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회

무척 리스본 같았다 리스본이 무척 부산 같은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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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최명환을 처음 만난 곳은 부산 중구 대창동 부원아파트 안 부원목욕탕이었다. 나는 탕 속의 최명환을 보며 희고 큰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오십대 후반인가 아니지 육십을 넘긴 걸까 주변의 비슷한 나이대의 얼굴들을 차트처럼 넘기며 짧은 순간 최명환의 나이를 가늠해보려다가 관두었다. 나이가 오십대건 육십대건 그와 무관하게 희고 키가 크다는 것이 더 두드러지는 사람이었다. 귀 위로 올라간 짧은 커트의 흰 얼굴과 그보다 더 흰 몸의 그 사람은 눈을 감고 온탕에 앉아 있었다. 뜨거워서 살이 익을 것 같아. 나는 속으로 일부터 육십까지를 셌다. 평일 오후 목욕탕 안 사람들은 몇 명 되지 않았고 다섯 명 정도일까 나는 그래도 힘을 내어 온탕에서 버티려 애를 쓰며 그런데 왜 애를 써야 할까 왜냐하면 어쨌거나 이미 들어와버렸기 때문이었다. 발을 들인 것이라면 일단 애를 쓰자. 그런 생각으로 나는 내 앞의 이 사람이 나갈 때까지는 버텨보자고 다짐하며 다른 생각을 해보자 다른 것들 뜨겁다는 것을 잊게 해줄 다른 것들을 생각해보자고 그렇게 결정했다. 탕 안으로 몸집이 작은 짧은 파마머리 할머니 한 분이 들어와 몸에 물을 조금씩 끼얹었다. 뜨거웠지만 발끝부터 몸이 서서히 따뜻해지는 것이 좋았고 그렇게 참을 만하다는 생각이 들면 뜨거운 기운이 숨막히게 느껴져 도저히 견딜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이 들고 바로 나가고 싶어졌다. 나는 여러 생각들 나의 앞날 해야만 하는 일들 급하지 않더라도 언젠가는 정리해야 할 것들 시원한 물 당장 나가서 먹을 것 먹고 싶은 것 먹으려고 생각한 것들을 생각했고 그 생각들은 언제 하더라도 늘 집중하게 되는 주제였지만 탕은 그럼에도 뜨거웠고 둘 중 누구도 온탕을 떠나려 하지 않았다. 나는 더이상 참지 못하고 탕에서 나와 자리로 돌아왔다. 몸을 한번 더 씻고 밖으로 나가 물을 한 잔 마시고 돌아와 내 자리에 앉아 조금 쉬었다. 


몸이 희고 키가 큰 사람은 내가 사우나에 들어갔을 때도 먼저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아까는 뜨거운 거 잘 참던데?

―아뇨, 너무 뜨겁던데요. 어떻게 그렇게 오래 계세요?

―가만히 있으면 안 뜨거워요.


몸이 희고 키가 큰 그 사람은 내 몸에 자기가 가져온 무척 좋다고 하는 외국 어디서 사왔다는 소금을 발라주었다. 나는 몸에 발린 소금을 문지르며 소금이 녹아가는 것을 보았다. 소금은 몸 위에서 반짝이다 곧 녹아 물방울이 되었다. 이번에는 그가 먼저 사우나를 떠났고 나는 소금이 완전히 다 녹을 때까지 몸을 문지르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시 샤워를 했을 때 소금을 문질렀던 몸이 부드러워서 이거 정말 좋은 소금인가보다 하는 생각, 아무 소금이나 문질러도 되는 거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들을 하다가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 


―어디 사는데? 여기는 오는 사람들이 자주 오는 곳인데.


몸이 흰 사람은 내 옆자리에 앉아 있었고 얼굴에 팩을 한 채로 때를 밀고 있었다. 조금도 안 쉬네. 정말 부지런하시구나. 


―도와드릴까요? 


