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회




3부

강노을



1


노을은 강한경과 함께 나무를 배달하러 갔다가 그 여자아이를 처음 보았다. 그 집에 간 것은 그날이 처음이었으니 그 사실만은 틀리지 않을 것이다. 정원을 가로질러가던 그 집 딸을 노을이가 쳐다볼 때 그 역시 같이 바라봤었다. 그애가 뭔가를 그렇게 정신없이 쳐다볼 때는 꼭 같이 바라보게 됐었다. 기껏해야 개미들이거나 나뭇잎에 어린 햇살 무늬이거나 그랬는데, 이번에는 여자아이였다. 맨발의 여자아이가 자기 집 정원을 걷고 있었다. 

그날 노을이 잔디밭에서 옮을 수 있는 병에 대해 물었다. 그리고 그가 대답을 하기도 전에 혼자 말했다. 두 번 반복해서. 쓰쓰가무시, 쓰쓰가무시. 진드기의 유충이 옮기는 그 병은 발열, 두통, 발진, 호흡곤란, 구토 등을 일으킨다. 쓰쓰가무시, 한번 더 혼자 말해놓고 노을이 또 물었다. 약을 쳤을까요?

노을은 그에게 반말을 하지 않았다. 그를 아빠라고 부른 적도 없었다. 사실 아버지라고 부르는 적도 거의 없었다. 눈을 똑바로 쳐다보지도 않았고, 말도 잘 하지 않았다. 언제부터 그렇게 되었을까. 노을에 대한 여러 가지 궁금증이 생긴 이후, 그중에서도 더 깊이 생각해야 할 의문이 생긴 이후로도 그게 늘 궁금했었다. 

나무가 자리를 잘 잡았는지 보기 위해 다시 그 집에 출장을 나가야 했었다. 노을은 신발을 벗고 소나무 주변을 왔다갔다했다. 그는 노을의 맨발을 한참 동안 내려다보다가 저리 비켜라, 했다. 그날은 그저 그뿐이었다. 목소리를 높이지도 않았다.

며칠 후, 또 그 집엘 가게 되었다. 이번엔 꽃나무들을 배달하기 위해서였다. 감림수목원에서는 꽃나무를 다루지 않았지만 먼저 심은 소나무가 마음에 든 집주인이 나머지 일까지 맡아달라고 부탁을 했던 것이다. 그 집이 장군님 집이라고 했는데, 이순신 장군도 아니고 김유신 장군도 아니고 바로 이장군 집이라는 건 나중에 알게 되었다. 그러니까 노을이 넋을 놓고 쳐다봤던 그 여자애는 바로 이장군의 딸이었던 것이다. 꽃을 심으러 갔던 날에도 노을은 맨발로 왔다갔다했고, 그는 이번에는 버럭 소리를 지르며 ‘저리 비켜라!’ 했다. 노을은 자기가 심은 소나무 아래에서 햇살을 피했다. 

해가 뜨거운 날이라 여자아이는 집안에서만 왔다갔다했다. 정원으로 통하는 거실 유리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환한 바깥과 달리 거실 안은 어두워서 잘 들여다보이지는 않았다. 그런데도 여자아이는 마치 어둠 속 반딧불이 같았다. 늙은 그의 눈에도 그렇게 보였다. 그 아이가 입고 있는 흰 원피스 때문이었다. 왔다 갔다, 갔다 왔다 할 때마다 그 여자아이가 입고 있는 흰 원피스, 그 아래의 종아리, 발목과 맨 발등이 눈부시게 보였는데, 부잣집 딸이라, 그것도 이장군 집 딸이라 빛나려면 그 정도로 빛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런 집에서 가능하지 않은 게 뭐가 있겠는가.

그날, 여자아이가 노을에게 그림 한 장을 주었다. 노을이를 그린 그림이 정원의 동그란 테이블 위에 물병에 눌린 채 놓여 있었는데, 그걸 먼저 발견한 건 그날 같이 일을 갔던 일꾼이었다. 이기 뭐꼬? 일꾼이 중얼거리다가 노을이와 그림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리고 또 말했다.

