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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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의 욕구와 자기 파괴의 욕구가 다른 이름을 가진 하나라는 것이 언제나 나를 슬프게 했습니다. 20세기는 끔찍한 세기였고, 끔찍한 걸 너무나 많이 목도한 이들은 견디지 못하고 목숨을 버리기도 했습니다. 한국이 다른 나라보다 자살률이 높다지요? 한국 예술가들의 자살률은 아마 그보다 더 높을 겁니다. 언니들, 친구들, 동생들…… 거의 격년으로 한 사람씩을 잃었습니다. 예민해서 아름다운 사람들이었다는 건 압니다. 파들파들한 신경으로만 포착해낼 수 있는 진실들도 있겠지요. 단단하게 존재하는 세상을 향해 의문을 제기하는 모든 행위는 사실 자살을 닮았을 테고요. 그래도 너무 많이 잃었습니다. 

다 포기하고 싶은 날들이 내게도 있습니다. 아무것에도 애착을 가질 수 없는 날들이. 그럴 때마다 생각합니다. 죽음으로, 죽음으로 향하는 내 안의 나선 경사로를 어떻게든 피해야겠다고. 구부러진 스프링을 어떻게든 펴야겠다고. 스스로의 비틀린 부분을 수정하는 것, 그것이 좋은 예술가가 되는 길인지는 몰라도 살아 있는 예술가가 되는 일임은 분명합니다. 매혹적으로 보이는 비틀림일수록 그 곁에 어린 환상들을 걷어내십시오. 직선으로 느리게 걷는 것은 단조로워 보이지만 택해야 하는 어려운 길입니다. 

―XX예술대학 특별 초청 강연(1996)에서


*


엄마가 자살했을지도 모른다고, 명은 남매는 오래 의심했었다. 그건 너무 갑작스럽고 공교로운 죽음이었다. 심시선 여사는 생일날, 가족들과 점심식사를 하고 바로 다음날 새벽에 세상을 떴던 것이다. 누가 그렇게 죽는단 말인가? 

팔월이었다. 부암동의 늘 가는 그 중국집의 원형 테이블 위로 오래된 에어컨의 바람이 시들시들하게 불었고, 시선은 식은땀을 많이 흘렸다. 음식을 많이 먹지 못하고 힘들어했다. 그렇긴 해도 그 중국집까지 본인 다리로 걸어왔다 다시 걸어갔으므로 그리 우려할 만한 상태로는 보지 못했던 것이다. 

임종을 지킨 건 명은이었다. 그렇게 될 줄 모르고 부암동 집에서 잤다. 모친이 애틋해서가 아니라 서울에 머물 곳이 없어서 하루 자고 갈 요량으로 그랬다. 서울이고 어디고 정처 없는 건 남매들 중에 명은 혼자였다. 명혜는 명은더러 다른 모두가 더하기의 인생을 살 때 혼자 빼기의 인생을 산다며 감탄인지 빈정거림인지 알 수 없는 말을 했었다. 명은은 자신이 택한 빼기의 인생이 싫지 않았다. 그날, 빈방은 많았지만 이야기를 하다 자려고 요를 시선의 침대 곁에 깔았던 건 얼마나 다행이었나? 다른 방에 있었다면 아무 소리도 듣지 못했을 것이다.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는 거의 기억나지 않는다. 중요하지 않은 이야기였을 것이다. 그때 명은은 부여에서 지냈고, 발굴하던 절터에 대해 조금 늘어놓았을 테고, 시선의 생각은 결국 T에 가닿았다. 

“가깝네, T면에서.”

“부여보단 천안에서 가깝지. 어쨌든 가보실래요, 모시고 갈까요?”

“몸이 안 좋아서.”

시선의 숨은 그때부터 가빴다. 

“아까 식사도 많이 못 드시더니. 병원 가야겠어요.”

“안 가, 병원 너무 자주 갔어.”

그러다가 좀 편해지는 것 같기에 명은도 곧 잠이 들었고, 다시 신음 소리에 깼을 때는 상황이 훨씬 심각해져 있었다. 명백히 괴로운 상태에 있는 모친을 보자 잠이 확 달아났고 다른 것들이 그 자리를 채웠다. 

“앰뷸런스 부를게요.”

“싫어. 나 집에서 죽을 거야.”

“그래도.”

“부르지 마. 절대 부르지 마.”

“그럼 언니 부를게.”

“아니야, 자게 내버려둬. 다른 애들도 다 자게 내버려둬.”

명은은 그 말을 듣지 않았고, 언니와 동생들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그날따라 다들 곧바로 받지 않았다. 시선의 생일이 막 지난 참이었고 방심했던 것이리라. 설마 그날은 아니리라고. 

시선의 팔이 허공을 휘저었고, 누군가를 보고 있는 것 같았다. 몇 번이나 그랬다. 부르는 말은 입안에서 뭉개져 누구를 부르는지 알 수 없었다. 명은은 그 손을 잡아주며 엄마를 데리러 온 사람이 자신의 아버지일지, 경아의 아버지일지 아니면 완전히 다른 사람일지 알고 싶어했다. 시선에겐 마중 나올 사람이 많았다. 죽은 사람들이 많았다. 

