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회

재단사


“운을 시험해볼 사람이 있네.”

피셔맨은 차에서 들고 내린 공공칠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내 내 쪽으로 건넸다.

베레타 92F.

머리가 놀라기도 전에 몸이 먼저 반응해 이태리 베레타사에서 제조한 명기名器를 낚아챘다. 너무 오랜만이어서일까. 손이 기억하는 인명 살상용 쇠붙이 특유의 묵직한 차가움이 느껴지지 않았다.

“손바닥에 대고 방아쇠를 당겨보게. 손이 구멍날 일은 없을 테니 겁먹지 말고.”

“모양 빠지게 손바닥이 뭔가. 관자놀이 아니면 여기지. 내가 체질적으로 못 먹는 한 가지가 있는데 바로 겁이라는 오르되브르야.”

나는 총구를 입에 물었다.

“옳거니. 거기가 더 낫겠어. 어서 당겨보게.”

피셔맨이 내 쪽으로 몸을 기울이며 재촉했다. 머뭇거리면 발사를 기꺼이 도와줄 기세였다. 이십 년 만에 만나서 빈총을 당겨보라니 대체 무슨 꿍꿍이일까. 혹시 빈총이 아니라면? 그러고 보니 뭔가 장전된 느낌도 들었다.

나는 피셔맨의 눈을 똑바로 응시한 채 방아쇠를 당겼다.

입천장에 들러붙는 선득한 기운에 깜짝 놀라 반사적으로 총구를 빼냈다. 시간을 되감아 튀어나온 무언가를 거둬들이듯.

“뱉으면 후회할 거야. 보통 은단이 아니라 미국으로 수출되는 정력 은단이거든. 은에는 해독 성분이 있어서 간, 신장에 좋고 뇌혈관 속 유해산소를 줄여 기억력 감퇴도 억제한다네.”

피셔맨은 기억력 감퇴라는 두 단어에 유독 힘을 줬다.

“한 알, 한 알 혀로 살살 녹여줘야 해. 한꺼번에 아작아작 씹으면 구취 제거 효능이 반감되는데다 치아 건강에도 노굿이야.”

알갱이들이 녹으며 가볍고 화한 기운이 입안 가득 퍼져나갔다.

“중학생 때부터 시작한 담배를 은단 덕분에 끊었다며 김작가가 넘겨준 거야.”

“재단사와 왕래가 있나?”

내가 반색하며 물었다.

반가움에 총알처럼 튀어나온 직업은 김작가의 코드 네임이었다.

재단사의 담당 업무는 책, 그러니까 공작의 대본을 쓰는 것이었다. 따로 노는 낱낱의 퍼즐 조각들도 그의 손을 거치면 마지막 한 조각까지 딱 떨어지는 그림으로 완성되었다. 하와이의 야자수 잎과 북극의 빙하를 쥐여줘도 촘촘한 간첩단 서사를 엮어낼 능력자였다. 사람들 마음속 거문고를 자유자재로 튕기는 대사는 얼마나 생생했나. 살아 꿈틀대며 시시각각 빛깔을 바꾸던 디테일의 비늘들은 또 얼마나 반짝거렸던가. 우리 중 누군가 작가로 데뷔한다면 그 영예의 홀笏은 단연 재단사의 손에 쥐어질 것이었다.

피셔맨 앞에서 재단사라는 코드 네임을 입에 올리니 한창때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막후에서 세상이라는 무대를 쥐락펴락하던 그 시절로.

“생사조차 모르네.”

“침을 맞으러 올 때까지 기다릴 수는 없고……”

“필름은 넘겼으니 현상이야 자네 몫이지.”

피셔맨이 베레타, 아니 은단 케이스를 턱짓으로 가리켰다.

필름이라니. 현상은 또 무슨 소리인가.

라이카라는 내 코드 네임과 무관하지 않은 건 분명했다. 나는 무언가를 기억해내야 한다. 손에 쥐어진 재단사의 옛 소지품을 나는 망연히 바라보았다.

“떠오르는 무대 없나, 김감독?”

피셔맨은 어느새 지포 라이터를 기억 못하느냐고 묻던 순간의 눈빛으로 돌아가 있었다.



부실해진 전립선이 도움이 될 때도 있었다. 덕분에 피셔맨의 시선에서 수시로 벗어날 수 있었으니. 그래봤자 쥐 오줌만큼의 말미였을 뿐이지만.

