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회

결국 쇼핑 말고는 할 일이 별로 없을 것이다―2

믿을 수 없는 이야기지만 금정연도 과거에는 사람들 앞에서 말을 잘 못했다고 한다. 발표할 때면 긴장해서 교실을 뛰쳐나갈 지경이었어요. 

그건 나도 마찬가지고 오한기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모두 소심하고 긴장을 잘하고 남들 눈에 띄는 걸 싫어한다. 제일 심한 사람은 오한기로, 발표할 때면 너무 떨어서 손에 든 페이퍼가 퍼덕거리는 소리가 들릴 정도였다. 그러나 그런 그도 지금은 많이 나아졌고 능청스러워졌다. 

―나이가 들었다는 뜻이에요, 지돈씨. 

정연씨의 말이다. 금정연은 떨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토크의 신이라고 할 수 있는 위치에 올랐다(자체 평가). 금정연이 토크를 하는 자리에 가면 늘 있는 사람이 있다. 그는 소설가 나일선으로 종종 내가 하는 북토크에도 오곤 한다. 그러나 금정연의 토크에는 반드시 참석한다. 나는 그에게 왜 그렇게 금정연을 좋아하냐고 물었다. 일선씨는 『실패를 모르는 멋진 문장들』의 출간 기념 토크에 간 게 시작이었다고 말했다. 홍대 쪽에 있는 가톨릭청년회관이었나 그런 곳에서 했던 북토크였습니다. 행사가 시작되고 금정연이 다짜고짜 마이크를 잡더니 말하더군요. “글을 써서 돈을 벌려고 하는 사람은 글을 쓸 자격이 없는 사람이다.” 

―정말요? 인사도 없이 그렇게 말했어요?

―네.  

만약 일선씨가 앉아서 토크를 듣는 게 아니었다면 아마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았을 것이다. 이야기를 전하는 그의 눈은 아주 조금이지만 촉촉이 젖어 있었다. 이야기를 듣는 내 눈도……

(글을 쓰고 난 뒤 금정연에게 전화를 걸어 팩트 체크를 했다. 금정연은 토크를 한 건 맞지만 그런 말은 한 적 없다고 했다. 제가 그런 말을 했다면…… 왜 그랬을까요? 

추측 1. 인용이었다.

추측 2. 잠시 미쳐 있었다.

추측 3. 웃기려고 한 말이었다.

우리는 고민했지만 답을 알 수 없었다. 『실패를 모르는 멋진 문장들』을 출간한 건 2017년이다. 고작 삼 년이 지났을 뿐인데 사건은 미궁에 빠졌다. 이로써 우리는 알 수 있다. 과거는 낯선 나라다……)

우리(나, 오한기, 금정연)가 긴장하는 사람이었다면 소설가 이상우는 처음부터 긴장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좀더 정확히는 긴장하지만 긴장한 게 드러나지 않는 사람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나는 이상우를 2013년에 처음 알았고 그는 이미 천재 소설가로 (우리 사이에) 이름나 있었다. 금정연은 종종 말했다. 저는 상상해보곤 합니다…… 이상우와 같은 젊은 시절을 보냈다면 어땠을까. 그러면 상우씨는 이렇게 말했다. 꼰대……(참고로 이상우와 금정연은 일곱 살 차이다).  

내가 파리에 가게 된 건 8할이 이상우 덕분(또는 탓)이다. 플라뇌르의 기원을 탐색하고 재발명하는 여정은 사실 파리에 안 가도 할 수 있다. 여담이지만 내가 쓴 대부분의 글이 그렇듯 나는 어딘가에 가지 않았을 때 그곳에 대해 더 잘 안다. 어떤 사람들은 사기라고 하고 어떤 사람들은 소설가다운 재주라고 하지만 이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사람들은 발로 뛰는 경험, 이라는 관념에 너무 사로잡혀 있다. 북토크에서 이런 질문을 받기도 했다. 작가는 땅에 발을 딛고 있어야 하는데(다시 말해 현실에 기반해야 하는데) 정지돈 작가님은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어떻게 그러실 수 있나요? 

무척 호의적인 질문이었지만 난감했다. 난감한 이유는 간단하다. 나는 땅에 발을 딛고 있다! 물론 종종 누워서 글을 쓰고 그때는 땅에 발을 딛고 있지 않지만……(내가 아는 누워서 글 쓰는 또다른 작가는 정영문이다. 나는 그런 사실에 착안해 다음과 같은 제목의 글쓰기 클래스를 진행하기도 했다. ‘앉아 쓰기, 누워 쓰기, 서서 쓰기’). 

