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회

오래방

커다란 횡단보도를 건너 큰길을 천천히 걸었다. 8차선 도로에는 이따금 과속을 하는 차가 굉음을 내며 곁을 스쳐갔고, 초여름의 뙤약볕이 우리를 감쌌다. 나는 손으로 차양을 만들어 얼굴을 가렸다. 가뜩이나 검은 얼굴이 더 검게 탈까봐 걱정이 됐다. 나보다 한 발짝 앞서 걷는 윤도는 어깨를 고스란히 드러내놓고 있었다. 저러면 피부 껍질이 다 일어날 텐데. 따가워서 밤새 잠을 설칠지도 모르고. 그러면 밤새 깨어 있을 수밖에 없겠지? 시원한 바람을 맞기 위해 창문을 열어놓을 테고. 그러고 무엇을 하려나. 어깨에 얼음주머니를 올려놓은 채 나처럼 노래를 흥얼거리려나. 아니면 어울리지도 않게 책을 읽거나 공부를 하려나. 그나저나 쟤는 왜 얼굴이 타지도 않는 걸까. 하긴 원래 피부가 하얀 애들은 여름에도 까매지지 않는 것 같았다. 그것은 마음의 문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여서 원래 티 없이 하얗고 단단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의 일상은 웬만한 일에는 흐려지지 않는 반면, 조금의 티끌이라도 있는 사람들의 삶은 물방울만큼 작은 고통에도 쉬이 짙어지고 구겨지기 마련이었다. 뭐 이런 다소 과잉된 자기 연민에 사로잡힐 때쯤, 윤도가 나를 불렀다.

“야, 그쪽 방향 아니야.”

 나는 당연히 시장 옆에 있는 큰 오락실에 갈 거라고 생각했는데, 윤도는 거긴 언제나 사람이 붐빈다며 자기가 따로 봐놓은 장소가 있다고 했다. 그러고 비탈길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윤도가 멈춰 선 곳은 시장 뒤쪽의 낡은 아파트 단지 앞이었다. 구에서 내가 살고 있는 궁전아파트보다 더 오래된 것으로 유명한 최고령의 아파트였다. 윤도는 아파트 앞의 상가 아케이드 입구로 들어가더니 곧장 지하로 내려갔다. 아래로 갈수록 쿰쿰한 먼지 냄새와 곰팡이 냄새 같은 게 풍겼다. 빛바랜 간판이 달린 세탁소와 문을 닫은 순댓국집을 지나치자 불투명한 검은색 시트지가 발려 있는 가게가 나타났다. 내부를 전혀 확인할 수 없는 유리문에는 역시나 빛바랜 붉은색으로 ‘주공 오락실’이라고 적혀 있었다. 윤도가 그 안으로 들어갔다. 윤도를 따라 나도 유리문을 미는데 기름칠이 잘 되지 않아 뻑뻑한 마찰음이 났다. 안에 들어가자 십 평이 될까 싶을 정도로 작은 공간에 오락기가 꽉 차 있었다. 지하여서 그런지 오락실의 공기는 바깥과는 달리 서늘했다. 입구 바로 옆의 유리 부스 안에는 노란 장판이 깔려 있었고, 오락실의 주인으로 보이는 노인이 그 안에서 심란한 무늬의 담요를 덮은 채 손바닥만한 브라운관 티브이를 보고 있었다. 우리가 가게 안에 들어섰는데도 노인은 고개조차 돌리지 않았다. 귀가 좋지 않은지 볼륨을 너무 크게 해놔 유리 부스 너머로 드라마 대사가 다 들렸다. “너를 믿었던 게 실수라면 실수야. 그게 사랑이라고 생각했으니까……” 도무지 과잉되지 않은 게 없는 공간이었다. 오락기 게임도 스트리트 파이터와 갤러그, 땅따먹기 게임과 뿌요뿌요 등 연식이 오래된 것들뿐이었다. 그리고 맨 구석에 노래방 부스 하나가 놓여 있었다. 윤도와 나는 곧장 부스 안으로 들어갔다. 그 안에는 작은 화면의 노래방 기계와 먼지가 뽀얗게 쌓인 노래방 책과 리모컨, 작은 스툴 두 개가 놓여 있었다. 나는 시장 옆의 커다란 오락실에 있는 노래방과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비좁은 부스의 크기에 놀랐다. 윤도와 내가 스툴에 앉자 서로의 무릎이며 어깨가 포개질 것만 같았다. 나는 잔뜩 긴장한 채 윤도의 살에 닿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음료수를 얻어먹은 게 마음에 걸려 이번엔 내가 돈을 내려고 수영 가방을 뒤졌는데, 마침 천원짜리 한 장이 있어 그걸 지폐 투입구에 넣었다. 천원을 넣으면 총 다섯 곡을 부를 수 있었다. 

