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회

프롤로그


쿵쿵쿵.

제세동기처럼 심장을 흔드는 휴대폰 진동에 번쩍 눈을 떴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염소가 온데간데없었다. 최후의 순간이 고통스럽지 않기만 기도하고 있어야 할 녀석이.

쓰러져 잠든 일인용 소파에서 나도 모르게 펄쩍 튀어올랐다. 가슴에 총알구멍이 나면 이럴까. 숨을 쉴 수 없었다. 억지로 날숨을 끌어올리자 목구멍으로 피비린내가 치밀었다. 바닥에 떨어진 휴대폰이 계속 울어댔다. 통화보다는 전기충격이나 인공호흡이 절실했지만 내겐 이 전화를 받지 않을 권한이 없었다.

“염소.”

실내를 빠르게 살피던 나는 약속된 두 글자를 입 밖에 내기 위해 목젖을 쥐어짜야 했다. 입에서 실패한 휘파람 같은 소리가 났다. 그 단어는 좀전까지 의자에 결박된 채 눈앞에 있던 녀석을 가리키는 코드 네임이자 이번 공작의 내 통신 암호였다.

“독수리.”

전화기 저편에서도 통신 암호를 댄 뒤 잠시 사이를 뒀다. 어쩌면 곧바로 통보했는지도 모르겠다. 심장이 제대로 뛰지 않으면 시간은 통상적인 속도로 감지되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 작전 보류. 그 영원 같은 찰나에 불경한 기대가 뇌리를 스쳤지만 이미 늦었다.

“터치다운.”

평양과 워싱턴, 아니 전 세계를 패닉에 빠뜨릴 대본의 클라이맥스가 실현되었다는 통보. 독수리는 첫 타깃에 붙인 코드 네임이기도 했다. 가장 높이 날던 그 독수리를 떨어뜨렸다.

역사책에 오늘은 어떻게 기록될까. 사백십오 년 만에 실현된 가이 포크스 데이? 21세기 미국에서 다시 울린 사라예보 총성? 중서부에서 재현된 댈러스의 악몽?

빨갱이들, 배신자들, 협잡꾼들.

나라는 너희 것이 아니니,

세상은 그렇게 끝장났네.

세상은 그렇게 끝장났네.

꽝하는 한 발 총성과 함께.

무서운 희열이 저 유명한 시구를 비틀며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훑어내렸다. 동시에 온몸의 피가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첫번째 실행 계획의 성공을 알리는 암호는 곧 두번째 실행 계획을 지시하는 암호였기에.

애당초 보류라는 제3의 길이 있을 수 없는 공작이었다. 성공하거나 더 완벽히 성공하거나, 선택지는 둘뿐. 그런데 내가 모든 걸 망치기 일보 직전이었다.

청심환을 다 먹는 게 아니었다. 반쪽만 먹었어야 했다. 아니, 아예 챙기지 말았어야 했다. 일생일대의 과업 앞에서 졸음에 굴복하다니. 혀를 깨물고 싶은 심정이었다. 목구멍을 적신 피비린내가 이젠 입안 가득 퍼져나갔다.

침실에도 염소는 없었다. 마지막 희망은 화장실이었지만 역시 어리석은 희망에 불과했다. 나였대도 목숨을 부지하겠다고 기껏 화장실에 숨지는 않았을 테니까.

희망이 너무 늦게 찾아온다면 절망은 지나치게 일찍 들이닥친다. 성마른 절망에 사로잡히지 않기 위해 나는 손목시계 초침에 눈을 맞췄다. 한 눈금 한 눈금 전진하는 바늘 끝에 집중하자 겨우 숨통이 트였다.

염소는 손발이 결박된 채로 의자에 묶여 있었다. 마지막으로 손목시계를 들여다본 게 13시 27분이었으니 넉넉히 잡아도 십오 분 남짓. 탈출의 마술사 후디니가 아닌 이상 멀리 못 갔으리라는 기대 어린 가늠이 그나마 위안거리였다.

기대와 위안은 현관문을 열자마자 반 토막이 났다. 인도로 난 계단 끝에 나무 의자가 산산이 부서진 채 나뒹굴고 있었다. 더듬더듬 내려가다 굴렀을까. 이음매가 박살날 때까지 온몸을 벽에 부딪쳤을까. 손목과 발목에 채운 케이블 타이는 떨어져 있지 않았다. 눈가리개가 풀린 정황도 없었다. 의자에서만 자유로워졌을 뿐, 두 손이 등 뒤로 묶인 눈먼 토끼뜀 신세라는 뜻이었다. 뒤집어 말하면 무심히 지나칠 수 없는 꼬락서니였다. 일 초라도 빨리 행방을 파악해야 했다. 누군가의 눈에 띈다면 그 누군가는 반드시 나여야 했다.