나는 그의 등을 밀어주며 서울 사는데 부산에는 잠시 일이 있어 내려왔다고 말했다. 아니 그런데 왜 이런 데로 온 거냐, 목욕을 좋아하면 온천장에는 안 가냐, 신세계 센텀에 있는 곳도 좋다, 무슨 일을 하느냐 질문은 이어졌고 나는 근처 호텔에서 묵는데 걷다가 그냥 들어왔다 직업은 회사원이라고 대답하였다. 그러게 나중에는 온천장에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목욕탕에 들어오기 전 나는 부원아파트 주변을 걷고 있었다. 오래된 건물들을 보면 늘 들어가보고 싶었는데 그중 부원아파트 아니 부원맨션인가 아무튼 그곳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내가 묵은 호텔의 창을 열면 정면에 부원아파트가 보였고 아파트 중간에 목욕탕이라고 쓰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파트 안에 목욕탕이 있는 것일까? 그게 어떤 식으로 가능한 거지 생각하며 나란히 또 가끔은 언덕을 따라 들쑥날쑥 지어진 오래된 건물들을 창 너머로 바라보았다. 호텔에서 커피포트에 물을 끓여 커피를 마시며 이제 슬슬 나가야 할 텐데 생각하며 밖을 내려다보았다. 정면으로 보이는 아파트까지 가려면 어떤 길을 따라가야 하는 것인지 머릿속으로 대략 그려보았다. 그런 식으로 들어가보고 싶은 곳들이 몇 군데 있었다. 용두산아파트 안으로 들어가보고 싶었고 아파트 계단을 올라 내 집인 것처럼 문을 열고 들어가 한참을 바닥에 누워 시간을 보내보고 싶었고 남포역 근처를 지날 때마다 보는 부산데파트 안으로도 들어가보고 싶었고 그곳으로 들어가 복도에서 아래층을 내려다보고 싶었고 그러다 문을 열고 방안으로 들어가 창밖으로 보이는 것들이 무엇인지 자세히 보고 싶었다. 아마 롯데백화점이 보이겠지 롯데백화점 옥상에서는 바다가 보이는데 부산데파트 어딘가에서도 바다가 보일까 생각하다가 그런 식으로 들어가보고 싶은 곳들을 하나씩 떠올렸다. 

부산데파트 지하는 식당이었고 나는 지하도에서 밖으로 나가지 않고 부산데파트 지하 식당가로 들어가 밥을 먹었다. 문을 밀고 들어가자 오래 머무른 공기의 냄새가 났고 된장찌개와 제육볶음을 파는 비슷해 보이는 식당 중 가장 안쪽 식당에 자리를 잡았다. 된장찌개를 시켰는데 비빔밥을 시킬걸 하는 생각을 하다가 이제 하루가 지났고 남은 휴일은 무얼 하지 머릿속으로 일정을 정리하려 했지만 때마침 테이블에 커다란 보리차 주전자가 탕 소리를 내며 놓였고 커다랗고 따뜻한 주전자를 보자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아졌고 보리차를 마시자 반찬이 나오고 상추가 나오고 앞으로의 일을 생각할 틈도 없이 상 위에 빠짐없이 차려진 밥을 먹기 시작했다. 

밥을 먹고 나와 부산데파트 일층의 가게들을 구경하였다. 수석을 파는 가게와 오래된 동전을 파는 가게에서 구경을 하는 듯 마는 듯하며 소극적인 자세로 가게 앞에 서서 작고 신기한 물건들을 구경하였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상사 팻말을 단 사무실이 가득한 층에서 내려 용건이 있는 표정으로 그 사이를 오가다 내려왔다. 아무도 내 앞을 막지 않았고 누구도 나를 수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나는 평범한 차림의 여성이고 아마도 아이 다음으로 가장 수상하지 않은 그룹에 속할 것이다. 