이기 니가?  

나중에 노을의 방에서 그 그림을 보았다. 썩 잘 그린 그림이었다. 누가 봐도 노을이인 아이가 그림 속에서 나무를 심고 있었다. 노을이 나무를 심고 있는데, 노을이 마치 나무 같은 그림이기도 했다. 소나무의 둥치를 두 손으로 떠받치고 있는 노을이 꼭 소나무의 몸에서 뻗어나온 곁가지처럼 보였다. 손은 가지 같고, 발은 뿌리 같고, 몸은 둥치 같았다. 그리고, 또 노을이 있었다. 그 아이가 아니라 정말 하늘을 덮은 노을. 

여자아이는 아마도 노을보다는 노을의 이름에 더 관심이 있었던 것 같기도 했다. 그 아이가 정원을 가로질러가다가 마침 일꾼이 노을을 부르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었다.

“이름이 강노을이야?”

그 여자아이가 눈을 깜빡이며 물었다.

“무슨 그렇게 이쁜 이름이 있어?”

정말로 노을처럼 얼굴이 달아오른 노을은 대답도 하지 못하고 마치 벌을 받는 아이처럼 시선을 떨구고 서 있었는데, 여자아이가 또 말했다.

“있지, 우리 아버지 이름은 이장군이야.”

그러고는 깔깔 웃었다. 뭐가 그렇게 웃기다는 건지 배를 잡고 깔깔. 아이는 그렇게 웃는데,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의 얼굴이 모두 사색이 되었다. 엄청나게 불경한 말을 들은 것처럼. 들어서는 안 되는 말을 들은 것처럼, 대경실색하여.

나무 심는 일이 끝난 후에도 노을은 그 여자아이 주변을 얼쩡거리고 다녔다. 노을의 주변머리로 보았을 때 그저 얼쩡거리기만 하고 다른 짓은 엄두도 못 냈을 터인데, 그래도 딸 있는 집에서는 걱정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걱정스러운 일이기만 한 게 아니라 몹시 화가 나고 기분이 나쁜 일이기도 했을 것이다. 언감생심, 이장군의 딸이 아닌가. 게다가 노을이가 아닌가.

어느 날 ‘이장군의 집 사람’이라는 사람이 노을을 차에 태우고 와서 짐짝처럼 툭 내려놓았을 때, 강한경은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는 말조차 제대로 물을 수가 없었다. 이장군의 집 사람이라잖은가. 그런 사람에게 뭘 물어볼 수 있겠는가. 그런 사람이 그와 눈만 한번 마주치고 가버렸는데, 뭐라고 협박을 한 것보다 더 무섭게 여겨졌다.

그날 그는 노을에게 욕을 했고, 욕을 하다 달랬고, 그러는 동안 아무 대꾸도 하지 않는 노을에게 울화통이 터진 나머지 손찌검을 하기도 했다. 그냥 분김에 나온 행동이었다. 그는 폭력적인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다만 노을에게 상대를 잘못 골랐다는 말을 하고 싶었을 뿐이다. 줄리엣을 만나지 말라고 달래는 로미오의 아버지보다도 못한 심정으로 그는 말하고 또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여자애 아버지가 이장군이다. 너 이장군이 어떤 사람인 줄 아냐? 그 집안이 어떤 집안인지나 알아? 이순신 장군 김유신 장군을 말하는 게 아니다. 이장군을 말하는 거야.

