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회

새로운 것이 시작될 거야

최명환을 다시 만난 곳은 부동산이었다. 그는 중앙역 근처 부동산에서 부동산 사장과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그는 근처 제과점에서 사왔다며 사장과 빵을 나눠 먹고 있었다. 최명환보다는 어려 보이는 오십대 초반의 사장은 내가 들어서자 커피 마실래요? 묻고는 커피메이커의 커피를 잔에 따랐다. 최명환은 나를 목욕탕에서 본 친구라고 소개하였다. 그렇다 우리는 목욕탕에서 만난 사이이고 그것은 아무 사이가 아니라는 뜻인데 이상하게 돈독한 사이처럼 들렸다. 무화과와 올리브가 든 빵을 나눠 먹고 최명환은 세를 놓고 있는 곳의 상황을 주인과 점검하고 언제 그렇게 다 컸냐고 웃으며 부동산 사장의 딸 이야기를 하고 다 컸다는 딸은 손녀를 낳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최명환은 놀라고 사장은 이제 세 살이라고 말하고 그가 혹시 봐둔 방이 있느냐고 묻고 나는 어제 용두산아파트를 보았다고 말했다. 용두산아파트가 무척 마음에 들었다고 운을 떼고는 그런데 저는 그렇게 크지 않아도 되고요 중앙역 근처의 오래된 곳도 되고 그런데 너무 언덕으로 올라가는 건 힘들 것 같고요…… 그런데 내가 하는 말이 거짓말 같을까? 나는 지금 몹시 어색하게 말하는 사람인가? 나는 긴장을 해서 점점 입이 마르는 느낌으로 전세나 매매를 생각하고 있다고 마지막으로 덧붙여 말했다.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을 좋아해. 이전에 우리집에서 영화제에서 일하던 사람이 칠 년 넘게 거의 십 년을 살았어. 서울로 이사를 가도 한동안 방을 안 뺐다고. 지금도 부산 오면 연락해서 만나잖아. 


최명환은 커피 잘 마셨다고 말하며 웃으며 부동산을 나왔다. 제 친구들도 영화제에서 일했어요. 나는 굳이 말하자면 연말에 휴가 겸 부산에 놀러온 것이라고 해야 맞을 것인데 길에서 붕어빵을 사 먹다 붕어빵 아주머니로부터 화장실에 다녀올 테니 잠깐 기계를 봐달라는 이야기를 듣고 아 그러죠 뭐, 하고 기계를 봐주다가 일주일째 붕어빵을 팔고 있었다. 나는 언제 붕어빵 굽는 것을 배운 것일까. 나는 이 일에 언제 이렇게 익숙해진 것인지 때맞춰 팥을 넣고 붕어빵을 뒤집고 정확한 때에 기계에서 붕어빵을 꺼내 하나씩 철망에 올려둔다. 그리고 그것을 손님들이 오는 속도에 맞춰 경제적으로 정확하게 반복한다. 나는 친절하게 웃으며 붕어빵을 팔고 내가 능숙하게 만들어 판 붕어빵은 맛있었고 손님들은 계속 붕어빵을 찾고 나는 재료도 낭비하지 않고 그때그때 돈을 잘 벌고 맞은편에 원래 붕어빵 주인이 뿌듯하게 엄지손가락을 올리고 있었다. 내가 자랑스러운가봐. 

나는 최명환을 언젠가부터 선생님이라고 부르고 있었고 최명환은 선생님은 무슨이라고 하면서도 정정하지는 않았다. 어쨌거나 내가 직원도 아닌데 사장님이라고 부르기도 뭐했고 비슷하게 대표님도 어색했고 선생님이라는 호칭은 그에 비해 여러모로 적절해 보였고 이후 나는 그를 대부분의 경우 선생님이라 불렀으므로 편의상 최선생 혹은 선생님 가끔은 최명환이라고 부르겠다. 최선생은 내게 아직 내부 수리를 한 번도 하지 않은, 그러니까 시공 당시의 모습에 가까운 부산데파트 하나와 여러 번의 내부 수리를 거치고 최근 다시 한번 수리를 마친 부산데파트 하나와 비슷하게 두세 번의 수리를 거친 부원아파트 내부를 보여주었다. 

