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회

파트너에게 만약 내가 임신하면 어쩔 거냐고 질문했어요 _슬릭

오늘은 기분이 정말 이상한 날이에요. 말 그대로 하루종일 잤기 때문입니다. 어제는 와인을 마시면서 영화를 봤고, 새벽 세시쯤 그대로 잠들어서 오늘 오후 세시에 깨어났어요. 원래도 좀 많이 자긴 해서 여기까지는 별로 놀랄 일은 아니었습니다. 배가 너무너무 고파서 카레를 와구와구 먹고 다시 침대로 기어들어와 야구 중계 재방송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또 잠이 들었어요. 그때쯤 룸메이트가 일하러 나갔으니 저녁 여섯시 정도였던 것 같은데, 일어나보니 밤 열시였습니다. 정말 먹고 자기만 했는데 하루가 없어져버렸어요.


정신을 차리고 밖으로 나가기로 했습니다. 근처 24시간 카페를 검색해보니 딱 하나 있더라고요. 일을 마치고 돌아온 룸메이트와 함께 자정이 다 되어서 밖으로 나갔습니다. 좀 출출해서 김밥천국에서 김밥을 먹고 카페에 도착하니, 직원분이 코로나 때문에 24시간 영업 안 한 지 오래되었다, 자정에 닫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다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정말 이상한 하루예요. 지금은 다시 침대로 기어들어와 랑이님에게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보내주신 편지를 몇 번이나 읽어보다가 정말 많은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그것들을 전부 적어내려가볼까도 생각해보고, 랑이님이 제게 편지를 적을 때, 그리고 적어주신 일들을 경험할 때의 감정을 감히 헤아려볼까도 생각해보았습니다. 그러다보니 편지를 써내려가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이 편지는 평소의 답장보다 훨씬 느리게 랑이님에게 도착할 것 같아 죄송한 마음이 드네요. 이런저런 생각으로 시간을 보내다보니 이렇게 누군가와 마음을 터놓고 편지를 주고받는 것이 얼마나 커다란 일인지 어렴풋이 가늠되기도 합니다. 수많은 문장들이 적혔다 사라지기를 반복한 지금, 결국 가장 솔직하고 제멋대로인 말들만 남을까 걱정되기도 하고요.


여성으로 산다는 것은, 타살이 법적으로 금지되기 전의 세상에 사는 원시인들처럼 하루하루 무사하다는 사실에 안도를 넘어 경이로움을 느끼는 일인 듯합니다. 언제든지 몸과 마음이 죽임을 당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으니까요. 오늘만 해도 수많은 여성들이, 혹은 사회적 소수자들이 몸과 마음에 난도질을 당했겠지요. 저도 그중 한 명일지도 모르지만 그렇든 그렇지 않든 살아 숨쉬며 이 글을 적는 것이 경이롭습니다.


특정 성별만이 ‘우리’의 말을 알아챌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 어떤 공간에서든 특정한 사인들을 알아차리곤 해요. 당장 생각나는 예로는, 여자화장실에 들어가는 저의 몸짓을 들 수 있겠군요. 저는 공중화장실에 들어갈 때 남성으로 보이지 않기 위해 시선을 최대한 밑으로 떨구고 양팔을 특정 각도로 떨어뜨린 후 느리게 걷습니다. 누군가 저를 보고 ‘무해한 사람’이라고 인식할 수 있게 말이에요. 그런 사인들을 장착했는데도 누군가 저를 0.5초 이상 응시한다면 저는 제 목소리가 들리게 헛기침을 한다든지, ‘당신과 같은 성별이다’라는 사실을 알릴 만한 티나는 행동들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달에 한 번씩은 “헉”이라든지, “어머, 여기 여자화장실인데요” 같은 말들을 듣고요. 때로는 차라리 이런 해프닝이 그 순간의 파장을 빠르게 잠재우기도 합니다. 제가 목소리를 내어서 “저 여잔데요”라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런 일련의 해프닝도 제가 보편적인 여성의 목소리 톤을 지녔고 몸집이 작으며 누군가 쉽게 저를 알아차릴 수도 있는 직업을 가졌기 때문에 응당 받아들여질 수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만약 저보다 ‘사회적 여성성’에서 더 벗어난 여성이 이런 해프닝에 휘말린다면 저보다 더 곤란하겠지요. 저는 단 한 번도 이런 일을 억울해하거나 귀찮아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앞서 말한 것처럼 여성으로 살다보면 순간순간의 무사함에 너무나 절실하게 감사해지기 때문입니다.


