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회

피셔맨


응답하라.

응답하라, 라이카.

라이카는 응답하라.

그분이 오셨다. 그분 음성이 나를 찾고 있다.

내 스승이자 삼촌이자 아버지이자 방아쇠였던 존재.

“너무 뜨겁습니다. 캐빈 기온이 미친듯이 상승중입니다. 오버.”

나는 마이크에 대고 소리친다. 창 너머로 점점 작아지는 저 창백한 푸른 별은 지구인가.

“정신 똑바로 차리게, 라이카. 대기권 돌파에 뒤따르는 일시적 과열일 뿐이야.”

온도계의 붉은 눈금은 떨어질 줄 모른다. 숨쉬기가 불편하다. 빙글빙글 돈다. 몸뚱이뿐 아니라 정신까지 무중력상태에 빠져든다.

“온도조절장치에 문제가 생긴 것 같습니다. 눈앞이 뿌예집니다. 오버.”

“비상시엔 무엇부터 챙기라고 했지?”

“정신력입니다. 오버.”

“사명대사 일화는 알고 있겠지? 왜놈들이 사신으로 온 대사의 침방 다다미 아래 철판을 깔고 밤새 불을 지폈다는. 이튿날 아침 문을 열어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다는.”

“……”

“정신을 잃으면 안 돼. 내가 지금 누구 얘기를 하고 있지?”

“서산대사입니다. 오버.”

“사명대사. 누구라고?”

“사명대사입니다. 오버.”

“좋아. 서산대사, 아니 사명대사가 버럭 호통을 쳤다. 통구이 신세는커녕 태연스레 가부좌를 하고서. 수염 끝에 고드름까지 매단 채로. 일본국은 화산섬이라 따뜻하다더니 조선보다 몇 곱절 춥구나. 그런데 마음마저 냉담하구나. 땔감 아끼느라 손님을 얼어죽일 셈이냐. 뭣들 하느냐? 어서 화력을 높이지 않고.”

“온몸이 타들어가는 것 같습니다. 오버.”

“사명대사가 자리에서 일어서자 다다미에 붓으로 커다랗게 쓴 한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무슨 글자였을까?”

“……”

“얼음 빙氷이었다.”

“자꾸만 눈이 감깁니다. 오버.”

“졸면 죽는다. 정신력으로 버텨라. 이를 악물고 잠을 밀어내라.”

나는 입을 앙다문다. 팍. 청산가리 캡슐이 터진 걸까. 내 안의 일부가 우주의 흑암으로 사라진다. 빛이 생겨라 하시자 빛이 생겨났다. 태양, 달, 지구.

궁금했습니다. 항상 궁금했습니다. 빛이 생기기 전에 이미 존재하고 있던 어둠, 저 무시무시하도록 침착한 녀석은 누가 만들었습니까?

까무룩 잠이 들었던 걸까. 나는 소스라치며 눈을 떴다. 입가에 흘러내린 침을 손등으로 훔쳤다. 밤의 침대에서는 곁을 허락지 않는 단잠이 잘못된 시간, 잘못된 장소에서는 빚쟁이처럼 들이닥쳤다. 어두운 베개 위에서 뒤척이느라 흘린 시간을 주워 담으라는 듯.

꿈이었다. 하지만 현실에서도 온몸이 땀투성이였다. 좌석 밑에서 뭉근한 열기가 연신 올라오고 있었다.

‘이번 역은 서빙고, 서빙고역입니다. 내리실 문은……’

지하철 안내방송이 우주 교신처럼 아득하게 울렸다.

서빙고西氷庫역.

목적지였다.

얼음 빙. 이번에도 그분이 아니었다면 눈감은 채 지나칠 뻔했다.

교신에 응답하듯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선·샤·인·통·증·클·리·닉.

네온 간판 속 낯선 상호를 한 글자씩 소리 내어 읽고 난 나는 막다른 골목 끝에 선 것처럼 뒤를 돌아보았다. 서빙고역 1번 출구로 나와 큰길을 건넌 다음 오른쪽으로 꺾어 죽 오다가 육교를 건너…… 머릿속에 사진처럼 박힌 길인데 잘못 들었을 리 없었다.