부원아파트는 큰길에서 들어가는 것과 아파트 옆으로 길게 이어지는 계단을 통해 뒤편으로 올라가는 것이 느낌이 크게 달랐다. 큰길가에서 주차장을 통해서 들어갈 경우 일층부터 층이 시작했고 가정집보다 협회 사무실 단체 사무실이 먼저 보였다. 계단을 올라 언덕 위에서 들어갈 경우 가정집이 보였고 현관문이나 분위기가 훨씬 아파트에 가까웠다. 호수는 칠층부터 시작했다. 언덕 쪽 입구에서 들어가면 한 층을 올라도 팔층이었고 두 층을 오르면 구층이었다. 중간에 다르게 들어가는 곳이 있을까 중간에 다른 건물로 연결되어 주소상으로 아예 별개의 건물이 나온다고 해도 어쩐지 놀라지 않을 것 같았다. 어릴 때 보던 외국 만화영화나 동화에서는 집안에 쥐의 집이 있고 다락이 있고 벽 안에 다른 곳으로 통하는 통로가 좁게 있었다. 실제로 그걸 쓴 사람들은 그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은, 집이 집으로 연결되고 복도 한복판에서 길을 잃기도 하는 곳에서 살고 있지 않았을까. 

내부 수리를 마친 부원아파트 안은 깨끗하고 친구들이 사는 원룸처럼 흰색 인테리어로 정리되어 있었다. 아무도 살지 않아 가구나 짐은 없었지만 테이블과 전기 포트 하나만 남아 있었다. 그는 서랍에서 컵과 인스턴트커피를 꺼내 물을 끓여 내게 주었다. 그는 전세를 줄 수도 있지만 현재 이곳은 여러모로 전세 세입자를 구하기 힘들다고 하며 내가 월세로 생각한―그러고 보니 나는 어떤 금액을 생각을 하고는 있었던 것이다―금액의 절반을 불렀다. 정말요? 소리가 자동으로 나왔지만 동시에 나는 지금 소액 사기를 당할 위기에 처한 것일까? 그런 것이 아니더라도 가격이 싸다고 내게 이것이 꼭 필요한 것인가? 그건 아닌데 생각하며 너무 좋은 조건이지만 며칠 더 묵으니 조금만 더 생각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틀 사이 세 군데의 부동산에 들러 비슷한 말로 시작해 같은 말로 대화를 마무리하였다. 그래요 그럼. 그는 밥이나 먹자고 하였다. 아파트를 나서기 전 뒤를 돌아보았을 때 집안의 공기가 따뜻하게 느껴졌고 공기는 따뜻한 노란색 누군가 벽 뒤에서 그것 봐라고 말하는 것 같다는 그런 착각을 했다. 그것 봐. 그는 내게 칼국수를 샀고 나는 그에게 커피를 샀다. 그날은 많이 걸어 피곤했고 바로 호텔로 돌아가 씻고 책을 보다 일찍 잠이 들었다. 그리고 다음날 서울로 돌아가는 기차를 타기 전 최선생이 소개한 그 집을 계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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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잠을 자던 윤미 언니가 광주에 가야겠다고 말한 것은 집에 온 지 두 달이 조금 지났을 때였다. 가끔 담임 선생님은 모든 것을 꿰뚫고 있다는 표정으로 수미를 바라보았고 수미는 그때부터 그 사람이 전혀 무섭지 않고 우스워지기 시작했다. 나는 너를 겁줄 수 있고 나는 너를 해칠 수 있다는 것을 학생에게 대놓고 드러내는 사람이 정말로 우스웠다. 하지만 우스워하면서도 수미는 알고 있었다. 우스운 인간이지만 정말로 자신을 해칠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이정숙 선생님은 어느 날 수미를 불러 잘 지내고 있느냐고 물으며 들국화의 테이프를 선물해주었다. 수미는 여전히 주말이면 정승이와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다 책을 보다 지하 매점에서 라면을 사 먹었다. 


―광주에 가본 적이 있는 거야?

―아니 처음이야.

―어떻게 가?

―버스를 탈 건데.

―가면 뭐하는데? 누가 있어?

―누가 있다.

―누군데?

―누가 있다고.


