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회

근데 말이야.

괜히 눈을 뜨고 있다가 천장에 붙은 동그란 등을 가만히 보고 있을 때 엄마가 나지막이 말했다.

이번 토요일이 영애 생일이거든.

이번 토요일이.

.

그럼 환갑인 거네.

그렇지.

그럼 기하네가 오나.

아무래도 그러려나 싶긴 한데.

우리도 파티를 하자는 거지.

그럼 좋지.

좋아.

그냥 평소처럼 밥을 먹는 건데.

.

좀더 즐겁게 먹었으면 좋겠어서.

.

기하네가 토요일에 오면 우리랑은 일요일에 먹자고 하고 일요일에 오면 토요일에 먹자고 하고

. 근데 엄마 왜 영애 이모한테 언니라고 안 해.

엄마가 대답이 없기에 고개를 돌려 엄마를 보았더니 눈을 감은 채로 입술을 조금씩 씰룩이고 있었다.  

그러니까 생일이라는 거구나. 이모가 육십 년을 살았다는 거고. 나는 거의 선명해진 등을 보며 육십 년이라는 것을 생각했다. 언젠가 엄마로부터 위풍당당했다던 영애 이모의 젊은 시절에 대해 조금 들은 적이 있었다. 좀 오래전이지만 이모와 다투고 들어온 어느 날이었는데, 이모가 기하의 아이들 얘기만 세 시간을 넘게 했다며 분하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언니가 왜 아이를 낳지 않는지 꼬치꼬치 캐물어 마음을 조금 다쳤다는 것이었다. 자랑이 하고 싶으면 자랑만 하면 되지 재인이는 왜 묻느냐는 거야, 내 말은. 자기가 이유를 알면 뭐 어쩌려고. 잠자코 있었더니 그래, 묻는 건 자기 자유지, 라고 말하고 마지막에 사실 세 시간은 아니고 한 시간 정도였다고 정정하였다.

 

비가 내린 후여서 흙과 나무 냄새의 농도가 진해져 있었다. 진달래 꽃잎 위에 머물러 있던 물방울이 아래로 떨어져내렸고 나는 젖은 흙을 밟으며 퇴근을 했다. 높지 않은 산과 공단 사이에 지름길이 있다. 산의 둘레를 따라 조성된 산책로가 내게는 집으로 가는 지름길이 되어주는 셈이었다. 산책로에 깔린 야자매트는 이미 오래전에 흙으로 다시 뒤덮여 그냥 흙길 같다. 길 중간에는 벤치가 있는데 내가 처음 이곳에 왔을 때는 없던 것이었다. 준섭과 나는 거의 매번 거기 앉아 쉬곤 한다. 거기선 바로 앞부터 이어지는 공단의 뒷면과 공단과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 공원묘지와 장례식장 그리고 공단 앞을 지나는 이차선 도로 너머 한창 건설중인 아파트들을 볼 수 있다. 산책로가 끝나는 지점에 다다른 곳에 위치한 오래된 막국수집 앞으론 작은 하천이 흐르고 하천 가에 세워진 안전펜스에는 마지막 투자처라는 현수막이 군데군데 걸려 있다. 나는 어릴 적에 지금 아파트가 지어지고 있는 그 땅 위에 살았다. 숨을 쉬며 말없이 살기만 하였다.

길가에 쑥이 잔뜩 올라와 있는 것을 열심히 보았는데 지난번 우엉을 팔고 있던 할머니가 쑥을 내어놓고 있었다. 나는 또 그것을 열심히 보고 말았다. 아직은 쌀쌀한 기운이 도는 날들이어서 할머니는 두꺼운 털실로 짠 겉옷에 목도리까지 두른 모습으로 전쟁으로 훼손된 땅에서도 가장 먼저 나는 게 쑥이라고 말해주었다.

할머니 할아버지한테 전쟁 얘기 들어봤지요?

저는…… 아니요.

못 들어봤어요?

전쟁을 겪었을 텐데.

저요?

할머니랑 할아버지.

