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회

여러모로 징그러운 이슬아 작가님께

작가님의 편지를 응급실에서 처음 읽었습니다. 가슴이 쿵쾅거렸고 호흡이 가빠왔습니다. 그 편지에는 “동공에 미동도 없으실 테지만”이라고 적혀 있었지만, 제 눈동자는 흡사 월미도 디스코팡팡처럼 돌고 있었습니다. 의학용어로 안구진탕이라고 합니다. 혹자가 그 모습을 보았다면 응급실 담당 교수가 갑자기 양성자세현훈良性姿勢眩暈,  BPPV 을 맞았거나, 기저질환인 범불안장애가 도졌는지 충분히 의심해볼 상태였습니다.


환자랑 대화하면서도 생각했습니다. 밤을 새우고 운전해 집에 오면서도 생각했습니다. 대단히 유효한 공격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대단히 유효한 공격이다. 어쩌면 이렇게 영리할 수 있지. 마치 용사가 공주를 구하러 탑에 올라가는데, 굳이 아래층 조무래기랑은 대면하지 않고 곧장 옥탑방 마왕과 독대해서 코털을 탁 하고 뽑아주는 공격이다, 따위의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저도 모르게 운전대를 쾅 치면서 속으로 또다른 2000년대 대사를 읊조리게 되었지요.


“나도 모르는 나를, 니가 어떻게 알아?”

 

갑자기 경어가 사라졌다고 놀라지 마세요. 사실 이건 징그러움의 표현입니다. 모두가 ‘나도 모르는 나’를 언급하지만 뻔히 나를 알지 않습니까. 그 사실을 상대방에게 간파당했을 때의 부끄러움입니다. 시작도 하기 전에 저는 부처님 손바닥 위에 올라가 있더군요. 저는 옛날 인터넷에 유행하던 호신술 짤을 떠올렸습니다. 한 남자가 ‘급소를 맞았을 때’ 대처법을 알려줍니다. 그는 고작, 무릎을 꿇고 양손으로 급소를 붙든 채 비장한 표정을 지으며 ‘큰소리로 상대방의 비겁함을 꾸짖’습니다. 저는 막상 전혀 ‘호신’하고 있지 않은 남자의 못생긴 표정을 떠올렸습니다. 그 남자처럼 항변하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았으니까요.


네, 이 편지의 서설은 난잡합니다. 근본적으로 구상을 간파당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러니까, 시종일관 ‘까르보나라’를 쓰려고 했습니다. 전기세 낼 돈 부족한 것도 아닌데 괜히 온 방에 불을 꺼놓고, 냉수를 한 잔 떠놓은 채 “작가님. 저는 좁은 방에서 빛을 몰아내고 찬물에 의지해 글을 쓰기 시작합니다”로 말문을 열려고 했단 말입니다. (방금 문장을 쓰고 나니 그렇게 하지 않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긴 합니다.) 과녁이 있지만 애써 무시하는 듯한 뻔뻔하고 의뭉스러운 문장을 선보이는 게 제 의도였습니다. 하지만 작가님이 보낸 편지의 요는 이런 것이었습니다. 나는 지금 당신의 구상대로 “좁은 방에서 빛을 몰아내고……”를 보는 순간 낯선 사람에게 손목이라도 잡힌 것처럼 큰소리로 선생님의 비열함을 꾸짖을 것입니다. 제발 그 수신자가 내가 되게 하지 마세요. 사실 작가님은 『제법 안온한 날들』의 수신자 없는 세 통의 편지를 보고 미리 불길함을 느낀 것이지요. 그리고 마이크를 쿵 던지듯 선빵을 날린 것입니다. 징그럽게 영리했습니다.


조짐은 있었습니다. 저는 친절과 위로가 습관이 안 되어 있는 부모님 밑에서 자랐습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사실만 말하는 엄마와, 사실도 무시하는 아빠 밑에서 자랐습니다. 유독 칭찬을 못 듣고 자란 아이는 눈치가 빠른 법입니다. 또한 기억은 왜곡됩니다. 배에서 초고를 미리 보였을 때 작가님의 대사는 정확히 “안 느끼하다고 말할 수 없지만, 괜찮은데요”였습니다. 저는 즉시 속으로 외쳤습니다. ‘제길. 당장 김치라도 주워먹고 싶은 지경이군. 큰일났다.’ 저는 집에 돌아와 빛을 몰아내고 냉수를 뜬 다음, 그 편지에서 느끼한 부분을 모조리 지우거나 수정했습니다. 당시 읽었던 편지는 작가님 덕분에 크게 달라졌습니다. 몰랐겠지요? 하지만 저도 당시 작가님이 구체적인 음식까지 떠올렸고, 훗날 죄목이 낱낱이 적힌 편지를 받을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작가님을 과소평가했음을 인정합니다. 사실 저는 작가님의 글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일간 이슬아> 초반 SNS에 돌아다니는 포스터를 보면서, 아량을 베풀듯 구독하고 싶었습니다. 솔직히 “나 <일간 이슬아> 초반에 구독한 사람이야” 뽐내고 싶었습니다. 저는 그 포스터의 주인공을 제 맘대로 ‘조선 힙스터’라고 불렀습니다. 과거에서 날아온 듯 촌스럽지만 당당해서 왠지 많이 멋있는 모습이었습니다. 글을 받아보고는 또 많이 놀랐습니다. 솔직함은 글의 매력이지만, 솔직하기만 한 글은 어딘가 폭력적입니다. 글에는 까닭 있는 솔직함이 있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작가님의 글은 매번 어처구니없이 솔직했지만, 갑자기 독자를 어디론가 이끌더니 평양냉면처럼 슴슴한 미지의 포인트를 짚어내며 끝났습니다. 마지막 단락을 읽고 “아, 잘 쓰잖아”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는, 그건 재능입니다. 누구나 솔직하고 싶지만, 누구나 재능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한마디로 단언할 수 없는 재능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처음 작가님과 배에서 만나기로 했을 때 걱정되는 것이 있었습니다. 언급한 대로 저는 세상 모든 힙한 것에 멀미가 나는 순두부찌개입니다. 해방촌 한복판에 살면서도, 맥주병을 든 온갖 힙스터들만 보면 아찔해져 얼른 계란과 콩나물을 사서 들어와 고전문학을 펼쳐드는 종류의 사람입니다. 하지만 일반 힙스터도 아닌 ‘조선 힙스터’는 당초에 얼마나 힙할까 걱정이었습니다. 가뜩이나 흔들리는 배에서 멀미가 나지 않을까 하고요. 하지만 작가님의 편지대로 우리는 방광염이나 월수입이나 세금 따위를 털어놓으며 편해지는 사이일 뿐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글쓰기의 재능이란 상대방을 카펫 털듯 털어보는 재능이기도 하다는 것을 왜 미처 파악하지 못했을까요. 과소평가도 있었지만, 부지불식간에 저는 ‘멋짐’을 기대했지 ‘징그러움’을 예견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제 불찰입니다.