“야, 굳이 돈 쓸 필요 없는데.”

“아냐. 아까 음료수도 얻어 마셨고.”

윤도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하더니 빠른 속도로 예약을 하기 시작했다. 번호를 외우고 있는지 책을 보지도 않고 세 곡을 연거푸 예약했다. 나는 노래방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펼쳐보았다. 최신곡이라고 적혀 있는 게 육 개월도 전에 나온 노래들이었다. 책을 아무리 뒤져봐도 내가 좋아하는 브릿팝 넘버나, 인디 음악은 나오지 않았다. 어쨌든 한 곡 정도는 불러야 할 것 같아서, 최신곡 페이지에 나와 있는 노래 중 내가 유일하게 알고 있는 노래인 보보의 <늦은 후회>를 예약했다. 그리고 시선을 떨어뜨린 채 바닥을 바라보았다. 나의 무릎보다 희고, 작고, 차갑고, 단단한 윤도의 무릎이 보였다. 조금만 움직여도 윤도의 몸에 닿을 것 같아 자꾸만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전주가 지나가자 부스 속 사이키 조명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노래하는 윤도의 목소리는 평소 목소리와는 완벽하게 달랐다.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는 윤도의 음성은 말할 때보다 반 옥타브쯤 높은 것 같았다. 허스키하고 저음에 가까운 평소의 목소리와는 달리, 노래할 때의 목소리는 가늘고 맑았다. 음역대가 높은 목소리를 평소에는 애써 누르느라 목이 쉬어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윤도는 2000년대 초반을 주름잡았던 드라마틱한 전개의 록 발라드를 불렀다. 나는 연신 고음을 쥐어짜는 윤도의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미성이었지만 결코 잘한다고는 할 수 없는, 간신히 음정과 박자를 맞추는 정도의 노래 실력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참으로 최선을 다해, 목에 핏대를 세워가며 진정성 있게 소리를 질렀다. 좁고 날렵한 콧날에는 잔뜩 주름이 졌고 질린 것처럼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평소 같으면 단순한 소음에 불과했을 음률이 자꾸만 의미심장하게 느껴졌다. 두 곡을 연달아 부른 윤도가 목이 아픈지 헛기침을 했다. 나는 그런 윤도의 모습을 보며 이상하게 감동 같은 것을 해버렸다. 나도 못하면 못하는 대로, 별로면 별로인 대로 그렇게 있는 그대로의 나를 드러내고 싶었다. 별거 아닌 일에도 최선을 다하는 그의 모습이 귀엽게 느껴졌다. 아니, 귀엽다못해 안타까웠고 안타깝다못해 동경하게 되었다. 윤도의 부리처럼 가는 입술이 벌어질 때마다 그의 입김이 내 얼굴에 닿았다. 부스 안에서 먼지 냄새가 사라지고 어느덧 윤도의 숨결이 가득차는 듯했다. 서늘했던 공기가 자꾸만 더워지는 것 같았다. 

윤도가 세번째 노래를 마치고 기어코 내 차례가 되었다. 나는 떨리는 마음을 감추기 위해 마이크를 턱에 붙이고 최대한 담담하게 노래를 불렀다. 보보의 <늦은 후회>를. 윤도는 책을 뒤지다 나를 흘끗 보았다. 그리고 빙긋 웃었다. 역시나 여자 노래를 부르는 게 아니었나. 괜히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지만 그렇다고 중간에 노래를 꺼버리기도 좀 그래서(이미 이백원이나 과금이 되었기에) 계속 노래를 불렀다. 윤도는 아무 노래도 예약하지 않았고 그렇게 노래가 끝났다. 93점. 

