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회

화이트데이

*


매일 밤 열한시.

집에 들어온 나는 샤워를 마치고 방으로 들어와 문을 걸어 잠갔다. 그리고 창문을 열었다. 궁전아파트의 안 좋은 점은 셀 수 없이 많았지만, 산자락에 위치해서 도시의 야경을 내려다볼 수 있다는 점과 여름에도 찬바람이 불어온다는 점만큼은 좋았다. 몸에 열이 많은 나는 속옷만 입은 채 창가의 침대에 앉았다. (튐 방지 기능이 있는) 파나소닉 휴대용 시디플레이어는 당시에 내가 가지고 있는(가질 수 있는) 가장 값진 물건이었다. 이어폰을 끼고 알토란처럼 모아놓은 음반들을 시디플레이어에 걸어놓은 뒤, 침대에 누워 좋아하는 만화책을 읽는 시간이 내게는 하루 중 유일하게 마음을 놓을 수 있는 때였다. 말하자면, 그 누구도 의식하지 않고 비로소 나일 수 있는, 나로서 살아 숨쉴 수 있는 그런 순간. 때때로, 실은 매일 밤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따라 부르곤 했다. 창문을 활짝 열어놓은 채. 다른 시간이었으면 당장 엄마의 불호령이 떨어졌겠지만 다행히도 그 시간에는 엄마 역시 자신만의 음악 활동(?)을 전개하느라 바빴다. 엄마는 창고로 쓰는 방에서 아빠가 충동적으로 구매해놓고 두 번 이상 사용하지 않은 전자피아노에 헤드폰을 연결한 채 찬송가를 치며 눈물을 쏟아내는 나름의 힐링 프로세스를 진행하고 있었다. 아마도 기울어버린 가세와, 다 망한 주제에 쇼핑 중독에 걸려 물건을 사들이는 남편과, 집에 오면 말 한마디 하지 않은 채 방문을 걸어 잠그는 중학생 아들을 향한 원망을 담은, 그러니까 뜻대로 되지 않는 인생 전반에 대한 주님의 구원과 응답을 구하는 노래였을 것이다(나는 나의 만성적인 청승과 불면, 감정 기복이 모계 유전이라고 믿는 편이다). 

2002년의 여름, 내가 한창 꽂혀 있던 앨범은 넬의 ‘Reflection of’와 자우림의 ‘연인’, 에이브릴 라빈의 ‘Let Go’와 콜드플레이의 ‘Parachutes’ 등이었다. 지금의 나는 별 기준 없이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듣는 편이지만 그때는 한국 인디 신의 음악이나 브릿팝, 모던 록에 대한 애호가 강했다. 어느 유명한 뮤지션은 이런 장르의 음악을 두고 ‘오줌 찔찔이들이나 듣는 노래’라고 혹평하기도 했지만, 오줌이 아니라 뭐라도 질질 짜고 싶었던 당시의 내 감성에는 가장 적합한 온도의 노래들이었다.

윤도가 들었다는 음악은 그중의 하나 혹은 그 모두인 듯했다. 병적으로 암기력이 떨어지는 나임에도 이상하게 노래 가사만큼은 기가 막히게 잘 외워서 그 앨범들 속 노래들을 곧잘 따라 부르곤 했다. 

그런데 그가 도대체 그걸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윤도 역시 나처럼 궁전, 의 아이인 걸까? 아니 설사 같은 아파트에 산다고 해도 어떻게 동수와 몇 층인지까지 알 수 있는 거지. 내가 프레디 머큐리도 아니고, 기껏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으며 흥얼대는 노랫소리가(심지어는 고요하기 짝이 없는 어쿠스틱 음악을 따라 부른 것 정도가) 온 세상을 울릴 리도 없는데 말이다. 


내가 복잡한 표정을 한 채 아무런 대답도 않자 윤도는 궁전아파트 1동에서 매일 밤 울려퍼지는 노랫소리에 대해, 그 정체에 대해 더 캐묻지 않았다. 다만 방금 내가 부른 노래의 가수와 제목을 알려달라고 했다. 나는 한참을 고민하다 다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넬……이라는 밴드의, <어차피 그런 거>, 라는 노래야.”

