 스페인어를 통역 없이 대강은 알아들었고 커피 재배와 가공 관련한 질문도 간단하게나마 내게 직접 물어봤다. 나는 그에게 우리 농장 곳곳, 특히 지난봄 농장의 가장 높은 산비탈에 고생하면서 심은 마라카투라 품종의 어린 나무들을 보여주고 싶었다. 나는 힘들어하는 표정이 역력한 필을 애써 모른 척하며 가파른 나무숲 사이로 난 좁은 길을 신이 나서 올라갔다. 사실 처음에는 어쩐지 면접을 보는 것 같은 느낌도 들고 그가 꼭 우리 커피를 사줬으면 하는 조바심에 초조한 마음도 들었다. 하지만 같이 농장을 둘러보며 나는 그가 우리 농장을 마음에 들어한다는 것을 그의 눈빛으로 읽을 수 있었고 이내 마음이 놓였다.

 

필은 우리 농장이 산등성이 비탈에 위치했는데도 일조량과 통풍이 좋다고 했다. 내게 비료를 몇 번 주냐고 물어봤고 커피나무 이파리의 탄력과 윤기를 보더니, 나무의 건강 상태가 좋다고 칭찬해줬다. 나는산비탈의 경사와 지면 방향에 따라 일조량이나 통풍에 큰 차이가 있고 경사 때문에 땅이 곧잘 침식되는 어려움이 좀 있긴 하지만, 산 위쪽 토양으로부터 좋은 영양분을 가진 물과 거름이 한데 모이는 곳이다 보니 맛있는 커피가 난다고 자랑스럽게 답했다. 그의 눈이 빛나고 있었다.

 

우리는 산에서 내려와 커피 열매의 점액질을 발효시키는 탱크와 커피 건조장을 둘러봤다. 필은 두 손으로 커피를 들어 올려 향을 맡았다. 얼마나 오래 커피를 건조하는지 물어봤고 내 답변에 아주 적절한 것 같다며 미소를 지었다. 농장을 둘러보고 집으로 내려와 필, 루이스와 함께 아내가 준비해준 점심을 먹었다. 필은 아들 에르네스토에게 몇 살이냐고 물었다. 그러더니 나보고조만간 에르네스토와 거래를 하게 되겠군하고 농담을 던졌다. 나는 그의 농담이 따스하다고 느꼈다.

 

그가 엘살바도르로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루이스에게 연락이 왔다. 우리가 루이스에게 위탁한 세 로트 중 두 개를 필이 정말 마음에 들어하며 바로 구매 예약을 했고희망이라는 우리 농장 이름 그대로 한국 소비자에게 알리고 싶어한다며 축하한다고 전했다. 필이 제시한 가격은 아주 흡족했다. 그가 우리 커피 전부를 사줬으면 더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운 마음도 들고, 모두 사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궁금하기도 했다. 하지만 어쨌든 우리 커피가 다른 농장들 커피와 아무렇게나 섞여 헐값에 팔리지 않아도 된다니 성모 마리아님께 감사할 일이다.

 

그렇게 8년이 흘렀다. 필은 잊지 않고 매년 우리를 방문한다. 몇 년 전부터는 그가 방문했던 첫해에 같이 둘러봤던 마라카투라 나무가 제대로 결실이 맺히기 시작해서 필이 전량 구매하고 있다. 그는 우리 커피를 로스팅할 때 우리 가족과 힘겹게 오르내린 산비탈을 떠올린다고 했다. 사실 요즘은 그가 우리 농장에 와서 하는 일이 별로 없다.

 

“작년에도 좋은 커피를 보내줘서 정말 고마워. 우리 고객이 라에스페란사 커피를 마시며 행복해했고 나도 덕분에 칭찬 많이 들었어. 이 얘기 하러 왔어. 밥이나 같이 먹자.”

“얘들아, 너희 코레아노, 필 알지? 작년에도 봤잖아.”

“그럼 알지, 진짜 치노인걸?”

 

필은 클라우디아와 에르네스토가 그사이 많이 크고 더 예뻐졌다며 입안의 소시지를 다 삼키지도 않은 채 말했다. 언제부터인가 겨울이 오면 곧 필이 오겠구나 하며 친구를 기다린다. 그는 올해도 우리 커피 세 로트를 구매했다. 여전히 커핑만 해보고 구매하지 않은 로트도 있다. 커피 맛이 깨끗하지 않다나. 똑같이 정성 들여 재배했고 품질이 모두 좋은데 뭐가 문제라는 것인지, 여전히 그의 말이 잘 이해 가지 않을 때가 있다. 하지만 올해도, 앞으로도 필이 우리 커피를 구매하는 한 적어도 커피를 어디에 팔아야 할지, 돈을 얼마나 쳐줄지 걱정하지 않고 커피나무를 기르는 데만 집중할 수 있으니 다행이다.

 


서필훈의 이야기


내 이름은 서필훈. 커피 리브레의 대표이자 주로 하는 일은 산지에 커피 사러 다니기와 로스팅이다. 산지에서는 나를이라고 부른다. 나는 이 한 음절 이름이 마음에 든다.