그뒤로 들른 곳은 용두산아파트였다. 부동산에 연락해 매물로 나온 용두산아파트에 관해 물었을 때 부동산 주인이 그곳은 방금 나갔다고 말하였다. 그래도 나중에 비슷한 곳 나오면 보고 싶어서 그런데 한번 볼 수 없나요? 묻자 그는 내부를 보여주는 것을 허락해주었다. 부산역에서 차이나타운을 지나 중앙동을 걷다 광복동 남포동을 향하면 국제시장 근처에 용두산아파트가 있었다. 옛날 아파트들은 몇 세대 되지 않는 한두 동의 건물이 도심에, 왜 여기 있는 거지? 그런데 아파트라고 쓰여 있어라는 느낌을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주었고 용두산아파트는 일층 대부분이 옷가게여서 아파트라는 간판을 보지 않으면 그곳이 아파트인지 알아차리기 힘들었다. 용두산아파트를 향해 가며 옛날 유나백화점 건물이었던 곳을 지나고 이 건물 육층 남자 화장실에서 82년 한 대학생이 유인물을 뿌렸다는 것을 떠올렸다. 거기서는 미문화원 전경이 보였을 것이다. 현재 그 건물에는 은행이라는 간판이 붙어 있지만 건물 내부에는 임대와 출입금지 현수막이 곳곳에 붙어 있었다. 도심 한복판에 ‘임대’라는 문구가 붙어 있는 건물을 보니 기분이 이상해졌다. 왜 옆 건물은 아니 이 주변 대부분의 건물은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데 이곳은 지나갈 때마다 문이 닫혀 있고 ‘임대’라는 문구가 붙어 있을까. 

용두산아파트 매점 앞에서 부동산 주인을 만났다. 그는 내가 볼 집에는 은행에 다니는 젊은 남자가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다고 하였다. 내가 처음 말한 집은 이미 나갔고 다른 층의 월세로 나온 집을 보여주겠다고 하였다. 아들은 회사에서 늦게 돌아오고 어머니는 칭다오로 여행을 가서 어렵게 허락을 받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하였다. 나는 왜 여기서 살려고 하는지 뭐하는 사람인지에 대해 몇 가지 대답을 준비해두었다. 서울에서 회사를 다니며 개인 작업을 하는데 내년에 회사를 그만두고 프리랜서로 일할 예정이라 부산으로 집을 옮기려고요. 서울은 집값이 너무 비싸잖아요. 회사를 그만둘 예정이라는 것과 부산으로 곧 집을 옮기려는 것만 빼면 거짓말은 없으므로 이건 진짜야라고 스스로 다짐을 했다 회사를 그만둔다는 것도 부산으로 집을 옮기려는 것도 거짓말은 아니고 언젠가는 아니 생각보다 일찍 벌어질 일이 아닐까, 말하다보니 내 말에 익숙해진 건지 점점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작업실을 부산에 둘 수도 있지 않을까. 아니면 내가 곧 줄줄 대답할 것처럼 부산으로 이사를 가는 것이 아예 일어날 수 없는 일인 것도 아닌 것이다. 부동산 주인은 익숙하게 번호 키를 누르고 나는 깨끗하게 정리된 다른 이의 집으로 들어갔다. 아마 은행에 다니는 젊은 남자의 방일 것 같은 왼쪽 방은 잘 세탁되고 다림질 된 와이셔츠와 정장 바지가 이단 옷걸이에 나란히 걸려 있었다. 방에는 옷걸이와 침대 컴퓨터와 책상뿐이었고 불필요한 것이 없어 보였다. 깨끗하고 해가 잘 들어오지 않는 방이었다. 거실과 아마도 어머니가 쓸 것 같은 안방을 보고 화장실 불을 켜보고 물을 틀어보고 변기 물을 내려보고 보일러를 틀어보고. 주인은 왜 젊은 사람이 이렇게 큰 곳에서 살려고 하냐고 더 작은 곳은 필요 없냐고 묻고 나는 침착하게 더 작은 곳도 좋다고 좋은 곳 나오면 연락 달라고 말하고, 그런데 작업실로도 쓸지 몰라서 큰 곳을 보고 있다고 자연스럽게 대답하고 그런데 뭐하는 사람이냐는 질문에는 개인 작업을 한다고 말했다. 나는 그림을 그리지는 않지만 그림을 그리는 사람으로 생각해도 좋을 느낌으로 얼버무렸다. 그 외에도 몇 개의 질문이 따라왔지만 못 들은 것처럼 시끄러워서 안 들리는 것처럼 아, 네 네라고 대답하며 집안 구석구석을 살폈다. 안방에도 텔레비전이 있고 거실에도 텔레비전이 있었다. 거실 중앙에는 샹들리에를 닮은 화려한 조명이 달려 있었고 불을 켜자 따뜻한 주황색 빛이 공간을 감쌌다. 커다란 텔레비전 옆에는 금붕어가 노는 어항이라고 해야 할지 수족관이 있었고 맞은편에는 가죽소파가 있었다. 나는 잠시 소파에 앉아 창 너머 원불교 교당을 보았다. 그 순간 실내가 무척 조용하다고 생각했다. 오래된 아파트들은 벽을 두껍게 짓는가보다. 금붕어가 노는 수족관이 거실에 있는 사십 평대의 집을 구석구석 열심히 보았다. 부엌에는 매실장아찌를 담근 유리병이 네 개나 있었다. 아파트 내부를 구경하고 양말 신은 발바닥으로 바닥 난방을 신경쓰는 척하며 그러나 신경을 쓰다보면 정말로 집중하게 되고 그러다 창가로 가 멀리 내다보아야 보이는 지금은 근대역사관이 된 부산 미문화원 건물을 보았다. 

