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회

결국 쇼핑 말고는 할 일이 별로 없을 것이다―3

믿기지 않지만 파리에 가장 익숙한 사람은 오한기다. 그는 파리를 제집 드나들듯 드나들었다. 신혼여행도 파리, 1주년 기념 여행도 파리, 배낭여행도 파리, 고등학교 수학여행도 파리(확인된 바 없음), 심지어 카톡 프로필 사진 배경도 파리. 2019년 9월,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파리에 가게 됐고 파리 전문가인 한기씨에게 물었다. 

―파리는 어때요?

―좋아요. 

―어디 가면 돼요?

―에펠탑!

파리에 있는 동안 오한기와 페이스타임으로 서너 번 정도 통화를 했다. 한기씨는 파리가 그립다고 했다. 퐁네프 다리에서 와플을 먹었죠. 나는 파리에서 와플을 한 번도 먹지 않았고 먹는 사람을 본 적도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럼 뭐 먹어요? 한기씨가 물었다. KFC. 일주일에 한 번 레퓌블리크 광장의 KFC에서 흑인과 관광객들 사이에 끼어 프라이드 치킨을 테이크아웃 하는 게 일상의 낙이에요. 상우씨, 정연씨랑 있는 동안에도 여러 번 먹었고.  

―크루아상!

한기씨가 말했다. 파리는 편의점에서 크루아상을 사도 맛있더라구요. 바게트! 바게트 먹었어요? 「바게트 소년병」의 저자인 오한기가 물었다. 

―매일 먹어요. 

내가 대답했다. 나는 에스카르고도 먹어봤다고 했다. 태어나서 처음 먹었어요. 바질페스토에 살짝 구운 빵을 곁들여 먹었는데 좋았어요. 

―에스카르고! 달팽이 요리. 맛있죠.

한기씨가 말했다. 

―오, 먹어봤어요? 

내가 물었다.

―아니요.

―……

 파리에서 돌아오고 난 뒤 한기씨를 만났고 그는 검은 눈동자를 반짝거리며 물어보았다. 

―오르세 갔어요?

―갔죠. 

―로댕! 생각하는 사람!!

―오르세에는 생각하는 사람 없어요. 

―모네! 수련!!

―그건 오랑주리……

―다빈치!

―그만……


파리는 놈팡이에게 중요한 도시이다. 파리는 빈둥거림을 위해 특별히 설계되었고, 건설되었고 배치되었다, 라고 『부르주아와 골동품The Bourgeois and the Bibelot』의 저자 레미 세슬랭Rémy G. Saisselin은 말했다. 실제로 파리가 그런 목적으로 만들어졌는지는 알 수 없지만 파리 사람들이 노는 걸 엄청나게 좋아한다는 사실은 알 수 있었다. 비록 눈에 보이는 사람 절반이 관광객이지만 말이다. 

나는 9월 1일 파리에 도착했고 날씨는 완벽했다. 바로 지난주까지 유럽을 덮쳤던 사상 초유의 더위는 물러갔고 산책하기에 완벽한 바람과 햇살이 운하와 가로수 위로 떨어졌다. 사람들은 거리로 쏟아져나왔고 늦은 시간까지 죽치고 앉아 먹고 마시고 떠들었다. 트로카데로의 분수대는 수영장이 되었고 생마르탱 운하는 바의 야외 테라스가 되었다. 레퓌블리크 광장은 낮에는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소년들로, 밤에는 사교댄스를 추는 남녀로 가득찼다. 나는 며칠 후 파리에 도착한 금정연, 이상우와 함께 광장의 사람들을 바라보며 어울릴 수 있을까 모의했지만 우리가 낮에 어울리는 사람인지 밤에 어울리는 사람인지 알 수 없었다.

―스케이트보드를 타기엔 너무 늙었죠. 

정연씨가 말했다. 

―사교댄스를 추기엔 너무 젊나요? 

내가 물었다. 