담쟁이가 부챗살처럼 퍼져나가는 적갈색 벽돌 건물이 있어야 할 자리에 통유리 외벽이 거울처럼 반짝이는 현대식 빌딩이 버티고 있다. 일층도 녹즙 대리점 대신 네일 아트 숍이 영업중이었다. 예전에는 이층이던 병원이 오늘은 오층.

없던 엘리베이터가 새로 생겼지만 이를 악물고 계단을 올랐다. 층계참이 나타날 때마다 올라온 시간만큼 쉬었다. 네발로 기기 일보 직전에야 세상에서 가장 높은 병원이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여기 혹시 김배우……”

접수대를 지키는 직원에게 말을 건네다 말고 나는 입을 다물었다.

접수원 머리 뒤로 <몽유도원도> 복제품이 걸려 있었다.

번지수가 틀리지 않았다는 증거였다.



지금이야 남의 자격증에 빌붙어 침이나 놓고 있지만 김배우는 최고의 자백 기술자였다.

입에 납땜이라도 한 것처럼 경찰의 취조를 용케 버텨낸 빨갱이들이 맞닥뜨리는 최후의 관문.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끝내 열리지 않은 입이라도 김배우에게는 자동문이나 다름없었다.

“자백은 문자 그대로 자발적인 행위여야 해. 연기자가 배역에 몰입하는 순간 감춰진 자신을 표현하게 되는 것처럼. 내가 누구인지 말해줄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 콧구멍에 고춧물 한 주전자 들이붓는다고 리어왕이 왜 그런 소리를 주절댔는지 캐낼 수 있을까? 자백은 억지로 끄집어내는 게 아니라 내면에서 자발적으로 우러나와야 하는 거야.”

김배우의 연기 철학과 상극인 곳이 바로 남영동이었다.

“푸줏간에서 언제고 사달이 날 거야.”

김배우는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다.

모두 알다시피, 그의 우려는 몇 년 지나지 않아 기어이 현실이 되고 말았다. 서울대 학생을 죽음에 이르게 한 심문 방식도 문제였지만 우리가 절망적 탄식을 내뱉지 않을 수 없던 건 사후처리 때문이었다. 탁 하고 치니 억 하고 쓰러졌다니. 술김에 발로 쓴 책(공작 대본을 우리는 그렇게 불렀다)이래도 그토록 참담한 수준의 대사는 없었으리라.

창의성까지는 기대하지 않았다. 최소한 말이 되기는 해야 어떻게 비벼볼 수 있을 것 아닌가. 백 보 양보해 재난 수준인 개연성은 눈감아주더라도 엄청난 분노를 유발하는 역효과라니. 빵이 아니면 죽음을 달라는 시위대에게 빵이 없으면 과자를 먹으면 될 거 아니냐고 되받던 자들도 그랬겠지. 남영동은 고문 기술자보다 대사 잘 치는 대본가를 모셔왔어야 했다. 단두대 앞으로 줄줄이 끌려가지 않기 위해 젖 먹던 힘까지 쥐어짜내야 했던 대선까지의 반년은 떠올리기만 해도 목구멍에서 단내가 올라올 지경이다.

역사에 가정법은 없다지만, 그해 6월 백기를 내걸듯 대통령 직선제 요구에 굴복하는 일이 없었다면 십 년 뒤 선거에 의한 정권교체라는 파국은 싹도 움트지 못했으리라. 그랬다면 지금쯤 나도 남들처럼 공무원연금으로 골프 여행이나 다니고 있을 텐데.

회사든 국가든 사고 치는 놈 따로, 수습하는 놈 따로 있게 마련인가. 아닌 게 아니라 남영동에서 이첩돼온 자들은 인간이라기보다 냉동고 갈고리에 귀가 꿰인 채 사지를 늘어뜨리고 있는 고깃덩어리 같았다.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할 만큼 만신창이가 되어 있기 일쑤였다.

“푸주한들.”

