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회

Base to Ace, 태민의 음악을 듣는다는 것은

태민의 음악을 듣는 것은, 그리고 그의 퍼포먼스를 바라보는 것은 마치 공들여 만든 현대미술 작품 한 편을 감상하는 것과 같다. 대중음악이나 케이팝 아이돌로 손쉽게 분류되긴 하지만, 태민의 음악은 쉽게 듣고 따라 부르며 즐기기 위한 목적으로서의 인기가요나 친숙함을 앞세워 광범위한 ‘팬덤’을 노리는 일반적인 아이돌 음악과는 거리가 멀다. 아니, 그 성질이 아예 다르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태민의 음악에는 최첨단의 사운드와 복고적인 미학이 쉼 없이 교차하며, 그의 동작 하나하나는 춤에 문외한인 사람의 눈으로 보아도 다른 수준을 갖고 있다. 하지만 그 소소한 디테일은 그 ‘차이’를 아는 사람들에게만, 그러니까 조금 더 높은 예술적 경지를 감상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에게만 더 매력적인 것으로 빛을 발한다. 이것은 결코 아이돌 신에만 국한된 평가가 아니다. 그는 한국 대중음악 신을 통틀어 가장 유니크하고 모범적인 솔로 아티스트 중 한 명이다.


태민은 평단이 사랑하는 아이돌로서 커리어 내내 각별한 관심을 받아왔다. 처음에 그 관심은 아무래도 샤이니라는 그룹에 관한 것에 더 가까웠다. 평론가의 아이돌이라 불렸던 샤이니의 음악은 ‘아이돌’이라는 단어가 부정적 뉘앙스를 채 떨쳐버리지 못했던 시절 평론가들의 귀에도 파격으로 느껴질 만큼 진보적인 사운드를 담고 있었고, 비슷한 시기에 전위적이고 미래적인 미학을 뽐냈던 에프엑스와 더불어 SM 사운드의 새로운 방향을 설정했다. 《The Misconceptions》 연작부터 《Odd》, 《1 of 1》, 그리고 《The Story of Light》에 이르기까지, 샤이니의 커리어와 그 궤적은 그 자체로 음악과 시스템 양면에서 케이팝의 진화를 의미하곤 했다. 샤이니의 최고작으로 종종 거론되는 《Odd》는 평론가들의 명반 리스트에서도 종종 거론되는 작품이기도 하다. 흥미로운 것은 평단이 샤이니의 음악적 차별성을 본격적으로 인정하기 시작한 그 시점이 바로 태민이 그룹의 주요 멤버로서 급격한 성장을 이뤄낸 시기와 일치한다는 점이다. 바꾸어 말하면, 가수로서 그리고 댄서로서 태민의 성장은 샤이니의 음악적 진화, 특히 무대와 이미지의 혁신에 있어서 중요한 동력이었다. 데뷔 시절 귀엽고 풋풋한 막내로만 인식되었던 그는 어느덧 샤이니의 가장 핵심적인 멤버로 자리잡았고, 이 급격한 성장은 그의 솔로 커리어로 고스란히 이어져 더 화려하게 펼쳐지게 된다. 