다섯시가 되어서야 명준과 연락이 닿았고, 평소 다니던 병원의 장례식장으로 시선의 시신을 옮겼다. 일곱시에 경아가 그쪽으로 왔고 수면제를 먹고 잤던 명혜가 가장 늦었다. 맏이는 하필 그날 수면제를 먹었던 걸 오래 후회했다. 명은을 보자마자 울면서 힘껏 안았다. 

“어떻게 이렇게 갑자기……”

장례식장의 냉방이 세서 뺨에 닿는 언니의 뿔테가 차가웠다. 명은은 명혜에게 변명해야 할 것 같았다. 

“엄마가 병원에 가기 싫다고 그랬어. 절대 가기 싫다고.”

“못 이기지, 넌. 못 이겼을 거야.”

명혜는 짧고 강하게 운 다음 완벽한 상주가 되었다. 손님들이 폭풍처럼 몰아닥칠 것이었으므로 명혜가 능률적으로 지휘해야 했다. 명은은 언니에게 남은 결정들을 맡기고, 실컷 슬퍼할 수 있었다. 명준은 명혜의 수족처럼 움직였고, 경아는 둘째가 어려 안쪽 방에 머물러야 했지만 가장 많이 울었다. 미국의 우윤 말고는 조카들도 다 있었기에 명은은 사흘 내내 시선이 남기고 간 것들에 대해 되새김질할 수 있었다. 

장례식이 끝나고 나서야 의심이 고개를 들었다. 그 모든 것이 석연치 않게 느껴졌던 것이다. 

“엄마가 약을 먹었나?”

명혜가 입 밖으로 이야기를 꺼냈을 때 명은은 부정하고 싶었다. 

“무슨 소리야, 전형적인 심근경색 증상이었잖아. 식은땀에 소화불량에……”

“심장약 같은 거 그날 아침에 왕창 먹어버린 거 아닐까? 걸어다닐 수 있을 때까지만 살고 싶다고 말했잖아. 입버릇처럼.”

“아니면 먹어야 할 약을 먹지 않았든가.”

평소 잘 끼어들지 않는 명준도 끼어들었다. 

“하필 생일이었던 게……”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래. 생일까지 버티다 숨을 놔. 숫자 같은 것에 은근히 매달리니까.”

경아가 나머지 세 사람의 의심에 물들지 않고 말했다. 아마도 유전적인 요인으로 머릿속이 남매들 중에 가장 건강한 듯했다.

“심근경색이었으면 엄청 고통스러웠을 텐데.”

“고통을 참는 것도 자살인가?”

모일 때마다 슬그머니 엄마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자식이나 조카들에겐 말하지 못하고 남매들끼리만 그날의 엄마 증상을, 그즈음의 엄마 언행을 되짚었다. 참다못한 경아가 의료계의 친구에게 긴밀히 자문을 구할 때까지 그랬다. 

“아니래.”

의기양양하게 돌아와 경아가 세 사람에게 말했다. 

“요즘 약은 좋아서 잠깐 거르거나 왕창 먹는다고 죽지 않는대.” 

“그래?”

명혜의 얼굴이 밝아지던 걸 명은은 기억한다. 

“엄마는 자살할 사람이 아니었어. 지지부진한 죽음을 선택하지 않은 건 맞을지 몰라도 그건 자살이 아니었어. 나는 엄마를 믿었는데 어째 친딸 친아들 들이 너무한 거 아니야?”

“아니었구나.”

“내가 제일 좋은 딸이었는지도 몰라.”

경아가 깔깔 웃었다. 그 웃음으로 의심은 끝이 났다. 엄마는 그냥 자식 손주들 얼굴 한 번 더 보려고 생일까지 꽉 채우고 세상을 뜬 것이었다. 너무 갑작스러워서 남은 가족들에게 충격을 주긴 했지만, 갑작스러운 죽음이 복이기도 하다는 걸 결국 깨닫게 되었고 죽음의 방식도 정말 엄마다웠다고 받아들일 수 있었다. 

“힘들지 않았어? 엄마 장례식에서?”

장례를 치르고 한참 지나서 명혜가 물어왔을 때 명은은 무슨 말인지 바로 이해하지 못했다. 

“다들 힘들었지. 삼일장 같은 거 이제 없어져야 한다고 엄마가 그랬었잖아. 요새는 하루로 치르기도 한다는데, 점점 그렇게 되어야 할 것 같아.”

명혜가 명은의 대답에 애매모호한 표정을 지었다. 명은은 그제야 언니가 어떤 의도로 물었는지 알아챘다. 

“엄마 장례식에서 나만 혼자라서? 남편도 자식도 없이?”

전광판에 자신의 이름만 한 줄이었다. 그것을 알아채긴 했지만 크게 신경 쓰진 않았다. 

“언니, 내가 그런 거 신경 쓰는 사람이었으면 지금까지 혼자 살지 않았지.”

“내 가족이 네 가족이야, 알지?”

“아니, 아니야. 냉정하게 이야기하려는 게 아니라 화수, 지수, 다른 아이들 다 사랑하지만 난 조카들에게 짐이 되지 않을 거야.”

“냉정하게 들리는데.”