어디에서는 무엇이 보이고 또 그곳에서는 다른 것이 보이고 무언가를 보기 위해 높은 곳에 오르고 숨기 위해 창문을 닫고 몸을 숙인다. 그런데 어떤 장면은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그런 것은 찍을 수도 찍힐 수도 없었다. 보는 사람은 있었을까 그것조차 알 수 없다. 하지만 어디서 누가 무엇을 보고 있었을지 아무도 보지 못한 것이 나중에 무엇을 남기는지 우리는 결코 확신할 수 없을 것이다.


백화점 건물 육층에서 미국에 80년 5월 광주에 관한 책임을 묻는 유인물을 뿌리던 남자는 자신의 동료들이 건물 일층으로 들어가고 이후 계획대로 불길이 치솟고 연기가 건물을 에워싸는 것을 보았을 것이다. 바람이 많이 부는 날이었고 무엇을 얼마나 뿌렸을 때 어느 정도의 결과가 발생하는지 그들은 정확히 예측할 수 없었고 그것을 대체 어디서 어떻게 배우겠는가. 그들은 방화 예행연습을 하고 인화성이 낮은 석유에서 휘발유로 변경을 하고 미문화원 방화 시설과 비상구를 확인하고 불이 크게 번지지 않을 것이라 예상하고 파악하고 결정하고. 그러므로 그것만으로 이후 누군가 죽고 다치는 것을 그들은 예상하지 못했다. 아직 그 사실을 알지 못하고 상상도 못하는 육층 남자 화장실의 남자는 그곳에서 보이는 것을 떨리는 마음으로 지켜보았을 것이다. 그들은 사건이 정리되면 각자 학교로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기로 마음을 먹었고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 생각하며 그는 미문화원을 지켜보고 있다. 실제로 인화물질을 들고 건물 일층으로 들어갔던 이들은 스무 살 안팎의 젊은 여성 네 명이었고 불을 붙인 사람도 그 네 명이었다. 불이 붙던 순간은 그 네 명만이 어쩌면 네 명 중 한두 명만이 보았을 것이다. 백화점 육층에서 남자는 그 모습을 지켜보며 유인물을 뿌렸고 그는 후에 주동자로 지목되어 사형을 선고받는다. 국도극장에서는 당시 의대생이던 또다른 남자가 같은 내용의 유인물을 뿌렸다. 그는 이후 부산에서 빈민들을 위한 치료를 하는 의사가 된다. 

