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회

콧물이 흐른다―2

아주 넓은 부위에 피부이식이 필요했던 처음 1~2년을 지나고서 받는 수술은 대부분 전층 피부이식술이었다. 다리에 거의 화상을 입지 않았고 또 꽤 튼실한 허벅지여서 그 많은 수술에 떼어 쓸 만한 면적은 충분했다. 그래서 내 허벅지에는 진피를 공여하고 봉합한 자국으로 생긴 줄무늬가 많이 남아 있다. 그래도 그 덕분에 손목도 돌리며 쓸 수 있게 되었고, 눈도 감기게 되었고, 피부가 모자라 고개를 들면 빳빳한 줄이 생기며 당기던 목도 이제는 얼굴을 정면으로 보면 당기는 데도 없어졌다. 그래서 언젠가부터는 이만하면 정말 편해졌으니 이번 수술만 받으면 이제 그만 받아도 괜찮을 것 같은 예감이 들어서 “이번이 마지막 수술일 거야”라고 말했었다. 기록해둔 걸 찾아보니 2015년에도 “양치기 소년처럼 매번 이번이 마지막 수술이라고 받은 수술만 몇 번째인지 모르겠다. 이번에는 소리소문 없이 수술을 받았다”라고 했더라. 징글징글하다. 마지막 수술이라는 소리를 몇 년 동안 한 건지… 나는 매번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해서 한 말이었지만 결국 이게 엄마에겐 희망 고문이 된 셈이었다. 


이렇게 해마다 양치기 소년이 됐던 이유는 수술 전에는 ‘여기만 좋아지면 이젠 수술 안 받아도 돼~’라고 생각해서 제일 불편했던 부위에 피부이식을 받고 편해지고 나면, 수술 전에는 이등으로도 생각하지 않았던 자리가 갑자기 이제 일등으로 불편하다고 소리를 치며 다음 수술을 해달라고 번호표를 뽑고 기다리기 때문이었다.


작년만 해도 ‘고개를 들어올릴 때 정면 턱 아랫부분이 당기니까 마지막으로 여기만 개선하면 되겠다’ 했는데 거기가 편해지니 이제는 왼쪽으로 고개를 조금만 기울여도 오른쪽 목이 당기는 것이다. 오른손 엄지손가락이 손바닥 쪽으로 자꾸 오그라들어서 ‘이거만 펴주면 이제 오른손도 쓰는 데 아무 문제없겠다’ 했는데, 엄지손가락 주변에 피부이식을 해서 펴주니 이제는 새끼손가락이 자기도 안쪽으로 당겨 있다고 지난 11개월 동안 불편하다며 아우성을 치는 게 아닌가! 이번에도 이틀에 걸쳐 나의 튼실한 허벅지에서 16cm*3cm, 15cm*2cm, 15cm*1cm, 8cm*2cm 면적의 피부 전층을 떼어서 피부 면적이 모자란 오른쪽 목과 오른손 네 군데에 이식을 했다. 작년에 받는 수술이 마지막일 줄 알았는데 또 대공사를 하게 되었다. 


사실 지난 15년 동안 수술을 해주신 지금의 원장님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나도 아주 오래전에 부분층이든 전층이든 피부이식수술을 그만 받았을 것이다. 수술을 해주고 싶다고 처음에 연락받았을 때는 이제 수술은 안 한다면서 전화를 매몰차게(이건 원장님 입장에서) 거절했었다. 그때는 유학을 떠나기 직전이기도 했고, 이미 열다섯 번 넘게 죽을 고비 넘겨가면서 고생스럽게 수술을 받았기에 ‘아이고, 나도 이제 힘들어서 더는 못 하겠다’ ‘처음에 비하면 이만하면 살 만해졌다’ 하면서 불편해도 그냥 만족하며 살겠다 싶었다. 게다가 종합병원에서도 화상 전문 성형외과의사가 아니면 선뜻 수술하려고 나서지도 않는 그야말로 중화상환자인 나를 개인 성형외과에서 수술해주겠다니까 ‘나를 광고에 이용하려고 하나?’ 싶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이듬해 ‘입이 너무 작아 치과 치료가 어려운데 입을 좀 크게 할 방법이 있는지’ 하며 병원을 찾아간 걸 시작으로 그후로 방학마다 많으면 두세 번씩 피부이식수술을 받았다. 누가 보면 성형 중독이라도 된 것처럼 방학마다 성형외과를 들락거리며 수술을 받았던 것은 원장님의 독특한 수술법 때문이다. 원장님은 다른 종합병원과 달리 전신마취를 하지 않고 국소마취만 하고 이 대공사와 같은 수술을 진행해주신다. 