그러나 실은 그도 이장군에 대해 잘 아는 것은 아니었다. 한동안 그 이름이 뉴스에 오르내리는 걸 봤을 뿐이었는데, 그 여자아이의 아버지 이장군이 주로 사람들을 때리고 꺾고 피 흘리게 하고, 그리하여 모든 걸 털어놓게 만드는, 없는 것까지도 말하게 만드는, 한마디로 주요 업무는 아니지만 주요 업무보다 더 주요한 업무가 된 고문하는 기관의 수장인 적이 있었고, 그때 무지막지한 일을 저질렀다는 사실을, 세상 사람들이 모두 다 알게 된 그 사실을, 뉴스를 통해 뒤늦게 알게 되었을 뿐이다. 그러니까 이장군이 그런 일을 하고 있는 동안은 몰랐던 일들을 그런 일을 했던 게 문제가 된 시점에야 알게 된 것인데, 시제와 시점과는 아무 상관 없이 그에게 그 이름은 현재진행형처럼 들렸다. 그 기관에서는 대학생, 재야인사, 노동자, 그리고 기타 등등을 때리고 매달고 물을 먹이고, 어쩌다가 한 번씩은 병신으로 만들거나 죽이기도 했다는 것이다. 그러고도 나중에 국회의원도 되고 장관도 되고 그랬다는 것인데, 무슨 까닭인지 그 모든 일이 그때 한꺼번에 문제가 되었다가 또 잠잠해지더니 다시 국회의원도 하고 뭣도 하고 그러는 중이었다. 말이 안 되는 것 같지만 말이 안 되는 일이 백주대낮에도 벌어지는 세상이었다. 그러니 딸을 쫓아다니는 고등학생 놈 하나쯤이야…… 설마 죽이지야 않겠지만, 설마 그런 이유로 고등학생 아이를 고문하지야 않겠지만, 가둬놓고 족치지도 않겠지만, 그런 치사한 일에까지 힘을 쏟기야 하겠는가만…… 그래도 말이다.

그렇다고 해도 꺼림칙한 건 마찬가지였다는 뜻이다. 무섭다고 말하지 못해 꺼림칙하다고 할 뿐, 사실은 무서운 거였다. 나무를 심으러 갔던 날에도 그 집 앞에서 시위가 있었다. 이장군이 그런 와중에도 자기 집 정원에 소나무를 심는 사람이었다. 소나무도 심고 꽃도 심는데 어린아이 하나 쥐어패는 거야 뭐가 어렵겠나.

“다신 그런 짓 하지 말아라.”

노을은 대답하지 않았다. 손이 올라갔다. 그 손을 간신히 다시 내려놓으며 소리를 질렀다.

“대답해라!”

노을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는 참지 못하고 다시 손을 올렸지만 이번에도 역시 소리만 질렀다. 이런 모자란 놈, 이런 등신 같은 놈, 이런 한심한 놈! 

“이노무새끼, 나가 뒈져라!”

그러나 말이다. 그런 말 한마디 안 하면서 아들을 키우는 사람이 있나? 엄마도 없이 혼자 아들을 키우면서 그런 말 한마디 안 하는 아버지가 있나?

노을이 가출한 건 그때는 아니었다. 몇 달이 더 흘러서였고,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였다. 그 여자아이 때문이었던 것도 아니었다. 여자아이와 관련해서는 더는 말썽이 없어서 노을이 그애를 계속 쫓아다니는지 아닌지도 몰랐었다. 그러니까 그때는 여자아이에 관한 일은 까맣게 잊고 지냈었다는 것이다.

그날 아침에는 학교 문제 때문이었다. 그가 노을에게 앞으로 어쩌겠느냐고 물었다. 노을은 또 대답하지 않았다. 노을이 대답을 안 하는 게 하루 이틀 일이 아니었음에도 그날은 분통이 터져 견딜 수가 없었다. 아니다. 사실은 걱정이 되어서 견딜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학교를 졸업했으니 이젠 사람 한몫으로 살아야 할 텐데, 노을이가 그걸 해낼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그래서 말이 안 되는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도 또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재수하겠냐? 아니면 취직을 할 테냐? 또 대답이 없었다. 학교도 안 가고 취직도 안 하면 내가 널 평생 공짜로 먹여 살리란 말이냐? 그렇게 소리를 지른 뒤에는 그냥 자동으로 말이 이어졌다.

“그러려면 내 집에서 나가라, 이 등신 같은 놈, 모지리야!”

평생 속만 터지게 만들던 아들이 그 말만은 그렇게 잘 따를 줄 몰랐다. 

