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회

엽 학 택

남성을 지켜보는 일은 즐겁다고 배웠다. 특히 그들이 무리지어 있는 곳은 무엇보다 신나고 재밌는 일이 일어날 거라 기대된다. 그들은 기본적으로 천진하며 영원히 어린아이와 같다고 알려져 있다. 즉, 사실상 그들 중 성인은 없다고 봐도 무방한데, 그럼에도 사회적 존재감이 무척 큰 것이 평생 봐도 놀라운 일이다. 그런 존재적 신비로움 탓일까, 나는 평생 그들이 모인 곳에 자주 시선을 빼앗겨왔다. 그렇다고 내가 각종 얼큰한 가게들만 들락거리며 그들의 뒤를 집요하게 밟아온 것은 아니다. 나는 그저 조금 먼 발치에서 그들 스스로가 지어내는 서사를 즐겨 보았을 뿐이다. 

<슬램덩크>를 보고, <무한도전>을 보던 나는 최근 야구 예능을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그 세계에 쏙 빠져들었다. 그곳에는 일단 엽, 학, 택과 같은 거칠고 단단한 결을 가진, 감히 비非남성에게 허락되지 않을 영웅적 이름들이 있다. 너도 짱이고 나도 짱이라서 서로를 인정하는 몸 쓰는 사내들의 끈끈한 우정과 호르몬도 있다. 그들이 흘리는 땀, 역경을 딛는 투지, 반전과 역전의 서사는 컴퓨터 화면 너머로 깊은 울림을 전한다. 냄새가 거세된 그 가공된 울림을 뼛속까지 음미하며, 나도 저 안에 있다고, 우리는 같은 편이라고 나는 믿는다. 그러면 즐겁다. 그래야 신이 난다. 

그들을 사랑하는 데는 많은 조건을 따지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좋다. 반드시 젊음이랄지 멀끔함 같은 요소가 결정적인 것은 아니라 배웠다. 어리면 어려서, 늙으면 늙어서, 잘생기고 또 안 생겨서 좋은 것이 그들이라고 오랜 세월 유구히 카메라가 가르쳐주었다. 그들은 그 자체로 완전하다. 다만 절대로 그들과 함께 화면에 잡히면 안 되는 것은, 미처 남성이 되지 못한 이들이다. 그런 서투른 존재들이 등장하는 순간, 나의 몰입은 순식간에 깨져버린다. 

물론 이미 하나로 잘 단결된 세계에 소소한 양념이나 곁다리 반찬 좀 있다고 나쁠 거 하나 없다. 낮고 두꺼운 승리의 포효 소리에 다양한 웃음소리 살짝 낀다고 뭐가 떨어지는 것도 절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런 다양성은 일단 나의 집중을 흐트러뜨린다는 것, 그리고 멀쩡했던 구경꾼이자 대충 동질감에 취해 있던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하기 때문에 나쁘다는 것이다. 신나게 TV를 보다가 갑자기 자신의 다양성을, 현실을 돌아보고 싶은 사람 어디 있겠는가. 

그러니 부디 카메라를 돌리지 말라. 땀을 뻘뻘 흘리며 신명나는 플레이를 이어가는 단일한 이들을 잡던 카메라가 갑자기 응원석을 비출 때면 나는 이 완벽한 세계가 잊고 있던 사람들을 발견하고 깜짝 놀라고 만다. 맞다! 쟤네도 있었다! 다만 응원석에 있었을 뿐!  

그 순간 몰입이 깨지는 것이다. 완벽한 세계는 이제 불완전해 보이고 마냥 즐거웠던 순간들은 금세 추억이 된다. 아차차, 생각해보니 설마 나도? 

입이 쓰다. 저 세계는 서투른 애들이 없어 완전하다. 그렇게 누구의 취향도 입장도 대변하지 않는 깔끔한 스포츠가 되어준다. 그리고 나 같은 뭇 시청자가 서사에 몰입한다. 응원한다. 그러다 또 아차차.  

그래서일까. 나는 언제부턴가 영원히 그들의 세계가 무리하게 다양성을 섞는달지, 비율을 맞춘달지 하는 시도조차 하지 않길 남몰래 바라왔다. 차라리 단정한 하나의 세계를 숨구멍 하나 없이 완전하게 제시하여 나를 착각하게 해달라. 내가 저 화면 속 영웅들과 다를 바 없다고, 나도 그들처럼 될 수 있다고 달콤한 꿈을 꾸게 해달라.

쓰벌 그것이 존나 꿈일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