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회




4


이만은 강한경이 입원해 있는 병원을 찾아갔다. 704호, 강한경은 보이지 않았다. 중환자실에서 일반 병실로 옮겼다는 말을 안찬기에게서 분명히 들은 바 있었다. 그런데 침대가 비어 있는 것이다. 이만은 기다리기로 했다. 침대 옆에 의자가 있었다. 그러나 그곳에서 기다릴 생각은 들지 않았다. 

이만은 복도로 나왔다. 그곳에서 다시 한번 안찬기에게서 들은 말들을 차근차근 되씹기 시작했다. 강한경의 아들 강노을은 그를 칼로 찌른 후에 그의 자취방으로 갔다. 연희가 그곳에 있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고 했다. 그러는 동안 그는 칼에 찔린 몸으로 골목을 기어다녔다. 기억한다. 최면요법의 도움을 받기 전에도 그 순간들은 기억하고 있었다. 죽어가고 있다는 두려움과 살아야 한다는 본능이 칼에 찔린 고통을 압도했었다. 고통은 감각이 아니라 머리로 다가왔다. 그건 죽음 같던 고통, 생의 모든 것을 압도하는 고통이었다. 피가 흘렀고, 벽을 짚을 때마다 피 묻은 손 자국이 폐가 골목의 더러운 벽에 찍혔다. 그 피가 벽에서 줄줄 흘러내리는 것 같았다. 닥치는 대로 아무 집 문이나 두드렸으나 사람이 나와보는 집이 없었다. 개만 짖었다. 개 짖는 소리가 조용히 해, 가만히 있어, 멈춰, 그러는 것처럼 들렸다.

가만히 있어, 멈춰.

그 소리가 선명했다. 점점 더 선명해졌다. 김주열의 사체가 발견된 후부터였다. 도대체 그 소리는 어디에서 튀어나온 것일까. 어디에서 튀어나왔는데 이토록 선명한 것일까.

한 시간이 넘도록 강한경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는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었다. 다시 한 시간쯤이 흘렀을 때 역시 마찬가지였다. 기다리는 것만으로도 뭔가가 해결된다면 하루종일이라도 거기 있을 수 있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그때 강한경의 조카가 나타났다. 안찬기에게서 강한경의 조카에 대한 얘기를 듣기는 했지만, 그 얼굴을 알아볼 수 있었던 건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목소리가 큰 사람이었다. 복도에서 간호사와 나누는 말이 거의 싸움을 하는 소리 같았다. 강한경이라는 이름이 튀어나왔고, 감쪽같이 사라졌다는 말이 나왔고, 병원에서 하는 일이 뭐냐는 말도 나왔는데, 내뱉는 말들이 거의 욕설이나 다름없었다. 말기라면서요. 무슨 말기 환자가 그렇게 툭하면 사라져요? 어떻게 그렇게 멀쩡하게 나돌아다녀요? 여기 약이 그렇게 좋아요? 신약 투약해요? 그런 거야? 반가워하는 말이 아니라 지긋지긋해하는 말투였다. 강한경의 조카는 삼촌의 죽음을 지긋지긋하게 기다리는 중인 모양이었다.

병원에서 나온 이만은 곧바로 택시에 올라타 감림수목원 방향을 말했다. 병원이 아닌 어딘가에서 강한경을 기다려야 한다면 그곳밖에는 없을 것 같았다. 또 한 시간쯤이 걸려 화훼촌에 도착했고, 문이 닫혀 있는 비닐하우스들을 지나 ‘꽃과 나무를 파는 집’을 지나 농로로 접어들었다. 여름날의 늦은 저녁이 물들고 있었다. 수목원으로 향하는 농로는 고즈넉했고, 한낮의 열기를 머금은 흙과 풀들의 냄새가 들큰하게 풍겼다. 나무들이 쏟아낸 더운 숨냄새가 공기를 빽빽하게 채우고 있었다.

안찬기가 말한 큰 소나무가 멀리서도 보였다. 아주 잘생긴 나무라고 들었지만 멀리서는 저녁 어둠에 파묻히기 시작하는 나무의 생김새까지 알아볼 수는 없었다. 강노을이 거기 묻혔다고 했다. 불에 태워진 후, 그 재만. 이만은 강노을을 몰랐다. 하늘에 맹세코, 몰랐다. 그러나 정말 그랬을까. 연희가 툭하면 뒤를 돌아볼 때, 툭하면 멈춰 서곤 할 때, 알 수 없는 곳을 쳐다보며 한숨을 쉴 때…… 그는 누군가 그들을, 아니 연희를 지켜본다고 생각했었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누군가가. 그래서 왜 그러냐고 물어본 적이 있었다. 그때 연희가 했던 대답도 기억한다. 

우리 아빠 때문에.