화장실에서 뾰족한 수를 찾지 못한다면 남에게 내가 어떤 사람이었느냐고 묻는 수모를 피할 길이 없었다. 현역 같으면 양변기 수조 속에 내 정체성을 말해줄 무언가(정력 은단이 아닌 9밀리 패러벨럼 탄이 장전된 베레타, 위조 여권, 암호 수첩, 고무줄로 돌돌 말린 달러 뭉치, 마이크로필름 같은)가 알뜰히 준비돼 있었겠지만, 나를 맞이한 현실은 맨 엉덩이에 전해오는 냉기와 서서 오줌을 누지 못하게 된 뒤로 단짝이 된 자괴감뿐이었다.

대신 나는 주머니를 뒤지기 시작했다. 코에 걸친 돋보기처럼,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는 것들은 으레 내 몸 어딘가에 붙어 있곤 했으니까.

지갑, 손수건, 담뱃갑, 동전 몇 개, 그리고 낡은 하모니카.

하모니카? 이 물건이 왜 내 주머니에 들어 있는 걸까. 아무리 뜯어봐도 평범한 하모니카였다. 하모니카로 위장된 권총이나 폭탄은 아니었다. 생소하지만 왠지 낯설지 않았다. 내가 하모니카를 부는 사람이었던가. 천만에. 휘파람도 어설픈 나다. 악기나 물고 있던 인생은 더더욱 아니다.

새로운 수수께끼에 입술을 대보았다. 바람에 흔들리는 촛불처럼 무언가 깜박깜박했지만 거기까지였다. 촛불이 꺼진 자리에는 백내장 같은 촛농만 남았다. 머릿속이 식은 촛농처럼 뿌옇게 굳어버린 느낌. 

나는 소지품들을 흰 타일 바닥에 나란히 늘어놓았다. 간첩 사건 증거물을 언론에 공개하듯.

이 물건들의 주인은 어떤 인물인가. 

당신 주머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말해보라. 그럼 나는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줄 수 있다.

나도 모르게 중얼거리며 증거물 1호를 집어들었다.

네 귀퉁이가 해진 갈색 가죽 장지갑.

장지갑을 쓰는 사람은 신용카드보다 현금을 선호할 가능성이 높다. 지폐가 구겨지지 않으니까. 현금만 쓰는 남자는 뭐다? 빙고. 간첩이다. 포켓이 많아 뭘 숨기기에도 맞춤이다. 고로 지갑은 내 물건임이 틀림없다.

투명 비닐 포켓에 끼워진 주민등록증을 들추니 꼭꼭 접힌 종이 쪼가리가 숨어 있었다. 

펴보니 조간신문에서 오려낸 부고였다. 집 화장실에서 재로 변해 변기 물과 함께 사라지지 않았던가. 훈련받은 대로 처리했던 것 같은데.

그제야 기억났다. 마지막 순간 마음을 바꾼 것이. 지포 라이터 불꽃을 대려는데 기분이 묘했다. 낯설 정도로 익숙한 어떤 기시감이 해일처럼 밀려들었다. 무력감이었던 것도 같다. 반복할지언정 돌이키는 건 불가능하다는 압도적 무력감.

노크 소리를 두 번이나 돌려세우도록 쭈그려앉아 있었지만 배꼽 아래가 상쾌해지지 않았다.

알려준 적 없다는 피셔맨의 행방을 대체 어떻게 알고 찾아왔을까. 우연인 듯 필연인 듯 연결된 션샤인 통증 클리닉이라는 점은 어떻게 내 의식의 지평선 위로 떠올랐을까.

해가 지평선 너머로 사라진 듯 한순간 사위가 컴컴해졌다. 밖에서 누가 스위치를 끈 것 같았다. 빨리 나오라고 시위하는 건가. 가슴팍으로 치받는 뜨거운 것을 애써 억누르며 나는 더듬더듬 손을 타일 바닥으로 가져갔다. 뜨거운 무언가를 내뱉는 건 라이터를 켠 뒤에도 늦지 않을 것이었다.

뭔가 손에 잡혔다. 그때였다. 정체불명의 형체들이 머릿속에서 흐릿하게 어른거렸다. 그것들을 붙잡으려는 듯 앞으로 내민 손에 힘이 들어갔다. 정수리에 찌릿하는 강한 전기가 느껴졌다. 어렴풋하던 윤곽이 현상액을 머금은 인화지처럼 또렷해져갔다.