입 밖으로 내뱉고 나니 괜히 부끄러운 기분이었다. 워낙에 거짓된 인생을 살아서 나의 아주 사소한 부분이라도 드러내는 것이 익숙지 않았기 때문도 있었지만, 대한민국 사람 모두가 윤도현밴드의 노래를 듣고 거리에서 <오 필승 코리아>를 부르던 시기에 인디밴드의 음악을 듣는다는 게 괜히 특별해 보이려고 발악하는 중학생처럼 느껴질 것 같아서였다(그렇지 않다는 건 아니다). 거기다 우울하기 짝이 없는 음악들로 말미암아 황무지 같은 내 내면의 풍경이 드러날 것 같은 불안감도 있었다. ‘평범한 존재’로 여겨져야 한다는 마음과 나만의 고유한 취향을 가진 존재가 되고 싶다는 상반된 욕망이 나에게 끊임없이 내적 갈등을 불러일으켰다. 그런 내 마음을 알 리가 없는 윤도는 주머니에서 최신형 애니콜 폴더 폰을 꺼내 내가 일러준 가수와 노래 제목을 메모했다. 그리고 다소 신난 어조로 내게 물었다.  

“신기하다. 넌 그런 노래를 어디서 알아내?”

영락없는 괴짜 취급이나 받을 줄 알았는데, 적극적으로 관심을 보이는 윤도를 보니 덜컥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16강전이 한창일 때 월드컵 생중계 방송이 아닌 <중경삼림>을 보는 아이라면, 양조위와 금성무의 아름다움을 감상(?)할 줄 아는 아이라면 내 취향을 공유해도 되지 않을까? 나는 조심스레 여러 인디밴드 커뮤니티와 『oimusic』 『페이퍼』 등의 잡지를 통해 정보를 얻으며, 시내 영화관 뒷골목에 이런 음반을 주로 취급하는 레코드 가게가 있다고 말했다. 말해놓고 보니 묻지도 않은 말을 주절거렸다는 생각이 들어 이내 다시 부끄러워졌다. 윤도는 한참을 골똘히 생각하다, 들고 있던 자신의 핸드폰을 내게 건네며 말했다. 

“그럼 우리 언제 그 레코드 가게 같이 가자. 번호 좀 줘. 해리.”

“그래, 그러자.” 

나는 무심한 척 핸드폰을 받아들고 내 번호를 찍었다. 손이 떨리는 게 보이지 않을까 긴장하며 간신히 통화 버튼을 눌렀고, 내 핸드폰 액정에 그의 번호가 뜨는 것을 확인한 후 다시 윤도에게 핸드폰을 건넸다. 윤도는 내 오래된 폴더 폰을 보더니 말했다. 

“너도 비기 알 쓰네.”

“응. KTF 신규 가입하면 이 폰을 공짜로 주더라고(굳이 이런 말까지 하는 이유는 또 뭔데).”

“근데 너 노래 잘하더라? 아주 동네가 쩌렁쩌렁하던데. 나 잠까지 설쳤잖아.”

“무, 무슨…… 개소리야.”

당황스러워 나도 모르게 말이 세게 나갔다. 윤도는 칭찬한 건데 왜 난리냐, 웃으며 대답했고 나는 괜히 센 척을 한 것 같아 바로 후회했다. 윤도는 내 반응에 별 신경도 쓰지 않고 볼일은 다 끝났다는 듯 내 어깨를 두 번 툭툭 두드렸다. 그리고 옥상 문을 열고 다시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그 순간 모두가 환호성을 내지르기 시작했다. 아마도 대한민국이 골을 넣은 것 같았다. 나야말로 환호가 아니라 비명이라도 지르고 싶은 기분이었다. 