“엄마처럼 죽을 수 있다면 좋겠는데, 요즘 보니 그런 복은 드물더라. 하지만 어떻게든 방법을 찾을 거야. 그때까지 난 괜찮아.”

“그때 그 사람이 그렇게 내빼지 않았으면……”

“아니야, 언니. 아니야.”

명혜가 말하는 그때 그 사람은 젊은 시절 명은이 사귀다가 결혼 직전 파혼한 사람을 말했다. 그 오래전 일을 명은은 잊었는데 명혜가 곱씹는 건 희한한 일이었다. 상대의 부모가 상견례까지 한 다음에 엄마가 누군지 깨닫고 격이 맞지 않는 집안이란 결론을 내렸던 것이다. 에둘러 교양 있는 언어로 거절의 말이 전해졌지만, 세계적으로 악명 높은 여자의 복잡한 혼혈 자식이란 게 싫었던 듯했다. 덕분에 집안이 발칵 뒤집어졌었고, 모두가 격노하는 바람에 명은은 당사자임에도 뒤로 밀려났던 것이다. 엄마나 언니만큼 화가 나진 않았다. 오히려 비밀스레 어떤 안도감을 느꼈고, 이후 편안한 마음으로 살아왔다. 명백한 피해자는 이쪽이니까 아무도 명은을, 명은의 혼자-됨과 혼자-삶을 비난하지 못했다. 요즘과는 달리 명은의 젊은 날엔 혼자 사는 삶을 주변에 납득시켜야 했으므로, 명은은 파혼을 기차게 이용했고 잘 먹혀들어간 것에 만족한 후 나쁜 기억을 별로 되새김질하지 않았다. 

“길 가던 꼰대들이 엄마를 알아보고 욕하고 그랬지.”

명혜의 길고 긴 심지는 똬리를 틀고 오래 타는 모양이었다.

“언니, 그러던 사람들도 이제 죽고 없을걸.”

“그래, 다 죽었겠다.”

“얼마 전에 티브이에서 제초기 광고를 하더라고. 아주 싼 티 나게 만든 광고였는데 웬 풀이 무성한 무덤의 비포, 애프터 샷을 보여주는 거야. 삐용삐용 뚜앙뚜앙 하는 음악이랑 같이. 어찌나 웃었던지. 광고 만든 사람들과 관련 있는 무덤인지, 제초기 회사와 관련 있는 무덤인지, 아니면 그냥 지나다 낯선 무덤을 깎아준 건지 정신없이 웃다가 엄마가 그 광고를 좋아했을 거란 생각을 했어.”

“아, 나는 스크린 골프 치다가 코스 한가운데 웬 근엄한 무덤이 그대로 재현되어 있는 거 보고 엄청 웃었잖아. 구미 어디 골프장의 세번째 홀이던가? 대충 생략해도 됐을 텐데 굳이.”

“역시 무덤 같은 건……”

“그래도 난 가끔 엄마 무덤 만들 걸 후회해. 말을 너무 잘 들었어. 먼바다에 뿌리라고 해서 뿌려버렸더니 찾아갈 곳이 없어졌네.”

명은은 어깨에 많은 것을 짊어진 명혜가 가끔 휘청인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가만히 손을 뻗어 쓸어주었다. 

“너라도 결혼 안 한 게 다행인가? 너까지 결혼했다 이혼했으면 우리 남매 이혼율 칠십오 퍼센트니까.”

“그래, 오십 퍼센트에서 만족하고 살자.”

존재하지 않는 무덤에 대해 아쉬워하거나 하지 않으며 첫째와 둘째가 지난 십 년을 반추했다. 단조로운 방식으로 괜찮은 십 년이었다. 그 십 년을 기념하는 게 나쁜 생각은 아닐 거라고 드디어 합의에 이르렀다. 



5


입안에 말이 고이는 것을 보니 봄이 온 듯하다. 나의 작고 방치된 정원에는 수반이 하나 있고 새들이 와서 몸을 씻고 간다. 그 모습이 내 아이들 어릴 적을 닮았다. 아직 찬물에 머리를 대충 감고 히히 웃는 것과 어찌나 비슷한지 모른다. 꾀바르고 곰살맞은 막내가 벌써 중학생이라니 믿기지 않는다. 

볼품없는 정원에 자랑거리가 하나 있다면 아마릴리스 화분일 것이다. 온실이라고 부를 수도 없을 만큼 부실한, 폐목에 아크릴판을 얹은 안쪽에 자리한 오래된 화분인데 추운 서울에서 용케도 매해 꽃을 피웠다. 어마어마한 붉은색 꽃이 피면 존재감이 너무나 강렬하여 그 시기에 다른 것들은 전연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원래부터 내 것은 아니었고 막내의 어머니인 조말희씨가 그 아이와 함께 맡긴 것이다. 둘을 다 잘 키우며 기다리려고 했는데, 말희씨는 불의의 사고로 타지에서 목숨을 잃고 말았다. 공부를 마치고 무사히 돌아왔다면 좋았을 것이지만 세상일은 마음대로 풀리지 않으며 좋은 사람도 나쁜 일을 당한다. 우리가 했던 악수는 마치 계약 후에 나누는 악수와 같았는데, 맞잡은 손이 참 단단했는데, 이제 나 혼자만 남아 약속을 지키고 있다. 다년생 구근이 인주처럼 꽃을 피우는 걸 보면서…… 그렇지만 아이가 중학교에 갔소, 잘 다니고 있소, 어깨가 단단해지고 손이 여물었소, 그 붉은 꽃이 어딘지 모를 곳에 이곳의 소식을 전할 것만 같다. 