연희가 그렸던 캐리커처가 있었다. 선 두어 개로 어찌나 특징을 잘 잡아내는지, 대충 휙휙 그렸는데도 그게 누구인지 순식간에 알아볼 수 있는 그림들이었다. 자기를 그려달라는 애들이 많았다. 연희는 그런 요구를 들을 때마다 그려주기는 했지만 그걸 가지라고 주지는 않았다. 대개는 보여주기만 하고 그 앞에서 구겨버렸고, 그러지 못할 때는 갱지 노트에 그냥 간직했다. 아마도 나중에 노트째로 버렸을 것이다.

그 노트 중의 한 권을 본 적이 있었다. 이런저런 낙서들로 가득찬 노트에 캐리커처 몇 개가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눈에 띄었다. 만화 같은 캐리커처였다. 그림에 관해 잘 모르니 그런 표현밖에는 가능하지가 않았는데, 사람과 나무가 한몸으로 보이는 캐리커처였다. 역시 상상력이 부족해서 든 의문일지 모르겠으나, 나무는 푸르고 싱싱하고 기운차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그 나무는 고통받는 것처럼 보였다. 연희에게 그 그림에 대해 물어보기도 했었다. 이건 누구야? 역시 연희의 대답을 기억한다.

우리 아빠의 나무.

그리고 잠시 후에 이어졌던 말.

불쌍한 나무.

그는 그 말을 알아들을 수 없었다. 연희가 보다 쉽게 이야기해줬어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나무는 푸른 잎과 향기 나는 꽃으로만 자라나는 것이 아니라 피와 고름이 밴 땅에 뿌리를 내린 채 오직 상처의 옹이를 키우기 위해서 자라나기도 한다는 것을 그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연희가 그렇게 생각한다는 것을,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다는 것을, 당시의 그가 어떻게 알 수 있었겠는가. 그는 그때 연희의 아버지가 누군지도 몰랐다. 연희가 매일같이 맨발로 딛고 선 땅이 그녀의 아버지로 인해 흐른 피와 고름으로 젖은 땅이라는 걸 당연히 알 리가 없었다. 연희의 갱지 노트 속에서 피에 젖은 맨발 그림을 본 적이 있었다. 피로 젖은 땅은 축축하고, 질척했다. 곳곳에 피 웅덩이들도 있었다. 그리고 나무들이 있었다. 고통을 받는 것처럼 뒤틀린 나무들이. 그림 속 맨발은 그 뒤틀린 나무들과 함께 피에 젖은 땅 밑의 뿌리로 뒤엉켜 있었다.

그는 그 발이 연희의 발이란 것을 알지 못했다. 당시의 그가 그런 걸 어떻게 알 수 있었겠는가. 알았다고 한들 그게 그림이지, 그 이상의 무슨 의미였겠는가. 당시의 그가 무엇을 이해할 수 있었겠는가.

연희는 자기 아빠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아빠가 이장군인 게 부끄러웠을까, 연희는? 그런 시절이었으니까. 아직 90년대 초반이었으니까. 많은 상처들이 여전히 생생하던 때였으니까. 그런 시절에 대학생이었던 연희니까. 너는 그림 그리는 애가 왜 우리랑 어울리느냐고 물어본 적이 있었다. 그때 연희의 대답도 기억한다. 니들이 멍청이라서. 그 말은 혹시 이런 뜻이 아니었을까. 니들은 이장군도 모르는 멍청이들이니까. 내가 말해줘봤자 이순신 장군이나 떠올릴 바보들이니까. 시위 같은 건 하지도 않고 할 줄도 모르는 모지리들, 시위를 왜 하는지도 모르는 쪼다들, 컴퓨터만 바라보는 찐따들, 자기 발끝밖에는 모르는 멍청이들…… 그 모지리, 쪼다, 찐따, 멍청이들이 만드는 세계, 현실이 아닌 세계, 그러나 룰이 지배하는 세계, 정직하게 이기고 정직하게 지는 세계, 무엇보다도 그림인 사람들…… 피를 흘려도 그림인 사람들, 몸이 반 토막으로 잘려도 그래봤자 그래픽…… 울고 있어도 그래봤자 그림…… 게임의 세계…… 그 세계의 제일가는 멍청이 황이만……

그렇더라도 연희는 그렇게 사라져버리지는 말아야 했다. 사건 이후 이장군이 연희를 미국으로 보내버렸다고 했다. 사실일 것이다. 그렇더라도 연희는 무슨 수를 써서든 그를 만날 수 있었을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말이라도 전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십 년이 넘게 침묵하고 있다가, 난데없이, 메일로 그림 한 장을 보낸 것이다. 이게 말이 된단 말인가? 게임의 룰에서는 절대로 통용될 수 없는 법칙이었다. 정직하지도 않으면서 판타지도 없었다. 그래서 여전히 이만은 그 틈 사이에 갇혀 있었다. 사실과 판타지, 기억과 착각, 두려움과 외면 사이에.