만약 우리의 모든 순간이 우리의 모든 현장이 사진으로 기록된다면 우리는 더 잘할 수 있을까. 찍히는 것에 익숙해져 어쩌면 어느 순간부터는 찍힌다는 것을 잊게 될지도 모른다. 연기로 에워싸인 건물의 사진은 있지만 기름통을 들고 미문화원으로 가는 네 명의 여자들의 사진은 없을 것이다. 그들이 불을 붙이는 사진도 이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기름통을 든 젊은 여자를 보았다는 증언이나 해당 학생을 보았다는 목격담은 인근 주민 사이에서 여러 건 접수되었다. 미문화원의 경비도 비슷한 증언을 하였다고 한다. 당시 그곳에는 도서관이 따로 있었고 책이 무척 많았고 학생들이 여럿 있었다고 했다. 한때 그곳은 영사관의 역할을 대신하였고 비자 업무도 맡아서 하였다고 한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문밖과는 다른 곳이었을 그곳은 1929년 동양척식주식회사 부산 지점으로 지어졌고 그때 그 건물은 일본어만을 이해하고 구석에서 누군가는 조선말을 했지만 그것은 말로 처리되지 않았다. 1949년부터는 미국 해외공보처 미문화원으로 불리며 건물은 어느새 영어를 이해하게 되고 서서히 한국말을 이해하고 처리하게 되고 전쟁중에는 미 대사관으로 역할을 하다 98년 폐쇄되기 전까지는 문화원으로 역할을 하였다. 문화원을 오가는 영어를 하는 사람들과 영어를 하려는 사람들과 책들과 책 사이의 사람들. 그때 이 주변은 어땠을까 지금처럼 사람들이 많이 오갔을까 생각하며 다시 집안으로 고개를 돌렸다. 소파는 푹신했고 잠시지만 이미 이곳에 익숙해져 이곳은 나의 거실이며 나의 어머니는 칭다오로 친구들과 여행을 갔고 나는 어머니가 여행에 가기 전 미리 용돈을 환전하여 드렸고 어머니에게 뭐 사오지 말고 맛있는 것만 많이 잡수고 오시라고 말했고 나는 은행에 다니지만 오늘은 오랜만에 휴가를 냈고 어머니는 나에게 기회만 되면 얼른 결혼을 하라고 말하고 나의 중학교 친구는 근처 원룸에서 푸들을 키우고 푸들은 나를 따르지 않지만 우리는 가끔 저녁에 함께 산책을 하며 커피를 마시고 나는 인생에 큰 불만이 없는데……


―어머니 칭다오에서 언제 오신다고 했지?

―일요일에.

―칭다오가 청두야?

―청두 아냐? 청도야?

―모르겠네. 암튼 맥주 유명한 데 맥주 맛있는 곳이잖아.


친구의 푸들은 걷다 힘들면 친구를 바라보았고 친구는 칭다오 이야기를 하다 개를 안았다.


용두산아파트에서 나와, 주인은 아파트 몇 개를 더 보여준다고 하였다. 나는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며 어떡하지 생각하였지만 그는 곧 울리는 전화를 받더니 미안하다며 급하게 계약을 하러 온 사람이 있다고 말했다. 나는 괜찮다고 조금만 더 고민해보고 연락드리겠다고 말했다. 


―맘에 안 들어요?

―아니, 좋은데 막상 보니 기대만큼 해가 많이 안 들어서요.

―그 정도면 해가 많이 드는 건데요? 거기 좋은 물건인데. 그런 데는 더 비싸지.

―그렇겠죠? 아무래도.

―그렇지 해가 더 잘 들어오면은 아무래도 더 비싸지. 근데 방금 본 거 금방 나갈 거야. 이렇게 좋은 건 금방 나가요. 암튼 연락하세요.


