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회

스카이라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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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도와 같은 반이 되었다는 기쁨도 잠시, 키가 크고 호리호리한 남자가 교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우리 반 담임이라고 했다. 그는 깐깐해 보이는 인상에 삼십대 정도 된 듯했는데, 수학을 담당한다고 했다. 경험상 수학 선생님들은 성격이 좋지 않고 체벌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았으므로 나는 잔뜩 긴장했다. 첫날이어서 수업을 진행하지 않는 대신 담임은 한 면 가득 부교재 목록이 적혀 있는 A4 용지를 나눠줬다. 교과서가 아니라 문제집으로 수업이 진행된다는 말을 덧붙이며. 국어와 수학, 영어의 경우 문제집이 각각 두 권씩이었는데, 도대체 얼마나 많은 양을 소화해내야 할지 벌써부터 아득한 기분이 들었다. 문제집 목록 아래에는 오후 여섯시까지 진행되는 보충수업과 뒤이어 밤 아홉시까지 열리는 야간 자습시간에 참여할 것인지 물어보는 학부모 동의서가 인쇄돼 있었다. 

“동의서는 형식적인 거다. 보충수업 시간에도 정규수업 시간이랑 똑같이 진도를 나갈 거니까 우리 반 모두가 필수로 참여해야 한다.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자율학습에도 의무적으로 참석해야 하니까 부모님께 잘 말씀드리고 모두가 동의서에 사인 받아오도록.”

몇몇 아이들이 학원을 핑계로 자율학습을 빠질 수 없냐고 묻자 담임은 예체능 계열이 아니고서는 절대 불가능하다고, 인상만큼이나 단호하고 칼같은 말투로 말했다. 담임은 뒤이어 학급 임원을 뽑아야 한다며 반장 자리에 자원할 사람이 있는지 물었지만 당연히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혹시 중학교 때 임원을 했던 사람이 있냐는 질문에 내 옆에 앉아 있던 윤도가 갑자기 번쩍 손을 들었다. 그러고는 내가 중학교 삼 년 내내 반장이었다고 시키지도 않은 얘기를 했다. 나는 당혹스러워 윤도를 째려보았지만 담임은 그런 나의 감정 따위에는 관심이 없어 보였고, 잘됐다는 듯 “그럼 우리 반 반장은 정해졌다”라고 가볍게 대답했다. 그러고 “부반장 할 사람” 하고 이어서 묻자 네댓 명의 아이들이 손을 들었다. 책임은 지기 싫지만 감투는 쓰고 싶다는 그들의 교활한 속내가 다 보여 얄미웠지만 별수없었다. 부반장은 반장 선거와는 달리 민주적이고(?) 공평하게 가위바위보로 정해졌는데, 우연인지 뭔지 반 석차 이등인 정도훈이라는 애가 부반장이 되었다. 호리호리하고 작은 체구에 안경을 낀 정도훈은 누가 봐도 반에서 딱 이등을 하게 생겼다. 전달 사항을 다 전한 담임이 ‘반장’을 호명하자 나는 반사적으로 일어나 차렷, 경례를 외쳤다. 

담임이 교실 밖으로 나가고 나는 윤도에게 핀잔을 줬다.

“아 씨, 너 왜 나 반장이었던 거 말했어. 그냥 조용히 공부나 할랬더니. 나 튀기 싫다고.”

“누가 너한테 춤이라도 추래? 나한테 넌 영원한 반장인데?”

천진하게 웃는 윤도를 보니 할말이 없어졌고 다만 나도 따라 웃을 수밖에 없었다. 윤도와 함께 집으로 가려고 복도로 나갔는데 부모님이 서 있는 게 보였다. 너무 크고 화려해 촌스럽게 느껴지는 꽃다발을 손에 들고서. 

“가자. 다들 기다리고 계신다.”