그때마다 김배우는 절레절레 고개를 젓곤 했다. 제 이름조차 대지 못한 채 혀만 빼물고 있는 모습에는 점잖은 입에서 육두문자까지 튀어나왔다.

“염병. 복숭아나무까지 뽑아버리면 나더러 어쩌라는 거야.”

복숭아나무라는 비유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자백이라는 과실을 얻기까지의 과정부터 알아야 한다.

건강한 육체에서 순도 높은 자백이 나오는 법. 너덜너덜해진 몸뚱이부터 회복시키는 게 김배우만의 방식이었다. 손상된 상태에 맞춰 적절한 영양을 공급했고 양질의 휴식과 수면을 위해 룸 컨디션을 세심히 관리했다. 남영동이라는 지옥을 거쳐온 빨갱이들에겐 천국이나 다름없었으리라. 실제로 가장 채광 좋은 방을 작업실로 골라 특급 호텔 스위트룸처럼 꾸몄다. 김배우의 집무실과 빨갱이의 회복실, 두 공간은 진짜 스위트룸처럼 중문으로 연결돼 있었다.

무릉도원으로 난 길. 김배우의 지론에 따르면, 무의식은 귀한 정보일수록 음침한 곳이 아닌 눈부신 곳에 모셔두게 마련이었다. 무릉도원에 가야 접할 수 있는 그 무엇. 그 정보를 안다는 사실 자체가 힘의 원천이기에.

“『도화원기』에도 나오듯, 무릉도원은 입구로 이어지는 복숭아나무 숲을 어부에게만, 표류하는 어부에게만 보여주지.”

잠시 사이를 둔 뒤, 김배우는 느낌표라도 찍듯 덧붙였다.

“길은 내는 게 아니라 스스로 드러나는 거야.”

김배우의 코드 네임은 피셔맨이었다.



공공연한 무릉도원인 피셔맨의 스위트룸에는 콧구멍을 불사르는 고춧물도, 신경 줄기를 바스러뜨리는 고압 전류도 없었다. 대신 따뜻한 밥이 있었고 부드러운 햇볕이 있었다. 기력을 되찾은 빨갱이들에겐 피하고 싶은 룸서비스가 기다리고 있었지만.

“천국의 지하실을 열어볼까.”

피셔맨은 수면 아래 낚싯바늘을 드리우듯 빨갱이들의 노곤해진 몸에 침을 찔러넣었다. 정수리에서 귀 뒤쪽까지 이어지는 몇 개의 침들을. 몸을 비틀며 하늘로 솟구치는 한 마리 용을 그려내는 침들을.

용문혈龍文穴.

용이 되어 구름 위로 나는 듯한 쾌감을 선사하는 배열이, 품고 온 모든 걸 무릉도원에 다다른 얼굴로 내려놓게 만드는 일련의 혈자리가 있다고 했다. 녹화된 영상을 보지 않았다면 나도 결코 믿지 못했을 것이다.

빨갱이들은 꼭꼭 숨겨온 기밀을 지난밤 꿈 얘기 들려주듯 털어놓았다. 비밀 아지트의 위치, 배후 인물들, 감춰진 자금줄…… 무서운 의도와 엄청난 계획들까지 술술 불면서도 꿈꾸는 표정이었다. 당대 최고의 화가에게 꿈에 본 비현실적 풍경을 상세히 들려줬던 비운의 조선 왕자처럼.

그리고 깨어나서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했다.

털어놓은 정보들이 진짜인지 아닌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머릿속을 떠다니는 그 어떤 생각도 입 밖에 내는 순간 돌이킬 수 없는 무엇이 된다는 사실. 강압의 흔적이라곤 눈 씻고도 찾아낼 수 없는 자백 영상이라면 더더욱. 그다음은 우리의 몫이었다. 꿈에 본 광경을 현실이라는 화폭에 재현하는 일말이다.

번거로운 검은 우회로를 거쳐야 했지만, 한의대 문턱도 구경 못한 피셔맨이 버젓이 흰 가운을 걸치고 <몽유도원도> 복제품을 무슨 자격증처럼 내걸게 된 데는 이런 곡절이 숨어 있었다.