강한경이 그중의 한 틈을 메워주지 않겠는가? 강노을의 아버지인 강한경이. 그를 차로 밀어버리려고 했던 강한경이.

그런데 안찬기는 왜 자꾸 말을 아끼는 것일까. 무슨 까닭인지 안찬기가 뭔가를 숨기고 있다는 의심을 거둘 수가 없었다. 강한경이 중환자실에 있다거나 의식이 혼미한 상태라고 했던 말들도 대충 둘러대는 말처럼 들렸다. 뭔가를 계속 조사하는 것 같은 느낌이기는 했는데, 그렇다면 이상하기 짝이 없는 일이 아닌가. 그는 의뢰인이었다. 의뢰인인 그에게 숨겨야 할 조사가 무엇이란 말인가. 그는 간혹 의심을 숨기지 못한 채 안찬기를 바라보았는데, 그때 마주치는 안찬기의 눈빛이 자신의 것처럼 여겨져 가슴이 더럭 내려앉기도 했었다. 노이로제인 걸까?

아니다. 노이로제가 아니었다.

수목원이 조금 더 가까워졌을 때 이만이 먼저 발견한 사람은 강한경이 아니었다. 안찬기가 거기에 있었다. 강한경과 함께. 둘은 큰 소나무 아래에 함께 앉아 있었다. 이해할 수 없게도 둘은 한 나무의 가지처럼 가까워 보였는데, 마치 그들이 함께 뻗어나온 뿌리의 추억을 이야기하기라도 하는 듯, 친밀하기가 그지없어 보이는 모습이었다. 연희의 맨발. 그는 그 그림을 다시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5


그때 안찬기는 강한경에게 유상대를 만났던 이야기를 해주는 중이었다. 이만에게는 다 말하지 않았지만, 강한경에게는 다 말해줄 작정이었다. 곧 죽을 사람이었다. 그 사람이 아무것도 모르는 채 죽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병실에서 깨어난 강한경이 수목원에 한번 더 가보는 게 소원이라고 말했을 때, 그를 무리하게 데리고 나왔던 이유도 그래서였다. 이만에게는 돈을 받기 위해서 할 말을 강한경에게는 그냥 해줄 작정이었다. 그 말이 위로가 될지 징벌이 될지는 알 수 없었다.

유상대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던 날이었다. 그 전화를 바로 이곳, 감림수목원에서 받았었다. 그는 그날, 유상대를 송도 편의점 앞에서 만났다. 뵐 수 있을까요, 유상대가 물었을 때, 내가 그리로 가죠 말하고는 곧바로 송도로 차를 몰고 갔었던 것이다. 

유상대는 가림막도 없는 야외 테이블에 앉아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늦은 오후였고, 더워 죽는다는 말이 조금도 과장으로 여겨지지 않을 정도로 푹푹 찌는 날씨였다. 유상대가 편의점 안으로 들어가 얼음덩어리가 든 일회용 빨대 컵에 음료수를 담아가지고 나왔다. 안찬기는 단숨에 들이켰다. 물도 아니고 물이 아닌 것도 아닌 이상한 맛의 음료였으나 시원하기는 끝내주게 시원했다.

안찬기를 바라보는 유상대의 눈가에 웃음주름이 가득해졌다. 그것 보라고, 좋아할 줄 알았다는 듯이. 그 웃음 때문에 안찬기의 시원했던 입맛이 순식간에 가셨다.

유상대가 몇 살이라고 했더라.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것은 분명했다. 해결사라고 불렸던 예전의 모습은 이제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보통의 늙은 사람일 뿐이었다. 머리는 듬성듬성했고, 얼굴에는 잘고 굵은 주름이 가득했고, 팔뚝의 살은 늘어지고 처졌다. 배도 나왔다. 게다가 저 주름은 대체 뭔가. 필요할 때마다 꺼내 쓰려고 마치 준비해놓은 듯한 웃음주름이 아닌가. 

“여전해 보이십니다.”

유상대가 뒤늦은 인사처럼 말했다. 

“세월이 그렇게 흘렀는데 어떻게 그렇게 안 늙으셨어요? 나 좀 보세요. 이렇게 쭈그렁 할배가 돼버렸는데.”

그러고는 또 웃음주름. 유상대의 말을 새겨들을 필요는 없었다. 이런 일이 아니었다면 중국집에서 한자리에 합석을 한다고 해도 못 알아봤을 사이였다. 그러나 지금은 그 역시 유상대를 정확히 알아보고, 기억하고 있었다. 기억이란 게 그렇게 이상한 것이다. 건드리면 터지는 물집처럼, 기억은 몸속에 잠복해 있다가, 터지며 흔적을 남긴다. 

“뭘 좀 알아내셨어요?”

