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회

뭐 이상한 거 못 느꼈어?

누나는 작년, 그러니까 대학을 가기 전과 별반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다. 화장기 없는 얼굴에 약간은 공격적으로 보이는 큰 눈까지. 때문에 바로 지난주에 만난 것처럼 익숙하게 느껴졌다. 달라진 점이라면 어깨에 닿을 듯 말 듯 짧았던 단발머리가 허리까지 내려올 정도로 길어져 있다는 것이었다. 그 모습이 우리가 떨어진 시간을 실감하게 했다. 

“어, 누나. 나 방금까지 태리랑 전화했는데.”

“그래? 신기하네.”

“오늘 내려온 거야?”

“아니, 어젯밤에 왔어. 지금은 잠깐 나가는 길.” 

“어디 가?”

“시내. 그나저나 오랜만이다. 너는 똑같네. 태리는 많이 컸던데.”

“그래? 나는 잘 모르겠는데.”

“매일 보면 모르지. 나야 뭐 가끔 보니까 아는 거고.”

“그러고 보니 우리 진짜 간만에 보는 거기는 하다.”

“응. 내가 여기 온 게 일 년 만이니까.” 

“왜 이렇게 오랜만에 왔어?”

“어쩌다보니까.”

“서울 살 만한가보다?”

“여기보다는 훨씬 낫지.”

가까이서 보니 누나의 빨간 목도리는 손으로 뜬 것인 듯 매듭이 헐겁고 균일하지 않았다. 직접 뜬 건가? 그럴 성격은 아닌데. 

“근데 누나 안 더워? 벌써 목도리 맬 날씨인가.”

“그냥, 포근하잖아.”

“직접 뜬 거야?”

“내가 뜬 건 아니고……”

뭔가 말하려는 듯 입술을 달싹이다 이내 입을 굳게 다무는 누나. 나는 잠깐의 침묵을 견디다 말을 돌렸다. 

“태리랑 나, 같은 학교 가게 됐어.”

“어디?”

“T고.”

“아, 결국 거기에 됐네. 우리 아파트 단지 애들이 거기 많이 가긴 하더라.” 

“우리 망했지?” 

“망하긴 뭘 망해. 어딜 가든 알아서 잘하면 되지. 너보다는 내 동생이 걱정이네.”

“나도 나보단 걔가 더 걱정이긴 해.”

우리는 한동안 웃었다. 웃다보니 목소리가 낮은 편인 태란 누나와 남자치고는 꽤 하이톤인 내 웃음소리가 썩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작 진짜 혈육인 아빠와 엄마와는 서로 무관심할뿐더러 공통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데 말이다. 누나는 웃다 말고 갑자기 진지한 표정이 되어서는 조용히 내게 물었다.

“너 요즘 뭐 이상한 거 못 느꼈어?”

“이상한 거? 누구한테? 태리?”

“아니, 뭐 태리도 그렇고 엄마도 그렇고……”

“글세, 태리야 뭐 워낙 예측이 가능한 애잖아. 미라 아줌마 얘기는 딱히 들은 건 없는데 엄마한테 물어봐줄까?”

“아니. 그럴 일은 아니고.”

“응. 별일 없는 듯해. 아마도.” 

“그래, 그럼 다행이고.”

누나는 이제 가봐야 할 것 같다며 급히 고개를 돌렸다. 누나의 목도리가 누나보다 한 박자 늦게 팔랑댔다. 나는 멀어져가는 누나의 뒷모습과 발걸음에 맞춰 흔들리는 목도리를 바라보았다. 누나 역시 나처럼 혈육과 별다른 교류가 없는 건 마찬가지인 듯했다. 


*


언제부터인가 우리집의 샴푸와 화장품이 모두 한 브랜드의 제품으로 바뀌어 있었다. 기존에 쓰던 거라고 해봤자 모두 최저가 상품에 불과했지만 그래도 아예 처음 보는 브랜드는 아니었는데, 하얀 용기에 담긴 샴푸와 화장품은 태어나서 처음 보는 브랜드의 것이었다. 엄마에게 이게 뭐냐고 묻자 엄마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미제고 엄청 비싼 거야. 너도 이제 이거 써.”

나는 사춘기를 거친 또래에 비해서 여드름이 잘 나지 않는 대신에 피부가 건조한 편이었다. 나는 엄마가 어디선가 사온 미제 크림을 얼굴에 덕지덕지 바르며 그해 겨울을 버텼다.  


*


해가 바뀌고 배치고사를 치는 날이 되었다. 나는 태리와 함께 버스를 타고 T고등학교로 향했다. 집에서 학교까지는 버스로 사십 분 정도 되는 거리였다. 대단히 멀지도, 그렇다고 아주 가깝지도 않은 애매한 거리였다. 학교에 도착하자 모두들 사복을 입고 있었는데, 저마다 다채롭게 못생겼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험번호가 적힌 통지서를 받아 확인했더니 나는 일층, 태리는 삼층에서 시험이 진행될 예정이었다. 통지서에 적힌 대로 1학년 3반에 들어갔는데 맨 앞자리에 윤도가 앉아 있는 게 보였다. 나는 티 나지 않게 눈인사를 했고, 윤도는 손을 척 들었다. 제대로 대화를 나눌 틈도 없이 시험이 시작됐다. 1교시 국어와 2교시 수학 시간에는 천장에 달린 히터에서 뜨거운 바람이 나와 연신 졸았고, 3교시 영어 시간에는 영어 듣기를 위해 모든 난방 기기를 꺼버려서 추위를 잘 타지 않는 나조차도 무릎이 시렸다. 막판에는 지문을 읽을 시간이 부족해 대충 찍어버렸다. 시험이 끝나자마자 태리에게서 전화가 왔지만 받지 않았다. 따로 갈 곳이 있으니 먼저 집에 가라고 짧게 문자를 보냈다.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자마자 거짓말처럼 윤도가 내 자리로 왔다.

