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회

수미는 그런 생각을 매일같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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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도소에서 나온 윤미 언니를 데려온 것은 수미의 할머니와 아버지였다. 할머니는 왜 자신의 아들이 아니고 사위를 데려갔던 것일까, 시간이 지나 문득 수미는 그것이 어색하다 싶었는데 그때 아버지는 일을 잠시 쉬고 있을 때였기 때문에 시간이 많아서였을 수도 있고 아들이 많은 친가의 둘째 아들인 아버지는 어디서나 어른들을 잘 챙기고 먼저 말을 붙이는 사람이어서 어쩌면 할머니는 아들보다 사위를 편하게 여겨 데려갔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게다가 아들들은 누구도 언니를 달가워하지 않았을 것이었고 그렇다면 데리고 갈 사람이 아버지인 건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날 할머니도 아버지도 언니를 데려온 후 곧 집을 나갔다. 수미는 할머니가 끓여놓고 나간 미역국을 데우고 김과 김치, 멸치볶음을 꺼내서 상을 차렸다. 언니는 국물만 몇 번 떠먹다가 엄마 이름을 대며 네가 딸이냐고 물었다. 수미는 네 하고 대답했지만 언니와 무슨 이야기를 더 해야 할지 몰라서 어색하기만 했다. 언니는 마른 얼굴에 광대뼈가 튀어나와 있었고 말이 없었다. 잠시 후 언니는 수미가 아주 어릴 때 보았던 기억이 난다고 하였다. 수미가 태어나고 한동안 수미의 가족은 아버지 일 때문에 울산에서 살았고 시간이 지나 학교에 들어갈 무렵에는 윤미 언니가 감옥에 갔다. 언니가 감옥에 간 사이 물론 그 일과는 상관이 없고 아버지의 사업 실패 때문에 형편이 어려워진 수미의 엄마는 수미와 수미의 동생을 데리고 부산의 친정으로 들어갔다. 아버지는 한 달에 한두 번 가족이 사는 부산의 집에 들렀다. 언니는 국을 몇 번 뜨다가 수미의 방에 가보고 싶다고 하였다. 수미는 엄마와 동생과 함께 자는 방을 보여주었다. 언니는 옷도 벗지 않고 옆으로 쓰러지듯 깔린 요 위에 누웠다. 눕더니 거기서 곧 잠이 들었다. 


―밥 다 먹은 거예요?

―응


윤미 언니는 잠이 든 듯 낮은 목소리로 대답하였다. 수미는 국그릇 밥그릇을 부엌으로 옮겼다. 남은 밥을 서서 먹고 미역국 냄비에서 고기를 골라 먹었다. 고기는 맛있었다. 설거지를 하고 상을 닦았다. 아무도 언니가 어디에 있었는지 알려주지 않았지만 지나가다 들은 말들이 어디선가 모여 언젠가부터 언니가 교도소에 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원래 울산에서 가족들끼리 살았기 때문에 언니가 있고 없고를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 함께 살게 된다면 대학생 언니가 생긴다면 뭔가 좋을 것 같기는 했다. 그런데 언니는…… 대학생 언니라기보다는…… 윤미 언니는 수미가 알지 못하는 외가 친척의 딸로 어릴 때부터 할머니가 데려다 키웠다. 할머니는 언니가 아니라 이모라고 하였는데 삼촌만 있어서인지 이모라는 말은 잘 나오지는 않았고 엄마도 이모 말고 언니라고 부르라고 하였다. 수미는 밥상을 가지고 방으로 들어와 숙제를 하려고 했지만 자고 있는 언니 얼굴을 보다 말다 집중이 잘되지는 않았다. 작은 숨소리와 함께 언니의 낮게 코 고는 소리가 들렸다. 언니는 어디서 자는 걸까 앞으로 어떻게 사는 걸까. 원래 언니의 방에는 수미네 가족이 가져온 짐들이 쌓여 있었다. 엄마가 짐을 치우기는 하였지만 원래의 언니 방 같지는 않을 것이다. 언니의 방에는 책상과 많이 비워진 책장이 있고 그 책장에는 졸업 앨범이 나란히 꽂혀 있었다. 언니는 앓는 소리를 내며 자고 있었고 수미는 숙제를 하다 고개를 들어 언니를 보았고 언니의 나이를 생각해보고 스물일곱 스물여덟인가 그 나이의 사람은 저렇게 생긴 건가 스물여덟은 많은 나이 같은데 언니는 나이가 많은 것 같은데 그런데 얼굴을 보면 젊은 사람 같다고 스무 살은 그렇다면 저것보다 더 어려 보이는 것일까 서른 살은 저기서 더 얼마큼 나이가 들어 보이는 것일까 생각하다가 언니를 살짝 흔들었다.