유상대가 물었다. 할말이 있다고 만나자고 해놓고는 오히려 안찬기에게 묻기부터 했던 것이다.

“뭘 말입니까?”

안찬기가 되물었다. 유상대도 못 알아듣지 않았을 것이다.

“설마 내가 그랬다고 생각하시는 건 아니죠, 안형사님?”

유상대는 여전히 안찬기를 안형사님이라고 불렀다. 그렇게 부르지 말라고 할 생각은 없었다. 현직이 없으니 달리 부르라고 할 만한 호칭도 없었기 때문이다. 사장도 아닌데 사장님, 선생도 아닌데 선생님은 싫었다. 아저씨가 아니니까 아저씨라 불리는 건 당연히 싫었고, 할아버지가 다 된 건 사실이지만 할아버지도 싫었다. 

“내가 왜 그랬겠어요?”

유상대의 얼굴에 또 웃음주름이 가득해졌다. 이 새끼가…… 현직이었다면 같이 늙어가는 처지고 뭐고 간에 그렇게 욕설이 튀어나왔을 것이다. 그러나, 안찬기는 참았다. 그래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안찬기는 유상대의 말투를 좇아 말했다.

“그러게 말입니다. 시효가 지났지요. 아니라고 하면야 뭐, 난들.”

“황이만이 왔었습니다.”

“압니다.”

“네. 그앤…… 아, 이젠 애도 아니지요. 옷을 좋은 걸 입었더군요. 운전을 해서 왔더라면 얼마나 좋은 차를 타는지도 봤을 텐데 택시를 타고 왔더군요. 황이만이 성공을 했지요?”

“그렇죠. 황이만 그 친구, 성공했죠. 그것도 꽤, 크게.”

“그런 것 같았습니다. 한동안 황이만이 뉴스에도 나오고 그런 적이 있었죠? 그랬죠? 무슨 애들 게임을 만든다던가. 그후로는 소식을 모르고 살았는데, 왔더라고요. 올 줄 알았죠. 그런 건 그렇게 모르는 체할 수 없는 거니까.”

“그래서 거기 갔었어요? 유상대님도? 뭘 모르는 체할 수 없어서?”

“내가 거기 있었던 건 어떻게 아십니까?”

“거기가 거기인 건 어떻게 아십니까?”

“다 아시는 거죠?”

“내가 뭘요? 어떻게요? 다 죽고, 살아 있는 사람들은 다 자기는 아니라고 하는데?”

“뭐가 아니라고요?”

“김주열, 죽인 거.”

“난 아닙니다.”

“그것 봐요.”

“칼에 대해서 묻고 계신 거라면, 네, 들고 있었습니다.”

칼이라…… 이건 또 처음 듣는 소리였다. 그러나 안찬기는 그냥 듣고만 있었다.

“그날 연희 전화가 왔었습니다. 난 그때 강노을이 때문에 항상 연희 지근거리에 있었고요. 그리고 핸드폰이 있었죠. 요즘 같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제법 잘 터졌습니다. 이장군이 그 비싼 걸 사줬죠. 연희가 걱정되니까, 연희가 아무때나 나한테 연락할 수 있게 말입니다. 그날 연희가 전화로 무슨 일이 벌어졌다고 했고, 난 곧바로 강노을이랑 사단이 난 걸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강노을이가 연희를 줄기차게 쫓아다녔거든요. 연희는 그애를 딱하게 여겼고요. 강노을이 그놈이 어쩌다가 거길 끌려갔었는데…… 무슨 말인지 아시죠?”

알아들었다, 물론. 

“아주 식겁을 했던 모양입니다. 그놈이 모지리였거든요. 모지리 아니라도 누구든 거기 한번 들어가면 피똥을 싼다고 하더군요. 난 안 가봤습니다. 나야 그때 이장군 사람 아니었습니까? 그놈이 거기 들어갔다가 아주 반의반푼이가 되어서 나온 모양입니다. 나중에 알았습니다. 그놈이 그러고 나서 실종 운운 뭐 그런 얘기가 나오고 그랬던 모양인데, 난 몰랐습니다. 알았어도 기가 찼겠지. 그놈은 내 눈앞에서 연희를 쫓아다니고 있었으니까. 아주 노숙자 상거지꼴로 연희만 쫓아다녔으니까. 강제실종 어쩌구하는 말이 나왔었다는 건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뭐 그때 당시에 알았더라도 여기 있소, 하고 말해주진 않았겠죠. 그래봤자 그렇게 된 게 거기 갔다가 그렇게 된 거니까. 게다가 그놈은 뭐, 이슈가 될 만한 놈도 아니었고, 그래봤자.”

끝없는 거기, 끝없는 그때, 그리고 끝없는 ‘그렇게’, 그리고 ‘그래봤자’.

