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회

기린아, 기린아


고려 목종 때 지어졌다는 백린사白麟寺, 그곳에는 두 개의 전설이 내려오고 있었다. 둘 가운데 더 오래된 하나는 절의 명칭에 관한 것. 약수로 이름난 천불산에서도 얼음골의 물은 옥황상제가 마신다는 옥수에 비견될 만큼 청량했다. 하루는 전설의 동물 오색 기린 한 쌍이 목을 축이러 내려왔다 아름다운 풍광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금성이 새벽하늘에 뜨기 전에 수컷은 떠났지만, 미처 따라가지 못한 암컷은 털이 새하얗게 변해 한 그루 백린송이 되었다. 

나머지 하나는 사명대사와 얽힌 전설이었다. 일본인들의 계략으로 통구이가 될 뻔했던 사명대사. 의식이 혼미해진 순간 사슴인지 말인지 용인지 모를, 그 모두를 합친 듯한 존재가 홀연히 나타나 혀로 얼굴을 핥아준 덕에 사명대사는 정신을 놓지 않을 수 있었다. 며칠 뒤 찾은 귀 무덤 앞에서 불현듯 그때의 감촉이 되살아났다. 다시는 못 볼 피붙이를 끌어안고 살을 부비듯 서글프리만치 부드럽던 감촉. 벌건 죽음의 아가리 속으로 떨어지기 일보 직전, 신령한 기린의 형상으로 나타난 건 귀 무덤의 혼백들이었던 것이다. 그들을 기리기 위해 사명대사는 여생을 백린사에 머물렀다. 포르투갈 신부의 목걸이도 자연스레 그 절의 보물이 되었다.

알려지진 않았지만 백린사는 또다른 전설의 무대이기도 했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던 주사파 수괴를 그곳에서 찾아낸 건 우리였다.

“영남 알프스라더니 뻥은 아니었네. 이런 첩첩산중에 숨어 머리도 밀고 가사장삼까지 걸치고 있었으니 석 달이 넘는 공개수배에도 냄새조차 못 맡을 수밖에. 김감독 아니었으면 까맣게 몰랐겠지.”

운전대를 잡은 피셔맨이 목을 길게 빼고 전방을 살피며 말했다.

백린사를 찾아가는 길에는 함박눈이 쏟아붓듯 내리고 있었다. 백린사라는 이름에 눈까지 더하니 하얗게 변한 소나무숲에서 전설 속 동물이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눈 때문인가, 처음 와보는 곳 같아.”

내가 대꾸했다.

“처음 아닌가?”

“주사파 넘버원 잡으러 헬기 타고 왔었지. 그땐 단풍으로 불타오르던 가을이었고.”

“그 헬기에 자넨 못 탔잖나. 부장, 1차장, 2차장, 윗대가리들이 다 나서는 바람에 자리가 없어서.”

그제야 떠올랐다. VIP 집무실로 일일 보고가 올라가던 월척이라 모두 체포현장에 있고 싶어하던 장면이. 아련해지던 기분이 차갑게 식는 느낌이었다. 라이카라는 코드 네임도 이제는 반납해야 하는 걸까. 어떻게 그 기억이 가물가물할 수 있을까. 이륙 직전 헬기에서 내리던 순간의 황당함과 좌절감이 불에 덴 자리처럼 생생하게 남아 있는데. 부장이나 1차장이야 그렇다 쳐도 국내 공작 파트 책임자까지 나설 줄이야. 평양에서 열린 세계청년학생축전에 남한 대학생 대표를 파견했으니 엄연히 해외영업부 수화물(검거 대상자를 가리키는 은어다)이었는데.

“사물의 혼을 타고 왔어도 오긴 온 거니까.”

재단사가 눈송이를 지우는 와이퍼처럼 무덤덤하게 말했다.

“재주는 자네가 넘었는데 대통령 표창은 헬기에 탄 윗대가리들만 받다니. 10·26도 그래서 난 거 아닌가. 삽교천 방조제 준공식 가는 각하 헬기에 경호실장만 태우고 중정부장은 못 타게 해서. 삽교천 찍고 KBS 당진송신소 개소식 가는 길인데 중정부장을 열외시키는 게 말이 돼? 그 송신소는 대북 심리전 방송의 기지였지 않나. 주사파 수괴 검거의 일등공신은 쏙 빼놓고 자기들만 헬기를 타? 타깃이 낌새를 채고 달아나기라도 하면 지들이 사물의 혼과 대화할 건가? 메이크 노 센스야. 다른 사람은 몰라도 목사는 그러면 안 되지.”

피셔맨이 자기가 당한 일인 양 핏대를 올렸다.

“그분이 대신 내리려 하니까 부장이 의아해하며 물었어. 누군데 김실장이 양보하느냐고.”

“그래서?”

“고향이 그쪽이라 근처 지리를 손금처럼 꿰는 직원이라고 하더군.”

“우리의 진짜 능력을 윗선에조차 비밀에 부쳤으니 둘러댈 수밖에 없었겠지. 내 대본에도 목사 이름만 오르지 않았나. 나는 유령 작가의 유령 작가였던 셈이지. 목사는 그것만이 우리를 지키는 길이라고 했지만.”

재단사가 차갑게 뇌까렸다.

그랬다. 우리의 특별한 능력은 그분과 우리만 알았다. 회사 인사 카드에 적힌 나의 주특기는 카메라로 찍은 듯한 기억력이었다. 사건의 맥과 혈을 짚어내는 예리한 분석력. 이것은 피셔맨의 카드에 적힌 내용이었고. 재단사는? 악마적인 기획력 대신 꼼꼼한 보고서 작성이라고 적혀 있었을 것이다. 말하자면 우리는 음지 속의 음지, 베일에 싸인 별동대, 회사의 심장부에 박힌 블랙 요원인 셈이었다.

“어쨌거나 타깃을 무사히 확보하지 않았나. 흥분하지 말고 운전에나 집중하게.”

말은 그리했지만 서운함이 전혀 없었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한 방울의 인정이라도 더 갈급했던 그분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으니 더더욱. 피치 못할 사정을 수긍하는 머리와 달리 딱딱하게 굳어가는 마음은 삼십 년도 더 지난 지금도 어쩔 수 없었다.

