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회

귀부인의 초상


“왜 하필 여긴가?”

피셔맨이 재단사에게 물었다.

재단사와 피셔맨과 나, 이렇게 셋은 서로의 생존을 두 눈으로 확인하며 왕의 무덤 꼭대기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그것은 내가 묻고 싶은 말이기도 했다.

“저길 보게.”

재단사가 9시 방향에 눈길을 두며 말했다.

재단사의 시선 끄트머리에 보이는 거라곤 완만한 사선을 그리는 휑한 언덕뿐이었다. 미 국방부 건물을 본떠 지은 회사 본관이 자리하고 있어야 할 그곳엔 어린 소나무들만 듬성듬성 서 있었다.

“캠퍼스는 어찌된 건가?”

피셔맨과 내가 동시에 물었다.

회사 본관 건물을 우리는 캠퍼스라 불렀다. 정확히는 해외(북한을 포함해서)영업부 본관. 알다시피 국내영업부는 저 유명한 남산에 있었다.

회사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KCIA라는 영어 표기가 우리는 영 마뜩지 않았다. 중앙정보부. 회사 공식 명칭에 한국이라는 수식어가 없으니 CIA가 올바른 표현이었다. KCIA는 CIA 한국 지부처럼 들리지 않나. 소련, 중공, 북한을 머리맡에 둔 여기 해외영업부야말로 냉전의 최전선에서 활약하는 진정한 CIA였다. 멋도 없고 느낌도 없는 중정이라는 줄임말 대신 우리끼리 굳이 CIA라고 부른 데는 그런 자부심이 깔려 있었다. 10·26 이후 회사 간판이 국가안전기획부로 바뀐 뒤로는 더 그랬다. 안전 두 글자는 국가정보기관보다 공사장 헬멧에나 어울리지 않나. 안기부라니. 어느 사기업 일개 부서 같은 새 약칭에 비하면 중정은 무게감이라도 있었는데. 아무튼 우리에게는 여전히 CIA였다.

직제부터 교범까지 CIA를 모델로(국내외를 망라한 공작이나 부서명에 아라비아숫자가 들어가는 점에선 솔직히 KGB와 유사했다) 탄생한 기관임에도 해외영업부 본관 건물만은 펜타곤을 본떴다. 규모야 리틀이라는 형용사를 몇 개 붙여도 모자랐지만 구조만큼은 버지니아주 알링턴 소재의 오리지널을 똑같이 재현했다. 지하로 여러 층(지하 시설물 규모는 대외비였다)을 낸 지상 삼층 높이의 정오각형 콘크리트 건물. 폭격이나 폭파 테러시 건물이 일거에 붕괴되는 걸 막기 위해 중심부를 비워둔 설계부터 그 빈터에 조성된 중앙 정원까지.

내 젊은 날의 추억이 금실로 짠 거미줄처럼 구석구석 드리운 곳. 그 방사형 추억의 중앙에 보석처럼 빛나던 정원. 정원 전체에 깔린 은모래는 교토의 은각사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었다. 은모래 바다 군데군데 섬인 양 파놓은 작고 야트막한 구덩이들은 초록 이끼로 덮여 있었다. 그리고 가장자리의 섬세하고 정교한 분재들. 구 대째 가업을 이어오는 사이타마의 한 분재원에서 배운 솜씨로 그분이 직접 가꾼 것들이었다.

일본식 정원에 잉어가 빠질 수 없었다. 몇몇 구덩이에 민물을 채우고 어른 팔뚝만한 비단잉어들을 풀었다. 볕 좋은 오후 그분 사무실 창(잉어 먹이를 곧장 떨어뜨릴 수 있는 자리였다)으로 내려다보면 황금빛 잉어들이 은빛 바다로 유유히 헤엄쳐 나오는 것 같았다. 은모래에 난반사되는 태양 광선의 눈속임이라고 굳이 설명하고 싶지 않은 눈부신 환영幻影이었다.

밑그림부터 관리까지 어느 누구도 손대지 못할 만큼, 그분은 중앙 정원에 각별한 애정을 쏟았다.

“아담과 이브가 왜 에덴 밖으로 추방됐는지 아나? 선악과? 아니, 무화과나무를 훼손해서야. 부끄럽다며 그 잎을 엮어 알몸을 가리지 않았나. 하느님의 진정한 작품은 아담이나 이브가 아니라 정원이었네. 에덴동산의 동산이 영어로 가든인 건 알지? 하느님은 완벽을 추구하는 가드너였어.”

정원사. 목가적인 그 별칭은 내가 그분에게 헌정한 것이었다. 보석세공용 외눈 확대경을 착용하고서 새똥 묻은 은모래나 이끼를 핀셋으로 일일이 솎아내던 그분의 모습이 어제처럼 생생했다. 하지만 그 찬란했던 정원도, 역사 그 자체였던 건물도 이젠 온데간데없었다.

“왕릉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한다고 깨끗이 밀어버리고 묘목을 잔뜩 심었네. 원형을 복원하겠다는 건 번지르르한 구실에 불과해. 우리 업적은 물론 존재마저 역사에서 지우고 싶은 거야. 판문점을 허물어 그 자리에 소나무 몇 그루 심는다고 6·25 남침이 없던 일이 되나? 이렇게 섶을 베고 누워 곰의 쓸개를 핥는 이들이 있는 한 결코 실현되지 못할, 빨갱이들의 가소로운 책동일 뿐이지.”

