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회

손상된 젠틀맨을 위하여

차 시동을 본격적으로 걸기 전, 일단 창문을 활짝 열어 환기한다. 묵은 공기를 충분히 내보내고 음악 몇 곡을 몰아 듣는다. 이제 곧 둘 다 할 수 없는 시간이 온다. 내비게이션과 함께라면 세상 어디든 갈 수 있을 거라 믿었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그가 말하는 전방 300미터와 500미터가 대체 얼마큼의 거리인지, 또 그가 일러주는 ‘잠시 후’가 대체 얼마나 잠시 후인지 알아내는 것은 철저히 내 몫임을 이제는 안다.  

그래도 가상 도로에서의 오랜 수련 덕분인지 나는 초보치고 매우 빠르게 운전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움직이며 확보되는 사생활이 감격스러웠고, 이 비싼 장난감에 왜 그렇게들 열광하나 이해하기 시작했다. 한 20년 늦게 어엿한 사회인이 된 기분에 도취되어, 습관적으로 보행자와 따릉이를 욕하는 나 자신을 보며 제법 보이즈 클럽에 들어온 느낌을 받았다.

그렇게 웬만한 상황에 어느 정도 적응했다 싶었을 때 그 일은 일어났다.


집에서 멀지도 않은 친구 사무실에 굳이 차를 가지고 행차한 날의 일이었다. 주차장이 언덕이라 초보에게 까다로울 수 있다는 친구의 조언을 나는 일종의 도전으로 받아들이고 말았다. 까다로워봤자 어쨌든 차가 들어가니 주차장일 거라 우기며, 괜히 본때를 보여주고 싶었다.

그렇게 당도한 주차장은 차를 기준으로 앞뒤가 아닌, 좌우로 경사가 심한 언덕에 위치해 계셨고, 나는 그제서야 조금 좃되었다는 생각을 했다. 끝끝내 차를 끌고 가겠다는 나에게 친구는 내리면서 차문을 옆 차에 찍지 않도록 주의를 주었는데, 그것은 바로 이 형국 때문이었던 것이다.  

빈자리가 거의 없는 좁은 주차장의 중앙에서, 여러 번의 전후진을 야무지게 반복하여 차를 겨우 넣었다. 옆 차와의 간격은 숨을 들이마시면 충분히 지나갈 수 있겠다 싶었다. 친구의 조언을 되새기며, 아 껌이지, 라고 생각하며 운전석 문고리를 쥐고 연 순간, 성실한 중력이 갑자기 보이지 않는 힘을 발휘했다.

 

 

내 손을 빠져나간 문은 옆자리에 주차되어 있던 차의 옆구리에 정확히 박히며 짧은 떡! 소리를 냈다. 이미 나의 정신은 여기서 사망했다. 나의 육신만이 쏜살같이 차에서 내려, 정말 거기 있으면 안 되는 내 차문을 옆 차에서 얼른 걷어냈다. 항상 안 돕던 하늘이 진짜 잠깐 도왔는지 다행히 옆구리가 파이지는 않았지만, 얼굴이 비치도록 광이 나는 도무지 안 비쌀 수 없을 아름다운 딥블랙차에, 내 차의 볼썽사나운 빨강 페인트가 일자로 묻어 있었다. 이제는 육신도 사망을 원하고 있었지만, 나는 본능처럼 차에서 물티슈를 꺼내 미친듯이 페인트를 닦아내기 시작했다.


“아휴, 그렇게 해가지곤 안 되지~”


주차장 관리인 아저씨가 무료한 발걸음으로 다가와 미운 시누이처럼 한마디를 건넸다. 나는 그의 말에 순간 움찔했으나 물티슈가 해결 못 하는 일이 있다는 것을 바로 믿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결국 피할 수 없는 현실이 입장했음을 약 3분 후 인정하고 만다.