*


봄방학이 끝났고 3학년이 되었다. 밸런타인데이의 대 사건(?)을 겪은 후, 다행인지 불행인지 내 일상은 아주 조금씩 변해갔다. 무늬 자신의 말대로 입이 무거운 건지, 아니면 내가 정말로 이용 가치가 있다고 판단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다행히 아이들 사이에 내가 남자를, 윤도를 좋아한다든가 하는 소문은 나지 않았다. 나는 무늬의 뜻대로 일주일에 두 번 정도 무늬와 함께 집에 가게 되었다. 이따금 무늬가 놀리듯 “윤도의 매력이 뭐야?”라고 묻고는 했지만 내가 입을 다문 채 아무 대답을 않으면 별로 궁금하지 않았다는 듯 말을 돌리곤 했다. 관심 없는 척 무늬를 떠봐서 초콜릿의 행방을 캐내려 했던 나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무늬는 타고나기를 눈치가 빠른지 내가 초콜릿의 ‘초’ 자라도 얘기를 꺼낼라치면 바로 편지 구절을 읊어대어 내가 더 말을 할 수 없게 만들었다. 때문에 나는 아무런 정보도 얻지 못한 채 무늬에게 질질 끌려다니기만 했다. 윤도 역시 평소와 다르지 않게 나를 대했다. 윤도는 나와 또 바로 옆 반에 배정받았는데, 쉬는 시간에 복도에서 마주칠 때면 아무렇지 않게 나를 해리, 혹은 반장이라고 부르며 손바닥으로 뒤통수를 쓰다듬고 간다든가 하는 식이었다. 때때로 집에 가는 길에 함께 오락실에 들르거나 좋아하는 뮤지션이나 새로 나온 영화에 대해 얘기하는 것도 여전했다. 하지만 그건 그것대로 편치 않았는데 그가 내 선물을 무사히 받았을지, 출처를 알 수 없을지언정 내 진심을 알게 되었을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윤도가 무사히 초콜릿을 받아 편지를 읽었다고 해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윤도의 침묵, 윤도가 내게 초콜릿을 받은 사실을 숨기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게 자꾸 마음에 걸렸다. 나는 윤도가 일상의 사소한 것부터 세상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일까지 나한테만큼은 솔직히 공유해주기를 바랐다. 하긴 윤도를 좋아하는 마음을 숨긴 채 은밀히(?) 그의 곁을 맴도는 내가 감히 품을 만한 욕망은 아니었다.

이런 내 애타는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무늬는 나를 일종의 상담소로 이용하기로 작정한 것 같았다. 배신과 모략, 사랑이 가득한(?) 여중 생활과 신의가 없는 친구들에 대한 분노 같은 것들을 마구잡이로 쏟아내곤 했다(무늬는 혜영에 대해서는 보기 드물게 균형이 잡힌 아이, 라는 긍정적인 평가를 했다). 그녀는 가족에 대한 것도 서슴지 않고 이야기했다. 무늬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모두 교수인 듯했는데 은연중에 아버지의 학생들, 이나 어머니가 수업을 나갔을 때, 와 같은 말을 꺼내곤 했기 때문이다. 무늬는 헤비 스모커 수준으로 담배를 피우고, 담배를 다 피운 이후에는 어김없이 이 사이로 침을 뱉으며, 십원짜리 욕도 거침없이 하면서 부모님을 부를 때는 꼬박꼬박 아버지, 어머니라는 호칭을 썼다. 무늬의 가족은 나름대로 또 복잡한 사정을 가진 것 같았는데, 엄하고 독선적인 아버지와 가정에 무관심한 어머니, 아버지의 축소판 같은 꽉 막힌 모범생 오빠가 무늬를 잔뜩 짓누르고 있는 것 같았다. 따지고 보면 우리는 일종의 적(?)에 가까운 사이인데도 불구하고 무늬는 내게 흉이 될 만한 얘기를 잘도 털어놓았다. 만날 때마다 하도 속 얘기를 해대는 통에 얘가 정말 나를 특별하게 여기는 건가, 하는 생각까지 하게 됐다. 그럴 리가 없잖아. 나에 대해 뭘 안다고. 그렇다면 도대체 뭘까. 나 같은 애조차 아쉬울 정도로 친구가 없어 보이는 스타일은 아닌데. 고민해봐도 답은 없었고, 실은 뭐 별 상관도 없었다. 문제는 나도 모르는 새 나 역시 그녀와의 동행을 즐기게 되어버렸다는 데 있었다.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녀의 큐레이션을 즐기게 되었달까. 