기품이 느껴지는 오래된 소나무, 자그마한 동산 같은 커다란 봉분……

혼자만의 고독한 세상이 다시 환해짐과 동시에 문 너머에서 손잡이를 거칠게 돌리는 기척이 들려왔다. 깊고 오랜 어둠에서 막 솟구쳐오른 사람처럼 나는 부신 눈으로 손을 내려다보았다. 손등 가득 파란 정맥이 그물을 치도록 내가 꽉 움켜쥐고 있던 것은 은단 케이스였다. 재단사가 피셔맨에게 넘겼다는 은단 케이스.

그나저나 피셔맨은 나를 왜 김감독이라 부르는 걸까.

방금 내가 어둠 속에서 본 것들과 상관이 있을까.

다시 한번 기시감이 찾아왔다. 내 부고를 차마 태우지 못한 채 지포 라이터를 끄던 순간, 사라진 불꽃의 잔영처럼 머릿속에 일렁이던 기억 아닌 기억. 내 손을 거쳐간 수많은 물건들과 핀 조명을 받은 무대처럼 또렷이 떠오르던 수많은 공간들.

오랫동안 잊고 있던 그분 말씀이 뇌리를 울렸다. 『보물섬』을 내게 선물하며 했던 그 말씀.

“기억하는 것만으론 의미가 없단다. 사물의 혼을 읽을 줄 알아야지. 보물과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는 보물 지도처럼.”

나는 너무 환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암실에 홀로 앉아 있었다.



“오래 걸린 걸 보니 뭘 좀 읽고 왔나보군.”

피셔맨이 보물의 위치를 묻는 해적처럼 물었다.

“무덤이 보였네.”

나는 확신에 찬 어조로 말했다.

“재단사가 죽었다고?”

“누구 무덤이라고는 안 했네만.”

“하긴, 담배도 끊은 사람이니. 그래, 어떤 골초의 무덤이었나?”

“석마石馬, 석양石洋, 석호石虎를 거느리고 있었네.”

“왕의 무덤이라……”

“재단사가 드러누워 있을 곳은 아니지.”

“단봉이었나 쌍봉이었나?”

“그게 중요한가?”

“왕릉들이 다 똑같다는 근본 없는 발상을 하는 건 아니겠지?”

“단봉.”

“확실한가?”

“뒤쪽에 하나 더 있었던 것 같기도 해.”

“옆이 아니라 뒤라고?”

“뒤에 있으면 안 되나?”

“과연 김작가답네. 반전 스토리의 명수다워.”

피셔맨이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어디 가게?”

나도 덩달아 몸을 일으키며 물었다.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피셔맨은 어느새 출입문으로 돌진하고 있었다. 못 보던 새 몸은 불었어도 왕년의 피셔맨은 어디 가지 않았다. 물고기를 낚지 않는다고 미끼 끼우는 법을 잊어버릴 피셔맨은 없다. 불법이라는 침침한 전등갓 아래에서 애써 침을 놓는 것도 손맛을 잊지 않기 위함인지 모른다.

한번 피셔맨은 영원히 피셔맨.

단 한 편만 써도 죽을 때까지 작가, 죽어 누워 있을 때조차 전직 작가가 아닌 그냥 작가로 불리는 것처럼. 어떤 보통명사는 세월과 함께 고유명사가 되기도 한다.



내가 행선지를 짐작할 수 있게 된 것은 빌딩숲 허리를 가르며 질주하던 피셔맨의 BMW가 내부순환로에서 빠져나가기 위해 차선을 바꿀 즈음이었다.

“비행기 엔진 만들던 회사라 주행감이 다르지.”

내 흉중을 엿본 피셔맨이 기다렸다는 듯 입을 열었다.

딸애를 한의대에 보냈어야 했을까. 한의사는커녕 개, 고양이에게도 의료보험 혜택이 적용돼야 한다는 소리나 하고 앉아 있으니. 수의사라도 시킬 걸 그랬나. 그랬으면 괭이 새끼 두 마리에 개새끼 한 마리까지 지극정성으로 돌보면서 지 애비한테 안부전화 한 통 없는 불효쯤은 눈감아줄 수 있을 텐데. 할애비는 냄새난다고 슬금슬금 피하면서도 개새끼 똥은 제가 먼저 치우겠다고 달려가는 손녀 아이도 아무렇지 않을 텐데.