“너 어디 갈 데 있냐?”

“나? 아니. 그냥 집 가지.”

“그럼 나랑 같이 가자. 요 앞에 스쿠터 세워놨어.”

“그럼 좋고.” 

나는 자꾸만 씰룩대는 입가에 힘을 준 채 윤도와 나란히 걸었다. 건물 밖으로 나가자 아이들이 개미떼처럼 정문으로 걸어가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윤도는 후문 쪽에 스쿠터가 있다고 했다. 윤도와 함께 후문이 있는 체육관 뒤쪽으로 갔는데 후문에 빗장이 걸린 채 굳게 잠겨 있었다. 

“닫혀 있는데?”

“아냐. 다 나가는 수가 있어.”

윤도를 따라 문 가까이 가보니, 고개를 숙여 지나갈 수 있는 개구멍처럼 생긴 쪽문 하나가 보였다. 그 문은 잠겨 있지 않았다. 쪽문을 밀고 나가자 작은 골목이 나왔다. 골목에는 소규모의 문방구며 분식점, 선물가게 같은 것들이 드문드문 위치해 있었고, 멀리 윤도의 빨간 스쿠터가 세워져 있었다. 언뜻 보면 중국집이나 분식점의 배달 오토바이처럼 보이는 그것. 하긴 당초의 용도가 배달이니 배달 오토바이와 똑같이 보이는 게 당연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내게는 그 당연한 사실이 당연하게 느껴지지 않았고, 『내 남자친구 이야기』 속 츠토무의 혼다 커브처럼, 결국엔 해피 엔딩으로 끝나는 츠토무와 미카코의 연애담을 우리가 이어서 써내려가기라도 하는 것처럼, 특별하게 느껴졌다. 고등학교에 첫발을 들인 날 윤도의 스쿠터를 타고 집으로 향한다니. 윤도가 답답하다며 자기 헬멧을 내 머리에 씌워줬고 여느 때처럼 별 의미가 없는 행동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그게 괜히, 설렜다. 


*


중학교 졸업식 날에는 가족들 중 아무도 오지 않았다. 부모님은 모두 일을 하느라 바빴다. 집에는 코끼리 모양의 삼성 필름카메라뿐이라 나는 태리의 니콘 디지털카메라를 빌려 홀로 학교로 향했다. 학교는 학부모들과 아이들로 정신이 없었다. 부모님이 오지 않은 아이는 나뿐인 것 같았다. 판사 집 아들로 유명한 부반장은 양손이 모자랄 정도로 두 손 가득 꽃을 들고 있었다. 그의 어머니는 혼자 온 내가 딱해 보였는지 꽃다발 중 하나를 내게 건넸다. 몇 번 사양하다 결국 꽃다발을 받아들었다. 그러고 태리의 디카로 별로 친하지 않은 반 친구들과 사진 몇 장을 찍었다. 운동장으로 나오자 저멀리 윤도가 보였다. 함께 사진을 찍고 싶었지만 괜히 쑥스러워 사진을 찍자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대신 먼발치에서 줌을 당겨 꽃다발을 든 채 친구들과 웃고 있는 윤도의 얼굴을 카메라에 담았다. 


*


그리고 이변이 일어났다. 

내가 반 배치고사에서 수석을 해버린 것이었다. 심지어 마치 짜기라도 한 것처럼 무늬와 함께. 공동 수석이었다. 용의 꼬리가 될 뻔했던 무늬가 뱀의 머리가 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 볼 수 있었지만, 내가 일등을 하다니. 살면서 한 번도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는 일이었다. 소식을 듣자마자 나는 무늬에게 문자를 보냈다.

―한쪽 팔로 잘도 전교 일등을 하셨다?

―나은 지가 언젠데. 그러는 너야말로 다 찍은 척 내숭을 까더니 일등을 하셨더라?


입학식 날에는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엄마와 아빠 모두 학교에 찾아왔다. 입학식에 학부모들이 오는 경우가 별로 없어 좀 거추장스럽고 당혹스러운 기분이었다. 남들 다 오는 졸업식에나 좀 올 것이지. 아니면 아예 일관성 있게 입학식에도 오지 말든가. 하긴 언제 부모님이 내 뜻대로 움직여준 적이 있기는 했나. 무늬와 내가 나란히 단상에 올라가 교장에게 학업우수상을 받는 장면을 아빠가 필름카메라로 찍는 게 보였다. 대낮에 눈치 없이 터지는 플래시가 부끄러워 고개를 푹 숙인 채 얼른 단상에서 내려왔다. 입학식이 끝나고 나는 1반으로 향했다. 교실 뒤편에 윤도가 서 있었고 나는 그 뒤에 서서 혼자 쾌재를 불렀다. 

드디어, 윤도와 한 반이 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