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회

모두가 한 지점으로

나는 종이봉투를 손에 들고 병원에 도착했다. 그 속에는 무늬가 갖다달라고 부탁한 『내 남자친구 이야기』 전권이 담겨 있었다. 팔층에 있는 병실로 그냥 바로 올라가려다가 그래도 병문안인데 뭐라도 사들고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일층에 있는 매점에 들렀다. 델몬트 과일주스 세트를 살까 하다 돈이 모자라 결국 박카스 한 박스를 샀다. 병실로 가면서도 나는 도무지 내가 느끼는 기분이 무엇인지 확신할 수가 없었다. 

병실 앞에 다가서자 무늬의 오빠로 보이는, 무늬와 똑 닮았지만 얼굴빛이 좀더 검은 남자가 문 앞에 서 있었다. 그 역시 나를 바로 알아봤는지 고압적인 표정으로 내 앞을 가로막았다. 평균보다 작은 신장은 무늬 집안의 어쩔 수 없는(?) 유전인지 그 역시 키가 작은 편이었고, 때문에 나보다 다섯 살이나 많은 그가 나를 살짝 올려다보는 모양새가 되었다. 그래서 그가 팔짱을 낀 채 온몸으로 적개심을 뿜어내는데도 두렵지 않았고 오히려 조금 실없게 느껴졌다. 아마도 그가 내게 전화를 건 남자인 듯했다. 그가 무게를 잡으며 물었다. 

“너 무늬랑 무슨 사이냐?”

“네?”

“혹시 내 동생이랑 사귀냐?”

나도 모르게 너무 크게 웃음이 터져버렸다.  

“그럴 리가요. 같은 학원에 다니는 친구입니다.”

“동생이 입원하자마자 가장 먼저 너부터 찾길래 물어본 거다.”

“아, 네……(날? 왜?)”

“너 K중학교 다닌다며. 나도 거기 출신이다.”

“아, 네……(그래서 뭐 어쩌라는 걸까.)”

“그럼 들어가서 네가 잘 달래봐라.”

도대체 뭘 달래보라는 건지 알 수 없었지만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안으로 들어갔다. 육 인용 병실 가운데 무늬 자리만이 커튼이 활짝 젖혀져 있었다. 무늬는 나를 보고는 반가운 표정으로 한 손을 휘휘 저었다. 턱선까지 내려왔던 머리카락은 많이 자라 중단발 정도가 되어 있었다. 무늬의 다른 손은 두꺼운 깁스로 감싸여 있었다. 침대 곁으로 다가가자 무늬는 다소 갈라진 목소리로 잘 지냈냐고 물어보았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침대 옆에 놓인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들고 온 종이봉투와 박카스 박스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너네 오빠는 어딜 저렇게 급하게 가냐?”

“몰라. 여친한테 전화하러 가나? 아니면 담배나 빨러 가는 거겠지. 아, 나도 존나 담배 피우고 싶다.”

안 본 사이에 입이 더 걸어져 있는 무늬였다. 도대체 무슨 일이냐고 묻자 무늬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자해했거든.”

입이 떡 벌어진 내게 무늬는 그게 뭐 별일이냐는 듯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애초에 무늬가 그토록 열심히 공부에 매진했던 것은 ‘서울행’을 위해서였고, 보기 좋게 입시에 실패하고 나서도 무늬는 그 목표를 접을 생각이 없었다. 때문에 무늬는 부모님에게 외고에 갈 수 있는 성적을 냈으므로 서울에 있는 고등학교에 진학해 혼자 살게 해달라 요구했다. 누가 들어도 얼토당토않는 소리였고, 당연히 무늬의 부모님에게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무늬는 그럼 최소한 지금의 감시와 통금 시간을 없애달라고 다소 수위를 낮춘 협상을 제안했지만 무늬의 아버지는 헛기침을 하며 신문을 넘길 따름이었다. 무늬는 극단을 아는 여자였고, 아무 말도 듣지 않는 아버지의 이목을 끌기 위해 퍼포먼스에 가까운 시위를 시작했다. 바로 삼층 베란다로 달려가 난간 위에 올라선 것이었다.

“서울에 안 보내주면 뛰어내릴 거야!”