나는 담배에 불을 붙이고 차창을 조금 내렸다. 사위는 희끄무레하고 길은 험해지는데 눈발은 성겨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길은커녕 헤드라이트 불빛조차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다. 휴전회담이 막바지에 이를 즈음 지리산에서 패퇴한 빨치산 잔당이 최후의 거점으로 삼을 만했다. 알프스라는 명칭을 안긴 눈도 눈이지만 빈틈을 허락하자마자 살을 에어오는 냉기도 무시무시했다. 토벌군 총에 맞아 죽은 빨치산보다 얼어죽은 빨치산이 더 많았다는 말이 과장은 아닌 듯싶었다. 산봉우리는 드높고 골짜기는 깊었다. 산허리를 휘감아 오르는 길이 수월할 리 없었다. 피셔맨의 차에는 체인도 스노타이어도 준비돼 있지 않았으니.

“그때 그 시가 뭐였지? 주사파 넘버 스리가 다급히 삼키려 했던?”

피셔맨이 어느새 추억에 잠긴 목소리로 물었다.

주사파 넘버 스리가 인멸하려던 암호문은 영문과생들의 바이블인 『노튼 앤솔러지』라는 책에서 뜯어낸 습자지처럼 얇디얇은 종이 한 장이었다. 비록 제적당하기는 했지만 주사파 넘버원의 전공이 영문학이었다는 사실을 무심코 지나칠 그분이 아니었다. 라이카가 능력을 발휘해야 할 시간이었다.

사찰, 녹차밭, 그리고 하늘을 향해 길게 목을 빼고 있는 한 그루 흰 소나무……

녹차는 백린송과 더불어 이 사찰의 명물이었다. 녹차로 알려진 절도 여럿이고 신령스런 소나무가 시선을 끄는 절도 더러 있지만 둘 모두라면 여기뿐이었다.

“이 불모의 바위섬 고즈넉한 난롯가에 앉아 나이든 아내와 해로하는 왕으로 무위도식하며, 먹고 자고 욕심만 부리는 야만 족속에게 어울리지 않는 법이나 베풀고 있으니 별 쓸모 없는 삶이로다. 테니슨의 「율리시스」였네.”

재단사가 피셔맨의 아련한 물음에 도입부 암송으로 화답했다.

“아니, 월북을 지시한 대목 말이야.”

“내 목표는 해 저무는 그곳, 온갖 서녘 별들이 몸 씻는 곳 너머로 죽을힘 다해 항해하는 것. 혹시는 심연이 우리를 삼킬지도 모르나 극락도에 다다라 일찍이 알던 위대한 아킬레우스를 볼 수도 있겠지. 비록 잃은 것 많아도 우리에겐 아직 남은 것도 적지 않아. 저 옛날 천지를 들어 옮기던 힘은 사그라졌지만 그래도 우리는 우리로다.”

테니슨은 자신의 시가 극동의 한 나라에서 빨갱이들의 암호문으로 쓰일 줄 꿈엔들 상상했을까. ‘서녘 별들이 몸 씻는 곳 너머’는 서해상의 월북 경로를, ‘극락도’는 평양을, ‘아킬레우스’는 김일성을 뜻한다는 게 회사의 판단이었다.

“저 옛날 천지를 들어 옮기던 힘은 사그라졌지만 그래도 우리는 우리야.”

내가 마지막 구절을 가슴에 새기듯 되뇌었다. 잃었던 그분의 신뢰를 회복하는 계기였으니 내게도 잊을 수 없는 시였다.


  시간과 운명에 약해졌다 하나

  한결같이 영웅의 기개를 가진 우리.

  강력한 의지로 싸우고 추구하고 찾아내며

  결코 굴복하지 않으리.


「율리시스」의 마지막 연을 떠올리며 울컥한 건 내 기억력이 건재함을 확인해서만은 아니었다. 그 굳건한 다짐의 언어야말로 빨갱이들과는 거리가 먼, 정확히 지금 우리의 이야기였다.

“천지를 들어 옮기던 힘이 왜 사그라져. 아직도 이렇게 쌩쌩한데.”

피셔맨이 버럭 소리치더니 갑자기 운전대에서 두 손을 떼 허공으로 치켜들었다.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만세를 부르는 사람처럼.

차가 좌우로 비틀거렸다. 내가 본능적으로 운전대를 틀어쥐었지만 얼마 안 있어 차가 뚝 멈춰 섰다. 피셔맨이 브레이크를 밟은 줄 알았는데 엔진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시동이 꺼진 것이었다. 피셔맨이 연거푸 키를 돌려봐도 엔진은 묵묵부답이었다.

피셔맨이 차에서 내려 보닛을 들어올렸다. 나도 뒤따라 내렸다.

“뭐가 문젠가?”

“퍽! 하필이면 점프 해줄 차 한 대 없는 이런 데서 배터리가 나가다니.”

피셔맨이 인상을 잔뜩 구기며 말했다.

“보험사에 전화하게.”

“지랄! 휴대폰도 안 잡히네. 날 잡았네, 날 잡았어.”

눈밭이 된 도로 위에 피셔맨이 칵 하고 침을 뱉었다.

“전기뱀장어라면 가볍게 해결했을 텐데. 그 친구는 뭘 하고 있을까? 입버릇대로 전기도 안 들어오는 산속에 오두막 짓고 꿀벌이나 치고 있으려나?”

내가 코트 깃을 꼭꼭 여미며 말했다.

전기뱀장어라 불리던 요원이 있었다. 감전의 위험 때문에 함부로 악수도 못하는 친구였다. 피 대신 고압 전류가 핏줄을 채운 것 같던 그는 전기고문 담당이었다. 축전지며 전압계며 케이블이며 너저분한 도구도 필요 없이 고문의 증거도 남기지 않고 중요한 정보를 캐내곤 했다. 문제는 전압 조절이 뜻대로 잘 안 된다는 점이었다. 제구가 들쭉날쭉한 강속구 투수처럼 불안불안하더니 기어이 몇 차례 불상사가 터지고 나서는 자백 기술자라는 타이틀을 피셔맨에게 넘겨야 했다.

“의정부에서 치킨집 하고 있네. 전기 구이 통닭.”

재단사가 어느새 곁으로 다가와 말했다.

“전기세는 굳겠군. 그런데 그러고도 몸이 남아나려나?”

피셔맨이 제 농담에 만족한 듯 흐흐하고 웃었다.

“치킨집 하는 건 어찌 알았나?”

내가 재단사를 돌아보며 물었다.

“맛집 소개 블로그에 주인장 사진까지 올라왔더라고. 근처 동네라 검색하다 봤지. 한번 시켜 먹었는데 몸이 예전 같지 않은지 닭이 눅눅한 게 내 입에는 영 아니었네.”

재단사가 딱하다는 투로 말했다.

블로그 얘기는 정말일까? 그마저 요주의 전직들을 관리하는 비밀 부서의 일은 아니겠지.