그렇더라도 그게 가출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었다. 집을 나가서는 고작해야 큰이모 집에 가고, 또 작은이모 집에도 들락날락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돈이 많은 그애의 큰이모가 넉넉히 용돈을 챙겨주고, 돈은 많지 않지만 정이 많은 작은이모가 잠자리와 먹을거리를 챙겨준다고 들었다. 아내가 죽은 후 그는 아내의 자매들과 거의 연락을 끊고 살았다. 노을을 통해서 간혹 소식을 듣는 게 전부였다. 노을이가 자기 집에 와 있다고 그애의 작은이모에게서 전화가 걸려온 게 거의 십 년 만의 일인가 그랬다. 그 작은이모가 그를 여전히 형부라고 부르면서 말했다.

내가 노을이한테 이랬어요. 지 엄마 죽던 날 말이에요. 울 언니 산에 묻던 날, 형부가 얼마나 서럽게 울던지 말이야. 내가 노을이한테 그랬다니까요. 야, 야. 사람이 울면 어떻게 그렇게까지 울 수 있나. 난 그렇게 우는 사람 그전에도 못 봤고, 그담에도 못 봤다. 니는 봤나? 니 아버지가 그런 사람이다. 안 그래요, 형부? 형부가 그런 사람이었잖아요.

그는 오랜만에 듣는 형부라는 호칭도 어색하고, 그 오래된 기억을 떠올리는 것도 낯이 뜨거워서 가만히 듣고만 있었는데, 그러는 동안 거짓말처럼 그날의 기억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사는 동안은 그냥 무심한 남편, 보통의 아내였는데 그 아내가 암으로 죽자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무슨 세상이 무너져도 그렇게 무너지나. 아내가 땅에 묻히는 동안 울고불고, 또 울고불고하는데, 열 살짜리 노을이가 볕 좋은 곳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 게 보였다. 그는 달려가 졸고 있는 아들의 얼굴을 때렸다.

네 엄마가 죽었다, 이 자식아. 그런데 잠이 오냐, 이 자식아. 죽었다는 게 뭔지 아냐, 이 자식아. 다시는 못 온다는 거다, 이 자식아. 내 마누라가, 네 엄마가 다시는 못 온다는 거다, 이 자식아.

그런데 노을이의 작은이모, 한때 그의 처제였던 여자는 그가 울었던 애기만 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하마터면 자신을 여전히 ‘형부’라고 부르고 있는 그 늙은 여자에게 닥치라고 악을 쓸 뻔했다. 

아들을 때렸던 기억은 그에게 부끄러움을 넘어 고통으로 남았다. 열 살짜리 아이가 얼마나 졸렸을까. 상을 치르느라 제대로 자지 못해 졸립기도 했겠지만 슬픔과 두려움에 겨워서도 그랬을 텐데, 그걸 때리기까지 했다. 사람들이 전부 쳐다보는 곳에서, 자기 엄마가 아직 땅에 다 묻히지도 않았는데, 그 아들을 때렸다. 그 기억은 그를 부끄럽고 고통스럽게 할 뿐만 아니라 슬프게도 했다. 그후 그가 노을의 머리나 어깨 같은 데에 가끔이나마 손을 댔다면, 그건 너무 미안하고 너무 슬퍼서였을 뿐이다. 너무 미안하고 너무 슬퍼 죽겠는데, 노을이란 놈이, 그놈이 그와 눈도 잘 마주치지 않았고, 그래서 미안하다는 말을 할 기회조차 가질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그가 보통의 아버지가 할 일 중에 안 한 건 없었다. 용돈을 식탁 위에 놓아두고, 학교에 낼 돈을 계좌에 찍어주고, 노을이의 낡은 신발을 그것보다 더 낡은 자기 신발로 툭툭 밀면서 새로 사라, 한마디 하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나무를 같이 심으러 다녔다. 

나무를 심을 때가 제일 편했다. 둘이 동시에 좋아하고, 둘이 동시에 긴장을 하지 않는 유일한 순간이었다. 노을은 그와 같이 배달도 다녔다. 어려서는 그냥 쫓아다니는 정도였지만, 나중에는 그의 일을 제법 한몫 거들기도 했다. 정원이 있는 집, 부잣집 아이들이 나무 심는 걸 구경하러 나왔다가 노을에게 말을 걸곤 했다. 너네 집엔 나무가 많아? 무슨 나무가 있어? 소나무 말고는 무슨 나무? 소나무하고 소나무 말고, 또 무슨 나무? 소나무, 소나무, 소나무 말고, 다른 나무는 없어?

