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회

고백하고 싶어지는 이슬아 작가님께

새해가 되었습니다. 올해도 복 많이 지으시길 바랍니다. 저는 무감하게 나이를 먹었고 내년에 마흔 살이 됩니다. 작가님은 서른 살이 되었군요. 나이가 언급된 김에 새삼스레 서른 살의 작가님을 생각합니다. 누가 뭐래도 작가님의 외양은 어려 보입니다. 하지만 한편으로 정신을 차리라는 준엄한 편지를 보내주시는 분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는 마치 영어권 사용자처럼 작가님의 나이를 가늠하지 않고 지내온 것 같습니다. 문득 제가 서른이 되던 해가 생각납니다. 저는 나이 앞자리가 3으로 바뀌는 순간 슈퍼 마리오가 버섯을 먹은 것처럼 큰 소리로 ‘무럭무럭무럭’ 하고 자랄 것만 같았습니다. 하지만 막상 이십대의 그럴듯한 기억만 남은 서른 살이 되어 있더군요.


모든 것이 새로 시작되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래서 레지던트 삼 년 차이던 저는 저에게 ‘독거’를 선물했습니다. 이십대 내내 집에 잘 안 들어갔지만 막상 나와 살지는 않았습니다. 어차피 집에서 잠만 자는 거 아니냐는 어머니의 만류를 뒤로하고 출가해 아무도 없는 집에서 잠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독서를 하고 글을 썼습니다. 허황된 이십대에서 건실한 삼십대가 되는 순간이었지요. 제 서른 살은 그랬습니다. 학업과 일에 시달리며 방황하다 본격적으로 세상에 나갈 준비를 하던 해였지요. 그런 나이에 이뤄야 할 야망과 수습해야 할 문제를 언급하다니, 새삼스럽게 작가님은 정말 위대한 분입니다. 아니 그런데, 얼마나 더 많은 쾌락을 알고자 하시려는 겁니까. 지금보다 더 많은 쾌락을 알려다가 다칠까봐 무섭습니다. 세상 쾌락 별거 없으니까 적당히 압시다. 아니면 저에게도 조금 알려주고 나눠주실 수 있나요. 쾌락도 나누면 배가될지 모르지 않습니까.


안 그래도 얼마 전 작은 수술을 받았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인간적인 궁금함과 의학적인 궁금함이 동시에 찾아왔습니다. 과연 어떤 수술일까요. 혹시나 알고 나면 인간적으로 민망해지거나 의학적으로 철저히 분석하게 되는 일이 아닐까요. 두 가지 모두 그림이 썩 좋지 않았습니다. 복잡한 마음이 들어 결국 물어보지 않았습니다. 그냥 쾌유를 빈다고 말했죠. 하지만 팔뚝에 생긴 섬유종이라니요. 다행입니다. 민망할 필요도 없고 분석할 필요도 없는 것이군요. 일단 쾌차하셔서 너무나 다행입니다.


제 친절함과 상냥함을 매번 강조해주시니 진땀이 쏙 빠지도록 더 친절하고 상냥해지고 싶습니다. 그리하여 작가님은 팔뚝에 왜 섬유종이 생겼는지 ‘친절한’ 제게 묻고 있는 것 같습니다. 경보 시합하는 의사 선생님에게 못 들으셨다니까요. 하지만 제 취미도 달리기……는 농담이고, 저 또한 모릅니다. 인간의 몸에는 많은 것이 자랍니다. 저는 연유 없이 인간의 몸에서 자라난 많은 것들을 실제로 꺼내 보았습니다. 우리의 인지구조에서 ‘인간’은 뽀얗고 단단한 살갗으로 둘러싸인 존재겠지요. 하지만 그 피부 안에서는 미더덕뿐만 아니라 각종 농해축산물 코너에 있는 것들이 다 자랍니다. 학생 때는 매일 충격의 연속이었습니다. 인간의 몸에서 저렇게 생긴 게 나올 수 있다니.