그제야 무늬 아버지는 신문에서 눈을 떼더니 무늬를 무심하게 바라보았다. 그리고 무늬 어머니를 부르고는 마치 훈장님이 훈계를 하는 듯한 어조로 자식 교육을 어떻게 시켰으면 애가 이토록 개차반이 됐냐며 핀잔을 주었다. 무늬 어머니는 애는 혼자 키우냐며 피차 출근하는 처지에 아침 댓바람부터 쓸데없이 사람을 불러댄다며 되레 성질을 냈다. 아버지는 끄응 하고 앓는 소리를 내더니 무늬에게 슬쩍 시선을 주며 말했다. 

“이무늬 너, 그쪽으로 안 떨어지고 이쪽으로 오면 내가 패 죽일 줄 알아라.”

역시나 무늬를 낳은 사람다운 극단적인 태도였다. 그리고 아무렇지 않게 다시 신문으로 고개를 돌린 아버지. 무늬는 자신이 예상한 대로 일이 흘러가지 않자 당황해버리고야 말았다. 그렇게 약 십 분 정도 보이지 않는 팽팽한 신경전이 벌어졌다. 신문의 마지막 페이지까지 다 읽은 아버지가 신문을 덮으며 일어서자 무늬는 다급해졌다. 난생처음 목숨을 걸고(사실상 삼층에서 떨어진다고 해도 목숨이 위태로울 것 같지는 않았지만 아무튼) 제대로 반항을 해본 것인데 이대로 아무런 소득 없이 끝낼 수는 없었다. 무늬는 난간에서 내려와 잽싸게 부엌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바삐 아침 준비를 하던 가사도우미를 밀쳐내고 싱크대 서랍에서 커다란 식칼을 꺼내더니 그것을 손목에 댄 채 온 집안이 쩌렁쩌렁 울리도록 외쳤다. 

“더이상 이렇게는 못살아. 그래. 아버지가 원하는 대로 뒤져줄게.”

그리고 미련 없이 손목을 그어버린 무늬.


“대충 피나 내고 치울 생각이었는데, 나도 모르게 너무 힘이 들어가버린 거지.”

깊이 베인 손목에서 피가 쏟아졌고 무늬는 자신의 몸속에 그토록 많은 피가 흐르고 있었다는 사실에 놀랐다. 그리고 이내 정신을 잃어버렸다. 구급차를 타고 아버지가 재직하고 있던 K대학의 부속병원으로 실려가 꽤 긴 시간 동안 봉합수술을 했고, 지금은 매일 신경정신과 치료도 받고 있다고 했다. 하마터면 신경이 끊어져 손가락을 못 쓸 뻔했다고 웃으며 말하는 무늬를 보며 나는 졌다, 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무늬는 무늬였다.

“근데 병문안 온 사람이 내가 처음이라며? 왜 하필 나를 불렀어? 너 친구들 많잖아.”

“너도 알다시피 이쪽 친구들은 다 등돌린 지 오래고, 그렇다고 다른 학교 애들 부르자니 좀 쪽팔리기도 하고. 가뜩이나 소문도 안 좋은데 거기다 기름 붓는 거 같기도 하고. 아무리 생각해봐도 니가 젤 만만하더라.” 

“그래. 얼굴 다 봤지? 그럼 갈게.”

“어딜 가. 농담이지. 사실은 제일 보고 싶은 건 언니였는데…… 언니가 내 연락 피한 지도 오래됐고 우리 얘기 아는 건 너밖에 없기도 하고……”

뭐야, 결국 나미에 언니의 대체재로 날 선택했다는 거 아냐, 어이없는 기분이 들었지만 무늬가 특유의 꿈꾸는 듯한 눈빛을 하기 시작해 나는 얼른 말을 돌렸다. 

“너네 오빠가 나보고 너랑 사귀냐고 묻더라?”

“미친놈. 걔는 여자랑 남자가 한마디라도 하면 무조건 사귀는 줄 알아. 지가 아는 만큼, 딱 그대로 씨불이는 거지 뭐. 아빠랑 똑 닮은 꼰대 새끼.”

무늬의 오빠는 무늬와 달리 사회 순응적인(?) 성격인 것 같았다. 틈만 나면 빠져나갈 구실을 찾아 결국 음계를 제대로 익히는 데도 실패한 무늬와는 달리 아버지에게 착실히 레슨을 받아 아버지가 교수로 있는 대학에서 가야금을 전공하고 있었고 심지어 얼마 전에는 인간문화재인 아버지의 전수자로 임명되어 아버지의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고 했다. 아버지의 미니미답게 그대로 교수직을 이어받을 요량인 것 같다고 무늬는 삐딱한 어조로 말했다. 