전쟁이 터져도 애비, 할애비는 나 몰라라 괭이 새끼, 개새끼만 껴안고 피난 갈 녀석들. 개새끼, 괭이 새끼들 주사나 싸게 놓자고 빨갱이들과 젊음을 바쳐 싸웠단 말인가. 인민군이 쳐들어오면 포메라니안으로 T 전차를 저지하고 먼치킨으로 미그기를 떨어뜨리겠구나. 내 쓸개를 꺼내 혀에 댄 것처럼 입이 썼다. 그러거나 말거나 피셔맨은 그쯤으로 그칠 생각이 없는 듯했다.

“도로면에 착 붙어 달리다보면 어느 순간 휙 날아오를 것 같아. 아우토반만큼 속도를 못 내서 그렇지.”

독일산 세단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나는 묻지 않았다.

“자네도 레이저로 검버섯 좀 벗겨내야겠는걸. 전생에 고려청자를 빚었을까. 솜씨가 예술이야. 곰보라도 유약칠을 한 것마냥 매끈해진다네.”

며느리가 피부과 전문의라는 피셔맨의 눈치 없는 자랑에 억장이 무너져서라기보다는 짐작되는 바가 있어서였다. 내비게이션을 놀리고 있다는 건 눈감고도 찾아갈 수 있는 곳이라는 얘기. 별다른 설명이 없는 건 나도 익히 아는 장소라는 뜻일 테고.

여러 줄기의 심증이 램프웨이로 머리를 들이미는 차량들처럼 한곳에 모였다. 이 모든 조건을 충족시키는 장소는 하나뿐이었다.

회사.

나를 태운 차는 회사 쪽으로 가고 있었다.

정확히는 회사 바로 턱밑에 자리하고 있던 어느 왕의 무덤으로.



기분이 묘했다. 속도계의 바늘은 시간당 주행거리를 표시하고 있었지만 내게는 그 반대로 다가왔다. 주행거리당 달리는 시간.

차가 앞으로 나아가는 만큼 시간은 과거로 물러서고 있었다. 감상적 의미라기보다 물리적 의미로 그랬다. <백 투 더 퓨처>의 스포츠카를 탄 것처럼 차창을 스치는 풍경들이 지난 세기의 정취를 일깨웠다. 굴뚝 있는 공중목욕탕부터 객실 창마다 검붉은 비로드 커튼을 드리운 여관까지, 빛바랜 간판들이 도심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프랜차이즈 상호들 사이사이로 물살을 거스르는 수석처럼 박혀 있었다.

너무나 현실적이어서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시간여행은 회사로 진입하는 구간에 이르러 절정에 달했다. 은하수, 왕자, 백합…… 맥양집이라 불리던 헐한 술집들이 여태 남아 있었다. 폭포수를 뛰어오르는 연어처럼 시간을 거슬러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간 것 같았다.

그렇다고 무정한 세월이 두 손 놓고 있던 건 아니었다. 기다리는 건 불심검문뿐이던 외진 길에 카페와 식당들이 영업중이었다. 왕릉 방문객을 위한 주차창도 조성되어 있었다. 왕릉을 감싸며 길게 이어진 솔숲 여기저기엔 아웃도어 차림의 노인들이 팔을 크게 휘저으며 제 그림자를 따라잡듯 빠르게 걷고 있었다.

“여기도 사람이 살게 되었구만.”

피셔맨의 목소리에 씁쓸함이 배어 있었다.

예전 같으면 감히 상상 못할 풍경이었다. 택시기사들은 이 왕릉 이름(회사명을 직접적으로 거론하는 건 보안상 적절치 않았기에)만 대도 바들바들 손을 떨었다. 미터기를 꺾어버리거나 룸 미러를 홱 돌려버리는 경우도 있었다. 저승사자의 얼굴을 쳐다보면 죽은 목숨이라 여기듯. 미터기는 그냥 내리라고 납작 엎드려 있어도 나는 후하게 요금을 지불했다. 어깨 너머로 지폐를 건넨 뒤 거스름돈은 필요 없다고 하면 기사들은 오히려 사색이 되곤 했다. 눈두덩에 은화가 얹히는 시신처럼.

회사를 무덤가에 세운 건 탁월한 선택이었다. 그 배경에 대해서는 설이 분분했지만 가장 솔깃한 주장은 재단사의 입에서 나왔다.