―무슨 꿈 꿔요?

―아니, 아니야. 왜?

―소리를 내요.


언니는 아무것도 아니라며 팔로 몸을 감싸며 눈을 감고 다시 잠이 들었다. 큰삼촌네는 같은 동네 근처에 살았고 이 집에는 할머니와 수미네 가족이 살았다. 학교에 갔다 오면 동생이 있거나 아니면 아무도 없을 때가 많았다. 엄마는 큰삼촌 가게를 봐주러 나갔고 동생도 친구들과 늦게까지 놀다 올 때가 많았다. 수미는 학교가 끝나면 집에 와서 책을 보거나 가만히 앉아서 무슨 일을 할지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어떨 때는 한참을 걷다 집으로 돌아왔다. 언니는 그때에도 이 집에 있게 될까. 수미는 몸을 떨다 다시 잠이 든 언니의 얼굴을 보면서 교도소에서 나온 사람들은 어떻게 사는 거지 생각했다. 이렇게 살아 있지만 젊은 얼굴이지만 수미는 언니가 인생을 완전히 엎질러버렸다고 생각했다. 누가 일을 맡길 수도 없고 아무도 언니와 결혼하려고 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잘 모르겠다. 언니는 공부를 계속할까 누군가 언니의 친구들이 언니를 도와줄까 그렇다면 완전히 말아먹은 건 아닌 것일까 그런 생각을 했다. 그러나 어떻게 생각해도 평범한 미래가 보이지 않았다. 완전히 잘못되었다. 


교도소 앞에서 언니를 만났을 때 언니 주위에는 비슷비슷해 보이는 남자 여자들이 몇 있었고 그들은 언니와 악수를 하고 어깨를 두드렸다. 그들과 잠시 이야기를 하던 언니를 할머니는 차로 데려왔고 아버지는 차 뒤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수미는 누군가와 눈이 마주쳤던 기억이 나는데 아무래도 그때 그를 쳐다보고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는 귀를 덮은 머리에 마른 몸에 손가락이 길었고 학교 음악 선생님과 무척 닮았었다. 수미는 음악 선생님의 이름 세 글자를 고개를 바닥으로 내리며 조용히 말했다. 차를 타고 다시 한번 그들을 보았을 때 그는 여전히 수미를 보고 있었다. 앓는 소리를 내고 있는 언니를 보며 상 위의 책을 보다가 한두 시간 전 지나온 길들과 한 명씩 본다면 다른 얼굴이었을지 모르겠지만 어쩐지 모두 같아 보였던 마른 남자들과 여자들을 떠올렸다. 나는 이 길을 기억해낼 것이야, 이 표지판을 잊지 않을 것이야 생각하며 외우려고 했던 나무의 모양과 표지판의 이름들을 생각했지만 곧 차 안에서 잠이 들어버려 기억나는 것이 없었다. 어딘가를 벗어난 적이 너무도 없어서 교도소에 가는 길 교도소에서 오는 길을 생생히 기억하고 싶었다. 수미는 매일의 날씨와 지나가는 사람들을 늘 죽을 때까지 기억하고 싶었다. 