언니는 한 번도 만나지 못한 친구를 보러 광주에 가겠다고 하였다. 할머니와 엄마는 듣자마자 반대했다. 윤미 언니는 할머니도 알고 있는 고등학교 친구와 함께 가겠다고 하였다. 할머니는 결혼한 친구를 막 불러내면 안 된다고 했다. 언니는 다른 친구들도 같이 간다고 했고 할머니는 아무튼 제발 지금은 안 된다고 했다. 수미가 학교에 간 사이 이야기가 어떻게 진행된 건지 결국 언니와 광주에 함께 가게 될 사람은 수미로 결정되었다. 동네에는 광주에서 부산으로 시집와 살고 있는 아줌마가 있었는데 엄마는 그 아줌마의 언니네 집에 수미와 언니를 묵게 하였다. 수미는 아줌마의 고향이 광주인 것을 그때 처음 알게 되었다. 아줌마는 부산 말을 쓰고 아무튼 다른 아줌마들과 다를 것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수미는 멀리 가게 되었지만 생각처럼 즐겁거나 들뜨지는 않았다. 엄마가 자신을 너무 믿는다는 생각도 들었다. 왜 뭔가 하기 어정쩡한 일은 꼭 내가 하게 되는 것 같지? 솔직히 조금 무서웠고 대부분은 걱정이었고 약간 기대도 되었지만 언니와 둘이 계속 같이 있을 생각을 하니 어색하고 불편했다. 언니는 매일 잠을 잤고 가끔 새벽에 깨어 화장실을 왔다갔다했고 가끔 눈을 떠보면 수미의 옆에서 무방비한 표정으로 잠을 자고 있었다. 그러니까 수미는 아직 언니와 전혀 친하지가 않았다. 

학교에서 돌아와 책상에 앉으면 집에는 아무도 없고 언니는 자고 있고 수미는 오후의 이 시간을 바람이 부는 것과 비가 내린다면 비가 어떤 소리를 내며 떨어지는지를 가끔 이 시간을 완전히 기억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그것을 쓰고 쓰다가 누워서 생각하다가 누군가 올 때가 되면 그제야 숙제를 하기 시작했다. 고등학생이 되면 뭘 하지? 대학에 가면 어른이 되면 뭘 하지? 수미는 조용히 지내고 싶었고 그런데 멀리 가고 싶었다. 혼자 있고 싶었고 모르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이고 싶었다. 언니가 싫거나 귀찮은 것은 아니었지만 언니가 앞으로 다른 사람들처럼 무얼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언젠가 내가 멀리 가게 되었을 때 그러다 시간이 지나 집에 와도 언니는 잠을 자고 있을 것 같다고 수미는 생각했다.


토요일이 되었고 올림픽 이름을 딴 고속도로를 가로질러 수미는 언니와 같이 광주로 향했다. 언니는 그간 밖을 걸어다닐 수 있을까 걱정이 될 정도로 한 달 내내 잠만 잤는데 버스 안에서는 긴장이 되었는지 손톱을 뜯으며 앞만 보다가 어느새 잠이 들어 있었다. 머리를 창에 쿵쿵 부딪혀서 머리를 가운데로 옮기면 어느새 다시 쿵하고 창에 부딪혔다. 머리가 아프지 않아? 가방에는 아줌마의 언니의 남편에게 줄 외제 담배와 가족들에게 줄 어묵이 얼린 물병들과 함께 들어 있었다. 언니는 자신과 이름이 같은 친구를 만나러 간다고 하였다. 어떻게 알게 된 사람인데? 편지로 알게 됐다. 언니는 휴게실에서 토하고 수미는 화장실에 갔다 와서 엄마가 챙겨준 돈으로 호두과자를 사 먹었다. 언니는 사람이 많은 곳을 무서워했고 그러면 우리는 헤엄을 쳐서 물고기 배로 들어갈 거라고 그런 생각을 하면 된다거나 이제 절반을 왔다거나 그런 이야기를 할 수는 없었다. 버스를 타지 않으면 안 돼. 이제 가야 해. 어렵게 버스로 돌아왔을 때 아가씨들 때문에 출발을 못했다고 온갖 험한 말을 들었다. 수미는 죄송합니다 고개를 숙이다 자리에 앉았다. 사람들이 쳐다보는 것이 싫어서 손수건으로 얼굴을 가리고 잠이 든 척을 했다. 언니는 앞을 보며 눈을 깜박이고 있었다.