이전까지 내가 알고 있는 서사라고는 남자아이들이 반에서 돌려보는 『3×3 EYES』나 『힙합』 『짱』 『H2』 『원피스』 같은 것들이 전부였다. 모험과 결투, 짠내 나는 우정과 죽음으로 점철된 세계. 그런데 무늬가 건네준 작품 『호텔 아프리카』는 달랐다. 소도시인 고향을 떠나 대도시에서 예술을 하는 남성, 영원히 채워질 수 없는 상실을 안은 채 남자를 사랑하는 남성의 모습이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서사 안에 녹아 있었다. 『호텔 아프리카』를 읽는 내내 내가 가지고 있는지도 몰랐던, 하지만 내 안에 언제나 존재하고 있던 갈증이 해소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나는 무늬에게 이런 종류의 책이 더 없냐고 쑥스럽게 물어보았고, 무늬는 역시나 네가 좋아할 줄 알았다며 신이 나서 더 많은 만화책들을 추천해주었다. 나는 원수연의 『Let 다이』와 라가와 마리모의 『뉴욕 뉴욕』을 읽으며 남성들의 사랑을 배웠고, 강경옥의 『별빛 속에』와 『노말 시티』에서 SF를, 클램프의 『X』와 『성전』, 임주연의 『악마의 신부』에서 오컬트 문화를 흡수했다. 세상에 나를 위한 서사가 이토록 많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나는 내게 허락된 새로운 세계에 전율하며, 가진 돈을 모두 북파워에 털어 넣어 새로운 서사들을 탐닉했다. 무늬는 진도를 성실히 따라가는 수강생을 보는 것처럼 뿌듯해하며 내게 더 많은 만화책들을 추천해주었다. 그러다보니 어느새 내가 더 열심히 그녀의 추천을 기다리게 되는 불상사까지 일어나버렸다. 

3월의 어느 날, 우리는 여느 때처럼 학원을 마친 후 함께 북파워에 들렀다. 평소처럼 무늬에게 책을 추천해달라고 하자 무늬는 매우 신중한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이번 작품은 정말 아무한테나 알려주는 게 아냐. 그만큼 소중히 아껴 읽을 필요가 있지.” 

무늬는 마치 성검을 뽑아들듯 조심스레 서가에서 만화책을 몇 권 꺼내들었다. 그리고 훈장을 수여하듯 경건하게 내 손에 만화책을 쥐여주었다. 제목은 ‘나나’.

그날 밤 나는 빌려온 일곱 권의 책을 눈물을 쏟으며 읽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무늬에게 먼저 문자를 보냈다. 

―『나나』 정말 미쳤다. 

―좋지?

―개명작. 

―역시 그럴 줄 알았어. 축하해. 시험은 끝났어. 너, 합격이야.

―무슨 뜻이야?

―내일 시내로 나와. 

―왜?

―오면 알게 돼. 예쁘게 입고 나와라. 대학생처럼. 

무늬의 문자를 받고 잠시 동안 멍해졌다. 갑자기? 시내를 왜? 같이 만화 쇼핑이라도 하자고? 아니면 영화라도 보자고? 우리가 그럴 사이까지는 아니잖아? 내가 너무 빨리 곁을 내준 것인가. 아니면 밸런타인데이 사태에 대한 후속조치를 하겠다는 의미인가. 이제 와서 도대체 뭘 어쩌려고……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복잡한 마음을 가진 채 문득 벽에 걸린 달력을 쳐다봤더니 오늘이 마침 3월 14일이었다. 그러니까 화이트데이. 갑자기 등에 소름이 돋았다. 도대체 무슨 이유로 날 보자는 거지?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서 한참을 핸드폰 화면 속 껌뻑이는 커서만 바라보았다. 