잠들어 있는 윤미 언니의 얼굴을 보며 서른이 가까운 사람의 얼굴은 이런 얼굴이구나 나는 그때가 되어도 지금을 모두 기억할 것이다, 나는 언제 죽게 될까 할머니처럼 오래 살게 되는 것이 당연한 것 같으면서도 어딘가 도망가고 싶었다. 수미는 어른이 되고 젊고 싶었다. 젊은 어른인 채로 오래오래 살다가 죽고 싶었다. 그래서 윤미 언니의 얼굴을 자주 내려다보며 어른의 얼굴이 어느 정도의 나이로 보이는지 어느 정도의 나이가 어른으로 보이는지 가늠해보았다. 


할머니는 보약을 지어서 돌아왔다. 혹시라도 큰삼촌이 들르기 전에 들어와서 언니에게 약을 먹였다. 언니의 방에 보일러를 켜고 이불을 펼쳐주었다. 좀전까지 자던 언니는 씻지도 않고 또 잠이 들었다. 그날 근처에 사는 큰삼촌은 집에 들렀었나 그런 것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큰삼촌은 저녁이면 종종 들러 가게 근처 시장에서 사온 것들을 할머니에게 주고 갈 때가 있었다. 과일이나 고기 같은 것들 과자나 음료수 가끔은 양말들. 그날은 어땠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데 어쩌면 다른 일들처럼 기억하려고 애쓰지 않아서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일까. 아무튼 엄마는 수미를 일찍 재웠고 수미는 언니의 몸에서 어딘가 물냄새가 난다고 생각하였고 자신을 보던 음악 선생님을 닮은 남자와 한 무리의 서로 닮은 사람들 중 몇은 수미를 보고 웃었고 수미는 웃지 않았다. 그럴 필요가 없는데 수미는 그 마르고 입가가 하얀 사람들 서로 잘 웃는 사람들 앞에서 왜 당신들은 웃고 있느냐고 우습다고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절대 웃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수미는 전혀 웃지 않고 굳은 얼굴로 그 사람들을 보았다. 그런 것들을 포함해 그 모든 것을 다 기억하고 싶었다. 숙제를 다 하고 또 뭘 해야 하지 생각하였고 손가락에서는 아직 참기름냄새가 났다. 남은 미역국이 먹고 싶었다. 동생은 이미 돌아와 잠을 자고 있었고 수미는 집에 오늘따라 사람이 적다는 생각을 했다. 오후에는 수미 혼자일 때가 많았지만 저녁시간이 되면 큰삼촌네가 같이 밥을 먹기도 했고 동네 다른 할머니들이 놀러올 때도 많았다. 엄마는 할머니 방에서 숙모와 셋이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들으려고 애를 썼지만 잘 들리지 않았고 그러나 수미는 그것이 언니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을 알았다. 언니는 그저 잠을 자고 또 자고 있었다. 감옥에서는 여러 사람이 같이 자겠지 혼자 자는 것이 무서울까 더 좋을까 수미는 자신만의 방이 갖고 싶다가도 혼자 자는 것은 어쩌면 무서울지 몰라, 먼저 잠든 동생을 팔을 뻗어 확인하고 잠이 들었다. 


