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회

고양이와 대화할 수 있다면 _슬릭

언젠가부터 제 이름 뒤에 붙는 호칭들에 위화감을 느낀 지 조금 되었습니다그러고도 다른 사람의 이름에는 남사스러운 호칭을 잘도 붙이고 다녔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호칭은 ‘선생님이지만 ‘슬릭 선생님이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그 호칭이 발화된 입으로부터 가장 멀리 떠나고 싶은 기분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그래서 오늘은 이랑이 아닌 ‘랑이로서 이 편지를 읽어주신다면 어떨까 싶어 이렇게 시작해봅니다. (그러나 제 안의 유교걸은 좀 자제하라네요.)

 

저는 ‘이랑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랑이 아닌 이름을 가진 사람보다 예술가가 될 가능성이 높을 것 같다고 막연히 생각합니다일단 외자 이름이잖아요사람의 이름은 웬만하면 두 글자로 통일하려는 (그래서 제 친구 남메아리는 친구들에게 “메알아라고 불린다네요.) 분단국가에서 한 글자 이름이 가진 고고함은 너무 예술적이에요물론 다른 직종에 종사하는 외자 이름 가진 분들 모두 적성에 맞고 행복하게 일할 수 있는 직업을 가졌길 바랍니다게다가 이름을 이루는 모든 자음이 울림소리인 것도그래서 발음할 때 입안에서 부드럽게 흘러나가는 것도 아주 예술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랑아” “이랑아라고 입에서 발음하고 나면 그다음엔 거칠고 나쁜 말이 올 수 없을 것만 같아요가사를 붙여 노래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그렇겠지만단어들이 입에서 빠져나갈 때 각자 고유한 느낌이 있다고 생각하는데그중에서도 ‘이랑이라는 단어는 부드럽고 아름답게 발음되면서도 흔치 않은 이름이라 독특합니다.

 

사실 이 편지를 쓰는 동안 우리집 고양이 중 한 마리를 잃어버렸어요이름은 또둑이다섯 살쯤 된 고양이입니다계속 찾다가 지금은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이렇게 편지를 씁니다밖에 비가 많이 오는데 어디서 떨고 있을지 너무 걱정돼요왜 하필 오늘일까요왜 하필 태풍이 찾아온 지금 우리 고양이를 잃어버렸을까요자책은 고양이 찾는 데 아무 도움도 안 되지만 안 할 수도 없어 괴롭네요이렇게 어두운 이야기를 편지에 적어 죄송합니다.

 

또둑이는 처음부터 저랑 같이 산 친구는 아니에요. 3년 전쯤 지금의 룸메이트와 집을 합치게 되면서 함께 살게 되었습니다저는 그전에는 동물을 한 번도 키워본 적이 없어서처음에는 인간이 아닌 다른 동물과 라이프사이클을 맞추기가 너무 힘들었어요이기적인 생각이지만 제가 원해서 함께 살게 된 것도 아니어서 적응 기간이 더 길었던 것도 같아요그래도 이제는 정말 한 가족이 되었고 하루에도 몇 번씩 몇 년째 사랑한다고 말해줬는데이제 다시 그럴 수 없다고 생각하니 너무 슬픕니다.

 

고양이와의 이별을 아예 생각하지 않았던 건 아니에요고양이와 함께 누워서 ‘언젠가는 이별이 올 텐데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내가 우리 고양이들과의 이별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종종 했는데또둑이를 잃어버릴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어요늘 저와 룸메이트에게 껌딱지처럼 찰싹 달라붙어 있는 고양이였거든요어젯밤에는 그러지 않길래 가끔 혼자 작업실에서 자던 것이 생각나 그냥 넘겼는데정말로 정말로 그러지 말았어야 했나봐요.

 

사실 아직은 또둑이의 부재가 크게 실감나지 않습니다그냥 기분이 멍하네요어쩌면 진짜로 잃어버린 게 아니지 않을까고양이니까 어디 잘 숨어 있다가 뿅 나타나지 않을까 하는 어리석은 기대가 이어지기도 하고요그래서 SNS에 고양이를 찾는 글을 올렸습니다같이 사는 고양이 하나 잘 돌보지 못한다고 누군가 질책할까봐 겁도 나고 (실제로 그렇기도 하니까요그동안 저를 싫어하던 사람들이 이 기회를 틈타 저를 더 괴롭힐까봐 무섭습니다그렇지만 이 두려움은 지금 어딘가에서 떨고 있을 또둑이의 두려움보다는 훨씬 하찮은 것이겠지요마음을 다잡고 또 다잡습니다.

 

여기까지 쓰고 또 한참 찾아다니다가 다시 글 앞에 앉았습니다잃어버린 지 이틀째고 아직 찾지 못했어요마음이 타들어갑니다이런 스트레스를 간접경험시켜드리고 싶지는 않았는데이렇게 글이라도 쓰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아 미련하게 적고 있습니다몇 주 전 시간을 함께 보낸 이랑님의 고양이 준이치 생각이 나네요잃어버린 우리 고양이도 준이치와 비슷한 무늬예요이런 무늬는 참 흔해서 오늘도 몇 마리 본 것 같습니다우리집 고양이들은 한국에서 가장 흔한 치즈태비와 턱시도(젖소라고도 부릅니다)여서 잃어버리면 더 큰일나는 애들이라는 걸 잃어버리고 나서야 절절이 깨닫는 중이에요꼭 찾게 되길 빌고 또 빕니다.

 

고양이와 대화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왜 인간은 아직까지 다른 종의 생물과 의사소통하는 방법조차 알지 못하는 걸까요생각해보니 인간끼리도 이렇게 말이 통하지 않는 세상인데거기까지는 아주 한참이나 남은 것 같아 아득하네요동물과 함께 사는 사람이라면 한 번씩 이런 생각을 하겠죠저도 종종 ‘우리 고양이들과 딱 한마디씩 서로 알아듣게 주고받을 수 있다면 무슨 말을 건넬까고양이는 나에게 무슨 말을 할까?’ 하고 생각했습니다제가 고르고 고른 한마디는 “아픈 데 없어?”였고요고심해본 결과 고양이들은 제게 “아픈 게 뭐야?”라고 되물을 것 같습니다.

 

고양이를 찾아 헤매면서 느낀 점이 또하나 있습니다인간은 정말 인간 외의 다른 동물들에게는 아주 조그만큼의 관심도 호의도 없는 주거형태를 구축해온 것 같다는 것입니다특히 제가 사는 재개발 구역은 더더욱 그렇습니다숨을 곳이 많아 길고양이가 많이 살지만언제 어떻게 허물어질지 모르는 집들과 골목아무렇게나 방치된 위험한 쓰레기들을 보다보면 같은 인간이지만 인간의 역함을 견딜 수 없습니다아마 이런 사고가 없었다면 저 역시 영영 깨닫지 못했을 수도 있겠습니다그리고 서울은 해가 갈수록 인간만이 살 수 있는 공간으로 변해가는 것 같기도인간도 살 수 없는 곳으로 변해가는 것 같기도 합니다.

 

떠오르는 생각이 너무 많지만 이쯤에서 편지를 줄일까 합니다다음 편지에서는 무사히 또둑이를 찾았다는 소식을 꼭 전해드리고 싶어요답장을 쓰면서 부디 저만큼의 걱정은 담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2020 9 4

슬릭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