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회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차이는 무엇인가? “자본주의에서는 인간이 인간을 착취한다.” 그러나 사회주의에서는 그 반대다―2


오한기는 매번 말한다. 이 소설이 제 마지막 소설입니다. 물론 그는 지금도 소설을 쓰고 있고 마지막 소설을 쓰려면 아직 한참 남은 것 같다. 그렇지만 그의 말이 그냥 하는 소리는 아니다. 오한기의 소설은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만이 쓸 수 있는 소설이다. 나는 아무것도 기대할 게 없고! 바랄 것도 없고! 읽는 사람도 없고!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 건 아니죠?

―조금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기는 해요. 

―그렇게 생각한다고 그렇게 쓸 수 있는 건 아니죠.  

내가 말했다. 사실 이번이 마지막이야! 라고 반쯤 진심으로라도 생각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재능이다. 사람이란 일말의 기대라도 하기 마련이니까. 

―절망적인 삶이 재능인가요?

―어떤 경우에는.

그렇다. 어떤 경우에는 망한 인생도 재능이 될 수 있다. 어떤 경우에는 인생이 망하지 않았는데 망했다고 느낄 수 있으며 어떤 경우에는 망했는데 희망이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이중 최악은 뭘까요?

  1. 망했고 망했다고 생각함.

  2. 망했고 망하지 않았다고 생각함.

  3. 망하지 않았고 망했다고 생각함. 

―음…… 4번은 없어요?

―뭐요?

―4. 망하지 않았고 망하지 않았다고 생각함. 

오한기가 말했다. 

―그런 경우는 생각해보지 않아서……

―본 적도 없는 것 같네요. 

사실 문학계나 출판계의 사람들 대부분은 3번에 속한다. 진심으로 그렇게 믿진 않더라도 최소한 그렇게 말하는 걸 즐긴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엔가 2번의 상태로 돌입한다(이때 굉장히 진지해짐). 진짜 망했을 때야 비로소 망하지 않기 위해 희망을 불사르는 것이다. 그러므로 문학의 주된 원료는 망함이다. 좀더 그럴듯한 단어로 하면 파국, 몰락. 쉬운 단어로는 실패, 패배. 요즘 유행하는 단어로는 인류세? 어쨌든 문학은 일종의 불사조다. 잿더미 속에서 부활해 날아오르는 한 마리 찬란한……


*


―우리는 문학 얘기를 줄여야 합니다. 

금정연이 말했다. 

―트위터도 줄여야 하구요……

우리(오한기, 금정연, 나)는 빌라드스파이시(떡볶이집)에 앉아 즉석 떡볶이를 먹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빌라드스파이시는 센트로폴리스 지하 식당가에 있는 식당 중 하나다. 센트로폴리스는 종로1가 사거리에서 안국동 방향으로 조금만 가면 나오는, 지어진 지 일 년이 조금 넘은 신축 빌딩이다. 광화문에서 만나기로 한 우리는 어쩌다보니 이곳으로 오게 되었는데, 셋 모두 이 자리에 이런 건물이 있다는 사실을 몰랐으며 더구나 이 건물의 지하에 빌라드스파이시가 있다는 사실 역시 몰랐다. 그리고 그곳에서 떡볶이를 먹게 될 거라는 사실도……(지금이 연말이고 우리는 검은 롱패딩을 입은 삼 인의 젊지 않은 그러나 늙지도 않은 남성 문인임을 기억하자……)

우리는 한 번도 정확한 약속 장소를 정하고 만난 적이 없다. 맛집에는 무지하고 힙플레이스에도 무지하다. 내가 그런 정보를 아는 편이지만 나의 정보 역시 조규엽이나 박솔뫼와 같은 지인들로부터 온 것이다. 게다가 금정연은 힙플레이스라면 질색한다. 그는 유명한 장소, 화려한 장소, 세련되고 기름진 장소라면 치를 떤다. 

―제가 언제요, 지돈씨?