학교에서는 담임 선생님이 수업이 끝나면 교무실로 오라고 수미를 불렀다. 날씨가 추웠고 교복 재킷을 입어도 여전히 추웠다. 추워서 팔짱을 낀 채로 수업을 들었다. 난로 위에는 주전자 속 물이 끓고 있었고 흰 김이 났다. 흰 김을 보자 왠지 배가 고파졌고 유자차가 마시고 싶었고 어묵이 먹고 싶었고 라면이 먹고 싶었다. 음악 시간에는 선생님의 얼굴을 계속 보았지만 막상 얼굴을 보니 어제 본 남자의 얼굴과 닮지 않은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순간에는 너무 닮았다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을 하며 다시 보니 어제 본 사람의 얼굴이 희미했고 잘 떠오르지 않았다. 선생님을 보다 닮은 듯한 어제의 얼굴을 떠올려보고 선생님을 보며 노래를 따라 부르는 척을 하며 한 시간을 보냈다. 수미는 어제 본 사람과 음악 선생님이 형제라면, 내가 아는 사람과 내가 모르는 사람이 서로 아는 사이라면, 그런 가정을 하자 무척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왜 내가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이 서로 아는 사이일까 이상하고 신기하다. 국어 시간에는 난로에서 작게 불이 났는데 어디서 급하게 모래를 가져온 선생님이 불을 껐고 뒤이어 뛰어온 체육 선생님이 소화기를 뿌리고 둘은 문밖에서 다급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했다. 다시 들어온 체육 선생님이 난로를 살피더니 구멍을 테이프로 막아서 불이 난 것 같다고 뭔가를 잘 아는 표정으로 말하였다. 


―이거 별일 아니니까 집에 가서 또 불났다고 그런 소리 하지 마라. 알겠나?


아무것도 무섭지도 않았고 선생님이 뭔가를 크게 잘못했다는 생각이 들지도 않았다. 조금 들뜨다 만 정도였다. 수미의 소매에서 탄냄새가 났다. 왜 담임 선생님은 날 부른 걸까? 수미는 난로가 잘 보이는 자리에 앉았으니 불이 난 경과를 물어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다면 불이 난 것을 몰랐다고 그런 일은 없었다고 거짓말을 해야 할까, 아니면 불이 난 것이 맞는다고 국어 선생님이 실수로 난로 어딘가에 테이프를 붙여서 불이 난 것이라고 말씀하셨다고 그런데 절대 말하지 말라고 했어요 저도 집에는 말 안 할 거예요라고 말해야 할까. 수미는 자신이 무얼 잘못했는지 아니면 잘못한 것은 없고 아예 다른 일로 자신을 부른 것인지 그렇다면 그것은 무슨 일일지 생각하며 교무실로 갔다. 교무실 안은 따뜻해서 그것만으로도 긴장한 마음이 풀어지는 것 같았지만 담임을 만날 생각을 하니 곧 마음이 딱딱하게 굳어갔다. 모과 냄새가 났고 선생님들은 유자차를 마시고 있었다.


―집에 별일은 없고?

―없는데요.

―예전에는 울산에서 살았다고 했제?

―네.

―이사는 왜 왔는데?

―모르겠어요. 아버지 일 때문에요. 

―할머니 집에서 산다고 했제?

―네.

―누구누구 사는데?

―할머니랑 삼촌네랑 우리집이요.

―더 없고?

―없는데요.

―이모 있잖아.

―아, 네. 생각을 못했어요.

―왜 생각을 못했노?


수미는 오래 같이 안 살아서 생각을 못했다고 대답하였다. 선생님은 그 사람이 누군지 다 안다고 하였다. 물론 나만 아는 것은 아니지라고 덧붙이며 수미의 얼굴을 살폈다. 선생님은 몇 살일까, 수미는 윤미 언니라는 갑자기 등장한 얼굴을 측정기처럼 이 사람은 윤미 언니 보다 몇 살 위아래 아주 많이 위 이런 식으로 나이를 가늠해보게 되었다. 나의 집에 사는 사람에 대해 묻는 말에 답을 하다보니 당신도 집이 있고 집에서는 말을 하고 밥을 먹고 할 일을 하겠지? 윤미 언니보다 나이가 조금 아니 조금 많이 먹은 이 사람이 집에서는 지금과 같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 또 이상하게 느껴졌다. 음악 선생과 어제 본 사람이 형제인 것을 가정해보았을 때처럼 말이다.


―이상한 행동을 하면 선생님한테 제일 먼저 말해야 된다.

―이상한 행동 뭐요?