게다가 그 불청객은 우리 몸에 나쁜 존재일수록 더 명백히 나쁘게 생겼습니다. ‘암’은 실제로 보면 정말 ‘암’같이 생겼지요. 냄새도 심하고 모양도 울퉁불퉁하며 괴팍하게 주변 조직을 먹어치웁니다. 누군가를 비난할 때 ‘암덩어리’라고 부르는 건 괜히 그런 게 아닙니다. 그 표현을 들을 때마다 직접 목격한 간암이나 대장암 따위를 생각합니다. 하지만 병리학이나 유전학의 영역에서 아무리 탐구하고 공부해도 근본적으로 그 사람에게 그런 것이 왜 생겼는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누군가에겐 아무것도 생기지 않고, 누군가에겐 양성종양이 발견되고, 누군가는 암으로 세상을 달리하죠. 그래서 그냥 그런 일이 생겼다고 설명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걸 축약하면 “이유는 저희도 모릅니다”라며 경보하는 평범한 의사선생님이 됩니다. 그런데 미더덕이라고요. 해물탕에 들어가는 착한 존재 아닙니까. 겨울이라 따뜻한 국물이 당기기도 하는군요. 안온한 일입니다. 다시 한번 천만다행입니다.


전신마취를 받으며 카운팅을 하다 기억이 끊기셨다고 하니, 한 가지의 고백을 더 해야겠습니다. 저번 편지에 명품을 사본 일이 없다고 고백했지요. 제가 또하나 경험하지 못한 게 있습니다. 바로 전신마취와 수면마취입니다. 태어나서 몸에 칼을 대거나 수면마취가 필요한 시술을 받을 일이 없었습니다. 평생 저 스스로만 잠들었지 주사를 맞고 자본 일이 없는 겁니다. 십이 년째 일하면서 환자를 천 명쯤 재웠지만 막상 저는 그게 어떤 기분인지 모릅니다. 혈관으로 약이 빨려 들어가자마자 모두 어디론가 급하게 떠나시더군요. 육신을 그대로 둔 채 여행하는 곳은 어떤 곳일까요. 무엇을 보고 오셨습니까. 궁금하지만 일부러 경험해보고 싶지는 않습니다. 주사는 아프고 아프면 싫으니까요. 그럼에도 온전한 기억을 지녔음을 자랑하고 싶었습니다. 문득 고통에 다가가고 모든 것을 경험하려면 정말 오래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작가님의 새해 덕담처럼요.


제 아이디에 대해 해명합니다. 사이트를 불문하고 제 모든 아이디는 insiders입니다. 참 오래전부터 ‘인싸이더’의 복수형을 써왔지요. 제가 눈을 번뜩이면서, 이걸 물어보지 않았으면 어쩔 뻔했냐며, 역시 떡잎부터 범상치 않았다는 사연을 전달할 것이라고 기대하셨다면,  참으로 죄송합니다. 별거 없거든요. 서기 1996년, 코흘리개 중학교 일학년이었던 남궁인 학생은 난생처음으로 인터넷 아이디를 정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 학생은 창의력도 없고 아는 영단어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영한사전을 뽑아 본인의 이름인 ‘in’으로 시작하는 페이지를 펼쳤습니다. 인치, 인더스트리 따위의 단어를 보던 그는 ‘인싸이더’의 발음이 멋있다고 생각합니다. ‘내부자’라는 뜻도 왠지 있어 보였습니다. 그래서 입력했으나 당연히 누가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얼마 전 학교에서 영단어에 s를 붙이면 복수가 된다는 사실을 배웠습니다. 결국 insiders라는 아이디가 탄생했습니다.


덕분에 평생 사용할 아이디가 <내부자들>이 되었습니다. 이 영화가 개봉한 건 약이십 년 뒤의 일이었습니다. ‘인싸’ ‘아싸’ 열풍 또한 참으로 오랜 뒤의 일입니다. 하여간 1990년대 말 저는 온라인에서 ‘인싸이더’의 줄임말 ‘인싸’라고 불렸습니다. 그뒤로 치열하게 ‘인싸’이고자 하는 삶을 살았던 것 같지만 치열하게 ‘아싸’ 취급을 받으며 살았습니다. 자기를 무려 ‘인싸’라고 부르는 사람일수록 별로 가까이하고 싶지 않은 법입니다. 저 같아도 저랑은 안 놀았을 것 같습니다. 덕분에 취미란에 ‘독서’, 특기란에 ‘피아노’를 적는 ‘아싸’로 대부분의 생을 살았습니다. 그럼에도 공교롭게 제 이름이 ‘인’이었던 것이 ‘인싸’의 한 부분을 암시했다고 생각하니 조금 징그럽군요.