“근데 그렇게 대놓고 자식한테 물려줘도 되는 거야?”

무늬의 말에 따르면 워낙에 그런 업계여서 다들 알음알음 인맥에 따라 자리를 찾아간다고, 무늬는 정확히 그런 점 때문에 가업을 잇지 않겠다는 결심을 했다고 했다. 그런데 왜 대낮에 오빠가 병실을 지키고 있냐고 묻자 가족들이 돌아가며 병상을 지키고 있다고 했다. 전문의가 자신을 자살 위험군으로 분류해놓은 탓에 입원할 필요가 없는데도 보름 동안이나 병실에 갇혀 있다고도 했다. 이 사달을 내고도 천진하게 자기 할말을 하는 무늬가 괜히 귀엽게 느껴졌다. 

“그래서 아버지가 서울은 보내준대?”

“보내주겠냐.”

하지만 무늬의 목숨을 건 기개(?)를 높이 샀기 때문인지, 아니면 천방지축 막내딸을 반쯤은 놓아버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무늬의 통금 시간은 새벽 한시로 완화(실질적으로 폐지)되었다고 했다. 그러나 무늬는 절반의 성공 앞에서도 착잡해 보였다. 하긴 오후 다섯시였던 통금 시간이 새벽 한시가 되었다고 한들 여전히 보수적인 부모님의 그늘 아래에서 착실한 딸 노릇을 해야 하는 것은 마찬가지이며, 나미에 언니를 둘러싼 무늬의 감정이나 상황이 나아진 것도 전혀 아니니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거짓말처럼 윤도에게서 전화가 왔고 나는 (그럴 일이 아닌데도) 괜히 눈치가 보여 얼른 핸드폰 폴더를 열었다 닫았다. 무늬는 (고양이도 아니면서) 동체시력이 남다른 것인지 아니면 눈치가 십팔단인 건지 나에게 대뜸 물었다.

“너 남윤도랑 연락하고 지내는 사이야?”

“연락 못할 건 또 뭐야.”

“별일 없는 것처럼 얌전하게 입다물고 있더니 많이 발전했나보다?” 

“발전은 무슨 발전이야. 그냥 같은 학교 다니고 학원에서도 보니까 연락도 하고 그러는 거지.”

맞는 말인데도 거짓말을 하는 것처럼 자꾸 목소리가 떨렸다. 

“아직도 그 소리니? 너도 너다.”

 무늬는 변명 따윈 더 듣기도 싫다는 듯 혀를 차더니 얼른 만화책이나 내놓으라고 했다. 나는 바닥에 내려놨던 종이봉투를 들어 침대 위에 『내 남자친구 이야기』를 쏟아놓았다. 무늬는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찾은 듯 허겁지겁 만화책을 읽기 시작했다. 우정은 개뿔. 결국은 이게 목적이었구만. 침대 위에 널브러진 만화책 중 하나를 집어들어 훑어보는데 문득 오토바이가 눈에 들어왔다. 남자주인공 츠토무가 몰고 다니는 혼다 커브. 그것의 형태가 윤도가 타고 다니는 배달 스쿠터와 썩 닮아 있었다. 

집에 돌아와 나는 미친듯이 인터넷을 검색했고, 윤도의 대림 씨티가 혼다 커브를 본뜬 모델이라는 새로운 정보를 알아냈다. 그리고 윤도에게 추천해줄 만화책과 그로 인해 파생되는 대화거리가 생겼다는 사실에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


일반계 고등학교 배정 발표 날, 학교에서는 한바탕 소동이 일어났다. 구에서 가장 입시 실적이 좋은 K와 S고 대신 상대적으로 후지다고 소문난 T고에 많은 학생들이 배정되었기 때문이었다. 나 역시도 1지망으로 썼던 K고 대신 T고에 가게 되었다. T고로 말하자면, 구내 유일한 남녀공학으로서 면학 분위기가 좋지 않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또한 시의 경계선에 위치해 있어서 실질적으로 수성구가 아니라는 말까지 있을 정도로 메리트가 없는 학교였다. 학원에 가는데 마음이 울적해졌다. 나 역시 D시를 탈출하고 싶은 마음이 절실했건만, 이대로 가다가는 영원히 이곳에 묻혀버릴 것만 같았다. 자력으로 제대로 한 번 날아보지도 못한 채 영영, 이렇게.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위장전입까지 해가면서 나를 K고에 보내고자 애를 썼던 엄마는 고등학교 배정 소식을 듣고 충격에 빠진 듯했다. 그러나 이내 마음을 다잡았는지, 대통령이 하나만 잘하면 대학에 가는 시대가 온다고 했다며, 오히려 내신성적을 잘 받는 게 대학 진학에 유리할 수 있다는, 어디서 주워들은 게 분명한 말로 나를 위로했다. 나는 알겠다고 대충 대답한 뒤 전화를 끊었다.