“보게. 저 무덤 밑에 누가 누워 있는가. 단명한데다 후사도 못 본 불모의 왕이지. 모친은 또 얼마나 처참한 최후를 맞았나. 사약을 받게 되자 왕조의 대를 끊어버리겠다며 어린 세자 음낭을 움켜쥐려 했다지. 이래저래 장안에서 음기가 가장 센 곳이라네. 남산의 화기를 제어하지는 못했지만. 김부장이 왜 VIP 면전에서 방아쇠를 당겼는지 아나? 유혈진압을 막으려고? 경호실장과의 파워 게임 때문에? 바늘구멍에 꿰는 실만큼 빤한 발상이야. 바늘구멍에 꿰어야 한다면 진실은 낙타 같은 것이겠지. 남산은 불기운이 센 곳이야. 그 불이 방아쇠를 당긴 거지.”

나는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었다. 내 안에서 습관적으로 혀를 날름거리던 의심을 몰아낸 일등공신은 역사나 풍수 같은 거창한 담론보다 재단사가 뱀의 발처럼 덧붙인 자그마한 디테일이었다.

“생뚱맞게 연못을 판 이유도 그래서였지. 불을 누그러뜨리는 물이어야 했으니까. 진실이 궁금한가? 바늘구멍에 실이나 꿰고 있지 말고 그 눈곱만한 틈으로 우주를 들여다보게.”

회사 본관에서 사격 연습장으로 난 오솔길 중간에 인공 연못이 하나 있었다. 이름은 ‘음지못’.

놀랍고도 신기한 조화였다. 철옹성 같던 의구심의 성벽이 개미 새끼 한 마리 빠져 죽기 힘든 접시 물에 문을 활짝 열다니. 음지못이라는 바늘구멍에 눈을 가져가니 수면 아래 거대한 빙산의 실체가 한눈에 들어왔다.

재단사는 디테일의 천재였다. 말라비틀어진 뱀 껍질 같은 이야기에 생명을 불어넣는 건 치명적 독 한 방울. 신화 속 존재 삼손을 실존 인물로 탈바꿈시키는 마술 상자의 비밀장치도 머리카락 아니던가. 델릴라가 잘라낸 게 머리카락이 아닌 간이나 심장이었다면 삼손은 이름도 기억 못하는 그저 그런 신들 중 하나(간이었다면 프로메테우스의 그늘에 가렸겠지)에 지나지 않았으리라. 머리카락이라니, 얼마나 인간적인가!

미국 문화원을 점거농성중인 극렬 운동권과 면담을 시도하는 장관은 밀가루를 뒤집어써야 한다. 물벼락은 시각효과가 약하다. 달걀 세례는 상투적이다. 봉변의 핵심은 밀가루여야 한다. 흑백사진 속에서 검은 머리, 까만 양복과 극적인 대조를 이루는 새하얀 밀가루. 그것도 점성이 강해 비 오듯 흐르는 진땀에 예쁘게 엉겨붙을 강력분으로 준비한다. 교수 출신 장관, 스승이나 다름없는 고위 공직자를 욕보인 패륜적 밀가루. 졸업식 끝에 담임선생을 밀가루 귀신으로 망가뜨리는 문제아들. 배꼽이 등가죽에 붙어 손만 빨던 시절, 은인의 나라 미국에서 보내오던 밀가루. 은혜를 원수로 갚는 인면수심들.

강점은 곧 약점이다. 영웅을 무릎 꿇리기가 꼽추를 무릎 꿇리기보다 쉽다. 힘의 원천만 끊으면 된다. 돈으로 까부는 자들은 돈줄을 끊고 명예가 목숨인 자는 이름에 먹을 칠한다. 끊을 돈줄도 먹칠할 명예도 없는 자들, 허리에 찬 무기라야 구호를 외치기 위해 움켜쥔 맨주먹뿐인 자들에겐 손바닥을 펴 셀 금화 몇 닢을 쥐여준다.

도배장이.

우리는 재단사를 도배장이라고도 불렀다.

대본만 썼다 하면 조간 1면을 똑같이 도배해버린다는 의미의 별호는 제비뽑기로 얻은 훈장이 아니다. 소설은 몰라도 재단사가 쓴 소설 작법서는 무조건 구입할 용의가 있다.



편지지, 만년필, 춤추는 파란 글자들.