재단사의 말투에서 너무 곱씹어 덤덤해진 비통함이 느껴졌다.

“아.”

내 입에서 비명 같은 탄식이 새어나왔다.

“회사 건물이 국립예술대학인가 예술학교인가 차지가 됐을 때, 농반진반으로 부르던 캠퍼스에 진짜 캠퍼스가 들어섰다는 얘길 들었을 때만 해도 뭔가 희롱당하는 기분이었는데, 흔적도 없이 사라진 지금은 차라리 그때가 나았다 싶어지는군. 우리가 했던 일들이야말로 아트 아니었나. 무에서 유를 창조해내는.”

피셔맨 또한 비탄에 잠긴 목소리였다.

눈앞의 황량한 풍경이 내 안에 커다란 구멍을 만들었다. 인생이라는 책의 가장 중요한 대목이 뜯겨나간 듯한 상실감이었다.

“왕벚꽃잎들이 진저리치도록 붉었는데. 더운 김이 오르는 피처럼……”

내가 신음하듯 중얼거렸다.

회사 주차장 가장자리에 아름드리 왕벚나무가 경계선처럼 줄줄이 서 있었다. 꽃잎이 질 무렵이면 차를 일부러 벚나무 밑에 대곤 했다. 퇴근길, 꽃비를 흠뻑 뒤집어쓴 차를 출발시키면 시간을 되감듯 꽃잎이 원래 있던 곳을 향해 나풀나풀 날아오르며 저 유명한 하이쿠가 눈앞의 현실로 펼쳐졌다.


떨어진 꽃잎

가지로 되돌아가 바라보니

나비였네


이윽고 내 마음속에 또다른 하이쿠가 풀썩 떠오르기도 했다.


얼마나 이상한 일인가

벚꽃 아래 이렇게 살아 있다는 것은


그것은 일 년에 겨우 사나흘만 누릴 수 있는 호사였다.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우리 셋은 무덤 속 같은 침묵에 빠져들었다. 왕의 무덤이 아니라 죽어버린 한 시절을 깔고 앉은 느낌이었다.



“결국은 자네들이 찾아올 줄 알았네. 예전 담력 훈련 때처럼.”

침묵을 깬 건 재단사였다.

“담력 훈련?”

내가 물었다.

재단사가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일말의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눈빛, 실험 대상을 관찰하는 과학자의 냉담한 눈빛, 발가벗겨진 기분이 되곤 했던 바로 그 눈빛으로. 강산이 두 번 바뀌는 동안 희미해졌던 재단사의 편치 않은 존재감이 일순 되살아났다.

“오밤중에 천장산을 넘어와 여기 홀로 있어야 했지 않나. 다음 사람이 교대하러 올 때까지.”

피셔맨이 스타벅스에서처럼 나를 미심쩍게 쳐다보며 말했다.

그제야 기억났다. 정식 요원으로 발돋움하려 허리띠 버클이 떨어져나가도록 박박 기어야 했던 나날이.

“담력이 필요한 일인 줄 몰랐네. 불야성처럼 불을 밝힌 한밤의 캠퍼스에 눈길도 마음도 빼앗긴 채 조바심치곤 했거든. 언제쯤 저곳에서 어엿한 한몫을 나누어 맡게 될까. 내게 그런 날이 오기는 할까.”

여전히 나를 주시하는 재단사 때문인지 괜히 변명조가 되고 말았다.

“난 이 무덤 저 무덤 번갈아 앉아 있었네. 젖통도 한쪽만 편애하면 짝짝이 되지 않나.”

피셔맨이 담배 연기 속에서 잡담을 나눌 때처럼 느슨한 미소를 머금으며 말했다.

“젖통이 뭔가. 못 배운 애들처럼.”

내가 기다렸다는 듯 한마디했다.

오래전부터 피셔맨의 그런 경박한 농담이 싫었다. 나랏일 하는 사람으로서 갖추어야 할 최소한의 품격이라는 게 있지 않나. 현역이든 퇴역이든.

“그럼 배운 분들은 뭐라고 부르나?”

피셔맨이 발끈했다.

“그런 뜻이 아니라 너무 날것의 언어에 귀가 체할까봐.”

“제 머리를 넣어둘 집이 있는 자는 빼어난 머리통을 갖게 되고, 머리 집도 없으면서 자지 집만 찾는 자는 온몸에 이가 끓게 된다. 『리어왕』 3막 2장.”

재단사가 불쑥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대본을 집필할 때마다 그러더니, 괴팍한 버릇은 여전했다.

음욕만 좇는 삶을 경계하는 구절인데도, 재단사가 자기 손을 들어줬다고 여기는지 피셔맨은 득의만만한 표정을 지었다.

“자네가 셰익스피어는 아니잖나.”

나도 호락호락 굽히기 싫었다. 시도 때도 없이 온갖 책 구절들을 인용하는 재단사의 허세도 재수없었고.

“셰익스피어는 남근, 성기, 음경, 거시기, 뭐 이런 어휘를 몰라서 자지라고 했겠나? 때론 직설적인 게 가장 비유적이고 저잣거리가 가장 고상할 수도 있는 법이야. 아트의 본질이 무엇인가? 억압과 터부에 맞서는 자유 아닌가. 우리가 조국의 적화를 막으려는 뜻도 그것을 지키기 위함이지 않나. 다 좋은데 퍼댄틱한 게 유일한 흠이야, 김감독은. 셰익스피어는 되지만 나는 안 된다는 식의 사대주의는 차치하고.”