―뭔지 몰라서 묻나?

―모르는데요.


담임 선생님은 막대기로 배를 쿡쿡 쑤시면서 뭔지 몰라 정말 뭔지 몰라라고 말하다가 손으로 머리를 밀면서 정말 몰라? 하고 물었다. 수미는 정말 모르겠다고 하였다. 반항하고 싶은 생각이 조금도 없었는데 모른다고 말할 때 어쩐지 잘못된 눈빛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담임은 그만 가봐 하였고 수미는 고개를 숙이고 나왔다. 교무실을 나왔을 때 2학년 국어 선생님이 따라 나왔다. 이 선생님은 윤미 언니보다도 어린 사람 같았다. 수미는 한 번도 배운 적 없고 이름도 모르는 선생님이었는데 왜인지 수미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니 내 모르나.

―모르는데요.


선생님은 이정숙이라고 쓰인 출석부를 보여주었다. 이정숙 선생님 이름은 좀 외우고 학교 다녀라, 누가 뭐라고 하면 찾아오라고 하였다. 누가 뭐라고 하는데요? 모르지, 라는 대답을 들으며 수미는 가끔 몸이 지금의 자신과 맞지 않는다는 생각을 했다. 자신은 다른 사람들 눈에 어떻게 보이는지 알 수 없는데 수미는 스스로가 어른이라고 생각될 때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나를 어른으로 보지 않겠지. 사람들은 윤미 언니에 관해 물었고 수미는 선생님들이 언니에 관해 관심을 갖는 것이 무서우면서 조금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수미는 교실로 돌아가 가방을 챙겨 운동장을 가로질러 교문을 빠져나왔다. 학교를 나와 버스를 타고 매일매일 버스를 타며 지나는 풍경들을 나는 결코 잊지 않을 것이다. 수미는 그것을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게 작은 목소리로 입 밖에 내어 말했다. 언덕을 따라 등을 맞대고 지어진 집들과 아파트와 옥상과 다시 코너를 돌면 바다가 보였고 목욕탕의 굴뚝은 연기를 뿜고 있었다. 이것을 어딘가에 다 적어둘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 배를 타고 멀리 나가보고 싶어. 비행기를 타도 좋겠지만 어쩐지 비행기를 타는 것은 상상이 되지 않았고 짐을 싸서 배를 타고 먼 곳으로 가보고 싶어. 내가 배를 탈 때 아무도 손을 흔들어주지 않을 것이다. 그랬으면 좋겠다. 멀리 가면 나는 누구의 딸도 친척도 친구도 아닌 사람이 되어 계속 모르는 사람 처음 보는 사람들 사이에서 살게 될 것이고 수미는 정말로 그러고 싶었다. 그때의 수미는 젊고 어른이고 계속 젊고 어른일 것이다. 배가 고팠고 소매에는 여전히 탄냄새가 났다. 어느새 집에 도착해 가방을 내려놓고 손을 씻고 방에 드러누웠다. 일어나 방에서 숙제를 하다 라디오를 켰고 수미는 자신이 보지 못한 영화에 대한 이야기와 그 영화의 주제음악을 들었다. 작은 소리로 흘러나오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을 때 동생은 할머니 방에서 잠이 들어 있고 엄마와 할머니는 목욕탕에 갔고 깨어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나 수미는 라디오 옆에 머리를 대고 누웠다. 


―떡이야.


윤미 언니는 쑥떡을 들고 와 상 위에 올려두었다. 이상한 행동, 밤중에 대학생을 만나거나 편지를 주고받거나……


―오늘도 계속 잤어요?

―모르겠어. 

―모르겠다고요?

―응 모르겠어.

―왜 몰라요 자고 안 자고를?

―그럼 잤나보다. 학교는 잘 다니고 있어?

―당연하죠.

―너는 이상한 일 없는 거야?

―무슨 이상한 일이요?

―이상한 일. 마음이 괴로운 일.