“그런데 그 모지리가 저한테 일어났던 일을 연희한테는 말했던 모양입니다. 그 모지리가 다른 사람이 물어보면 그게 무슨 말이든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처닫고만 있는 놈인데, 그러니까 거기서도 그렇게 얻어터졌겠지만, 뭐, 형사님이니까 잘 아시겠지만, 거기가 그런 데잖습니까? 대답을 해도 터지지만 안 하면 더 터지지. 속 터지게 만들면 더 터지는 거지. 그런데 이놈이 연희한테는 안 그래요. 연희가 뭘 물어보면 아주 대답을 잘해요. 안 해도 좋을 말까지 다 해요. 모지리도 좋아하는 여자한테는 그렇게 되는 모양입디다.”

안찬기는 길게 이어지는 유상대의 말을 끊지 않고 들었다. 말이 어느 옆길로 새든 결국 그가 하고 싶은 말을 하게 될 거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연희가 그때 지 아버지하고 사이가 아주 안 좋았습니다. 아시잖습니까? 그때 한참 이장군 때문에 언론이 시끄러웠던 때라…… 연희가 골목에서 넘어져 무릎 까진 애만 봐도 울 아빠가 이랬냐고 그랬을 정도니까. 황이만이하고 어울린 것도 그렇습니다. 반항이었죠. 아무튼 연희 전화를 받고 거기로 정신없이 가고 있는데, 골목에 핏자국이 보이더라고요. 다른 골목으로 갔더라면 어쨌으려나. 그런 생각을 수도 없이 해보긴 했네. 그러면 뭔가 달라졌으려나. 연희는 미국으로 안 가고, 나는 이장군한테 안 쫓겨나고, 그러면 어떻게 되었으려나. 네, 골목에서 피를 봤습니다. 비가 쏟아지기 전이었거든요. 외등이 깜빡깜빡하는데, 불이 켜질 때마다 뭐 시뻘건 게 보여요. 저게 핀가, 하는 순간부터 비가 쏟아지더라고요. 순식간에 억수 같았죠. 거기가 바로 그 집 앞이었습니다.”

“김주열이 죽은 집.”

“살아 있었습니다.”

안찬기는 곧바로 응대하지 않았다. 김주열이 살아 있었다고 했다. 유상대에게는 어느 쪽이 더 유리한 진술일까. 자신이 김주열을 발견했을 때 김주열이 이미 죽어 있었다는 것과 아직은 살아 있었다는 것 중에. 

“그 집엘 들어가봤습니다. 핏자국이 있었으니까요. 거기에 그애가 있었어요. 본드를 했나보더군요. 냄새가 지독했어요. 게다가 토하기까지 했더라고요. 토해서 기도가 다 막히지 않았을까 싶을 지경이었지요. 애가 완전히 맛이 가 있었어요. 본드 정도로는 그 지경까지는 안 간다고 알고 있는데, 안 그렇습니까, 안형사님? 근데 그앤 본드 정도가 아니라 무슨 약이라도 한 것 같아 보이더군요. 어린애가 설마 뽕을 했을 리는 없고, 왜 그랬을까요, 안형사님.”

이번에도 안찬기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애가 그걸 들고 있더라고요.”

“칼을? 왜요? 그애가?”

“내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오히려 묻듯이 유상대가 안찬기를 바라보았다.

“짐작만 해봤죠. 그애한테 들을 수는 없었으니까. 이십 년 넘게 그날 일이 떠오를 때마다 생각해봤어요. 그걸 김주열이 그애가 왜 가지고 있었을까. 찌른 건 강노을일 텐데…… 참, 제가 그걸 칼이라고 했죠?”

“칼이 아니면 뭡니까?”

“가윗날이었습니다.”

뜻밖의 말이었다.

“전지가위 아시죠? 그 가윗날이었습니다. 그게 살벌하더군요. 칼보다 더.”

전지가위라……

“그러니, 강노을이 찔렀겠죠. 그런데 그걸 김주열이가 갖고 있더란 말입니다.”

“김주열을 찌른 건요?”

안찬기는 찔러보듯이 말했다. 유상대가 안찬기를 쳐다보았다. 

“안형사님.”

그리고 유상대가 한 호흡을 쉬었다가 말을 이었다.

“무슨 말을 들으셨는지 모르지만, 김주열은 안 찔렸어요. 본드에 취해 있었죠. 아마 어쩌다가 그 칼부림에 엉켜들었던 모양이지요. 그랬다면 어쩌다가 베이기도 했겠죠. 그날 밤에. 네, 강노을이도 그렇고 김주열이도 피투성이였습니다. 다만 그게 다 지들 피는 아니었다는 거죠.”

“살아 있었다면서요.”

“네?”

“김주열이 살아 있었다면서요. 그런데, 거기까지가 다네. 강노을은 집에까지 데려다줬다면서 김주열에 대한 말은 더 없네. 안 찔린 것도 알고, 안 죽은 것도 안다면서 거기까지가 다야.”