어디로 갔을까. 평소에도 철 지난 달력 같던 주택가는 쥐죽은듯 고즈넉했다. 포플러 길 양편으로 줄줄이 늘어선 엇비슷한 양식의 이층짜리 미늘 벽 목조주택 안에서도 인기척은 새어나오지 않았다. 자그마한 이 도시의 전부나 마찬가지인 대학의 풋볼 팀이 전국 대회 출전권을 놓고 인근 도시 라이벌 팀과 홈경기를 펼치는 날이었다. 게다가 대통령 후보 선출을 위한 공화당과 민주당의 당원 대회가 동시에 열리고 있었다. 도움을 청하기 위해 이마로 두드릴 문은 찾기 어려울 터였다.

부러진 의자 다리를 쥐고서 사위를 둘러보았다. 날이 훤했다. 염소에게 연결되기엔, 달아난 염소의 행방이 머릿속에 그려지기엔 너무 훤했다. 그로기 상태에 빠진 슈퍼맨에게 태양이 필요하다면 내 특별한 능력에는 태양을 가려줄 어둠이 절실했다. 순간 길바닥에 뒹구는 누런 종이봉투가 눈에 들어왔다. 군데군데 찢기고 덕지덕지 오물까지 묻어 있었지만 아쉬운 대로 머리에 뒤집어썼다. 그리고 눈을 질끈 감았다.

주머니에서 복면을 꺼내는 것만으로 수갑이 채워진 빨갱이들은 사색이 되곤 했다. 복면을 제 머리가 아닌 내 머리에 씌우고 나면, 안도하기보다 더 공포에 질렸다. 대부분 어린애처럼 울음을 터뜨렸고 조용히 오줌을 지리는 자들도 있었다.

염소는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염소의 의자 다리를 움킨 손에 정신을 모았다. 검은 바탕화면 위로 희미한 형체들이 떠올랐다. 칠이 벗어진 마룻바닥, 속이 깊은 선반들, 칸마다 가득 꽂힌 낡은 책들, 책 사이로 드나드는 검은 고양이.

나는 종이봉투를 벗겨내며 달음질치기 시작했다.

이타카.

블록 귀퉁이 건물 일층에 자리한 헌책방. 상호에 끌려 몇 번 들른 적이 있는 곳이었다.

책방은 클로즈드 팻말을 내건 채 닫혀 있었다. 나는 외벽을 빙글 돌아 측면에 난 창문을 확인했다. 미닫이창이 반쯤 열려 있었다. 단골손님인 길고양이를 위해 항상 열어둔다고 책방 주인은 인상 좋은 얼굴로 말했다. 염소는 그리로 숨어든 것이다. 무릎을 맞대고 있던 구부정한 늙은이가 어떤 능력의 소유자인지 상상도 못한 채. 나쁘지 않은 시도였다. 헌책방이라는 곳은 출입문이 활짝 열려 있대도 좀체 눈길을 끌지 못하니까. 어쩌면 죽을 자리를 제대로 골랐는지도 모르겠다. 진즉 땅에 묻힌 자들의 이름이 즐비한 장소 아닌가.

나는 창틈으로 몸을 구겨 넣었다. 책방 안에 내려서자 마룻바닥이 삐걱거렸다. 한 발 한 발 내디딜 때마다 소리가 났다. 까치발도 소용없었다. 걸음을 멈추고 한낮의 어둠에 눈이 익도록 가만히 기다렸다. 펄프 조직이 산화되며 죽어가는 묵은 책 특유의 냄새가 코를 찔렀다. 구두를 벗어야 했다. 양말 바람으로도 삐걱대는 소리는 어쩔 수 없었지만, 최대한 살금살금 움직이며 책장과 책장 사이를 훑었다. 책은 저자명 알파벳순으로 꽂혀 있었다. A, B, C……

D에서 E로 건너가는 순간이었다. 다 잡았다고 방심한 걸까. 온몸을 던져 부딪쳐오는 염소를 피하지 못했다. 내가 포착한 건 미사일 탄두처럼 날아오는 시커먼 머리통과 뿔 잘린 자리같이 희끄무레한 두 개의 가마였다. 가슴께에 묵직하고 날카로운 충격이 느껴지는가 싶더니 몸뚱이가 붕 떠올랐다.

“으어어.”

재갈 물린 입에서 새어나오는 울부짖음에 정신을 가다듬어보니 나는 벽에 기대 널브러져 있고 염소는 자해하는 사람처럼 이마로 벽을 찧고 있었다. 자해가 아니었다. 내 머리를 노리는 절망적 일격이었다. 눈먼 박치기가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데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베레타를 들어올리려 젖 먹던 힘까지 쥐어짜내야 했다. 두번째 기회는 없으리라. 내 머리가 박살나기 전에 첫 한 발로 녀석의 관자놀이를 관통해야 했다. 팔을 뻗으면 닿을 거리였지만 염소의 머리통이 메두사마냥 여러 개로 보였다. 눈알에 힘을 줄수록 시야는 침침해지고 머리통 숫자는 늘어났다.

염소의 귀에 초점을 맞추려 애썼다. 뒤로 드러누운 둥글넓적한 귀였다. 미끄러지는 음파를 잡아채기 위해 올록볼록 소용돌이치며 검은 원으로 말려들어가는 귓바퀴. 어떤 말들이 고막을 떨게 했을까. 귀가 못생겨서라는 핑계로 실연당한 적도 있을까. 레슬링을 해보지 않겠느냐는 말도 있었을까. 태어나 처음 들은 말은 무엇이었을까. 나는 방아쇠를 당겼다. 적어도 총소리는 아니었으리라.