경험은 상상력을 제한한다. 노문학자인 김수환 선생은 내게 여행이나 실제 경험 따위는 하지 않아도 된다며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진짜로 중요하고 흥미로운 건 이상으로 상정한 1세계의 실제 현실이 아니라 사람들이 만들어낸 이상한 유토피아에 실제로 작용했던 (그들이 머릿속에서 상상해낸) 저곳의 상상계이기 때문이에요.” 동시대가 흥미롭지 않은 건 모든 게 개방되고 평평해져버렸기 때문이다(또는 그렇게 착각하기 때문이다). 언제든지 여행할 수 있고 경험할 수 있으며 그 경험을 이야기할 수 있게 된 세상, 그리고 그걸 산 경험으로 받아들이는 사회. 그런 면에서 지돈씨는 실제 경험이 아닌 텍스트를 모종의 현실로 치환해서 그 격차를 극화하기 때문에 흥미롭다는 식의 이야기였는데 평소에 내가 생각하고 의도했던 바로 그것이었지만 동시에 씁쓸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나는 이제 여행을 가면 안 되는 걸까? 경험을 하면 오히려 얄팍해지는 역설이 여기에 있다. 

사람들은 뭔가를 겪고 나면 자신이 그걸 아주 잘 아는 것처럼 군다. 파리를 일주일 여행한 사람보다 석 달 체류하고 온 사람이 더 잘 알고 석 달 체류한 사람보다 유학한 사람이 더 잘 알며 박사과정을 마치고 온 사람보다 그곳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이 더 잘 안다는 식이다. 그러나 그럴 리가 없다.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란 정연씨가 나보다 서울을 더 잘 안다고 할 수 없는 것처럼. 중요한 건 어떤 종류의 경험이냐는 것(어떤 서울이냐는 것)이다. 추상적인 의미에서의 경험은 백해무익하다. 그건 다음 표현으로 압축된다. “내가 해(가)봐서 아는데~” 천만에! 당신은 아무것도 모른다. 엄밀하게 말하면 해본 만큼만 알고 더 엄밀하게 말하면 해본 만큼(살아본 만큼) 안다고 믿는 것뿐이다. 다른 말로 이를 ‘꼰대’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알 수 없고 주장할 수 없는 것일까. 고르기아스의 전언처럼 (경험)해도 모르고, 안다 한들 전달하지 못하는 상태가 인간의 한계일까. 

그렇지만 우리는 안다는 가정하에 대화를 나눈다. 그렇지 않고야 소통이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암묵적 약속이다. 아무것도 진정으로 알 수 없지만 대충은 안다(고 가정하고) 대략적인 합의에 이를 수 있다는 사회적 약속. 쉽게 말해 우리 삶의 근본 전제는 ‘대충’이다. 이걸 받아들이지 않고 끝까지 파고들면 결과는 대부분 정신병동행이다. 운좋으면 대철학자나 예술가, 과학자가 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운을 바라진 말자. 언제나 그렇듯 운은 우리 편이 아니다. 

아무튼 그래서 나는 해외여행에 별 관심이 없다. 해외여행은 경험의 각축장이 되어버린 것 같다. 프라하? 별로야. 관광객들만 바글바글해. 베를린? 이제 끝물이지. 아이슬란드? 시규어 로스가 탈세로 재판받은 거 몰라? 심지어 욘시는 로스앤젤레스에 살고 있다구… 멕시코시티가 짱이야. 아니면 트빌리시. 트빌리…… 뭐? 조지아, 그루지아라고도 하는데 거기 수도, 트빌리시. …… 미술관도 루브르나 테이트모던 같은 곳은 경험의 축에도 못 낀다. 현지인들이 가는 곳(현지인 맛집), 심지어 현지인들도 잘 모르는 곳을 발견해야 한다!(왜 그래야 하는지는 모름) 그러나 외지인과 현지인이 모두 잘 모르는 곳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여기서 발생하는 것이 여행의 역설이다. 평평해진 세계에서 진정 깊이 있는 경험을 원할 때 발생하는 역설. 그러므로 우리에겐 두 가지 역설이 있다. 

1. 경험의 역설

2. 여행의 역설

진정한 여행의 달인은 이 두 가지 역설을 모두 뛰어넘는, 또는 개의치 않으면서 통과하는 사람이다. 아니면 플라뇌르처럼 본인이 역설 그 자체이거나.  


현대 관광업의 인프라를 만든 사람은 19세기 제국주의 시대의 토마스 쿡이다. 그가 설립한 토마스 쿡 앤드 선은 1841년 영국철도여행회사로 출발해 세계적인 관광회사가 됐다. 관광업의 세계화는 20세기 중반에 이르러서 본격화된다. 제1세계 사람들은 제3세계 구석구석까지 손을 뻗었고 아름답고 조그만 섬에는 고급 호텔들이 즐비하게 들어섰다. 영화학자로 유명한 피터 월렌에 따르면 우리는 전 지구적 차원의 문화접촉이라는 새로운 시대에 접어들었다. 그는 19세기에서 20세기에 이르는 예술의 변화 과정을 관광과 이민을 중심으로 설명한다. 

간단하게 말하면 이 과정은 식민주의-반식민주의-탈식민주의를 거친다. 1단계는 제국이 제3세계의 예술품을 약탈하는 시기다. 원시예술을 본 제1세계의 아방가르드들은 그것에 영감을 받아 자기 나라의 아카데미 미술을 전복한다. 피카소, 마티스, 요셉 알베르스 등등. 2단계에서는 주변부의 화가들이 서구의 영향을 흡수한 민족주의적인 작품을 가지고 제1세계를 직접 습격한다. 피터 월렌은 디에고 리베라의 뉴욕 록펠러 센터 벽화를 그 예로 든다. 3단계에서는 포스트모더니즘과 함께 준관광예술Para-tourist art이 부상한다. 이로써 중심부-주변부의 위계는 해체된다. 영향 관계는 뒤섞이고 민족주의냐 모더니즘이냐 하는 소리는 시대에 뒤떨어진 개념이 된다. 