피셔맨의 자가당착에 할말을 잃고 말았다. 김작가는 테일러라는 단어를 몰라서 재단사라는 코드 네임을 내버려뒀을까. 게다가 현학적이면 현학적이지 퍼댄틱은 뭔가 김배우, 사대주의도 아니고. 보기 좋게 카운터펀치를 날리고 싶었지만 재단사의 입술이 실룩대는 걸 감지한 나는 좀전의 실수를 만회해보라는 뜻에서 회심의 반대 증거를 잠시 접어두었다.

“나도 담력 훈련 같은 건 필요 없었네. 내가 두려웠던 건 교대자가 너무 빨리 오는 거였지. 여기 누워 있으면 왠지 편했거든. 비웃는 거냐고 시비 거는 사람도 없고, 한때 왕국을 다스렸던 자조차 잠자코 있었으니까. 왕좌에 앉아 있던 시절이라면 무엄하다며 나머지 입꼬리마저 찢어 올리는 형벌을 내렸겠지. 웃지 않는 불란서 작가가 쓴 소설 『웃는 남자』처럼.”

재단사가 왼쪽 입꼬리를 끌어올리려 애쓰며 말했다. 그럴수록 반대쪽 입꼬리만 가파르게 올라가 더 부자연스러운 얼굴이 되었다.

재단사가 빅토르 위고를 언급해서였나. 문득 읽다 말아야 했던 원고에 생각이 미쳤다.

“아직 눈이 멀지 않아 어쩔 수 없이 보게 되었네만, 새 책을 집필중이더군.”

내가 슬그머니 말머리를 돌렸다.

“새 책?”

재단사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입장권을 끊어야 되나 싶어 매표소에 들어갔더니 사람은 없고 편지지만 놓여 있지 뭔가. 플랜 A와 플랜 B가 철로의 두 선처럼 나란히 전개되는 책이더군.”

“아, 그거…… 손님도 거의 없는 매표소에 앉아 있기 무료해서 끼적여본 소설인데.”

뜻밖이었다. 일선에 복귀하는 날을 대비해 미리 써두는 대본이라고 할 줄 알았는데. 메피스토펠레스에게 영혼이라는 말캉말캉한 것을 판 파우스트마냥 문학청년의 순진한 꿈 같은 건 탯줄처럼 깊이 묻어버린 재단사 아니던가. 그런데 자연스런 호기심을 가로막는 알 수 없는 저항감은 뭘까.

“소설을 썼다고? 자네가? 진짜 소설을?”

피셔맨이 말꼬리를 높였다. 공정치 못하다는 투였다. 얼굴만큼이나 뭘 감추지 못하는 피셔맨의 목소리를 듣고서야 나는 마음속에 인 저항감의 정체를 깨달았다. 침술로 돈을 긁어모으는 피셔맨이 할 소리는 아니었지만.

알 수 없는 저항감의 정체는 열패감이었다. 나만이 특별한 능력을 썩혀왔다는, 아니 그런 능력 자체를 잊고 살아왔다는.

“소설은 무슨.”

그러면서도 재단사는 싫지 않은 기색이었다.

“스토리가 어떻게 되는데?”

피셔맨이 호기심 가득한 목소리로 물었다.

“왕년의 정보기관 대본쟁이가 목구멍에 드리운 거미줄을 걷어내려 알바를 하게 되네. 보이스 피싱을 위한 대본.”

“보이스 피싱이라고? 그놈들은 내 담당인데.”

피셔맨이 흥분해서 떠들었다.

“한번은 손주를 데리고 있으니 천만원을 부치라더군. 애 이름이랑 학교까지 대면서. 물론 숨소리만 들어도 거짓말이었지. 아들이나 며느리한테 전화하라고 그랬어. 내 돈은 걔들이 다 가져갔다고. 아들 전화번호가 어떻게 되냐고 질척거리길래 손주 놈한테 물어보라니까 다짜고짜 쌍욕을 퍼붓다가 뚝 끊더구만. 불쌍한 새끼, 하필이면 인간 거짓말탐지기에게 걸리다니. 눈앞에만 있었어도 평생 공손한 말만 쓰도록 똥구멍에 침을 몇 대 놔줬을 텐데.”

재단사는 피셔맨의 얘기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말을 이었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이번에도 점과 점을 연결하는 일이야. 빨갱이라는 점을 간첩이라는 점에 잇대던 본업과 마찬가지로, 입금 포인트와 인출 포인트를 연결시키는 건 목소리와 믿음이지. 두려움이라는 미끼로 뭉칫돈을 낚아올리는 안정감 넘치는 보이스. 실은 믿고 자시고 할 것도 없네. 두려움은 현실이 되려는 속성으로 가득차 있거든. 빨갛게 타오르려는 욕망으로 시커먼 석탄처럼.”