 

커피 품질을 높이기 위해 꼭 하고 싶었던 산지와의 다이렉트 트레이드는 녹록지 않았다. 지지리도 없이 시작한 사업에, 다이렉트 트레이드를 위한 최소 구매 수량을 채우기 위해 이리저리 어렵게 돈을 꾸러 다니며 생두를 들여왔다. 하지만 정작 장사는 그후로도 오랫동안 신통치 않았다. 거래하던 농장 가족들을 떠올리면 한번 시작한 농장과의 거래를 쉽게 그만둘 수 없어서 그다음 해에 더 많은 돈을 꾸러 다녀야 했다. 그런데도 커피 생두 욕심에 매년 더 많은 나라의 농장들과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나갔다.

 

지금은 사업이 많이 안정되어 고객과 도움을 준 주변에 감사한 마음뿐이지만 아직도 빚이 산더미다. 그 팔 할은 다이렉트 트레이드에 대한 내 욕심 때문이고 나머지 이 할은 내 무능한 경영 탓이다. 그래도 나는 즐겁다.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고, 또 내가 느끼는 이 행복을 좋은 커피를 재배한 생산자들과 조금이나마 나눌 수 있다는 건 정말이지 멋진 일이기 때문이다.

 

마리오. 그는 말수가 적지만 미소가 따듯한 부인 마리아, 말괄량이 딸 클라우디아, 그리고 수줍음이 많은 아들 에르네스토와 함께희망이라는 이름의 커피 농장을 일군다. 8년 전 니카라과의 오코탈에 있는 한 커피 수출업체에서 수십 종의 커피 샘플을 두고 커핑을 했는데  서너 가지 커피가 마음에 들었다. 신기하게도 그중 두 가지가 마리오의 커피였다. 그 커피는 당시 한창 유행하던 화사하고 밝은 산미가 입안에서 작렬하는 커피가 아니었다. 오히려 맛이 단아하고 은은해서 지나치기 쉬운 커피였다. 색감이 화려하거나 향이 진한 꽃 말고, 뭐랄까 발밑을 눈여겨보지 않으면 지나치기 쉬운 제비꽃 같았다. 나는 루이스에게 그 농장에 방문하고 싶다고 부탁했다. 나는 트럭 뒤편에 올라타 먼지 날리는 비포장 산길을 한참이나 오르내린 후에야 그의 농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마리오는 덩치가 크고 구레나룻이 있었다. 반갑게 맞아주었지만, 왠지 조금 긴장한 것 같았다. 그는 보여주고 싶은 것이 많았는지 나를 농장 이곳저곳으로 데리고 다녔다. 우거진 덤불과 커피나무 사이를 헤치며 그의 걸음을 뒤쫓기가 쉽지 않았다. 인제 그만 올라가자는 말이 헐떡이는 숨과 함께 턱밑까지 올라왔지만, 점점 신이 나서 어느새 환하게 펴진 그의 얼굴을 보고 말을 삼켰다.

 

나는 그의 농장이 오랫동안 정성 들여 가꿔온 결실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커피나무들은 매우 건강했고 커피나무를 직사광선에서 보호해주는 그늘나무 관리도 잘 되고 있었다. 비탈진 곳의 토양 침식을 막기 위한 세심한 버팀목들도 농장주의 노력과 열정을 말해주고 있었다. 마리오는 미국에서 살다 와서 그런지 소비국의 커피 문화를 잘 이해하고 있었고 한국의 커피 문화에 대해서도 질문을 많이 했다. 나는 커피밭을 둘러보고 다리가 거의 풀려 내려왔다. 그사이 마리아가 점심을 준비해놨다. 점심은 여느 중미에서처럼 지겨운 토르티야와 맛없는 붉은 콩, 퍽퍽한 치즈, 느끼한 바나나 튀김이었다. 그래도 시장이 반찬인지라 맛있게 먹었다. 우리 온다는데 먹을 것이 마땅치 않아 마리아가 수제 소시지를 좀 사왔다며 화로에 구워 내왔다. 점심이 맛없다며 투정하던 마음이 부끄러워 갑자기 목이 멨다. “아구아Agua(), 아구아!”

 

이제 마리오와 거래한 지도 9년차다. 올해 초 그의 농장에 갔더니 산꼭대기에 있는 마라카투라 커피나무들이 멋지게 자랐다며 보러 가자고 했다. 그 길이 얼마나 험난한지 잘 알기에 핑계를 대고 거절하려 했지만 이번에도 역시 그의 빛나는 눈을 본 순간 거절하는 데 실패했다. 오늘은 일곱 살 에르네스토가 길을 따라나섰다. 어린 녀석이 힘들지도 않은지 아버지를 따라 산길을 잘도 올라갔다. 나는 차오르는 숨을 겨우 달래며 생각했다. ‘정말이지 저 꼬맹이가 조금만 더 크면 노쇠해진 나를 이끌고 이 길을 오르겠구나.’

 

요즘은 나이가 들었는지 산지에 다녀오면 꼭 한 번씩 아프곤 한다. 이제 익숙해질 법도 한데. 늘 부족했기 때문에 오히려 희망은 반짝였다. 절망은 알면서도 늘 걸려 넘어지는 돌뿌리같이 익숙했다. 나의 일과 생활은 나쁘지 않았다





ⓒ 서필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