기왕 왔으니 침이나 한 대 놓자고 달려들었을 때 움찔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겁먹었다는 얘기는 아니다. 어디까지나 방문 동기와 거리가 먼 전개였고 내게 ‘천국의 지하실’ 같은 건 없었으니까. 그럼에도 자리를 박차고 나가지 않은 건 계단을 오르내리느라 삐걱대는 몸을 몇 초라도 누이고 싶었기 때문이다.

전에도 그랬던가. 피셔맨은 어디가 불편한지 묻지도 않고 곧장 침을 놓기 시작했다. 귀밑에 집중적으로 꽂았다. 부위가 부위(자백이라도 받아낼 셈인가)인지라 내심 긴장했던 몸과 마음이 이내 녹신녹신해졌다. 자백을 끌어낸 사람들 수만큼이나 능란한 솜씨였다.

침대에서 내려선 뒤에는 한번 더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천근같던 무릎이 날아갈 듯 가벼웠다. 피셔맨의 손길이 무릎은커녕 허벅지 근처에도 안 온 것 같은데.

“그 지경이 되도록 뭐했나? 제대로 걸으려면 두어 달은 다녀야겠어.”

피셔맨이 썩어 문드러진 이를 뽑아낸 치과의사처럼 말했다.



피셔맨이 진료 스케줄을 다시 잡는(“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사람들이라 취소의 취 자도 못 꺼내”) 동안 나는 <몽유도원도>에 사로잡혀 있었다.

예전엔 몰랐는데 뜯어볼수록 묘한 그림이었다. 무릉도원을 그린 여느 그림들과 달리 등장인물이라고는 한 명도 없었다. 신선도, 무릉도원의 주민도, 길을 잃고 헤매다 우연히 발을 들인 방문자도 보이지 않았다. 기암괴석에 포옥 감싸인 복숭아 숲뿐.

왜 이런 도원도가 되었을까.

지상낙원이 어찌 이토록 적막할까.

일찍이 접해본 적 없는 압도적 적막감에 두려움마저 일었다.



“목사가 부른다고?”

피셔맨의 목소리 톤이 이렇게 높았던가. 정정한 척하더니 가는귀가 먹은 걸까.

나는 본능적으로 주변을 살폈다. 대학생으로 보이는 옆자리 남자애는 보청기처럼 생긴 무선 이어폰으로 귀를 틀어막고 있었다. 건너 테이블에 마주앉은 두 사람은 각자의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우리 얘기를 들었을까.

서적 외판원, 단장, 산파, 소크라테스, 학장, 연출, 플래너, 정원사…… 그분이 후광처럼 거느린 숱한 별칭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게 목사였다. 온갖 성경 구절이 동전 삼킨 주크박스에서 음악 흘러나오듯 하는 분이라. 하지만 기독교 신자는 아니었다. 한때 출가했었다는 소문이 돌 만큼 불교 쪽으로도 해박했다.

예스도 노도 하지 않은 채 나는 침묵했다. 보안 때문만은 아니었다. 못 보는 사이 이마가 훌러덩 벗어진 피셔맨을 시험해보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뻔한 환자들(되짚어보니, 나도 모르게 피셔맨 앞에서 무릎을 주무른 것 같았다. 그게 아니더라도 내 나이에 무릎이 고무처럼 쌩쌩한 자가 몇이나 될까)이나 상대하느라 재능이 녹슬지 않았는지, 그분을 찾아갈 자격은 되는지 점검해보아야 했다.

침 하나로 자백을 척척 끌어내던 시절에는 흰 가운을 걸치기 위해 태어난 사람 같던 피셔맨이었는데. 전형적인 형태로 진행중인 M자형 탈모 탓인가. 턱선과 허리 라인을 무너뜨린 군살 때문인가. 정작 의사 노릇중인 지금은 종합상사 중역처럼 보였다.

“염려 말게. 요즘 애들은 남한테 신경 안 써. 마주앉아 있어도 서로에게 관심이 없는데 뭘. 무인도에서 얘기를 나누는 것만큼이나 안전해.”

그러면서도 피셔맨은 내게서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토마토 주스를 시키지 그랬나.”