감림수목원에서 소나무만 팔았던 건 아니다. 소나무를 주로 팔기는 했지만 다른 나무도 많이 있었고, 없는 나무는 다른 농원에서 구해다가도 팔았다. 그러나 노을은 고지식한 아이였다. 소나무 농원이라고 소나무만 얘기했다. 그 소나무 하나하나를 열 그루, 백 그루 다 말한 뒤에야 단풍나무 벚나무 감나무 같은 걸 얘기할 수 있다는 식이었다. 국회의원 집 아들이 물어봤을 때도, 안기부장 딸이 물어봤을 때도, 감옥 간 재벌집 회장 손녀가 물어봤을 때도, 그냥 소나무 소나무 소나무, 또 소나무 했다. 부잣집 아이들에게 편견을 갖고 싶지는 않았지만, 그애들이 노을을 향해 바보니 멍청이니, 심지어는 병신이니 하는 말을 할 때는 그 편견이 그나마 도움이 되었다. 그애들은 원래부터 그런 애들인 거니까.

노을이 집을 나갈 때까지 그들은 농원에 딸린 집에서 같이 살았다. 같이 밥을 먹고, 하나뿐인 욕실에서 번갈아 몸을 씻고, 하나뿐인 변기에다 번갈아 똥오줌을 누고, 서로 마주보고 있는 안방과 작은방에서 문을 활짝 열어놓고 각자 잠이 들었다. 노을보다 늦게 잠드는 밤에는 그애의 방으로 가서 그애를 내려다보곤 했다. 노을처럼 잠에 물든 아이, 그는 그애를 사랑했다. 누군가 그에게 사랑하는 법을 가르쳐주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어떻게 말하고 어떻게 품에 안는 건지도 가르쳐주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비록 아비 노릇에 서툴기는 했더라도, 대체로는 평범하고 평온한 세월이었다. 시간은 나무가 자라는 것처럼 천천히 흘러갔고, 앞으로의 세월 또한 그럴 것 같았다. 고등학교까지 마쳤으면 됐지, 학교를 더 못 다니는 거야 뭐가 그리 대수로운 일이겠는가. 일대에서 가장 큰 부자였다는 노을의 조부는 재산의 대부분을 탕진하고 세상을 떴지만, 그래도 농원을 남겼다. 농원에 심어진 나무와 그 일대의 땅은 적지 않은 재산이었다. 그리고 노을에게는 나무를 다루는 재주가 있었다. 그러니 뭐가 문제이겠나. 가출도 그렇다. 가출 한 번 안 하는 남자애가 어디 있겠나. 조금 모자란 아이도 가출은 할 수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평범했고, 또 평범할 수 있는 삶이었다는 뜻이다.

그런데 어쩌다가 일이 이렇게 되어버린 것일까. 그는 도무지 그걸 알 수가 없었다. 누군가 그것 또한 가르쳐주면 좋을 것 같았다. 사랑하는 법에 이어지는 부록, 미안하다는 말을 하는 방법 같은 것 말이다.



2


1994년 7월 24일. 강한경은 죽는 날까지 그날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날 밤 노을이 돌아왔다. 그리고 그날 밤, 그는 노을을 영원히 잃었다.