갑자기 전화가 걸려왔다. 나는 진동 소리에 놀라 핸드폰을 침대에 떨어뜨렸다. 고새를 못 참고 무늬가 전화한 것인가 싶어 액정을 봤더니, 태리였다. 나는 잠시 숨을 고르고 전화를 받았다. 태리의 다소 침울한 목소리가 들렸다. 

“형, 뭐해?”

“그냥 누워 있어.”

“놀래?”

“뭐하고?”

“글쎄, 우리집에 올래?”

“올라가기 귀찮은데.”

“그럼 내가 형 집 쪽으로 내려갈게. 놀이터 어때?”

“그래. 그럼 올 때 누나 방에서 김윤아 1집이랑 유앤미블루 2집 좀 찾아와.”

“김윤아랑 유앤미블루? 오키.”

전화를 끊자 폴더 폰의 외부 액정에 ‘박태리 0:38’이라는 푸른 글씨가 떴다. 우리의 통화는 언제나 이렇게 간결했다. 태리는 궁전아파트 단지에서 그나마 유일하게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 아이였다. 그 말인즉슨 할일이 없을 때 슬리퍼를 끌고 나가 언제든지 만날 수 있는 가장 만만한 존재라는 의미였다(나 역시 태리에게 마찬가지 존재였을 것이다).  

태리와 나의 관계는 역사가 깊은 편이었다. 나의 엄마와 (태리의 어머니인) 미라 아줌마가 여고 문예반 단짝 친구였을 때부터 우리의 인연은 강제로(?) 예정되어 있었다. 태리는 나보다 한 살이 어린데, 빠른 연생이라 학년은 같았다. 미취학아동 시절부터 나를 형이라고 불러온지라 중학생이 된 그때까지도 계속 나를 그렇게 불렀다(다행히 서로 다른 초등학교와 중학교에 다녀 사회적으로 큰 혼선을 빚은 적은 없었다). 태리는 나이에 비해 좀 어린애 같은 구석이 있었고, 나는 또래에 비해서 조금 조숙한 편이라 태리를 동생처럼 대하는 것이 익숙하기는 했다. 실은 내 경우는 태리보다 다섯 살 많은 태란 누나 쪽에 더 깊은 친밀감을 느껴온 편이었다. 

미라 아줌마네 가족은 우리 가족이 이사오기 훨씬 이전부터, 그러니까 태리가 태어났을 때부터 궁전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IMF 시절, 우리 가족이 망했을 때 하고많은 아파트 중 굳이 이곳에 정착하게 된 것은 미라 아줌마의 영향이 컸다. 양가의 어머니들 모두가 생업에 종사하고 있었는데, 어느 한쪽의 퇴근시간이 늦어지는 날이면 서로의 아이들을 한집에 몰아놓고 끼니를 챙겨주거나 돌봐주기가 용이했으니까. 미라 아줌마네는 아파트 단지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10동에 살았다. 내가 사는 1동이 언덕 정도 높이에 자리했다면 10동은 가파른 산자락에 놓여 있어서 그곳까지 가는 건 거의 등반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였다. 엄마가 퇴근이 늦어진다며 ‘미라네’에서 저녁을 챙겨 먹으라는 전화를 하면 나는 어김없이 등반을 할 준비를 했다. 그렇게 가쁜 숨을 내쉬며 10동에 도착한 나를 태리와 태란 누나가 텔레비전을 보며 맞아주었다. 