터미널에는 아줌마의 언니인 숙자 아줌마가 나와 있었다. 언니 데려오느라 아주 고생했다고 하였다. 숙자 아줌마는 친척도 무엇도 아니었는데 두 사람을 반겼다. 수미와 윤미 언니는 다시 시내버스를 타고 숙자 아줌마네 집으로 향했다. 목공소 앞에서 내려 골목 안으로 들어가며 아줌마는 목공소를 기억하라고 하였다. 여기 인쇄소 간판도 있지 거기서 오른쪽으로 한번 더 꺾는 거야. 집에 도착했을 때 아줌마는 작은방을 열어주며 앞으로 여기서 자면 된다고 알려주었다. 수미는 엄마가 챙겨준 어묵과 여러 가지 것들을 전해드렸다. 뭘 이런 걸 가져왔냐는 이야기와 고생했다는 이야기와 예전에 부산에서 엄마를 본 적이 있다고 엄마는 잘 지내냐는 이야기들을 하다 아줌마는 참외를 깎아주었다. 아줌마는 일단 밥을 먹고 나가라고 하였고 언니는 작은방에서 가방을 안고 잠이 들어 있었다. 긴장이 풀려서인지 수미도 어느새 옆에서 잠이 들었고 아줌마가 밥을 먹으라고 문을 두드렸을 때에야 두 사람은 일어났다. 돼지고기를 넣은 찌개와 두부조림을 먹고 아줌마는 참외를 또 깎아주시고 수미는 설거지나 그런 뭔가를 하겠다고 일어났지만 얼른 방에 들어가라는 소리만 들었다. 내일은 다시 부산으로 가야 하는데 지금은 방학이 아니고 월요일에는 다시 학교에 가야 하는데 이곳은 먼 곳이 아니지만 수미는 너무 멀리 온 것 같았다. 순간적으로 마치 다시 학교로 돌아갈 수 없는 것처럼 이곳에서 영영 살게 될 것처럼 어지러운 기분이 들었다.


―너는 도착하면 집부터 얼른 전화해야지.

―응, 잘 도착했다.

―이모는 뭐해?

―잔다.

―거기서도 자나?

―버스에서도 잤다.

―아주머니한테 인사 잘 했어?

―잘했다. 이제 나가야 된다.

―그래 내일 또 전화해라.


언니는 방에서 약도가 그려진 편지를 보고 있었다. 교도소 주소가 적힌 편지를 들고 있는 것을 보니 언니가 어디에 있었던 것인지 알고 있었지만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순간적으로 무슨 그런 걸 내놓고 보고 있는 거야? 하는 생각이 들어 무슨 말인가 하려다가 그런 마음도 곧 사라졌다. 언니는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 보내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조윤미였다. 광주의 고등학생 조윤미는 뉴스를 보고 부산의 대학생인 조윤미에게 편지를 보냈다고 했다.


―지금도 고등학생이야?

―아니, 곧 회사에 다니기로 정해졌다는데. 지금은 잠깐 제과점에서 일한대.


두 사람은 이제 잠깐 나가봐야겠다고 말하며 일어났다. 수미는 약도 안 건물 이름을 말하며 어떻게 가느냐고 물었다. 아줌마는 여기서 멀지 않다고 이십 분 정도면 간다고 말하며 약도 옆에 목공소를 그리고 건물과 목공소가 어떻게 연결되는지 이어 그렸다. 목공소에서 고등학교가 보일 때까지 직진하다가…… 숙자 아줌마는 언니의 등을 쓰다듬었다. 아줌마의 작고 단단한 손이 쓰다듬는 언니의 마른 등은 서로가 아주 다른 몸처럼 물론 다른 몸이지만 서로 다른 성격을 가진 살과 뼈들이 포개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였다. 윤미 언니는 희고 마른 몸이었다. 수미는 그것이 집에서는 의식하지 못하던 것이 그 순간 분명하게 보였다. 수미는 작은방으로 가 약도를 다시 확인하였다. 저녁 먹기 전에 돌아오라는 이야기가 부엌에서 들려왔다. 일어나자 벌써 더웠고 그래도 새로 산 운동화를 신고 모르는 길을 걸을 생각을 하는 것이 좋았다. 이곳은 부산 같지 않고 작고 어딘가 뒤처진 느낌이었지만 엄청나게 다르지는 않았다. 하지만 아주 다르지는 않다는 생각을 하고 주위를 보면 수미가 걷고 있는 길은 모르는 길이었고 처음 걷는 길을 모르는 채로 걷다보니 점점 더 모르겠다는 생각만 들었다. 길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은 아주 다르게 말을 했다. 그게 무척 놀라웠고 조금 웃겼다.