피셔맨이 말을 이었다.

정작 스타벅스 매장으로 차를 몬 건 그였다.

“다방에 와서 웬 토마토?”

내가 커피잔을 집어들며 대꾸했다.

“전립선에는 토마토가 최곤데.”

피셔맨은 내 마음 깊숙이 염탐의 장침이라도 꽂은 것처럼 말했다.

전립선 얘기는 꺼낸 기억이 없었다. 오자마자 화장실 위치부터 묻긴 했지만.

“얼굴마다 다 쓰여 있어. 몸 어디가 어긋났는지.”

내가 알던 피셔맨, 내가 기대하고 있던 피셔맨이 맞았다. 마음만 먹으면 상대의 머릿속 맨 아래 서랍도 열어볼 수 있는 재능의 소유자. “코끝을 보면 알 수 있어. 거짓말할 생각만 품어도 코가 쑥쑥 자라나거든.” 거짓말탐지기를 비웃는 교묘한 거짓도 피셔맨의 감식안을 속이지 못했다.

그분의 부름을 받았다는 말을 입증하기 위해 신문 부고까지 보여줄 필요는 없었다. 어쩌면 수인사도 나누기 전에 감지했을지 모른다.

“지금 하는 일이 좋은 게 뭔지 아나?”

피셔맨이 눈에 힘을 풀고 대뜸 물었다.

당사자에 대한 비난이나 원망만 머릿속에 없다면 인간 거짓말탐지기와의 대화는 라디오 정오 뉴스만큼이나 편안했다. 굳이 내 생각을 피력할 필요가 없었다.

“거짓말을 듣지 않아도 된다는 거야. 셰익스피어도 내 앞에서는 꿀 먹은 고슴도치로 누워 있어야 하거든. 사람들이 메스보다 침 앞에서 더 조용해지는 이유가 뭔지 아나?”

타인의 거짓말에는 귀신처럼 반응하는 피셔맨이었지만 본인의 속내를 감추는 데는 세 살배기, 아니 피노키오만큼이나 서툴렀다. 누구에게서든 꽁꽁 숨겨져 있던 참 자아를 이끌어내는 연기 디렉터였지만 가면으로 맨얼굴을 가리는 데는 영 재주가 없었달까. 최고 자백 기술자의 자기모순적 약점이자 인간적 매력이기도 했다.

자문자답하는 버릇도 여전했다.

“메스는 너무 문명적이거든. 침은 원초적이지. 벌침처럼.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쏜다. 무하마드 알리도 알아챈 거야. 자연을 본뜬 무언가가 문명인들에겐 알 수 없는 두려움을 안긴다는 사실을.”

우리는 피셔맨이 남몰래 품고 있는 비밀을 엿보기 위해 그의 머리 어딘가에 침을 들이댈 필요가 없었다. 입을 틀어막거나 말을 끊는 어리석음만 범하지 않으면 됐다. 피셔맨의 입가에서부터 발원하여 웃음 근육을 부여잡고 눈가에 피어나는 달뜬 기운은 벙어리 셰익스피어들을 상대해온 시간의 지리멸렬을 반어적으로 웅변하고 있었다. 피셔맨은 거짓과 기만의 진흙에서 자백이라는 연꽃을 피워내던 시절을 가슴 깊이 그리워하고 있었던 것이다. 누군들 아니겠는가. 그 시절이야말로 우리 인생의 벨 에포크였는데.

어쩌면 한 떨기 연꽃의 은은한 자태보다 진흙 밭의 질척임이, 정제해내야 하는 하나의 진실보다 그것을 교묘하게 감추는 천 개의 거짓들이 오히려 활력의 근원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연꽃이 귀히 여겨지는 이유는 부엽토가 아닌 진흙을 뚫고 올라오는 데 있으니까. 벨 에포크는 진흙 밭을 뒹구는 시간이다.

자백 기술자와 마찬가지로 무자격 침술사도 피셔맨의 인생 계획에 없는 일이었다.

계획이라는 두 글자는 오로지 그분의 몫이다.