무대를 꾸미는 퍼포머로서 그리고 한 명의 댄서로서 태민이 가진 역량에 대해서는 이미 수많은 이들이 저마다 한마디씩을 보태왔다. 춤 전문가도 아닌 음악 평론가가 분석하는 그의 퍼포먼스는 분명 한계가 있겠지만, 그의 퍼포먼스에서 내가 느낀 탁월함에 대해 조금은 개인적인 감상을 더해 평가해보고자 한다. 태민이 무대에서 보여주는 모든 움직임은 거칠거나 둔탁함이 없이 미학적으로 우아하고 유려하다. 그리고 이는 음악과 별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장르나 방향성에 따라서 그에 맞는 최적화된 선을 그리고 있기에 매우 ‘음악적’이기도 하다. 그의 동작들은 날렵하고 시원시원하지만 기술적으로 그 디테일이 정교하기 때문에 <Everybody> 등으로 대표되는 복잡하고 빠른 군무와 개별 시퀀스들을 특별히 과장된 동작 없이도 매우 손쉽게 보이도록 만드는 효과를 낳는다. 춤의 장르를 막론하고 능숙한 댄서들이 갖고 있는 공통된 특징이라고 할까, 동작과 동작 간의 셈여림과 낙차를 잘 이해하고 하나의 동작이 만들어낼 수 있는 가장 임팩트 있는 움직임을 순발력 있게 택한다는 점에서 댄서로서 천부적인 감각을 갖고 있다고 느낀다. 솔로 데뷔 이후 태민의 퍼포먼스는 한 단계 더 도약했다. 댄서들과 함께 무대를 완전히 채워야 하는 부담을 안고도 오히려 무대를 장악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특히 몽환적이면서 관능적인 분위기를 만드는 데 있어서 그의 퍼포먼스는 샤이니 시절과는 또다른 경지를 보여주고 있다. 이 지점에 있어서 태민의 동작들은 그의 영원한 롤모델이기도 한 마이클 잭슨을 연상케 하는데, 경제적이면서 임팩트가 있는 몸의 움직임, 관습적으로 비트를 해석하지 않는 모습은 특히 주목할 만하다. 커리어의 중요한 전환점이라고 할 만한 <Move>와 같이 정적이면서 ‘분위기’를 전달해야 하는 춤을 소화할 때 그의 ‘음악성’은 빛을 발한다. 절제된 움직임만으로 노래가 전달하고자 하는 감정선을 효과적으로 반영하기도 한다는 점에서 그는 매우 음악적인 퍼포머다.


퍼포머로서 태민을 논함에 있어서 남성 아티스트로서 그가 새롭게 제시한 관능성과 성적 이미지를 빼놓을 수는 없을 것 같다. <누난 너무 예뻐> <줄리엣>에서 귀여운 소년의 이미지로만 인식되었던 그는 성인이 된 이후 비로소 새롭고 과감한 이미지를 탐구하기 시작하는데, 마치 팝 음악에서 마이클 잭슨이나 프린스 혹은 데이비드 보위가 그랬던 것처럼 특정 성별의 스테레오타입에 속박되지 않는 중성적 이미지, 혹은 혼종적인 성적 정체성의 제시를 통해 2000년대 케이팝에서 유행했던, ‘짐승돌’로 상징되는 근육질 마초성이나 노출을 내세운 소위 ‘섹시’ 아이돌과는 다른 대안을 제시했다. 물론 케이팝에서 그리고 대중음악 일반에서 짙은 메이크업과 화려한 의상으로 상징되는 중성적인 아이덴티티의 연출은 늘 존재해왔었던 것이긴 해도 이를 일관된 콘셉트와 음악적인 방향성을 가지고 발전시켜온 경우는 극히 드물다. 다른 케이팝 아이돌 음악과 유사하게 이 같은 콘셉트의 큰 줄기는 SM의 아트 디렉터, 그리고 A&R 팀들과의 긴밀한 협력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 과정의 디테일한 선택에 태민이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있다는 점이고, 이제 그것이 스스로의 이미지를 완전히 장악하고 컨트롤하는 수준에 이르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앨범 크레디트만으로는 쉽게 알 수 없는, 하지만 태민의 음악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지점이다. 단순히 춤을 잘 추는 댄서가 아니라 예술성을 통제할 수 있는 아티스트로 자신의 영역을 확고히 다지고 있다는 점은 그대로 정당한 평가를 받아야 한다.


