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회

힘센 이슬아 작가님께

우선 편지를 다 읽고 나서 제 머릿속을 떠나지 않던 것은 한 사람의 시각화된 모습이었습니다. ‘좋은 시계를 차고 좋은 차를 몰고 비싼 레스토랑에 다니고 자기 손으로 할 줄 아는 요리라곤 오일파스타밖에 없는 사람’이자 ‘창업을 했다가 망했지만, 큰 타격이 없을 정도로 집에 돈이 많은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라니요. 이런 사람을 만나보셨나요? 저는 인생에서 이런 사람을 정말 많이 보았습니다. 지금도 어디엔가 제 지인으로 남아 있을 수도 있겠네요. 왠지 작가님도 이런 분을 인생에서 몇 차례 만났을 것 같습니다. 한여름에 겨울 정장을 입고 카메라 앞에서 괜히 오만상을 짓는 남자는 그렇게 보이기도 하겠지요.


아시다시피 저는 그런 스테레오타입과 정반대임을 입증하기 위해 천 일 동안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는 사람입니다. 텃밭에서 키운 깻잎으로 김치를 담가 먹는 것까지 가지 않아도 좋습니다. 저는 태어나서 명품이란 것을 단 하나도 사본 적이 없습니다. 선물까지 포함해서요. 당연히 입거나 쓰거나 들어본 적도 없습니다. 차는 한 대를 산 적이 있습니다. 올해로 십 년째 타고 있는 국산 중형차입니다. 시계는 구 년 전에 중고나라에서 산, 대학생이 주로 차는 브랜드의 시계를 최근까지 차고 다녔습니다. 올 초 외국에 촬영을 가기 위해 남대문시장에서 시간만 정확히 알려주는 만오천 원짜리 시계를 샀는데, 최근에는 그 시계를 찹니다. 그 외 당연히 집을 사본 일도 없고 빚을 내본 적도 없으며 주식도, 채권도, 펀드도 사본 적이 없습니다. 아, 마권은 학생 때 경마공원 데이트 가서 한 번 사봤습니다. 금세 휴지가 된 마권을 허공에 날리며 앞으로 ‘권’으로 끝나는 존재는 안 사야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제 월급통장이야말로 가장 평온하고 느긋하게 다리를 뻗고 있는 친구일 겁니다. 주인이 그에게 별생각이 없으니까요. 대신 친구가 놀러와 옷장에서 쏟아지는 오백 원짜리 양말에 놀라거나, 병원에서 바느질을 배워 집에서 옷을 기워 입거나, 상한 식혜를 버리지 못하고 입에 털어넣는 사람입니다. 아 참, 오일파스타를 만들려면 얼른 집에 있는 냉장고부터 뒤져야 합니다. 재작년부터 잠들어 있는 냉동 해물모둠이라도 털어넣을 기회니까요.


천성이 비싼 것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제게는 스트레스였지요. 그래서 저는 『제법 안온한 날들』의 편지글에 이렇게 썼습니다. 


“가끔 좋은 차나 비싼 물건을 봐요. 그리고 그것들이 내 소유가 되는 일을 상상하곤, 깊은 마음속으로부터 몸서리쳐요. 물질적인 것은 나를 즉시 파괴해버릴 것 같아요. 그런 방식으로 나를 다른 사람에게 보여야 한다면, 나는 얼마나 보잘것없는 사람이 되는 것일까요. 만약 그것들이 내 소유가 된다면 나는 두려워 한시도 견딜 수가 없을 것 같아요.”


추천사를 쓰느라 제 책을 몇 번쯤은 읽었을 작가님은 이 문단을 본 적이 없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편집자님은 미리 이 문단을 통으로 삭제했습니다. ‘물질적인 것을 싫어하는 건 알겠지만, 그걸 문장으로 옮기는 일은 느끼합니다’라고 말씀해주시는 것이었을까요. 제 느끼느끼력을 파악한 사람은 작가님을 포함해 이미 세상에 한둘이 아닙니다. 그래서 이 서두는 조금 부끄러운 마음에서 시작합니다.