흥미로운 발상이었다. 뒤가 궁금해 죽은 목숨을 하룻밤 더 살려둘 만큼은 아니었지만. 삐뚜름한 입이 자아내는 현란한 씨줄과 날줄에 귀를 쫑긋 세우면서도 또다시 밀려드는 저항감을 어쩔 수 없었다. 아무리 전직이래도 국가정보기관 요원이 모양 빠지게 보이스 피싱이라니. 차라리 옛 정보기관 터에서 왕의 무덤지기 노릇하는 현실이 더 소설적이지 않나. 그런데 심심파적으로 써본 소설이라는 말은 사실일까.

재단사 특유의 비웃는 듯한 표정 때문인지 오래전 일 하나가 떠올랐다.

문인 간첩단 사건.

그것은 언론에 던져준 제목이었고 캠퍼스 지하 이층 문서보관실(명예의 전당이라 불렸다)에 보관된 파일 표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타란툴라.

유신 반대 작가 시국선언을 주동한 빨갱이들을 간첩으로 엮은 공작이었다. 명예의 전당에 오른 다른 많은 공작들처럼 그 역시 그분 작품이었다.

“흔히 이야기를 직조한다고 표현하지. 거미줄처럼 촘촘한 서사 어쩌고저쩌고. 그래, 작가라는 사람들은 거미 같은 존재야. 뒷구멍으로 끊임없이 뭔가를 뽑아내지 않나. 자음과 모음이든 씨줄과 날줄이든. 개중엔 독을 품은 거미들이 있어. 그런 개체들은 무리에서 하루속히 격리시켜야지. 모든 거미들이 독거미로 오해받기 전에.”

타란툴라는 치명적인 대형 독거미다. 우리는 독거미, 아니 시국선언 주동자들이 발표한 글을 이잡듯 뒤져 미심쩍은 구절을 찾아냈다. 자택, 근무처, 지인, 친척 가리지 않는 압수수색으로 미공개 원고는 물론 편지와 학창시절 일기장까지 현미경을 들이댔다. 불온한 표현만으론 부족했다. 그때도 핵심 증거는 자백이었다. 조총련 사업가로부터 비밀 자금을 받아 체제 전복 음모를 꾸몄다는 자백.

피셔맨의 침을 맞고 하나같이 술술 불었다. 하지만 자백 영상을 마주하는 모습은 장르마다 천차만별이었다. 시인들은 눈만 껌벅거리거나 말없이 눈물짓기 일쑤였고 비평가들은 앞뒤가 안 맞는 부분을 집요하게 따지고 들었다.

소설 쓰는 인간들은 좀 달랐다.

“구상중인 소설 얘기요.”

“없는 얘기를 지어내는 게 업이잖소.”

눈 하나 깜짝 않고 둘러댔다. 얼굴 두껍기가 가히 대하소설이었다.

설마 재단사도? 소설 운운은 진실을 감추려는 역정보일까. 역정보로 감추려는 진실은 뭘까. 일종의 금단현상일까. 보이스 피싱을 가장한 공작이든, 보이스 피싱을 활용한 공작이든 조간에 실제 사건으로 실릴 대본을 쓰고 싶었는지 모른다. 옷 벗은 뒤로도 손에서 침을 놓지 못하는 피셔맨처럼.

어쩌면 재단사는 회사에서 잘리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과거의 영광이 깃든 이곳에서 예전같이 공작을 위한 대본을 집필하고 있는지도. 완전히 불가능한 얘기는 아니다. 생각해보니 국가가 관리하는 사적지에서 어울리지도 않는 경비 일을 하고 있는 것부터가 수상쩍었다. 누군지 확인할 길은 없지만, 자리를 보전하려 회사가 원하는 무언가를 넘겨준 자들이 있다는 건 안다. 재단사야말로 위험한 유형 아닌가. 어디부터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인지 모를 이야기로 변절조차 능수능란하게 합리화할 수 있는. 실제로 그런 부서가 있다는 얘기를 듣기도 했다. 공식 직제표에 노출되지 않는 팀, 요주의 전직들을 관리하는 비밀 부서가.

그런 식으로 오리발 내밀던 소설가들에겐 동료들의 자백 영상을 들이댔다. 듣도 보도 못한 창의적인 욕지거리를 쏟아내며 방방 뛰긴 했지만 종내는 자포자기 상태가 되었다. 그래도 뻔뻔하게 버티는 자들에겐 몰래 찍은 가족들 사진을 내밀었다. 버스 정류장에 넋이 나간 얼굴로 서 있는 아내, 교복이라는 보호색에 섞여 쫓기듯 하교하는 아들, 겁에 질린 표정으로 경찰서를 기웃거리는 노모. 최후의 한 방에도 무릎 꿇지 않는 독종들이 있었다. 그런 자들은 고이 풀어주었다. 더 잘 먹이고 더 잘 재운 뒤 새 옷, 새 구두 차림으로 내보냈다. 그다음은 세상이 알아서 했다. 멀쩡한 모습으로 돌아간 이들은 더 큰 배신자로 낙인찍혔다.

자기도 모르게 유다가 된 이들은 결국 제 발로 걸어와 자백 진술서에 지장을 찍었다. 정신이 이상해지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경우도 있었다.

만에 하나 재단사가 유다라면 자칫 그분까지 위태로워질 수 있었다. 지금 확실히 말할 수 있는 한 가지는 우리 중에 배신자가 있다면 그게 누구든 미쳐버렸거나 자살한 자들을 부러워하게 되리라는 것이다.