―『원예와 XX』(1984)에서 


*


경아는 규림과 해림이 학교에 간 사이에, 두 아이가 싸놓은 짐을 체크했다. 자기 짐은 자기가 챙기는 거라고 맡겼지만 빠뜨린 건 없는지 그래도 한번 들여다봐야 할 것 같았다. 규림은 고등학생이지만 어딘지 야무지지 못했고, 해림은 오학년치고 덤벙거리지 않았지만 한 방향으로 쏠리기 쉬운 성격이었다. 역시나 규림은 가서 수영하고 어쩌고 할 걸 생각하지 않았는지 속옷과 양말을 날짜 수대로만 딱 맞게 넣어놨기에 경아가 몇 개 더 넣었다. 그러곤 해림의 가방을 여니 온통 회색 티셔츠에 후드, 검은 캡모자가 두 개나 들어 있었다. 옷 아래에는 묵직한 망원경도 있었고 말이다. 

“꼬맹이는 목적이 확실하군.”

첫째는 뭘 좋아하는지 도통 모르겠고, 둘째는 새를 좋아했다. 정확히는 새밖에 좋아하지 않았다. 둘이 반을 섞으면 좋을 텐데 경아 마음대로 풀릴 일은 아니었다. 회색 옷들을 색깔이나 무늬가 있는 옷으로 몇 벌만 바꿔 넣을까 하다가 난리를 칠 것 같아서 포기했다. 이럴 때면 곧잘 상담하곤 하는 명혜에게 전화를 걸었다. 의외로 회사에서는 서로 길게 이야기할 시간이 없어서 통화가 더 잦았다. 

“언니, 바빠?”

“뭐 이것저것 마지막으로 점검하고 있었어. 숙소 주인이랑도 연락하고.”

“해림이 때문에 속상해서. 또 칙칙한 색 옷만 잔뜩 넣은 거 있지.”

“아, 아직도 그 회색 참새가 제일 좋대?”

“박새야.”

해림이 가장 좋아하는 종류는 박새과였고, 다른 새들을 관찰하기도 좋다며 일 년 내내 회색 옷에 검은 캡모자를 썼다. 그러면 박새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고 했다. 

“좀 화려한 색깔 새를 좋아하면 좋을 텐데, 걔도 참.”

“아, 지겨워 죽겠어. 좀 있으면 중학교 갈 텐데 학교엔 전혀 관심도 없고 집에 오자마자 가방 던져놓고 요 앞 개천으로 나가. 언니, 다음에 만나면 해림이 팔 좀 만져봐. 얼마나 딴딴한지 몰라. 망원경을 하도 들어서.” 

“뭐, 애들 막 공룡도 좋아하고 그런 시기가 있잖아……”

명혜가 힘없이 말해서, 확신 없음이 느껴졌다. 큰언니가 확신 없이 말하니 경아는 더 속상해졌다. 

“일고여덟 살 때 그러다 마는 거 아닌가? 둘째가 딸이라 예쁜 옷 입혀야지, 하고 기뻐했는데 이게 뭐야.”

“내가 신문에서 읽었는데 요즘은 성별 구분 없이 입고 자라는 게 교육적으로 좋대.”

“아니, 뭐 내가 레이스치마를 입히겠대? 줄창 회색만 입지 않았으면 하는 거지. 내가 디자이너인데 딸이 색깔에 관심이 없는 건 속상하다고. 세상에 색깔들만큼 멋진 게 또 없는데.” 

“너 안 닮고 제부 닮아서 그렇지.”

명혜의 지적에 경아는 말문이 막혔다. 해림의 전체적인 인상은 꽤 경아를 닮았는데, 성격은 제 아빠 판박이었다. 경아의 남편 정보근은 곤충학자로 된장잠자리를 연구했다. 평범해 보이는 노란 잠자리인데, 7천 킬로미터 넘게 이동하는 놀라운 생물이라며 몇 년 내내 이 나라 저 나라로 쫓아다니느라 바빴다. 세상 사람들이 모나크나비의 이동에는 관심이 많으면서 된장잠자리엔 너무 없다고, 지극히 인간중심적인 외모 차별이라고 늘 분개해 있었다. 다른 문제에 화를 내는 일은 거의 없다는 점에서 나쁜 배우자는 아니었다. 처음에 해림이 새에 관심을 보이자 어째서 곤충이 아니라 새인지 어리둥절해하는 것 같더니 결국 받아들이고 탐조의 기본을 가르친 것도 보근이었다. 그런 보근이다보니 해림에 대해 별로 걱정하는 것 같지 않았다. 사학년 때 해림은 학교에서 친구들과 사이가 좋지 않았고, 다른 문제들로도 담임선생님에게 여러 번 전화를 받아야 했는데도 말이다. 덕분에 부부 관계가 매우 악화될 뻔했다. 치우치고 치우친 둘째는 학교를 그저 견디고 있었고, 그것에 대해 걱정하는 건 세상에 경아뿐인 듯했다. 