기억에 남은 내 인생의 첫마디는 뭐였더라. 염소의 옆머리에 새로 생긴 귓구멍을 걸고 장담컨대, 사랑 같은 비현실적인 단어는 아니다.

무언의 사랑을 나누는 절정의 순간마냥 염소는 덜미를 곧추세우고 바르르 떨다 추락하듯 쓰러졌다.

“엑스트라 킥 성공.”

휴대폰으로 임무 완수를 알렸지만 뒷정리도 만만치 않았다. 염소의 시신을 원위치시키는 건 단념해야 했다. 물리적으로도 힘에 부치는데다 목격자를 만들 위험이 있었다. 현장에서 마무리할 수밖에 없었다. 멀쩡한 집을 두고 왜 헌책방에 와서 죽었을까? 수사에 혼선이 올 것이다. 내일 오전 10시 이전에 문이 열릴 테니 집에서보다 한나절, 어쩌면 하루 이르게 발견되리라. 염소의 주검이 수면 위로 빨리 떠오를수록 유리했다.

고육책이 심사숙고한 계획보다 나을 수도 있다. 염소는 저기 E열 책장에 기대앉아 제 머리에 총알을 박아 넣는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무기여 잘 있거라』와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바로 밑에서.

머릿속에 무대연출의 윤곽이 잡히니 가슴의 통증이 되살아났다. 코트 안주머니에서 소지품을 하나 꺼냈다. 하모니카 금속판 가운데 부분이 우묵해져 있었다. 자칫 갈빗대가 부러질 뻔했다. 그랬다면 ‘독수리’ 암살범으로 의심받아야 할 시신 역할은 내 몫이 됐을지도. 나는 뒤미처 가슴을 쓸어내렸다.

기력이 돌아오기를 가만히 기다려 머릿속에 짠 퍼즐을 한 조각 한 조각 현실에 끼워맞추었다. 염소의 시신을 눈여겨둔 자리로 끌고 갔다. 발목, 손목, 입, 눈, 모든 결박을 풀었다. 어깨선이 비스듬해지도록 상체를 오른쪽으로 기울였다. 상체가 모로 무너지는 그림은 자연스럽지 않았다. 오른손을 펴 바닥을 짚게 하고 역시 오른 무릎을 세워 균형을 잡았다. 내 지문을 지우고 소음기를 떼어낸 베레타를 왼손에 쥐여주었다. 염소는 왼손잡이였다. 계산된 조준은 아니었다. 살기 위해 쏘고 보니 왼쪽 귀였다. 실수를 바로잡아준 두번째 행운이었다.

자리를 뜨려다 말고 나는 우뚝 멈춰 섰다. 결정적인 무언가를 놓친 기분이었다. 문득 머리꼭지에 꽂히는 시선이 느껴졌다. 맞은편 책장 맨 위 칸 책 사이로 고양이가 한 마리 도사리고 있었다. 새까만 털 속에서 호박琥珀처럼 번뜩이는 눈동자. 닫히는 법이 없는 미닫이창의 주인공이었다. 검은 고양이는 죽음의 신처럼 꼿꼿한 자세로 모든 것을 굽어보고 있었다.

그제야 빠뜨린 무언가가 떠올랐다.

나는 염소의 얼굴을 가까이 들여다보았다. 동공에서 뿜어져나오는 빛이 전혀 없었다. 내면의 영사기가 꺼져버린 눈동자는 엔딩 크레디트가 다 올라간 스크린처럼 공허했다. 사석이 되는 순간 생기를 잃어버린 검은 바둑돌. 나는 손바닥으로 쓸어내리듯 눈꺼풀을 덮어주었다. 부릅뜬 눈으로 제 머리를 날리는 사람은 없으니까.

한 사람이 죽는다는 건 어떤 눈빛이 영원히 사라진다는 뜻이다.

별빛은 광원이 소멸된 뒤로도 한참을 날아가지만 눈동자는 우주에서 가장 여린 항성이어서 뒤늦게 남아 반짝이는 눈빛은 없다. 눈동자가 죽으면 눈빛도 죽는다. 둘 사이엔 찰나의 시차도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눈빛은 매 순간 처음이면서 마지막. 밤하늘의 별처럼 이름 붙을 겨를도 없이 사그라진다.

염소가 태어나 처음 들은 말이 무엇이었는지 알 길은 없지만 마지막 말은 모를 수 없었다.

총구멍이 난 귀에 대고 나는 속삭였다.

“짜이졘, 오스왈드.”

해마다 어린 염소를 두 마리 준비시키는 고대 제의가 있었다지. 신에게 바칠 한 마리와 악마에게 던져줄 한 마리. 신에게는 죄를 사해달라고, 악마에게는 이걸로 만족하라고. 한쪽은 속죄양, 나머지 한쪽은 희생양이라 불렀다지.

나는 궁금했다.

눈앞의 이 사내는 속죄양일까 희생양일까.

어쩌면 둘 다일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