“아저씨, 책 팔러 다니는 사람 아니죠?”

소년소녀 세계문학 전집 카탈로그를 다 펼치기도 전, 피셔맨이 그분에게 건넨 첫마디였다.

열두 살의 피셔맨은 그분의 눈동자 너머에서 무엇을 엿보았던가. 

“또!”

피셔맨의 어머니가 질색하며 아들 등짝을 후려쳤다. 

하지만 그분은 피셔맨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되물었다.

“흥미로운 질문이구나. 그런데 왜 그렇게 생각하는 거지? 꼬마 친구?”

피셔맨은 전집 샘플에서 어느 한 권을 뽑아들며 대답했다.

“척 보면 알아요.”

그때 피셔맨의 손에 들린 건 『왕자와 거지』였다.

그분에게 조련되던 푸르른 시절, 늘 입안을 맴돌던 질문이 하나 있었다.

“왜 나였죠? 나를 왜 뽑은 거죠?”

희귀한 능력을 타고난 아이들이 모두 그분의 소년소녀 세계문학 전집을 읽게 되지는 않았다.

노려보는 시선으로 쇠를 구부리는 아이. 세상에서 가장 빠르고 정확한 주판을 머릿속에 담고 있는 아이. 동물들과 대화하는 아이. 비범한 재능을 뽐내던 TV 프로그램 출연자들마다 선택받았다면 회사 일각의 비아냥거림대로 우리는 서커스단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더 궁금했지만 답을 듣는 행운은 누릴 수 없었다. 용기 내어 묻지 못했으니 억울해할 일은 아니다. 궁금증에 값하는 대단한 이유를 듣지 못할까봐 두려웠던 것도 아니다. 애당초 용기를 내는 것과는 상관없는 종류의 질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질문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선택의 기준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뒤늦게 스치기도 했다. 왜?라는 바로 그 질문.

그분이 우리에게 던져준 건 늘 다른 물음표였다.

어떻게?

바로 이 순간에도 그분이 묻고 있다.

제군들, 나를 어떻게 찾을 건가?



“목사와 연결된 물건은 전혀 없나?”

피셔맨이 오렌지 당근 주스를 홀짝이며 물었다.

“연결된 물건이라니?”

내가 반문했다. 연결된 인물이나 정보라면 몰라도.

피셔맨이 주스 병을 테이블에 내려놓고 나를 물끄러미 건너다보았다.

“나는 어떻게 찾아왔나?”

이번에도 피셔맨은 질문으로 답을 대신했다.

공격이 최고의 수비이듯 질문이 최선의 대답이다. 그분에게 배운 대로였다. 하지만 소크라테스의 산파술처럼 내 무지를 깨우치기 위한 전술적 질문은 아니었다. 의아해하는 피셔맨의 표정에 문득 불안이 밀려들었다. 내가 뭔가를 놓치고 있는 건가.

“개업 무렵 와봤으니까. 그때는 맥 한의원이었지만.”

“간만에 듣는 이름이군. 미안하지만 그때도 자네는 방문한 적이 없을걸. 불법 침술사 노릇을 동네방네 떠들지는 않았으니까.”

“무슨 소리야. 행운목까지 들고 왔는데.”

“화분 선물 같은 거 안 하는 사람이잖나. 자네 손만 타면 다 시들어 죽는다고.”

“그게 무슨……”

“말해보게나. 지금 집에 어떤 화분을 기르고 있는지.”

피셔맨은 측은해하는 눈빛이 되어 있었다.

나는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담쟁이가 있는 벽돌 건물이며, 녹즙 대리점이며, <몽유도원도>며 어제 본 것 같은 심상心象들은 다 무엇이란 말인가. 개업 기념 침이나 한 대 맞으라고 권했던 것 같은데. 녹즙이라는 간판 글자가 무색하게 일층 대리점에서 솔솔 풍겨나오던 개소주 냄새는…… 섬광처럼 떠오르던 서빙고역 1번 출구는…… 머릿속이 뒤엉킨 실타래처럼 혼란스러웠다.

“잘 알지 않나, 내가 거짓말에는 과락이라는 거.”

