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회

왜 점을 갖고 태어났는지 알았어

나의 셋째 조카 하음이는 왼쪽 손목부터 팔꿈치에 이르는 검고 두꺼운 모반(점)을 가지고 태어났다. 치료를 위해 여러 병원을 찾아보다가 거대 색소 모반을 일단 완전히 제거한 뒤 건강한 피부를 이식하는 방식으로 수술하는 한 어린이병원 의사를 만나 수술을 받게 됐다.


수술 방법은 이랬다. 배 쪽 피부 아래에 ‘조직확장기’라는 주머니를 넣고 거기에 식염수를 주기적으로 주입해 주머니의 크기를 늘린다. 그러면 그 주변 피부가 인위적으로 확장되는데 피부이식에 필요한 면적만큼 늘어나면 조직확장기는 빼고 늘어난 만큼의 피부를 떼어내 필요한 곳에 이식을 한다. 살이 찌면 피부 조직이 늘어나는 성질을 이용한 방법이었다.


나도 이 방식으로 수술을 받은 적이 있다. 턱부터 쇄골뼈까지 가로 30센티미터, 세로 20센티미터 정도 되는 피부가 필요했다. 목 부위 피부는 탄력을 유지하며 늘어나야 하기에 표피만 이식하는 부분층 피부이식술은 별 도움이 안 되었다. 그래서 등에 조직확장기를 넣어서 두세 달 동안 일주일에 한 번씩 100~200밀리리터 정도의 식염수를 주입했다. 초반에는 식염수를 많이 넣으면 그만큼 피부가 늘어났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들어가는 식염수 양도 줄어들고 피부도 눈에 띄게 늘어나지 않았다. 물주머니가 커질수록 그 주변의 뼈나 조직에 가해지는 압박도 커지는데, 수술 날짜가 되기 며칠 전에 물주머니가 터진 적도 있었다. 수술 전까지 최대한 피부를 늘어나게 해야 했기에 조직확장기를 또 한번 새로 넣는 수술을 했다. 쉽지 않은 과정이었지만 그 덕에 지금 이렇게 고개를 들고, 좌우로 돌리기도 하고, 만지면 말랑말랑하고 모공도 있어서 땀도 나는 목 피부를 가지고 살아간다.


이유는 달랐지만 내가 받은 수술을 하음이도 받게 된 것이다. 처음엔 우리집에 이런 수술이 필요한 사람이 또 생겼다는 사실이 속상했다. 하지만, 조금 바꾸어 다시 생각해보면 하음이는 피부이식이라는 분야에 아주 익숙하고 어찌 대처할지를 잘 아는 집안에 아주 잘 찾아온 셈이기도 했다.


하음이는 만 두 돌이 지나면서부터 수술을 받았다. ‘엄마’ ‘아빠’ 외에는 그리 많은 단어를 말하지 못할 때부터 수술을 받은 것이다. 조직확장기를 넣어 아이의 작은 배가 두 배 정도 커질 때까지 피부를 늘렸다. 그렇게 무거운 몸을 하고도 뒤뚱뒤뚱하며 놀기도 잘 놀았고, 매주 주사기로 식염수를 넣을 때도 으레 해야 하는 일인 듯 떼쓰지 않고 의사선생님을 만나러 진료실에 들어갔다. 이식한 피부가 팔에 착상되는 기간 동안에는 팔에 무거운 깁스를 하고 다녔는데 힘들다고 짜증 한번 낸 적이 없다. 그 기간에도 원래 그랬던 아이처럼 한 손으로도 잘 놀았고 빈 팔소매를 흔들면서 노래도 하고 엉덩이춤도 추며 지냈다. 그렇게 하음이는 일곱 살이 되기 전까지 모두 여덟 차례의 큰 수술을 정말 잘 견뎌냈다.


어떤 아이든 특별하지 않은 아이가 없다. 하지만 하음이는 태어날 때부터 많은 기도와 관심을 받고 자라기도 했고, 개그감도 남다르고 때론 어른 못지않은 혜안이 담긴 말을 해서 우리 가족에겐 거의 연예인 같은 존재다. 가족이 모이면 “지난번에 하음이가 뭐라고 했는지 알아요?” 하면서 소식을 업데이트한다. 직접 만나지 못할 때도 연예인 팬클럽 회원들이 연예인 출근 사진을 찍어 올리듯이 어린이집에 들어가는 사진부터 하음이가 노래하거나 노는 모습이 담긴 동영상 등을 가족 단체 채팅방에 공유하면서 행복해한다.


한번은 엄마 아빠와 나 그리고 오빠네 다섯 식구가 다 같이 여행을 갔는데, 휴게소에서 아빠 손을 붙잡고 화장실 쪽으로 오는 하음이의 표정이 영 좋지 않았다. 내가 화장실에 데리고 들어가자 여섯 살 하음이가 변기에 앉아서 수심 깊은 표정으로 “고모, 큰 사람이 작은 사람 마음을 알아줘야 하는 거 아니야?”라고 했다. 무슨 말인가 했더니 하음이가 동전을 넣는 작은 놀이기구를 타고 싶어했는데, 아빠가 동전도 없고 여행 일정도 지체될까봐 안 태워준 것이다. 아빠가 안 태워줬다고 찡찡대는 것이 아니라 큰 사람이 작은 사람의 목소리를 들어줘야 한다는 당위성을 가지고 나에게 공감을 요청했던 것이다. 이 귀여운 작은 사람의 말을 큰 사람에게 전했고 결국 하음이는 놀이기구를 타고 작지만 큰 행복을 누렸다.