거짓말처럼 재단사의 흔적이 발견된 곳은 매표소였다.

쳐다보는 데도 반쯤 목숨을 걸어야 했던 금단의 구역은 여느 왕릉처럼 몇 푼짜리 표만 끊으면 아무나 입장할 수 있는 공원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관람객은 한 명도 눈에 띄지 않았다. 매표소도 비어 있었다.

대여섯 평 남짓한 사무공간은 온기로 훈훈했다. 한쪽 벽 아래 서 있는 전기스토브의 열선이 아직 따끈했다. 자리를 비운 지 얼마 안 되었다.

철제 책상 위에 편지지가 놓여 있었다. 가로줄이 세로줄이 되도록 돌려 쓴 편지지. 재단사는 규격 편지지에 파란 잉크로 초고를 쓰곤 했다. 가로가 아닌 세로줄로.

“머릿속 스위스 금고에 『전쟁과 평화』 뺨치는 걸작이 들어 있는데, 어떻게 원고지로 출금해내야 할지 막막하다는 소리만큼 한심한 얘기도 없네. 행복한 집들은 이유가 다르지 않지만 불행한 집들은 제각각이다, 이 유명한 첫 문장은 어떻게 탄생했을까? 그것은 톨스토이가 아내 들으라고 쓴 푸념일세. 그러다 말년에 쫓겨났지만.

누가 내 글을 읽어줄까, 독자를 구체적으로 그리고 있으면 어느 순간 원고지 빈칸을 채워나가는 펜을 발견하게 되지. 내 독자가 누구인가? 조간을 펼치는 사람들이지 않나. 왼쪽에서 오른쪽이 아니라 위에서 아래로 써 내려가는 게 당연하지.”

재단사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글은 쓰는 게 아니라 들려주는 거야. 이미지라기보다는 사운드에 가깝지. 뭘 쓰려고 하니 복잡해지고 말아. 곁에 있는 사람에게 조곤조곤 말을 건넨다고 생각해. 내가 편지지를 고집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네.”

규격 편지지를 세로로 물들인 파란 잉크만으로 재단사라고 단정할 수는 없었다. 결정적 단서는 필체였다. 재단사의 손글씨는 필적감정사가 아니더라도 한 번 보고 식별 가능할 만큼 독특했다. 천재는 악필이라 했던가. 삐죽빼죽 삐뚤빼뚤. 만년필을 직접 쥐는 대신 꼭두각시를 조종해 쓴 것 같았다. 그래서 더 특별한 느낌이었는지도 모른다. 악보도 볼 줄 모르는 아이의 명연주를 듣는 기분이랄까.

어느새 나는 춤추는 암호, 오선에서 자유로워진 음표를 읽고 있었다.


목소리: (신원은 파악하고 있지만 절차상 거쳐야 하는 과정일 뿐이라는 듯) ○○○씨 되십니까?

○○○: (낯선 번호라 경계한다) 그런데요?

목소리: (사무적이면서도 위엄이 서린) 서울남부지검입니다.

분기점이 되는 대사. 반응별 변화를 완벽히 숙지한다.

a. 전격전

○○○: (긴장하며) 무슨 일인데요?

목소리: 선생님 명의로 개설된 은행 계좌가 사기 범죄에 이용되고 있는 정황이 포착되었습니다.

b. 공성전

○○○: (미심쩍어하며) 어디라고요?

목소리: (소속에 힘을 주고 이름은 빠르게 흘리듯) 서울남부지검 금조2부 수사관 ×××입니다.


플랜 A와 플랜 B.

설마 새로운 공작 대본인가. 재단사는 아직도 현장과 끈이 닿아 있는 걸까. 그분 라인은 블랙 요원 끄나풀까지 도려내지지 않았나. 더구나 검찰과 공조라면 금융조사부가 아닌 공안부여야 하는데.

“여기 맞아?”

피셔맨은 홍살문을 지나 정자각 쪽으로 다가가고 있었다. 재단사의 신작 감상을 중단하고 나는 매표소를 빠져나가 뛰다시피 피셔맨을 뒤따랐다.

“자네가 현상한 대로면 여기 어디 재단사가 있어야 할 텐데.”

실망이라 읽지 않을 수 없는 표정을 내보이며 피셔맨이 중얼거렸다.