학원에 도착한 나는 SKY반으로 들어가 내 자리에 가방을 내려놓았다. 반 아이들 모두가 자리에 앉아 있었는데 어쩐지 다들 우울한 표정이었다. 나는 슬쩍 윤도의 옆구리를 찔러보았다. 

“다들 왜 이래?” 

윤도는 우리 반 모두가 거짓말처럼 T고에 배정받았다고, 심지어는 학원에 나오지 않은 지 보름이 된 무늬조차 T고에 배정되었다고 했다. 혜영의 말에 따르면 올해부터 학군을 나누는 기준이 변경되어, 이 지역에 사는 애들 중 1지망으로 쓴 학교에 배정받지 못한 아이들은 모조리 T고에 가게 되었다고 했다. 그 말이 정말 사실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어쨌든 나는 윤도와 또 같은 학교에 다니게 되었다는 것에 안도했다. 안도하는 게 맞는 건지 알 수는 없었지만. 


수업이 끝나고 집에 가는 길, 태리에게서 전화가 왔다. 안 받을까 하다가 하도 오랫동안 걸어대서 결국 받았다. 

“형 어디 배정받았어?”

“나 T고. 망했어.”

“헐, 나도 거기 됐어. 잘됐다.”

“뭐가 잘돼. 우리 둘 다 똥통에 빠진 거야.”

“그래도 혼자 빠지는 것보단 훨씬 낫잖아.”

과연 똥통에 함께 빠지는 게 혼자 빠지는 것보다 더 낫다고 할 수 있을까? 숨쉴 수 없을 것 같은 내 감정을 누군가와 함께 겪는다고 해서 달라지는 걸까. 그런 생각을 하다보니 문득, 나는 단 한 번도 내 고민을 누군가와 제대로 나눠본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깨달아버렸다. 타인에게 이해받는다는 것, 누군가 온전히 나를 이해해준다는 것은 과연 어떤 감각일까. 그런 생각 때문인지 나도 모르게 이런 질문을 하게 되었다. 

“태리야, 너는 무슨 말이든 다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이 있어?”

“왜? 내가 형한테 뭐 감추는 것 같아?”

“아니, 그런 건 아니고.”

“글쎄. 모든 걸 다 털어놓는 사람은 없는 것 같고 굳이 말하자면…… 예수님?”

“아……”

더이상 대화의 의지가 생기지 않아 나는 대충 얼버무리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전화를 끊고 나니 괜히 웃음이 실실 새어나왔다. 보통의 남자 중학생은 할 수 없을, 그야말로 태리다운 대답이었다. 

태리와 나는 모태신앙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으나 조금은 다른 방식으로 종교를 받아들이게 되었다. 우리가 초등학교에 들어갈 무렵, 미라 아줌마가 다니고 있던 보험회사의 상품 실적을 이유로 천주교에서 개신교로 개종하는 일이 벌어졌다. 성당보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이 많고, 개인주의가 만연한(?) 성당과는 달리 교회의 경우 내부 결속력이 남달라 한번 그 안에 소속되면 영업하는 게 더 유리하다고 했다. 자연히 태란 누나와 태리 역시 교회로 옮겨가게 되었다. 머리가 굵어지고 나서부터 암암리에 부모와 종교전쟁을 벌인 나와 태란 누나와는 달리 태리는 미라 아줌마의 뜻에 따라, 어쩌면 미라 아줌마보다도 더 성실히 교회에 다녔다. 태리에게 있어서 종교란 도대체 무엇일까 생각하는데 누군가 내 어깨를 쳤다. 고개를 돌려보니 거짓말처럼 태란 누나가 있었다. 지금 두르기엔 다소 이른 듯한 새빨간 목도리를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