“야, 너 노래 잘한다?”

“무, 무슨 소리야. 빨리 예약이나 해.”

“난 벌써 세 곡이나 불렀는데? 너 한 곡 더 해.”

“아니야. 나 다 불렀어. 그리고 너도 알잖아. 내 취향 이상한 거…… 내가 아는 노래는 여기에 없고.”

“이상한 게 아니라 특별한 거지.”

“특별은 무슨…… 됐어, 목도 아프고.”

“그래? 잠깐만 있어봐.”

윤도는 가지고 온 신발주머니를 뒤적이더니 작은 초록빛 케이스를 꺼냈다. 그리고 케이스를 뒤집어 손바닥에 엄지손톱만한 검은 직방형 물체를 떨어뜨리고는 그걸 내 입안에 넣었다. 무방비한 사이 윤도의 엄지와 검지가 내 입속에 쑥 들어왔다. 그리고 입안에 퍼져나가는 민트의 알싸한 향기. 목캔디였다. 윤도는 손가락에 내 침이 묻었는지 어떤지 신경도 쓰지 않고 목캔디 하나를 더 꺼내 자신의 입속에 집어넣었다. 나는 작은 목캔디를 혀로 감쌌다. 그것이 마치 윤도의 신체 중 일부라도 되는 것처럼. 혓바닥부터 식도, 위장까지 뜨거워지는 그런 기분. 

“목 아프면 그거 먹고 있어. 다음 노랜 내가 할게.”

이토록 손쉽게 내 영역으로, 내 장기 속에(?) 침범하다니. 내가 놀란 가슴을 부여잡고 있는 사이 윤도는 노래방 기계에 번호를 눌렀다. 지겹지도 않은지 또 록 발라드인 것 같았다. 소음에 가까운 윤도의 노래를 듣는데 멜로디가 왠지 익숙했다. 1절이 끝난 후 간주가 흘러나올 때 나는 윤도의 귀에 대고 외쳤다.

“이거 <카우보이 비밥> OST 아냐?”

“맞아. 너 비밥 좋아해?”

“어, 투니버스에서 할 때 매일 밤새워서 봤어.” 

“나도.”

이윽고 2절이 시작됐고, 나는 윤도와의 공통점을 하나 더 찾았다는 사실이 기뻤다. 평소에는 어떤 당혹스러운 상황에서도 잘만 받아치는 나인데도 윤도의 앞에 서면 자꾸 할말을 잊고는 했다. 그런데 비밥 얘기라면, 만화와 음악, 영화에 대한 얘기라면 달랐다. 어렵지 않게 언제까지고 함께 웃으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것 같았다. 윤도의 노래가 끝났고 88점이 나왔다. 사이키 조명이 꺼지고 불이 켜졌다. 

가방을 챙기는 나에게 윤도는 서너 곡만 더 부르고 가자고 했다. 

“안 돼. 나 돈 없어.”

돈이 없다는 말을 너무 강조해 궁상맞게 들릴 게 분명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어쩔 수 없었다. 당시에 나는 정말 돈이 없었고, 그래서 궁상맞은 아이였으니까. 윤도는 씨익 웃으며 일어서려는 내 팔을 잡았다.


“가만있어봐.”


윤도가 신발주머니 속에서 길쭉하고 납작한 플라스틱 조각을 꺼냈다. 자세히 보니 책받침을 바나나 모양으로 길쭉하게 잘라놓은 것이었다. 윤도는 바닥에 쪼그려앉아 그 조각을 동전 투입구에 집어넣고 노래방 기계를 흔들었다. 화면에 코인이 하나둘 쌓이는 게 보였다. 윤도의 몸이 움직일 때마다 윤도의 머리카락에서 땀냄새와 민트 냄새가 섞인 복잡한 냄새가 풍겼다. 그 향기를 맡으니 내 마음까지 복잡해지는 기분이었다. 어쨌든 이건 범죄니까…… 아무것도 모른 채 티브이를 보고 있을 노인의 얼굴이 아른거리는 것만 같은 찰나, 윤도가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됐지.” 