어릴 적 우리는 마치 세 남매처럼 자랐다.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고등학생이었던 태란 누나가 초등학생이었던 나와 태리를 일방적으로 챙겨주는 쪽에 가까웠지만. 누나는 예전부터 ‘이 거지같은 집구석을 떠나겠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니며 집안의 이단아를 자처했는데, 어린 내가 보기에도 비범한 구석이 있는 사람이었다. 미라 아줌마는 태란 누나에게 싸가지 없는 가시나라고 하며 면박을 주기 일쑤였고 막내아들인 태리만 물고 빨며 노골적으로 편애를 하는 것처럼 보였으나, 실은 과외 한 번 받지 않고 언제나 전교 일등을 하는 장녀를 가문의 영광으로 여긴다는 사실을 동네 사람 모두가 알고 있었다. 미라 아줌마는 자존심이 세고 지기 싫어하는 성격의 태란 누나를 위해 빤한 형편에도 백화점에서 메이커 옷을 사 입혔고, 용돈도 남부럽지 않게 챙겨주고는 했다. 태리는 또 자기 나름대로 지독한 차별을 겪고 자랐다고 주장했다. 자신은 문턱을 밟아보지도 못한 피아노 학원을 태란 누나는 체르니 50번을 뗄 때까지 다녔다는 사실을 귀에 딱지가 앉도록 얘기했다(태란 누나는 초등학교 2학년 때 유소년 피아노 콩쿠르에 나가 입상까지 했다). 아무튼 무엇을 했다 하면 끝장을 보는 성격인 태란 누나는 단순하고 산만하고 아무에게나 어리광을 피우는(즉, 스포일드 차일드인) 자신의 친동생보다 그나마 차분하고 말이 통하는 나를 더 가까이 여기는 편이었다. 태리는 얼씬도 못하게 했던 자신의 방조차 내게는 순순히 내어주었으니까. 

태란 누나의 방은 그 시절의 내게 보물창고나 다름없었다. 책상 한 쪽에는 커다란 카세트 시디 컴포넌트가 있었고, 벽 한 면을 차지할 정도로 커다란 책장에는 『유행통신』과 『신디 더 퍼키』 『주니어』 『페이퍼』 같은 잡지들과 인디 음악 위주의 앨범들이 꽂혀 있었다. 게다가 태란 누나는 추리소설광에 수집벽까지 있어 백 권이 넘는 동서추리문고 시리즈와 애거사 크리스티 전집, 셜록 홈스 전집을 모두 보유하고 있었다. 부모님이 늦게까지 야근을 하는 날이면 나는 어김없이 태란 누나의 방에 가서, 어쿠스틱 음악을 틀어놓고 공부를 하는 태란 누나의 등을 보며 애거사 크리스티나 엘러리 퀸의 추리소설을 읽고는 했다(이른 나이부터 살인과 범죄를 접하는 게 아이의 정서에 좋지 않다는 것을 나는 경험으로 알게 되었다). 작년에 태란 누나가 서울에 있는 대학(그것도 서울대)에 합격해 상경한 이후로는 그녀가 유산처럼 남기고 간 음반을 홀로 찾아 들었다. 태리는 태란 누나가 듣는 음악들을 우울하다고 싫어했으며, 애초에 책 같은 건 관심도 없었다. 다만 내 뒤를 졸졸 쫓아다니며 자기네 학교나 교회에서 일어난 따분한 일들을 대단히 재미있는 일화인 양 털어놓곤 했다. 한참을 그렇게 혼자 떠들다 내가 별 반응이 없으면 뾰로통해진 채로 말했다. 

“형은 나한테 뭐 하고 싶은 얘기 없어?”

“응.”

“왜?”

“별로 할 만한 얘기가 없으니까……”

너처럼 단순한 것도 재주라면 재주다, 말하고 싶기는 했지만…… 그러지 않았다. 그래도 태리와 있으면 여백의 미랄까, 하나도 구겨지지 않은 도화지를 보는 것 같은 편안한 기분이 들기는 했다. 오늘은 좀더 명작(『나나』)의 향취에 젖어 있고 싶은 기분인데 태리 이 새끼는 눈치도 없이 왜 또 한밤에 불러내고 난리일까. 무슨 헛소리를 털어놓으려고. 대충 후드 티를 걸치고 나가려는데 문자가 한 통 왔다. 

―내일 오후 한시, 한일극장 앞.

이번엔 진짜로 이무늬였다. 나는 잠깐 고민하다가 에라 모르겠다 하는 마음으로 ‘ㅇㅇ’이라고 보내버렸다. 그나저나 얘는 전생에 히틀러였나. 입만 떼면 명령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