“얼마 전에 생일 선물로 뭘 갖고 싶으냐니까 펠릿이 갖고 싶다는 거야. 그게 뭔가 찾아보니 부엉이가 뭐 잡아먹고 다시 토한 거래. 대체 그게 왜 갖고 싶은 거야?”

“그래서 사줬어?”

“아니, 팔아야 사주지. 파주에 꾸룩새 연구소란 데가 있어서 찾아가서 보여줬어.”


“우리 딸들은 그 나이 때 뭘 갖고 싶어했더라? 가물가물하네.”

“엄마가 살아 계셨으면 해림이 좀 잘 구슬려줬을까, 요즘은 그런 생각도 들어.”

경아의 말에 명혜가 안타까워하며 한숨을 쉬었다. 

“해림이는 엄마 돌아가셨을 때 돌잡이였으니 정말 걔만 기억이 없겠네.”

“돌 지난 아기 때문에 장례식장에 오래 못 있었는데, 사람들은 내가 의붓딸이라 자리를 자꾸 비운다고 했겠지.”

“아이고, 그런 소리 하는 사람들이 나쁜 거야. 너는 누가 뭐라 해도 우리 동생이지. 내가 너랑 명은이 다르게 생각 안 하는 거 알지?”

“솔직히 명은 언니보다 나 더 예뻐하지 않았어?”

“명준이보다 예뻐한 건 확실해.”

두 사람은 어린 날처럼 키득키득 웃었다. 친엄마를 잃고, 아빠를 잃고, 심시선 여사도 잃고 고아가 되어버린 게 아직도 가끔 믿기지 않을 정도였지만 언니들이 있었다. 오빠도 있고. 아빠와 두 엄마를 생각하면 각기 다른 마음으로 슬펐지만 특별한 날이 아니면 슬픔이 일상을 지배하진 않았다. 

“그래도 이번에 하와이 가면 해림이 제일 좋아하는 새가 바뀌지 않을까? 거기라면 화려하고 알록달록한 새들 많겠지.”

“내 인생, 남편은 잠자리 쫓아다니고 딸은 새 쫓아다니고.”

“규림이는?”

“규림이는 뭐, 참 쉽게 흡족해하는 애지.”

“엄마가 팔월에 돌아가셔서, 규림이 해림이 여름방학인 건 편하게 됐네.”

“가족여행은 정말 오랜만이다.”

자매의 마음속에 지난 세기 가족여행들의 풍경이 스쳐 지나갔다. 이제 없는 사람들이 운전하는 차에 좁게 끼여 앉아 투닥거리던 시간들이. 

“해림이가 자기 할머니 닮았냐고 물어본 적 있었는데 그때는 당황해서 장황한 설명을 해야 했지만, 요즘 생각해보니 닮은 것 같아.”

“아, 그럼, 영혼이 닮을 수 있지.”

이번에는 명혜가 확언했으므로 경아가 미소 지었다. 전화기 너머의 언니는 알 수 없겠지만 말이다. 기억도 가물가물한 일곱 살에, 엄마를 따라가겠다고 울며불며 했다면 모든 것이 지금과 같지 않았을 것이다. 여러 우연이 작용하여 엄마가 사고를 당하지 않았을 수도 있고, 심시선 여사와 아빠는 명절에나 드문드문 보는 사람들이었을 테고, 어쩌면 언니들을 미워하기까지 했을지도 모른다. 어릴 때는 그 삶을 원했던 적도 있는 듯한데, 이제는 이 삶이 아닌 삶을 상상할 수 없으니 짐작 불가능한 시간을 저도 모르게 통과해온 셈이었다. 



6


쇼필드 배럭스의 군인들 빨랫감을 픽업해서 오는 길에 사탕수수 농장, 파인애플 농장 일꾼들의 빨랫감까지 더하여 긴 국도를 달렸다. 99번 국도와 82번 국도를 가장 사랑했다. 도로 양 옆으로 펼쳐지는 작물들의 풍요로움과 멀리 떠 있는 바다, 차 보닛에 떨어지는 햇빛이나 석양이 아름다워서 질리지 않았다. 고되고 고되면서도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는 게 신기했다. 그 모든 일을 겪고도 풍경에 마음을 빼앗기다니, 그게 인간이란 생각을 했다. 매일 그럴 수 있는 건 아니었고 보통은 세탁소에서 일했다. 말이 세탁소지 세탁 공장이나 다름없었다. 운전수가 쉬는 날에만 내가 트럭을 운전했다. 운전을 곧잘 했던 게 내 자랑이었다. 

99번 국도의 어딘가에서였을 것이다. 차가 퍼져 있는 마티아스 마우어를 발견한 것은. 딱 봐도 스스로 차를 고칠 수 없을 것 같은 인상이었다. 고칠 의지도 없는 인상이었고 말이다. 트렁크 위에 올라앉아 스케치를 하고 있었는데, 그때만 해도 나는 그림 그리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선하고 친절할 거라는 잘못된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탈래요? 전화가 있는 곳까지 데려다줄 수 있어요.”