“내가 매표소에서 뭘 봤는지……”

피셔맨이 능 오른쪽 끄트머리에서 갑자기 붉은 목책을 붙잡으며 몸을 낮추더니 곧이어 수신호를 보냈다. 옆으로 누운 엄지. 피아식별(적이면 아래로 엄지, 아군이면 위로 엄지)이 되지 않는 일 명. 나는 오리걸음으로 피셔맨의 등 뒤에 소리 없이 붙었다.

피셔맨이 손가락으로 타깃을 가리켰다. 스타벅스 화장실에서 본 대로 봉분 뒤에 또다른 봉분이 겹치듯 숨어 있었다. 출입구가 되는 홍살문을 기준으로 바라보면 하나 같은 둘이었다. 그 두번째 무덤 꼭대기에 누군가 누워 있었다. 속꺼풀이 파르르 떨리도록 눈을 가늘게 떠보았지만 역광 속 검은 그림자 이상으로 해상도가 개선되지는 않았다.

“땅속이 갑갑해 일광욕하러 나온 건 아니겠지?”

피셔맨의 눈도 별수없는 것 같아 나는 안심이 됐다.

“볕이 좋긴 하네만. 어쩔 텐가. 어명이 있을 때까지 대기하나?”

“기침하시기 전에 알현해야지. 우르르 몰려가면 경기를 일으키실지 모르니 양쪽으로 대령하세.”

나는 반원을 그리며 봉분의 붉은 목책 반대쪽 끝으로 갔다.

피셔맨과 나는 동시에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신호로 타깃을 향해 숨죽여 접근하기 시작했다. 두번째 무덤은 기와가 얹힌 곡담으로 배후가 둘러쳐져 있었다. 곡담의 완만한 커브를 따라 돌 호랑이, 돌 양이 사악한 기운을 막아내고 있었다. 권총 모양 은단 케이스가 보여준 대로였다. 더 안쪽에는 문신 석상, 무신 석상, 석마가 호위하고 있었다. 왕의 영면을 지키는 마지노선인 붉은 목책을 넘는 순간 신성모독이라는 마음속 경고등에 멈칫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지뢰에 발목이 잡힌 사람처럼 피셔맨을 돌아보았다. 피셔맨은 벌써 목책 너머로 첫 발을 내딛고 있었다. 날벼락이 발밑에 떨어지는 한이 있어도 피셔맨에게 뒤처질 수는 없었다. 나는 무덤을 빠르게 기어올랐다. 손바닥에 닿는 잔디의 감촉이며 납작 엎드린 몸의 기울기가 왠지 낯설지 않았다. 이번이 처음은 아닌 것처럼.

무덤 정상에 누운 사내의 상체가 보였다. 어깨가 떡 벌어진 사내는 계절에 맞지 않게 딱 달라붙는 반팔 차림이었다. 재단사가 이토록 단단한 이두박근의 소유자였던가. 은단 케이스가 보여준 건 이 무덤이 아닌 걸까. 매표소에서 나오던 순간의 확신은 점점 물음표로 변해갔다.

사내의 얼굴은 펼쳐진 책에 가려져 있었다. 맨 먼저 눈에 들어온 건 앞표지 절반을 차지하는 흑백사진이었다. 맞춤 양복점 재단사처럼 깐깐해 보이는 서양 노신사가 곁에 원단이 아닌 책을 잔뜩 쌓아놓고 앉아 있는 사진.

小說의 理論.

소설 작법서인가. 생경한 제목이었지만 최후의 경계심이 눈 녹듯 사라지는 데 부족함이 없었다. 소설과 이론. 창의적이면서도 탄탄한 논리를 자랑했던 사람다운 독서였다. 음지의 전당을 비추고 있던 한낮의 겨울 햇볕처럼 나는 주저 없이 책을 들추었다.

벗겨진 봉분처럼 가장자리만 남은 백발, 안면을 뒤덮은 검버섯과 주름…… 무덤 위가 아니라 아래 누워 있어도 억울할 게 없는 인상이라니. 힘줄이 툭 불거진 이두박근과는 기괴하리만치 따로 노는 얼굴. 하마터면 책을 떨어뜨릴 뻔했다.

“지금 내가 강림 천사들을 목격하고 있는 건가?”

내리꽂히는 직사광선을 거슬러 해골 같은 얼굴이 우리를 올려다보았다.

