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회

준이치가 불편한 게 '나'면 어떡하지 _이랑

또둑이. 또둑이 이름은도둑과 관련이 있을까요. 보내주신 편지를 읽고 또둑이를 상상하며 또둑이 이름을 몇 번이나 반복해 불러보았어요. 또둑이는 지금 어디를 걷고 있을까요. 혹은 어디서 쉬고 있을까요. 또둑아.

 

저와 함께 사는 고양이 준이치(15)는 약 10년 전, 2 3일 동안 집을 떠난 적이 있습니다. 당시 저는 준이치와 함께 대학교 동아리방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가입한 전자음악동아리’(……)에 배정된 동아리방이었지요. 보증금을 댈 만한 돈도, 월세를 낼 만한 돈도 없었기에 학교에서 사는 게 최선이자 유일한 방법이었던 것 같습니다. 학교는 서울에 있고 부모님 주소지는 경기도여서 멀리 지방을 주소지로 둔 학생들에게 밀려 기숙사에 들어갈 순번은 되지 않았습니다. 동아리원들이 다 제 친구였기 때문에, 저는 동아리방에서 편안히 살림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동아리방은 학교 본관에서 조금 떨어진 2층짜리 건물에 있었고, 열쇠도 따로 없어 누구나 문을 열고 들어올 수 있는 그 방에서 (지금 생각하면 무슨 배짱이었는지 모르겠어요) 꽤 오랜 시간 준이치와 함께 살았습니다. 학교 샤워실에서 씻었고, 학교 식당에서 밥을 먹었고, 학교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학교 도서관에서 책을 보았지요. 누군가 세탁기를 기부해줘서 동아리방 건물 남자화장실에 설치해두고 잘 썼습니다. 제가 살던 방은 학교 건물을 청소하시는 아주머니가 일주일에 몇 번 물걸레 청소를 해주셨어요. 지금 생각하니 참 좋은 시설에서 잘 지냈네요. 열쇠는 없었지만요.

 

일주일에 몇 번 만나는 청소- 아주머니는 준이치를 귀여워하셨습니다. (“나비야~ 나비야~”라고 부르셨던 기억이 납니다.) 어느 날은 제가 수업에 간 동안 아주머니가 청소하시다 방안에만 쭉- 있는 준이치를 가여이 여겨 방문을 열고…… (안 돼!!!!!) 바깥 구경을 할 수 있는 자유를 주셨죠. 가끔 제가 건물 현관이 닫힌 걸 확인하고 준이치와 복도에 나와 놀 때가 있었거든요. 아주머니는 그 모습을 기억하고 그날 준이치에게 문을 열어주셨던 것 같아요. 하지만 그날따라 건물 현관은 닫혀 있지 않았답니다. 수업을 마치고 돌아오니 방문이 살짝 열려 있고 준이치가 온데간데없기에 건물 어딘가를 청소하던 아주머니에게 여쭤보니, 흔쾌히(?!) 대답해주셨죠. 복도에서 놀게 문을 열어주었다고요. 하지만 제가 건물 현관이 열려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자…… 그뒤로는 잘 기억나지 않네요. 왜냐하면 그때부터 저는 완전히 패닉 상태에 돌입했기 때문입니다.

 

먼저 학교 건물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고 트위터(저는 어느새 트위터를 10년이나 썼나봅니다……)에 소식을 올린 후 제보를 기다렸습니다. 학교와 가까운 한국외대 근처에서 준이치를 봤다는 제보가 들어오면 손전등을 들고 뛰어나갔죠. 낮밤도 없이 울다 찾다를 반복했습니다. 밥맛도 없었지만 찾으러 다녀야 하니 기운을 내려고 김밥을 우걱우걱 씹어 먹었지요.

 

중간에 한 번 멀리서 준이치를 발견한 적도 있습니다. 그때 준이치는 다른 고양이들과 함께 어딘가로 달려가는 중이었어요. 제가 그 모습을 발견하고 큰 소리로 이름을 불렀는데요. 준이치는 멈칫하고 저를 한 번 돌아보더니 곧 다른 고양이들을 따라 가던 방향으로 달려가버렸습니다. 준이치를 포함한 몇 마리 고양이가 커다란 담장 밑에 뚫린 구멍 속으로 쏙 쏙 사라지고, 뒤늦게 그 구멍 앞으로 달려간 뒤 왜 내 몸뚱이는 자유자재로 사이즈가 변하지 않는지 억울해하며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2 3일 중, 딱 한 번 준이치를 마주쳤던 그날이 여전히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준이치는 밖에서 만난 친구들과 무척 재미있었던 걸까요.

