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회

최고의 우주인

어느 과학 잡지에 실린 ‘한국 최초 우주인 이소연 인터뷰’를 읽었다. 한국 최초의 우주인을 인터뷰한다는 걸까, 우주인 이소연을 한국 최초로 인터뷰한다는 걸까 궁금했다. 아직 우리나라의 우주인은 한 사람뿐이다. 유일무이한 ‘우주인 이소연’ 앞에 ‘한국 최초’가 붙는 것은, 외동딸을 두고 ‘우리집 장녀’라고 부르는 것처럼 어색했다. 앞으로 우주 공간에 나가는 한국인은 더 많아질 테니까. 언젠가 우리 인류는 더 먼 우주로 나아갈 테니까. 흥부네와 같은 자녀계획을 생각한다면 현재의 외동딸이 미래의 장녀일 수 있으니 ‘한국 최초 우주인 이소연’이 어불성설은 아니다.


인터뷰 제목만큼이나 본문도 쉽사리 읽어내려갈 수 없었다. 우주 비행 10년 만에 우주 체류 당시의 일기를 공개한다는 편집자의 소개글을 읽고 그것부터 보려고 책장을 팔락팔락 넘겼지만 그런 것은 보이지 않았다. B6보다 작은 아담한 판형의 잡지이기는 해도 서른 쪽이 훌쩍 넘는 상당한 분량의 인터뷰였다. 일기를 스캔해서 실은 게 아니라 본문에 직접 활자로 옮긴 건가 하며 첫 장부터 다시 한번 넘겨보다가 그 일기라는 것을 발견했다. 내가 잡지에 실린 삽화라고 여기고 무심히 넘겼던 그림이 열흘간의 우주 비행 동안 쓴 일기였다.


알아보지 못한 건 어쩌면 당연했다. 그것은 포켓 사이즈 다이어리의 위클리 페이지 두 장이었으니까. ‘고도원의 아침편지’라는 글귀가 선명하게 보였다. 왼쪽에는 좋은 글귀와 삽화가 들어 있고, 오른쪽 페이지가 일주일에 해당하는 일곱 칸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그것은 우리가 ‘다이어리’라고 부르는 제품이 맞지만, 그 안에 적힌 것은 일기라기보다는 메모에 불과했다. 발사 당일의 기록을 제외하면 많아야 서너 가지, 그날의 할 일이나 짤막한 소감이 몇 단어로 적혀 있을 뿐이었다. 그 몇 줄짜리 메모가 ‘우주 일기’의 전부였고, 그 소박한 다이어리는 그의 우주 비행에 ‘초과로’ 허락된 개인 물품이었다. 우주인 이소연에게는 너무 큰 일기장이었다. 그에게 주어진 자유 시간으로는 위클리 다이어리의 좁은 칸도 다 채울 수 없었으니까. 나는 눈물이 났다.


이소연은 원래 예비 우주인이었다. 한국 최초로 우주를 비행할 사람으로 결정된 사람은 체격도 좋고 퍽 용맹해 보여서 나중에 우주인 이야기를 영화로 만든다면 직접 주인공으로 출연해도 될 법한 남자, 고산이었다. 한국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드는 대학과 직장을 다닌 수재에다 아마추어 복싱 선수였을 정도로 체력도 좋아 높은 경쟁률을 뚫고 우주인에 선발되었다. 그 옆에 여성 후보가 함께하는 것은 국민들 보시기에 참 좋았다. 우주인 선발 과정이 남녀 차별 없이 공정했고, 그것이 달라진 한국 사회를 반영한다는 인상을 주었다. 비행을 앞두고 갑자기 우주인이 바뀔 때까지는.