저에겐 이런 서사를 설명하는 것이 너무나 벅찬 나머지, 가족을 제외하고 이에 쉽게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들과의 인연은 전부 희미해졌습니다. 사실 가족 구성원을 설득하는 데는 저의 언어보다 저를 인정하는 제3자의 시선이 훨씬 더 효과적이기 때문에 어찌어찌 균형을 맞추며 살고 있기는 하네요. 이렇게 아득하고 불편하지만 절대로 사라지지 않을 것만 같은 감수성을 주렁주렁 달고 사는 저는, 그래서인지 더이상 온라인에서 보여지는 페미니즘에 대한 다양한(이라 쓰고 ‘어이없는’이라고 읽을게요) 시각에 큰 감명을 받지는 못합니다. 그저 오랜 시간이 흘러, 변하지 않을 것 같던 것들이 끝내 변하기만을 바랄 뿐이에요. 그렇게 되지 못한다 해도 어쩔 도리는 없습니다만 이럴 때는 제가 작게나마 낸 발자국들을 돌아보기도 하고요. 참 버거운 일입니다. 우리의 일들 말이에요. 이럴 땐 그냥 술을 한 바가지 마시고, ‘어쩔래’라고 생각해버리는 편이 나을 때도 있다고 믿고 싶네요, 하하.


지금 적으려는 일화는 제가 임신 가능성이 있는 사람으로서 겪은 미묘하고 피곤한 일 중 하나인데요. 저도 몇 년 동안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다가 랑이님의 편지를 읽으며 생각나 적어봅니다. 잊으려고 했기 때문에 정확하지는 않지만, 선명하게 남은 부분들도 있어요. 


몇 년 전 사귀었던 파트너는 종종 임신 가능성이 더 커지는 성관계를 요구했습니다. 그때마다 아주 단호히 거절했지만, 그 모든 대화가 그렇게 단칼에 끝나지는 않았고, 결국 계획 없는 임신을 상상해보다 이런 대화까지 나누었습니다. 만약 제가 임신하면 어쩔 거냐는 질문에 그는 저의 선택을 존중하겠다고 말했습니다. 낙태하든 낳아서 키우든 제 선택을 존중하고, 옆에 있겠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아주 다정한 파트너의 모습으로 비춰지길 바라는 듯이요. 저는 불현듯 분노가 차올라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만약 내가 임신해서 출산하게 된다면 나 혼자 그 아이를 키울 것이고, 너는 내 삶에서 배제할 거야.” 저는 그의 얼굴에서 찰나의 서운함을 보았습니다. 그러고는 대화가 어떻게 이어졌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그 순간만 선명하게 기억에 남았네요. 제게 왜 분노가 일었고 그가 왜 서운함을 비쳤는지, 그다음에 관계가 이어졌는지 몇 년이나 지난 지금은 모든 것이 희미하지만 그 순간의 감정들이 왜 저한테 선명한 자국을 남겼는지는 제가 굳이 말씀드리지 않아도 아시겠지요. 시간이 많이 흐른 지금의 저는 이제 전혀 다른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만 그때의 대화, 저에게 ‘여성스러운’ 모습이 더 드러나지 않는다는 명분으로 결국 헤어지게 된 그와의 관계 같은 것들이 문득 떠오릅니다. 그때의 분노와 상황은 여전히 어떤 무사함을 지켜내려 애쓰는 저를 휘감습니다.


이런 감정을 노래로 만드는 일이 과연 저라는 사람이 감당할 만한 것인지 늘 의문을 품습니다. 페미니즘을 노래하는 것에 중압감을 느끼지 않느냐는 걱정이 담긴 질문을 자주 받는데, 그럴 때마다 제가 하는 말은 하나거든요. 저는 그저 제가 살아가면서 느끼는 감정들을 풀어낼 뿐인데 그것이 페미니즘으로 불릴 뿐이라고요. 이 질문을 열 번쯤 받았을 때 들었던 생각은 ‘이게 많은 사람들이 쉽게 가지는 마음은 아닐 수도 있구나’였는데요. 다시 같은 질문을 오십 번쯤 받으니 ‘실은 나도 이런 말을 할 만큼 대단한 사람은 아닐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드네요. 대단한 사람처럼 보이려고 꺼낸 이야기는 절대로 아니었는데 말이지요. ‘생존의 기저가 어디에 위치하냐’라는 말을 할 뿐인데도 이를 둘러싼 수많은 논쟁에 끝없이 놀랄 뿐입니다. 


이 편지를 마무리하기 위해 저는 아주 먼 곳으로 와 있습니다. 도저히 일상에 파묻혀서는 제 마음을 문장으로 완성해낼 수 없을 것 같다는 핑계로 아주 먼 곳에 도착해 낯선 숙소 안에서 이렇게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습니다. 이런 역마살에 기반한 환상을 품은 것에 죄책감을 가진 채 세 시간 남짓 시외버스를 타고 오니 허리가 무지 아프더군요. 부디 저의 편지가 도착한 곳에는 평화와 영감이 그득하기를 바랍니다.



2020년 10월 31일

슬릭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