배시시 웃는 윤도의 얼굴을 보니 나라를 팔아먹어도 용서해줄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윤도가 입을 열 때마다 목캔디 향이 났다. 내게서도 같은 향이 풍겼을 것이다. 나는 우리가 왠지 두 명의 늙은 아저씨가 된 것만 같았고, 그게 웃겼다. 윤도가 고음이 많이 나오는 노래 두 곡을 연달아 부른 뒤 내게 마이크를 넘겼다. 나는 고심하다, 내가 아는 가장 무난한 발라드인 머라이어 케리와 보이즈 투 맨의 <One sweet day>를 불렀다. 키를 네 번 정도 내린 후, 머라이어 케리가 아닌 보이즈 투 맨에 이입하여 최대한 굵은 목소리를 내려 애썼다. 윤도는 내 목소리가 듣기 좋다고 했다. 부스 속의 온도가 점점 올라갔다. 윤도와 닿는 부분이, 무릎이며 팔뚝이 점점 더 축축해졌다. 둘 다 목이 아파서 더 부를 수가 없을 때쯤 코인이 동났다. 우리는 부스 밖으로 나왔다. 오락실에는 여전히 사람이 하나도 없었고 또 노인은 여전히 정물처럼 앉아 티브이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먼지 냄새 나는 아케이드를 지나 밖으로 나왔을 때에는 어느덧 사위가 저물어 있었고, 거리에는 초여름 밤의 선선한 공기가 감돌고 있었다. 윤도는 내게 월드컵 기간인데 왜 축구 경기를 보러 가지 않느냐고 물었고, 나는 축구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윤도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나도 마찬가지야.”

“근데 넌 체육 시간마다 축구 하잖아.”

“축구는 보는 게 아니라 하는 거야. 뭐든 하는 게 재밌지, 보는 건 재미없어.” 

누가 들으면 메시라도 되는 줄 알 것 같은 윤도의 발언을 들으며 나는 좀 가소로운 기분이 들었는데, 윤도는 자기가 얼마나 유치한 말을 계속 해대는 건지 전혀 알지 못한 채 주머니에서 목캔디를 하나 더 꺼내 나에게 내밀었다. 내가 고개를 젓자 씨익 웃으며 내 뺨을 잡은 뒤 입안에 억지로 목캔디를 쑤셔넣었다. 그리고 자신도 목캔디를 하나 더 먹었다. 나와 윤도는 나란히 집을 향해 걸어갔다. 나는 윤도와 눈이 마주치지 않게 조심하며 윤도를 흘끗흘끗 관찰했다. 윤도의 얇은 입술 사이로 목캔디 조각이 들어갔다가 나오는 게 슬로모션처럼 천천히 흘러갔다. 윤도는 이따금 걸음을 멈추고 누군가와 문자를 주고받았는데 그럴 때면 나보고 먼저 가라고 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인 뒤 뒤를 돌았다. 얼마 안 돼 윤도가 내 뒤에서 뛰어오며 나를 보는 것이 느껴졌고 나는 최대한 자연스럽게 성큼성큼 걸으려 노력했다. 부자연스러운 모습을 숨기려 하면 할수록 점점 더 몸이 굳었다. 큰길에 다다랐을 때쯤 가로수에 기대 심호흡을 했다. 긴장한 탓에 심장이 요동쳤다. 궁전아파트 근처에 도착하자 해가 완전히 저물어버렸고 윤도가 내게 물었다.

“너 궁전 사는 거 맞지?”

“어.”

“근데 왜 신세계 산다고 했어?”

“그냥, 방에서 노래 부르는 거 들킨 게 부끄러워서.”