우주인이 사용할 물품은 이미 화물로 보내진 뒤였다고 한다. 그나마도 가져갈 수 있는 개인 물품 허용량은 미처 다 싣지 못한 실험 장비와, 우주인 프로젝트 도중에 명칭이 바뀐 주관 부처의 로고 패치와 스티커 등등으로 꽉꽉 채워졌다. 그 바람에 이소연은 우주정거장에서 고산이 미리 보내두었던, 체격도 성별도 다른 사람의 옷을 입어야 했다. 물품 목록을 작성하던 러시아 측 담당자가 이 사실을 알고 안타까웠는지 ‘이 안에 담으면 무조건 실어주겠다’며 슬쩍 건네주었다는 지퍼 백 하나. 그 안에 급히 담은 다이어리를 10여 년 뒤의 내가 보게 된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소연을 한국 최초의 우주인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려 했다. 전 국민의 관심 속에 선발된 우주인이 갑자기 교체된 것도 당황스러운 데다가, 여성 우주인이 앞으로 나서게 되는 것을 고까워하는 시선이 더해졌다. 여성 우주인이 남성 우주인 옆에 후보로 있다가 역사적인 발사의 순간에 손뼉 치며 환호해주는 것이, 어떤 이들에게는, 보기 좋은 그림이었다. 고산이 이소연으로 교체된 사건은, 남자의 자리를 여자가 대신한다는 충격으로 퍼져나갔다. 이소연이 대학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하고 생명공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우주정거장에서의 실험을 수행하기에 더없이 적합한 전문가라는 점은 쉽게 무시되었다. 많은 사람이 놓쳤지만, 어쨌든 우주인 프로젝트의 명목상 목적은 우주정거장에서의 과학 실험이었다. 우리나라 최초로 우주 실험을 수행할 사람이 마침 학계에서 과학 하던 사람이라는, 우리에게 주어진 이 행운은 전혀 주목받지 못했다.


우주정거장에서는 지구에서보다 얼굴이 붓는다. 다리 쪽으로 피를 잡아 당겨주는 중력이 없는데도 심장은 지구에서의 제 역할을 다하려 하기 때문이다. 여성 우주인의 잔뜩 부은 얼굴을 두고 외모를 비하하는 댓글이 기사마다 달렸다. 이소연은 잠잘 시간도 아껴가며 열여덟 가지의 실험을 수행해냈고, 생각대로 진행되지 않는 실험을 두고는 몇 날을 고민했다. 러시아 측에서 실험이 너무 많으니 줄이라고 요청할 정도로 무리한 일정이었다. 그런 일을 새내기 우주인이 완수해낸 일에 대해서는 누구도 목소리 높여 칭찬해주지 않았다. 우주에서 지구로 돌아올 때, 귀환 모듈의 결함으로 죽을 뻔했던 일이 한국 우주인의 영웅담으로 두고두고 인구에 회자되는 일도 별로 없었다. 이소연이 탄 귀환 캡슐은 궤도를 이탈했고, 화염에 휩싸이는 바람에 통신조차 끊어진 채, 거의 수직으로 카자흐스탄의 평원에 메다 꽂혔다. 예상 지점에서 수백 킬로미터나 벗어난 곳에 불시착했다. 당황한 그곳 주민들의 도움으로 귀환 캡슐에서 탈출하고, 구조대가 올 때까지 수 시간 동안 동료와 의지해 목숨을 부지해야 했던 극적인 이야기는 누구도 넘겨보지 않은 책장처럼 홀로 바래갈 뿐이다.


우주 비행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온 이소연은 수백 차례의 대중강연과 인터뷰를 하며 애초 계약했던 의무기간의 갑절 되는 동안 우주인으로서의 소임을 수행했다. 그러나 우주인 프로젝트는 일회성 사업이었고, 앞으로도 우주인 이소연이 할 만한 일은 11일간의 비행 이야기를 반복하는 것뿐이었다. 우주에서 돌아온 후 4년간 그랬듯이. 그렇다고 몇 년 만에 다시 DNA를 다루는 공학박사 이소연의 길로 돌아가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하루가 다르게 발전해나가는 분야다. 수년간 손놓았던 사람이 다시 그 급류 속으로 들어가 안전하게 물살을 타는 일이 어디 쉬울까. 우주인 이소연이 할 수 있을 후속 프로젝트가 마련될 길은 요원해 보였다. 고민 끝에 휴직하고 미국 유학길에 오르자 이번에는 ‘먹튀’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그곳에서 한국계 미국인과 결혼했을 때에도, 휴직 기간이 만료되고 마침내 연구원을 퇴사했을 때에도 같은 일이 반복되었다. 심지어 ‘공립’ 과학고등학교를 나와 ‘국립’ 한국과학기술원을 졸업한 경력까지 문제가 되었다. ‘그 여자’를 고등학교 때부터 박사과정까지 국가 세금으로 키워준 것이 괘씸하단다. 강연료를 챙기면서 출장비까지 받았으니 구상권이라도 청구해야 한다고 한다. 정말 그래야 할까?