아무래도…… .

나이가 어떻게 되는데요?

그걸 잘…… 모르겠는데요.

아이고, 자기 나이를 모른다고?

그게 아니라 할머니 나이를……

쑥과 엄지손가락만한 새송이버섯을 샀다. 버섯을 볶아서 점심을 먹었다고 했더니 준섭이 돈가스를 먹었다는 메시지를 보내왔다. 그런가보다 하고 청소를 하려는데 전화를 걸어왔다. 준섭은 단추나 버클 등의 의류 부자재를 다루는 회사에서 일한다. 낮에 전화를 하는 일은 거의 없어서 무슨 일이 생겼나, 잠깐 긴장을 했는데 좋은 일이 있다면서 저녁에 만나자고 하였다. 아침에 헤어졌는데 또 만나나. 생각만 잠깐 하고는 알겠다고 했다. 준섭이 두고 간 칫솔을 들고 한참을 생각하다가 욕실 청소를 할 때 썼다. 타일 사이사이에 끼어 있던 물때가 부드럽게 씻겨나가는 것이 보기 좋아서 머리를 흔들며 청소를 했다.

그렇게 하면 타일이 마모되지 않을까.

그새 퇴근을 한 엄마가 말했다.

시원하다 엄마.

 

준섭과는 구도심에 있는 분식집에서 만나기로 했다. 나는 멀리로 돌아 걸어가기로 하였다. 겨울이면 철새들이 날아오는 너른 구역으로 향하는 길이 벚꽃길이었다. 외진 곳이라 간간이 차들만 지나는 곳이었는데 단독주택 단지가 들어서면서 전보다 많은 사람이 지나곤 했다. 길이 넓지 않아 차들을 피하며 길가로 걸었다. 주택단지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바람이 다 빠진 축구공이 굴러왔다. 몸을 숙여 공을 잡고서 고개를 들었더니 남자아이 하나가 이쪽으로 뛰어오고 있었다. 남자아이 뒤로 몇 명의 어린이들이 서 있었다. 나는 공을 굴려 아이에게 보냈다. 감사합니다. , 재밌게 놀아. 몇 년 만에 공이란 것을 잡아보았나. 이십 년, 아니면 삼십 년. 인생을 통틀어도 스스로 공을 잡아 다른 사람에게 보낸 적은 거의 없었구나, 생각했다. 바람이 불었고 벚꽃잎들이 떨어지며 어린이들 쪽으로 날아갔다.

이곳으로 돌아오면서 내가 가장 하고 싶었던 건 걷는 것이었다. 아니 그래, 정인이 니가 우울증에 걸렸다면서? 이곳에 돌아와 이모가 운영하는 미용실에 인사를 하러 갔을 때 영애 이모는 손님의 머리를 말다 말고 크게 놀랐다. 아니 누가요? 왜인지 손님까지 크게 놀라며 뒤를 돌아 나와 눈을 마주쳤을 때 나는 멋쩍게 웃어 보였다. 어쩐지 아무렇지 않았던 것이다.

아니 내가 얘를 애기 때부터 봤는데, 얘가 무척이나 밝은 애거든요?

아이고, 무슨 소리. 그런 건 겉만 봐서는 모른답니다.

영애 이모와 손님이 말했다. 나는 다 맞는 말이라고 생각했고 영애 이모의 소개로 곧바로 독서실 일을 시작했다. 일을 마치면 동네 이곳저곳을 걸었다. 세나와 친해진 뒤로는 종종 함께 산책을 하기도 했는데 가끔은 준섭과 셋이기도 했다.