하지만 저는 세상에 글을 내다가, 얼굴을 밝히기로 하고 맨 처음 한 일을 기억합니다. 그것은 일 년 팔 개월 만에 미용실에 간 것이었습니다. 그동안 미용실에 가지 않았다고 해서 스스로 머리를 자른 것도 아니었으니, 제 머리는 똑단발이었지요. 당시 별명은 만주의 동물 판매상이었고, 누군가는 머리 스타일만 벌써 작가라고 놀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세상에 얼굴을 비추어야 한다는 결의를 하고 저는 단정하게 머리를 잘랐습니다. 세상과 마주하는 예의 같은 것이었을까요. 이후 촬영이나 방송이 있으면, 결혼식, 장례식장, 학회장 따위에 갈 때만 입던 두 벌의 정장을 번갈아서 입었습니다. 가끔 정장을 협찬받을 때도 있었습니다. 모두 세상에 누가 되지 않으려고 한 일입니다.


세상은 참 이상합니다. 저는 글을 쓰는 사람이고자 했을 뿐인데 정장 화보가 돌아다니고, ‘창업을 했다가 망했지만, 큰 타격이 없을 정도로 집에 돈이 많은 사람’처럼 보이기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왜 응급의학과에 있는 줄 아십니까. 바로, ‘창업’을 할 수 없는 과이기 때문입니다. 빚을 내고 돈을 융통하고 매출을 계산하다니요, 저에게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저는 젊었을 때부터 몸으로 때우고 일당을 받는 일이 편했습니다. 그 대가로 떨어진 응급실 일은 만만치 않았지만요. 하여간 저는 그러한 이유로 제 나름대로 용기를 내서 몸에 안 맞는 옷을 걸치고 사진기 앞에 나서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제 소유의 정장은 아직 두 벌뿐입니다. 아, 작가님이 본 것은 광고가 아니라 단발 촬영입니다. 생각해보니 저는 아직 광고를 찍어본 적이 없고, 광고비를 받아본 적도 없습니다. 저랑 안 어울리는 일 같아서 안 했습니다. 유일한 ‘광고’는 아동보호단체와 함께 촬영한 것입니다.


갑자기 고백합니다. 저는 세상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관찰합니다. 그중에는 유명한 사람도, 잘 알려지지 않은 사람도 있습니다. 제가 아는 사람도, 전혀 모르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다 그들은 어쩌다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고 그들의 발언이 하루종일 회자됩니다. 비난이 쏟아질 때도 있겠지요. 그럴 때마다 저는 공포와 불안을 느낍니다. 저는 두렵고 무서운 일이라면 뭐든 제게 대입해보는 성정을 지녔거든요. 저는 자주 제가 가진 모든 것을 단 며칠 만에 잃어버리는 일을 생각합니다. 모두가 나의 가장 안 좋고 부끄러운 면을 두고두고 이야기하는 상상을 합니다. 그리고 다시 두려워져 어떤 말이든 하지 않기 시작합니다.


그것은 실제 제게 일어난 일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처음 저는 몸에 안 맞는 용기를 내고 세상으로 나왔습니다. 그리고 이 일이 단순히 정장을 입는 것처럼 겉모습일 뿐일 때도 있지만, 결국에는 끊임없이 내면이 시험대에 오르는 일임을 깨달았습니다. 처음 쓰기 시작할 때 저는 나약했고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그것도 끝이 보이지 않는 일이었지만, 본격적으로 문장 위에 서자 불안과 공포는 본격적으로 찾아왔습니다. 세상에 할 수 있는 무한한 말과, 그로 인해 발생할 무한한 반응이 두려웠습니다. 개인적인 부족함에도 천착하기 시작했습니다. 가끔은 엘리베이터와 계단실뿐만 아니라, 혼자 있는 집과 혼자 걷는 길 모두가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불안과 우울에 대한 일기를 적곤 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좋은 방법은 약을 먹는 것이었습니다. 불안이 사라지더라고요. 하지만 저 또한 멍해져 글을 쓰기 어려웠습니다. 글이 무뎌졌고 예민함이 줄어들었습니다. 내가 아닌 것 같았지만, 괜찮았습니다. 워낙 글을 쓴다는 행위에서 불안감이 시작되었으니까요. 그렇게 편해질 때는, 평생 쓰지 않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 때도 많았습니다. 저는 사람들 앞에 나서는 일이 아직도 두렵고 공포스럽습니다. 무한한 시간이 지나면 결국은 패배할 싸움이 무섭습니다.