규정 위반으로 우주 비행에 참여하지 못한 고산도 연구원과의 의무 계약기간을 마친 뒤 미국에 갔다. 역시 우주인으로서의 정체성과는 별 접점이 없는 분야로 유학길을 떠났지만, 누구도 비난하지 않았다. 지금은 3D프린터를 만드는 회사의 대표로 있다는 그의 인터뷰 기사에 사람들은 격려와 응원을 보낸다. 그의 도전 정신과 마침내 성취해내는 모습에 칭찬을 보낸다. 우주인 프로젝트에 들어갔다는 260억이니 300억이니 하는 ‘혈세’를 뱉어내라던가, 우주 개척의 가치와 비전을 스스로 확고한 신념으로 만들어 제2 제3의 우주인이 배출되도록 각고의 노력을 다하라는 요구는 하지 않는다. 국가 차원의 후속 지원이 없다는 이유로 뱀 허물 벗듯 우주인으로서의 책임을 벗어던졌다는 비난은 오롯이 이소연의 차지다.


2007년, 이소연과 고산을 함께 인터뷰한 기사를 찾아보았다. 아직 둘 중 누가 ‘소유즈’에 탑승할지 결정되지 않은 시점의 기사였다. 당시 미혼의 박사과정생이던 이소연에게 기자는 ‘골드미스’라는 단어를 꺼냈다. 우주에서는 노화가 빨리 진행된다는데, 여성이니 피부 문제에 신경쓰이겠다고 했다. 우주에서 ‘마법’에 걸리면 어떻게 되느냐고도 물었다. 우주가 상당히 춥다더라는 기자의 우려 섞인 질문에는 고산의 대답만이 기사에 실렸다.


박사학위를 받은 뒤, 나는 관련 분야에 채용공고가 나올 때마다 꾸준히 원서를 넣었다. 4년 차 되던 해, 드디어 정규직 자리의 최종 면접을 볼 기회가 주어졌다. 면접관은 내게 물었다.

“여직원들은 육아휴직이니 뭐니 해서 팀원들을 불편하게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서지현 검사가 조직 내 성추행 피해를 폭로해 뉴스에 오르내리던 시기였다. 대표적 전문직인 검사도 그냥 ‘여자’로 취급하는 사회. 내가 운이 좋아 최종 합격자 명단에 오른다면, 나는 박사학위를 가진 이 분야 전문가가 아니라 잠재적으로 업무를 팀원에게 떠넘길 소지가 있는 여직원 중 하나가 될 운명이었다. 간절한 구직자의 슬픈 순발력으로, 다른 여성 지원자들보다 우위에 서보겠다고, 이미 아이들이 다 커서 육아휴직이 필요한 시기는 지났다고 답변했다. 면접관은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그로부터 스무날 가까이 지독한 불면과 자기혐오에 시달려야 했다. 면접 결과는 낙방이었다. 정말 운이 좋았다.


이소연 박사는 십 년 만에 한국에서의 활동을 재개했다. 한국 최초의, 그리고 한국 최고의 우주인인 그를 한껏 응원한다. 우리는 우주인 이소연이 지상 훈련에서, 우주 실전에서, 그리고 우주에 다녀온 뒤에 겪은 모든 이야기에 귀기울여야 한다. 그가 무슨 실험을 했는지 하나라도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신비롭고 놀라운 우주 이야기부터 그에 못지않게 놀라운 과학 정책 이야기까지. 오직 이소연만이 해줄 수 있는 이야기. 그 교훈을 얻으려고 우리는 그를 우주정거장으로 보냈던 것이다. 여자라는 이유로, 직업을 바꿨다는 이유로 그의 목소리를 억누르고 싶어하는 사람이야말로 우리 모두의 세금을 ‘먹튀’하려는 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