콘셉트 앨범이라 부르긴 애매하지만 《Never Gonna Dance Again》 연작은 그간 태민이 여러 작품들을 통해 실험했던 음악과 이미지의 완결판이자 어쩌면 가장 발전된 형태의 결과물이라 불러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보컬과 댄스 퍼포먼스, 설정으로서의 자아와 진솔한 자아의 양면성을 다채롭게 보여주는 음악들, 극적인 구성과 주제의식들, 무엇보다 태민이기 때문에 소화 가능한 그야말로 ‘다움’이 묻어나는 편곡들은 조금 진부한 표현일지 모르지만 태민의 음악을 듣는 이유를 꼼꼼히 납득시킨다. 주제 면에서 《Act 1》이 틀을 깨고 새로운 자아를 만나는 과정을 묘사하고 있고, 그래서인지 《Act 1》에는 드라마틱하고 회화적인, 혹은 허구적인 설정의 이미지를 가진 곡들을 중심으로 마치 하나의 그림으로서 그려지는 곡들이 많다. 이를테면 <Criminal> <일식(Black Rose)> <Strangers>라는 제목들이 주는 것처럼 어둡고 미스터리한 이미지를 통해 <Move>나 <Want>가 제시했던 치명적인 관능미와는 분명 다른 방향성을 취하고 있다. 이는 <Be Your Enemy> <Pansy>와 같이 서정적이고 감성적인 곡으로 콘셉트보다는 차분하게 이야기를 전달하는 《Act 2》의 곡들과 좋은 대조를 이루며 이 연작이 지닌 서사를 더 풍성하게 만든다. 여기서 나는 새삼 태민의 목소리에 주목하게 된다. <Want>부터 더 확실히 느껴졌지만, 이제 태민은 한 명의 훌륭한 댄서 혹은 퍼포머라고만 규정하기에는 아쉬울 만큼 보컬리스트로서의 뚜렷한 성장을 이뤄냈다. 타고난 미성을 바탕으로 한 독창적인 발성은 동시대에 쉽게 들을 수 있는 트렌디한 톤이나 보컬 멤버들이 갖는 특유의 기교와는 다른 아주 고유한 보컬의 텍스처를 만들어내고 있는데, 이 덕분에 태민의 음악은 장르나 편곡의 디테일로서가 아니라 곡을 자연스럽게 뚫고 나오는 보컬의 존재감만으로 그의 음악임을 알아차리게 만든다. 마냥 신뢰하고 싶을 만큼 착하지만 약하지 않고, 짙은 호소력을 품고 있지만 결코 촌스럽지 않은 보컬은 어쩌면 춤의 아우라 때문에 덜 주목받게 되는 그의 특별한 음악적 면모 중 하나이지 않을까. 그는 더 많은 노래를 불러야 한다.


타이틀곡도 아니고 그 어떤 콘셉트와도 거리가 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곡이 특별히 기억에 남는다. 먼저 《Act 1》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2 Kids>는 일견 《Act 2》로의 전환을 예고하는 트랙으로도 비쳐지는데, 어린 시절의 서툴렀던 사랑을 회상하는 곡으로 그 어느 때보다 진솔하게 태민의 감정이 짙게 전달되는 곡이기도 하다. 노래만큼이나 주목해야 할 것은 뮤직비디오 속 그의 몸동작들이다. 그리움, 아쉬움, 아픔, 회한 등이 응축되어 때로는 격렬하게, 때로는 아름답게, 때로는 혼란스럽게 표현되는데 특별한 장치가 없이 자연스러운 동작들의 연결만으로 많은 것들을 표현해낸다는 점에서 감히 그의 커리어 사상 가장 인상 깊은 작품 중 하나로 꼽고 싶다. 공교롭게도 《Act 2》의 가장 인상적인 트랙 역시 앨범의 마지막에 위치해 있다. <Identity>는 주제 면에서 《Never Gonna Dance Again》의 완결부를 담당하고 있는 곡이다. 흥미롭게도 이 곡의 인트로는 <Want>의 ‘아우트로’로부터 비롯하는데, 마무리되지 않았던 대단원이 이제 시리즈를 옮겨 가장 웅장한 방식으로 그 마지막을 알리고 있어 그의 디스코그래피 전체를 하나의 연작으로 이해하는 사람들에게는 각별한 쾌감을 선사한다. 특히 “Base to Ace”라는 가사 한 구절은 이제는 그와 함께할 수 없는 종현의 솔로 데뷔작인 《Base》와 자신의 솔로 데뷔작인 《Ace》를 연결시키고 있어 쉽게 지나칠 수 없다. 주문 혹은 다짐처럼 계속되는 읊조림이 공간감 있는 사운드와 웅장한 스케일의 편곡과 만나 아티스트로서 그리고 개인으로서 느끼는 복잡한 감정들이 아름답게 표현되어 있다. 마지막 음이 끝나도 한동안 귓가에 잔향으로 맴도는, 잊히기 힘든 감동적인 마무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