“소설 제목은 뭔가?”

마음속에 싹튼 의심을 들키지 않으려고 일부러 비위 맞추는 질문을 던졌다.

“낚시에 좋은 목소리.”

낚시와 목소리. 제대로 된 낚시꾼이라면 뚫린 입도 꿰매고 앉아 있어야 한다. 어울리지 않는 대극의 기묘한 어울림이라. 1면 헤드라인을 가래떡 주무르듯 하던 감각은 아직 죽지 않았다 이건가.

“나쁘지 않군.”

반은 진심이었지만 반은 의도적 칭찬이었다. 타고난 재능을 망치는 건 교만이라는 달콤한 독이니까. 교만에 빠지면 뱀조차 헛다리짚게 되는 법이니까.

“과찬의 말씀.”

여전한 반쪽짜리 미소. 교만이라는 독에도 재단사의 나머지 반은 결코 웃지 않을 것 같았다. 진정한 포커페이스란 이런 게 아닐까. 무표정한 얼굴보다 늘 반만 웃고 있는 얼굴.

“임프레시브한 스토리군. 오래전부터 궁금했네만, 타이틀은 언제 정하나? 첫 센텐스를 시작하기 전인가, 라스트 센텐스까지 다 쓴 뒤인가?”

피셔맨이 끼어들었다.

미심쩍은 원고를 나랑 같이 보았다면 달랐을까. 인간 거짓말탐지기는 아무런 낌새도 못 챈 눈치였다. 재단사의 용문혈에 침만 꽂으면 흑백이 가려지겠지만 침을 꺼내기도 전에 온 얼굴에 써붙일 의심을 생각하면 피셔맨 귀에 함부로 속달거릴 수 없는 일이었다.

“제목은 씨앗 같은 거야. 이야기 한 편의 DNA가 고스란히 들어 있는. 글을 다 쓰고 제목을 지었다는 말은 씨앗도 뿌리지 않고 열매를 땄다는 소리나 다름없어. 도토리, 호박씨, 해바라기씨. 좋은 제목이란 장차 발현될 생명의 특징을 정확하게 예언하는 제목이지.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수십 년이 지난 후에도 어떤 이야기였는지 단박에 환기시키는 그런 제목. 알록달록 눈깔사탕 같은 제목이 아니라. 눈깔사탕을 땅에 심고 백날 물을 줘보게. 알록달록 눈깔 싹이 올라오나.”

왕의 무덤은 다시 고요해졌다. 침묵 속에서 자문하는 나를 발견했다.

가면 속의 얼굴. 언젠가 꼭 쓰리라 벼르고 있는 내 자서전의 제목. 자서전을 써볼까 생각하자마자 떠오른 그 제목은 씨앗일까 눈깔사탕일까.

이번에도 침묵을 깬 쪽은 재단사였다.

“내 근황이 궁금해 행차하지는 않았을 텐데?”

나와 피셔맨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서로를 쳐다보았다. 잠시 잊고 있던 대의 앞에서 사소한 취향 차이는 바람에 날리는 먼지에 불과했다. 나는 피셔맨의 부당한 지적에 대한 섭섭함을 접고 대범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본모습을 숨기고 있든 우리 모두는 같은 가면 뒤의 존재들이었기에.



귀부인의 초상.

몇 분 전 열정적으로 공개한 창작 루틴대로, 재단사는 디테일을 짜기에 앞서 새로운 대본의 제목부터 정했다. 그 씨앗이 현실이라는 부엽토를 만나자 정교한 구도가 서고 풍부한 색채가 입혀지더니 마침내 한 폭의 그림이 완성됐다. 피셔맨에게 용건을 듣고 재단사가 즉석에서 설계해낸 작전의 키워드는 문자 그대로 한 점의 그림이었다.

“빨갱이 화가 그림이 국립현대미술관에 걸려 있다고?”

나는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맞네. 비쩍 마른 중년 여인네들 상반신만 주구장창 그려대던 화가. 우리한테야 취리히 간첩단 수괴였지만. 그 사건으로 오히려 국제적 스타가 될 줄이야. 소더비에서 한국미술사상 최고 낙찰가라니, 말이 되나.”

피셔맨이 씁쓸한 얼굴로 말했다.

흥분을 가라앉히고 냉정하게 생각해보니, 그 그림만큼 그분과 연이 깊은 사물도 없었다. 정확히는 악연이겠지만.

정치적 이유로 숙청될 때 빨갱이들이 그분에게 덮어씌운 죄목은 부정 축재였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이용해 마구잡이로 재산을 불렸다는 고전적인 시나리오. 처남과 동서 명의로 계약된 두 채의 아파트가 모함의 주재료였다. 그것은 우리가 누군가를 여론재판정에 거꾸로 매달아야 할 때, 승산을 백 퍼센트로 끌어올려야 할 때 애용하던 기법들 중 하나였다. 조각낸 사실들 사이사이 교묘하게 끼워 넣은 거짓으로 사람들의 시기심과 박탈감을 건드려 삶 전체를 부도덕한 것으로 몰아가기. 이 정교한 올무에 걸려들면 누구라도 재판이 시작되기도 전에 이미 사회적 사망선고를 받게 마련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두 아파트가 안가라는 사실은 고의적으로 가려지고 계약서에 빌려 쓴 이름만 부각되었다. 음지에 숨겨도 모자랄 회사, 회사 대표, 회사 실무자 명의로 사들인 집을 어찌 안전가옥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라는 진실이 입막음된 자리에는 재건축까지 노린 희대의 착복이라는 선동만 난무했다. 압구정, 한남동, 한강 뷰, 시세차익…… 부동산에 대한 탐욕을 도화선 삼아 퍼부은 십자포화에 비하면 인테리어 공사 업체가 동생 소유였다 정도는 취향 따라 생략해도 그만인 향신료에 불과했다.