나는 고개를 숙이고 그는 차를 가지러 갔다. 나는 부동산 명함을 지갑에 넣고 어쩐지 지쳐 근처 카페로 가 커피를 마셨다. 모르는 길과 골목이 문을 열면 열리는 집들이 계단과 옥상이 내 어깨를 붙들고 내 등뒤에 서서 이걸 봐, 라고 너는 너 자신이 알던 사람이 아니라고 너는 아직 너의 집이 어디인지 몰라 이곳으로 가라고 손에 열쇠를 쥐여주고 돌아서서 자신이 갈 길을 아마도 그 갈 길은 누군가에게 새로운 문을 열게 하는 길임이 분명한 그 길을 가는 것 같았다. 이게 너희 집 열쇠야. 열쇠를 손에 들고 가던 발의 방향을 틀고 그리고 계속 걸어가. 문을 열면 처음 보지만 익숙해질 옷들과 가구들이 너를 기다리고 있어. 의자에 앉으면 처음 보지만 곧 사랑하게 될 사람이 문을 열고 들어와 당신의 이마에 입을 맞추게 될 거야. 당신은 그 인생을 살도록 해. 나는 내 것 같지도 남의 것 같지도 않은 열쇠를 보았다. 헤매고 걷고 걸어도 오늘밤에는 어제 묵은 호텔에서 잘 것이라는 것을 알았으나 내 등뒤에 서 있던 거리들은 내 뒤에 서서 내 어깨 위에 손을 얹었다. 호텔 방문을 열 때 그 손은 내 어깨를 붙잡고 나를 돌려세울 것이다. 왠지 커피가 몸에 받지 않아 유자차를 다시 주문하고 달고 따뜻한 것을 마시며 오늘 갈 곳 내일 갈 곳을 생각하고 지도에서 거리를 확인하다 말았다. 시장에서 옷을 구경하고 울로 된 바지를 하나 사고 중앙역을 향해 걸었다. 


부원아파트는 입구가 여러 곳이었다. 가로가 긴 형태로, 1-1, 1-2 이런 식으로 구역이 나뉘어 있었고 해당 구역마다 입구가 있었다. 큰길에서 아파트를 향해 들어가면 주차장 사이로 입구가 보였고 입구 뒤의 계단을 따라 올라갈 수 있었다. 주차장 앞에는 경비 아저씨가 보였고 멀리 떨어진 입구로 가려다 나를 본 경비원 아저씨가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나는 따라 숙이며 당신 뭐하는 사람이야라고 물으면 저기 목욕탕에 어떻게 들어가나요라고 물어볼 준비를 해야지 했던 것이 기억났다. 그는 내게 그런 것을 묻지 않았고 주민이나 손님이겠거니 하는 얼굴로 반갑게 인사하며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언제라도 다른 누가 같은 질문을 하면 나는 또 목욕탕이 어디 있나요라고 대답해야지 다짐했지만 이제 안심해 너는 지금 세상에서 제일 수상하지 않은 사람처럼 보일 것이야 스스로에게 여러 번 말해주었다. 안심해도 좋습니다 당신은 누구를 괴롭힐 문제를 일으킬 힘도 영향력도 전혀 없습니다. 

옆으로 긴 아파트는 무섭지 않다. 나는 무서워서 계단을 잘 오르지 못했던 어릴 때를 떠올렸다. 늘 겁을 내며 한 층 한 층 오르며 뛰듯이 집까지 향했다. 옆으로 긴 아파트는 누군가 나타나도 옆으로 옆으로 도망을 가며 소리를 칠 수 있을 것이다. 계단식 아파트는 괴물이 나타나도 문을 열지 못하면 잡아먹힐지 몰라. 그런데 이곳은 계단을 오르고 옆으로 도망가고 다시 옆 통로로 오르거나 내려갈 수 있다. 괴물이 나타나도 옆으로 위로 아래로 다시 옆으로 도망갈 수 있을 것이다. 중구어르신협회 사무실을 지났고 세계가정평화단 팻말을 지났다. 중구어르신협회 사무실에서는 정말로 모자를 쓴 어르신 둘이 문을 닫고 나왔다. 부산데파트처럼 상사 사무실도 몇 있었다. 아래를 내려다보면 경비원 아저씨가 웃으며 다른 주민과 이야기하고 있었다. 엘리베이터는 보이지 않고 엘리베이터가 있다면 나는 더 자연스럽게 이곳은 몇 층이고 꼭대기는 몇 층이겠구나 알 수 있겠지만 없으면 없는 대로 오르면 될 것이다. 걷다 뒤로 돌면 무서워서 옆으로 옆으로 뛰는 어린 사람 아직 덜 사람 같은 어린 사람이 지나가는 것 같았고 어릴 때 나는 계단을 무서워하고 또 무서워하며 계단을 올랐다는 그런 생각을 다시 하며 옆으로 뛰는 어린 사람을 응원하고 어딘가로 잘 도착할 수 있을 거야 분명 제대로 도착할 거야 확실하게 말하고 나는 이제는 무섭지 않지만 약간은 긴장된 마음으로 다시 계단을 올랐다. 계단을 오를 때 옆을 보면 옆 통로의 계단이 보였고 지금 누군가 올라간다면 내려간다면 서로의 오르내리는 모습이 바로 보일 것이다. 다음 층 입구 문에는 ‘유스호스텔’이라고 종이에 네임펜으로 적혀 있었다. 시시티브이로 쓰레기 버리는 사람을 확인합니다. 한 층을 더 올랐을 때 부원아파트 재개발 관련 회의 공지가 붙어 있었다. 회의 일자는 어제였다. 나는 잠시 주민으로 회의에 참석하는 상상을 하다가 말았다. 이곳은 70년대에 지어진 아파트였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오간 것일까. 그때부터 이곳에서 계속 살고 있는 사람도 있을까. 의외로 많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오르고 옆으로 걷고 아래를 내려다보고 다시 올라갔다.