무엇을 초대하는지도 모르면서 초대했다. 마우어는 입에 물고 있던 담배를 끄고는 양철로 된 간이재떨이에 넣었다. 매끈한 재떨이를 가지고 다니는 사람이라니 강간범은 아닐 거야, 뒤늦게 겁이 나서 스스로를 다독였던 기억이 난다. 나는 그 달리는 깡통이나 다름없었던 트럭에 누구인지도 모르고 마우어를 태웠고, 마우어는 내가 영수증 뒤에 심심풀이로 그려놓았던 게를 보았다. 

“그림 그려요?”

“여기 오기 전까지는 그렸어요.”

마우어는 전 세계가 자신에게 암시를 준다고 믿는 사람이었다. 지침을 주고 방향을 주고 영감을 준다고 말이다. 하필 그 경탄할 만한 길에서 차가 고장났고, 그에게 차 문을 열어준 이는 그가 보기엔 신비해 보이는 동양 여자였고, 심지어 그림을 그린다…… 마우어가 여행 수집품처럼 나를 수집하기로 마음먹었던 것에는 나름의 맥락이 있었다. 하와이 체류가 끝나갈 즈음 나에게 교육의 기회를 주겠다고 제안해왔다. 20세기 여자들이 교육의 기회라는 말에 따라나섰던 수많은 길들은 정말 교육에 닿기도 했고, 위험한 나락에 닿기도 했다. 그럼에도 교육과 기회를 원했던 여자들을 생각하면 울고 싶어진다. 벌어질 일들을 하나도 모른 채, 신문에도 나는 유명한 사람이니 좋은 사람일 거란 두번째로 잘못된 생각에 사로잡혀 도박을 했다. 

만약에 마우어를 따라가지 않고 하와이에 남았으면 어땠을까? 이민자들은 그때 이미 농장에서 벗어나 수완 좋게, 성실하게 섬 전역에서 자리잡고 있었다. 나의 삶도 그와 비슷했을까? 내가 어디서 왔는지 마우어에게 분명 말했는데도, 마우어가 나를 그의 ‘하와이안 걸’로 불렀던 것은 나에게도 하와이 사람들에게도 무례한 방식이었다. 

―『어쩌다보니 마지막으로 남은 사람』(2002)에서 


*


명혜가 거칠고 집요하게 깨워서, 지수는 어쩔 수 없이 마음먹었던 것보다 훨씬 이른 시간에 일어나야 했다. 

“엄마, 제발…… 난 밤에 일하는 사람이잖아. 깰 때까지 안 깨우면 안 돼?”

“밤에 일하는 게 뭐 자랑이라고? 얼른 가서 화수도 깨워 와.”

버틸 때까지 버티다 방에서 나가니 박태호가 지수의 호두까기 인형으로 호두를 까려고 애쓰고 있었다. 심시선이 화수와 지수의 일고여덟 살 된 손을 잡고 크리스마스 발레 공연에 데려갔을 때 사준 것이었다. 화수와 지수가 한 방에서 같이 잘 때에 둘의 머리맡 가운데 놓여 있다가 결국은 지수가 챙겼는데, 코가 부러져서 한번 강력본드 신세를 진 이후 오랜만에 다시 위기를 맞은 듯했다. 한순간 인형의 얼굴에서 아득한 표정을 읽을 뻔했다. 

“그만해, 아빠, 제발 그만해.”

아침부터 부모 양쪽에게 다 애원하게 되었다. 

“안 되겠지?”

“당연히 안 되지. 그게 될 것 같았어? 공연장 앞에서 파는 기념품인데?”

“그래도 일단은 호두까기 인형이잖아? 이름값은 하지 않을까 시도해본 거야.”

은퇴한 이후 태호는 한두 시간 거리의 전통시장에 놀러 다니며 이것저것을 사오는 데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듯했다. 최근의 전리품은 호두였고, 시중에 파는 것보다 알이 잘고 깔끔하게 깨지지 않았지만 먹을 때마다 수고스럽게 깨니 공기 중에 산화된 맛이 나지 않고 고소했다. 펜치와 송곳이 귀찮아서 지수의 호두까기 인형을 노린 사고 과정이야 따라가겠는데, 다른 구석에서 무능하지 않은 부친이 종종 이렇듯 되도 않는 시도를 한다는 게 지수로선 어이없었다. 

“그렇게 얼굴 다 쓰면서 웃지 마. 주름 생겨.”

겸연쩍었는지 입을 크게 벌리고 웃는 태호에게 명혜가 톡 쏘아붙였다. 

“웃고 싶으면 자연스럽게 웃는 거지, 엄마도 너무한다.”

지수가 슬쩍 태호 편을 들었다. 

“너희 아빠 얼굴만 보고 결혼했는데 하회탈 되면 무슨 소용이야?”

“으…… 외모 지상주의네. 누가 엄마한테 그렇게 이야기하면 좋겠냐고?”

명혜는 딸의 지적을 신속히 검토해보는 듯했으나 굽히지 않았다. 