노을이 돌아오기 전까지 그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집을 나간 아들이 공장엘 다녔는데, 그 공장에서 무슨 짓을 하다가 경찰인지 무엇인지에 끌려갔었고, 그러고는 사라져버렸던 것이다. 어느 날 ‘단체’라는 곳의 사람들이 그를 찾아와 그에게 노을의 소식을 전해주었는데, 그 소식이 사라졌다는 소식이었다. 단체 사람들이 똑떨어지게 말하지는 않았지만, 그 역시 절대로 그렇게 알아듣고 싶지는 않았지만, 아무래도 그들의 말은 노을이 그냥 사라진 게 아니라 죽은 것 같다는 얘기처럼 들렸다. 그런데도 ‘실종신고’를 내야 한다고 했다. ‘사망신고’가 아니라 ‘실종신고’. 그래서 다행이었을까. 그는 입을 벌린 채 그들이 하는 말을 들었는데, 계속해서 침이 줄줄 흘렀다. 그들이 하는 말 중의 단 한 마디도 정확히 이해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후 그는 그냥 울고 다니기만 했다. 그 단체의 엄마들도 그처럼 울지는 않았다. 아빠들도 마찬가지였다. 그곳의 엄마들, 아빠들은 울 힘이라도 있으면 그걸 아껴 싸우는 데 바쳤다. 울면 힘이 빠질까봐 이를 악물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실종자의 아빠로서는 초보인 그는, 그것도 어쩌면 강제실종자의 아빠일지도 모르는 그는, 말하자면 죽었을지도 모르는 아들의 아빠인 그는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어서일 뿐만 아니라, 무섭고 두렵기만 해서 그냥 울었다. 우는 건 단체에 나가지 않고 집에 틀어박혀서도 할 수 있는 일이었으나, 쫓아다니면서 울었다. 몇 달 후 과격한 행동을 하기 전까지는 그가 우는 사람으로 유명했었다.

봄이 다 가고, 초여름이 지나갔다. 그리고 7월 24일도 지나가고 있었다. 그날 밤, 잠깐 동안 퍼붓던 폭우가 말짱 그친 후, 언제 그랬냐 싶게 하늘이 맑았다. 나무들 위로 별이 총총히 보였다. 한밤에 자동차 소리가 들려 창밖을 내다보는데 그 별들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차는 농원 문 앞에서 멈추지도 않고 안으로 밀고 들어왔다. 농원의 입구에는 자바라 철제문이 설치돼 있었지만 그 문을 닫아거는 적이 별로 없었다. 노을이 사라진 후로는 자물쇠를 걸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 문을 항상 활짝 열어놓았다. 그런데 그 문 안으로 한밤중에 차가 들어온 것이다.

농원 입구는 살림집에서 꽤 떨어져 있었지만 그는 그 차를 알아봤다. 이장군 집 사람의 차였다. 그 사람이 이 밤중에 왜 온 건가. 가슴이 벌렁벌렁 뛰기 시작했다. 한 번도 떠올려보지 못했던 생각이 순식간에 주르륵 펼쳐지는데, 그러니까, 노을이가 쫓아다니던 여자아이, 그 여자아이의 아버지 이장군, 노을이의 연행, 그리고 실종…… 혹시 이 모든 것들이 다 연결되어 있는 일이었나 하는 생각이 번쩍 들었던 것이다. 마치 쇠망치에 얻어맞은 듯이 생각이란 것들이 번쩍번쩍 떠올랐다. 그러니까 이장군은 자기 딸을 쫓아다니는 노을이를 혼내주기 위해 잡아가서는 고문을 하고, 그러다가 죽여버린 건가? 죽여서는 그 시체마저 어디다가 감쪽같이 갖다 버린 건가?

그리고 지금…… 저 사람은…… 그걸 말해주러 온 건가. 그런 일이 있었다고 말해주러 온 건가. 아니면 더 울고 다니면 너도 죽여버리겠다고 경고하러 온 건가.

처음에는 비틀비틀 걸어나갔지만 나중에는 다리에 힘이 빠져 그냥 그 자리에 주저앉아버릴 것만 같았다. 그동안 이장군이든, 이장군의 딸이든 그쪽으로는 생각도 못해본 자신의 어리석음이 기가 막혔고, 그런데 이게 맞는 생각인가 틀린 생각인가 그 와중에도 머리가 어지러웠고, 그러거나 말거나 노을이를 찾을 수만 있다면 무슨 짓은 못하겠는가 하는 생각 끝에 또 울음이 터져나오려 하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차가 섰다. 이장군 집 사람이 운전석에서 내렸다. 그 사람이 차 뒷좌석에서 뭔가를 꺼내는데, 하느님 맙소사, 그게 노을이었다. 노을이 분명했다. 피투성이 노을이 짐짝처럼 바닥으로 굴러떨어졌다. 