대신 의사로서 저는 강합니다. 아니, 강해졌다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또한 기저에서는 불안하고 공포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처음 저는 그것들을 담담하게 털어놓았지만, 술자리에서 이렇게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습니다. “하루만 나 대신 당직을 서면 아마 외상후스트레스장애로 삼 개월은 병석에서 시름시름 앓을 거다.” 이건 제 경험에 의거한 말입니다. 저는 하루에도 너무 많은 사건을 겪은 다음, 집에 돌아오면 삼 개월 정도 병상에 누워 앓고 싶은 지경이었습니다. 새살처럼 약한 마음을 구두 뒤축으로 짓뭉개는 듯한 일이었으니까요. 하지만 다음날 아침에 또 출근해서 또 그 일을 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만약은 없다』는 엉엉 울어버릴 준비를 하고 앉아 있는 의사의 일기입니다. 그는 자기가 목격하는 일이 전부 자신에게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그 책을 읽고, 여기 나온 의사부터 병상에 눕혀서 치료하라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응급실에는 불안한 사람들이 너무나 많이 찾아옵니다. 하지만 대체로 의사들은 불안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주로 하는 일은 그들이 불안하지 않을 때까지 시간을 두고, 다른 기질적 원인이 없을까 검사하는 것입니다. 응급실에서 바로 항불안제를 투여하는 일은 좀처럼 하지 않습니다. 정신과적 투약은 장기적인 계획에 의거해야 한다는 원칙도 일리가 있으니까요. 하지만 저는 제가 먼저 힘들어져, 응급실로 뛰어온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제가 지금 당장 당신의 불안을 돕겠습니다. 원하는 바를 말하세요. 같이 불안을 해결할 방법을 찾아봅시다.” 그것이 약이든 상담이든, 저는 즉시 도와줍니다. 그리고 불안하지 않다는 말을 들을 때까지 잡아둡니다. 이런 직업적 비밀을 고백해도 될지 모르겠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저는 매일 근무하지 않으니까, 병원에 찾아오시면 저를 못 만날 확률이 높습니다.


저는 괜히 이 사람이 얼마나 아팠을까 생각해보는 사람입니다. 얼마나 불안하고, 또 얼마나 힘이 들었을지 생각해보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아픈 사람들이 있습니다. 생이 영원해도 저는 그 아픔에 닿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저는 누워 있는 환자의 정강이 앞쪽을 괜히 쓰다듬으며 침대를 떠나는 의사입니다. 환자와 이야기하다가 빙그레 웃기도 하는 의사입니다. 아픈 아이가 오면 한 번씩 안아보고 머리를 쓰다듬은 후에야 보내주는 의사입니다. 불안하다고 엉엉 울면 어깨를 한번 토닥거리고 싶은 충동을 참아내는 의사입니다. 네. 욕심이 많은 느끼한 의사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아픔을 영원히 이해할 수 없는 것처럼, 공포와 불안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방법 또한 잘 모르겠습니다. 가운을 벗고 집에 돌아오면 저 또한 매일 불안에 시달립니다. 그리고 무엇이든 해결되지 않는 일을 생각합니다. 저 또한 불안과 영원히 살아가는 일을 암담하게 받아들입니다.