금정연의 말. 그러나 나는 표정을 보면 알 수 있다. NL 출신 금정연이 당장이라도 자본주의의 본진 같은 이곳에 불을 지를 기세라는 사실을…… 반면 오한기는 아무런 생각이 없다. 그는 어떤 곳에 가도 그곳에 있지 않은 사람처럼 행동한다. 그가 어울리는 것은 오직 그 자신뿐이다……

물론 금정연도 많이 변했다.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있었던 세속에 초탈한 듯, 80년대 후반, 90년대 중반 맨체스터의 공장 거리를 헤매는 노동자 계급의 백인 청소년 같았던 느낌(마이크 리의 <Meantime>에 나올 법한)이 지금은 많이 사라졌다. 금정연은 가끔 면도를 안 했는데, 소설가 이상우는 그 모습을 보고 말했다. 강기갑 같네요. 그후 금정연이 면도를 하지 않은 모습은 다시 볼 수 없었다……

금정연이 우리와 처음 어울리기 시작했을 때 그의 와이프인 박지은 과장님은 나쁜 애들이랑 어울리면서 나쁜 물 들었네, 라고 했다. 머리도 투블록으로 자르고 유니클로나 자라에서 옷도 사고.

―그럼 그전에는 옷을 어디서 산 거예요?

저도 잘 몰라요, 지돈씨. 지돈씨는 어디서 사요? 사실 와이프가 지돈씨 어디서 사는지 물어보래요. 

나는 너무 많은 곳에서 옷을 사기 때문에 대답은 메일로 해주겠다고 했다……

다시 광화문으로 돌아가자. 가고 싶은 곳도 없으면서 지리적인 이점 때문에 광화문에서 만나는 우리는 역시 지리적인 이점 때문에 디타워로 가는 일이 잦다. 디타워가 생기기 전에는 어디서 밥을 먹었는지 모르겠다. 도시의 특징 중 하나는 기억이 빠르게 잊힌다는 것이다. 새 건물이 생기고 나면 그전에 그곳에 있었던 게 뭔지 기억나지 않는다. 아주 특별한 무언가가 아닌 이상 기억은 빠르게 소멸한다. 

디타워에는 브루클린더버거조인트가 있고 불행인지 다행인지 금정연과 오한기, 그리고 지금은 베를린에 있지만 언제나 우리의 마음속에 있는 소설가 이상우는 모두 햄버거를 좋아하고 우리는 교보문고에서 지척에 있는 그곳을 자주 이용했다. 햄버거를 먹은 후 역시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카페인 폴바셋에 가는데, 디타워의 폴바셋에 자리가 없으면 트윈타워에 있는 폴바셋으로 간다. 폴바셋에 가는 이유는 그곳의 아이스크림이 한때 유명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우리의 삶은 프랜차이즈, 전 지구적 자본주의에 포섭됐다……

그런데 2019년 12월 30일, 아마도 2010년대의 마지막 외출이 될 이날은 평소와는 다른 루트로 가고 싶었다. 한겨울에 햄버거가 내키지 않았고 폴바셋은 너무 지겨웠다. 나도 조금 더 좋은 카페에 가고 싶다, 혼자 다닐 땐 펠트 커피나 듁스 커피, 심지어 노멀사이클코페 같은 카페도 간단 말입니다. 

―그럼 거기로 갈까요?

―아니요. 거긴 너무 멀고 아마 닫았을 거예요. 그런 곳은 늦게까지 안 하거든요.

―네, 죄송합니다. 제가 괜한 말을 했네요.

오한기가 말했다. 그는 사과를 잘하고 잘못을 인정하는 데 망설임이 없다. 때론 그게 지나쳐서 진심일까 하는 의문이 든다. 사실은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게 분명해. 사과할 일도 아닌데 사과를 하다니!

오한기는 국내 굴지의 커피 회사 홍보팀에서 일했었고 잘만 버텼다면 전략기획실장으로 승진할 수 있을 만큼 대표의 총애를 받았(다고 나는 생각하)지만 회사생활을 도저히 견디지 못하고 나왔다. 한기씨 말에 의하면 팀장이 그를 무서워했다고 한다. 

니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어: 팀장의 말 

저도 한기씨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어요: 나의 말

죄송합니다. 제가 잘못한 것 같네요: 한기씨의 말……

오한기가 회사에 다닐 때만 해도 명절이나 연말이 되면 공짜 원두 따위를 받을 수 있었다. 맛은 없었다.  

정연씨가 삼십 분 정도 늦는다고 했으니까 그동안 좀 걸을까요. 

네, 좋아요. 