시체라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노을아아아!

아들의 이름을 외쳐 부르는 목소리가 울음소리에 파묻혔다. 그는 통곡을 하면서 달려갔다. 달려가다가 맨땅에서 넘어졌고, 넘어진 그 자리에서 네 발로 기어갔다.

노을이가 죽어서 왔다. 피투성이로 죽어서 왔다. 아니다. 살아 있었다! 피투성이이지만 살아 있었다! 아니다…… 살아 있지만 곧 죽을 것 같았다……

“노을아, 노을아, 노을아아아아.”

그는 울면서 악을 썼다.

“누구야! 누가 이런 거야아아! 누가 이랬어어!”

그는 노을이를 짐짝처럼 끌어내려놓고는 한마디 말도 없이 다시 차에 올라타고 있는 이장군 집 사람을 향해 달려들었다.

“누구야! 누구야! 누가 이랬어!”

이장군 집 사람은 마치 손가락으로 튕겨내듯이 가볍게 그를 떼어냈다. 

“질문이 잘못됐네.”

그 사람이 말했다.

“누구한테 그랬냐고 물어봐야지.”

여자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린 것이 그때였다. 차 안 조수석에서 여자아이가 두 손으로 얼굴을 덮은 채 엉엉 울고 있었다.

저 아이는 왜 울고 있나. 아니, 그전에, 방금 내가 들은 말은 무슨 소린가. 이해하지 못했는데도 머리가 멍했다. 아니, 이해하지 못했으므로 멍했을 것이다. 그런 와중에도 그는 다시 이장군 집 사람을 붙잡으려고 했지만 다시 한번 밀쳐지기만 했을 뿐이었다. 그는 뒤로 나자빠졌다. 그리고 그가 나자빠진 그곳에 피투성이 노을이 여전히 팽개쳐져 있었다. 

“노을아아아!”

이해가 되든 안 되든, 영문을 알겠든 모르겠든, 다시 끔찍한 두려움이 밀려왔다. 아니 기쁨인가. 노을이가 눈앞에 있었다. 그런데 노을이가 피투성이였다. 노을이가 살아서 돌아왔다. 그런데 노을이가 죽을 것 같았다.

그는 통곡을 하며 어디에서 피가 흐르는지를 알기 위해 아들의 온몸을 샅샅이 살피기 시작했다. 얼굴을 보고, 목을 보고, 무슨 까닭인지 손과 발도 보고, 나중에는 옷도 벗겼다. 몇 군데 베이고 긁힌 상처가 보였다. 베인 상처는 심각해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목숨을 잃을 만한 상처로는 보이지 않았고, 그토록 많은 피가 쏟아질 만한 상처들로도 보이지 않았다. 노을의 몸에 묻은 피는 노을의 것이 아니었다. 다행이었다. 정말 다행이었다.

그런데 다행인가?

당연히 정말이지 다행이었다.

그런데 정말로 다행인 건가? 그런 건가?

그때부터 시간이 기형적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시간이 똑딱똑딱 흐르지 않고 또옥딱또옥딱 흐르거나, 딱똑딱똑 흐르거나 그러는 것 같았다. 그는 무서웠는데 무엇이 무서운 건지 알 수 없었고, 정말이지 다행이란 생각을 했는데 또 무엇이 다행인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이장군 집 사람의 차가 멈췄던 곳, 농원의 흙바닥에 떨어져 있는 공책을 발견한 건 그토록이나 한이 없던 시간이 흐른 후였다. 낙서와 그림 따위가 잔뜩 들어 있는 갱지 연습장이었는데, 그 마지막 장에 약도가 한 장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거칠게 쓰인 글자들. 도, 와, 주, 세, 요.

그리고 어느 집 안에, 한 아이가 쓰러져 있는 그림.