절교를 운운했지만 사실 작가님을 조금도 미워할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죠. 부끄러움에 가슴이 쿵쾅거렸던 것도 그런 사실에 기인합니다. 저는 몰래 사람들이 남기는 악플을 찾아다니는 유형의 작가입니다. 『제법 안온한 날들』을 출간하고 저는 목마른 사람처럼 부정적인 평가를 찾아다녔습니다. 초반부 사랑 이야기는 별 감흥이 없었고, 편지는 왜 썼는지 모르겠으며, 병원 이야기만은 그럭저럭 볼만했다는 평이 널려 있었습니다. 기실 보통 독자들에게 저는 ‘병원 이야기 쓰는, 왜인지 모르지만 프로필 사진에서 항상 옆을 보고 있는 의사 선생님1’일 것입니다.


저는 지겨웠습니다. ‘깔끔하고 탁월하고 믿음직스러운 글을 쓰는 의사 작가’가 진부했습니다. 사실 의사인 화자가 응급실에서 환자를 마주하는 글이야말로 제가 가장 잘 쓸 수 있는 분야입니다. 하지만 그 글에 저는 매너리즘을 느꼈습니다. ‘평생 응급실 타령만 하던 작가’가 될까봐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저는 화자를 사랑하고 이별도 하고 일상생활도 하게 했습니다. 저라는 ‘사람’에겐 도통 관심 없었던 사람들의 ‘이런 건 안 궁금하다’는 평가에 지쳐 있었습니다. 그중 연애와 관련된 글은 참으로 옛날에 쓴 것이었습니다. 그 친구는 연애도 응급실에서 환자 보듯이 합니다. 바꾸어 말하면, 절망적인 사랑에 빠진 나와 표현하고자 하는 내가 공존하는 글이라는 거죠. 그 글을 부끄럽지만 버릴 수 없었습니다. 한 젊음을 짚고 넘어가는 의미에서 지금이라도 출간해야 한다고, 서른여덟의 내가 컨펌했습니다. 그 와중에 작가님이 또 한번 제 눈알이 빠질 것처럼 뒤통수를 딱 쳐주셨습니다. “정신 차려!”라고요. 맞아요. 저는 저라서 제 일부를 떼놓을 수가 없었던 것이지요. 글은 숙주를 현혹시키는 것입니다. 그런데 「나의 진정한 친구 뿌팟퐁 그는 누구인가」는 페이스북에서 따봉이 1200개에 리플이 100개를 넘겼단 말…… 아닙니다. 인정하기로 하지 않았습니까.


‘월미도 디스코팡팡’으로 시작하는 엉망진창인 글을 쓰다보니, 글쓰기란 늘 누군가에게 간파당하고 어딘가에서 나를 지켜보고 따라다니면서 죄책감도 남겨주는 신기한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렇게 털어놓고 나면 왜 쓰는지 의문이 들지만, 쓰기를 하지 않았다면 작가님에게 이렇게 무엇인가를 털어놓는 일도 없겠지요. 우리는 글을 주고받기로 했습니다. 어쩔 수 없이 글로 이루어지는 무궁한 세계를 상상합니다. “두려움과 두려움을 이길 수 있는 힘을 동시에 주는 당신”은 솔직히 제가 자신에게 가장 많이 취했을 때 쓴 문장입니다. 자신의 본질을 꿰뚫어보다가 갑자기, 불현듯, 우리에게는 무엇인가 탄생합니다. 매번 끊임없이 느끼한 문장을 낳을지라도 탐구를 멈출 수가 없는 것입니다. 글쓰기라는 세계에서 우리는 기꺼이 속아버리는 존재이기도 하니까요.


문득 남을 생각하다가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 서간문의 본질임을 직면합니다. 작가님은 적어도 ‘나를 생각해주는 사람’입니다. 응급실에서 안구진탕에 시달리던 새벽 ‘나를 생각해주어 고맙습니다’라고 보낸 것은 그 까닭입니다. 저 또한 징그럽게 남을 간파하고 징그럽게 많이 쓰는 조선 힙스터를 생각합니다. 그때마다 우리가 나눌 무궁한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그러면, 마지막 단락에서의 무궁한 “아, 잘 쓰잖아”를 희망해봅니다. 역시 약간 이슬아적으로요.


쓰다보니 밤이 되었고 방에는 불을 켜지 않았습니다. 아무래도 냉수를 떠와야겠습니다.


2020년 6월 10일

사방으로 진동하는 안구를 붙잡으며

남궁인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