한기씨와 나는 디타워를 지나쳐서 종각 쪽으로 향했다. 광화문에서 종로로 가는 길에 있는 빌딩들은 최근 십여 년 사이에 새롭게 지어지거나 리뉴얼을 했고 그와 더불어 피맛골로 알려진 청진동의 골목과 건물들도 많은 변화를 겪었다. 빌딩들은 새로운 이름을 달고 1층과 지하에 식당가와 쇼핑센터를 만들었다. 디타워, 르메이에르, 그랑서울…… 과거의 피맛골은 간판을 새로 달고 오피스빌딩 1층의 상가로 들어왔다. 새 빌딩들은 지역 발전을 위해서인지 본인들 건물 세를 올리기 위해서인지 모르겠지만 지방이나 지역 곳곳에 있는 유명 식당과 프랜차이즈를 섭외해 맛집 종합센터를 만들었다. 사람들이 몰려들고 피맛골, 청진동, 서울의 옛 골목은 과거와 같은 명성을 유지한다…… 신구의 조화……

유명한 식당이나 카페를 한곳에 모으는 방식은 국내 대기업 중 압구정 갤러리아백화점의 식당가인 ‘고메이494’에서 처음 시도했다고 하는데 정확한 정보는 아니다. 기사에 그렇게 나와 있을 뿐이다(신문 기사의 정보가 정확하지 않다는 사실은 이제 모두가 안다. 기사는 고메이494와 같은 곳을 ‘셀렉트 다이닝’이라고 불렀다. 국내 셀렉트 다이닝의 효시…… 기업 홍보팀에서 준 카피겠지).

잠깐 고메이494 홈페이지에서 소개하는 브랜드 스토리를 읽어보자. 


고메푸드를 즐길 수 있는 품격 있고 트렌디한 미각 도시로의 초대!

국내 최초로 그로서리(식재료)와 레스토랑(식음 공간)이 유기적으로 결합된 Grocerant(그로서란트)컨셉을 선보이며 한곳에서 먹고 즐기고 소통하는 새로운 식문화를 여러분께 제안합니다.

Grocerant 컨셉의 새로운 Food Culture를 경험할 수 있는 It Place, Gourmet 494


나는 이런 게 너무 재밌다. 소리내서 읽으면 더 재밌다.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으면서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 정보가 있지만 아무런 정보도 없는…… 그로서리와 식음 공간이 유기적으로 결합된 그로서란트……

2013년쯤에 친구와 고메이494에서 속초 코다리 냉면을 먹었다. 친구 차를 타고 갔는데 주차할 때 옆의 차를 긁기라도 하면 어쩌나, 주차 요원이 무시하면 어쩌나 속으로 걱정했던 게 생각난다. 아무 일도 없었고 코다리 냉면은 맛있었다. 냉면도 잘 먹은 김에 쇼핑이나 할까 하고 올라가서 편집숍처럼 꾸며진―역시나 국내에선 거의 최초로 시도했다는―백화점을 돌며, 쇼핑하기 편하지만 살 수 있는 가격의 옷은 없다, 그러나 살 수 있다, 조금의 무리만 한다면, 그러나 왜 무리해야 하지, 같은 하나 마나 한 생각을 했던 것도 생각난다. 

아무튼 나와 한기씨는 조금 더 걸었다. 새롭게 생긴 곳들은 새롭게 생긴 것처럼 보였지만 벌써 옛것이 되어버린 느낌이었다. 새것에 가까운데 옛것 같은 느낌. 예전에는 옷을 사면 오 년, 십 년도 입었는데 지금은 작년에 산 옷도 옛날 옷 같다. 새로운 공간이 생기고 유명해진 게 몇 해 되지도 않았는데 왜 낡은 느낌을 주는 걸까. 뭔가 잘못된 거 아닐까. 

한기씨와 나는 종로1가 사거리에 도착했고 보신각을 봤다. 

―내일 타종 할까요?

―하겠죠. 직접 본 적 있어요?

―아니요. 

―저도요.  