압구정이나 한남동만 아니었다면 주홍 글씨의 농도가, 재판 결과가 달랐을까. 차명 계약은 안전가옥 취득시 피치 못할 관행이었다는 항변은 왜 하필 압구정, 한남동이어야 했느냐는 결론이 정해진 반론의 벽에 부딪혔다. 멧돼지가 떼로 출몰해도 전혀 이상할 것 같지 않은 외딴 산장, 언제 날아올지 모를 핵미사일보다 검게 날리는 석면 가루가 더 위험해 보이는 지하 벙커가 과연 안전한 곳일까.

“쥐뿔도 모르면서 안전가옥에 대한 클리셰만 잔뜩 심어놓은 얼치기 영화감독들 탓이지.”

내 머릿속 나에게 말을 걸듯 피셔맨이 입을 뗐다.

“치안도 나이스, 리버 뷰가 심신 안정에도 굿, 저층 아파트라 대피도 노 프라블럼, 이보다 퍼펙트한 입지가 어디 있어? 그뿐인가. 유사시 쾌속정이나 헬기를 띄우려 해도 리버사이드지.”

“다 알면서도 대중의 고정관념을 악용해 선동하는 능력만큼은 빨갱이들이 타고난 것 같아.”

“때깔로 보나 대외비인 안가 정보로 보나 회사에서 작성된 대본이었던 것 같아. 워터마크야 찍혀 있지 않았겠지만.”

햇살이 부신 듯 피셔맨이 눈을 가늘게 뜨며 뇌까렸다.

설마 존폐의 기로에 내몰린 조직이 쥐어짜낸 협상 카드? 피셔맨의 견해에 동의하고 싶지 않았다. 바람이 멎었다고 돛대를 부러뜨려 노를 만드는 법은 없다. 조직 전체가 역당의 불명예를 뒤집어써야 했던 10·26 때도 북한 동태부터 파악하러 이리 뛰고 저리 뛰던 분 아닌가. 오천여 직원 모두가 회사의 명운과 자신의 안위가 어찌되나 전전긍긍하던 그 순간에도. 조국과 회사에 바친 그분의 충정을 백만 분의 일이라도 헤아린다면 그렇게는 못한다. 사감을 품은 누군가의 배신이라면 또 모를까.

앞에 놓인 가시밭길을 예견했던 걸까. 97년 대선 출구조사 발표를 기다리던 그분이 소주잔을 기울이며 말했다.

“나를 배반하는 자가 나온다면 자네들 중 하나겠지? 목사의 열두 제자들. 무덤가의 서커스단.”

상황실 텔레비전 앞에 모여 있던 우리는 어리둥절한 얼굴이 되었다. 경선에서 패배하고도 집권당을 뛰쳐나가 독자 출마한 후보를 한바탕 성토한 뒤이긴 했지만 극비리에 입수한 미발표 여론조사는 집권당 후보의 승리를 예측했기 때문이다. 1.5퍼센트라는 아슬아슬한 리드였지만 빨갱이들에게 나라가 넘어가는 걸 막았다는 자축의 분위기였으니까.

“저는 절대로 아닙니다.”

누군가 소리쳤다.

“그래, 자네는 첫닭이 울 때까지 두 번만 부정할 것 같군. 나는 그런 사람 모릅니다, 나는 그런 사람 모릅니다.”

여기저기서 키득거리는 소리가 새어나왔다. 한순간 서늘해졌던 공기는 그분의 농담 한마디에 다시금 가벼워졌다.

그럼에도 잔마다 소주를 따르며 대사를 읊는 그분 목소리는 어딘가 모르게 진지했다.

“받아 마셔라. 이것은 나의 피. 너희의 죄를 용서해주려 흘리는 계약의 피다. 잘 들어두어라. 아버지의 나라에서 너희와 함께 새 소주를 마실 그날까지 나는 결코 알곡으로 빚은 것을 마시지 않겠노라.”

성경대로면 즉흥극은 찬미의 노래를 부르며 올리브산으로 올라가는 결말이어야 했으나 현실은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적막뿐이었다. 알다시피 화면에 뜬 출구조사 결과는 정보 보고와 정반대였다. 집권당 후보가 간발의 차로 밀렸다. 각하의 서거 소식을 들었을 때처럼 내가 알던 세상이 무너져내리는 느낌이었다. 인민군이 다시 쳐들어왔대도 그만큼 놀라진 않았으리라. 개표 결과는 다를 수 있다고 누군가 울부짖듯 소리쳤지만, 당선 확정 자막이 뜨기도 전에 우리는 서로의 시선을 외면하며 뿔뿔이 흩어졌다.