―꼭 그렇진 않은 것 같아요. 

정연씨가 말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한가요?

우리 셋 모두 몸을 쓰는 데 문제가 있었고 특히 정연씨와 내가 스케이트보드를 타거나 춤을 추는 건 상상이 되지 않았다. 상우씨는 주짓수와 수영에 능한 어깨 깡패지만 얼마 전 베를린에서 친구와 라임을 타다 가로수를 들이받았다고 했다. 한마디로 우리는 모두 몸치고 쿨한 보더나 핫한 댄서와는 거리가 있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전형적인 문청 또는 예술(애호)가이고 단지 그렇게 보이기 싫어서 갖은 애를 쓰는 사람들이다. 그게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파리는 세계적인 관광지고 관광객이건 거주민이건 놀기 위해 태어난 것처럼 보였지만(또는 노는 사람에게 돈을 뜯어내기 위해 태어난 것처럼 보였지만) 우리가 단지 놀기 위해 만난 건 아니었다. 금정연에게는 원대한 계획이 있었고 파리 방문은 그 계획의 일환이었다. 그는 조지 오웰의 평전을 쓰기 위해 자료를 모으고 현지 조사를 했다. 조지 오웰은 역마살 낀 듯 세계를 돌아다녔다. 인도에서 태어나 영국에서 명문 사립학교를 졸업하고 버마에서 제국주의의 경찰 간부로 근무한 후 파리와 런던을 떠돌며 습작 생활을 하고 스페인 내전에 참전했으며 마라케시에서 소설을 집필했다. 

정연씨는 두 달 동안 스페인과 프랑스, 영국 3개국을 돌며 조지 오웰의 발자취를 좇고 있었다. 파리에는 4박 5일 머물 예정이며 방문해야 할 장소는 서른다섯 곳입니다. 금정연이 말했다.

―조지 오웰 좋아해요? 

내가 정연씨에게 물었다. 조지 오웰은 우리가 진심을 다해 좋아하기엔 너무 유명한 작가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물론 유명한 것이 진심으로 좋아하는 데 흠이 될 순 없다. 다만 유명세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시시한 유명세와 심연의 유명세. 조지 오웰, 어니스트 헤밍웨이, 헤르만 헤세, 무라카미 하루키 등은 시시한 유명세의 대표자들이다. 심연의 유명세에는 조르주 바타유, 클라리시 리스펙토르 등이 있고ㅡ이 둘이 어떻게 묶이는지에 대해선 묻지 말 것ㅡ더 깊은 심연의 유명세에는 마리안 프리츠나 소피 포돌스키 같은 작가도 있다. 시시한 유명세와 심연의 유명세 작가들 사이의 차이를 묻는 일은 무의미하다. 차이가 없거나 차이가 있다 해도 도식화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둘의 차이는 이 군에 속하는 작가들에게서 오는 게 아니라 이 군을 나누는 애호가들에게서 온다).  

―조지 오웰 안 좋아했죠. 

정연씨가 대답했다.

―근데 전기를 왜 써요?

조지 오웰은 스물일곱 살에 서평을 쓰기 시작해서 평생 생활고에 시달리며 한 해에 백 편 이상의 서평을 썼습니다. 저는 스물일곱 살에 서평을 쓰기 시작했고 지금도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쓴 서평은 모두 몇 개일까요? 조지 오웰은 「어느 서평자의 고백」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금정연은 타자기로 원고를 쓰듯 또박또박 오웰의 문장을 따라하기 시작했다. 그와 칠 년을 알고 지냈지만 이렇게 뭔가를 인용할 때면 그는 정말 평론가 같다.

―‘책과 일종의 직업적인 관계를 맺고 보면 대부분의 책이 얼마나 형편없는 것인지를 알게 된다. 객관적이고 참된 비평은 열에 아홉은 이 책은 쓸모없다, 일 것이며, 서평자의 본심은 나는 이 책에 아무 흥미도 못 느끼기에 돈 때문이 아니면 이 책에 대한 글을 쓰지 않을 것이다, 일 것이다.’ 지돈씨, 이제 제가 왜 조지 오웰의 전기를 써야 하는지 알겠죠?

