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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를 시작하며


대학교 4학년 여름, 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집으로 가던 길에 교통사고를 만나 전신화상을 입고 “으이구 이 화상아~”라는 말이 저절로 나올 만큼 지겹게 수술을 받았다. 그리고 어느새 스무 해가 흘렀다. 


“그럼 지금 나이가……?”

“어머! 벌써 그렇게나 되었어요?”


요즘은 상대방의 나이를 알게 되면 그게 누구든 “동안이세요”라는 인사말이 자동 반사처럼 붙어서 다 믿을 말도 못 되지만…… 내게 돌아오는 반응들은 내가 어려 보인다는 의미는 아닌 것 같다. 그보다는 나의 이십대 이야기를 책으로 접했던 독자님들의 기억 속엔 이십대 중반의 내가 강하게 남아서 지금 내 나이를 들으면 새삼 놀라시는 것 같다. 그렇다. 책 속의 이십대 중반이었던 지선은 이제 사십대 중반이 되었다. 


『지선아 사랑해』의 개정증보판인 『다시 새롭게, 지선아 사랑해』를 낸 지도 어느새 십 년이나 되었다. 곧 새 책을 쓰겠다고 출판사와 독자님들에게 약속해놓고 “박사과정중이어서 공부해야 해요” “논문만 다 쓰면요” 그러더니, 직장을 갖게 된 후로는 “가르치는 일에 좀 적응을 하면 쓸게요” 이러기를 또 몇 년. 그 당시에는 절박했고 그래서 그럴듯한 이유가 되었지만, 이런 말도 십 년을 되풀이하고 있으니 글을 쓰지 않으면 결국 언젠가 거짓말이 되어버릴 이런저런 이유들을 드는 것도 더는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이 이유들을 듣는 사이 신입이었던 담당 편집자님은 과장님이 되셨다, 하하).


나를 부를 호칭이 적당치 않아서였는지 교수가 되기 전만 해도 사람들은 내 이름을 부를 땐 뒤에 꼭 ‘작가님’이라고 붙여주시곤 했었다. 사실 그렇게 불릴 때마다 책 한 권 쓰고는 도통 글을 쓰고 있지 않는 내가 작가로 불린다는 게 영 멋쩍어 우습기도 했고 누군가 나를 그렇게 부를 때마다 많이 민망하기도 했다. 그래서 이제, 작가로 불려도 덜 민망하도록, 그간 해왔던 약속을 지켜보려 한다. 


거창하게 계획하면 시작조차 못할 것 같아 소소하게 시작해볼까 한다. 첫 책도 그 당시 내 일상에 좀 심각한 사건들이 많아서 그렇지 그 와중에 일어나는 소소한 이야기로 채워졌었다. 기록해두지 않았더라면 한 권의 책이 될 그 시절 그 많은 생각과 깨달음과 감정들을 어쩌면 ‘그래, 그때는 힘들었지만 그래도 잘 버텼네’라는 한 문장 정도로 정리해버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게다가 내 책을 읽은 독자님들의 고마운 편지에 담긴 그 수많은 삶의 변화와 영향을 생각하면…… (내 입으로 말하기 좀 그렇지만) 참으로 소중하고 대단한 일들이 그들에게 일어났음을 경험했기에 글을 쓰고 나누는 일이 너무나 중요하다는 걸 모르지 않는다. 또하나의 글을 쓰는 동력이다.


사고를 만나고 살아남느라 수술을 거듭하며 살아오며 인생이 더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깜깜해지는 동굴같이 느껴지던 때도 있었다. 여기가 끝이다 생각했고 어떤 때는 차라리 끝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때도 있었다. 그러나 그때마다 들려온 “여기가 끝이 아니야”라는 작은 소리. 나 자신을 부정하고 싶었던 시간에도 내 곁을 지켜준 고마운 사람들. 그 덕분에 나는 끝내지 않을 수 있었고, 늘 오늘을 살아남아 인생은 동굴이 아니라 터널이라고 말하며 ‘꽤 괜찮은 해피엔딩’을 향해 살아가고 있다. 


슬프게 끝내지 않을, 꽤 괜찮은 해피엔딩을 향해 살아가는 나의 소소한 일상을, 뉴스에는 나오지 않지만 내 주변의 귀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글로 기록하고 기억하며 나누어보려고 한다. 읽는 분들의 마음에도 삶의 작은 의미를 발견할 수 있기를 소원해보며. 


그럼, 이제 연재 시작!


2021년 1월 

이지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