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회

부고


오늘자 조간을 펼쳐 드는 건 어제의 전장에서 살아남은 행운을 남몰래 음미하기 위해서다. 거기에는 유명세를 치르는 이름들이 밤하늘의 별만큼이나 가득하다. 가닿을 수 없는 높이에서 빛나는 별들 중에는 몇 광년 전 죽어 이미 우주먼지로 돌아간 것도 적지 않다. 조바심낼 일은 아니다. 살아서 반짝이고 있는 나머지도 언젠가 같은 수평선 너머로 가라앉을 테니.

고꾸라지는 명사들의 사연은 일상이라는 불가피한 불운에 신음하는 자들이 누리는 하루치 행운. 눈알이 튀어나오도록 운좋은 날은 자신에 관한 비보를 접하게 될 수도 있다. 신문을 집어들 때마다 고대해온 순간이라면 감격에 겨워 울지도 모르겠다. 그것이 비록 내 죽음일지라도.



아침에 눈뜨자마자 시간부터 확인하는 일이야 흔하지만 그러자고 손목을 확인하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잠자리에 들 때도 손목시계를 풀지 않는 사람, 그게 나란 사람이다. 내게 있어 손목시계가 의미심장한 대목은 차고 있다는 게 아니라 풀지 않는다는 것. 그렇다. 무언가를 하지 않는 것도 내겐 행동, 때론 무언가를 하는 것보다 더 적극적인 행동일 수 있다.

어머니에게 손찌검을 시작하기 전 아버지는 손목시계부터 풀었다. 황금색 왕관과 열두 개의 로마숫자가 새겨진 롤렉스. 노름판에서 판돈으로 챙긴 물건이었다. 손목시계를 풀면 아버지는 두 얼굴의 사나이처럼 돌변했다. 어쩌면 다른 존재가 되기 위해 손목시계를 푸는지도 몰랐다. 어느 쪽이든 시계가 손목을 떠나는 순간 스스로에 대한 통제력을 잃어버린다는 점엔 변함이 없었다.

신은 인간을 시간이라는 채찍으로 다스린다던가.

신의 채찍에서 놓여날 때마다 스스로 채찍이 되어 타오르던 어떤 얼굴을 보며 자란 내게, 손목시계는 언제부턴가 안전핀 비슷한 무엇이 되어 있었다.

금속 특유의 서늘한 감촉이 손목뼈로 전해지는 한 나는 자신을 제어할 수 있다.



욕조에 손목을 담글 일도, 수영장에 갈 일도 거의 없었지만 최소 10기압 방수는 기본이었다. 흑암조차 둘 사이를 갈라놓지 못하도록 야광 기능도 필수였다. 북극성처럼 도드라지는 초록 눈금, 앞서거니 뒤서거니 회전하며 시시각각 새로운 별자리를 그리는 시, 분, 초, 세 개의 쐐기. 손목에 내려앉은 은하수를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어둡고 어두운 저 어딘가 나직이 심장 뛰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지금 여기 살아 있다는 유일한 증거 말이다.

누가 알겠는가. 염라대왕에게 시간을 알려줄 기회가 생겨 자잘한 죄 몇 개쯤 사면받게 될는지.



손목 위에서 빛을 발하고 있는 야광 문자반은 겨우 3시 언저리. 1시쯤 설핏 눈이 떠졌으니 겨우 두 시간 남짓 잤다. 괜히 역정이 나는 걸 보니 더 자기는 글렀다.

습관처럼 아랫도리로 손을 밀어넣어보았다. 손목을 확인하는 일에 비하면 그리 오래지 않은 버릇이었다. 신의 채찍이 나만큼은 피해갈 줄 알았는데 전립선이 말썽이었다.

요실금이랬다, 야뇨증이랬다, 요실금 같은 야뇨증이랬다, 야뇨증 같은 요실금이랬다. 의사라는 인간들이 하나같이 성난 얼굴인 건 히포크라테스 선서에 친절 엄금 조항이 있어서가 아니다. 자기들도 답을 모르기 때문이다.