3


자폐라는 말이 있다고 했다. 병인지, 병은 아니지만 병 같은 것인지, 병 같은 것도 아니지만 병처럼 보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인지, 어쨌든 그런 말에 대해 그가 알게 된 건 노을이 열 살도 더 지나서였다. 그전까지 그는 그런 말이 있는 줄도 몰랐었다. 그는 그냥 노을이 늦된 아이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화가 났을 때는 모지리라고 생각했지만, 화가 풀린 후에는 모지리이기는 해도 세상에 둘도 없이 착한 아이이니 됐다고 생각했다. 자폐라는 말을 알게 된 후에는 그런 애들을 가르친다는 학교에 홀로 찾아가 한나절 동안 그애들을 바라보다가 돌아오기도 했다. 그때마다 그는 생각했다. 노을이는 그애들과 다르다고. 달라도 아주 다르다고. 아무렴, 다르고 말고라고.

누구와도 눈을 마주치려고 들지 않고, 늘 혼자 놀고, 단 한 번도 대답을 제때제때 하는 법이 없었지만, 그 외에는 문제될 게 없었다. 그런 걸 병이라고 하면 세상에 늦된 아이들 중에 병 안 걸린 아이들이 없을 것이다. 엄마가 일찍 죽지만 않았다면, 한때 그가 노을에게 만들어주었던 못된 새엄마들만 아니었다면, 노을에게는 아무 문제도 없었을 것이다. 그는 그렇게 생각했고, 또 그래서 미안했다.

늦됐지만 고지식하고 착한 아이였다. 나무도 잘 키우고 꽃도 잘 키웠다. 꽃과 나무 지키기를 제 목숨처럼 여기는 아이였다. 특히나 가지치기를 기가 막히게 했다. 가지치기 선수권대회 같은 게 있다면 우승을 하고도 남을 솜씨였다. 약간 늦된 아이들 중에는 늦된 대신 셈을 기가 막히게 잘하거나 오래달리기를 기가 막히게 하는 아이들이 있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었는데, 노을에게는 그게 가지치기였다. 전지 도구들을 아예 품에 안고 살았다. 학교도 잘 다녔다. 비록 떨어지기는 했지만, 붙을 거라고 생각도 안 했지만, 어쨌든 대학 시험까지 치렀던 아이다. 그러니 무슨 문제가 있단 말인가. 

그런 아이가, 몸에 남의 피를 묻히고 왔는데, 차마 그게 누구의 피냐고 물어볼 수가 없었다. 그게 누구의 핀데, 어디서 어쩌다가 그걸로 피 칠갑을 했느냐고 물어볼 수가 없었다. 

당신이라면 그럴 수 있겠나?

그는 허공에 대고 묻고 또 물었다. ‘당신’이 누군지도 모르면서 그렇게 했다. 그리고 그는 스스로에게 대답했다. 나는 그럴 수가 없을 것 같다고.

대신에 여자아이가 던져놓고 간 약도를 가지고 그 약도에 그려진 집을 찾아갔다. 노을이 정신을 잃었을 뿐 위험한 지경은 아니란 걸 알고 난 후, 노을이 정신을 잃은 것도 아니고 어쩌면 깊은 잠에 든 건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기 시작한 후, 그렇게 믿고 싶어진 후, 새벽녘에 집을 나섰다. 이른 시간이라 길이 뻥뻥 뚫려 있어서 정말이지 순식간에 그곳에 도착했다. 약도에 그려진 집도 금방 찾았다. 정말로 다급하게, 황망한 와중에 그려놓은 것 같은 약도가 기가 막히게 정확했던 것이다. 

폐가가 있었고, 문은 잠겨 있지 않았다. 한 아이가 폐가의 방 벽에 기대앉아 있는 게 보였다. 그 아이의 옷 앞섶이 피투성이였다. 그는 겁이 나서, 정말이지 너무나 겁이 나서 그 아이를 건드려보고 싶지도 않았지만, 또한 그러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가 떨리는 손을 간신히 들어 그 아이의 기울어진 얼굴에 손을 대려는 순간이었다.

그 피투성이 아이가 눈을 번쩍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