세계 최초의 여행사라 할 수 있는 토마스 쿡 앤드 선은 2019년 9월 파산했고 같은 해 11월 중국의 푸싱 그룹에 고작 1100만 파운드에 인수됐다. 다시 말해 식민주의의 파산과 탈식민주의의 완성? 또는 전 지구적 자본주의 시스템의 재편? 토마스 쿡 앤드 선의 파산 요인은 다양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그들이 여행과 관련한 모든 시스템을 일원화한 데 있다. 토마스 쿡 앤드 선은 자신들이 세계 최초로 만든 패키지여행 상품에 집착했고 예약부터 항공사까지 여행의 전 과정을 직접 운영하려고 했다. 외주의 외주, 분업의 분업으로 흩어지고 갈라져서 어디서 결제되고 어떻게 비행기표가 전해지는지도 모르는 요즘 세상에 말이다. 예를 들면 나는 이번 3월 교토 여행을 계획중이었지만 코로나 사태로 2월에 취소했다. 문제는 비행기 티켓 취소였다. 스카이스캐너로 가장 저렴한 요금을 검색해서 예매했는데, 예매를 주관한 여행사인 트립닷컴에서 제대로 메일을 보내지 않은 것이다. 보통 인터넷 티켓 예매는 플랫폼-여행사-항공사순으로 진행된다. 정리하면 영국에 본사를 둔 여행 회사의 메타 검색 엔진(스카이스캐너)을 통해 중국에 본사를 둔 여행 회사(트립닷컴)에서 한국의 두 항공사에(제주항공, 에어서울) 표를 구매한 것이다(스카이스캐너와 트립닷컴은 같은 그룹의 계열사다). 전 세계적인 환불 대란 속에 겨우 여행사와 연락이 닿았지만 환불은 항공사에서 직접 진행해야 했다. 다행히 서울에서 교토로 가는 항공편은 환불됐다. 항공편 자체가 취소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문제는 교토에서 한국으로 돌아오는 항공편이었다. 이 항공편은 취소되지 않았고 그래서 환불해줄 수 없다고 했다. 아니, 가는 항공편이 없는데 어떻게 오는 항공편을 이용할 수 있지? 당연히 환불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 하지만 그건 내 사정일 뿐이다. 예약 상으로 이 둘은 다른 항공사의 다른 항공편이다. 한마디로 교토에서 서울로 오는 비행기 편에는 교토 여행을 가지 못한 나의 개념이 탑승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준관광예술의 시대에 벌어지는 일이다. 

그러나 피터 월렌의 분석이 얼마나 적절했건 간에 시대는 불균질하고 역사는 선형적이지 않다. 그가 2단계라고 말한 현상은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 나는 얼마 전에 북유럽의 한 디자인 스튜디오로부터 한국은 한국적인 것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한국적인 거? 응. 이를테면 조선백자(북유럽의 대답) ……. 고유의 것이라는 문제의식은 끈질기게 우리를 부여잡고 놓질 않는다. 그건 우리 내부의 시선인 동시에 외부에서 우리에게 요구하는/원하는 시선이기도 하다. 탈중심화가 진행되고 전 세계가 균질화하고 있는 시대라지만 지역성의 요구는 여전하며 여기에는 긍정적인 양상과 부정적인 양상이 함께 있는 것이다(제3세계가 제1세계에 고유의 것을 하라고 요구하는 경우는 없다. 스웨덴 사람에게 바이킹 복장을 하고 시상식에 나오라거나 하는……)  

내가 이런 생각들을 하게 된 건 2018년 베니스 건축 비엔날레에 참여한 뒤부터이다. 같은 해 여름 이상우와 베를린에 삼 주간 머무르면서부터 고민은 좀 더 심화됐다. 상우씨는 베를린 레지던시에 머물고 있었고 나는 삼 주간 신세를 지며 그를 귀찮게 했다. 우리는 매일 서너 시간씩 걸었고 자전거를 타고 베를린 알렉산더 광장을 지나 유니테 다비타시옹에 갔으며 호숫가에 누워 혼자 온 터키인 아저씨의 열정적인 자유형을 지켜봤다. 여행이 끝날 때쯤 상우씨가 말했다. 내년에는 지돈씨가 파리에 오세요. 그럼 저도 갈게요. 처음에는 그의 말을 건성으로 들었지만 이상우에게는 예지력과 같은 이상한 힘이 있다. 그는 말을 많이 하지 않지만 말하는 건 대부분 이루어진다. 금정연은 글에 썼다. 예언자 이상우. 그리고 일 년 후, 우리(나, 금정연, 이상우)는 파리의 레퓌블리크 광장에서 만났다. 


이 작품은 격주로 연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