부모님은 근처 식당에서 가족 모임이 열린다며 나에게 얼른 그곳에 가자고 했다. 가족 모임? 금시초문이었다. 나는 서둘러 윤도에게 인사를 하고 학교 밖으로 나왔다. 주차장으로 이동하며 엄마가 내게 아까 그 아이는 누구냐고 물어보았다. 나는 같은 중학교를 나온 친구라고,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아빠의 차가 멈춰 선 곳은 시내의 P호텔이었다. D시에서 몇 안 되는 특급 호텔이었고, 최고층에 스카이라운지 겸 한식당이 위치해 있어 중요한 행사가 있을 때마다 오곤 했었다. 한식당으로 들어서서 이름을 말하자 직원이 우리를 룸으로 안내했다. 문을 열자 기다란 식탁에 친가 쪽 친척들이 앉아 있는 게 보였다. 할머니부터 시작해서 고모와 고모부들, 삼촌네 내외까지. 그들은 모두 깍듯한 정장 차림이었고 여느 때처럼 바른 자세로 창문을 등지고 앉아 있었다. 우리 가족은 친척들의 맞은편에 앉았다. D시의 전경을 등에 업고 있는 그들의 모습이 곧 D시 그 자체인 것만 같았다. 언제나 그렇듯 나는 숨이 막힐 것 같은 분위기에 압도되어 몸을 움츠러뜨렸다. 그러고 보니 엄마는 평소에 입지 않는 검은색 시스루 투피스 정장에 진주 목걸이까지 하고 있었고, 아빠도 깨끗하게 다린 버버리 셔츠에 굵은 시곗줄의 롤렉스를 차고 있었다. 나도 괜히 세 개나 풀어놨던 교복 셔츠 단추를 바짝 잠그게 되었다. 곧 음식들이 코스별로 나오기 시작했다. 한눈에 보기에도 고급스러웠다. 고작 나의 고등학교 입학식 때문에 이렇게나 많은 친척들이 모였을까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모임의 주제는 할머니의 예순일곱번째 생일이었다. 도미조림과 갈비찜이 곁들여진 식사가 끝나고 난 후 후식으로 백설기로 만든 떡케이크가 나왔다. 가족들이 촛불을 켜고 모두 밝게 웃으며 생일 축하 노래를 불렀고, 할머니는 여느 때처럼 입꼬리만을 살짝 올리며 웃었다. 케이크를 잘라 나눠 먹는데 불쑥 삼촌이 내게 말했다.

“외고 입시는 잘 안 됐니?”

내가 대답하려고 하자 아빠가 잽싸게 껴들었다. 

“아무래도 일반고가 내신 받기에는 더 좋으니까. 우리 아들이 서울에 있는 대학에 가고 싶다고 했거든.” 

얼마 전 삼촌의 맏딸(즉, 나의 사촌누나)이 외고를 다니다 아이비리그에 진학했다는 사실이 문득 떠올랐고, 어쩔 수 없이 주눅이 들었다. 아빠는 마치 항변이라도 하는 것처럼 말을 이었다.

“이 자식이 그래도 이번 입학시험에서 전교 일등을 했다고 하대.”

삼촌이 의아하다는 듯 말했다. 

“요즘도 고등학교 입학시험이 있나?”

나는 그저 반 배정 배치고사일 뿐이며, 내신에 반영되지도 않는 시험이라고 손사래를 쳤다. 옆에 있던 큰고모가 무심히 물었다. 

“무슨 학교에 배정받았는데?”

나는 다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T고라고 말했다. 

그 말에 할머니가 놀란 듯 먹던 케이크를 내려놓고는 물었다.

“거기 여고 아니니?”

“몇 년 전에 남녀공학으로 바뀌었어요.”

“그렇구나. 나도 모르게 당연히 니가 K고에 배정받았다고 생각해버렸네. 너희 할아비도 아버지도 삼촌도 다 거길 나왔으니……” 

할머니는 아무렇지 않은 척 케이크를 다시 먹기 시작했으나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고등학교가 평준화되기 전 친가 식구들이 모두 K고와 K여고를 나왔다는 사실은 내가 젖먹이 시절부터 마르고 닳도록 들어왔던 일이었으니, 할머니의 실망이 놀랍지는 않았다. 시에서 가장 역사가 오래되었고, 장관과 국회의원, 의사와 법조인을 가장 많이 배출한 명문 K고. 곰살맞은 성격에 인근 학교에서 국어 교사로 재직하고 있는 막내고모가 요즘은 비평준화 시대라 수성구의 학교는 어딜 가나 비슷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이등도 아니고 일등인데, 일어나서 소감 한마디라도 해야지.”