“도보로는 얼마나 걸릴까?”

피셔맨이 희끄무레하게 겹친 능선들을 망연한 눈길로 바라보며 중얼거리더니 이내 패딩 점퍼 안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병뚜껑에 쇠사슬이 달린 삼백 밀리짜리 힙 플라스크였다. 피셔맨이 한 모금 들이켜고 내게 내밀었다. 병 주둥이에서 독한 위스키 향이 훅 풍겨왔지만, 한 모금 삼키니 부드럽고 달콤했다. 혀로 녹여 먹는 스카치 사탕처럼 목 넘김도 부드러웠다. 가슴 안쪽에서부터 훈훈한 기운이 실핏줄을 타고 온몸으로 번져가는 느낌이었다. 나는 재단사에게 힙 플라스크를 넘겼다.

“시바스리갈 십팔 년산이군. 아직도 이런 걸 마시나?”

재단사는 냄새만 맡고 돌려주었다.

“아직도라니? 각하와 마지막을 함께한 술인데. 한 모금 마셔보게. 심장에 난로를 켠 기분일 테니.”

“대장암이야.”

재단사가 술 이름이라도 대듯 말했다.

“뭐라고? 누가?”

“누군 누구야.”

“김작가, 자네가 대장암이라고?”

“항암 치료 받고 회복중이니 호들갑 떨 필요는 없네.”

무슨 말이든 건네야 할 것 같았지만 적당한 한마디가 떠오르지 않았다. 아내가 파킨슨병이라는 얘기를 들었을 때처럼. 어디선가 길을 잘못 들어 엉뚱한 미래에 와 있는 기분이었다. 플라자호텔 커피숍 맞선 자리에서 결혼을 결심한 이유는 분명했다. 이 여자와 가정을 일구면 평범하지만 평탄하게 늙어갈 수 있겠구나, 내 별난 능력도 순하게 나이를 먹을 수 있겠구나 싶었다. 오래전 그 호텔 자리에 있었다는 외국 사신들의 숙소 이름 태평관처럼.

“캔서가 불치병이라는 건 다 옛말이야. 전립선암을 봉침으로 고치는 세상이라고. 서울대병원에서도 두 손 든 환자를 고환에다 말벌 침을 놔서 살렸어, 내가. 보통 꿀벌보다 오백 배쯤 독한 침을 쏘는 무지막지한 놈들이 있는데 겁먹을 건 없어. 알코올에서 헤엄치게 하면 독이 약해지니까. 김감독 관절염쯤은 한 번만 맞아도 거뜬해질 거고 대장암도 일단 한두 번만 맞아보게.”

피셔맨이 침을 튀겨가며 떠들었다.

갑자기 모든 감각이 희미해졌다. 내내 고속도로를 달리다 이런 첩첩산중에 고립된 것도, 순식간에 눈송이에 파묻힌 것도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손등에 내려앉는 눈송이의 감촉이 느껴지지 않았다. 홀리듯 나풀거리는 눈송이를 좇아 걷다가는 살아서 저 눈이 녹는 걸 못 보겠다 싶었다.

피셔맨은 나보다 더 심각해 보였다. 힙 플라스크 주둥이를 입으로 가져가는 손이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다.

“김배우, 자네……”

“저기 뭐가 오는데.”

피셔맨 말대로 저만치 눈발을 뚫고 다가오는 무언가가 보였다. 처음에는 제설차인 줄 몰랐다. 흔히 보아온 불도저 스타일이 아니었다. 트랙터 같은 생김새에 눈을 집어삼켜 멀리 흩뿌리고 있었다. 타는 듯한 오렌지빛 제설차는 산허리를 능숙하게 돌아 우리 앞에 멈춰 섰다. 운전석 문이 열리고도 한참이 지나 느적느적 내린 사람은 스님이었다. 얼굴 가득한 주름과 검버섯, 잔뜩 굽은 허리. 제설차 운전석에 앉았던 인물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았다. 남의 이목에 신경쓰지 않는 듯한 분위기 때문이었을까. 이 사찰 주지일지 모른다는 예감이 스친 것은.

“겨울은 눈이요, 눈은 겨울이지요. 손님이 올지도 모른다고 조화백에게 듣기는 했습니다만, 이런 폭설을 뚫고 오실 줄은…… 나무관세음보살.”

노승이 합장하며 인사했다.

우리가 올 줄 알았다고? 나는 혼몽한 상태로 엉거주춤 답례를 보냈다.

내 예감대로 노승은 백린사 주지였다.



“기린이 왜 기린인지 아십니까?”

그곳에선 폐부를 에는 듯한 공기보다 주지의 어법에 먼저 익숙해져야 했다. 불가의 선문답이란 게 이런 식인가. 보이진 않지만 너무나 자명한 존재인 공기에조차 물음표를 붙일 것 같았달까. 이른 저녁 공양을 마친 자리였다.

“본래는 상상의 동물이었지요. 청룡의 비늘에 백호의 몸, 주작의 발톱과 갈기, 현무의 이빨과 눈, 신통력의 근원인 외뿔까지 신묘한 동물들을 모두 합친 신령한 존재로, 수컷 기麒와 암컷 린麟을 묶어 기린이라 불렀고요. 명나라 영락제의 명으로 아프리카 원정길을 떠났던 정화가 목이 긴 낯선 짐승을 배에 싣고 와 기린이라며 바쳤다지요. 그뒤로 사슴과의 목이 긴 그 짐승이 기린이라 불린 것으로 압니다만.”

재단사도 모르는 얘기가 있을까. 사전조사라도 한 사람처럼 대답에 막힘이 없었다.

“과연! 온종일 마음이 뒤숭숭했는데 처사님들 덕분에 오늘밤이 길지는 않겠습니다. 황제는 전설의 동물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구름 같은 백성을 모아놓고 요란한 환영 의식을 치렀답니다. 기린이 등장하면 난세에 걸맞은 성인이 나타난다는 믿음을 정치적으로 활용하기 위함이었지요. 영락제 본인이 어린 조카의 옥좌를 빼앗는 업보를 지었으니까. 나무관세음보살.”

“마음이 왜 뒤숭숭하셨을까요?”

피셔맨이 물었다.

“내 정신 좀 봐. 일주문 바로 안쪽에 있는 백린송 밑동이 오늘 아침에 보니 불그스름하지 뭡니까.”

“그럼, 무슨 문제라도 됩니까?”

“삼라만상이 크게 뒤집힐 징조지요.”

“뒤집혀요?”