길가라면 어디든 지천으로 피어 있는 민들레와 제비꽃을 보며 걸었다. 작년엔 무엇도 보지 못한 채로 시간이 흘러갔다는 것만 알았다. 뒤늦게, 그런 것만 겨우 알았다.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이 세계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아무것도 모른 채였고 그런 이유로 종종 지적을 받았다

분식집에 거의 도착했을 무렵 아귀찜을 파는 식당 앞에서 한 아주머니가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 길에 뿌리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하늘이 밝지 않아 그게 뭔지는 몰랐는데 갑자기 비둘기들이 모여들었다. 아주머니는 무심한 표정으로 주머니에 손을 넣고 낮게 이어진 건물과 하늘을 바라보았고 한 번 더 주머니에서 손을 꺼냈다. 아주머니를 지나쳐 뒤를 돌아보았을 때는 아주머니도 비둘기들도 어디론가 가고 없었다.

분식집에는 준섭이 와 있었다.

떡볶이랑 만두 주문해놨어.

.

그러면서 나는 김밥을 추가하였고,

장대리가 드디어 <왕건>을 다 봤다고 말한 게 그제였거든?

준섭이 흠집이 잔뜩 나 있는 플라스틱 컵에 물을 따르며 말했다. 나는 세월 속에 얇아진 수저와 포크를 놓으며 응, 왕건,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출근해서는 꿈에 왕건이 나왔다는 거야. 아주 감명 깊게 보았다는 뜻 같았고, 그게 또 이백 부 작이잖아, 뭔가 해냈다는 뿌듯함 같은 게 느껴지더라고. 말만 들어도 그런 게 느껴져서 우리도 모르게 박수를 치며 축하한다고 말했어. 그리고 점심으로 돈가스를 먹으러 갔어. 우리가 저번에 피카추 돈가스 같은 걸 만원 넘게 주고 사먹은 적도 있잖아. 근데 그 집 돈가스는 정반대. 아무튼 그걸 싹 먹고 사무실로 들어왔는데 장대리가 가장 먼저 양치를 하고 자리에 앉았거든

.

바로 전화가 울리더라고. , , 하더니 전화를 끊고서는 성도에서 완전 큰 걸 줬다는 거야.

.

그리고!

전에 없이 목소리의 톤을 조금 높이며 준섭이 그리고, 라고 말했을 때 떡볶이와 만두가 나왔다. 맛있게 드세요. , 감사합니다. 나는 떡볶이를 하나 집어 먹었는데 준섭은 먹지 않고 이야기를 계속했다.

조금 있다가 나한테도 전화가 왔는데 미진이라는 데가 있거든. 작지 않은 곳인데, 거기서.

나는 준섭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 것 같았고 떡과 어묵을 같이 포크로 찍어 준섭의 입에 넣어주었다. 준섭은 말부터 하고 싶은지 잠시 머뭇거리다가 그것을 받아먹었다

거기서 얼마짜리를 줬는지 알아?

얼마짜리를 줬는데.

나는 준섭이 떡볶이를 먹으며 호들갑을 떠는 것이 좋았다.

아무래도 장대리가 왕건 꿈을 꾼 덕분인가 싶어서 사람들이 다 장대리한테 잘했다고, 꿈 한번 잘 꾸었다고 했지. 승진하나요? 장대리가 농담을 해서 다 같이 웃었어. 대리 단 지 세 달 됐거든.

왕건이 꿈에서 어떻게 나왔대?

장대리한테 밥을 떠먹여줬대

. 무려 먹여줬단 말이야.

그래.

왕건이라면, 진짜 왕건이었던 건가.

왕건의 얼굴을 골똘히 생각하며 물었더니 최수종, 이라고 말하며 준섭은 만두 위에 단무지를 얹어 입안에 넣고 열심히 씹었다. 입안이 가득찰 만큼 큰 만두였고 이번 금요일에 회식을 하게 되었다고 하였다.