“숙면을 취하세요.”

“규칙적으로 생활하세요.”

“스트레스 받지 마세요.”

모르는데 자꾸 왜냐고 물어대니 하나 마나 한 소리만 늘어놓을밖에.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세요.”

작가라는 인간들이 마스터 요다처럼 미간에 힘주며 나불거리는 소리랑 다를 게 뭔가.

“자신의 무의식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세요.”

그러면서 책날개 사진 속에서는 눈을 정면이 아니라 2시 방향으로 치뜨거나 8시 방향으로 내리깔까.

애니웨이, 뚫린 그 입에 청진기를 쑤셔넣지 않기 위해 나는 손목시계 바늘만 뚫어져라 바라보아야 했다.

일회용 기저귀가 축축했다. 내 몸뚱이가 내 뜻대로 안 된다는 사실을 재차 확인하는 건 달갑지 않았지만 자괴감을 무릅쓰고 기저귀를 착용한 성과가 있다는 데 보람을 느꼈다. 자그마한 보람이지만 새로운 하루를 일구러 침대에서 나가기엔 부족함이 없었다.

이가 빠지는 꿈을 꿨다.



“오줌관이 가늘어져 고장난 수도꼭지처럼 찔끔찔끔 새는 겁니다.”

젊은 의사가 CT 사진에 레이저 포인터를 겨누며 말했다. 날카롭게 뻗은 푸른 광선이 흑백 몸통을 꿰뚫을 것 같았다. 나는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여기 방광 아래 요도를 둘러싸고 있는 밤톨만한 선이 전립선이에요. 정자를 쌩쌩하게 만드는 액체의 분비선, 일종의 샘인데 비정상적으로 부풀어서 요도를 짓누르고 있어요.”

귀가 어두워 말귀를 못 알아먹는다고 여긴 걸까. 의사의 목소리가 점점 높아졌다. 나는 침묵을 고수한 채 눈빛으로 물었다. 그 밤톨만한 선은 왜 비정상적으로 부풀었소?

“연식이 오래된 거죠.”

의사가 광선검을 거둬들이며 말했다.

삿대질처럼 엄습해오는 언짢음에 눈이 절로 질끈 감겼다. 요즘 것들은 언사가 왜 저리 거칠고 천박할까. 수도꼭지라니. 연식이라니. 비유에 후광 한 점 없었다. 설마 비유가 뭔지는 알겠지.

책 좀 읽자. 정말이지 죽어라 안 읽는다. 예전에는 집집마다 세계문학 전집을 들여놨다. 좀 여유가 되는 집엔 자연도감이나 브리태니커 백과사전도 있었지. 책으로 나라의 동량을 키우던 시절이었다.

이것은 비유가 아니다. 내 떡잎을 알아본 사람도 서적 외판원이었다. 고작 책 한 질 팔겠다고 완행버스도 포기한 곳까지 발품을 판 이유가, 구매 의사도 능력도 불투명한 집 안까지 들어앉아 밑도 끝도 없는 자식 자랑을 기꺼이 들어준 이유가 무엇이었겠는가.

“이 아이는 판박이 스티커예요. 마음만 먹으면 뭐든 머릿속에 그대로 쓱쓱 붙여버려요.”

어머니는 커피를 내오며 말했다. 그것이 아들의 운명을 바꾸는 한마디가 될 줄 상상도 못한 채.

“판박이 소년, 어디 그 재주 한번 볼까?”

외판원 아저씨가 내 쪽으로 머리를 기울이자 포마드 냄새가 훅 끼쳐왔다.