“운 좋으면 이십 년쯤 더 써야 하는 얼굴인데 조심스럽게 쓰라는 거지. 판판한 얼굴이면 주름이 덜 생기는데 입체적인 얼굴이라 여기저기 걸리고 구겨지는지…… 가서 레이저 맞아야겠다.”

“또? 그거 너무 아픈데. 지난번에 내가 너무 아파하니까 고무공을 쥐여주더라고.”

“그런 걸로 엄살은, 난 애를 둘이나 낳았는데.”

태호는 명혜의 타박과 권유를 별 저항 없이 받아들이는 듯했다. 비행기는 자신이 조종하고 자신은 명혜가 조종하게 뒀던 인생이었고 이제 와 바꿀 필요는 느끼지 못하는 게 아닐까 싶었다. 젊은 시절 회사 광고에 직원 모델로 발탁될 정도였으니, 허영심이 없기는 어려울 터였다. 광고 촬영장에서 만난 부모의 일화를 지수 자매는 자주 들으며 자랐다. 극적이고 격정적인 이야기였고 머릿속에서 그릴 때는 우수에 찬 흑백영화로 그려지지만 실생활에서 두 사람을 보면 와장창 이미지가 깨졌다. 

“엄마 세대는 외모에 너무 집착해. 눈만 마주치면 평가하는 말들을 한다고. 하루라도 좀 외모 생각을 하지 않고 보내봐.”

“얘는 어디서 또 공익 팸플릿 같은 걸 봤대? 언니나 깨워 와.”

지수는 부모를 개조하려는 시도를 얕은 한숨과 함께 그만두고, 이슬 젖은 슬리퍼에 발가락을 오므린 채 좁은 마당을 가로질러 언니의 집으로 갔다. 

화수가 멀리 멀리 이사갈 수 있었음에도 여전히 듀플렉스의 다른 한쪽에 살고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지수는 부모를 사랑하지만 사랑하는 것과 별개로 같이 사는 건 힘들었고 돈을 벌게 되자마자 자신만의 공간을 마련했다. 형편없는 공간에서 다시 형편없는 공간으로 뜀뛰기를 하며 살면서도 독립을 유지하고 가끔만 부모의 집에 들렀다. 화수도 부모를 버거워하는 것은 마찬가지일 텐데 지수와는 다른 길을 택한 것이 지수 입장에서는 신기했다. 문을 두드리자 상헌이 이미 외출 준비가 된 상태로 나왔다. 

“언니는요?”

“안 일어날 것 같은데.”

지수 역시 화수를 정말로 깨울 마음은 없었고, 시늉에 필요한 시간을 때우기 위해 바 의자에 앉았다. 

“형부, 아침 벌써 드셨어요?”

“아침 먹는 체질이 아니라, 장모님께는 먹고 나갔다고 좀……”

“알았어요. 배가 뚱뚱해질 때까지 먹고 땅땅 두들기면서 나갔다고 해드릴게요.”

“너무 과하지 않나?”

상헌은 처제에게 여유 있어 보이기 위해 웃어 보였지만, 조바심을 숨기려다가 조바심을 더 드러내버리는 타입이었다. 그다지 예민하지 않은 편인 지수도 알아챌 수 있을 정도였다. 기장의 집에 식사를 하러 온 부기장이 그 집 첫째 딸에게 한눈에 반해 결혼을 했다. 좀처럼 보기 힘든, 계산 없는 로맨틱한 결혼이었다. 내심 모든 것이 술술 풀리리라, 행복만이 기다리리라 여기지 않았을까? 기대대로 되지 않았을 때 꺾여버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상헌이 아무래도 그런 사람인 것 같아 지수는 있는 힘껏 모른 척을 해야 했다. 도망가듯 출근을 하는 형부를 있는 여유, 없는 여유를 끌어모아 배웅했다. 

지수는 계단을 올라가 언니가 자는 방에 귀를 대보았다. 깨서 부스럭거리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고 정말로 깨울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깨우려고 시도는 해보았다고 잡아떼야 하므로, 대신 옷장을 들여다보고 언니 대신 짐을 싸기 시작했다. 여름옷을 다 꺼내지도 않았는지 나와 있는 게 몇 개 없어, 방치된 박스들을 이것저것 열어보아야 했다. 너무 구겨진 것은 옷걸이에 걸어 거풍시켰다. 나는 정말 좋은 여동생이야, 지수가 중얼거렸다. 

그렇게 가까운 자매는 아니었다. 자라면서 친구들의 경우를 보며 지수는 자주 놀랐었다. 자매끼리 다들 그렇게 베스트 프렌즈로 지낸단 말인가? 화수와 지수의 사이는 나쁘지 않았지만, 친구들을 필요로 하지 않거나 대체할 만큼 가깝진 않았다. 어떤 자매들은 어딜 가든 항상 팔짱을 끼고 나지막하게 자기들끼리만 말하며, 비슷한 옷을 입거나 신발을 바꿔 신기도 하고, 격하게 싸웠다가 격하게 화해한 후 매일 일상을 공유하고 매해 여행을 다녔다. 유년 시절과 성인 시기의 분절 없이 지내는 듯했다. 화수와 지수는 그렇지 않았다. 지수는 차라리 우윤과 가까웠다. 