걷다보니 멀리서 흰 건물이 보였고 저기가 도청이라고 말했다. 윤미 언니는 흰 건물 가까이 가보고 싶다고 말했다. 도청 앞에는 분수대가 있었고 두 사람은 분수대 주변을 걸었다. 분수대 물은 공기 중으로 조각조각 부서졌고 사람들은 아주 멀리서도 분수대의 물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수미는 분수대를 향해 흰 건물을 향해 다가갈수록 어디선가 날아온 차가운 물방울이 팔에 닿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언니와 수미는 말없이 분수대 주변과 도청 부근을 걸었다. 해는 높은 곳에 떠 있었고 어지러웠다. 수미는 가방에서 물을 꺼내 마셨다. 언니는 마시지 않겠다고 하였다. 언니는 흰 건물 안으로 한 걸음씩 조심스럽게 들어가 건물을 정면에서 바라보았다. 수미는 들어가면 안 될 것 같아 등뒤로 한번씩 떨어지는 분수의 가볍고 작은 물방울을 맞으며 서 있었다. 윤미 언니는 한참 뒤 이제 가자고 하였다. 수미와 언니는 도청을 떠나 약도를 확인하며 걸었다. 광주의 조윤미가 사는 곳은 도청 뒤편 교회였다. 언니는 교회 안으로 들어가 여자 생활관이라는 곳으로 갔다. 언니는 문을 두드렸고 아무도 나오지 않자 문을 열고 들어갔다. 


―누구세요?

―윤미씨 계신가요?

―누구요?

―조윤미씨요.

―잠시만요.


언니는 자신의 이름을 대고 그 사람을 찾았다. 조윤미가 조윤미를 찾는다고 할 때 이상한 기분이었을 것 같아. 옆방에서 단발머리의 키가 큰 사람이 나왔다. 열린 문 너머로 기숙사처럼 여러 사람의 자리가 나뉘어 있었고 한 자리에는 이불이 깔려 있었다. 


―저 부산 사는 조윤미라고 해요.


단발머리의 조윤미는 놀라다가 언니의 손목을 잡았다. 그 사람은 언니의 손목을 잡고 서 있다 잠시 후 일단 나가자고 하였다. 방안에 다 들어가기에 방이 너무 좁아서요. 조윤미 둘과 수미는 밖으로 나갔다. 두 조윤미는 손목을 잡은 채로 잡힌 채로 앞서서 걸었고 수미는 그들을 따랐다. 십 분쯤 걷다보니 나온 제과점으로 갔다. 언니는 어디서 돈을 받아온 것인지 아무튼 윤미 언니에게는 돈이 있었다. 언니에게 돈이 있구나 수미는 새삼스럽게 그것이 놀라웠다. 수미에게 빵을 고르라고 하였고 수미가 고른 크림빵과 우유를 사주었다. 두 조윤미는 주스만 마시고 있었다. 빵을 다 먹은 수미를 보고 언니는 제과점 옆 서점에 가 있으라고 했고 그것이 지난 한 달간 본 언니의 모습 중 가장 어른 같다고 수미는 생각했다. 상황을 판단하고 수미에게 무언가를 시켰다. 스물여덟이 된 조윤미, 매일 잠을 자서 자다 가끔 소리지르다 다시 잠을 자는 정신이 없는 조윤미. 빵냄새는 좋았고 크림빵은 맛있었고 빵을 만드는 사람과 파는 사람 모두 앞치마와 모자를 챙겨 쓰고 있었다. 언니는 세시가 되면 다시 이리로 오라고 하였다. 자리에서 일어나 제과점을 나와 서점으로 향하다 문득 새벽에 터미널에 갔던 것이 거기서 짐을 챙기고 자리를 확인하고 버스에 올라탔던 것이 너무나 먼 일처럼 느껴졌고 이곳이 광주인가, 사람들은 어디서나 비슷했고 말투는 이상했고 하지만 나도 말이 이상하겠지 생각하며 수미는 입을 다물고 서점으로 향했다.