―모르겠어요.

―왜 모르는데 힘들고 안 힘들고를? 

―그걸 모르겠어요.

―집 주변에 누가 서 있지 않아?

―그건 아예 모르겠어요. 나는 옆을 잘 안 봐요.


수미는 버스에서 보는 집들을 옥상 위 빨래들을 옥상 바닥의 색을 바다 위 배를 배에 탄 사람들을 보이지 않는 배에 탄 사람들을 마치 그 사람들이 보이는 것처럼 늘 떠올리려 애를 썼는데 집 주변에 누가 있는지 지나는지는 늘 아무 기억이 나지 않았다. 나는 눈앞만을 보는 걸까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걸까. 수미는 혼자서 계속계속 걷고 싶었고 그러다 어른이 되면 먼 곳에 있고 싶었다. 담임 선생님이 한 이야기는 아무에게도 하지 않을 것이다. 전화벨이 울렸고 전화를 받으러 할머니 방으로 갔다. 동생은 자다 일어나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고 전화를 받았을 때 야, 니 누군데? 니가 조윤미야? 하는 아마도 엄마 또래의 여자 목소리가 들렸고 누구신데요? 라고 묻자 누구신데요? 반문하더니 얼른 바꿔봐라 하는 소리와 수미는 전화 잘못 거신 것 같다는 말을 했다. 뭘 잘못 걸어 집구석이 이상한갑다. 어린아가 맹랑하게 참 대꾸를 잘하네. 수미는 계속 쏟아지는 욕을 듣다가 전화를 끊었다. 무서웠는데 그렇지만 순간적으로 드라마 주인공이 된 기분이 들었다. 괴로운 일을 겪는 불쌍한 사람이 되어 나를 괴롭히는 이들의 전화를 울면서 받는 사람이 되었다. 그러나 전화를 끊자 곧이어 심장이 떨리고 무서워 눈물이 났다. 왜 그런 생각이 들었을까. 이런 전화통화는 드라마에서나 보았기 때문이었다. 화를 내서 사람을 찾고 엄청난 잘못을 한 사람을 벌주고 수미는 잘못이 없었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엄청난 잘못은 상상할 수 없었다. 이어서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다시 걸려온 전화는 같은 반 정승이었다. 정승이는 주말에 도서관에 가자고 말하며 뭔가 말하려다가 나중에 보자고 인사를 하며 끊었다. 아니야, 그냥 생각나서 전화했다 하고 말했다. 알았다, 그래 주말에 보자.