“고려가 망할 때, 임진왜란 때, 6·25 때 세 번뿐이었습니다. 나무관세음보살.”

그분의 부름이 이것과 관련이 있나, 세상이 뒤집히는 일과 맞물린 건가, 짧은 전율이 몸을 빠르게 훑고 지나갔다. 그분이야말로 난세의 기린 같은 존재 아니었나. 그리고 그분이 선택한 우리는 타고난 재주로 기린을 보필하던 기린의 아이들, 기린아麒麟兒.

“사명대사의 목숨을 구한 것도 기린이었다죠? 귀 무덤의 원혼들이 기린 형상으로 나타나 불지옥에서 건져냈다고. 그 무덤 앞에서 얻은 포르투갈 신부의 목걸이를 여기 안치한 것도 그 때문이고요.”

내가 조심스레 본론을 끄집어냈다.

“처사님들 눈 밝기가 천리안이십니다. 나무관세음보살.”

천리안이라는 단어에 나는 움찔했다. 우리가 올 줄 알았다더니, 설마 우리 정체까지?

“그 목걸이, 비천한 두 눈에 담아보는 영광을 누릴 수 있겠습니까?”

주지에게 정중히 물을 때만 해도 목걸이의 혼과 접속할 시간이 충분할까, 몇 초면 될까 가늠하던 나였다. 만지기는커녕 구경조차 그토록 어려우리라고는 상상도 못한 채.

“산사의 겨울밤은 속세의 어느 일생만큼 길답니다. 차나 한잔하시지요.”

한가하게 차 타령이라니. 주지에게 속내를 읽힌 걸까? 귀한 물건이라 함부로 보여주기 싫다는 건가? 확실한 한 가지는 ‘차나 한잔’에 숨은 뜻을 헤아리기 위해서는 잠자코 차를 마시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주지는 우리를 도량 맨 앞자락에 자리한 별채로 안내했다.

招綠齋. 녹차밭 쪽으로 통유리를 내고 붉은 기가 도는 황토로 벽을 마감한 다실이었는데 현판에 새겨진 이름이 좀 독특했다. 잠깐 궁금증이 일었지만 주지의 장광설을 듣게 될까봐 가만히 있었다. 정작 내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현판이 아니라 한쪽 벽에 걸린 그림이었다. 고승의 초상화였다. 부드러우면서도 날카로운 눈매, 꾹 다문 입매와 길게 기른 수염, 그리고 황금빛 십자 목걸이.

“사명대사시군요.”

내가 반색하며 말했다.

“이십몇 년 전인가요, 여기 천불산에 큰불이 났을 때 원본은 소실되고 새로 그린 것입니다. 뭐든 그대로 재현해내는 조화백 솜씨지요. 목걸이는 원화에 없던 거지만. 어떻습니까? 왜군 진영 심장부로 담판을 지으러 들어간 것도 모자라 너희 나라의 가장 귀한 보물은 무엇이냐는 적장에게 지금은 너의 목이다, 라고 일갈했던 승병장의 기개가 느껴지십니까?”

“마티스 조 말씀입니까?”

“사바세계에선 그리 불리더군요.”

낙관처럼 그려넣은 목걸이. 마티스 조가 틀림없었다. 목걸이에 관해 소상히 아는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그림을 접하니 실물이 더 궁금해지네요. 귀한 자태를 영접해볼 수 있을까요?”

“차나 한잔하시지요.”

주지가 눈가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보여주겠다는 건지 안 된다는 것인지 도통 감을 잡을 수 없었다.

“여기 차가 왜 불생불사차로 불리는지 아십니까?”

잠시 후, 주지가 차밭에서 담아온 눈을 전기주전자에 넣으며 말했다.

“불로초 같은 건가요?”

피셔맨이 솔깃한 태도로 대꾸했다.

“여기 겨울은 고랭지 채소도 얼어죽을 만큼 혹독합니다. 녹차 순도 머리를 내밀기 무섭게 시들어 갈변하기 십상이지요. 한데 늦봄이 되면 다시 푸른 기운이 돕니다. 죽었다 살아난 건지 새로 돋아난 건지 알 수가 없지요. 그 아이들을 따서 차를 빚습니다. 나무관세음보살.”

이윽고 전기주전자에서 자글자글 물 끓는 소리가 났다.

“물을 좀 식혀서 우려야 합니다. 찻물에서 화기를 빼지 않으면 차가 품은 땅의 기운을 다 잡아먹지요. 그렇다고 너무 식으면 땅의 기운이 그 뿌리까지 우러나지 못하고요.”

“그래서 얼마나 기다려야 됩니까?”

내가 참지 못하고 주지의 장광설을 끊었다.

“찻잔을 준비하는 동안이지요. 찻잔 좀 가져다주시겠습니까?”

“찻잔은 안 보이는데 어디에……”

법회를 열어도 될 만큼 널따란 방에 세간이라곤 방 한구석에 쌓인 방석이 전부였다. 그리고 벽에 기대놓은 접이식 사다리. 생뚱맞은 물건에서 눈길을 거두니 다들 위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찻잔이 거기 있었다. 사 미터는 족히 될 천장 밑 허공에 동동 뜬 채로. 주지가 부린 조화일까. 그분이 데려온 아이 중에도 그런 능력의 소유자가 있었다. 눈싸움하듯 노려보면 뭐든 둥실 떠오르던. 감쪽같던 윗분 가발을 두피에서 멀찍이 떼어내는 바람에 짐을 싸야 했지만.

어느새 모두가 일어서 있었다. 재단사가 사다리를 가져다 펴고 올라가 찻잔을 잡았다. 알고 보니 눈속임이었다. 찻잔은 피아노 줄을 단 액션 배우처럼 투명한 끈에 매달려 있었다.

“삼백 년 된 장작 가마에서 삼 년 넘게 말린 소나무만 써서 구워낸 것들입니다.”

뭔가 특별한 게 있나 살펴봤지만, 허공에서 내려온 네 개의 찻잔은 빚다 만 것처럼 우둘투둘 거칠고 투박하기만 했다.

짝.

갑자기 죽비처럼 울린 파찰음은 주지의 손뼉 소리였다. 그 소리에 맞춰 조명이 꺼지고 실내는 내 코끝조차 안 보일 정도로 캄캄해졌다. 통유리에 희끗희끗 얼비치는 폭설의 기척만이 유일한 빛이었다. 그리고 찻잔. 놀랍게도 찻잔들이 푸르스름하게 번뜩이고 있었다.