잠시 후 최명환도 내 등을 밀어주었는데 그는 나에게 무얼 하며 돌아다니느냐고 물었다. 나는 시장 구경을 하고 가끔 성당에 가기도 하고 산책을 한다고 하였다. 당신은 무얼 하는 사람이고 왜 여기 있는가에 대해 오늘 마음속으로 준비를 많이 해서인지 나는 묻지도 않았는데 당장 이사할 것은 아니지만 집을 알아보고 있다고 먼저 나서서 말하였다. 그는 그럼 자신의 명함도 받으라고 하였다. 


―직업이 뭐라고 했지?

―회사원인데요.

―회사만 다녀요?

―회사도 다니고 뭐 이것저것 해요.

―어떤 걸 합니까?

―글도 쓰고요. 뭐 공부도 하려고 하고요.


그는 보여줄 집이 많다고 하였다. 밖에서 옷을 입고 있을 테니 기다리라고 하였다. 짧은 커트의 키가 큰 그는 베이지색 니트 스커트에 회색 스타킹을 신고 있었다. 나는 벌거벗은 맨 몸으로 그에게 다가가 쭈글쭈글해진 손으로 그의 명함을 받고 감사하다고 다시 고개를 숙였다. 손에 건 열쇠로 로커의 문을 열고 그가 보는 앞에서 명함을 지갑 안에 넣고 다시 문을 닫고 인사를 했다. 온탕에 몸을 담근 채 오늘은 명함을 두 개 받은 날이구나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다른 이들은 모두 나갔거나 사우나 안에 있어서 지금 목욕탕 안에는 나 혼자였고 혼자서 온탕에 몸을 담근 채 천장에서 물이 한 방울씩 떨어지는 것을 그때 그 소리가 울리는 것을 들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물방울만이 떨어지고 다음 물방울을 기다리는 것에 이상할 정도로 서스펜스를 느꼈다. 다음 장면은 무엇일까 생각하면서.  