그것은 절반의 진실이었다. 내가 부끄러워한 게 밤마다 홀로 청승을 떨며 노래를 불렀다는 사실, 그것만은 아니었으니까. 나는 나의 부모와 나의 집, 나의 성향과 나의 취향, 나의 말 못할 비밀과 나의 우울, 내가 혼자임을 버티는 방식, 그러니까 나 자신의 모든 것이 부끄러웠다. 그래서 안간힘을 다해 나 자신을 감추려해왔던 것이고. 윤도는 내 대답을 듣고 별다른 말을 얹지는 않았다. 어느덧 윤도와 나는 아파트 단지 입구에 다다랐다. 윤도는 몸을 돌려 자신의 집은 이쪽, 이라고 했다. 나는 아무것도 몰랐던 것처럼 아, 그래? 가까운 데 사네, 능청을 떨며 또 보자고 말한 뒤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뒤돌아선 윤도가 점점 작아질 때까지 윤도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윤도가 기어이 완벽히 사라져버렸을 때, 나는 새끼손톱보다 작아져버린 목캔디를 어금니로 깨물었다. 

달았다. 


이후 윤도와 나는 주말마다 수영장과 오래방에 함께 가게 되었다. 윤도의 경우 어머니의 일을 돕기 귀찮다는 이유가 있었다면 내 경우는 성당의 청년부 미사를 가지 않겠다는 매우 중요한 목표가 있었다. 미라 아줌마와 엄마는 학창 시절, 세련된 건물에서 정숙하고 신념 있는 학생으로 대접받는 동시에, 세례명을 가질 수 있다는 이유로 성당에 다니게 되었다. 둘 다 일단 한번 무언가를 시작하면 무섭게 몰입해 끝장을 내고야 마는 성격이었기 때문에 그녀들의 종교 활동은 이십 년도 넘게 이어졌고, 나는 순전히 타의에 의해 모태신앙으로 자라 중학생이 됐을 때까지도 주말마다 미사를 나가야만 했다. 윤도와 나는 그런 의미에서 이해관계가 잘 맞았다(한없이 윤도 쪽으로 기울어버리는 내 마음을 차치하고서라도 말이다).

주중에 학교에서 만나면 가벼운 눈인사를 하는 정도였을 뿐, 딱히 각별히 대화를 나누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렇게 하자고 약속한 것도 아니었는데 자연히 그렇게 됐다. 윤도는 쉬는 시간마다 자신의 반 아이들과 복도를 뛰어다니며 또래의 남자애답게 천진난잡하게 놀았고, 내 경우는 이어폰을 낀 채 책을 읽는 정적인 부류의 사람이라 더더욱 그랬을 것이다. 

이따금 윤도가 나를 찾아 우리 반에 올 때가 있었는데, 주로 교과서나 체육복을 빌리기 위해서였다. 나는 말없이 사물함에서 섬유유연제 향기가 풍기는 내 체육복을 꺼내 윤도에게 건네고는 했다. 윤도는 고맙다는 말도 없이 곧장 옷을 갈아입고 운동장으로 뛰어나갔고, 한 시간 뒤에 축축하게 젖은 체육복을 돌려주며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는 했다. 나는 축축한 체육복을 받아들고 괜히 기쁜 마음에 사로잡혔고, 남몰래 체육복에 희미하게 밴 윤도의 체취를 맡았다. 비릿하면서도 달콤한, 윤도의 흔적. 


지긋지긋하고 기이했던 월드컵의 열기가 끝나고 우리는 점점 더 편한 사이가 되어갔다. 윤도가 노래방에서 부르는 노래는 윤도현에서 너바나로, 너바나에서 콜드플레이로 바뀌어갔다. 나의 음울한 노래 취향이 윤도에게 옮아갔듯, 윤도의 티끌 없이 밝은 마음 같은 것도 어느덧 내게 옮아붙은 듯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물론 그것은 착각에 불과했지만. 


어느 가을밤, 윤도가 나를 불러냈다. 별생각 없이 슬리퍼를 끌며 아파트 단지 입구로 내려갔다. 윤도가 자그마한 빨간 스쿠터 옆에 기대서 있는 게 보였다.

“야, 타.”