“이곳 도량에서 수행하다 열반하신 도반들의 골분을 섞어 빚은 것입니다. 생명이 푸른빛이라면 죽음 또한 푸른빛. 혼백의 빛깔과 저 찻잎의 빛깔이 똑같이 푸르지요. 흙에서 나온 것은 흙으로, 빛에서 나온 것은 빛으로. 차 한잔 공양으로 생과 사가 한몸임을, 본디 한몸이었으니 다른 몸이 아님을 상기하게 되는 셈인가요? 나무관세음보살.”

한밤의 무덤가를 떠도는 도깨비불, 원효대사의 해골바가지 일화가 떠올랐지만, 입안에 머금은 한 모금의 죽음을 차마 뱉어내지 못하고 억지로 삼켰다.

“찻잔을 왜 저리 높이 매달아놓으시는지요?”

“불생불멸. 살아서든 죽어서든 우리 모두 구천을 떠도는 존재들이지요. 없음을 만듦으로써 있고 있음으로써 없음이 만들어지는 저 오목한 찻잔처럼. 나무관세음보살.”

법문을 읊듯 나지막이 얘기한 뒤 주지는 찻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검은 허공 속 찻잔들이 작은 연등처럼 빛나고 있었다. 마주앉은 재단사의 눈가가 젖은 듯 보인 것은 어둠 속의 착시였을까. 말장난 같은 선문답에 한마디 얹지도 않고 내내 조용한 것도 재단사답지 않았다. 어디가 불편한 것인가. 투병 사실을 알고부터였을까. 문득문득 왠지 내가 알던 사람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은.

“그럼, 이제 목걸이를……”

기나긴 다도의 시간이 끝나기를 기다려 겨우 본론으로 돌아갔지만, 주지는 엉덩이를 뗄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죄송하지만 아무에게나 내보이는 물건이 아닙니다. 보안 문제도 있고……”

신사적으로 일을 보기는 그른 건가? 피셔맨의 침까지 동원해야 할까? 예기치 못한 주지의 반응에 우리는 무거운 침묵에 빠져들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이 폭설을 뚫고 여기까지 오신 성의를 생각해서 한 번쯤 기회를 드리지요.”

주지가 장삼 소매에서 꺼낸 것은 작은 상자갑이었다. 상자 위에 큼지막하게 박힌 스페이드 에이스가 어둠 속에서 누군가의 혼백처럼 푸르스름하게 빛났다.



“산은 높아야 맛이고 물은 낮아야 맛이니 하이로 게임 어떠신가요? 삼 대 일이니 그래야 좀 공평해지지 않겠습니까? 소승이 지면 목걸이를 보여드리는 건 기본이고, 맨입으로는 심심하니 돈도 좀 걸지요.”

여전히 불이 꺼진 방안에 울리는 저 목소리는 정녕 같은 사람의 것인가. 카드를 만지작거리는 주지의 목소리가 두 톤쯤 높아져 있었다.

대본에 없는 변수였지만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공평해진다고? 그냥 포커든 하이로든 우리가 평범한 사람들일 때나 들어맞을 얘기였다.

“부처는 가장 높은 곳에도 가장 낮은 곳에도 계시지요. 화엄의 자리에 어찌 높낮이의 바로미터가 온리 하나이겠습니까? 가장 높은 것이 가장 높은 것이요, 가장 낮은 것도 가장 높은 것이지요.”

피셔맨의 목소리엔 자신감이 흘러넘쳤다. 상대가 누구든 어떤 포커페이스든 피셔맨 앞에서는 엽서나 마찬가지였다. 무슨 내용이 적혀 있는지 봉투를 뜯는 수고조차 기울일 필요가 없었다.

“사명대사 안전이니 차마 불은 못 켜겠습니다. 눈빛이 눈밭에 어리는 달빛마냥 형형한 분들이니 오늘밤의 운 역시 마음의 눈으로 쪼아보시겠습니까?”

게임의 조건이 하나 더 추가되었다. 자기 패만 간신히 보이는 어스름 속 포커라니. 황당하기 짝이 없었지만 지기 힘든 게임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었다. 우리가 누구인가. 음지에 도사린 채 양지를 속속들이 들여다보던 어둠의 사제들 아닌가.

“하! 색즉시공, 공즉시색. 보이는 건 보이지 않는 것이요, 보이지 않는 건 보이는 것이라. 하이는 산, 로는 물, 스윙은 차茶, 하고 외치지요.”

누구도 자백을 받아내지 못한 입이라도 맞닥뜨린 듯 피셔맨의 목소리엔 달뜬 기색이 역력했다.

“카드를 돌리는 허드렛일은 세속의 때에 전 손이 맡아도 될는지요?”

내가 두 손을 공손히 내밀며 말했다.

“성불하시기를!”

주지가 카드를 건네며 중얼거렸다.

카드마저 내 손에 들어온 이상 질 수 없는 게임은 절대로 질 수 없는 게임이 되었다. 두 눈에 드리워진 어둠이 오히려 내 세번째 눈에 힘을 실어주었다. 손에 스치기만 해도 카드가 보였다. 눈먼 자들 속에 유일하게 눈뜬 자, 홀로 적외선 투시경을 낀 야간 전투원이나 다름없었다.

목걸이를 손에 쥐는 건 떼어놓은 당상이라는 자신감은 오만이었을까. 유독 주지의 카드만 읽히지 않았다. 감은 눈에 아무리 힘을 줘보아도 무늬든 색깔이든 숫자든 떠오르는 게 전혀 없었다. 짝짝. 마지막 베팅이 끝나고 불이 켜졌을 때 판돈은 차, 하고 외친 주지 앞으로 다 빨려들었다. 하트 플러시에 세븐 톱. 산은 높디높고 물은 깊디깊으니 하이도 로도 막강한 족보였다. 기죽을 필요는 없었다. 첫 끗발이 개 끗발이라는 말도 있지 않나.

“리허설까지 마쳤으니 본 게임을 시작하지요.”

피셔맨은 여전히 상기된 목소리였다.

“그럴까요? 그럼, 성불하십시오!”

주지가 손뼉으로 불을 끄자 나는 다시 패를 돌렸다.

이자의 정체는 뭐지? 뚫리지 않는 결계라도 친 걸까? 이번에도 주지의 카드만 읽을 수 없었다.

“삼세번이라는 말도 있으니 한 판만 더 하시지요.”

피셔맨의 희망대로 세번째 판 만에 주지를 누르고 목걸이를 영접하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결과는 다르지 않았다.

“나무관세음보살.”