윤미 언니는 방으로 갔는지 없고 상에는 쑥떡 한 조각이 남아 있었다. 둥근 상 위에 둥근 접시 위에 얇은 상자 같은 녹색 쑥떡이 정물 같았다. 수미는 그것을 그릴 수 없고 우물우물 먹었다. 수미는 아무것도 알고 싶지 않았고 그런데 이미 다 알아서 더 알 필요가 없는 상태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수미가 자주 하는 생각이 있었다. 그것은 커다래서 입이 보이지 않는, 그 정도로 커다란 물고기 입속으로 사람들이 배낭을 메고 유유히 헤엄쳐 들어가는 것이었다. 물고기는 너무나 커다래서 바닷속이었지만 왜인지 공기도 부족하지 않았고 사람들은 배낭에 싸온 자신의 물건들을 물고기 뱃속에 부리고는 그러니까 책상 의자 이불 같은 것을 잘 정리해두고 살았다. 그 바다는 부산일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부산일 수도 있다. 그 물고기가 실은 영도였다던가, 전래동화는 그런 식이지 않나 싶지만 아무튼 영도일 리는 없다. 수미는 거기서 친구들을 만나고 친구들은 모두 엄마 아빠가 없고 동생도 없고 그러나 모두 서로를 사랑했고 격려하고 아꼈다. 수미는 가끔 다시 빈 배낭을 메고 유유히 헤엄쳐 나와서 길을 걷고 먹고 싶은 것을 사 먹었다. 떡볶이와 순대와 칼국수를 사 먹었다. 김치볶음밥을 사 먹고 비빔칼국수를 사 먹었다. 그리고 그때가 되면 자신이 알지 못하는 먹어본 적 없는 음식들, 어디선가 메뉴만 본 팔보채와 양장피와 난자완스 로바다야키 치즈케이크 그리고 스테이크와 라자냐와 비엔나커피와 위스키를 먹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게 할일들을 하고 나면 수미는 배낭을 채워 다시 물고기 배 안으로 들어갔고 그러다 다시 나와 순대를 사 먹고 돈가스와 라면, 와플과 도넛을 사 먹었다. 맛있는 것을 먹고 걸으며 바닷바람을 맞기도 하고 그러다 수미는 또다른 사람들을 만나 외국으로 간다. 거기는 일본이기도 했고 어떨 때는 알래스카, 어떨 때는 독일일 때도 있었다. 또 어떤 때는 포르투갈이었는데 배와 항구가 있는 거리일 때가 있었고 그래서 수미는 그곳이 바로 포르투갈이라고 생각했다. 수미는 외국에서 일을 하고 조그만 방을 얻고 친구들을 만나고 그렇게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물고기 뱃속에서 함께 살던 친구를 우연히 길에서 마주치고 그들은 시간이 지났지만 서로를 알아보고 그들은 그 짧은 순간 서서히 물고기로 변했다가 다시 젖은 물방울이 되고 길 위에서 사라진다. 수미와 친구는 잠시 길 위에 빗방울 같은 자국을 남기지만 바람이 불고 해가 들면 그 자국도 곧 사라지고 만다. 그러나 또다른 이야기에서 그들은 서로를 알아보고 껴안고 울다 웃으며 안부를 묻고 물고기 배 안에서의 일은 모두 잊은 듯한 각자의 바쁘고 온전한 삶을 나누고 이것이 영원한 끝임을 이해하고 헤어진다. 수미는 그런 생각을 매일같이 했다. 매일매일 반복하고 또 했다. 


정승이는 단맛이 나는 부드러운 계란말이와 소시지볶음 우엉조림 같은 것을 자주 싸왔는데 엄마가 일본인이어서 중학교에 들어와서야 김치볶음밥을 처음 먹어보았다고 했다. 떡볶이도? 떡볶이는 먹어봤지. 두 사람은 도서관에서 책을 보다 말다 하다가 지하 매점에서 김치볶음밥과 라면을 사 먹었다. 정말 맛있었다. 왜 맛있지? 두 사람은 맛있다 맛있다 하면서 남기지 않고 모조리 다 먹었다. 왜 이렇게 맛있을까 정말 맛있었다. 정승이는 자판기에서 커피를 사주겠다고 했다. 두 사람은 커피를 마시며 쓰고 달고 맛있다고 생각했다. 오늘은 많이 춥지 않았고 어쩐지 건물 안이 더 추운 느낌이었다. 해가 많이 드는 날이었다.


―너네 이모 있잖아.

―응.

―너 이야기 다 들었어?

―뭐가?

―아예 모르는 거야?

―모르겠다. 나는 잘 모르는데.


정승이는 예전에 용두산공원 근처 미문화원에 불을 내서 잡혀간 사람 중 한 명이 이모라고 알려주었다. 수미는 아, 나는 잘 몰랐다, 그런 이야기를 집에서는 안 해서 잘 몰랐다. 말하며 조금 놀란 얼굴을 했고 그것은 모두 사실이었지만 수미는 자신이 거짓말을 하는 사람처럼 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나도 다른 데서 들었거든. 근데 그런 일이 있었다는 거 기억이 안 나서 무슨 말을 하는 건데? 하고 다시 물어봤었어.

―나는 잘 모르겠다. 

―예전에 국민학교 다닐 때 이야기 아닌가?