―……그럼 서평은 왜 쓰는 거예요?

―조지 오웰은 「어느 서평자의 고백」 마지막에 이렇게 썼어요. (또다시 인용 기계 등장) ‘두 가지 업을 다 해본 입장에서 말하건대 서평자는 영화평론가보다 낫다.’ 이게 제가 할 말입니다. 


정연씨 정도는 아니지만 내게도 파리에 머무는 동안 계획이 있었다. 플라뇌르의 흔적 찾기. 그것을 재발명하거나 취소하거나 아니면 외면하기. 산책과 젠더, 상품, 자아, 신체, 공간, 사물, 매체를 엮는 불가능한 기획의 밑바탕을 깔기, 그것이 곧 근대성과 자본주의, 그리고 그 이후다! 등등. 

의도한 건 아니지만 파리의 숙소는 공쿠르역에서 삼 분 거리에 있었다. 공쿠르상으로 유명한 그 공쿠르 형제는 사실 천하의 놈팡이들이다. 그들은 걸작을 남기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한 소설 보다 매일 남긴 일기로 역사에 남은 인물들로 수십 년간 쓴 일기에는 당시의 시대상과 사건, 인물들이 빼곡히 담겨 있다. 더불어 그들의 솔직하고 신랄한 내면―에밀 졸라에 대한 질투와 비방, 문학을 이해하지 못하는 대중들에 대한 원망, 알퐁스 도데의 아들 제제에 대한 짜증(공쿠르 형제의 형인 에드몽 공쿠르는 아이들을 재앙이라고 생각했다), 도시와 시골의 소음에 대한 불만, 엘리베이터에 대한 공포, 상징주의에 대한 경멸 등등 열거하자면 끝이 없는데, 사실 대부분의 재미는 이런 요소에 있다. 일기란 본래 남이 읽으면 안 되지만 언젠가는 읽게 되기를 바라는 것으로 그건 속마음과 유사하다. 몰랐으면 하지만 알아줬으면 하는 것. 아무튼 공쿠르 형제의 일기에는 당대의 플라뇌르 로베르 드 몽테스키우 백작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플라뇌르로서의 댄디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군중들 사이에서 두드러지는 것이다. 그들은 남들과 달라 보이기를 원했고 사람들을 놀라게 만들기를 원했다. 보들레르는 하루에 셔츠를 세 번 갈아입었고 거울 앞에서 잠들고 거울 앞에서 살았다. 로베르 드 몽테스키우는 루이 15세가 쓰던 홀 지팡이를 들고(이 지팡이는 공쿠르에게서 샀다) 산양 가죽 장갑을 꼈으며 셔츠의 커프스는 터키석으로 장식했다. 파사주의 상점들이 좋은 이유는 상품 때문이기도 하지만 쇼윈도의 거울이 나의 모습을 비춰주기 때문이다. 상품과 자아의 합일, 파사주의 모든 쇼윈도에 반사되는 나, 나, 나. 이로써 나는 걸어다니는 상품, 스펙터클의 운반자가 된다. 그것이 무엇을 대변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플라뇌르의 산책은 흔히 거북이의 속도와 비견된다. 게으르고 느린 구경꾼의 시선, 산업화의 속도를 거부하는 완만한 속도. 그러나 사실 플라뇌르가 거북이 속도로 걷는 이유는 실제로 거북이와 함께 걸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튀기 위해 가재나 거북이에게 목줄을 묶어 산책했다. 로베르 드 몽테스키우 백작 역시 팔레 루아얄에서 구입한 거북이와 함께 산책을 했는데 그냥 거북이로는 너무 시시해 등껍질에 도금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도 한때, 도금에 싫증이 난 그는 거북이를 보석상에 가져가 등껍질에 토파즈를 박았다. 아마 그것 때문인지 거북이는 금방 죽어버렸다(이로써 플라뇌르에겐 동물학대라는 죄명이 더해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귀족을 좋아하는 속물인 공쿠르는 몽테스키우 백작과 친하게 지냈고 백작은 이후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등장인물 샤를뤼스 남작과 위스망스의 『거꾸로』의 주인공에게 영향을 줬다.  