더이상 어떤 색의 차가 진상을 쳤는지는 알 수 없게 만들었으나, 페인트가 묻었던 자리만 무광효과가 적용되어 있었다. 나는 하늘과 땅을 기도하듯 한 번씩 보고 곧장 차 주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점잖은 목소리의 주인은 안 그래도 지금 주차장으로 가는 중이라며, 짐짓 너그러운 태도로 전화를 받아주었다. 나는 어떻게 해야 가장 불쌍해 보일 수 있을지를 궁리하다가, 언뜻 차창에 비친 덜덜거리는 내 모습을 보고는 이미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잠시 후 세련된 광이 도는 말쑥한 검은 정장에, 테가 얇은 유광 안경을 쓰고 머리를 쫙 끌어다 뒤로 넘긴, 딥블랙 카를 쏙 빼닮은 젠틀맨이 여유 있는 미소를 띤 채 건물 입구에서 주차장으로 걸어왔다. 나는 머리가 땅에 닿을 듯 그를 향해 고개를 숙이고 나서도, 척추를 완전히 펴지 않고 대화를 이어가려 애썼다. 그는 내가 토끼지 않고 솔직하게 얘기해준 것을 크게 칭찬했지만, 동시에 이게 전문가가 지울 수 없는 자국으로 남을까봐 전전긍긍하는 모습도 보였다. 나는 떨리는 몸을 추스르며 젠틀맨이 나에게 얼마를 요구할지, 내 통장 잔고분은 지금 감당되실지, 안 된다면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아니 근데 시발 차는 대체 왜 끌고 왔는지 등등 각종 극단적인 생각을 머릿속으로 굴리고 있었다.

사고 경험이 없어 절절대는 나와 달리 딥블랙 젠틀맨은 일단 오늘은 명함만 교환하자며 상황을 정리했다. 각종 쿠폰과 남의 명함이 가득한 지갑 속에서 작년에 만든 예술 향기 그득한 수제 명함을 찾아 건네려다가, 나는 갑자기 국립현대미술관 레지던시에서 만들어준 번듯한 현대미술가 명함을 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막 예술가 그런 거 아니고, 뭔가 믿을 만하고 버젓하게 사회에서 기능하고 있는 인간이라는 인상을 주는 게 젠틀맨께 더 잘 보일 수 있는 길이 아닐까 하는 직감에서였다. 명함을 받아든 그는 잠시 나와 명함을 번갈아 보다가, 연락하겠다는 말을 남긴 채 곧 차를 몰고 자리를 떴다. 


며칠이 지나도 연락이 오지 않자 친구들은 자국이 잘 지워졌나보다, 초보 티 나서 그냥 넘어가준 것 같다며 나를 안심시켰고, 나도 덩달아 큰 위기를 벗어났다 믿기 시작했다. 그렇게 평소처럼 흥청망청 살던 어느 날, 그 일이 있고 거의 열흘도 더 지난, 가장 예상치 못한 순간에 젠틀맨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그의 명함을 받자마자 ‘내가 해먹은 차’라는 이름으로 번호를 저장해놨기 때문에, 나는 핸드폰 화면을 보자마자 깊은 심호흡을 하고 재빨리 전화를 받았다. 그가 여전히 점잖은 톤을 유지하고 있어 조금 안심이 되었다. 

그는 결론적으로 정비소에서도 그 자국을 지울 수 없었다고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것 때문에 문 전체를 새것으로 교체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 했다. 나는 ‘문, 새것, 교체’에서 한 번 숨이 멎었지만, ‘없는 노릇’에 이르러서는 나도 모르게 큰 소리로 그럼요, 그럼요 맞장구를 쳤다. 그는 말을 이어갔다.

“근데 보니까, 미술 뭐 그런 거 하시나보더라고요?”

“네네, 맞습니다, 선생님.”

나는 술잔을 받치듯 핸드폰을 잡지 않은 오른손으로 나도 모르게 입 쪽을 가리며 말했다.

“그래서, 이게 뭐 피차 애매하니까, 그 제가 티켓 같은 거 하나 받으면 어떨까 싶어요.”