주지는 후한 시주라도 받는 태도였다. 목걸이고 뭐고 자존심이 상했다. 재단사와 나는 아예 지갑을 깔고 앉았고 피셔맨도 공공칠가방을 열어젖혔다. 하지만 승리의 여신은 번번이 우리의 손을 외면했다. 굴욕적이게도 주지는 매시 정각마다 타종하러 다녀오는 여유마저 보였다.

“뇌를 금고에 넣어둔 걸까? 의중이 전혀 읽히지 않아.”

피셔맨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의식의 흐름인가, 제행무상인가. 플롯이랄 게 없네.”

재단사가 미간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무슨 술수를 쓰는지 저 영감 카드만 깜깜이네? 그나저나 총알은 좀 남았나?”

내가 입맛을 쓰게 다시며 피셔맨을 쳐다보았다.

“내가 처음부터 침을 쓰자고 했잖아?”

공공칠가방 안을 뒤적거리던 피셔맨이 신경질적으로 내뱉었다.

“감이 좀 잡힌 것 같으니 한 판만 더 해보세. 우리 명예도 있고.”

재단사의 투지가 무뎌지는 데는 채 삼십 분도 걸리지 않았다.

어떤 흑막이 있는지 몰라도 산에서도 물에서도 주지는 매번 승자였다. 한 사람은 어찌어찌 봉쇄할 수 있다 쳐도 셋 모두를 번번이 무력화시키는 게 가능할까? 자존심을 접고 앉은 자리까지 바꾸지 않았나. 패배가 거듭될수록 다음 판은 다를 거라는 믿음인지 바람인지는 커져만 갔다. 급기야 목걸이는 뒷전이고 우리의 능력이 죽지 않았음을 확인하는 일이 더 절실해지기에 이르렀다. 그렇게 시한부 삶을 하루하루 연장하듯 ‘한 판만 더’를 되풀이했지만 흐름은 단 한 번도 바뀌지 않았다. 어느 순간부터 재단사는 아예 눈을 감고 있었고, 피셔맨은 빈 힙 플라스크 뚜껑만 열었다 닫았다 했다. 나는 화석이 돼버린 무릎을 접지도 펴지도 못한 어정쩡한 자세로 벽에 기대어 있었다. 주지의 얼굴은 화색이 돌았다. 얼굴에 가득하던 주름도, 구부정하던 허리마저 팽팽하게 펴진 느낌이었다.

“지금 몇시인지 궁금해할 피조물은 이 산중에 없을 듯합니다만.”

다시 자리에서 일어서는 주지를 향해 피셔맨이 가시 돋친 농담을 건넸다.

“소승이 뻐꾸기시계도 아니고 그저 어둠에게 시간을 알리기 위함이겠습니까? 도량에서는 방귀조차 수행이지요. 이번에는 좀 걸립니다. 부처님 뵈러 법당에도 들러야 합니다. 새벽 예불 올릴 시간이거든요. 기다리기 뭐하시면 어떻게, 향 내음이라도 좀 맡으시렵니까?”

플랜 B가 떠오른 걸까. 재단사가 피셔맨과 나를 돌아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왕년엔 플랜 A로 충분했지만 오늘밤에는 플랜 C, 플랜 D까지 가야 할지도 몰랐다.

우리 셋이 모두 일어서고 나서야 주지는 밖으로 향했다. 폭설로 고립된 절에서의 도박, 어둠 속의 게임으로도 모자라 도박 도중의 불공이라니. 무언가에 홀린 듯한 경험의 연속이었다.



까똑.

주지를 따라 종루로 가던 중에 주머니 속에서 익숙한 알림음이 들렸다. 먹통이던 휴대폰에 다시 수신 막대기가 여럿 떠 있었다. 그새 단톡방을 만들어 우리를 부른 것은 재단사였다. 우리는 휴대폰을 음소거 모드로 전환하고 은밀한 작전회의를 시작했다. 


김작가
     카드로는 하룻밤 더 새워도 어렵겠어
     역시 침뿐인가?

김배우
     체감온도가 영하로 내려가면 침발이 안 듣는데
     부처님 앞은 곤란하고 다실로 돌아가서 기회를

김작가
     바람을 미리 잡아야
     일단 나한테 무릎 풀어주는 침을 놓으면서

김배우
     오케이


플랜 B의 얼개는 대충 완성됐지만 불안감이 떨쳐지지 않았다. 대여섯 발 앞서 성큼성큼 걷는 주지의 뒷모습을 좇고 있자니 한번 말려든 이 페이스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불타는 오렌지색 제설차를 타고 나타났을 때 알아봤어야 했을까. 안도하며 뒤따라가는 길 끝에 들어본 적도 없는 기묘한 지옥이 기다리고 있음을.

“간단히 새벽 예불 드리러 가실까요?”

타종이 끝나자 주지가 대웅전으로 향하며 말했다.

주지가 말한 간단한 새벽 예불이란 대웅전 불단에 향을 피운 다음 백팔배를 올린다는 뜻이었다. 우리 셋은 주지가 향을 집어들어 촛불로 가져가는 모습을 두어 걸음 떨어져 지켜보았다.

“아기 부처님 코는 왜 저렇지요?”

석가모니불 발치에 작은 분신처럼 놓인 아기 부처상을 바라보다 내가 물었다.

해맑게 웃고 있는 아기 부처의 코 부위가 금박이 벗겨져 거뭇거뭇했다.

“중생들은 이 불상에 아들을 점지해주는 기운이 있다고 믿지요. 암컷 기린이 백린송이 되면서 남긴 분신이라고도 하고, 여기 내려와서 잉태한 존재라고도 하고. 코를 만지며 기도하면 아들이 들어선다나. 뒤에서 보면 불상이 거시기 형상으로 보이긴 합디다. 대학생 하나 잡겠다고 헬기까지 타고 온 양반은 아예 통째 들고 가더군요. 잠시 빌리겠다고 했지만 차용증을 써준 것도 아니고, 말은 점잖아도 협박조였지요. ‘용공 세력의 온상이 된 불교계.’ 이런 헤드라인 밑에 존안尊顔이 팔려서야 되겠습니까?’”

대학생과 헬기라면 주사파 수괴 검거 작전 아닌가. 팔공산 약수만 마신다던 부장? 골동품 수집이 취미이던 1차장? 금붙이라면 사족을 못 쓰던 2차장? 주지가 언급한 사람은 누구일까?

“딸만 셋이라던 그 양반 득남했나 모르겠네요. 간첩 만드느라 그럴 시간이나 있었을까 의문이지만. 불상은 그렇다 쳐도 사명대사 목걸이는 어디다 쓰려고 가져갔던 건지. 어차피 부처님 뜻대로 제자리에 돌아오게 돼 있는 것을. 나무관세음보살.”