유상대는 안찬기가 하는 말의 의도를 살피려는 듯 그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안 찔린 건 확실해요?”

유상대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그렇게 믿고 싶었던 건 아니고?”

“내가 왜 그러겠습니까?”

“그래야 그냥 거기 놔둔 게 좀 덜 미안해져서? 피 흘리면서 죽어가는 애를 그냥 놔두고 가버린 게 좀 찔려서? 그런 마음 같은 건 애시당초 없는 사람 같기는 하지만.” 

“변명을 듣기를 원하세요?”

변명 같은 건 듣고 싶지 않았다. 그런 게 듣고 싶을 리가 없었다. 안찬기가 듣고 싶은 건 팩트였다. 그는 사실을 알아야 했고, 그 사실을 황이만에게 전달해야 했다. 잔금을 받아야 했고, 그 잔금을 편의점 여는 데에 보태야 했다. 그렇다. 그가 알아내는 모든 사실과 진실은 결국 편의점으로 귀결될 터인데, 그를 그쪽으로 인도할 사람은 자신보다 먼저 편의점 주인이 되어 있는 유상대였다. 유상대가 말했다.

“그애한테 필요했던 건 기적입니다. 그랬을 겁니다. 두고두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면서 내린 결론입니다. 이게 내 핑계이고 변명이고, 또 사실이기도 합니다.”

기적이라…… 세상에서 가장 편리한 말이었다.

“암매장은요?”

“그걸 내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내가 마지막으로 봤을 때는 살아 있었고, 그걸로 끝인데. 나는 곧바로 거기서 나왔습니다.”

아니었다. 유상대는 다 말하지 않았다. 김주열이 거기 묻혀 있는 걸 몰랐다면 백골 사체가 발견되었다는 뉴스를 보자마자 거길 가볼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 해소되지 않은 의문은 있었다. 뉴스를 보자마자 그 현장을 찾아간 것은 그가 구하지 않은 아이에 대한 죄책감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더한 것이 있었을까. 안찬기의 눈빛이 마치 유상대를 짓누르는 듯했다. 유상대가 안찬기의 눈을 바라보다가, 피했다가, 다시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네. 다시 갔었습니다. 이 말까지는 안 하고 싶었지만, 김주열의 상태를 확인하고 그 집을 나서려는데 연희를 맞닥뜨렸습니다. 애가 제정신이 아니더군요. 왜 아니었겠습니까. 강노을이가 황이만이를 칼로 찔렀다고 말을 했다니까요. 황이만이를 찾으러 내려왔겠죠. 그런데, 하필이면 내가 그 빈집으로 들어가는 걸 보고 뒤쫓아 들어왔던 겁니다. 내가 그 칼인지 가윈지 하는 걸 든 것도 봤죠. 연희가 그후에 하도 지랄을 떨어대서, 죄송합니다. 그 기집애가 성질머리가 보통이 아니었어요. 한번 작정을 하면 아주 사람을 잡아먹으려고 듭니다. 이제 와서 말하지만 아주 개 같은 년이었단 말이죠. 말로만 삼촌 삼촌 불렀지 날 아주 지 발가락에 낀 때만큼도 안 여겼단 말입니다. 그러니까 연희는 내가 그랬다고 믿고 싶었을지도 모르죠. 내가 아니면 강노을이고, 강노을이 아니면 황이만인데, 그러느니 내가 제일 낫겠다, 그러지 않았겠습니까?”

유상대가 잠깐 헛웃음을 뱉고는 다시 말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내가 아니라고 말을 해도 믿지를 않았습니다. 강노을이부터 어떻게 해놓고 다시 가서 구해줄 거라고 아무리 말을 해도 안 믿고요. 그 가위를 보고서야 강노을이가 이랬냐고 물어보더라고요. 당장 그애부터 구하라는 말도 그치고요. 그날 밤에 연희한테도 피가 묻었죠. 강노을이한테서도 묻고, 김주열이 그애한테서도 묻었습니다. 그러니 어쩌겠습니까. 나는 이장군 집 사람이었는데. 강노을이 처리하고 연희도 집에다 데려다놓고 다시 가봐야 했죠. 적어도 살았는지 죽었는지는 알아야 했으니까요. 금방은 못 갔습니다. 이장군을 깨울 수는 없었으니까요. 깨기만 기다려야 했죠. 깨고 나서도 그런 얘기를 들을 만한 기분이 될 때까지 기다려야 했고요. 그러고 나서야 가볼 수 있었단 얘깁니다.”

“알았네.”

“뭘요?”

“암매장.”

“못 봤습니다.”

“그걸 내가 믿으면 그것도 기적이겠네. 안 그런가?”