“미술…… 전시 티켓이요???”

나는 순간 이게 무슨 상황인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아 어리둥절했다. 현대 미술 전시는 보통 공짜인데?

물론 미술관이나 박물관처럼 티켓을 파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그래봤자 보통 만 원을 넘지 않는 것이 미술 전시 티켓이었다. 우리 젠틀맨께서 겨우 그런 것을 나에게 요구하고 있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다. 

나는 조금 혼란스러웠지만, 그래, 뭐든 해드리면 끝나는 건가 하는 생각에, 넵넵을 몇 번 반복했다. 어쨌든 그렇게 하면 일이 마무리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의 진짜 목적은 이제서야 발화되고 달성되려 하고 있었다.

“근데, 이 명함에…… 이…… 반…… 지하? 이건 뭐예요?”

나는 흐읍 숨을 삼켰지만, 빠르게 목소리를 한번 가다듬고 아무렇지 않은 척 대답했다.

“그거요, 제가 글쓰고 그림 그리고 할 때 쓰는, 어…… 닉네임 같은 겁니다!”

약간 석연치 않은 톤으로 “그렇군요”라는 말을 뱉은 그는 곧바로 말을 이었다. 

“근데 ‘이반’이라는 게…… 그…… 좋은 의미가 아니잖아요?”

나는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대꾸했다. 

“그렇죠! 맞죠!”

그는 나의 맞장구에 약간 힘을 얻은 듯했다.

“그러니까 이게 게이, 트랜스 이런 건데,”

나도 힘주어 답했다.

“네, 제가 바로 ‘게이’입니다~!”

 

핸드폰 너머 보이지 않는 그의 점잖은 심장이 적잖은 타격을 입었다는 것이 느껴졌다. 그는 한동안 아 아- 아아-라는 말만 반복했고, 자신감 넘치던 태도 역시 뭐 수그러들듯 함께 수그러들었다.

“그래요. 그렇군요. 죄……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나는 이제 끝났다는 생각에 씩씩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그는 이제 겨우 1절을 마치고, 조금 떨리지만 호기심 넘치는 목소리의 2절로 가려하고 있었다.  

“그러면 그…… 여자인데, 여자……를 좋아하시는 그런?”

이쯤 되니 나는 급격한 피로감을 느꼈고, 

“네네~맞으세요~”

상황은 너무 심하게 귀찮아지고 있었다. 젠틀맨은 아직 뭔가를 수습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눈치였다. 

“저는 그러니까, 그, 그 미술 그런 거 하신다고 해서, 티켓이나 그런 걸 받으면 되겠다 생각했거든요. 그러니까 그래서…… 그래서……”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떨리고 있었고, 그 떨림에는 당장의 호기심과 젠틀맨 사이에서 무엇이 될지 갈등하는 흔적이 엿보였다. 한 발을 더 나갈지 아니면 여기서 멈춰낼지, 그의 젠틀은 위태롭게 유지되고 있었다. 나는 그가 횡설수설하는 틈을 타, 몇 번의 네네와 다 맞는 말씀이라는 말을 반복한 후 젠틀하게 전화를 끊어냈다.

 

그와 조금 더 통화를 이어줘야 했을까 하는 생각이 안 든 것은 아니었다. 사실 보통 이런 대화는 너의 게이 여자친구와 셋이 함께 만나자는 얘기까지 들어줬을 때 완벽하게 평범한 젠틀맨과의 에피소드가 된다. 하지만 아무래도 거기까지 가는 것은 이제 내 쪽에서 먼저 지켜주고 싶다. 언제부턴가 이 땅의 소중한 젠틀맨들의 격은 내가 한 박자 빨리 지켜주고 싶어졌다. 왜냐면 조금만 지체하면 수많은 젠틀맨들이 자꾸 자신의 모든 것을 숨김없이 보여주려고 하기 때문이다. 

나는 한 번 정도는 더 전화가 올 거라는 예감이 들어, 그의 번호를 지우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