하음이가 일곱 살 때 같이 해외여행을 한 적이 있다. 그때 하음이가 할머니와 둘이서 화장실에 들어갔는데 밖에서 누가 노크를 했단다. 화장실이 너무 커서 안에서 노크를 하려면 몇 걸음 가야 했는데, 급한 마음에 영어 좀(!) 배운 하음이가 “인간 히어! 인간 히어!”라고 소리쳤단다. 영어를 못하는 할머니 대신 자기가 나서서 소리친 것도 귀엽고, 사람보다는 좀더 수준 있는 단어를 쓰면 통할 거라고 믿었는지 ‘인간’이라는 단어를 썼다는 게 너무 귀여웠다. 우리 가족끼리는 너무 재밌고 귀여워서 두고두고 이야기하는 사건인데 막상 적고 보니 그저 ‘조카 바보’인 듯싶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조카 바보가 조금 더 되어볼까 한다. 마흔 살이 넘어가는 무렵에 이유를 알 수 없는 우울감이 꽤 오래 지속됐었다. 당시 가족 중 누구도 내가 그런 상태였는지 눈치채지 못했는데 신기하게도 다섯 살 하음이가 그즈음부터 나를 “고모”가 아니라 “단짝 친구”라고 불렀다. 내가 가만히 초점 없이 앉아 있을 때마다 큰 소리로 “내 단짝 친구”라고 부르며 나와 눈을 마주쳤고, 무기력하게 누워 있을 때마다 온몸을 던져 안겨왔다. 내 손을 붙잡고 일으켜서 함께 놀자는 다섯 살 아이와 시선을 맞추고, 손을 잡고 (체력이 딸려서 아주 잠깐만 놀 수 있었지만) 뛰고 장난치고 아무 생각 없이 노는 동안 깊이를 알 수 없던 공허함과 외로움이 채워지는 듯했다. 그때의 하음이가 지금까지 참 고맙다.


하음이가 유치원에 입학한 다음날, 선생님께서 “하음이가 소매를 걷으면서 ‘저 여기 수술 받았었어요’ 하고 보여줬는데 제가 더 알아둬야 할 점이 있을까요?” 하고 전화로 물어보셨다고 한다. 큰 수술은 거의 끝났고 수술받은 피부 가장자리에 이식한 피부의 경계선이 조금 남은 정도이기도 했고, 사실상 선생님께서 굳이 신경쓰거나 무엇을 해줄 필요가 없었기에 새언니도 ‘반팔 입을 때나 말하자’ 했는데 하음이가 먼저 씩씩하게 공개한 것이다. 여름이면 거리낌없이 반팔 옷을 입는 하음이의 팔 수술 자국을 보고 유치원에서 징그럽다고 한 아이들도 있었다고 한다. 하음이는 화도 나고 속상해서 처음에는 아무 말도 못 하다가 나중엔 수술해서 그런 거라고 친구들에게 설명해주었다고 한다. 그래도 마음에 남았는지 어느 날, 하음이가 자려고 누워서는 “엄마, 나는 왜 점을 갖고 태어났을까? 하나님은 왜 나한테 점을 주신 걸까?” 하고 물었다고 한다. 하음이는 여덟 차례의 수술 중 그나마 가장 수월한 편이었던 마지막 두 번의 수술만 기억했고, 수술 자국을 크게 신경쓰는 것 같지 않았기에 하음이의 그 말에 우리 가족 모두 참 마음이 아렸더랬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작년에 초등학생이 된 하음이. 등교하고 며칠 후 “엄마! 나 왜 하나님이 점을 주셨는지 알게 됐어” 하면서 신이 나서 집에 들어왔단다. “나 인기 있게 해주려고 주신 거였어!” 학교에 가니 수술 흉터를 본 친구들이 하나둘 옆에 와서는 왜 이렇게 됐는지 물어봤는데 하음이는 그 덕에 자신이 인기 있는 친구가 되었다고 해석한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트라우마가 될 수도 있는 불필요한 호기심을, 때로는 상처가 될 수도 있는 상대방의 무례한 솔직함을 하음이는 수동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에 대한 관심과 인기로 방향 전환했다.


사람들이 쳐다볼 때마다 생기는 불쾌함을 이겨내기 위해 ‘내가 연예인이라서 쳐다보는 거야’라고 생각했던 그 고모에 그 조카답다. 아니 그 고모를 넘어선다. 부정적 자극을 받았을 때 탄력적으로 대처하는 것을 넘어서서 충분히 부정적 사건이 될 만한 일을 긍정적으로 새롭게 재해석하며 생과 함께 온 상처를 수용했다. 하음이는 있는 것을 마치 없는 것처럼 여기며 흉터를 가리고 숨기지 않는다. 부정적일 수도 있는 자신의 상처를 통해 친구와 더 많이 얘기하고 새로운 사람을 사귀는 방식으로 사용할 줄 안다. 불쾌한 자극이 될 수 있는 친구들의 질문에도 유쾌함을 잃지 않고 말문을 열었고, 어쩌면 평생을 갈 인간관계를 시작하는 통로로 변환시킬 줄 알았다. 그리고 상처 따위 처음부터 없었더라면 좋았겠다고 의미 없는 한탄을 하는 것이 아니라 상처의 의미를 재해석해내기에 이르렀다. 인기 있게 해주려고 하나님이 점을 주신 거라니! 여덟 살 어린이의 혜안이 감탄스러웠다.


지금도 내가 피부이식수술을 받을 때마다 같은 경험을 한 하음이는 “나도 이거 해봤는데……” 하면서 공감해준다. 하음이를 통해 배운다. 적절한 자기 노출과 자극에 대한 탄력적 대처, 또 외상을 긍정적 의미로 재해석함으로 이뤄지는 외상후 성장이 아이에게도 가능할 수 있음을. 아니 오히려 아이에게서 더 건강하게 이루어질 수 있음을. 


이 작품은 격주로 연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