서점에서 책을 보며 나는 어리지 않고 나는 모든 것을 알고 그런데 어딘가에 들어갈 수 없다고 수미는 생각했다. 새로운 것이 시작될 거야. 사람들은 서서 시집을 읽고 있었다. 직원은 유니폼을 입고 있었고 누군가 나를 쳐다보고 있다면 나에게 말을 건다면 나의 정체를 묻는다면. 네가 누구의 가족이며 누구의 자식인지 무엇을 잘못했고 네가 무엇을 얼마나 잘못했고 한편 그럼에도 너에게 어떤 미래가 펼쳐질 것인지 수미는 아무 대답도 할 수 없고 모른다고 고개를 내젓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당신 생각과는 모든 것이 다를 것이라고 다문 입을 한 채 눈으로 상대를 쏘아보고 있을 것이다. 수미는 이름이 같은 두 사람이 어떤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지 나중에라도 듣게 될 수 있을까 생각하였다. 서점 안 여기저기를 옮겨 다니며 책장을 넘겼지만 책장의 글씨들은 무엇이든 읽어야 할 것 같았지만 수미는 그것을 이해할 수 없었고 하지만 가끔은 너무나 완전히 이해를 했고 그렇지만 대부분의 많은 책장은 그저 떠다니는 글자들 같기만 했다. 

세시가 넘어 제과점에 갔을 때 광주의 조윤미는 가고 없었다. 언니는 주변 사람에게 물어 대학교로 향했고 가끔 힘이 드는지 쉬었다 다시 걸으며 두 사람은 대학에 도착했다. 두 사람은 넓은 대학 캠퍼스 안을 걸었는데 초여름의 해가 천천히 지고 있었고 캠퍼스 안 게시판과 벽에는 대자보와 현수막이 빈 곳 없이 걸려 있었다. 수미는 이상한 행동을 할 시에 가장 먼저 보고하라는 담임의 말이 떠올랐고 그 말이 자신에게 말을 건네는 것 같았다. 이것이 이상한 행동이라는 것이다. 나는 질문을 받게 될까. 너는 지난 주말 조윤미와 어디에 가 무엇을 했는지. 수미는 점점 더 자신이 다시 집으로 돌아간다는 것이 믿을 수 없이 먼일처럼 여겨졌고 광주는 여전히 알 수 없고 이곳이 바로 그 광주인가…… 그런 생각에 몸을 서서히 맡기다가도 내일 집에 가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예정된 일이라는 것을 마음 깊은 곳에서는 믿고 있었다. 꼭 그렇게 될 것이다. 내일은 집에 가게 될 것이다. 하늘이 붉어지기 시작할 때 수미와 윤미 언니는 왔던 길을 되짚어 다시 아줌마네 집으로 갔다. 

숙자 아줌마는 돼지고기가 들어간 찌개와 여러 종류의 김치와 기름이 오른 고등어조림을 해주었다. 수미는 점심을 굶은 것처럼 크림빵을 안 먹은 것처럼 마구 먹었다. 늘 밥을 뜨는 둥 마는 둥 하는 언니도 평소보다 많이 먹었다. 언니는 아줌마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하였다. 아줌마는 언니의 등을 또 쓰다듬었다. 다리에 힘이 없는 마른 조윤미의 몸은 매끄럽고 하지만 긴소매 옷에 감춰져 있고 숙자 아줌마의 손은 굵고 짧고 주름이 있다. 두 몸은 서로 너무 다르고 수미는 그것이 흰떡 위에 호두가 박힌 것 같다고 생각했다. 밥을 먹고 아줌마와 텔레비전을 보다 씻고 작은방으로 돌아왔다. 언니는 피곤했는지 낮게 코를 골며 자고 있었다. 어두움에 익숙해지자 조윤미라는 사람의 얼굴 윤곽이 보였다. 수미는 이불을 머리까지 덮고 광주의 사람들은 말투가 신기했고 분수대의 물이 반짝였고 크림빵을 먹었는데……그렇게 수미는 오늘 본 것들을 짚어보다 잠이 들었다.