“실버에 대한 소식은 더이상 들려오지 않았다. 엄청났던 그 외다리 선원은 내 삶에서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하지만 내게 그는 어디선가 옛 흑인 부인을 다시 만나고 앵무새 플린트 선장과 평안하게 지내고 있을 것만 같다. 가능성이 크지 않은 내 바람에 불과하지만. 아직까지 나는 악몽을 꾸다 한밤중에 깨어 일어나곤 한다. 어떤 날은 저 보물섬의 높은 파도 소리가, 또 어떤 날은 ‘8센트! 8센트!’ 하고 외쳐대는 앵무새 플린트 선장의 목소리가 귓전을 맴도는 채로……”

외판원 아저씨가 한순간 펼쳐 보인 페이지를 나는 또박또박 읊었다. 붉은 양장 책등에 금색으로 새겨진 세 글자는 ‘보물섬’이었다. 한 대목만 읽고도 나는 처음 보는 그 책에 마음을 홀딱 뺏겨버렸다.

그러고도 나는 몇 권의 시험을 더 거쳐야 했다. 『닐스의 이상한 여행』 『15소년 표류기』 『아라비안나이트』…… 입으로 본을 뜨기 바빴던 그때의 문장들이 지금도 혀를 달싹이게 만들곤 한다.

“몇학년이라고 했지?”

흥정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려는 노련한 상인처럼 짐짓 화제를 바꾼 외판원 아저씨였지만 눈빛만큼은 감추지 못했다. 보물섬을 발견한 범선의 돛처럼 기대감으로 한껏 팽팽해진 눈빛. 누구도 나를 그런 눈으로 바라봐준 적은 없었다.

그분과의 첫 만남이었다.



기저귀를 휴지통에 버렸다. 기저귀는 비닐봉지로 꽁꽁 싸맸고 휴지통에는 탈취제를 아낌없이 뿌렸다. 욕실에 들어가 온몸 구석구석 비누칠을 했다. 하나뿐인 손주 녀석은 몇 달 만에 봐도 인사 대신 세관견처럼 코부터 킁킁거렸다. 제 왕국을 오염시킬 무언가가 내 몸뚱이 어딘가에 감춰져 있기라도 하듯.

겨드랑이, 오금, 사타구니. 살끼리 부대끼는 부위마다 참숯 성분으로 만들었다는 탈취액도 듬뿍 발랐다. TV 홈쇼핑을 보다 주문한 물건이었다. 구취 제로 참숯 치약과 세트 상품이었다.

언제부터였던가, 습관적으로 홈쇼핑 채널을 켜두게 된 것은. 한 가지 이유는 분명히 말할 수 있다. 숨이 넘어갈 듯한 하이 톤이 훌륭한 위장 소음이 되어주기 때문이다. 말을 걸어오는 누군가의 목소리가 그립다거나 하는 감상적인 이유는 결코 아니었다.

이게 정녕 원숙한 영혼에 걸맞은 육신이란 말인가. 곡물이나 과일조차 속이 영글수록 금실로 짠 외피를 두르는 법이거늘. 황금 사과처럼 눈부시지 못할망정 하루가 달리 비루먹은 개 같아지다니. 인간이 짠 실로 가리기 아까운 청춘의 피륙은 저 머리꼭지에 피조차 안 마른 애송이들에겐 아깝지 않은가. 개 발에 편자,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 샤워기 아래 설 때마다 나는 탄식을 금할 수 없었다.

껍질이 벗겨지도록 씻고 또 씻어내도 체취에 대한 염려는 떨어져나가지 않았다. 오늘은 떨쳐지지 않는 게 하나 더 있다. 간밤의 꿈이 뇌리에 박힌 채 수상쩍은 냄새를 피우고 있었다. 꿈에 이가 빠지면 가족에게 변고가 생긴다던데.



“사내라면 두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은 항시 지니고 다녀야 한다. 하나, 지금 몇시요? 둘, 형씨, 불 좀 빌릴 수 있소? 한 놈만으로는 곤란하다. 불을 빌리자는데 손목시계를 들이대거나, 시간을 알려달라는데 라이터를 켜고 있으면 어떻게 될지 팽이처럼 돌아가는 요놈으로 계산해봐라.”

덜 여문 내 머리통을 움켜쥔 채 아버지는 말하곤 했다.

그나마 기억해둘 만한 소리였다. 시곗바늘의 위치를 공유하고 담뱃불을 나눈 사람과는 친구가 되거나 적이 되거나 둘 중 하나. 아무도 아닌 존재는 되기 어렵다. 적도 친구도 아닌 자들에게 둘러싸여 있다면 황금 왕좌가 내 것인들 무슨 의미 있으리.