소감은 무슨 소감, 대통령도 아니고, 라는 생각을 했지만 어른들이 박수를 치며 나를 바라보는 바람에 나는 평소의 연기력을 십분 발휘해 자리에서 일어나 웃으며 말했다. 

“앞으로 열심히 하겠습니다,” 

하지만 다시 자리에 앉을 때는 뿌듯함이나 기쁨보다는 수치심이 일었다. 모두가 자의로 하고 싶은 얘기를 하는 와중에 나 혼자 타의에 의해 여기저기 움직여지는 장기짝이 된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후식까지 다 먹었을 때쯤 할머니가 갑자기 훌쩍이기 시작했다. 

“우리 영애님 불쌍해서 어찌할꼬.”

다들 차를 갖고 온지라 할머니만 혼자 술을 마신 것이 문제였다. 할머니는 대선이 있은 지 일 년이나 넘게 지났음에도 술만 마시면 보수정당의 여성 후보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할머니 댁에는 ‘영애님’과 할아버지, 할머니가 함께 찍은 사진이 걸려 있었다. 

“어린 나이에 조실부모하시고 평생 동안 얼마나 고생이 많으셨는데……”

할머니는 뒤이어 현정권의 실책에 대해 늘어놓으며 자신에게 부과되는 고액의 세금도 그렇고 여러모로 나라에 망조가 든 게 분명하다고 말했다. 위태로웠던 그날의 생일 파티는 결국 할머니가 대성통곡을 하면서 엉망진창으로 막을 내리게 되었다. 

할머니와 가장 가까이 사는 막내고모가 할머니를 태워 가기로 했고, 삼촌과 다른 고모들도 저마다 차를 타고 뿔뿔이 흩어졌다. 차에 탔을 때 아빠는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다들 나 무시하는 거 봤지.”

엄마는 그저 평범한 대화에 불과했다고, 아무도 당신을 무시하지 않았다고 흥분한 아빠를 여느 때처럼 달랬다. 나는 조금은 의아한 기분이 들었다. 할머니 생일은 보름도 더 남아 있었던 것 같은데, 왜 하필 오늘, 그것도 평일 점심에 온 가족이 만사를 제쳐놓고 이 자리에 모인 것일까? 흥분한 아빠 대신 엄마에게 진상을 묻자 엄마가 아무렇지 않은 듯 대답했다.

“너 일등 했다고 아빠가 동네방네 소문을 내느라 이렇게 됐지.” 

그랬다. 오늘 모임의 주최자는 바로 아빠였다. 아빠는 나의 배치고사 성적을 듣기 무섭게 가장 먼저 호텔 식당을 예약했다. 그리고 자신의 어머니와 형제들에게 생일 기념 오찬 소식과 더불어 나의 전교 일등 사실을 알렸다. 아빠의 연락을 받은 삼촌과 고모들 모두가 참석 의사를 밝혔다. 사이가 나쁘지는 않았으나 딱히 단합력이 좋지도, 우애가 깊지도 않은 친가 쪽 친척들이 모두 모인 것에는 다른 이유가 있었다. 할머니가 얼마 전 가벼운 심근경색 증상을 보인 것을 기점으로 그녀의 명의로 되어 있는 아파트 두 채와 상가건물을 둘러싸고 형제자매들 간의 눈치 싸움이 치열했기 때문이었다. 아빠는 이러한 상황을 너무나도 잘 이용할 줄 알았다. 할머니의 생일과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전교 일등을 했다는 호재를 잘 엮어내 오늘의 식사 자리를 완성했다. 나는 거기에 꿔다놓은 보릿자루처럼 앉아 있을 수밖에 없는 처지였고. 

그야말로 아빠다운 행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