베들레헴. 회사에 쥐새끼 같은 첩자가 있을 경우를 대비해 마련해둔 비공식 안가. 우리들만 아는 최후의 은신처로 피해 있던 그분이 체포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 예언을 떠올리지 않은 사람이 있었을까. 모두가 가슴 깊이 품고 있었지만 아무도 입 밖에 낼 수 없었던 끔찍한 예언.

나를 배반하는 자가 나온다면 자네들 중 하나겠지.

그리고 더 끔찍한 의심. 입을 다물수록 무시무시한 확신이 되어가는 의심.

“김작가 생각은 어떤가? 대본이라면 누구보다 할말이 많을 텐데.”

이상하리만치 침묵을 지키는 재단사에게 내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나는 아직도 온 힘을 다해 지우고 싶었다. 그분을 사냥개들에게 넘긴 자가 우리 가운데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그분의 체포 소식 앞에서조차 감정 한 톨 찾아볼 수 없던 재단사의 모습까지.

그러고 보니 충격적인 출구조사 결과 앞에서 가장 먼저 몸을 뺀 것도 재단사였다. 난파선에서 앞장서 탈출하듯. 그분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데도.

못 들은 척하는 걸까. 재단사는 차창 밖만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김작가?”

“뭐라고 했나?”

재단사가 여전히 생각에 잠긴 눈빛으로 웅얼거렸다.

“무슨 생각을 그리 골똘히 하고 있나?”

피셔맨이 물었다.

“그 그림, 진짜일까 가짜일까?”

입 달린 자라면 한마디씩 했던, 나라를 벌집처럼 시끄럽게 만들었던 논란을 재단사가 새삼 끄집어냈다. 불편한 화제에서 벗어나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위기의 순간 그분이 그랬듯.



“억울하다. 십원 한푼 사적으로 쓴 일이 없다. 이 땅에 정의가 살아 있다면 나의 무고함이 백일하에 드러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포토 라인에서 카메라 플래시 세례를 받으면서도 그분은 당당함을 잃지 않았다.

심문을 받던 중 손목까지 그었지만 무위로 돌아갔다. 자해 직전 시켜 먹은 메뉴가 곰탕이었다는 데는 이견이 없던 신문들이 자해 도구에 관해선 소식이 엇갈렸다. 연필 깎는 칼이라고 전한 신문도 맥가이버 칼이라는 신문도 우리는 믿지 않았다. 그분은 깡통 따개로도 정확히 동맥을 그을 수 있는 분이었다.

그분이 응급실로 실려가는 바람에 토끼몰이식 여론재판도 주춤했다. 병원이라는 곳에선 그럴싸한 그림이 나오지 않았다. 우연찮게(미지의 설계자에겐 우연이 아니겠지만) 병석의 그분을 뉴스 한복판으로 다시 끄집어낸 것은 먼지털이식 압수수색 과정에서 나온 진짜 그림이었다. 몇십 년 만에 뭉친 우리를 미술관이라는 추억의 접선 장소로 향하게 만든 물건. 그것이 저 요란했던 귀부인의 초상 연작 중 하나였다.

어느 순간 부정 축재의 상징이 돼버린 그 그림은 본래 압구정 안가 거실에 걸려 있었다.

“일찍이 공무수행 과정에서 합법적으로 득하게 된 물품이다. 안가에 잠시 걸어뒀는데 강변이라 습도가 높았다. 완벽한 전시 공간을 찾을 때까지 임시로 사저에 보관하고 있었다. 창고에 넣어두지 않고 거실에 걸어둔 것은 거기가 볕이 스며들면서도 직사광선은 들이치지 않는, 음지 바른 곳이었기 때문이다.”

문제가 된 그림의 출처와 그것이 자택으로 옮겨진 이유를 그분은 공무원답게 해명했다. 이보다 더 일목요연한 설명이 가능할까. 그분의 워딩은 받아쓰기만 해도 완벽한 보고서가 될 만큼 깔끔하기로 정평이 나 있었다. 하지만 빨갱이들은 압구정 아파트가 안가라 쳐도, 돌려줄 생각이었다는 한마디에 도둑질이 없던 일이 되느냐며 횡령을 기정사실화했다. 어물쩍 넘어갈 생각 말고 취득 경위를, 압류품이라면 국고에 환수되지 않은 이유를 육하원칙에 입각해 밝히라는 압박도 잊지 않았다. 요구에 응하자니 입수 경위가 문제였고 가만히 있자니 횡령을 자인하는 꼴이었다. 옴짝달싹할 수 없는 덫에 걸린 형국이었달까.

사실 입수 경위라면 누구나 짐작할 수 있었다. 국제사회는 물론 국내 예술계와 학계까지 발칵 뒤집어놓은 취리히 간첩단 사건. 국제무대에서 활동하던 예술가, 학자 열여섯이 체포되어 국내로 압송된 사건. 그 불순분자들 중에서도 핵심인물의 작품이었으니. 그분이 깔끔하게 밝힌 대로, 수사 결과 발표 당시 언론에 공개하지 않은 압수품들 중 하나였으리라. 주제네바 북한 대표부가 대남 적화 사업 유럽 거점으로 건재한 상황에선, 유럽에 체류중인 인사들을 간첩으로 포섭하려는 시도가 계속되는 시점에선 사건의 전모를 공개하기 어려웠을 터. 그때 이미 주목받는 화가였으니 어쩌면 공작금 조로 오간 증거물일 수도 있었다.