우리는 두리번거리며 들어갈 곳을 찾았다. 바로 앞에 있는 SC제일은행 빌딩에 들어갔지만 식당가가 마땅치 않았다. 구내식당 같은 곳밖에 없네요. 그때 사거리 건너편 종로빌딩 옆의 건물에서 정말 새것처럼 보이는, 밝고 따뜻하고 부드러운 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빌딩은 이름하여 센트로폴리스. 우리는 빛에 이끌린 하루살이처럼 건물의 로비로 끌려들어갔고……  


센트로폴리스(CENTROPOLIS)는 ‘중심’을 뜻하는 ‘Centro’와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를 의미하는 ‘Polis’를 조합한 독창적인 명칭으로 역사와 문화의 터전 위에 들어선 동시대 최고의 프라임 오피스 빌딩을 의미하며, 최상의 비즈니스 라이프스타일을 선도하는 ‘비즈니스의 중심지’를 뜻합니다.


센트로폴리스는 2019년 건축문화대상 우수상을 받았다. 간삼종합건축사사무소의 오동희씨가 설계를 담당했고 밤이 되면 “도시의 등대”로서 사람들이 건물과 만나기를 기대했다고 한다. 종로타워가 남성적이라면 센트로폴리스는 여성이라는 개념으로 풀어냈다고…… 빌딩의 로비 층은 실제로 어두운 공평동 일대를 밝히는 등대처럼 빛이 환했다. 

로비에는 사람이 없었다. 1층 카페에도 사람이 없었고 지하 식당가에도 사람이 거의 없었다. 

―여기서 밥을 먹어도 될까요?

한기씨가 말했다. 나는 검색을 해보자고 했다. ㅅㅔㄴㅌㅡㄹㅗㅍㅗㄹㄹㅣㅅㅡ “국내 오피스 빌딩 역대 최고 규모 1조 1200억원” “아태 지역 오피스 거래액 톱10 중 4위”


글로벌 부동산 리서치 기업 리얼캐피탈애널리틱스(RCA)에 따르면 세빌스코리아가 매각 주관사로 참여한 서울 오피스 거래 3건이 지난해 아시아 태평양 지역 개별 부동산 거래 규모 상위 10위 내에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 센트로폴리스가 거래금액 4000만 달러로 아시아 태평양 지역 거래 중 상위 4위를 기록했다. 약 1조1200억 원 규모다. 이어 삼성물산 서초사옥이 6억7000만 달러로 7위, 더케이트윈타워가 6억6000만 달러로 9위에 올랐다.(2019년 4월 6일, 베타뉴스)


리얼캐피탈애널리틱스는 2000년에 설립된 뉴욕 베이스의 부동산 리서치 기업으로 대표는 로버트 M. 화이트 Jr. 다. 회사 이름이 너무 직관적이라 뭐 하는 회사인지 모를 수가 없다. 친구는 대표 이름도 직관적이라고 했다. 로버트 “M” 화이트에서 M은 male의 줄임말 아니야? 그러니까 이 사람은 “백인 남성 2세 밥”인 거지. 매각 주관사인 세빌스코리아는 1855년 영국에서 설립된 세빌스의 한국 지부로,  ‘2019년 아시아-태평양 부동산 어워즈’에서 한국 최고 상업용 부동산 에이전시상과 한국 최고 부동산 단일 프로젝트상을 받았다고 한다. 아태 영화제는 알지만 아태 부동산 어워즈는 처음 알았다. 세상에는 정말 많은 상이 있다. 젊은작가상도 있고…… 

우리는 정연씨에게 센트로폴리스로 오라고 했고 곧 금정연이 도착했다. 그러므로 사태는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조선시대 한양의 번화가인 견평방 부지였던 공평동에 20세기 중반 국가 자본으로 설립되어 2000년에 민영화된 철강회사의 자회사인 포스코 건설이 시공하고 1983년 한국의 1세대 건축가 원정순과 지순 부부가 설립한 간삼건축에서 설계해서 19세기 런던에서 설립되어 한국에 지부를 두고 있는 부동산 자문 회사가 매각을 주관하고 뉴욕에 기반을 둔 부동산 리서치 기업이 아시아 4위 규모의 거래로 평가한 프라임급 상업 오피스 빌딩의 지하에 롯데GRS가 유치한 요식업장 중 떡볶이집(빌라드스파이시)에서 검은색 롱패딩을 입은 삼십대 아시아인 남성 문학인 세 명이 라면 사리를 추가한 즉석 떡볶이를 먹기 위해 앉아 있다. 

 

※ 이 글은 실화를 바탕으로 쓰였다.

그러나 약간의 과장이 포함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이 작품은 격주로 연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