돌이켜보면 맞수와 동료뿐인 인생이었다. 중간은 없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해결책이 준비돼 있어야 하는 나날. 내게 주어진 시간과 담뱃불을 고만고만한 인연에 낭비하지 않았다. 가르침 아닌 가르침 덕분이었을까. 설마. 첫째, 둘째를 무식하게 하나, 둘이라고 말하던 아버지가?

대체로 아버지는 본인의 의도와는 정반대 방향에서 내게 도움이 되었다.

반면교사.

아버지는 이 말의 완벽한 모범 사례였다. 고뇌의 담뱃불이 내 입술 가까이 타들어오도록 판단이 서지 않을 때마다 나는 자문하곤 했다. 아버지라면 어떻게 했을까? 아버지는 어떤 결론 뒤에 줄을 섰을까? 확신에 찬 구둣발로 고뇌의 담뱃불을 비벼 끄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아버지라면 꿈 따위에는 별 의미를 두지 않았을 것이다. 개꿈이라고 무시했겠지.

꿈이라는 걸 꾸기는 했을까 싶다. 혼자 꼭지가 돌아 광광거리다가도 목침을 베고 눕자마자 코를 골던 사람이. 반드시 목침이어야 했다. 나뭇결이 고스란히 살아 있는 참나무 베개. 한번 머리를 올려보고는 차라리 벽돌을 베는 게 낫겠다 싶었다. 아버지는 각지고 딱딱한 게 편안한 사람이었다. 모루 위에서만 나긋나긋해지는 쇠붙이처럼.

그러니 아버지의 드르렁대는 소리는 어린 내게 해방의 종소리일 수밖에 없었다. 적어도 코골이가 계속되는 동안은 살얼음판 같은 긴장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으니까. 내가 잘 때 숨소리조차 내지 않는 것 또한 아버지 때문인지도 모른다. 신혼 시절, 아내는 자는 나를 종종 흔들어 깨우곤 했다.

“무섭도록 조용해서. 꼭 산송장처럼.”

아내의 걱정에 오히려 나는 뿌듯함을 느꼈다. 말했잖은가, 반면교사인 아버지를 뒀다고. 나는 말하기보다 숨소리를 죽이는 법부터 연마해야 했다. 산송장. 모욕일 수 있는 그 단어가 내겐 칭찬인 이유였다.

내가 해야 할 일이 또렷해졌다.



나는 전화기 앞으로 가 빠른 손놀림으로 숫자 버튼을 눌렀다.

아내의 휴대폰은 꺼져 있었다.

다시 숫자 버튼을 빠르게 눌렀다.

이번에는 요양병원이었다.

아내가 요양병원에서 지내는 건 작년부터였다. 제 발로 입원했다. 온몸이 등나무처럼 배배 꼬이고 자꾸만 넘어져 동네 슈퍼조차 힘겨워하는 사람이 시외전화 지역번호가 바뀌는 곳까지 혼자 갔다. 십 년째 파킨슨병을 앓고 있는 아내에게 내가 원한 건 선전포고 같은 돌발행동이 아니라 수술이었다. 뇌심부자극술. 뇌심부핵에 전극을 심어 전기자극을 주면 운동능력이 크게 개선된다는 신문기사를 보고 권위 있는 병원까지 수소문해두었다.

“걸어다니는 건전지로 사느니 눈에 흙이 들어가는 편이 낫지.”

아내는 체머리를 흔들며 중얼거렸다.

머리에 칼 대고 싶지 않은 심정이야 이해 못할 바 아니었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만물의 영장으로서 갖추어 마땅한 존엄을 아내가 되찾았으면 했다. 허리를 곧추세운 채 당당히 직립보행하기를 바랐다. 더듬이 잘린 개미처럼 바들대지 않기를 바랐다. 더이상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뒤를 봐주기가 버겁다는 건 부차적 이유였다. 뇌기능 이상으로 생긴 증상이니 문제의 진원지에 손을 대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 아닌가. 생식기에 전극을 심어 전립선 치료에 도움이 된다면 나는 기꺼이 그렇게 할 것이다.