그 모습을 보고 나는 웃음이 터질 수밖에 없었는데, 스쿠터 뒤쪽에 달린 네모난 케이스에 ‘2대 송원 막창’이라고 커다랗게 쓰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디서 났냐고 물으니, 가게의 배달용 오토바이인데 요즘 통 배달 수요가 없어서 자신이 ‘빌려’ 타고 있다고 했다. 자세히 보니 윤도의 스쿠터는 당시 배달업계를 꽉 잡고 있었던 빨간색 ‘대림 씨티’였다. 아무리 봐도 엄마 몰래 배달용 스쿠터를 끌고 나온 느낌이 없지 않았지만…… 그래도 윤도가 하는 짓이 귀여워 군말 없이 윤도의 뒷자리에 앉았다. 스쿠터가 출발했고 나는 윤도의 배를 안았다. 살집 없이 마른 윤도의 몸이 내 품안에 들어왔다. 윤도는 스쿠터를 타고 수성못을 한 바퀴 돌았다. 플라타너스 이파리가 도로에 가득 떨어져 있는 완연한 가을이었고, 윤도의 운전이 미숙한 탓에 스쿠터는 이따금 요동쳤다. 무섭다기보다는 설렜고 설레기보다는 두려운 마음. 이상하게 내 품에 안긴 윤도가 자꾸만 쪼그라들어 당장이라도 사라져버릴 것만 같아서 나는 윤도를 더욱 꽉 안게 되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날 이후, 주말에 수영장에 가거나 또 산자락에 있는 오락실에 갈 때마다 나는 윤도의 뒤에서 윤도를 안은 채 스쿠터를 타게 되었다. 


그렇게 시간은 흘렀고 우리는 어느덧 중학교 3학년을 앞두고 있었다. 우리가 함께 보낸 시간만큼 윤도에 대한 내 마음도 깊어갔다. 그저 친구일 뿐이라고 나 자신을 다잡다가 마음이 무너져내리는 날들이 많았다. 윤도는 윤도 나름대로 고민이 깊어 보였는데, 내 경우는 초등학생 때 시작됐던 사춘기가 윤도에게는 뒤늦게 (혹은 제때에) 몰아닥쳤는지 부쩍 한숨이 늘었다. 시시껄렁한 농담이나 하던 윤도가 우울이나 공허와 같은 감정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날이 늘어났다. 나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외고 입시반에 들어가게 되었고, 윤도 역시 시원찮은 성적에도 불구, 나와 같은 학원에 다니겠다고 했다. 윤도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돼서 기쁜 마음과 윤도에 대한 내 진심이 은연중에 드러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동시에 밀려왔다. 그렇지만, 좋았다. 뛰고 싶을 만큼. 

3학년 1학기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윤도는 내게 싸이월드 우리 다이어리를 함께 쓰자고 했다. 서로 재밌었던 영화나 좋았던 음악 같은 것을 공유하자고,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 다이어리가 일종의 우리의 역사가 되어 있을 것이라 했다. 윤도가 아무래도 뮤지션들의 평전을 너무 많이 읽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기뻤다. 집에 들어와 싸이월드 다이어리를 가장 먼저 확인하는 습관이 생겨버릴 만큼. 


그 시절의 어느 날 우리가 나눴던 대화가 아직까지도 생생하다. 

아마도 커트 코베인이나 시드 비셔스, 재니스 조플린에 대해 말하던 중이었을 것이다. 실컷 죽은 뮤지션의 이야기를 하던 윤도가 맥락도 없이 내게 물었다. 

“너는 죽고 나서 사람들이 널 기억했으면 좋겠어?”

“아니. 나는 모두의 기억에서 지워졌으면 좋겠어. 완벽히. 흔적도 없이.”

“그래? 이상하네.”

“그게 왜 이상해?”

“나는 계속 기억에 남고 싶어. 영원히, 아무도 나를 잊을 수 없게.”


단지 기억되는 것. 상실 이후에도, 기나긴 부재의 시간 속에서도 오롯이 너란 존재를 다른 사람에게 각인시키는 것. 그게 네 목표였다면, 성공이야.

남윤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