귀에 사포질하는 듯 칼칼한 목소리. 줄자처럼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무표정한 얼굴. 무엇보다 익숙한 건 체크 마크처럼 찍힌 일그러진 웃음이었다. 정확히는 한쪽만 찢긴 듯 올라가 있는 입꼬리.

“무덤에서 솟구치지 않은 건 확실하네만.”

내가 입꼬리를 마주 끌어올리며 대꾸했다.



왜 나였을까.

느낌표를 갈구하는 물음표가 갈고리를 내민 대상은 나만이 아니었다. 그분의 선택을 받은 누구나 그 대상이었다. 그리고 재단사는 내 선망 어린 관심의 대상이기도 했다.

재단사가 그분의 레이더망에 잡힌 건 모 신문 신춘문예 심사평 속 한 줄 때문이었다.

“악마조차 혀를 내두를 만큼 소름 돋는 상상력이지만 현실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끝내 넘어서지 못했다.”

당선작과 마지막까지 겨룬 한 편에 관한 소회였다. 그 한 줄로 역대 최연소 당선자가 될 뻔했던 까까머리 작가 지망생의 운명은 완전히 바뀌었다.

당시 중학교 신입생이던 재단사를 찾아가 그분이 제안했다.

“군君의 기발한 상상력이 그 신문 1면을 장식하는 걸 보고 싶지 않나? 소설가가 되고 싶어? 그럴듯한 거짓말을 지어내는 데 인생을 걸겠다고? 그래봤자 거짓말에 불과해. 아무리 현실 같은 거짓말이래도 현실의 머리끝도 건드리지 못하지. 현실을 바꾸는 건 정교한 거짓말이 아니라 거짓말을 지어내는 자의 힘이야. 힘없는 자의 거짓은 범죄가 되지만 힘센 자의 거짓은 역사가 되지. 나는 자네를 예언자로 만들어주겠네. 역사의 예언자 말일세.”

“현실성이 부족하다고 생각지 않으십니까?”

재단사가 심사평의 일부를 인용해 되물었다. 한쪽 입꼬리만 올라간 특유의 비웃는 얼굴을 어쩌지 못한 채로.

탯줄이 아직 배꼽에 붙어 있을 때도 재단사는 같은 표정이었다. 새로 맞이한 세상을, 자기 자신의 탄생을, 어쩌면 그 모두를 비웃는 것처럼 보이는 아기.

울음소리도 없었다. 불길한 징조였다. 산파가 핏덩이를 거꾸로 들고 찰싹찰싹 때렸다. 건강한 첫울음이 터져나올까, 외눈박이 재봉사가 꿰맨 듯한 한쪽 입꼬리가 제자리를 찾을까. 헛된 노력이었다. 갓난아기는 온몸이 몽고반점처럼 파래지도록 울음 비슷한 걸 내비치지도, 반쪽 웃음을 거둬들이지도 않았다. 오해와 구타로 점철된 외로운 수난의 서막이었다.

동네 형들, 학교 선생들, 길 가다 부딪힌 사내들…… 부모는 물론이었다. 비웃는 남자로 태어난 속사정을 모르거나 알아도 모른 체하고 싶었던 사람들, 그리고 너무 잘 알아 더 견딜 수 없었던 사람들은 붉으락푸르락 소리쳤다.

“웃어?”

“웃냐?”

“웃음이 나오냐?”

비웃는 표정을 맞닥뜨리고도 얼굴이 굳지 않는 어른은 그분이 난생처음이었다. 심지어 미소까지 지어 보였다. 괴테의 희곡 『파우스트』를 건네며.

“일급 재단사들은 살덩이에 양복을 맞추지 않아. 살덩이는 아침저녁으로 줄었다 늘었다 하거든. 그냥 최고의 양복을 만들 뿐이지. 모든 양복의 원본 같은 양복. 양복의 이데아 같은 것. 그러면 사람들이 거기에 몸을 맞추거든. 줄자로 재는 건 팔 길이, 허리둘레가 아닌 허영심의 크기일 뿐. 세상은 그런 식으로 돌아간다네. 현실이라서 1면에 실린다는 허황된 생각은 버릴 수밖에 없을 거야. 1면에 실려서 현실이 되는 이치를 한 번만 목도하게 된다면.”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과 함께 분루를 삼켜야 했던 투고작 제목에는 상상력이 개입될 구석이 전혀 없었다.

반만 웃는 아이.

그것은 재단사가 자기 이름을 걸고 쓴 처음이자 마지막 소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