아내는 내 끈질긴 설득과 극적인 성공 사례들을 접하며 조금씩 누그러졌다. 특히 숟가락질도 못하던 환자가 라틴 댄스를 배우게 됐다는 다큐멘터리에 깊은 인상을 받은 눈치였다.

“자전거 타는 법이라도 마저 배웠어야 했는데. 일평생 바퀴 달린 거라곤 유모차, 쇼핑 카트, 보행보조기가 전부라니.”

그러던 아내가 수술 직전 마음이 바뀔 줄이야. 수술 전 검사차 입원한 병동에서도 성공적으로 수술을 마친 환자 옆 침대였는데. 아내의 태도가 백팔십도 틀어진 건 옆 침대 환자의 보호자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눈 뒤였다. 아니, 보호자가 만지던 애들 장난감처럼 생긴 소형 리모컨을 보고 난 뒤였을 것이다.

“평생 조종당하는 기분으로 살아왔는데 진짜로 조종당하며 살 순 없어.”

황당했지만 아내의 요양병원행을 막지는 못했다. 조종이라니 얼토당토않다는 항변도, 세세한 조절은 주치의만 할 수 있고 보호자용 리모컨은 단순한 체크 기능뿐이라는 설명도 소용없었다.

이제는 수술하라고 등 떠밀지 않을 테니 집으로 가자는 말도 듣지 않았다. 왠지 아내는 집에 있을 때보다 손동작도 걸음걸이도 더 편안해 보였다.

신호음을 꽤 듣고 있어야 했지만 마침내 당직 간호사와 통화할 수 있었다.

“아내가 잘 있는지 궁금해서 전화했소.”

“사모님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갑자기 가슴이 두근거렸다. 머릿속이 하얘지고 수화기를 쥔 손에 땀이 뱄다. 간호사에게 답해야 할 암구호가 떠오르지 않았다. 입가에 맴도는 이름의 주인은 딸애였다.

하지. 딸애는 낮이 가장 긴 날 태어났다. 나올 듯 나올 듯 온종일 애간장만 태우다 땅거미 질 무렵에야 첫울음을 터뜨렸다. 다 나중에 들은 얘기긴 하지만. 나랏일로 숨쉴 새도 없이 바빠 곁을 지키지 못했다. 딸애가 태어난 뒤로 아내는 하지 엄마가 되었다.

“여보세요?”

수화기 너머에서 암구호를 재촉해왔다.

화랑에는 담배, 충무에는 김밥인데……

결국 슬그머니 수화기를 내려놓고 말았다. 전화를 끊고 나니 맥이 더 빨라지는 느낌이었다. 도어록 비밀번호를 깜박하는 일은 더러 있어도 아내 이름은 처음이었다. 요양병원 송년의 밤 행사 때 수줍은 얼굴로 웬 썩은 고목 같은 영감쟁이와 왈츠(내 눈엔 로봇 춤으로 보였지만)를 추던 모습은 눈에 불도장이라도 찍힌 듯 선연한데. 치매 검사는 아내가 아니라 내가 받았어야 했나.

빨라진 심장으로 나는 수색에 착수했다. 서랍부터 확인했다. 서랍이라는 서랍을 몽땅 헤집도록 빈손이었다. 신분증이나 여권은커녕 흔한 약봉지조차 보이지 않았다. 세월에 바래 부스러지기 일보 직전인 아파트 매매계약서에도, 노란 고무줄로 묶인 이런저런 통장에도 내가 찾는 세 글자(두 글자는 아니겠지?)는 없었다.