15년 전부터 받은 수술과정은 이렇게 진행된다. 수술할 면적이 크든지 작든지 나는 언제나 다른 미용성형수술을 받으러 온 사람처럼 수술실에 내 발로 걸어들어가 수술대에 눕는다. 원장님과 함께 잠시 기도를 하고 수면마취를 해서 내가 잠깐 잠든 사이에 수술이 필요한 부위에 국소마취 주사를 놓는다. 잠시 뒤, 내가 수면마취에서 깨면 본격적인 수술이 시작된다. 수술할 때마다 느끼지만 마취를 하면 아프지 않아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마취주사를 누가 발명했는지 정말 존경스럽고 매번 감사하다). 수술하는 대부분의 시간 동안 나는 말짱하게 깨어서 불편했던 수술 부위를 움직여가면서 더 불편한 데는 없는지 확인도 하고, 수술과 전혀 관련 없는 이런저런 일들에 대해 얘기도 나누고 (남들은 엽기적이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하하호호 웃기도 하며 수술을 하고 수술을 받는다. 


수술받는 중간에 얼마나 편해졌는지를 바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예상과 다르면 여전히 당기는 포인트를 찾아 ‘해결을 한다’. 뭐 말은 이렇게 쓰지만 ‘수술 부위가 커진다’고 읽으면 된다. 이번에도 오른쪽 목 작은 부위가 당기는 듯했지만 막상 살펴보니 16cm의 피부가 필요했다. 새끼손가락만 당기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새끼손가락 주변만이 아니라 그 밑으로 쭉 이어지는 손목 쪽 피부가 모자라서 당기는 것이어서 손목에도 피부이식. 세 시간 정도로 예상했던 수술이 이렇게 시작만 했다 하면 예닐곱 시간 넘게 걸릴 때도 많다. 하지만 환자의 불편한 부분을 고쳐줄 수 있으니 ‘보람되다’ 생각해주시는 마음씨 좋고 솜씨 좋은 원장님, 나를 친동생처럼 여기는 간호사님, 수술중 수술 부위를 거울로 보여달라고 하는 조금 별난 환자인 나까지 우리 3인조는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늘 나중은 창대한 수술을 무려 15년간 함께해온 드림팀이다. 


피부가 모자란 부분을 절개하고 화상을 입고 딱딱하게 상처조직이 된 피하조직을 정리하고 박리하는 동안 덕트 테이프처럼 붙어 있던, 20년 동안 나를 옥죈 피부가 툭툭 놓이며 편해진다. ‘다른 사람들은 다 이렇게 편하게 살고 있었단 말이야?’ 하고 약간의 배신감을 느끼면서 이렇게 편해질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란다. 그다음엔 본격적으로 필요한 만큼의 피부를 떼어다 이식을 진행하는데 할 때마다 느끼지만 참 품이 많이 드는 수술이다. ‘다른 병원에서라면 혼자서 이렇게 큰 수술을 시작도 안 할 텐데…’ ‘한번에 이렇게 여러 군데 시원하게 수술도 안 해줄 텐데…’ 나를 홍보에 쓰기는커녕 수술 재료비도 안 나올 것 같은 수술비만 받고 작년에 왔던 각설이마냥 잊지도 않고 찾아오는데도 매번 시간 들여 공들여 수술해주신다. 그 기꺼운 수고 덕분에 이제 손목도 돌릴 수 있어서 손도 쓰고, 입도 더 벌릴 수 있어서 치과 치료도 받았다. 피부가 모자라서 없어졌던 턱도 찾았고, 얼굴을 정면으로 들기도 어려웠던 내가 고개를 젖힐 수도 있게 되었다. 예전에 어떤 의사에게 피부가 모자라서 눈이 잘 감기지 않는다고 했더니 “나이가 들면 피부가 처지니깐 그때 되면 눈이 감길 겁니다”라는 반응이 돌아왔는데 이제 눈도 감기고 심지어 이식한 피부로 쌍꺼풀 모양도 만들어주셨다. 