 

쭉 재미있게 지냈다면 그거대로 다행이었겠지만, 3일째 되던 날 새벽. 준이치가 언제든지 들어올 수 있게 문을 반쯤 열어놓고 자던 중 제 귀에 사부작사부작 누군가 방으로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일어나보니 준이치는 바닥에 시꺼먼 발자국을 여기저기 찍어놓고 방안에 들어와 태연히 밥을 먹고 있었습니다. 살금살금 일어나 준이치가 재가출을 하지 못하게 문을 슬쩍 닫고 나서 찬찬히 모습을 살펴보니 3일 전에 비해 2~3킬로그램은 족히 빠져 보이는 앙상한 몰골에 (사실 준이치는 8킬로그램이었기 때문에 2~3킬로그램이 빠져도 앙상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얼굴 여기저기에 긁히고 다친 상처가 많았습니다. 특히 코 주변에요. 그때 함께 뛰어가던 다른 고양이들이 어디선가 준이치를 한데 몰아넣고 신나게 팬 걸까요? 팰 거였으면 왜 그렇게 다 같이 신나게 뛰어갔던 걸까요? 지금도 미스터리로 남아 있습니다.

 

준이치가 돌아온 이후 저도 청소 아주머니도 더욱 조심하며 현관을 잘 닫고 다녔습니다만, 만약 그때 준이치가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면, 저는 청소 아주머니와 어떻게 지냈을까요? 어쨌든 그 공간에서 계속 마주쳤을 테니, 평생을 미워하며 인사도 없이 눈을 내리깔고 아주머니를 무시했을까요. 제 성격이면 그러지 못했을 것 같고, 왠지 아주머니와 한바탕 울고불고하며 서로의 사정과 이야기를 주고받은 뒤 계속 친하게 지냈을 것 같아요. 고양이를 잃어버린 데 책임이 있는 청소 아주머니와, 아주머니가 청소해주는 학교 건물에서 몰래 고양이를 키우며 살던 학생이 울고불고 싸우다 화해하는 단편영화 시나리오를 쓰고 싶네요. 그 영화에 준이치가 나온다면, 준이치는 왠지 다른 친구들과 계속 신나게 뛰어다니는 모습으로 등장하겠네요. (얘들아, 제발 준이치를 때리지 마.)

 

슬릭이 편지에서 얘기한딱 한마디만 서로 알아듣게 주고받을 수 있다면 무슨 말을 할까?’에 대해 저도 15년간 정말 많이 생각했어요. 수많은 대사를 생각해봤지만 제 입장에서 말고, 준이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꼭 듣고 싶은 말이 있어요. 바로아파라는 말이에요. 그간 준이치가 아픈 걸 제때제때 빨리 캐치하지 못했던 저로서는, 준이치가 그 말 한마디만이라도 해줬으면 좋겠어요. 그럼 준이치가 혼자 아파하는 시간이 조금이라도 줄어들겠죠?

 

편지를 받기 얼마 전에도준이치에게 듣고 싶은 한마디에 대해 제 파트너와 이야기한 날이 있어요. 그는 한참 생각하더니 준이치가불편해라는 말과좋아라는 말 두 마디를 했으면 좋겠다고 하더라고요. “불편해라고 하면 몸이든 마음이든 어디가 불편한지 열심히 찾아서 개선하고, 개선한 방향이 준이치 마음에 들면좋아라는 말로 확인을 받고 싶다고 하네요. 근데 좀 있다가 파트너가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근데, 준이치가 불편한 게면 어떡하지?”

 

그 말을 듣고 잠시 골이 띵했습니다. 준이치는 과연 나랑 살고 있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요즘 저는 어느 잡지사의 의뢰로 준이치가 화자인 에세이를 연재하기 시작했습니다. 준이치를 화자로 이야기를 쓰다보니 점점 더 이 질문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것 같아요. 준이치는, 지금 행복할까요? 아플까요? 불편할까요? 좋을까요?

 

 

2020 9 10

이랑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