나는 가빠진 호흡을 가다듬으며 집안을 둘러보았다. 마음속으로 구역을 쪼개고 수색 강도를 높여 하나씩 각개격파해나갔다. 장롱, 화장대, 옷장. 아내의 핸드백과 낡은 지갑 안에서도 단서는 나오지 않았다. 아내에게 이름이 있기는 했던가. 수십 년 전 앨범들이며 자투리 사진을 보관한 상자까지 꺼내보았지만 헛수고였다. 요양원으로 떠나면서 아내는 제 이름마저 다 지우고 간 것 같았다. 내겐 맡겨둘 수 없는 무엇인듯.

문득 갈증이 일었다. 냉장고에서 토마토(전립선에 좋다는 소리를 들었다) 주스를 꺼냈다. 아일랜드 식탁 한가운데 놓인 반투명 파일이 그제야 눈에 들어왔다. 주스를 컵에 따르다 말고 파일을 들춰보았다.

이혼서류였다. 법적으로 내게 그런 요구를 해올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오직 한 사람. 온 집안을 탈탈 털며 찾아 헤맨 이름이 거기 있었다.

한미옥.

익숙하고도 낯선 세 글자를 나는 눈이 시도록 들여다보았다.

아내의 이름을 왜 그토록 알아내려 했는지, 내막이 가물가물했다.



쑥대밭이 된 집을 뒤로하고 밖으로 나갔다. 머리카락 한 올 뽑아 현관문 하단에 물려놓는 절차도 잊지 않았다. 하얗게 센 머리카락은 투명 실이나 마찬가지였다. 발각될 염려가 줄어드는 만큼 나중에 확인하기도 어려웠다. 염색이라도 해야 할 것인가.

편의점부터 들렀다. 최근 방문한 곳은 피했다. 점원에게 굳이 인상착의를 각인시켜줄 필요는 없었다. 다행히도 편의점 숫자는 사람들이 그곳에 가는 이유보다 많았다. 내 경우엔 신문과 담배였다. 신문은 정해져 있지만 담배는 아무거나. 신문을 배달시키지 않는 것은 문 앞에 쌓인 신문이 빈집이라는 정보를 주기 때문이다. 이쪽 사정은 가급적 노출시키지 않는 편이 낫다. 아니, 내 프로파일을 만드는 데 쓰일 그 무엇도 남기지 말아야 한다. 그러니 아무거나 골라도 박하향 담배는 곤란했다.

오늘은 24시간 뼈다귀해장국 집에서 아침을 해결하기로 했다. 밤샘 술을 한 사람들이 오기엔 늦고 첫 끼니를 하러 오기엔 이른 애매한 시간. 손님이 한 명도 없었다. 꾸벅거리던 카운터 청년이 눈을 부비며 인사했다. 그냥 돌아나갈까 하다 더 주목을 끌까봐 구석자리에 CCTV를 등지고 앉았다.

신문을 펴 들기도 전에 음식이 나왔다. 보글보글 끓고 있는 벌건 국물에 들깻가루를 듬뿍 뿌리고 깻잎 채를 고명으로 올렸다. 스테인리스 공기에 꾹꾹 눌러 담긴 밥을 통째로 해장국에 말았다. 뜨거운 첫입이 뱃속에 들어가자 비로소 몸이 깨어나는 느낌이었다. 몇 술 더 뜨고 신문을 후루룩 넘겼다. 반세기 가까이 봐온 신문이었다. 대충 제목만 훑어도 무슨 소린지 알아먹었다. 굳이 내용까지 읽는 건 부고란뿐.

내가 매일같이 조간신문을 사는 것도 부고란 때문이었다.

아무도 죽지 않는 날이 있을까.

죽음에게 휴일은 없다.

망자의 이름을 일별하던 나는 숟가락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바닥에 숟가락 떨어지는 소리가 너무 컸다. 곁눈으로 주위를 살폈다. 카운터 보는 청년은 다시 꾸벅거리고 있었다.


  내외물산 전 총무이사 故 김도식. 향년 69세.


의심의 여지 없이 부고의 주인공은 나였다. 내 죽음을 알리는 한 줄이 틀림없었다. 그럼에도 몇 번이고 다시 읽어보았다. 당첨된 복권 번호를 확인하고 또 확인하는 심정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