어떤 사람은 나를 보고 ‘수술해도 거기서 거기 아닌가…’ 할 수도 있지만 나는 피부만 잘 자리잡으면 2주 정도만 누워서 꼼짝 않고 고생하면 편해지고 좋아지니까 수술을 받는다. 잃는 것보다 얻는 게 크다고 생각되어서 수술을 받는다. 엄마들이 아이를 낳고 기르는 과정에서 얻는 기쁨이 크다보니 산통을 잊고 둘째를 가진다고 말하듯이 나도 그런 셈이다. 피부가 모자라서 생기는 불편함이 없어진 수술 이후의 상태가 너무 편하고 좋아서 수술받는 동안의 고통, 수술 이후에 힘들었던 기억, 피부이식수술이 실패해서 고생하고 속상했던 기억은 까맣게 잊어버리고 또 2주간 고생길을 선택하는 것이다. 


이번엔 목과 오른손에 피부이식수술 외에도 왼쪽 콧구멍으로 숨이 쉬어지지 않아서 콧구멍 내부를 넓히는 수술도 받았다. 화상을 입었던 부위는 피하조직까지 많이 딱딱해지고 비대해지는 특성이 있는데 그게 코 안에 생기니 콧구멍을 좁혀서 숨이 거의 들락거리지가 않았었다. 누구는 미용 목적으로 콧볼을 줄이는 수술을 하지만 나는 코로 숨쉬어보려고 콧속의 딱딱해진 피하조직을 정리하고 양쪽 콧볼을 덧대는 수술만 수차례다. 콧볼 자체도 작지만 콧속이 너무 좁아 남들처럼 코 푸는 것도 어려워서 그간 화장지를 담배처럼 돌돌 말아서 코 안쪽에 집어넣어 뚫는 나만의 뚫어뻥으로 해결하곤 했었다. 그런데 지난주 수술을 받은 날 밤, 집에 돌아와 아주 신기한 경험을 했다. 


콧물이 주르르 흘러내린 것이다. 20년 만의 일이었다. 엄마한테 “엄마, 나 콧물이 흘렀어!”라고 자랑했더니 기어코 고생하면서 수술을 받고 온 딸이 마냥 사랑스럽지는 않은 엄마는 “그래 코 흘러서 참 좋겠다, 대단히 좋겠다~” 하며 속상함 반 빈정댐 반으로 대꾸하셨다. (지금은 시간이 흘러서 마음이 풀리셨다.) 


콧물이 흐른다. 기쁘다. 밤새 입을 다물고 양쪽 코로 숨쉬며 잔다는 게 자다가도 신기하고 놀랍다. 이식한 피부를 뚫고 쏙 자라나준 눈썹을 처음 발견했던 어느 밤처럼 기쁘다. 짧아진 손가락으로 처음 다시 펜을 잡고 삐뚤빼뚤이어도 글씨를 쓰기 시작했던 그날처럼 기쁘다. 입을 벌려 처음으로 햄버거를 먹었던 그날처럼 기쁘다. 재활훈련을 하며 팔꿈치가 터지고 다시 채워지기를 반복하다 드디어 손끝이 귀에 닿았던 날, 이제 다시 오른손으로 전화도 받을 수 있게 된 그때처럼 기쁘다. 외상 후 성장으로 이르는 또다른 길로 ‘작은 변화를 발견하고 크게 기뻐하기’를 들고 싶다. 다른 사람은 잘 모르는 미미한 변화일지라도, 들인 공에 비해서 아주 작은 소득일지라도, 내게 일어난 기분좋은 긍정적인 변화를 확인하고 그 변화의 크기와 정도에 상관없이 크게 기뻐하는 오늘. 분명 남들은 모르는 행복을 한 뼘 더 크게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수술받은 지 2주가 조금 더 흘렀다. 또 피부를 떼어낸 허벅지의 면적이 이제는 여유롭지 않아 말썽이 생기는 바람에 예상치 못했던 고생중이지만 이번에 이식한 피부가 모두 잘 살았다는 것에 기뻐하고 감사한다. 이번에 받는 수술이 마지막 수술이 될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이 강하게 든다. 정말이다.)


이 작품은 격주로 연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