그렇게 말하면서 안찬기는 유상대를 바라보지 않았다. 또 웃음주름이라도 보게 된다면 이번에야말로 그 얼굴에 주먹을 날리게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순이 넘어 주먹질이라니…… 그 주먹은 얼마나 가소로울 것인가.

“공소시효도 지났는데 속 시원하게 말이나 하든가.”

“못 봤습니다. 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이겁니다.”

“그래도 죽어가는 애를 거기다 그냥 내버려두긴 했었다는 거지. 죽어가는 걸 그냥 보고만 있었다는 거지.”

유상대는 대답하지 않았다.



6


강한경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살아 있는 김주열을 봤다. 김주열이 눈을 번쩍 뜨는 것까지 봤다. 그러나 구하지 않았다.

“그애가 눈을 번쩍 떴을 때, 누가 들어오는 기척이 들렸습니다. 그애 또래의 아이였습니다. 일단 피하고 봤죠. 어떻게 안 그러겠습니까. 폐가라서 뚫려 있는 데가 많았습니다. 굳이 대문이 아니어도 나갈 데가 있었어요. 그래도 발이 떨어지지 않아서 그 주변을 빙빙 돌았습니다. 안 그럴 수가 없더라고요. 그러다가 다시 그 집으로 갔는데…… 그때 본 겁니다.”

그러니까, 암매장…… 김주열을 묻으려고 의논하는 애들, 비명을 지르는 애들, 서로 욕을 하는 애들, 시끄러 입 닥쳐 우리가 안 그랬잖아, 그러면서 한도 끝도 없이 씨발씨발씨발 하는 애들……

“분명히 살아 있었는데…… 다시 갔을 때는 아니었습니다. 쟤들이 죽였을까. 죽어가던 아이를 쟤들이 죽였을까. 그러기를 바랐죠. 그러면 노을이가 안전해질 거 같더라고요. 사람이 그렇게 모질고 치사해지더군요. 아주 기도까지 하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제발 우리 노을이가 죽인 것만 아니게 해달라고. 쟤들이 그런 거라고 해달라고. 그런데 아닌 거 같았습니다. 아니었습니다. 내가 그 집에서 도망친 후에 애가 금방 숨을 거뒀던 모양입니다. 지 눈앞에서 친구가 죽는 걸 보고 그애도 그렇게 식겁을 했던 모양이고요. 다른 애들도 마찬가지였고요.”

“신고하지 않았고요?”

강한경은 한동안 말을 잇지 않았다. 어깨가 잠시 흔들리는 듯했다.

“처음에 그 집에 갔을 때 가위를 봤습니다. 우리 가위였습니다. 상호까지 새겨진. 노을이가 그 가위를 아주 애지중지했거든요. 아주 품에 안고 살다시피 했으니까요. 그러니 내가 어쩔 수 있었겠습니까.”

“황이만에 대해서는 언제 알았어요?”

“그땐 몰랐습니다. 나중에 알았습니다. 나중에 알았는데, 그놈은 멀쩡히 잘 살고 있더군요. 그래도 되는 겁니까, 안형사님? 나는 내 아들을 살인자라고 생각하며 살았는데요. 내 아들은 세상에 없는 사람으로 살았어야 했는데요!”

“단체 활동은 왜 그렇게 유난스럽게 했어요? 강노을이 돌아왔는데? 불까지 질렀잖아요?”

“노을이가 그렇게 돌아왔는데 얼마 후에 그 단체에서 시위가 있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애가 돌아왔다는 말을 못하겠더군요.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래서 나갔다가…… 보니까 그게, 그놈들 탓이기도 하더라고요. 아뇨, 그놈들 탓이었죠. 형사님은 노을이를 모르죠. 노을이가 어떤 앤지 아십니까? 천삽니다. 그애가 천사입니다. 그런데 그런 애를 끌고 가서 그렇게 모진 짓을 한 겁니다. 그래서 노을이가 그렇게 이상해져버린 겁니다. 그 순한 애가 얼마나 무서웠겠습니까. 또 잡혀갈까봐 얼마나 무서웠겠냐고요. 그래서 그때부터 그애가 집에도 안 돌아오고 거리에서 먹고 자면서 그 여자애만 쫓아다닌 겁니다. 그러다가, 그러다가……”

변명이 필요하냐고 유상대가 묻던 기억이 났다. 그리고 유상대가 스스로 대답했었다. 그때 필요했던 건 기적이라고. 강한경에게 필요한 건 뭐였을까. 기적은 아니었을 것이다. 