 

오랜만에 사장님이 출근을 했다. 고충이 있는지 얼굴을 보며 이야기하자고 해서 청소를 마친 뒤에 빈자리에 앉아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 지금껏 사장님의 얼굴을 본 것은 세 번 정도였다. 이맘때쯤 한번 들른다고 찬미 언니에게 들었다. 방학 동안 독서실을 다니던 사람들이 쑥 빠져나가기도 했고 또 삼월부터 새로 뭔가를 시작하는 사람들이 등록을 하니까 상황을 좀 보기도 해야 하고, 또 이렇게 날씨가 좋은 날은 기껏 며칠 정도라며 따로 잠시나마 돌아다니라고 들른다는 것이었다. 따로 휴일이 없으니 언니에게 사정이 있을 때나 날이 너무 좋을 때는 사장님이 나온다고. 찬미 언니가 사장님에게 다른 문제는 없고요, 새 종이컵인데 자꾸 누렇거든요, 했더니 사장님은 이게 왜 그러지, 하였다. 그러고는 같이 가서 짜장면을 사먹고 퇴근을 하라고 했다. 새 종이컵은 찬미씨가 내일 사다놓고요. 이 종이컵도 버리지는 말아요, 내가 쓰면 되니까요. 사장님이 말했고 찬미 언니와 나는 독서실을 나왔다. 아침까진 서늘했던 햇볕이 따뜻해 더울 지경이었다

정인씨, 저번에 복 없다고 한 말 취소할게요.

?

어젯밤엔 그런 생각을 했어요. 그 말을 취소해야겠다는.

, . 고마워요.

미안했어요, 그런 말을 해서.

근데 그런 말 정도야 저는 괜찮았어요.

저는 미안해서 한 숨도 못 잤어요.

쉬었으면 좋았겠다는 마음에서 한 말이 아닌가요.

그건 맞아요.

아무튼 지금 취소가 잘 되었어요, 언니.

고마워요.

아주 잘 되었어요.

.

우리는 시장 안쪽에 있는오형제 손짜장이라는 이름의 중국음식점에 들어가 안쪽에 자리를 잡았다. 언니는 짜장면과 탕수육을 주문했고 잠시 후에 직원이 단무지와 양파를 가져다주었다. 작은 고량주를 한 잔만 하겠느냐고 묻기에 그러겠다고 대답했다.

여기 보면 오형제가 다 있는 것 같진 않거든요.

오형제요.

.

여긴 일단 배달은 하지 않으니까.

. 배달은 안 하고요. 저기 통유리로 되어 있는 공간에서 수타면만 만드는 사람, 주방에 한 사람, 카운터에 한 사람, 서빙을 하는 사람까지만 해도 벌써 넷이고요.

언니는 고개를 돌려 주방 안을 유심히 보았다.

주방에 두 사람이 있네요.

그럼 이제 다섯은 되었는데, 형제가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요.

오형제나 되는데 이렇게 사이좋게 같이 일하는 거라면.

좋을 것 같아요.

형제가 아니더라도 아무튼 사이가 좋으면 좋고요.

사람들하고 사이좋게 지내라고 어릴 때부터 배웠는데요, 그게 참…… 쉽지가 않더라며, 그게 제일 어렵더라며 언니는 큰 고량주를 주문하였다. 우리는 투명한 소스가 뿌려진 탕수육과 짜장면과 함께 그것을 먹었다.

정인씨는 여기 오기 전에 어디 살았었나요.

저요.

.

저는……

다 떠나는 곳에 돌아오다니, 하고 전부터 궁금했었거든요.

다 떠나기에 왔지요.

언니는 갑자기 푸핫, 하며 웃었다.

이상한 사람이네.

제가요.

.

이상한 사람이라고 한 것도 며칠 후에 취소할 건가요.

언니는 또 푸핫, 하고 웃었다.

정인씨, 사실은 며칠 전에 정인씨를 봤거든요.

저를요.

.

해가 질 무렵 벚꽃잎이 흩날리는 길가에 누군가와 함께 걷는 것을 보았는데 그게 너무 좋아 보였다고, 언니가 말했다.

좋아 보였고, 또 저도 좋았고요.

언니도요.

. 지금이 아니면 그런 장면은 볼 수가 없잖아요.

매년 봄이면 늘……

내년은 내년이잖아요, 하고 언니가 양파를 춘장에 찍으며 말했다. 나는 찬미 언니의 말을 듣고서 가만히 작년 봄을 떠올려보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