사건 당시는 얼마짜리였는지 알 수 없지만 수억대라던 그림의 값어치는 보도경쟁이 치열해질수록 앞자리를 다음 숫자로 거푸 갈아치웠다. 압구정과 한남동의 두 아파트를 합한 금액을 추월할 때까지. 아파트가 부르는 게 값이라면 그림은 머릿속에 그리는 게 값이었다. 피고가 된 그분 입장에선 횡령액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기막힌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사실은 위작이다. 수사의 일환으로 전문가 감정을 의뢰했는데 진품이 아니라는 의견이었다.”

그분다운 묘수였다.

달이 아니라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을 보게 하라. 지저분한 저 손가락의 주인은 대체 누구인가.

과연, 물타기라는 반격이 없진 않았지만 뉴스의 초점이 위작이란 두 글자로 옮겨가는 걸 막지는 못했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고가의 그림이 진짜냐 가짜냐, 이보다 군침 도는 소재가 또 있을까. 사람들은 반전의 드라마를 원했다. 어느새 백억대를 돌파한 그림이 실은 가짜라는 드라마.

“이 작품만 유독 눈동자에 총기가 덜하다.”

“목걸이를 걸친 전례가 없다.”

“화가 특유의 대상에 대한 애정이 느껴지지 않는다.”

전문가들의 견해도 위작으로 기울어갔다. 본래 똑같다는 걸 입증하기보다 다르다는 걸 지적하기가  더 쉬운 법이니.

반전은 한 번으로 그치지 않았다. 파리에서 산소호흡기를 쓰고 누워 있다던 화가가 유언처럼 남긴 한마디 때문이었다.

“내 새끼 맞아.”

가족도 못 알아볼 만큼 병세가 위중하다는 반론을 뚫고 진품이라 믿는 사람들이 급격히 늘었다.

“눈동자의 총기라는 이 연작의 전매특허는 명불허전이다.”

“장신구의 과감한 채택으로 신선한 변화를 시도했다.”

말을 백팔십도 바꾸는 전문가도 속출했다.

다 떠나서 그린 사람이 맞다는데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여론이 다시 뒤집히고, 해당 간첩단 사건까지 화제에 오르면서 그분은 간첩단 조작의 주범이라는 비난까지 뒤집어써야 했다. 곤경에 빠진 그분을 구한 건 아무도 예상치 못한 세번째 반전이었다.

소모적 논쟁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 프랑스에 의뢰해놓은 감정 결과가 나온 것이다.

“다른 연작들을 그린 사람과 동일인이 그렸을 확률은 0.00002퍼센트다.”

최첨단 나노 분석 기술로 내린 판단이 진실을 다시 미궁에 빠뜨렸다.

“이 그림의 모델에서는 귀티를 찾아보기 어렵다. 위작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끝이 보이지 않는 지루한 공방이 헤드라인에서 멀어질 때쯤, 논란은 모델을 둘러싼 가십이라는 새 연료로 다시금 달아올랐다. 과연 초상화 주인공이 누구냐는 것. 정재계부터 연예계까지 내로라하는 여성들이 줄줄이 입방아에 올랐다. 초상화 주인공과 화가를 엮는 황색 기사들까지 넘쳐났는데, 후보에 오르지 못한 사람들이 오히려 아쉬워했다는 후문마저 돌았다. 귀부인이라서 모델이 되었다기보다 한국이 낳은 세계적 화가의 캔버스 앞에 앉는다는 사실 자체가 귀부인이라는 증표로 여겨진 분위기 탓이었다. 미용실마다 철 지난 올림머리가 다시 유행했으며 모델이 걸친 이국적 목걸이와 도트 무늬 블라우스는 없어서 못 팔 지경이었으니까.

“명색이 압구정인데 이미테이션이 걸려 있었을 리 있나?”

피셔맨이 자신 있게 말했다.

“자택에도 안 걸어뒀겠지. 그분 완벽주의 몰라? 중앙 정원 이끼도 일본에서 공수해온 분이야. 야마토 후데고케라는 품종이었지. 어떤 분인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위작 카드를 꺼내들 땐 정말이지 소름이 돋더군. 신의 암수暗數를 보는 느낌이었달까. 위작이다 한마디에 판이 완전히 바뀌지 않았나.”

내가 맞장구를 쳤다.

정작 화제를 이쪽으로 돌린 장본인만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그림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모르겠지만,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건 확실하네.”

한참 만에 입을 뗀 재단사의 말은 뜻밖이었다. 그림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모르겠다니. 피셔맨과 나를 무안하게 만든 건 둘째 치고, 면도날처럼 명쾌한 사람답지 못한 애매한 태도라니.

“우리를 목사에게 연결시켜줄 그림인 건 더 확실하지.”

재단사가 조수석에 앉은 내 어깨를 두드리며 덧붙였다.

꿔다놓은 보릿자루처럼 무뚝뚝하던 재단사의 어색한 제스처에 절로 움찔하는 어깨를 어쩌지 못했다. 늘 치켜올라가 있는 한쪽 입꼬리가 유난히 비웃음으로 느껴진 것도 내 머릿속에 똬리를 튼 무서운 의심 때문이었을까.

룸 미러 속 반쪽 미소를 뚫어져라 들여다보는데 차가 속도를 줄이는 게 느껴졌다.

어느새 국립현대미술관이 눈앞에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