안찬기는 입맛이 썼다. 기적이 필요했던 건 김주열뿐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만든 사람들 중에는 자신 역시 포함되어 있다는 걸 부정할 수가 없었다. 이장군 딸이 연루되었으니 대충 접으라고, 윗선에서 그런 압력을 받았더라도, 더 팠으면, 더 열심히 빈집들을 샅샅이 파헤치고 돌아다녔더라면, 이미 죽은 김주열을 살려내기까지는 못해도, 적어도 그렇게 오래 남 모르게 묻혀 있게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린애들이 당황을 해 암매장을 한 게 오죽 서툴렀을 것인가. 시간이 그애들을 담대하게 만든 나머지 시멘트까지 바를 결심을 하기 전에, 그는 김주열을 찾아낼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김주희는, 아마도 지금보다는 더 괜찮은 삶을 살아갈 수도 있었을지 모른다. 술 한 잔 생각이 간절해졌다. 이만에게는 약해 보이기 싫어 말하지 않았지만 당뇨가 심해진 후로 마실 수가 없게 된 술이었다. 그 술 생각이 간절했다.

그러나 아직 한 가지가 더 남아 있었다. 강한경을 병원으로 다시 데려다줘야 했고, 그러기 전에 한 가지 더 물어봐야 할 말이 남아 있었다.

“황이만에 대해서는 나중에 알았다고 했는데, 어떻게 알았어요?”

“그놈이 유명한 놈이더군요. 어느 날 TV에서 봤습니다. 노을이가 아직 살아 있을 땝니다. 그날 노을이가 황이만이를 알아봤습니다. 그날 일에 대해서도 그때 알았고요. 자그마치 십 년도 더 지나서였습니다. 난 그 십 년 동안 내리 내 아들을 살인자로 생각했고, 숨겨놓다시피 하고 살았는데 말입니다. 노을이가 살아 있을 때도 죽은 놈이나 다름없게 살았습니다. 오죽하면 실종신고도 취하를 못했잖습니까.”

“그럼 그때 그러지, 왜 나중에서야?”

차로 밀어버리려고 했던 걸 말한다는 걸 강한경 역시 알아들었다.

“찾아갔었습니다. 너무 화가 나서 그때는 그놈 죽이고 나도 죽어버려야지, 뭐 그런 마음이었던 거 같습니다. 그렇잖습니까? 그놈만 그렇게 잘 살면 안 되는 거 아닙니까? 그래서 그놈을 깔아뭉갤 작정으로 쫓아가는데, 그놈이 술을 마시고 나와 음주운전을 하더군요. 내가 깔아뭉개기도 전에 사고를 일으켰어요. 내 눈으로 그걸 봤습니다.”

“그래서요?”

“천벌을 받는구나 했습니다. 오늘 못 받으면 언젠가는 받겠구나 하는 생각도 했고요.”

말은 이렇게 하지만 무서웠겠구나 싶었다.

“실은 용기가 없었던 겁니다.”

마침내 강한경이 울기 시작했다. 

“노을이를 여기 묻고 나서도 또 한번 갔었습니다. 노을이도 죽은 마당에 그놈만 혼자 잘 사는 걸 견딜 수가 없겠더라고요. 그런 놈이 그렇게 잘 살면 안 되는 거잖습니까. 그런데도 또 못했습니다. 나는 노을이만큼도 용기가 없었단 말입니다.”

다시 술 생각이 간절해졌다. 최형사를 불러 한잔하자고 할까. 지금 그의 전화를 가장 지긋지긋해할 사람이 있다면 그건 아마도 최형사일 것이었다. 전화를 걸 만한 사람이 한 명은 있었다. 전직 경찰인 소설가만큼 그를 반가워할 사람이 없을 것이었다. 그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날은 그의 소설 얘기나 들으면서 술을 마시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이만을 발견한 게 그때였다. 이만이 수목원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그만 갑시다. 병원으로 가야죠.”

그는 이만을 만나고 싶지 않았다. 적어도 지금 여기서는. 그는 서둘러 강한경을 일으켜 차에 태웠다. 강한경의 상태가 좋지가 못해 수목원 안까지 들어와 차를 주차해놓았었다. 그 차를 수목원에서 빼려고 룸미러를 볼 때 이만이 멈춰 서는 게 보였다. 이만의 바로 옆을 지나가면서 다시 사이드미러로 이만을 봤다.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이만은 안찬기의 차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이만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고 나서야 안찬기는 갓길로 차를 빼냈다. 대시보드를 열었고, 그 안에서 사진 한 장을 꺼내 강한경에게 보여주었다. 

“아십니까?”

“네. 낯이 익군요.”

“언제 봤는지 기억하세요, 이 여자?”

“몇 년 됐습니다. 노을이 죽기 전이니까요. 펜션을 한다면서 벚나무를 살 수 있느냐고 물어보더군요. “

“기억력이 좋으십니다.”

“노을이를 아주 한참 동안 바라보더라고요. 그게 이상해서 왜 그러냐고 했더니, 천사 같다고 했습니다. 노을이 보고 그렇게 말해주는 사람 별로 없거든요. 그런데…… 누굽니까?”

안찬기는 대답하지 않고, 사진을 다시 대시보드에 넣었다.