공쿠르는 또한 플로베르, 졸라 등 당대의 작가들과 가깝게 지내기도 했다. 그는 1874년 카페 리시에서 플로베르, 투르게네프, 에밀 졸라, 알퐁스 도데와 함께 저녁식사를 했는데 그 자리에 대해 이렇게 썼다. “서로의 작품을 높이 평가하는 재능 있는 남자들의 저녁식사였다.”

카페 리시는 1785년 오픈한 고급 레스토랑으로 오페라 가르니에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공쿠르는 여기서 당대의 (남자)작가들을 만나 서로의 작품을 상찬하고 집에 돌아가서는 에밀 졸라는 복에 겨운 배불뚝이 뚱보다, 따위의 내용이 포함된 일기를 쓴 것이다. 

공쿠르 형제의 일기는 번역되지 않았으나 파리와 프랑스 예술에 대한 책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자료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종류의 문학 역시 이러한 종류의 것들이다. 무슨 의미인지 정확히 알 수 없고 종합할 수 없이 들쑥날쑥하는 일련의 경험과 생각들이 오가는 것. 이론화하거나 미학적으로 다듬을 가치가 있는 아이디어의 배아가 보이지만 모든 것이 시간이나 생각의 흐름에 휩쓸려 지나가버리고 결국에는 감당할 수 없는 산더미 같은 짐, 일종의 텍스트 더미만 남는 것. 그러나 여기에 일관성이 아주 없진 않다. 전기가 성립될 수 있는 것은 전기 작가들이 한 사람의 일생에서 의미 부여할 수 있는 서사나 패턴을 찾아내서가 아니라, 그것을 묶을 수 있는 환경으로서 한 사람의 신체가 존재했었기 때문이다. 산책 또는 걷기, 만보 역시 마찬가지다. 사실 플라뇌르는 한 번도 실제로 존재했던 적이 없다. 파리라는 도시에서 난립했던 특정한 종류의 걷기와 걷기를 기록한 텍스트에서 발견한 아이디어를 작가들이 재창조한 것뿐이다. 존재했던 건 걸음을 걸었던 사람들이며 나머지는 모두 구성된 것들이다.  

금정연과 이상우는 9월 2일 파리에 도착했고 우리는 9월 3일 29,138보를 걸었다. 생마르탱 운하를 지나 레퓌블리크 광장에서 지하철을 탔고 오페라 가르니에에서 내려 마들렌 사원을 들렀고 콩코르드 광장을 통과해 튈르리 정원으로 향했다. 여정은 금정연의 계획에 따른 것이었는데 그에 의하면 이 장소들은, 그리고 앞으로 가게 될 모든 장소들은 조지 오웰이 존재했던 곳이었다. 우리는 이후 2박 3일 동안 하루 평균 3만 보를 걸으며 조지 오웰이 존재했던 서른다섯 곳을 포함해 두 개의 미술관과 하나의 시네마테크를 방문했다. 어떤 경험이었을까. 이틀째 되는 날, 걷는 게 너무 힘들었던 나는 금정연에게 물었다. 여긴 왜 왔어요? 파리5구의 클로드베르나르가였고 그곳은 아무것도 없는 평범한 거리였다. 앞서 걷던 금정연이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조지 오웰은 돈이 없었어요. 그래서 돈 좀 있었으면 하고 여길 걷다가 돈을 주웠어요.

그게 다예요?

그게 답니다. 세 뚜C'est tout.


 

이 작품은 격주로 연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