화수는 성실하고 가지런하고 책임감이 있었다. 학급 임원을 인기로 하는 축이 있고 행정 능력으로 하는 축이 있는데 후자였다. 어딜 가나 돈 관리를 맡는 타입이랄까? 경영을 전공하고 경영지원부에 들어간 것은 그럴듯했다. 그에 반해 지수는 “네가 화수 동생이라고?”라는 말을 반복해서 들으며 자라난 오락부장이었다. 오락부장이 대개 남자아이에게 주어지던 이천년대 초반에도, 지수가 있는 반에서는 여지없이 지수가 오락부장이 되었다. 그런 여자아이였다. 명혜는 둘째 딸에 대해 “우리 지수는 아기일 때부터 웃겼어. 뭘 믿고 맡길 수는 없지만”이라고 자주 말했다. 가족 밖에서도 마찬가지여서 아무도 지수에게 돈을 맡기고 싶어하지는 않지만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어했다. 자매는 달랐고, 너무 달랐기 때문에 충돌하는 부분이 적었고, 비슷한 유전자와 환경에서 비롯되었는데도 어떻게 그렇게 달라졌는지 서로 신기해하는 사이였다. 화수는 학교 축제에서 이상한 분장을 하고 막춤을 추는 지수를 보고 어이없어했고, 지수는 화수가 졸업과 취업과 결혼을 유능하게 운영되는 소매점의 사장님처럼 해내는 것을 보고 어이없어했다. 정말로 화수의 취미는 잘 돌아가는 가게에 가서, 모든 게 활기를 띠고 군더더기 없이 움직이는 것 자체를 구경하는 거였으니까. 

그런 언니에게 일어난 일, 언니를 언니이게 하는 모든 것을 작동 중지시킨 사건에 대해 생각하면 지수는 세계를 이해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태어났으니 사는 거지만, 정말 여기는 이해할 수 없어. 이따위로 엉망인데 지금까지 유지되어왔단 말이지? 그런 생각들이 지수의 머릿속을 조금씩 점령했다. 과거에 지수는 자주 친구들에게 묻곤 했었다. 

“나 엉망이야?”

“아니.”

“그럼 진창이야?”

“아니야.”

친구들은 항상 아니라고 말해주었고, 지수는 믿지 않았지만 요즘은 그렇게 묻지 않게 되었다. 세상이 엉망이니까 자신도 조금 엉망이어도 될 거라고. 화수 같은 사람들이 너무 가지런한 사람이 되려고 했던 건, 돌이켜 생각하면 과한 노력이었다고 변명거리가 생긴 것이다. 

지수는 화수와 세상 사이의 완충재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공기가 든 포장재 같은 것. 인도와 도로 사이의 화단 같은 것. 자동차 문에 붙은 스티로폼 범퍼 같은 것. 가족들만 해도 화수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랐다. 가족들이 그래도 다행이라고 입을 모아 말하던 때는 정말 끔찍했다. 

“그래도 눈을 안 다쳐서 정말 다행이야.”

“빨리 치료를 받을 수 있었던 게 다행이었어.”

“그 새끼가 다시는 널 해칠 수 없게 되었으니, 따지고 보면 다행이잖아.”

나쁜 뜻이 없다는 걸 감안해서 가만 듣고 있던 화수가 결국 폭발했을 때, 지수는 놀라지 않았다. 

“아무것도 다행은 아니었어. 어떻게 다행이란 말을 할 수가 있어? 다시 한번만 다행이란 말을 하면 다 안 볼 거야. 죽는 날까지 안 봐버릴 거야.” 

그렇게 다행이란 말은 금기어가 되었고, 사람들은 화수에게 말을 걸기 어려워하며 대신 지수에게 걸었다. 

“유산되지 않았다면 지금쯤 태어났겠다, 네 조카.” 

“그랬겠네.”

“보고 싶지 않아?”

“만난 적 없는 애를 어떻게 보고 싶어해?”

“생각하면 참담하네.”

“초기 유산은 원래도 흔한 일이니까, 언니한텐 그냥 그 이야기 꺼내지 마요. 뭐, 언니가 무슨 드라마 주인공처럼 울부짖길 바라는 거야? 참담하니 어쩌니 그런 말도 하나도 필요 없어.”

“다시 시도할 거래?”

“그것도 언니가 알아서 할 일이니까, 절대 물어보지 마요.”

부적절한 대화가 화수에게까지 다다르지 않게 하는 게 지수의 일이었다. 호방한 문지기처럼 지키고 서서 싹둑싹둑 썰어냈다. 아무것도 다행은 아니었다고 외치곤 침묵과 잠 속에 잠긴 화수가 방해받지 않을 수 있게. 

지수가 이해할 수 없는 건 화수가 곧바로 하와이에 가기로 한 일이었다. 설득이 필요할 줄 알았고, 다른 가족들이 너무 집요하게 설득하면 지수가 막아줄 마음도 있었는데 말이다. 팔짱을 끼고 속삭이는 가까운 자매였다면 언니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었을까? 그랬더라면 문지기 이상의 역할을 할 수 있었을까?

그저 하와이가 화수를 반겨줬으면 좋겠다고, 지수는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