다 씻고 나와 햄버거와 치킨을 사서 호텔로 돌아갔다. 햄버거가 든 봉투를 품에 안고 걸었다. 식지 마 식지 마. 따뜻했고 좋은 냄새가 났다. 호텔 문을 열었을 때 나는 어딘가에서는 생각지도 못한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 그곳에 있고 싶다고 바랐다. 옷을 벗고 가운으로 갈아입고 이전에 본 영화를 다시 보며 햄버거와 치킨을 먹었다. 고개를 돌려 거울을 보았을 때 목욕을 해서인지 얼굴에 윤기가 흘렀고 치킨을 들고 만족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샤워를 하고 한참을 욕조에서 몸을 담갔다 일어났을 때 살짝 어지러웠고 하루에 두 번이나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는 건 의외로 힘이 빠지는 일이네. 머리를 말리고 잠이 들었다. 최명환의 명함은 용두산아파트를 보여준 부동산 사장님의 명함과 함께 지갑 안에 있었다. 나는 지갑을 테이블 위 잘 보이는 곳에 올려두었다. 누군가는 그의 이름이 여자 이름이 아니라고 생각할 것이고 명함을 보고 그렇게 말할 것이다. 한편 많은 사람의 이름은 생각해보면 누군가 위에서 높은 곳에서 미리 정해준 것처럼 꼭 맞고 어울렸다. 우리가 이름과 사람을 함께 만나기 때문일까 나는 최명환과 그의 이름이 무척 잘 어울린다고 이유는 설명하기 힘들지만 그렇다고 생각했다. 꿈에서는 개 두 마리가 나를 열렬히 사랑했고 그들은 날 위해 집을 지키고 밥을 짓고 돈을 벌어왔다. 한 마리는 닥스훈트 느낌의 개였고 그는 묵묵히 나를 위해 할일들을 했다. 돈을 벌어오고 집안의 공사나 설비 같은 큰일들을 맡아 했다. 일을 하고 돌아와서는 말없이 밥을 해주었다. 흰 스피츠는 닥스훈트를 도와 내가 할 일들을 대신 해주면서도 나의 기분을 살피며 위로를 해주었다. 이불을 펴주고 이마에 손을 짚어주었다. 그 둘의 사이는 무척 좋았다. 나는 그들의 사랑을 무작정 받으면서도 그들의 사랑과 고백을 거절하고 내게는 이것으로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더 크고 확실한 사람의 사랑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개들은 나를 이해해주고 끝없고 한없는 사랑을 베풀어주었다. 내가 그것을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원하는 것과 어딘가 어긋난다고 하더라도 나는 그런 끝없는 사랑을 받고 싶었다.

 

일어나니 오전 열한시 반이 넘어 있었다. 최명환이 나를 어디에 팔아넘기지는 않겠지 나에게 사기를 치지는 않겠지 나는 늘 무슨 일이 벌어지는 쪽을 선택하는 듯하지만 겁이 나 집으로 얌전히 돌아오는 자기 자신을 믿으며 그에게 연락을 하였다. 그 사람의 자연스러운 적극성과 단호함이 궁금했던 것이다. 


어제 부동산에 들러보았기 때문인지 가본 적 없는 곳의 문을 열어보고 싶다는 생각은 계속되고 더욱 강해졌다. 다시 또 근처의 부동산에 들러 중앙역 근처의 아파트를 보고 싶다고 말했다. 부동산 주인은 아파트 말고 원룸이 괜찮다며 역 근처 신축 원룸 두 곳을 보여주었다.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하다는 것 말고는 서울과 다를 것 없었고 아마 도시의 원룸은 대개 비슷할 것이다. 그래도 아파트를 한두 곳 더 보고 싶다고 하자 꽤 오래 걸어올라가야 하는 높은 지대의 아파트를 한 곳 보여주었다. 그곳은 현재 살고 있는 사람이 없었고 비어 있는 아파트였다. 지대가 높다는 것 말고는 가격과 면적 모두 마음에 드는 곳이었다. 호텔에서 자고 일어나 나의 집이 아닌 곳을 계속 보다보니 정말로 어제의 사람이 건넨 열쇠를 사실 손에 쥐고 있는 것이 아닐까, 가던 발의 방향을 틀고 다음 집의 문을 열고 나에게 익숙한 웃음을 건넬 사람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텅 빈 그곳에 어디에 침대를 두고 옷장을 둘지 아예 돈을 들여 벽지와 바닥을 새로 하는 것을 그려보고 그 옆에 침대는 이곳에 두고 붙박이로 책장과 옷장을 짜는 것을 정말 이사를 할 것처럼 한참 생각했다. 조금 더 생각해보고 연락드리겠다고 인사를 하고 집들이 계단처럼 작은 높이 차를 두고 빽빽하게 들어서 있는 모습을 내려다보았다, 무척 리스본 같았다 리스본이 무척 부산 같은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