다음날 새벽 언니는 수미를 흔들며 나 잠깐 나갔다 올 거야, 점심때 올 테니까 걱정하지 마 말하고 수미는 응응 말하곤 다시 잠이 들었다. 한참을 더 자다 아주머니가 수도를 트는 소리에 잠이 깼다. 아줌마가 틀어놓은 텔레비전을 보고 아침을 먹고 자두를 먹고 아줌마와 뻥튀기를 튀기러 갔다 왔다. 쌀과 가래떡을 튀겨서 양 옆구리에 따뜻한 뻥튀기를 끼고 돌아왔다. 옆집에는 큰 개가 있었고 개는 수미를 향해 크게 짖었다. 점심을 먹고 나서도 언니는 오지 않았고 수미는 왜인지 갑자기 눈물이 나와 대문 앞에 서서 울었다. 하루치의 막막하고 무서움이 몰려왔다. 언니가 어딘가에 잡혀갔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 아니면 길가나 벤치에서 자다 쓰러져 다쳤을지 모른다는 생각 어쩌면 친구 조윤미와 도망을 갔을 것이라는 생각 그런 생각들이 끊이지 않았다. 언니는 세시가 다 되어서야 돌아왔다. 나 윤미를 또 만났어. 


―왜 그런 식으로 말없이 행동하는 건데?

―그렇게 화낼 일은 아니다.


버스 시간 때문에 수미는 더 화내지 못했다. 실제로도 그렇게 화낼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갑자기 엄청나게 화가 났었다. 수미와 윤미는 서둘러 가방을 챙기고 아줌마에게 인사를 했다.


―네들은 또 와도 된다. 편하게 와라. 알았지?


숙자 아줌마는 윤미 언니의 등을 또 쓰다듬었고 어깨를 두드렸다. 두 사람은 올 때 탔던 시내버스를 맞은편에서 타고 터미널로 향했다. 돌아올 때는 계속 잠을 자서 그 이후로는 기억나는 것이 별로 없다. 아줌마가 맨밥에 김을 싸서 주었는데 그걸 자다 깨서 먹었고 맛있었던 것은 기억이 났다. 터미널로 아버지가 마중나왔고 수미는 피곤해서 집에 도착하자마자 씻고 잤던 것 같다. 주말에 무얼 했느냐고 물어보면 집에서 텔레비전 보고 숙제했다고 해라, 누가 시키지 않아도 그랬을 것이다. 아침은 어김없이 찾아왔고 학교 가는 길을 바라보며 왜인지 이전처럼 생생하게 모든 것을 기억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좋은 것은 그대로 좋았고 나뭇잎은 푸르렀고 바람에 흔들렸고 수미는 그것이 좋았고 좋은 것은 그대로 좋았는데 이전처럼 생생하게 마음이 흔들리지는 않았다. 그보다는 피곤하고 졸렸고 어제 걷던 길들 목공소를 따라 들어가던 숙자 아줌마네 집으로 가는 길과 서점으로 향하는 길과 분수대를 향한 길들 그 길들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채 그 길들과 눈앞의 길들이 서서히 섞이는 기분이 들었다. 


이후 잊고 지내던 광주의 조윤미를 다시 생각하게 된 것은 몇 해가 지나 뉴스를 보면서였다. 언니와 같은 조윤미라는 이름 옆 괄호 안에는 32라고 쓰여 있었다. 뉴스에서는 광주 청문회라는 것이 계속계속 방송되고 있었고 조윤미는 자신이 본 것을 말하고 있었다. 그는 광주에서 볼 때와는 다르게 엄격한 얼굴로 보였다. 아무런 의심 없이 조윤미라는 이름 때문에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였는데 생각해보니 나이도 달랐고 얼굴도 달랐다. 그러나 이름만은 같은 화면 속 조윤미는 사람이 어떻게 죽었고 자신의 눈앞에서 누가 죽었는지를 말했다. 그리고 그곳이 어디였는지 설명하였다. 조윤미 옆으로 약도가 그려진 보드가 놓였다. 사람이 죽은 곳은 ×자로 표시가 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