작가님 앞에서는 자꾸 무엇이든 고백하게 되네요. 고백할 게 또 있습니다. 보통 리액션이 뛰어난 사람을 ‘리액션 부자’라고 하지요. 그 기준에서 저는 리액션 거지, 줄여서 ‘리거’라고 해야겠군요. 병원에서 환자를 위로하면 그럭저럭 환자분들은 좋아하십니다. 친구들을 위로해도 반응이 나쁘지 않습니다. 하지만 애인을 위로하면 가차없는 반응에 직면합니다. “참 힘이 들었겠구나” “참 좋지 않은 일이었구나” 등등의 대사는 제게서 영락없이 ‘교양 있는 현대 서울말씨’로 책을 낭송하듯 재현됩니다. 제 서울말은 너무 서울말이라서 사람을 화나게 하나봅니다. 그래서 애인에게 진정성 있는 위로를 해야 할 타이밍이 오면 눈알부터 사시나무처럼 떨리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어김없이 불호령이 떨어집니다. “영혼은 어제 가출했니?” 같은 것입니다. 그 때문에 한 방에 가차없이 걷어차인 적 또한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환자분들이 그럭저럭 좋아하셨는지도 의심스럽습니다. 친구들 또한 저랑 진짜로 친한 친구들인지 의심해봐야겠군요.


이 고백을 작가님에게 하는 건, 편지를 주고받다보니 작가님은 참 진심으로 인간을 궁금해하고 공감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일간 이슬아>에도 인터뷰 코너가 있고 『깨끗한 존경』이라는 인터뷰집을 출간하기도 하셨죠. 그 글들을 보면 누군가의 생과 존재에 대해 경탄하고 탐구하려는 자세가 깊이 배어 있습니다. 글 자체로도 훌륭하지만, 내 앞에 있는 사람에 대한 진정한 놀라움이 그 글을 더 빛나게 만들고야 맙니다. 하지만 고백한 대로 저는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진정으로 공감하고 위로하려고 해도 ‘영혼의 현존’ 여부를 추궁당하고야 맙니다. 그러고 보면 저는 누군가를 진정으로 궁금해하는 것에는 자신이 없는 것 같습니다. 이 편지 또한 주로 작가님이 묻고 제가 답하는 형식이지요. 일단, 저에 대해 너무나 정성스럽게 궁금히 여겨주셔서 늘 감사합니다. 그리고 반대로 묻고 싶습니다. 그 궁금하게 하는 힘은 무엇입니까? 무엇이 이슬아 작가를 늘 놀랍고 새로운 세상에 깊이 빠질 수 있게 하는 것인가요? 또한 우리는 평생 사랑하는 한 사람을 깊게 탐구하는 것이 행복할까요? 아니면 존경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경탄하는 것이 행복할까요? 궁금함에 대해서 작가님께 너무 궁금합니다. 그리고 상대방을 대하는 용기 있고 정갈한 자세가 늘 부럽습니다.


작가님이 제게 편지를 쓰고 있는 동안 저는 또다시 큰 사건의 중심에 섰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늘 패배로 돌아온다는 말과 일치했습니다. 그 고통과 죽음을 본 순간 저는 또다시 완벽히 패배했음을 알았습니다. 어떠한 농담도 도저히 나올 수가 없는, 농담의 존재조차 사치인 것 같은 일이었습니다. 저는 그 일을 ‘피가 거꾸로 솟았다’고 표현했습니다. 그 표현은 들불처럼 확대재생산되어 언론을 달구었지만, 아직도 저는 그보다 더 적확한 표현을 찾지 못했습니다. 겉보기에 사람들은 대체로 무탈하게 살아가는 것 같겠지요. 하지만 한 번 그 궤도를 벗어난 사람들은 지옥으로 향하게 됩니다. 아무리 고통과 부상과 죽음이 혼재한 세계에서 살고 있어도 커다란 추가 날아와 후두부를 가격하는 것 같은 일이 있습니다. 삶이 눈물날 정도로 징그러워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와 관련된 글을 쓰고 방송을 마치고 방에 돌아와 작가님에게 답장을 씁니다. 서두를 발랄하게 열었지만, 그 일에 대해서 말을 꺼내지 않기가 어렵습니다.