정승이는 어릴 때 일들은 잘 기억이 안 난다고 하였다. 수미는 어릴 때의 일들이 잘 기억이 났다. 동생과 길을 잃어버렸던 것 동생이 동물원의 기린을 좋아했던 것 엄마와 백화점에 갔던 것 아빠가 뒤늦게 와서 갈비를 사주었던 것. 정승이의 말을 듣고 생각해보면 사실 수미는 별로 놀랍지 않은 것 같다. 왠지 사실 이런 일이지 않았을까, 엄마가 돌려서 말하던 것들 언뜻언뜻 어디선가 들었던 어른들의 대화 같은 것들이 맞춰지며 이런 거였구나 싶었고 이런 순간을 왠지 기다렸던 것 같기도 했다. 이미 어느 정도는 알고 있는 일이었지만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들으니 그렇게 대단한 일인가, 수미는 순간적으로 앞으로 다 망한 걸까 어딘가로 붙잡혀 갈까 열심히 해도 누군가 나를 방해하게 될까 하는 생각이 들다 말았다. 언니의 얼굴을 보며 이제 다른 미래는 없다고 생각했던 것처럼. 그런 식으로 나도 끌려들어가게 되는 걸까? 마음 깊은 곳에서는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그 순간은 정말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는 도망갈 것이다 나는 물고기 뱃속으로 들어갈 것이다. 아무도 나를 모르고 교실 안 시계처럼 살고 싶기도 했고 시간이 되면 당 당 울려서 모두가 나를 쳐다보게 만들고 싶기도 했다. 우습다. 수미는 자신이 갈 곳이 있다는 결국의 마지막의 순간에 갈 곳이 있다는 생각을 했다. 정승이는 괜히 말했나? 다 아는 줄 알았다. 수미는 모르는데 몰랐는데 근데 괜찮다고 말했다. 종이컵은 이미 식었고 이건 추운 걸까? 아직 춥지 않은 걸까? 수미는 바다를 향해 걸으며 바람이 마구 자신을 할퀴어놓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이렇게 사라져버릴지도 몰라 누가 바닷속에서 나를 건져갈지도 몰라 수미는 그런 생각으로 옆에서 친구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채 바닷바람에 머리가 마구 헝클어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무 말 없이 잠시 앉아 있다 두 사람은 코코아를 뽑아서 한 잔을 나눠 마시고 버스를 타고 집으로 왔다. 집으로 가는 골목에는 차가 한 대 주차되어 있었고 이것이 언니가 말하던 이상한 일일까 생각했고 언제 거짓말을 해야 할지 그런데 그것이 꼭 거짓말일까 내가 뱉게 될 말이 거짓말일까 생각하며 수미는 집으로 들어갔다. 나는 나의 얼굴이 몇 살로 보일까 내가 너무 어려서 아무데도 갈 수 없다는 것이 그런데 나는 금세 나이를 먹어버리는 것은 싫었고 어른이면서 계속 어른인 너무 나이를 먹지 않은 어른으로 살다가 어느 날 죽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때가 몇 살일까 고등학교에 가고 대학교에 가고 수미는 스물일곱 살쯤 되면 그게 나이를 너무 먹지 않은 어른이 된 거 아닐까 생각했다. 윤미 언니는 공부를 잘했고 삼촌들이 대학도 보내주었다. 그런데 이제 학교도 못 가고 집에 있다. 수미는 대학에 가보고 싶었고 외국에 가보고 싶었다. 정승이는 엄마 아빠와 일본에 가본 적이 있다고 했다. 도쿄에 가보았고 도쿄 디즈니랜드에 가보았다고 했다. 나도 일본에 가보고 싶고 하와이와 시애틀에 가보고 싶다. 런던과 토론토에 가보고 싶다. 밴쿠버와 로스앤젤레스에 가보고 싶다. 수미는 먼 여러 곳에 가보고 싶고 수미는 여러 외국을 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