“그럼, 내가 자넬 어떻게 찾아왔지?”

“여태 담배 피우나?”

대화가 점점 스무고개로 흐르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간절하네만.”

“담뱃불은 무엇으로 붙이나?”

다른 사람이었다면 무슨 수작이냐며 벌떡 일어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스무고개 끝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 알아야 했다.

나는 바바리코트 주머니에서 질문의 답을 꺼내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지포 라이터.

이제 피셔맨이 답할 차례였다.

“설마 기억 못하는 건 아니지?”

피셔맨이 라이터에는 눈길도 안 준 채 물었다. 내 패를 예상하고 있던 사람처럼.

“내 나이 불혹이 되던 해 시무식 날 유혹의 불씨를 아예 꺼버리겠다고 자네에게 넘기지 않았나.”

피셔맨의 친절한 설명에 머릿속 실타래는 더 헝클어졌다. 피셔맨이든 누구든 지포 라이터를 양도받은 장면은 기억에 없었다. 사실이라면 비상한 기억력이 아니더라도 잊기 어려운 일 아닌가. 백번 양보해 본래 피셔맨의 물건이었다 치자. 내가 피셔맨을 찾아온 것과 라이터가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앙가슴이 체한 것처럼 갑갑했다. 소크라테스는 감옥에서 독배를 마시고 죽은 게 아니라 끝없는 질문으로 복장이 터지기 일보 직전이던 제자들 손에 숨통이 끊어진 건 아닐까.

문득 어떤 의심이 날카롭게 스쳤다.

피셔맨이 나를 시험하고 있는 것인가? 불과 몇 분 전 내가 피셔맨에게 그랬듯? 의심하고 또 의심하도록, 의심하고 있다는 사실을 뺀 전부를 의심하도록 단련된 우리 아닌가.

그분이 기회가 있을 때마다 말하지 않았나.

“의심이 틀리면 인간관계가 날아가지만, 의심이 맞을 때는 목숨이 날아간다.”

온몸의 세포가 동면에서 깨어난 것 같았다. 들이쉬는 공기마저 의심하던 그 시절로 복귀한 느낌.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기분좋은 긴장감으로 팽팽해졌다.

막다른 질문 공세에 내몰린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는 한 가지는 침묵에 대한 맹신이다. 묵비권이 매번 구원의 동아줄이 되는 건 아니다. 백 번의 침묵보다 엉뚱한 한마디가 취조에 혼선을 불러일으킬 때도 있다.

“우연히 두 발로만 걷게 된 원숭이가 언어라는 걸 발명한 이유는 진실을 드러내기 위해서라기보다 진실을 감추기 위해서야. 네발로 걷던 과거를 포함해서. 성경이라는 집단창작물도 그래서 나온 거고. 펜이 왜 칼보다 강한지 알아? 칼은 진실을 억누를 뿐이지만 펜은 거짓을 진실로 둔갑시킬 수 있기 때문이야.”

목사라는 별칭이 해괴하게 느껴지는 때가 종종 있었다. 내가 아는 한 그분은 뼛속까지 다윈주의자였다.

“이보게, 내가 누군지 몰라서 묻나? 나, 라이카야.”

나는 코드 네임에 방점을 찍으며 말했다.

역시나 그분의 가르침이 효과를 발휘했다. 피셔맨은 멋쩍은 미소를 지어 보이나 싶더니 이내 주스 병을 입에 가져갔다. 시험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았다는 듯.

그럼에도, 아니 그래서 내 머릿속 경보는 빨간불로 격상되었다. 라이터도 라이터지만 일면식조차 없는 장소를 다녀온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니. 현실이 아닌 백일몽 한구석에 앉아 있는 기분이랄까. 그 몽롱하고 희붐한 분위기 속에서도 내색할 수 없는 의문은 더욱 또렷해졌다.

피셔맨의 말대로라면, 나를 생면부지의 이곳으로 연결시킨 것은 대체 무엇인가?

문득 조바심이 밀려들었다. 내가 어떤 인물이었든, 예전의 나에 미치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조바심. 그분 앞에서는 더더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