그분에 대한 모욕은 참기 힘들었지만 주지의 말이 완전한 거짓은 아닐 터였다. 사명대사의 목걸이가 안가로 옮겨온 건 분명하니까. 아기 부처상이 그분 손에 있었다는 대목도 사실일까? 빼앗다시피 가져갔다고? 그때였다. 바지 주머니 속 휴대폰이 진동한 것은. 재단사가 보낸 카톡이었다.


김작가
     봐달라고 주지가 목사에게 바친 거야. 목걸이
     안 봐도 카메라지. 사기꾼 땡중 같으니라고

김작가
     주사파 수괴를 숨겨준 위인 아닌가
     심지어 빨갱이 중이라니


“자, 부처님께 문안인사 올립시다.”

주지의 목소리에 놀라 휴대폰을 황급히 바지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그새 주지는 바닥에 넙죽 엎드려 있었다. 나도 엉겁결에 무릎을 굽히며 머리를 조아렸다.

애당초 무리였다는 후회가 밀려들었을 땐 이미 무언가에 홀리듯 백팔배 수행이라는 늪 깊이 빠져든 뒤였다. 채 서른 번도 안 돼 무릎이 앓는 소리조차 못 내고 하얗게 질리는 게 세상에서 가장 경건한 고문을 받는 기분이었다. 급기야 무릎이 없어진 것 같은 순간 이후로는 내가 절을 올리는 것인지 절이 나를 무릎 꿇리는 것인지 분간되지 않는 무아의 지경에 이르렀다. 코가 닳은 부처가 나였고 무릎이 닳은 내가 부처였달까.

“마저 성불하러 가실까요?”

천팔배 같은 백팔배를 기적적으로 마치기 무섭게 주지가 이브를 꾀는 뱀처럼 속삭였다.

막 피어난 내 마음속 화엄의 불꽃도 ‘딱 한 판만’이라는 신기루를 잠재우지 못했다. 누가 아나, 백팔배 치성의 효과가 곧바로 나타날지. 피셔맨도 재단사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는지 기다렸다는 듯 주지를 따라나섰다. 물론 우리의 주목적은 주지의 목덜미에 침을 놓는 것이었지만.

“그 대학생이요……”

묵묵히 다실로 향하던 주지가 불쑥 말을 꺼냈다.

“여기 숨어 있다 잡힌 대학생 말씀입니까?”

피셔맨이 물었다.

“웬 젊은이가 일주문 안으로 쓱 들어서는데 사명대사께서 아홉 번 환생하신 얼굴이었습니다. 나무관세음보살.”

주사파 수괴를 비호한 과오를 합리화하려 지어낸 얘기였을까. 오늘밤 주지 입에서 나온 이상한 말들 중에서도 단연 해괴한 소리였다.

“빨갱이 짓 하다 감옥 간 게 도리어 훈장이 되는 세상이니, 저도 다음 생엔 빨갱이로 태어나야겠습니다. 빨갱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이를 갈아대는 생이니 당연 그리되겠지요? 윤회론인지 뭔지로는 정반대로 환생한다고 하니.”

피셔맨이 이죽거렸다.

“윤회의 거대한 수레바퀴에 그런 인과는 없습니다. 이념과 사상이 어찌됐든 자유롭지 못하면 번뇌의 굴레를 반복할 뿐.”

“반복이라. 그럼 저는 다음 생에 무엇으로 환생할 것 같습니까?”

주지가 갑자기 걸음을 멈추더니 피셔맨의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았다.

주지의 말문이 열리기를 얼마나 기다리고 있었을까. 일이 초? 일이 분? 어쩌면 누군가, 아니 무언가의 일생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이윽고 주지의 입이 실룩거렸다.

“차나 한잔하시지요.”

자신의 목소리를 어둠 속에 남기고 주지는 다시 성큼성큼 걷기 시작했다.

어느새 눈발은 완전히 그치고 빈 구석 없이 꽉 찬 새벽 보름달이 눈 세상을 환히 비추고 있었다. 주지의 법명이 만월이라던가. 아무래도 날을 잘못 잡은 것 같았다.

치성이 부족했던 걸까? 자세가 바르지 못했던 걸까? 침을 쓰자던 계획도 까맣게 잊고 카드에만 집중했지만, 백팔배의 약발 같은 건 없었다. 뜨거운 차를 허겁지겁 들이켜면서까지 의욕을 보인 보람도 없었다. 기사회생은커녕 개털이 되는 순간만 앞당긴 꼴이라니. 더 볼 것 없다는 듯 주지는 판판이 ‘차’를 외쳐댔고, 피셔맨도 재단사도 내 뒤를 따르는 건 시간문제였다. 더 놀아보자며 붙잡아도 완곡히 사양했겠지만, 주지는 빈말일지언정 총알을 빌려주겠다는 의사도 일절 내비치지 않았다. 자비를 설파하고 실천하는 게 업인 사람이 흔한 개평조차 없었다. 몇 판 구경만 하다 머쓱해져 빈손을 움켜쥐며 일어서야 했다. 어디 가느냐고 물어주는 사람조차 없었다.

도량을 한 바퀴 돌며 바람이나 쐴 요량이었는데 걷다보니 대웅전 앞이었다. 이끌리듯 법당 안으로 들어가니 아기 부처상이 금빛을 잃은 코로 환하게 미소 짓고 있었다. 아들을 점지해준다는 아기 부처상. 부하 직원의 득남 소식마다 쓸쓸함이 어른거리던 그분의 얼굴. 밑져야 본전이었다. 나는 금박이 벗겨진 코 위에 손을 얹고 기도하듯 두 눈을 감았다. 그리고 속삭였다.

기린아, 기린아, 코가 없는 기린아, 세상에서 가장 자비로운 분은 지금 어디 계시니?



“그 극장에 또 가야 한다고?”

거기서 말 못할 봉변이라도 당한 사람처럼 소리친 장본인은 내가 아닌 피셔맨이었다.

내가 아기 부처상과 대화를 마쳤을 때는 이미 판이 정리되어 두 패잔병들은 요사채로 물러나 있었다.

“에이치, 오, 엘, 엘, 와이, 더블유, 오, 오, 디. 영화 간판이 아니라 알파벳이 보였네. 간판처럼 커다란 알파벳.”

나는 아기 부처상이 내어준 신탁을 다시금 힘주어 전했다.

“설마, LA에 있는 진짜 할리우드? 확실한가?”