지난 크리스마스에도, 새해 첫날에도 저는 응급실에 있었습니다. 정확히는 12월 24일에서 25일로 넘어가는 시간과 12월 31일에서 1월 1일로 넘어가는 날 모두 당직을 서고 아침에 퇴근했습니다. 그런 날들의 응급실은 어떨 것 같습니까. 병원 밖 보통 사람들은 행복한 날이지요. 대신 응달에 남겨진 사람들은 얼마나 처절하게 불행에 떠는지 모릅니다. 모두가 들뜬 세상의 변방에서 벌어지는 파괴와 고독을 목격하는 일입니다. 그런 것들을 매년 자청해서 보고 있자면 적어도 그다지 행복하고 싶지 않아집니다. 압도적인 패배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죽음을 보고 있으면 자신 또한 영영 행복하기 어려울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사람들의 몸에는 문득 악성종양이 돋아나고, 때로는 악마 같은 불의가 인간의 연약한 육체를 부수어버립니다. 그런 것들이 인간 세상에 왜 존재하는지는 여전히 알 수 없습니다. 아무도 행복해지지 않는 일이 세상에는 너무 많습니다. 저는 의학적으로 그것들을 ‘어떻게’ 처리하는지는 잘 알고 있습니다. 기계적으로 훈련받았으니까요. 하지만 ‘왜’라는 질문을 멈출 수가 없습니다. 작가님이 경험한 대로 여기는 ‘왜’라는 질문이 미약한 세상입니다. 하지만 왜 인간들은 타인의 생명을 짓밟아버리고, 왜 누군가는 아무도 지켜보지 않는 곳에서 비참하게 죽어가는 것일까요. 그것들을 돋보기로 들여다보자 저는 불행해지지 않을 도리가 없었습니다. 남들이 가장 행복한 순간에 가장 불행한 장소로 찾아가야 했으니까요. 그건 신형철 평론가의 말처럼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이자 ‘고통을 공부하는 고통’일 것입니다.


『만약은 없다』와 『일간 이슬아 수필집』은 우리의 첫 책이자 대표작입니다. 자신의 이야기와 본인 그 스스로를 세상에 알리고 싶었던 두 화자는 첫 책에서 필사적으로 개인적인 서사를 풀어놓습니다. 그 이야기는 요행히도 사람들의 큰 관심을 받았습니다. 그 서사에는 우리 나름대로의 특별함과 신선함이 있었기 때문이겠죠. 그래서 그 이야기는 사람들의 뇌리에 박히고, 우리의 글쓰기 인생에서도 항상 따라다니겠지요. 그뒤로도 우리는 꾸준히 쓰고 있으니 기술적 측면에서는 나아질 수밖에 없을 겁니다. 하지만 우리는 평생 개인적인 이야기만을 늘어놓을 수가 없습니다. 또한 기술적으로 나아진다고 해서 갱신이라고 부르기도 어렵습니다. 아무래도 자신의 사연이 소진될 때가 글쓰기의 진정한 시작일 겁니다.


글을 쓰는 사람은 자신의 세계를 확장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다음에는 무엇을 말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우리는 조금 더 자신이 생각하는 정의의 입장에 설 수밖에 없습니다. 반성하고 주위를 되돌아보고 읽고 이해하는 것이 글쓰기를 계속하는 행위니까요. 작가님이 비건-에코-페미니스트를 언급하셨던 것처럼, 저 또한 꾸준히 폭력-학대-재난-슬픔 등을 언급해왔습니다. 비유하자면, 자신이 디디고 있는 디딤돌에 간신히 다른 디딤돌 하나를 올려놓고 그 달라진 광경을 묘사하는 일이 글쓰기의 갱신이겠지요. 타인의 세계를 어려워하는 제가 <에픽>에 썼던 원고 또한 남을 궁금해하고자 노력하는 원고입니다. 병원에서 내내 같이 일했어도 묻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원무과 직원, 이송 기사, 간호조무사, 청소 업무원님들의 노고를 알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낯섦을 이겨내며 세계를 확장하기 위해 노력해야겠죠. 그러다보면 큰 사건에 휘말려 세상에 어떤 식으로든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기도 했다가, 식탁에 오른 고기를 보고 작가님의 글을 떠올리며 죄책감을 느끼는 사람이 되는 것이겠지요.


사실 모든 작가는 영영 첫 작품을 따라잡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갱신은 자주 실패로 돌아가고, 우리는 마감된 원고를 보며 펜을 집어던지고 싶은 욕망에 시달릴 것입니다. 심지어 제가 말하는 것이 진정한 갱신인지조차 혼란스럽습니다. 과연 제 인생이 옳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 저 또한 두렵습니다. 하지만 확신합니다. 적어도 자신의 세계에서 동어반복하며 배회하지 않으려면, 그러다가 불시에 악과 어둠이 되지 않으려면, 우리는 끝없이 갱신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불의에 둔감해질 때, 우리의 존재는 휘발될 것입니다.


‘만약은 없는 일간 이슬아 수필집’ 같은 걸 ‘갱갱갱신’해봅시다. 같이 부단히도 부딪치면서요.



2021년 1월 26일

한때 인싸이더라고 불렸던

남궁인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