부끄럽지만 저는 실제로 코로나 시대 전방의 의료진입니다. 바이러스는 보이지 않지만, 저는 그것이 들어오지 못하게 막아야 합니다. 그 횡포하고 지독한 존재로부터 완벽히 승리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우리는 패배한 다음 바이러스가 지나간 자리를 쓸고 닦고 치우고 또 올 자리를 마련합니다. 수시로 감염 여부를 검사받고 가끔 자가격리당하고 퇴근하면 집에만 머물러야 합니다. 방역복은 덥고 고글에 김이 서려 앞은 보이지 않으며, 솔직히 혼란스럽고 무섭고 겁이 납니다. 그 외에도 저는 지금까지 많은 것과 싸웠습니다. 불안하고 소심한 시선으로, 응급실에서 제가 본 것에 의거해 할 수 있는 이야기를 모두 털어놓았습니다. 제가 겪은 많은 일을 되풀이해서 생각하고 기록하는 일을 했으니까요. 아동학대, 중증 외상, 가난, 노동자 상해, 열사병, 헌혈, 소방관 처우 개선, 우울과 자살, 폭행과 살해에 대해서 저는 글을 써왔습니다. 코로나19도 마찬가지였지요. 하나같이 너무나도 아픈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출근해서 실제 그것들을 막아왔습니다.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해결되지 않을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저는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지난 한 달 동안 저는 동료들이 떠난 응급실에서 혼자 일을 했습니다. 과로로 살이 빠졌는지 어젠 벨트에 맞는 구멍이 또 한 칸 줄어들었더군요. 물론 코로나바이러스는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제가 이야기해오던 문제 또한 여전히 응급실로 찾아옵니다. 저는 이 편지를 다 적고, 내일 아침 일곱시부터 정확히 열여섯 시간 동안 다시 혼자 응급실을 지켜야 합니다. 다섯 명의 일이 한 명에게 쏟아집니다. 많은 환자가 찾아오면 어차피 받을 수가 없어서 할 수 있는 만큼만 일해야 합니다. 제 능력을 모조리 발휘해도 완벽히 해낼 수 없는, 마치 패배가 예견된 군인 같은 것입니다. 가난과 폭행과 우울과 바이러스는 아직도 제자리에 있지만 제 곁에는 동료가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알 수 없는 시기를 지나고 있습니다. 불안하고 공포스럽습니다. 저는 절망적인 기분으로 내일 아침 출근해 근무복으로 갈아입고 다시 응급실 한복판에 앉을 것입니다.


사실 담대함에 대해서는 작가님께 배워야 할 것 같습니다. 그 많은 사람들과 두려움 없이 맞서려면 얼마나 크고 담대한 용기가 필요할까요. 우리에게는 명이 있다면 암도 있습니다. 작가님은 엘리베이터나 계단실이 공포스럽지만, 저는 그것을 제외한 모든 것이 공포스러운지 모릅니다. 하지만 불가해하고 도저히 이룰 수 없는 것을 계속 극복해나가는 게 우리 삶의 목표가 아닐까요. 저는 불안과 공포를 해결할 수 없지만, 근본적으로 해결될 수 없는 것들이 너무나 많다는 사실을 전달하고 싶습니다. 어떨 때는 무서울 만큼 강한 힘을 가지고 싶다가도, 어떨 때는 한없이 약해져 어떤 것과도 싸우고 싶지 않은, 우리의 변화하는 성정이 결국 불안과 공포의 근원인지 모르겠습니다. 갑자기 먹는 약이나 좋은 정신과 의사보다는, 누군가 와락 안아주는 일 같은 것이, 우리의 불안을 잠재우는 방법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서면으로 방법을 묻고 서로를 깊게 이해하려 손을 내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계속 이겨내는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대체로 패배하고 가끔 승리했다고 생각하겠지만 다시 패배로 돌아올 것입니다. 그래서 삶은 눈물나는 일입니다.


패배가 예견된 일을 앞두자 말이 길어졌습니다. 해결책을 드리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2020년 9월 4일

불안과 공포의 왕

남궁인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