“여기까지 어떻게 올 수 있었는지 벌써 잊었나? 야자수가 줄줄이 늘어선 도로 한편이었어.”

“목사가 태평양 건너에서 우리를 부른다고?”

“라이카 아직 안 죽었네. 못 믿겠거든 사명대사 목걸이를 내 손에 쥐여주게나. 주지에게 침을 놓든 포커로 이기든.”

나도 물러서지 않았다. 무성영화 필름처럼 스쳐간 화면들 속에 분명 그분 얼굴이 있었으므로. 세월의 더께에 흐려졌던 능력이 실전을 거듭하며 본래면목을 회복하기 시작한 건가. 역시 나의 능력은 도박같이 비루한 일에 쓰일 것이 아니었다. 지난 몇 차례보다 훨씬 선명한 영상이었다. 그 속에 아기 부처 코를 만지며 소원을 비는 젊은 여인의 모습도, 아장아장 걸음마하는 사내아이도 보였지만, 그 얘기는 꺼내지 않았다. 안 본 걸 보았다고 할 이유가 없듯 본 것을 모두 얘기할 필요도 없었다. 오죽 많은 사람들 손을 탔을까. 솔직히 그 대목만큼은 긴가민가했다.

“목사 큰딸이 미국 시민권자라는 얘긴 들었네. 워낙 큰물에서 노시는 분이니 가 계실 수도 있지.”

큰따님 얘기는 또 어디서 들었을까? 내 말에 신빙성을 보태준 재단사의 말이 고마우면서도, 미심쩍은 마음은 여전히 어쩔 수 없었다.

“목사가 미국에 있을 수는 있네. 하지만 우리가 왜 거기까지 가야 하나? 적화 직전의 위기에 처한 조국으로 목사가 건너와야지.”

피셔맨이 쌍심지를 켜며 말했다. 내가 못 갈 데라도 입에 올린 것처럼.

나 역시 선뜻 바다를 건너기엔 망설여지는 마음이 없지 않았다. 그분의 존재감이 강하게 느껴질수록 다가올 미지의 과업이 두렵기도 했으니. 멀어지려야 멀어질 수 없는 미래인 죽음처럼.

“왜, 병원 비울 동안 단골손님 떨어질까봐 그러나?”

피셔맨의 얼굴이 벌게지는 게 재단사가 정곡을 찌른 모양이었다.

“미국 한 번 들어가는 데 돈이 얼만데? 한 사람도 아니고 셋씩이나. 이 얘기는 안 하려고 했는데 오늘 날린 공작금은 누구 주머니에서 나왔나?”

“비행기 삯이 그리 아까우면 이번 일에서 김배우는 빠지게. 무릉도원을 뒷마당처럼 드나드는 무욕의 어부가 언제부터 돈, 돈, 하게 되었나? 나도 궁금하네. 그분 라인은 하나같이 퇴직금도 못 받고 파면당한 걸로 아는데 자네가 무슨 돈으로 목 좋은 곳에 병원씩이나 차렸는지.”

사짜 중에게 지갑을 탈탈 털려 울고 싶던 차에 뺨을 맞은 격이었을까. 가슴 깊숙이 품고 있던 말이 나도 모르게 튀어나왔다.

그분이 은신해 있다 붙들린 최후의 안가 베들레헴. 회사 장부에도 올라 있지 않은 그곳, 우리만 알던 그곳이 어찌되었는지 우리 중에 아는 사람이 없었다. 잃었다는 사람은 있어도 땄다는 사람은 없는 포커 판처럼. 차명으로 계약되어 있었을 테니 눈먼 판돈이나 마찬가지. 누군가 꿀꺽했다면 그분을 배신한 대가였을 가능성이 컸다. 예수를 팔아넘기고 유다가 받아든 은전 서른 닢처럼.

“내가 목사를 팔아넘기기라도 했다는 소리야?”

피셔맨이 붉으락푸르락하며 소리쳤다.

“그건 방금 본인 입으로 한 말이네만.”

“라이카 자네야말로 마음만 먹으면 목사가 어디 숨었는지 손바닥 보듯 할 수 있는 사람 아니었나. 목사의 손때가 묻은 물건이라면 차고 넘쳤으니까. 목사가 강탈해갔다는 저 빌어먹을 목걸이나 불상처럼.”

“빨갱이 중이 처벌을 면하려 뇌물로 바친 거라고 내가 카톡에 썼지 않나.”

재단사가 늘 그렇듯 감정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신기하기도 하지. 김작가는 매번 그런 걸 어찌 그리 잘 알까? 자네가 귀띔해주기만 기다려야 하는 게 또 있나?”

피셔맨이 재단사를 똑바로 쳐다보며 물었다.

의심하고 또 의심하는 건 나만의 일이 아니었나보다. 우리는 서로서로 믿지 못하는 셋이었다. 그분에게 가까워질수록 아무도 믿어서는 안 되었다. 원수는 몰라도 배신자와는 같은 하늘 아래 살 수 없는 법. 그분이 고향 산천 등지고 말도 안 통하는 땅으로 훌쩍 떠날 수밖에 없던 심정이 절절히 다가왔다.

“천하의 라이카가 기억 못하는 게 있다는 사실은 더 신기하지. 못하는 척하거나 일부러 지워버리지 않고서야. 목사의 부름을 받았다며 이십 년 만에 불쑥 나타난 것도 희한하고. 목사가 부르는 건 확실해?”

재단사는 그분을 만나는 게 께름칙한 걸까? 요주의 전직을 추적하고 감시하는 부서에 몸담고 있은들 배신한 사람을 마주하기는 내키지 않으리라. 감정이라는 게 있는지조차 의심스러운 재단사일지라도.

“이런 소리까지 듣게 될 줄 꿈에도 몰랐지만, 다행히 암호문을 태우지 않고 남겨뒀네.”

나는 바바리코트 안주머니에서 장지갑을 꺼냈다. 내 죽음을 알리는 부고. 부고로 가장한 암호문을 어디에 끼워뒀더라.

“어디 뒀는지 잊어버렸나? 한 모금 마시면 생각날지도 모르지.”

피셔맨이 바닥난 지 오래인 힙 플라스크 뚜껑을 돌리며 말했다.

“잠깐!”

재단사가 손까지 펴 보이며 소리쳤다.

재단사의 시선은 벽걸이 텔레비전에 가 있었다.

“왓 더……”

피셔맨은 더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나도 벌어진 입을 다물 수 없었다.

대출 광고가 나오는 화면 하단에 큼지막한 붉은 자막으로 속보가 떴다.


  백악관, ‘사상 최초 평양 정상회담’ 전격 발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